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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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보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보수적이고 답답한 사람. 수줍고 비위 맞추기가 어려운 사람.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지만 그 외에도 자신들에 대한 생각을 완강하다고 할 수 있으리만치 옹호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 까다로움이나 절제가 단지 인기 없는 자질이라는 이유로 비판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P.7)

"해리엇은 자신의 미래가 구식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왕국의 열쇠를 그녀 손에 쥐어 줄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의 본성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발견할 것이며, 그것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인생의 모든 굴곡이나 진창을 처음에는 잘 모르면서 그러나 점차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그곳으로 나아갔다. 반면에 데이비드에게 미래는 그가 목표로 삼고 보호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자기 부인은 이런 점에서 그와 같아야만 했다. 즉 그녀는 행복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지키는가를 알아야만 했다. 헤리엇을 만났을 때 그는 서른 살이었고 야심찬 남자가 지닌 완고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일해 왔었다. 그러나 그가 일해 온 목표는 가정이었다."(P.13-1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보통은 전통적인 결혼생활과 육아에서 벗어난 예를 보여주기 마련인데.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 반대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살고 있는데 반해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보수적이면서 결혼과 가정에 관해서도 '우리만을 위한 가정'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전통적인 대가족적 만남과 생활을 선호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하였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집도 구입했다. 집을 사는 과정에서 데이비드의 두 부모(이 가정은 이혼 가정으로 부모가 각각 재혼 가정을 이루고 있다) 중 한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해리엇의 출산과 함께 해리엇의 어머니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 나는 여기서부터 계속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뭐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걸까?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들이 생각했던대로 아이를 낳고, 여러 사람들이 휴가를 함께 보내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오는 것을 반긴다. 그들의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축하를 하고 행복한 가정의 전형을 보는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그렇지만 과연 그러했을까? 해리엇은 아이 다섯을 낳는 동안 계속해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반복한다. 먼저 낳은 아이는 자연스럽게 해리엇의 엄마인 도로시가 양육을 하고, 헤리엇은 또다시 임신을 하고 침대에 누운 채 보내거나 날카로워진 신경 탓에 모두가 눈치를 본다. 그렇게 연이어 아이를 낳는다. 참 이기적이다. 그렇다. 내가 생각한 것은 바로 그거였다. 이기적이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집을 구하기 위해 굳이 재혼해서 살고 있는 아버지로부터 돈을 지원받는다. 그들의 수입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먹이고 재우는 데 필요한 돈을충당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줄이거나 늦추지 않는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충분히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는데도 또 새로운 아이를 임신하고, 그 아이를 낳기 위해 먼저 낳은 아이는 오롯이 친정엄마인 도로시의 몫이다.

자신들의 꿈을 위해 양가 부모는 돈과 시간을 무상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해리엇의 자매인 사라는 넷째 아이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고 부부 간에 문제도 있지만, 그의 엄마인 도로시는 헤리엇의 아이를 봐주느라 사라를 돌볼 여유는 없다. 사라도 그렇다. 그렇게 고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자신과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다니... 아니, 딸들이 왜 이렇게 다들 이기적이고 멍청한지.

물론 데이비드도 마찬가지다. 해리엇이 아이를 연이어 낳는 것은 해리엇 혼자 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데이비드가 조절을 하거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한다. 연이어 임신을 한 상태에서 몸이 축나는 것은 해리엇이다. 물론 데이비드도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생활에 많이 힘들었겠지만. 결국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났을 때. 나는 해리엇도, 데이비드도 모두 자기 밖에 모르는 철부지들처럼 여겨졌다.

앞서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라주고, 그들의 기쁨이 되어주었을망정 연이어 태어나는 동생들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의 삶, 그리고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는 넷째.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성향을 갖고 태어난 벤.

벤의 탄생으로 인해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들이 셋째, 넷째를 낳는 동안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벤'은 사라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것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네명의 아이를 연이어 낳고 키우면서 지치지 않은 상태였다면, 벤도 그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벤은 그들이 지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때 태어났다. 결국 그들은 벤을 기관에 보내버린다.

해리엇이 강한 모성애 때문에 그 애를 되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성'이라는 것이 또 한번 남은 아이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해리엇이 힘들게 벤을 보냈다면, 남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다시 원상복귀를 하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그러나 해리엇은 그러지 않았다. 다시 벤을 데려왔지만 그 또한 엄마로서 감싸앉지 못했다. 벤이 존 패거리와 있을 때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는데(물론 거기에는 힘의 관계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왜 그들의 가정에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사람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가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양보가 따르는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를 있는그대로 이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결혼 생활이란 것이 있을까? 과연?

결국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희생과 양보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상적인 가정'='행복한 가정'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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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08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기억에 남아요 강렬하게 ㅎㅎ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하양물감 2022-03-08 19:01   좋아요 0 | URL
미니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양물감 2022-03-08 19:01   좋아요 1 | URL
언제나 달려와주시는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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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해 둔 지 꽤 되었는데, 정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서동아리 선생님으로부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질문을 받은 후 확인도 할 겸 꺼냈는데, 그냥 그 자리에서 쭈욱 읽게 되었다.


프롤로그를 보면 이 책의 저자인 곽한영님이 '책을 사 모으면서 정한 자신만의 원칙'을 소개한다.

1. 책을 수집하는 목적이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에 있다.

2. 값비싼 초판본에 연연하지 않고 초판본의 모습을 간직한 중쇄본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 발간되었더라도 본래의 삽화와 판형을 유지하고 있는 책을 구입한다.

3. 본인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


초판본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고가에 팔거나 경제적 가치를 노린(?) 사람들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위의 원칙에 따른다면 오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책에는 열 권 정도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많은 분이 읽어보았을만한, 굳이 그 작품을 다시 읽지 않더라도 어릴 적 기업을 떠올리며 '아, 그래. 이게 그런 의미였구나!'하고 무릎을 치며 즐기실 만한 작품들"(p.11)을 우선 골랐다고 한다. 이 기준에 어긋나는 책은 『닐스의 모험』과 『하늘을 나는 교실』인데, 나는 이 책들도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책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열 권의 책은 다음과 같다.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 소여의 모험』, 『켄싱턴 공원의 피터팬』, 『보물섬』, 『빨간 머리 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곰돌이 푸 시리즈』, 『닐스의 모험』


먼저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은 가족이야기지만 정작 가족 중 한 명인 아버지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설정되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작가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작은 아씨들』의 탄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작은 아씨들』은 미국적 가족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다.


이 책이 출간되던 당시는 "출판계 입장에서 보자면 아동 서적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가능한 블루오션이 형성"(p.28)된 시기이다. 여기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아동 서적의 붐이 일어났다. 책을 선택하고 구입하는 부모의 취향에 맞추다보니 아동서적에서는 교육적 목적을 강조하게 되었고,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건강한 소년의 모습을 강조하는 모험 소설과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다보면 결국 복을 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시리즈류가 많이 발간되었다.


어린 시절 올컷의 집에는 에머슨, 소로, 호손과 같은 당대의 유명 문인들이 드나들었다. 이는 올컷이 그들에 대한 동경을 하게 되고 전업 작가를 꿈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클라이맥스나 분명한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도 아니고, 묘사도 좀 진부한 측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1868년의 시대적 상황이 한몫을 했다. 미국인들은 남북전쟁이라는 고난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미국, 평범한 미국인들의 작은 영웅담, 소박하지만 안온한 삶의 근거인 가족의 정(p.41) 등을 담은 이야기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10권의 책들은, 내가 이야기와 줄거리로서 인식하고 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해된다. 내가 이 책들을 읽은 것은 초등학생 때이고(나는, 국민학생이었고,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다) 그 이후로 저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빨간 머리 앤』은 수시로 읽는 작품이기에 어릴 적 감상과는 다른 감상을 갖고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초등학생이던 그 시절의 감상에서 바뀐 것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해당 소설이 발간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작가의 가정사와 개인적인 상태, 그리고 의식 등이 어떠했는가를 알게 됨으로써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발간되던 당시에는 책이 필수적인 학습을 위한 용도이기도 했지만, 부유한 집 안을 장식하는 사치품이기도 하였다. 마크 트웨인은 올리비아 랭던과 결혼한 후 작가로서의 성공과 아내가 가지고 온 엄청난 재산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집착이 컸던 마크 트웨인은 더 많은 책을 판매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톰 소여의 모험』 초판본은 페이지에 여백을 넉넉히 두고 목차 앞쪽에는 백지를 16장이나 끼워 넣고, 최대한 있어보이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페이지 수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법은 삽화를 대폭 넣는 것(p.93)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이 소설을 '돈 되는 아동 소설'을 쓰기 위해 썼다. 거기에 유머 작가로 입지를 다지고 있던 마크 트웨인은 온갖 지저분한 농담과 비도덕적인 행동, 차별적인 사고를 그대로 이 소설에 담았다. 저속 통속 소설로 취급받던 이 책이 고전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 책의 저속성을 고발하는 글들이 속속 게재되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자 도덕률로 문학 작품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문학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 안 된다는 반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이 소설은 픽션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실제 삶을 그대로 옮긴 회고록에 가깝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이상적으로 묘사하던 당시의 분위기와 다르게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지금은 마크 크웨인을 값싼 유머 작가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철없는 유년 시절의 행동은 기성 세대에게는 낭만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된다. 어떤 작품이 발간된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모두가 좋아하는 작품으로 자리잡기도 하지만, 고난과 수난을 겪은 후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좋은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마크 트웨인의 책을 출간하던 출판사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자 조카 사위찰스 웹스터가 자살을 하고 그의 딸이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고아처럼 자란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 『키다리 아저씨』라고 한다. 그녀는 진 웹스터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소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말 이런 일도 있었어? 아 이 책이 그런 내용이었던 거야? 내가 아는 작가와 이미지가 좀 다르네.' 등 내 생각을 수정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 소설들을 읽었던 시기에는 아마도 이런 내용을 알려줬다고 한들 특별히 다르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지금이야 소설의 사회적 배경, 경제적 환경, 정치적 의도, 그리고 작가들이 만나고 영향을 받았던 유명인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니 그에 맞게 다시 이해되고 생각이 재편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내가 좋아했던 책은 언제든 다시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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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지나가기
이현진 지음 / 강한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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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회사에서의 '인간관계', 그리고 '회사 업무와 나의 역할'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취직과 이직에 있어서 커다란 고민과 방황을 하지 않았고, 나름대로 좋은 사람들과 일했으며 그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늘 나는 '일복'도 많지만 '인복'도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요즘은 많이 깨지고 있다. '일복'만 많고 '인복'이 없는 것 아닌가...하고.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지나가기'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산다고 말하면 '대충' 사는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일상 속에서 나를 위로하고 '살 맛'나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가볍고 사소한 것들이다.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 인해 큰 위로를 얻을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아무 이유 없이 내민 꽃다발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때. (p.6)

내가 요즘 마음이 힘이 들고 아픈 건, 그렇게 가볍게 지나치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하루 중 직장에서 일하는 8시간, 10시간 중에 '나의 담당업무'가 아닌 '그들의 업무'로 빼앗긴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는 나에게 '제대로 아랫사람을 교육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도 하고, '위임업무'를 제대로 위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도 한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은 내가 만족하지 못해 내가 자꾸 손을 댄다. 위임했으나 위임하지 못한 업무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자기가 하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일을 제대로 넘겨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감시간을 앞두고 미완성인 원고를 나에게 넘기면서 당연한 듯 '마무리를 요구'한다. '나는 그렇게 못해요. 그건 ooo님이나 가능한 일이지요'라며 불쑥 넘어오는 일도 많다.

나를 흔들었던 그 한마디는 오늘 아침에 맞았던 비 같은 거였어요. 비가 오는 건 제 탓도 아니고 내 계획과는 상관없이 생기는 일이니까요. 비 한 번 맞았다고 흔들릴 필요까진 없는데, 순간의 기분에 빠져 며칠을 지내곤 했습니다.(p.38)

회사에서 눈치 보는 걸 싫어해 없는 일도 찾아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유연하지 못한 나는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뎠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급하다는 일을 대부분 처리해 주는 편이었다. 짬 내서 해주고, 친해서 해주고, 짬밥으로 해결해 줬다. 내 딴에는 한두 번 일하고 말 사람들이 아닌, 오래 함께 갈 동료들이므로 하던 것도 멈추고 재빨리 그들의 아쉬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기꺼이 해결해 주면 대부분 다음번엔 “더 빨리”를 요구한다. 기꺼이 빨리 처리해 줬던 경험은 그들에게 '감사'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이용'의 카테고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p.46)

정말 공감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감사'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이용'이 카테고리라는 말. 저자가 겪었던 이 일들이 내가 최근에 겪은 일들과 오버랩된다.

'일만 잘하면 다른 건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이번 일을 또 해내면 회사에서 인정해 주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주고 더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고 더 높은 이해심을 요구했다.

“너는 잘하니까 이것도 좀 해봐.”

“책임감 높은 네가 이해하고 포용해.

"늘 그래왔듯, 이것도 좀 부탁해.”

더 완벽한 회사원 100%가 되어 가는 동안 억울함과 절망은 점점 높아졌고 진짜 나는 소멸되어 갔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까지 나를 의심하는 지경이 되자 회사원이 아닌 내 안의 진짜 나는 무기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 불행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하다. 이 불행에서 벗어나고 싶다."(p.143-144)

내 어깨에 나의 능력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낑낑대며 걸어가는 동안, 나는 소진되고 소멸된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싶다. 때로는 가볍게 생각하고, 때로는 가볍게 지나칠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나는 나로 살고 싶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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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아워 - 내 안의 의지 근육을 깨우는
에이드리엔 허버트 지음, 고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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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면서 생겨난 파워 아워, 그 1시간이 어떤 기적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파워 아워라 함은 오전 5시에 기상하라는 뜻이 아니다. 몇 시에 일어나건 시간 자체는 상관이 없다. 파워아워는 마인드셋을 뜻한다. "언제나 기꺼이 선택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도록 스스로 단련하는 것, 그리하여 인생의 목표에 좀더 집중함으로써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P.15)

우리는 연초가 되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인생을 다시 설계하며, 뭔가를 해보겠다고 의지를 활활 불태우다가도 3일은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와는 반대로 마음먹은 대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파워 아워'가 있었다. 저자는 파워 아워를 하루 종일 매시간을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루의 첫 1시간을 온전히 활용하는 것,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과 능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1장에서는 하루에 1시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움직임을 찾으라고 이야기한다. 파워 아워에 '움직임'을 포함할 수 있다. 중간 강도의 운동을 20분 정도 하고 나면 행복호르몬인 도파민과 세로토닌,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30분 정도 요가를 한다면 집중력과 자신감이 높아진다. 몸이 강해지면 마음도 강해진다. 움직임과 에너지는 서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

기존의 고정마인드셋을 성장마인드셋으로 바꾸려는 사람에게 파워아워는 가장 확실한 실천의 장이 된다. 계속해서 꿈을 꾸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며 성과가 높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성장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인드셋에 달려있다고도 할 수 있다. 뇌는 잘 변한다. 의지가 있다면 변화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움에 대한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충분한 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드백이 필요하다. 긍정적 피드백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도 받아들이는 당신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도움을 청하거나 자신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도 힘든 일을 할 수 있다'라는 주문은 굉장이 강력하다. 내가 얼마나 의욕적인건, 얼마나 준비를 했건 간에 '세상에는 너무 힘든 일도 있다'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자극한다. 게다가 힘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쉽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나 편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게 된다. (P.65)

하루의 첫 1시간 동안 아래의 여섯 가지 질문을 답을 적어보라.

1. 오늘 나는 어떤 에너지로 살아갈까?

2. 오늘은 누구에게서 배울 수 있을까?

3. 오늘은 누구를 도와줄 수 있을까?

4. 1년 후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으려면,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5. 오늘 가장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6. 오늘 가장 감사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집중하여 답을 적고 나면 그날 하루동안 나의 뇌는 그 답들을 끊임없이 찾으러 다니며,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강화하는 쪽으로 편향된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은 저녁보다는 아침에 하는 게 좋다. 하루가 시작될 때 그렇게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로 성장마인드셋이 강화된다. '나는 왜 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로 바꿔보자.

유용한 습관이란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되었을 때 자신이 원하는 장기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행위나 행동'이다. 그리고 무용한 습관은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게 도와주기보다는 즉각적인 결과나 단기적인 보상만을 안겨준다. (P.90~91)

습관의 고리란 '습관이 형성될때 뇌 속에서 고리처럼 이어지는 3단계 작용'을 일컫는다. 먼저 어떤 특정한 신호가 우리를 자극한다. 그럼 우리는 곧바로 반응하게 되는데, 그 반응이 곧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즉시 우리에게 특정한 보상이 주어진다. 우리 뇌는 이것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같은 신호를 받으면 이 고리를 반복하는 패턴을 보이게 된다. (P.93) 그러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우리의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경험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서 피로나 스트레스, 여러가지 감정들이 우리의 즉각적인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면 자신이 지닌 습관 중에 어느 것이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데는 어느 정도의 노력과 의도적인 행동, 그리고 의지가 필요하다. 자동적인 반응이나 습관을 알아채어 이에 저항함으로써 의지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욕을 하지 않기로 했다면 욕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마다 의식적으로 입을 다물거나 벌칙이나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의지력도 쓰면 쓸수록 지칠 수 있다. 일단 새로운 습관을 지니기로 했다면, 거기에 100% 전념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선택이나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정한다. 새로운 습관 형성을 위해서는 동기, 훈련, 책임감이 필요하다.

유용한 습관을 기르기 위한 세 가지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모든 습관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 습관들을 유용한 습관과 무용한 습관으로 분류한다. 버려야 할 습관과 계속 유지해야 할 습관을 결정한다. 2단계는 연결하고 대체하고 집중한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 위해 따로 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기존에 하고 있는 무언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많은 습관을 만들기보다 우선은 가장 큰 효과를 불러올 만한 습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파워 아워의 진정한 힘을 체험한 사람들은 '잠의 소중함'을 잘 안다. 하루의 첫 1시간을 위해 최우선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잠을 잘 자는 것이다. 규칙적이고 질 좋은 수면이야말로 꼭 지켜야 할 일상 습관들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바로 수면의 질이다. 아침에 1시간 일찍 일어나라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든 그 첫 1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라는 것이 내가 이해한 파워아워였다. 내 몸이 원하는 리듬을 깨지 않으면서 하루를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수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는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속한 사회적 집단의 사람들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만, 우리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준다.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면 '몸소 보여주는' 방법이 좋다. 행동이 말보다 크고 세다. 만일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면 나를 지지해주는 그룹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바쁜게 좋다'라는 말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나에게 중요한 일, 그리고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면, 그것은 애초에 내가 우선순위를 잘못 매겼다는 뜻이다. 따라서 잠시 시간을 내어 우선 사항을 재평가하고 몇 가지 순서를 변경해야 한다. (P.208)

저자는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두려움 리허설'을 통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두려움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상상해 본다. 그러면 그 상황이 실제로 닥쳤을 때 자신의 반응에 달 대응할 수 있다. 다음은 '노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지와 약점을 드러내 놓고 인정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프로인 사람은 없다. 그러니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자.

파워아워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루 1시간, 온전히 하나의 일에 집중을 해도 좋다. 2종류의 일을 30분씩 나눠서 하거나 3종류의 일을 20분씩 나눠서 해도 괜찮다. 몸과 마음 영역을 나누어 몸의 에너지를 깨운 다음 마음의 스위치를 켜보자.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딱 10분, 딱 1시간, 이런 시도들이 커다란 변화와 격차를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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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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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읽었다.


이런 작품은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추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인데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읽으면서


이야기 전개에 따라 상상과 예측을 하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다.



1부에서는 AF가 등장한다. 소년에이에프와 소녀에이에프.


에이에프는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으로 아이들의 친구로 생산되어 판매되고 있다.



매니저는 에이에프들을 앞쪽 벽감에 옮겨두기도 하고


매장 중앙부에 두기도 하며 이리저리 위치를 조정한다.


고객들은 매장에 들어와서 에이에프를 쇼핑(?)한다.


주인공인 클라라는 이 매장에 있는 AF로 B2 3세대 모델이다.



쇼윈도에 서게 되면,


가게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클라라는 다른 에이에프와 달리 쇼윈도에 서면 인간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관찰을 한다.


클라라는 자기가 받아들인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과 소통까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인공지능 로봇은 프로그래밍된 대로 반응을 하거나 학습을 하는데,


클라라는 유독 학습능력도 뛰어나고 인간에 대한 반응도 특출나다.


에이에프는 태양광을 에너지로 하여 움직인다.


클라라는 에이에프들의 생명의 원천인 태양이, 인간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거지할아버지와 개를 통해 '태양'의 힘을 목격하기도 한다.



유전자편집을 통해 조작된 인간들과, 인공지능학습을 통해 인간을 대체해가는 에이에프.


그런가하면 공해를 뿜어내는 기계들과 그로 인해 태양을 가려버린 시커먼 하늘은


태양이 힘을 보여주는 날과 대조되어 드러난다.


그러므로 클라라는 태양의 힘, 바로 자연의 힘을 성장, 긍정, 희망의 존재로 받든다.



클라라가 함께 살게 된 조시는 유전자편집을 거쳐 '향상'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아이다.


조시의 아빠가 유능한 공학자였지만, 로봇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조시의 부모는 조시를 '향상'시키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클라라는 조시에 의해 선택되었지만,


어머니는 아픈 딸을 도와주거나 친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초상화'작업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딸을 향상시키는 선택을 함으로써 '건강'이 악화되는 부작용을 겪고 있는 조시가


그 과정을 잘 견뎌내고 이겨내길 바라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런가하면


조시의 이웃에 사는 릭은 유전자 편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부모의 선택(유전자 편집)에 의해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가 영향을 받고 있다.


어떤 어머니의 선택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 사이에서 클라라는 조시의 초상화 작업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 그리고 사랑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클라라는 자신이 그것을 모방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낼 수는 있을지언정


진짜 마음과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것'을 갖지는 못함을 알게 된다.


클라라가 할 수 있는 일은


태양의 힘을 빌어 조시가 건강해지기를 소원하는 것 뿐이다.



“말씀하신 마음이요.”


내가 말했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아버지도 옆길에서 끼어들려고 하는 차에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 (321쪽)



물론 구 수많은 방을 열고 열어서 그 인간의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클라라는 '조시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저는 최선을 다하겠어요."라는 말을 한다.


조시의 마음, 즉 인간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클라라 자신의 마음과 희망으로 조시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비록 프로그래밍된 것 그 이상은 할 수 없다하더라도


이 소설에 나오는 인간들 그 누구보다 희망을 가진 존재로 그려지는 것 같다.



미래의 우리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짐작조차 어렵지만,


가즈오 이시구로가 그리는 세상이 그리 낯설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특성이랄 수 있는 사회화 과정은 축소되고


교육의 기회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세상은 공해 속에서 힘을 잃어간다.


에이에프로 조시를 대체하려고 했던 초상화작업은


홀로그램으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불러오거나


가상인간을 모델로 세워 광고를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그들 로봇이나 가상의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할까?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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