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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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보코프가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작성한 메모와 자료들을 글로 묶어낸 책이다. 우선 우리는 나보코프가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나보코프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7세에 자비로 시집을 발간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조국을 떠나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그는 소설 『롤리타』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다. 나보코프는 20년 가까이 명강의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 중에서 7개의 명작에 대한 강의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좋은 독자와 좋은 작가

예술 작품은 언제나 새로 창조된 세상이다. 평범한 작가는 평범한 것에 장식을 덧붙일 뿐 굳이 세상을 재창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훌륭한 독자, 좋은 독자는 상상력, 기억력, 사전, 약간의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보코프는 "훌륭한 독자, 중요한 독자,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책을 다시 읽는 사람"(p.47)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처음 접할 때는 특별한 방식으로 눈을 움직일 필요가 없고 시간이라는 요소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는 시간을 들여 친해져야 하고 두번, 세번 네번, 책을 읽고 난 뒤에야 그림을 볼 때와 같은 태도로 책을 대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손에 쥐고 읽으려고 애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면 다양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예술의 대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창조해낸 책인만큼, 이 책의 소비자도 당연히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공정하다."(p.48) 그러나 상상력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단순한 감정에 의지하며 개인적인 성격을 띄는 수준이 낮은 상상력이다. 나보코프는 독자가 책 속의 등장 인물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우를 최악의 독자로 본다. 우리는 대부분 이 수준의 독자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두번째 상상력은 개인적인 특성과는 관계없는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쁨을 말한다. 독자는 작가가 자유자재로 사용한 구체적인 세상을 명확히 파악하려고 애써야 한다. 책 속에 나오는 것들과 인물들의 행동을 눈으로 보듯 그려볼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은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며, 네안데르탈의 계곡에서 커다란 회색 늑대에게 쫓겨 뛰어나온 그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문학은 소년이 뒤에 늑대가 없는데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친 날 태어났습니다." (p.49~50)

작가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이야기꾼, 교사, 마법사. 뛰어난 작가는 이 세가지를 조합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작가를 가장 뛰어나게 만들어주는 것은 마법사이다.

제인 오스틴(1775~1817)

『맨스필드 파크』(1814)

패니는 작가가 아끼는 인물이자, 이야기의 축이 되는 인물이다. 패니는 수양딸이고, 무일푼의 조카이며, 얌전한 피후견인이다.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 이러한 피후견인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1. 기본적으로 낯선 집의 미지근한 식구들 사이에 자리한 그녀의 위치가 페이소스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2. 낯선 집의 이 이방인이 그 집 아들과 낭만적인 감정을 주고받는 상황을 쉽게 만들 수 있고, 그 결과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갈등이 빚어진다. 3.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관찰자이면서도 식구들의 일상생활에 직접 참여하는 이중적인 지위 때문에 작가의 뜻을 전달하는 편리한 대변인이 될 수 (p.54)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작품 뿐만 아니라 디킨스, 도스토에프스키, 톨스토이의 작품에도 이런 인물은 등장한다. 이 아가씨들의 원형을 나보코프는 '신데렐라'라고 말한다.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무기력하고, 친구도 없고, 방치된 채 잊혀진 존재였다가 남자 주인공과 결혼(p.54)을 하는.

나보코프는 제인 오스틴이 책의 첫머리에서 네 가지 방법으로 인물 설정을 설명한다며 직접적인 묘사, 인물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 남에게 전해 듣는 말, 자신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나보코프는 플롯을 "미리 생각해 둔 이야기"로, 테마를 "소설 속 여기저기에서 반복되는 이미지 또는 생각"으로, 구조는 "책의 구성, 사건 전개,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야기하는 것, 한 테마에서 다른 테마로의 이행, 인물을 교묘하게 등장시키는 것, 새로운 행동 묶음이 시작되거나다양한 테마가 서로 연결되거나 소설을 진행시키는 데 이용 되는 것"이며 문체는 "저자의 특별한 어조, 어휘, 독자가 어떤 문장을 보았을 때 이건 디킨스가 아니라 오스틴의 문장이라고 외치에 만드는 어떤 것"이라고 메모해두었다. (p.64)

나보코프의 강의는 플롯, 테마, 구조, 문체 등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식이다. 책을 한번만 읽고 다시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까 싶다. 나보코프는 문체가 작가의 개성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제인 오스틴처럼 경력이 쌓일수록 작가의 문체가 더 정밀하고 인상적으로 변해갈 수는 있지만, 재능이 없는 작가는 가치 있는 문제를 발전시키지 못한다. 천재성은 작가의 영혼 속에 깃들어있다. 나보코프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 소설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문학적인 재능이 있는 젊은 작가만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적확한 단어를 찾아내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나 소설을 써보겠다고 습작을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재능이 없음을 알고 일찌감치 그만 두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보코프가 내 앞에 있었다면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 조금은 노력해봐도 되지 않을까?

찰스 디킨스(1812~1870)

『황폐한 집』(1852~1853)

나보코프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구식 가치관을 매력적으로 재배열한 작품이라면 디킨스의 작품에는 새로운 가치관이 나온다고 말한다. 『황폐한 집』에는 주목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아이들과 관련된 테마, 챈서리-안개-광기 테마, 등장인물의 속성,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물들, 셜록 이전의 탐정 스타일, 선과 악으로 구현된 이원론 등이 그것이다. 이 소설을 구성하는 주요 테마는 챈서리 법원 테마(안개, 새), 비참한 생활을 하는 아이, 그리고 미스터리테마이다.

디킨스가 챈서리의 안개를 다룰 때는 마법사이자 예술가의 면모를, 아이들 테마에서는 예술가와 사회운동가가 합쳐진 모습을, 미스터리 테마에서는 이야기에 방향을 제시하고 추진력을 제공하는 아주 영리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인 것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예술가의 면모입니다.(p.149)

이야기의 형식이란 이야기의 구조(예술 작품의 미리 계획된 패턴), 문체(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작가가 등장인물을 선택해서 이용하는 것, 인물들 사이의 상호작용, 그들의 다양한 테마, 테마의 가닥과 그 가닥들이 교차하는 부분, 작가가 이런저런 직간접적 효과를 내기 위해 도입하는 다양한 움직임, 효과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준비 등이 전자에 해당한다. 후자의 문체에는 작가의 특징, 작가의 버릇, 여러 특별한 트릭들이 있다.

디킨스의 문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음과 같다. 비유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는 생생한 감각적 표현, 상세한 묘사의 무뚝뚝한 나열, 비유:직유와 은유, 반복, 수사학적인 질문과 답변, 칼라일의 돈호법, 형용어구, 의미를 연상할 수 있는 이름, 두운과 유운, 그리고-그리고-그리고 장치, 유머러스하고 괴상하고 암시적이고 변덕스러운 표현, 말장난, 말(言)의 간접적인 묘사 등이다.

이런 것들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원서'를 읽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번역 문학에서 작가의 문체를 눈치채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빙 영화보다 자막 영화가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나 할까?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읽어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그리고 두번 세번 계속해서 다시 읽는 동안 그 작품이 내게 좀더 친절하게 다가올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인오스틴과 디킨스의 작품 강의까지 읽기가 가장 힘들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나보코프가 강의 사용하는 것들, 테마, 문체, 구조와 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세번째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의 『보바리 부인』(1856)에 이르면 나보코프의 강의 방식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그래서 훨씬 더 이해가 빨리 되었다.

이 부분에서는 해설을 따로 붙여 문체, 이미지, 말(馬) 테마를 따로 소개한다. 문체를 보면 플로베르의 소설은 산문시와 같으며 세미콜론 다음에 and를 사용한 방식을 사용한다. "세미콜론은 한 숨 쉬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and'는 문단을 정리하면서 최절정의 이미지나 생생한 세부 묘사로 이어주는 역할"(p.322)을 한다. 그런가 하면 점층법(시각적인 세부 묘사를 연달아 펼치는)을 즐겨 썼으며, 의미없는 대화를 통해 감정이나 마음 상태를 드러내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플로베르가 프랑스어의 불완전과거 시제를 사용하는 방법을 보면 그가 시간의 흐름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알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분까지 느끼거나 찾아내려면 번역본에 의지해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이 책에서도 번역가들이 플로베르의 글을 번역하면서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

『지킬 박사와 하이드 시』(1885)

나보코프는 이 책을 미스터리 소설이나 범죄 소설, 영화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현대 미스터리 소설의 조상 중 하나라는 말은 사실이지만 스티븐슨은 "악령소설"이라고 외쳤다. 나보코프는 1. 지킬은 선한 사람이아니라 복잡한 존재이다. 2. 지킬은 하이드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순순한 악의 결정체인 하이드를 밖으로 쏘아보낸다. 3. 지킬의 인격은 세 개이다. 지킬, 하이드, 그리고 하이드가 전면에 나섰을 때 뒤에 남은 지킬로 구성된 제3의 인격이 있다고 말한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스완네 집 쪽으로』(1913)

문체는 작가의 버릇, 다른 작가와 구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특정한 버릇을 말한다. 나보코프는 프루스트 문체의 특징을세가지로 설명한다. 1. 은유적인 이미지가 풍부해서 비유가 층층히 겹쳐져 있다. 2. 문장의 폭과 길이를 최대한 늘리고 채우는 경향, 문장 안에 기적적으로 많은 수의 절, 삽입구, 종속절, 종속절의 종속절을 꽉꽉 밀어넣는 경향. 3. 대화가 묘사의 융합. 작가의 문체를 직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다면 그 작품들이 나에게 정말 다르게 다가왔을텐데. 왜 이런 작품들이 칭송받는지 의아했던 내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문체만이 그 작품을 특징지을 수는 없지만.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통해 나는 새로이 '문체'를 이해하고, 구조와 테마에 대해 의식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일곱 개의 소설은 이미 읽은 책들인데도 나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시 읽게 된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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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4-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하양물감 2022-04-11 11: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꼬마요정 2022-04-09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발췌해서 읽었는데(프루스트, 율리시즈 못 읽었어요ㅠㅠ) 지킬과 하이드에서 지킬의 인격이 셋이라는 부분은 놀라웠어요. 찬찬히 다 읽어야겠어요.(하지만 너무 어려워요ㅠㅠ)

이 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하양물감 2022-04-11 11:16   좋아요 0 | URL
나보코프가 말하는 책을 읽었다면 여러관점에서 볼수있어요. ^^ 안읽었다면 읽을때 참조되겠지요? 문학평론이 가끔 독서에 도움이 되는것같아요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 밤하늘과 함께하는 과학적이고 감성적인 넋 놓기
김동훈 지음 / 어바웃어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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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왜 그렇게 좋냐는 질문에 이 책의 저자인 김동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별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흩뿌린 먼지에서 태었났기에 우주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여정이다. 별은 나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내가 아는 가장 무해한 취미 가운데 하나다" 라고.

초등학교 때 받은 월간지 사은품인 조악한 천체망원경 덕분에 밤을 기다리고 가슴에 우주를 품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다. 좀 더 많은 별을 보려고 호주, 몽골, 남미, 북유럽을 여행했다고 한다. 마음을 온통 하늘에 빼앗긴 채 천체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허튼 짓으로 보였겠지만, 저자는 아름다운 우주 광경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새로운 설렘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긴다. 좋아서 즐거워서 즐기던 취미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취미가 취미를 넘어서는 일도 심심찮게 만난다. 김동훈 저자의 천체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평소 쳐다볼 일이 거의 없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밤하늘은 특별한 감동을 주지는 못했지만,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003rd night 별일 없는 하루

슈메이커-레비9 혜성이 지구와 충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우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주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지구 역시 한시도 안전하지 않다.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큰 기적은 별일 없는 하루, 또 그 하루를 별일 없이 산 나와 당신일지 모른다. p.24

어느새 반백년을 살아버렸다. 돌아보면 내 인생도 꽤나 스펙타클했던 것 같다. 사는 재미란 그런게 아니겠어? 그래도 굴곡 없이 조용히 넘어간 날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위로라도 보탤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010th night 백 년의 기다림

금성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것은 굉장히 보기 드문 천문 현상으로, 거의 백 년 넘게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지금 지구에 사는 사람 중 이 광경을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번 지나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다. 설령 오더라도 우리의 수명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오지 않는 것과 같다. 단 한 번의 마주침이 영원 속으로 사라질 때가 많다. p.40

가끔 일식이라던지, 혜성이라던지 하는 우주쇼가 펼쳐질 때 미디어에서는 떠들썩하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 못 보면 다시는 못볼 것처럼 모두들 망원경 앞으로 달려가라고 부추긴다. 거기에 넘어가지 않는 나 자신을 칭찬하며 콧방귀 꽤나 꼈는데, 결국 그 또한 보지 못한 자의 변명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보지 못하면 백년을 넘게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는 그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는 것이다. '별' 하나 못 본게 억울한 건 아니다. 살면서 '내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는 그것이 아쉽다.

034th night 흔한 여가활동

우주인이 독서에 흠뻑 빠져 있다. 그가 책을 읽고 있는 장소는 지상에서 400km 떨어진 국제우주정거장이다. 아마 그는 지금 퇴근해서 혹은 휴일에 개인 시간을 보내는 중일 것이다. 우주인도 지구의 보통 노동자처럼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를 한다. p.92

우주인도 노동시간을 지키는 줄 몰랐다. 어느 대선 후보는 주4일 근무를 공약으로 내세운다고 한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면 좋은데, 그만큼 내가 '고급 인력'인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적게 일하면 적게 벌 수 밖에 없는 대다수의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039th night 초승달 모양 태양

미국 국회의사당 꼭대기에 걸린 초승달 모양 태양은 어쩌다 찍은 게 아니라 그 시각 태양과 건물 위치를 계산하며 치밀하게 계획한 결과물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것도 노력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p.102

이 책에는 우연이 아닌 필연, 그리고 계산된 우연에 대해서 몇 번을 이야기한다. 별을 보고 우주의 상태를 확인하고, 하늘의 변화를 포착해내는 일이 그저 우연에 의해 가능하던 때가 있었을 거다.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책을 읽는 동안, 밤하늘과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한낱 우주 먼지일 뿐인 인간이지만 광활한 우주의 바다를 헤엄치는 상상을 해 본다. 그 옛날 경외의 대상이었을 우주를 이만큼이나마 알게 된 것도 다 그런 상상 때문이 아니겠는가?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반짝이고 있는 그 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별은 그렇게 우리 머리 위에서 반짝이다가 사라져간다.

099th night 우리 모두 춤출 뿐

"모든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결정한다.

별, 인간, 식물, 우주의 먼지뿐만 아니라 벌레까지

저 멀리서 보이지 않는 피리가 부르는 신비한 선율애 맞추어

우리 모두 춤출 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p.226

115th night 은하수 커튼을 치다

남반구 하늘에서 은하수가 지고 있다. 남반구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 중 하나가 은하수가 지평선과 나란히 누워서 자는 모습이다. 은하수가 지평선과 맞닿으면 마치 은하수로 커튼을 친 것처럼 보인다. 이때는 눈길 닿는 곳 어디든 별천지다. p.268

151st night 별까지 가는 길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자." -1888년 6월,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중에서 p.342

168th night 어디서 온 빛인가?

별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대부분 움직인다. 그러니 매로페가 통과하면서 성운에 선사한 빛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를 반짝이게 하는 빛이 혹시 다른 사람에게서 온 것은 아닌지 항상 살펴볼 일이다. 세상에 당연한 희생은 없다. p.378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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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레스키의 돔 - 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 이야기
로스 킹 지음, 김지윤 옮김 / 도토리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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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쯤 전, 딸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 한 달 정도 유럽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적금도 들고 짧은 시간 동안 알찬 경험을 하기 위해 자료 조사도 꽤 했었다. 예정대로였다면 지난 여름 방학 혹은 이번 겨울 방학을 이용해 유럽 여행을 하였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이 선언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또다시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가 되겠지.



얼마 전에 이 책을 소개받았다. 낯익은 소재와 내용이다 싶었는데 재출간된 책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잘 몰라도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돔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들 속에서 브루넬레스키의 이름을 찾아 기억하기에는 좀 낯설기는 하다. 기억하기 어려운 이름이기도 하고 '건축가'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의 서두에서 두오모 성당 사업단이 설계안을 정하는 당시의 상황이 나온다. 당시에는 기념비적인 건물을 세울 때엔 건축가들 사이에 경쟁을 붙이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설계도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모형을 제작하곤 했는데, 건축주나 심사단은 모형을 보고 완성된 건물을 상상할 수 있었다. 중세의 건축가들을 가장 괴롭힌 것이 건축물의 안정성 문제였다. 완성되자마자 폭삭 주저앉거나, 공사 도중에 무너져 내린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피사와 볼로냐의 종탑은 지반 침하로 기울어져버렸다. 사실, 현대의 건축에서도 이런 문제는 일어난다. 얼마전 외벽이 무너져내려 인명피해를 일으킨 아파트 공사며, 지반 침하로 기울어져 보강공사를 한 아파트가 지척에 있다. 과학 기술과 건축 기술이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안전'에 관한 걱정이 존재한다.



이 시기 피렌체에서는 시민 투표를 거쳐 설계안을 결정했다. 시민투표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기도 했지만, 만일의 경우 사업단이 전체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였다. 그렇게해서 결정된 네리의 돔 모형은 하나의 돔이 또 다른 돔을 감싸는 이중 구조였으며, 네개의 원통형 궁륭이 맞물려서 팔각형을 이루는 복잡한 디자인이었다. 이것에 피렌체 사람들은 감탄하였고, 모형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당을 완성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래서 산타마리아 대성당 돔 설계에 대한 공모가 발표되었을 때 십여 개나 되는 모형이 접수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감하게 모형을 제작한 이는 금세공사이자 시계공이었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 공모전으로 이름을 알렸다. 1400년 여름 흑사병으로 만 이천명에 달하는 피렌테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피렌체의 모든 아기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였던 산 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을 새로 달아서 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자는 의견이 나왔다. 최종 후보로 선정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의 라이벌전이 이때부터 시작된다. 로렌초는 되도록 많은 이에게 조언을 수렴하면서 문제에 접근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심사위원에 소속된 이들이 많았다. 브루넬레스키는 홀로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발명품이나 건축 모형을 만들 때도 누군가가 자기 설계도를 훔치거나 엉망으로 만들까봐 걱정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사람의 장식판은 바르젤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동문 공모에서 손을 뗀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났다. 도나텔로와 함께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발굴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도나텔로조차도 그가 왜 발굴작업을 하는 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안토니오 마네티는 브루넬레스키가 고대 로마의 유적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크기와 비율을 공부했다고 주장한다. 청동문 공모에서는 손을 뗐지만, 대성당의 돔 설계는 그의 건축학적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많은 로마 유적 중 브루넬레스키가 특히 주의 깊게 본 것은 판테온이었다.




브루넬레스키는 1418년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견한 실험으로 꽤 유명인사가 된다. 판테온이나 콜로세움 같은 웅장한 건물은 원근법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유적을 조사하면서 측량 기술과 관련이 있는 원근법 소묘를 통해 당시의 첨단 측량 기술을 회화에 적용하였다고 한다. 그는 원근법을 활용할 그림의 대상으로 산 조반디 대성당을 선택한다.




그리고 1418년 성당 건축 사업단은 모든 응모작에게 '호의적이고 공정한 심사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설계안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적대감이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훨씬 혁신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공모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중심틀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첨단 기술과 창의적인 방법을 중요시하는 현대에도 남과 다른 방법, 남과 다른 생각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일이 없지않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었을뿐 아니라 친절하게 설명하지도 않는 브루넬레스키에게 호감을 표시할 심사위원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접근법, 창의적인 발상이 난제를 풀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다르게 하는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차단하고자 방해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발견과 발명은 기존의 것을 뛰어넘는 혁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우리는 오래전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라이벌'에 대해서도 한번더 생각하게 되었다. 때마침 동계올림픽 중계를 함께 보고 있던 터라 더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숙명의 라이벌로 대결을 벌였던 스포츠 선수들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성장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브루넬레스키와 로렌초 기베르티는 건축장으로 임명되어 또 다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이 책은 브루넬레스키의 일대기와 돔 건축에 얽힌 일화들을 설명하면서 당시의 역사적 상황, 그리고 성당 건축을 비롯하여 각종 공사에 참여하였던 이름 없이 사라져간 인부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설계도를 그리고 공사를 지휘하는 건축장의 능력만으로 그 큰 공사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돔을 쌓아올렸던 이들이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다.




브루넬레스키는 공사에 필요한 기계들도 제작을 한다. 이 기계들 역시 공모를 통해 제작되었는데, 이 외에도 팔각형 돔의 벽 안에 둥그런 골격을 만들어넣는 공학 기술을 이용하기도 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동그라미 위에 또 다른 동그라미라는 말로 천당을 묘사했듯이 브루넬레스키는 천당을 기하학적 관점에서 정확히 구현하고 싶었다. 이 책의 저자는 브루넬레스키의 아홉개의 동그라미는 단테의 지옥을 연상시키기도 했다고 전한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의 라이벌이었던 로렌초 기베르티, 그리고 당시의 공학 기술과 예술을 대하는 피렌체인들의 태도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건축적 관심이 크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교양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젠가 이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돔을 직접 눈으로 올려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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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무엇인가 / 행복의 정복 동서문화사 세계사상전집 84
버트런드 러셀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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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으로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많은 남녀 중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기 불행의 실상을 잘 알게 되고, 그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확실히 있을 거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많은 불행한 사람들이 이 책을 쓴 나의 노력에 인도되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러셀은 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의해서 확인된 '행복의 비결'을 소개한다. 제1장에서는 '불행의 원인'을, 제2장에서는 '행복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를 다룬다. 러셀은 불행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자기를 찬미하고 남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권력욕

성공한 정치가가 잇달아 실각하는 원인은 사회 자체와 자신이 내세우는 정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아도취에 빠졌기 때문이다. 권력애 자체는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적당한 정도의 권력은 행복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 되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혀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오늘날에는 무슨 일이든 잘 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빠져 기분전환과 망각에 빠져 쾌락에 몰두하게 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며 '망각'외의 모든 희망을 포기해버린다. 러셀이 이 글을 썼을 때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

2. 염세적인 생각(바이런적 불행)

언제나 미래에만 희망을 걸고 현재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지 않다. 러셀은 인생을 남녀 주인공들이 큰 불행을 뛰어넘어 해피엔드로 끝나는 멜로드라마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3. 경쟁

인생의 즐거움을 가장 방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경쟁'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때의 경쟁은 먹고 살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경쟁을 말한다. 경쟁을 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하면 이웃 앞에서 으시댈 것이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미국인은 안전한 투자로 4퍼센트의 이윤을 벌기 보다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단기간에 8퍼센트를 벌려고 한다. 그 결과 대개 돈을 몽땅 잃어버린다. 또 걱정과 초조가 끊일 새 없다. 내가 돈에서 얻고 싶어하는 것은 안정된 한가로움이다. 그런데 전형적인 현대인이 바라는 것은 더 많은 돈이다. 그것도 과시와 화려함으로 지금까지 동등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을 새파랗게 질리게 만들려는 생각에서이다."(p.155)

경쟁하여 성공하는 것을 행복의 원천으로 삼고 지나치게 강조하면 고통의 원인이 된다. 언제나 남과 경쟁하는 마음은 습관이 되어 경쟁이 필요없는 세계에까지 침투한다. 책을 읽는 것은 두 가지의 동기가 있는데 하나는 그것을 즐기는 일이고 하나는 그것을 자랑하는 일이다. 뜨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4. 권태와 자극

권태는 인간 행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감정이다. 권태는 현재의 환경과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환경을 서로 비교하는 데서 발생한다. 또는 우리가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때, 어떤 일에 대한 의욕이 억압될 때, 발생한다.

자극이 너무 적으면 병적인 갈망을 일으키고, 너무 많으면 지치게 된다. 그러므로 권태를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명작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지루한 대목은 있다.(p.164) 단조로운 생활을 어느 정도 참고 살아가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길러야 한다. 자극이란 마약과 같아서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어린이는 묘목과 같아서 한 곳에 조용히 놔둘 때 잘 자란다. 권태를 참아내지 못하는 세대는 보잘 것 없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행복한 생활이란 조용한 가운데서만 맛볼 수 있고 진정한 기쁨도 마찬가지다.

5. 피로

피로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행복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피로도 있다. 현대의 문명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피로는 신경의 피로이다. 이 신경의 피로는 육체적 피로와는 다르게 부유층이나 실업가, 정신노동자들에게서 훨씬 많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신경을 혹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밤낮으로 피로를 겪어야 하기 때문에 술의 힘을 빌리거나 약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인식될 때 걱정은 소멸된다. 신경쇠약에 걸리는 징조 중에 하나는 자기가 맡은 일이 매우 중요하며 자기가 쉬게 되면 큰일난다고 생각하는데서 탖아온다. 고민은 공포의 한 형식인데, 여러 가지 공포에서 피로가 발생한다. 따라서 용기가 많아지면 고민도 적어지고 피로도 줄어든다. 흔히 피로때문에 자극을 즐긴다. 우리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쾌락은 대체로 신경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6. 질투

불행의 가장 커다란 원인 중 하나이다. 인간성의 모든 특질 가운데 질투가 가장 불행하다. 질투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 기쁨을 맛보지 못해도 좋으니 남에게 고통을 맛보게 하려고 한다.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증대시키고 싶은 사람은 찬미의 감정을 증진시켜 질투를 줄이도록 해야 한다.(p.178)

무엇이나 남의 것과 비교해서 생각하는 습관은 치명적인 악습이다. 자기에게는 자기가 사는 방법,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p.179) 러셀은 우리가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눈앞에 놓인 즐거움을 즐기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7. 죄의식

죄의식은 어른이 되어 경험하는 불행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원인 가운데 하나이다. (p.185) 죄의식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갖게 한다. 인간은 열등감을 가졌을 때 자기보다 뛰어나 보이는 사람에게 적의를 품기 쉽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칭찬하기는 어렵지만 미워하기는 쉽다. 그래서 점점 더 자신을 고립시키게 된다. 남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상대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훌륭한 행복의 원천이 된다.

8. 피해망상증

피해망상증이 극단에 이르면 정신 이상이 된다. 피해망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9. 여론에 대한 공포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사회생활에서 자기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찬성해주지 않으면 행복해지기 어렵다.

러셀은 이러한 불행의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행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행복과 읽고 쓸 수 있는 지식인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p.215) 행복의 비결은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를 되도록이면 넓히고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1. 열의

흥미를 갖는 일이 많을수록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운명에 맡기는 일이 그만큼 적어진다. 내부에만 주의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그의 관심을 끌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도 발경하지 못한다. 외부에 주의를 돌리고 있는 사람은 어쩌다가 자기의 영혼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을 때, 그 내부에 최고로 흥미있는 온갖 요소가 분류되어 재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p.228)

인생에 대해 열의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이점이 많다. 불쾌한 경험이라도 그에게는 도움이 된다. 열의를 방해하는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건강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운이 좋다면 일 자체에서 흥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은 가질 필요가 있다.

2. 애정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은 다른 무엇보다 열의를 촉발한다.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이 필요로 하는 제대로 된 애정을 충분히 받는 데서 비롯된다.

3. 가족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과 부모에 대한 자식의 애정은 행복의 최대 원천이 될 수 있다. 부유한 계급의 여성들은 직업의 문이 열리고 하녀 제도가 붕괴됨에 따라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자식이나 손자를 낳고 그들을 자연적으로 사랑하는 남녀에게는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미래가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양쪽 다 만족할만한 것이라야 한다. 부모는 옛날보다 자식한테서 기쁨을 얻는 일이 적어졌고 자식은 부모 밑에서 고통을 받는 일이 훨씬 적어졌다. 어른들의 자신 없는 불안한 태도는 어린이들에게 불안을 야기시키므로 자식을 대할 때는 조심성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p.255) 처음부터 부모는 자식의 인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결혼이나 우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4. 일

대부분의 일에는 시간을 보내면서 느끼는 만족감과 사소하지만 야심을 펼칠 수 있는 출구가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 일을 즐가운 것으로 만들어 주는 데는 기술과 건설이라는 요소가 있다.

5. 일반적인 관심사

일과 직결되어 있는 관심사는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관심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피로와 신경의 긴장은 불행의 원인이다. 피로해질수록 외부로 향하는 흥미가 줄어들고 흥미가 줄어들면 그것이 주는 위로를 못 느끼게 되어 더욱 피로해진다. 행복을 현명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생활의 중심이 되는 관심사 외에도 다양하고 부차적인 관심사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6. 노력과 단념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은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 중요한 업적을 달성하고자 하다가 실패를 겪은 사람은 절망으로 체념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한번 그런 일을 경험하면 일체으 소중한 활동을 포기해버린다.

러셀은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을 자기 자신의 내부를 향하게 할 것이 아니라 외부를 향하여 움직이게 하라고 한다. 즉 자기에게 얽매이지 않고 애정과 흥미를 넓게 가진 인간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러셀은 행복의 정복을 통해 불행의 원인을 제거하고 행복해지는 법을 이야기한다. 불행을 야기하는 요소들은 넘어서지 못할 벽이 아니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1930년에 출간한 '행복의 정복'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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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우주 - 커다란 우주에 대한 작은 생각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지음, 심채경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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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는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시공사)를 통해 일러스트와 어우러진 짧은 글로 그녀만의 감각을 드러낸 바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다양한 변주를 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우주'로 나아간다. 과학을 교양의 수준으로 쉽게 풀어주는 책을 잘 읽는 편이다. 이 책도 그런 류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심채경님이 번역을 했기 때문이다.

I AM MADE FROM CARBON 나는 탄소로 이루어졌다

이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몸은 불타오르던 거대의 별의 잔해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는 존재의 18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탄소는 내가 되기 이전에 다른 자연물을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밤하늘에 셀 수 없이 펼쳐져 있는 별들은 압도적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연약한 몸은 그들의 잔해일 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 모두는 태양을 먹고 있다. 식물처럼 에너지를 직접 얻을 수는 없지만, 식물을 먹거나 식물을 먹은 동물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섭취한다. 그러고보니 에너지를 직접 섭취할 수는 없지만 우리 몸이 햇빛을 받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비타민도 있다. 비타민D가 그것이다.

물론 나는 3개월에 한 번 비타민 D 주사를 맞고 내 몸속 비타민 D 함량을 맞추고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니(내가 해를 보는 시간은 극히 짧고, 야외에서 운동을 하지도 않으며, 더군다나 햇빛 알레르기마저 있어서 오랜 시간 햇볕에 서 있을 수도 없다.) 그 수밖에 없다. 급격하게 떨어진 면역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였는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HOW TERRIBLY ILLUMINATING 지독하게 빛나는

빛은 우주 속에서 에너지를 다른 공간으로 옮기는 수단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빛'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전체 스펙트럼 가운데 광확 혹은 가시광선이라 불리는 일부분만을 지칭한다. (P.25) 빛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에 반사되기도 하고, 굴절되기도 한다. 또 회절과 간섭 현상도 보인다. 태양은 방대한 양의 에너지를 내는데, 그중 극히 일부분만이 지구에 있는 우리에게 도달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을 밝히는데 충분하다.

MITOCHONDRIAL EVE 미토콘드리아 이브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알려진 여성 조상을 찾아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데 미토콘드리아 DNA가 활용되었다. 이러한 종류의 DNA는 완전히 배타적으로 어머니 쪽으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세대가 이어져도 완전히 바뀌지 않은 채 보존된다. 미토콘드리아 이브는 약 2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Y 염색체 아담"이라 불리는 남성 조상은 남성 개체 사이에서 재조합 없이 전달되는 Y 염색체를 통해 추적해냈다. Y염색체 아담은 23만 7,000년 전에서 58만 1,000년 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P.42)

지구상의 모든 것이 일정 비울의 유전자 동일성을 갖는다고 한다. 사람들끼리는 DNA의 99.9%를 공유하는데 결국 0.1%의 차이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침팬지와는 불과 1.3%의 차이이고 고양이와는 90%, 소와는 80%, 닭이나 초파리와는 60%를 닮았고 바나나와도 50%나 닮았다고 한다. 우리가 살면서 나와 남을 얼마나 구분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유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것은 한두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후 저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간다. 또한 관련하여 그려놓은 일러스트는 마음을 이완시켜준다. 태양을 먹고 살지만 식물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우주적 거리를 계산하느라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 산소, 질소, 그 외 여러가지 요소들을 들이마신다. 숨 쉬는 속도를 바꾸거나 호흡에 덜 혹은 주의를 기울이면 뇌의 다른 영역을 사용하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P.67) 우리는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달리기나 휴식, 공포에 대한 반응이 아닌 의지에 따라 의식적으로 호흡을 바꾸고 조절할 수 있다.

인간은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P.79)

최근에 '잠'과 관련 있는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만큼 수면의 질이 나빠졌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평균적으로 인생의 3분의 1을 눈을 감은 채 보낸다고 한다. 얕은 수면 단계에서는 잠이 들락말락 하므로 잠에서 쉽게 깨어날 수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눈의 움직임이 멈추고 뇌파가 느려진다. 점점 뇌파가 느려지고, 눈의 움직임이나 근육 활동이 사라지면 깊은 잠에 들게 된다. 그 다음에 렘 수면 단계로 넘어 간다. 이때는 안구가 움직이며 가볍고 얕고 불규칙한 숨을 쉬지만 자시 근육은 일시적으로 마비상태이다. 이 상태가 전체 주기로 볼 때 매우 중요하고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기억나는 꿈은 대부분 렘 수면 동안 꾼 꿈이다. 수면 부족은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좋은 휴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끝이 없다.

우주가 담고 있는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책이었다.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데 있어서는 간결하면서도 알기 쉽게 전달하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가벼운 과학 에세이로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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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2-0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과학쪽이라면 일단 기부터 죽고 들어가는 저에게 딱 좋은 책일듯요. 그림도 글도 너무 좋네요. 하양물감님덕분에 좋은 책을 얻어갑니다. 휴일 편한한 날 되세요.

하양물감 2022-02-07 08:47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어쩌다 이렇게 와도 꼳 들러서 좋은 말씀주시는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즐거운 독서생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