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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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를 꽤 많이 읽었다. 그런데도 신들이, 영웅들이 잘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스로마신화를 나만큼이나 좋아하던 딸아이는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도 기억하던데... 내게는 여전히 각각 따로인 이야기이다.


키르케를 읽으려고 손에 잡았을 때, 내가 읽은 책 속에서 한 두페이지로 소개되던 키르케가 주인공인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신기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아, 한 두페이지로 끝날 이야기가 아닌 것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형제 자매도, 그의 주변에 있었거나 스쳤던 인연들이 이렇게 연결되고 저렇게 연결되는 동안 나는 이야기의 매력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뭘 하고 있었어? 이렇게 한참이 걸릴 줄이야. 어쩌면 누나는 파르마키스가 아닌가보다는 생각이 들려던 참이었다고." 내가 모르는 단어였다. 그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모르던 단어였다. "파르마키스" 내가 말했다. 마녀라는 뜻이었다. (p.90~91)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기도 한다. 신화 속 주인공들은 애초부터 힘과 능력을 갖고 있거나, 역경을 이겨내며 자기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키르케는 자신이 마녀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남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알았다는데, 키르케는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리지 못한 님프였지만, 그녀도 마녀였다.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알고 있다.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마녀'는 어떤 존재일까? 주류에 속하지 못하지만 그들보다 오히려 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인 마녀. 신들과 달리 약초나 마법약 등을 이용한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으려면 많은 것을 공부하고 깨우쳐야 한다. 키르케가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때 나는 그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역사 속에서 마녀로 몰려 죽어간 여자들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던 지역 외곽으로 그녀들을 쫓아내놓고 병이 들거나 아프거나 먹을게 없고 아쉬울 때는 그 힘을 빌어 도움을 받으면서도 집단적 광기로 나쁜 일이나 재앙의 원인으로 몰아 죽이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 이야기 속 세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신들의 영역을 침범할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들 지위에 올려주지 않고 이용만 한다.


새장에서 사육당하는 새는 되지않을거야. 흐리멍덩해서 문이 활짝 열렸는데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숲속으로 들어갔고 이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p.108)


자각하는 순간, 탁 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이 있다. 주어진 환경과 제약에 순응하지 않고 그것을 깨고 나오는 순간. 쉽지 않은 각성의 순간이다. 자기 울타리에 갖혀서는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나로서는 30년 전, 가방 하나 들고 일본에 가서 보낸 1년이 내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순간이다. 평탄하고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다 보면 거기에 안주하고픈 생각이 든다. 굳이 애써서 성취하지 않아도 적당하게 일하고 적당하게 놀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1년의 시간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공부하게 하였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문이 열려있는데도 새장 밖으로 날아가지 않는 새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전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걸 탓하려고 하는건 아니다. 자기 스스로 깨고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새장 밖으로 나가고 싶다.


"내 섬에서 침묵하지 않겠어요."(p.295)


점점 주체적으로 변하는 키르케를 본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낳게 되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혼자서 키워야 할 때는더욱 그러하다. 신화 속의 신들은 여기저기 애들을 낳고 돌아다닌다. 아이를 임신하게 하지만 그들이 키우거나 돌보는 일은 없는 것 같다. 거기에 오디세우스도 이타케에 두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도 이 섬 저 섬에서 여자들과 산다. 그렇게 해서 겨우 집으로 돌아가지만 결국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지 못한다. 신이 정해 준 운명이겠지만, 인간의 몸은 유한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하며 방랑한 건. 왜였을까요? 한순간의 자부심이죠. 아버지는 아무도 아닌 존재로 지내느니 신들에게 저주받는 쪽을 택했을 겁니다. 아버지가 전쟁이 끝난 뒤에 집으로 돌아오셨다면 구혼자들은 찾아올 일이 없었겠죠. 제 어머니의 삶은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테고요. 제 삶도. 아버지는 저희와 집이 그리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거짓말이었어요. 이타케에 돌아온 뒤로는 만족을 모르고 항상 수평선만 바라보셨으니 말이죠. 일단 우리를 손에 넣고 나니까 다른 것을 갖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게 끔찍한 인생이 아니면 뭡니까? 사람들을 꼬드겨놓고 내팽개친 게 아닙니까.” (p.417)


키르케의 이야기를 하면서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오디세우는 영웅이라기보다 아내와 자식을 내팽개치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살았던 고집 센 남자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순간의 자부심.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사느니 신들의 저주 받는 쪽을 택했을거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만 기억하던 그리스로마신화를 등장 인물들과 연결하며 잠깐이지만 그들의 계보를 한번 그려본다. 이제 이 부분은 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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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 목소리는 어떻게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가?
존 콜라핀토 지음, 고현석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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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성대에서 나는 특정한 소리와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를 연결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즉 인간만이 성대에서 나는 소리들을 다듬어 분명한 말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적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인간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윗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롤링스톤>에서 일할 때 직원들의 밴드에서 리드 싱어로 노래를 했는데, 후두염으로 고생을 하다 찢어지는 듯한 거친 목소리로 바뀌었고 악성은 아니지만 성대에 폴립이 생긴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내 목소리로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여 치료를 받지 않았다. 목소리 전문가인 자이텔스는 저자에게 '목소리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알게모르게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문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목소리 톤을 낮추어 거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조절하는 동안 '운율'을 조절하는 능력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운율'은 사람들이 목소리에 색깔, 생동감, 표현력, 개성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타고난 음의 높낮이와 크기 조절 능력이다. 우리는 운율을 조절하여 특정한 말의 메시지를 강화하거나 정반대의 말을 나타내기도 한다. 목소리는 일종의 청각적 지문, 즉 사람마다 모두 다르며 듣는 사람들의 강한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개인적 특성이다. (p.19~22 요약)


이 책은 다섯 가지 정도의 주제를 다룬다. 먼저 개인(신생아)에게 목소리가 처음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신생아들이 원초적인 욕구를 어떻게 목소리로 나타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살펴본다. 다음에는 목소리가 주변 사회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권고와 숭배를 타나내는 종교적인 목소라, 대중매체의 목소리, 우리 집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지도자들의 목소리도 살펴본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담긴 지혜를 알아보며, 우리 인간 특유의 목소리를 만들어낸 진화적 압력, 정서적 운율 등도 설명한다.


<베이비 토크>

태아의 학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것은 엄마의 목소리다. 임신 3개월의 태아는 엄마의 목소리를 다른 소리들과 구별할 수 있고 엄마의 목소리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음향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빠의 목소리는 신생아에게 별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남성의 목소리는 음높이가 낮아서 자궁벽을 잘 통과하지 못하고 엄마의 목소리처럼 뼈를 통해 전달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탯줄을 통해 엄마의 목소리에만 익숙해진다. 신생아들은 자궁에서부터 어떤 언어든 배울 준비를 하고 태어나지만 몇 달이 지나면 모국어의 말소리가 아닌 말소리의 듣는 능력을 잃게 된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듣는 목소리들은 필요없는 회로들을 제거하고, 꼭 필요한 회로들을 강화하며, 모국어의 특정한 소리들을 감지해 그 소리들을 낼 수 있도록 뇌를 특화시킴으로써 물리적으로 우리의 뇌를 조각한다고 할 수 있다."(p.46)


1972년 스노의 연구에 의하면 돌보는 사람이 아이에게 말할 때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인위적이고 과장된 운율, 즉 높은 음으로 천천히 노래하는 듯한 말투를 사용한다. 이는 고음을 사용해 노래하듯이 천천히 말을 하는 것이 진화과정에서 우리 종이 언어를 가르칠 때 사용해 온 발성메커니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엄마 말투'는 정교한 목소리 기반 언어 지도 시스템의 일부이다.


건강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기의 울음은 생물학적 본능이며 생존을 위한 행동이다. 그리고 아기의 울음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매우 큰 심리학적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자신의 신경계에 대한 소리 공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아기가 뭘 원하는지 파악해 행동을 취해야 한다." (p.57)


"결정적 시기는 아이들이 특정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시기를 말한다.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특정한 기술을 평생 동안 아예 배울 수 없다. 언어와 억양의 습득이 이 결정적 시기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브로카 영역 roceas aree 이라는 중요한 뇌의 언어 처리 영역이 손상된 유아에 대한 연구로 확실하게 증명됐다. 브로카 영역은 왼쪽 관자놀이 근처 좌측 대뇌반구 표면에 위치한, 지름이약 3센티미터의 원 모양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이다. 브로카 영역은 우리가 말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문장을 구성하게 해준다. 브로카 영역은 적절한 말소리들을 단어들로 바꿔주고, 그 단어들을 적절한 순서로 배열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브로카 영역은 생각을 소리로 바꾸는 폐, 후두, 혀, 입술을 움직이게 만드는 뇌 영역에 이 정보를 전달한다. "(p.71)


저자는 베이비 토크를 통해 언어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집중적인 언어 몰입 학습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른들은 아기들처럼 빠르게 언어를 습득할 수 없다. 아이들은 문법적 구조나 규칙을 배워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말을 들음으로써 배울 수 있었다고 본다. 사람들이 발음할 때 음높이와 리듬을 다르게 적용하고 남들에게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 멜로디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소리'이다.


<기원>

모든 동물의 목소리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모든 목소리가 폐의 힘을 받아 입으로 분툴되는 소리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모든 목소리가 물고기라는 공통의 조상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폐어에서 나는 소리는 분명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2억 2천년 전 포유류에 나타난 호흡계에 횡경막이 등장하여 정교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유류는 젖꼭지에 입술을 붙이고 젖을 빨면서 삼키는 복잡한 과정을 수행하면서 목구멍, 입, 혀, 얼굴 근육을 발달시켰고 이것을 조율해 발음을 떠렷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포유류는 발성기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유인원을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행동적 특징 즉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목소리를 인간의 목소리로 만드는 것은 감정, 즉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기초가 되며 말의 운율로 나타나는 느낌과 기분이라고 말한다.


<감정>

동물의 뇌에는 3개 층이 순차적으로 생겨났는데 인간의 뇌에는 이 3개 층이 모두 존재하며 각각의 층이 우리 목소리의 정서적 측면을 조절한다. 가장 오래된 층은 뇌간이다. 뇌간은 호흡, 눈 깜박임, 심장박동 같은 모든 비수의적 과정을 담당한다. 파충류의 뇌는 대부분이 뇌간이므로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행동만 한다.


모든 종에서 목소리는 가장 중요한 소통 수단이자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수단이다. 파충류의 뇌간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간의 뇌간은 비명소리를 유발한다. 이는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의 모음과 자음을 만들어내는 활동과는 상관없이 뇌간에 저장되어 있는 고정행동패턴이다. 비수의적 흐느낌, 웃음, 아프거나 즐거워 소리를 지르는 행동은 감정을 표현하지만 감정 신호가 아니라 '감탄'이라고 부른다.


좀더 미묘한 감정, 즉 불안, 적대감, 욕망, 의심, 죄책감, 사랑을 드러내는 소리는 뇌에서 두번째로 진화된 층, 변연계에서 만들어진다. 이 층은 몸 안에서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의 분비를 촉발함으로써 우리에게 감정을 발생시켜 우리가 마주치는 상황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우리를 사회적 동물로 만드는 변연계가 생존과 짝짓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의 내부 상태를 나타내는 신호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방식도 결정한다. 이러한 미묘한 표현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복잡성, 감정과 의식이라는 내부 상태의 복잡성과 다양성,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의망에 대응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3번째 층인 피질이 엄청나게 확장돼 나타나는 수많은 의식적(무의식적) 사고의 결과이기도 하다.


피질은 크기가 중요하다. 피질이 클수록 계산 능력, 지능, 추론 능력이 상승한다. 피질은 인간의 감정 발성을 편집하고 검열하여 순간적인 소리를 통제함으로써 감정적 발언에 영향을 미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크고 화난 소리를 내게 되는데 이는 사회적 대가가 크므로 목소리에서 적대감이 표출되지 않도록 목소리를 억제하는 것이다. 완전히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가져야 한다.


<언어>

"최근 들어서야, 즉 이 책을 쓰면서 아이가 자궁을 떠나기 전부터 엄마의 목소리가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나는 노래 부르던 피라항 부족의 여성과 아이를 훨씬 더 넓은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인간의 뇌를 준비시키는 가장 중요한 음향학적 신호로서 인간이 진화를 통해 현재의 위치까지 올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측정 불가능한 역할이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의 목소리가 인류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남성의 목소리는 우리 종의 확산에서 핵심적이었던 성적 신호 전달에서 분명히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p.185)


<사회에서의 목소리>

"라보프는 모든 사회에서 목소리의 분화는 인간 종에서의 언어 발달의 가장 큰 목적, 즉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능력 확보와는 반대편 방향으로 이뤄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보프는 이 책에서 인간 목소리의 가장 큰 역설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의 목소리는 언어에 특화되면서 우리 종을 통합하고, 우리 종이 집단을 이뤄 서로 협력하면서 다른 생명체들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우리를 갈라놓기도 했으며,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p.260)


"하나의 종으로서의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 즉 대화, 공존, 절충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 특유의 말하는 능력이 서로의 의사소통을 위험할 정도로 힘들게 만들어 인간들을 분리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정치지도자들이 파고드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우리 집단의 미래를 결정하고, 서로 다른 의견, 가치관, 피부색, 신념, 태도 억양을 가진 사람들을 통합하는 임무가 있는 정치지도자들은 (주로 연설을 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인류 공통의 목표와 인류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에 대한 생각을 심어줌으로써, 우리가 계급, 인종, 교육, 종교, 정치, 성 정체성, 성적 지향, 국적의 차이를 좁혀 우리 종 전체의 발전, 밝고 축복된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p.261)


<리더십과 설득의 목소리>

이 장을 읽는 동안 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인간 집단을 통치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고 하면서도 대중이 직접투표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방식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사람들이 감성에만 호소해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모으는 이기적이며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기꾼을 선출할 위험성을 높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사기꾼을 '데마고그' 즉 대중선동가라고 불렀다. 거짓말과 왜곡을 일삼으면서 공포를 조장하고 문명에 위협을 가한다. 분노, 비난, 복수를 조장하는 말을 하여 성난 군중의 '민중적' 정서를 가극해 권력을 잡는다.


"오바마는 목소리의 감정 채널(뇌 변연계에서 나오는 언어 외적이며 운율적인 신호들)을 더 높은 차원의 뇌 영역인 피질, 즉 생각, 이성, 언어를 관장하는 뇌 영역으로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뇌의 이 영역을 이용해 생각이나 감정을 설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음악적 요소들'과 '가사'를 섞어 목소리로 소통한다. 피질보다 변연계를 더 많이 이용하는 사람은 (공적인 연설을 하는) 데마고그이거나 (사적인 영역에서의) 깡패다. 이들은 으르렁 소리를 내거나, 헐떡거리면서 말을 하거나,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듣는 사람의 감정 중추에 공포, 질투, 분노, 복수심 같은 원시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동물적인 본능이 활성화되도록 목소리를 사용한다. 공직에 어울리지 않는 데마고그들은 대중의 공포와 분노를 자극해 선거에서 이기고 권력을 장악해 폭군이나 독재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권력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민주적인 장치들을 없애버린다. 최악의 경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야만적인 상태로 대중을 밀어 넣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데마고그인 아돌프 히틀러의 부상과 함께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p.302)


히틀러가 분출한 분노는 대중선동, 대중 운동 그리고 독재의 위험을 세상을 알렸다고 할 수 있다. 히틀러 이후 전 세계로 민주주의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가 되면서 곳곳에서 우려할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약화되고 실패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 전역에서는 이민 유입 반대와 탈세계화를 주장하는 반민주적인 정치인의 목소리가 영향력을 얻기 시작하고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현상의 원인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다. 부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중산층이 생활 수준이 떨어지고, 국가가 다민족화되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가짜뉴스의 확산과 선전선동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 2~30대 미국인 중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고방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얼마전 대통령 선거에서 봤던 현상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선택적 분노,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 기득권을 갖고 있었던 남성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의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현상, 사회적 배려를 가치없다고 생각하는 발상들, 이 모든 것을 더 부추기고 계층간 갈등을 조장하여 분노하게 하고 비난하게 하고 공포감을 갖게 하는.... 그런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미국인들은 선입견과 분노로 가득 찬 지도자가 민주주의적 장치를 이용해 국민 전체에게 말할 수 있는 마이크를 쥐게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뼈아프게 깨닫게 했다."(p.319)


미국의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갈등과 분노를 조장하고, 차별적 언어를 쏟아내는 걸 보면서 우리들 대부분은 그의 행동을 비난했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서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어떤 반응이었는가?


"민주주의는 아무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도 말을 통해 권력을 잡을 수 있으며 그 사람이 권력의 오용을 통해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킬 수 있는 체제라는 경고다."(p.321)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걱정스럽다.


이 책의 결론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효과적이고 표현력이 뛰어난 목소리, 즉 듣는 사람이 행동, 습관, 생각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듣는 사람과 연결되는 목소리는 말하는 사람의 내적인 삶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사이를 잇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가 되는 목소리"라고. 성대 손상을 입은 경험에서 시작하여 뇌과학, 인문학, 진화생물학, 언어학,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목소리'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을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보이스 #존콜라핀토 #인문학추천 #진화심리학 #뇌과학 #목소리 #언어능력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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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 - 프란치스코 교황과 통합 생태론에 대해 이야기 하다
카를로 페트리니.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김희정 옮김 / 앤페이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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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에 반포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경고하는 한편,이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인류가 새로운 삶으로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카를로 페트리니는 '공동의 집'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이 긴밀히 조화를 이루고 존중하라는 가르침, 즉 통합생태론의 관점을 갖고 만나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며 대화를 나눈다.

종교가 없는 나는 종교적인 이야기는 이해도가 낮고 어렵지만, 그걸 떠나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카를로 페트리니의 대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심각한 환경 악화, 부당한 정치와 경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구에서 우리가 새롭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었다.

제1부에서는 세 번의 대화를, 제2부에서는 생물다양성, 경제, 교육, 이민, 공동체에 대한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처음에는 환경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해할 시간을 주는 것이 옳으며, 그럼에도 미래를 위해서는 서둘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트라니는 「찬미받으소서」를 읽고 통합생태론의 개념, 방법으로서의 대화, 가치로서의 생물다양성, 개인의 긍정적 실천이 고결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최근 몇 주 동안 일부 기자와 시사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교황은 성직자가 부족한 아마존 지역에서 기혼 남성에게도 사제 서품을 허용하기 위해 시노드를 조직했다.” 또한 일부 언론은 이것이 주요 의제인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요! 아마존 시노드는 우리 시대의 주요 쟁점, 피할 수 없고 주목해야 하는 문제를 토론하고 대화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환경, 생물 다양성, 문화 적응, 사회적 관계, 이주, 공정과 평등이라는 주제를 갖고 말입니다. 교회는 이 복잡한 시대를 대변하는 주역이 되어야 하고, 불편한 역할을 도맡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p.57

언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언론의 입김에 휩쓸려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교황의 이야기 속에서도 그런 장면이 드러난다. 중요한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쟁점을 제쳐두고 기혼 남성에게도 사제 서품을 허용한다는 점을 부각시켜 관심을 흩트린다. 그들이 원하는 건 기사 클릭 수일 뿐, 진실이나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방향성의 제안과 같은 역할은 아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이익을 위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충동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도록 부추깁니다. 이는 현상을 유지하고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다시 말해 권력의 고전적인 역학이며, 역사의 전 시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그것에 대처하는 저항력을 키우지 못한 채 매번 다시 쓰러집니다. p.67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혹은 민생은 제쳐두고 흙탕물 싸움을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저 문장에 줄을 치고 있었다.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선택이 아닌 엉뚱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까? 권력의 이익을 위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충동을 이용한다는. 그래서 그들끼리 싸우게 만들어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부유해지는. 그것에 대한 저항력은 어떻게 키워야하는걸까?

우리는 음식에서도 어떤 퇴보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 풍요의 시대에 먹는 행위가 구경거리가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식탐을 부추기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점심이나 저녁 식사에 수많은 접시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종종 기쁨을 느끼지 못한 채 음식의 양에 압도되어 먹는 행위에만 집중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태도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고 음식은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음식이 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식탁에서 사람을 중심에 두게 되면 식사는 가치와 문화의 통로가 되어 주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고, 친교를 돕고,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조건을 만들어줍니다. p.69

내가 먹방을 볼 때마다 느꼈던 불쾌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 글을 읽으면서 확인했다. 음식을 나누면서 가치와 문화의 통로가 되었던 시간은 사라지고 오로지 식탐만을 부추기고 있다.

2부에서 제시하고 있는다섯 가지 주제는 내가 알고 싶었던 내용들이었다. 이 내용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 생물 다양성

전체 동 · 식물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사라졌다. 마지막 대멸종은 6,500만 년 전인 공룡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전례가 없는 것으로, 비극의 유일한 책임은 인간 활동에 있다. 먼저 생태계를 잠식하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던 생명의 공간을 차지하여 임의적으로 변형시킨다. 따라서 그곳에서 번성하던 일부 종이 생존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게다가 야생종과 가축종의 갑작스러운 강제 동거에서 비롯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경험했듯, 종의 위험한 비약을 조장한다). 그리고 공업과 탈공업의 생산 모델은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범이다. 이로써 기후를 변화시키고(지구온난화), 수많은 종의 자연 서식지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해 멸종시킨다. 따라서 지난 30년 동안 생물 다양성은 인간종과 그것을 수용한 환경의 관계를 다르게 운영하기 위한 핵심 단어가 되었다. 지구에 있어 생물다양성을 잃는다는 것은 실행 가능한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 과정을 되돌리지 않으면 끔찍한 재앙을 피할 수 없으며, 대멸종의 마지막 희생자는 호모사피엔스가 될 것이다. p.108

전체 동식물 중 3분의 2가 사라져버린 지금,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대 혼란을 겪었다. 사람들은 이 혼란의 와중에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활동이 생명의 공간을 변형시키고 그로 인해 결국은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이 모든 과정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않으면 결국은 마지막 희생자는 우리 인간이 될 것이다.

여기서 생물다양성은 문화다양성의 개념이 파생된다. 이는 구사하는 언어와 정신성의 표현, 예술 형식과 정의를 집행하는 방법, 통과 의례의 조직과 재화의 교환 관리 등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이다. 완전히 순응하지 않는 모든 것을 차츰 소외시키고 처벌하면서 문명과 사회에 단일성을 강요하면서 수천 년동안 사용되던 언어, 습성과 관습, 상호관계와 증여에 기반을 둔 교환 모델, 자연을 향한 안정되고 지속적인 접근법 등이 하나둘 사라지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 기초하여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다룬 '통합 생태론'의 개념이다. 환경 보호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시키지 않으면 단호하게 맞설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통합 생태론은 행동 없는 환경주의가 무익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문화적 다양성은 가치 있고 정의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에 모두의 미래를 위한 정치적 패러다임으로 보존되고 채택되어야 한다.

* 경제

코로나19 비상사태로 위급했던 몇 주 동안 시골에서 일하는 이민자들에게 체류 허가증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논의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논의는 우리 식탁에 과일과 채소를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순전히 경제적 이유와 생산을 위해 정규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민자들을 고용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토마토를 대신 따겠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 권리를 부여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이 있는 경우에만 이민자는 우리 영토에서 정식으로 살 권리가 있는 것일까? p.141

팬데믹의 끔찍한 경험은 우리에게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자연재해조차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영향을 끼치지 않고, 사회적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사람이 기저에 위치한 사람들보다 회복을 위한 도구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p,142

우리가 겪은 코로나 상황에서 재택근무에 따른 긴급 보육에서부터 비상사태의 자체 생산에 이르기까지 자원봉사와 지원, 참여와 연대가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관계의 재화는 우리가 행위자인 관계에서 파생되는 외부 효과다. 관계의 재화에는 우정과 신뢰, 협력과 호혜, 사회적 미덕과 결속, 연대와 평화가 있다. 기업의 근무 환경, 도시의 안정감 또는 불안감, 가족과 직장 내의 관계 등도 포함된다. 관계재는 공동의 재화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누려야 한다.

* 교육

교육에 대한 담론은 세상의 곳곳에서 각기 다른 경향과 수준을 드러내는 주제이며, 다양한 국가 공동체에서 문화적인 문제와 얽혀 있고, 조직의 근간이 되는 진보의 개념을 적나라하게 반영할 수 있다. 사실 교육은 결정적이고 피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정치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과 평행을 이루며 나아간다. 정치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설계하고 그것을 실현할 도구들을 찾는 기술이라면, 그에 대한 고찰과 결단에서 우리가 원하는 시민상과 이를 형성하는 교육 체계가 비롯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p.163

교육은 학교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와 문화 기구, 지역 공동체 조직, 공유 공간, 권력 구조와 갈등 관리를 통해 깊이 있게 구성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우리를 교육하고 다른 사람들을 시민으로 교육하는 배경이자 형식이 되며 우리가 경제, 도시, 제도를 조직하는 방식은 정치적 주제가 되고, 이는 곧 교육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국민의 복지는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으로만 측정되는 사회에서 시민의 성장은 교육과 관련된 근본적 질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한 코로나19 전염병은 모두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고, 길게는 지구에 사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려운 시기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대상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을 쉬는 순간 경제력을 잃어버린다. 경제가 완전한 역량을 발휘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극빈층은 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공공의료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늘 생활고에 시달리기에 자녀들의 높은 교육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책이나 문화 행사를 접해 본 적도 없는 경우도 있고, 고용 계약이나 임대 계약, 법령, 보조금 신청 지침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에 시달리기도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야 한다.

교육은 위기에 대처하고 직업을 유지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그러나 사회와 시민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교육이다. 훈련과 교육은 우리 사회를 가동시키는 주요 도구임에도 학력이 낮은 계층의 자녀들은 대학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절반에 불과하고 이러한 저학력은 낮은 임금과 높은 실업률로 연결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현재까지 OECD 국가들은 정부와 민간의 교육비 비율에서 민간이 부담하는 지출이 꾸준히 증가했다. 학부모의 부담이 늘어나는 현실은 교육 격차를 부추기고 빈곤층 자녀의 교육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경향은 모든 수준의 공공복지에서 흔히 보이는 추세를 반영한다. 즉 1960~1970년대 사회민주주의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보편적인 무료 서비스가 민간에 위임되었고, 그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효과적인 변화를 도모하려면 철학과 정치를 동반한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교육을 바라봐야 한다. 이는 다른 공익 부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p.166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소수의 이익을 보호하고 특권을 주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수가 피해를 보는 체계에 살고 있으므로 새로운 전망을 열려면 국가와 시장, 공공과 민간이라는 이분법도 극복해야 하며, 우리가 지향하는 새 지평은 바로 공동선이라고.

* 이민

서양의 관점에서만 이주 문제를 다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의 출발점에서 대량 이주 현상의 주요 원인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논리적인 규명 작업이 공론화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주민들의 출신 국가는 주로 19세기와 20세기에 유럽의 식민지화를 겪은 나라들이다. 약탈과 착취를 당했던 나라들은 여전히 경제 식민주의의 속박 아래 살고 있다. 외국 자본이 투기와 투자 횡포를 부리고, 다국적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다른 곳에서 소비되는 상품을 생산하고, 외국 기업의 수익을 올리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전쟁이나 정치적 불안으로 말미암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국가적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p.192

마지막으로 전체 상황을 종합해 보려면 국제무대에서 또 다른 성가신 주자로 부상한 기후 변화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과학계는 지구온난화가 위협적인 현실이고 무엇보다도 인간 행동의 결과라고 하나같이 단언하고 있으며, 우리 각자는 그 결과들을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탈리아만 해도 베네치아의 만조 현상이 갈수록 더 자주,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외에도 해안의 열대성 폭풍, 전례 없는 강우, 장기간의 가뭄 등 극단적인 대기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기후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것은 좀 더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 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지구 전체가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급격하게 사막화가 진행되고, 이산화탄소의 주요 저장고인 해양은 더욱 산성화되고, 이상 기후 현상이 지속되는데다가 베네치아를 비롯한 해안 지역은 바다에 잠길 위험이 커지는 추세다. 위태로운 상황을 알리는 징후는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p.195

이주는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고, 아마 과거보다 훨씬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우리는 이 점을 인정해야 한다. 모두에게 살기 좋고 번영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 공동체

해체와 유동성의 현실에서 무엇이 여전히 사람들을 모으고 지속적으로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시민 공존의 새로운 모델을 추구하는 사회적 맥락에서 공동체로 향한다.

공동체는 개념적 반전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차원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지배 담론은 경쟁력을 중심점으로 삼게 하는 강제적 설득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시장의 경제 분석에서부터 우리의 상상력을 식민지화하고(세르주 라투슈의 말을 인용하면)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행동을 경쟁 구도로 이끌었다. 우리는 문화적 · 지식적·기술적 도구로서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엄격하게 교육을 받았는데, 이는 직업적 성공과 개인적 성취, 사회의 인정을 가장 먼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수행해야만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고착화되었다. 지나친 경쟁은 불안과 좌절, 지속적인 무능감과 허무함을 유발한다.p.211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좋은 친구'를 필요로 한다. 팬데믹으로 인한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공동체의 힘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심각한 위기와 역경이 닥쳐도 지원 네트워크가 있거나 강력한 집단적 소속감이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다. 위기 때마다 더 똘똘 뭉치는 우리의 성향은 이것을 증명해준다.

책을 읽은 후 그동안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종교를 떠나, 지금은 전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지금까지의 세계화와는 다른)로서 기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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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7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훌륭한분들은 3번 만나서도 이렇게 훌륭한 책이 나오는군요. 지금의 교황님은 종교가 없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존경심을 일으키는 행보들을 이어가시는데 이런 대담으로 또 지구와 인류에 좋은 영향력을 주시는군요. 좋은 이야기를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 책을 읽을 때 많은 도움이 되겠네여.

하양물감 2022-05-08 22:14   좋아요 0 | URL
세번의 대담이 있었지만, 그 대담 전후로 또 그 이전과 이후에도 많은 연구와 행동이 있었겠지요^^
 
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오히라 노부타카 지음, 오정화 옮김 / 밀리언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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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무심코 일을 미루거나 시작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바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못났기 때문도, 의지가 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여러분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p.22)라고. 인간의 뇌는 목숨에 지장이 없는 한 변화를 피하고 싶어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의 스위치가 커진 듯이 의욕이 고취되고 즐거움을 느껴 바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런 류의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은 '도파민'이라는 단어에 '또 도파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도 이 책이 조금 다른 점이라면 그 도파민을 분비할 수 있도록 작은 실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큰 변화가 아니라 작은 액션이므로 실천이 어렵지도 않다.


자기계발서, 특히 일본 도서는 책 한권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책도 260페이지에 이르지만 결국은 37가지의 행동패턴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37가지의 행동 패턴을 소개하고 '이런 사람에게 추천', '바로 행동하는 비법'을 통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01 행동이 망설여질 때는 임시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완벽주의인 사람, 계획을 세우다가 끝나는 사람

[바로 행동하는 비법] 비록 임시일지라도 '지금은 이것'이라고 결정하고 움직인다.

'임시 결정과 임시 행동'을 해 본 후 최초의 기대나 예상과 다른 성과가 나온다면 행동 방향을 수정하면 된다. 일단 행동의 첫발을 디디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첫발을 내디디기가 어렵다면 '10초 액션'이라 부르는 방법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방법은 10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뜻한다. 이 단계에서는 누구도 실패하지 않기 때문에 다음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 10초 정도의 작은 행동이라면 뇌는 변화에 바로 대응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 브레이크'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① 원인을 특정하여 방해 요인을 배제한다.

② 목적에 집중하여 방해 요인의 영향을 줄인다.


'지금 바로 oo를 한다'라는 형태로 메모를 해두는 '10초 지시 메모', '아침 첫 번째 지시 메모', 1분간 눈감기, 자신과의 약속, 플랜B, 플랜 C를 만들기 등 간단하지만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를 '고통 회피'와 '쾌락 추구'로 정리한다. '고통 회피'란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고, '쾌락 추구'는 '원하다'라는 욕구이다. 고통 회피 스위치는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바로 행동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는 할 수 있다. 해냈다!'라는 긍정적인 목표 이미지를 그리는 겨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이미지의 힘을 잘 사용하고 있다. 반면 일을 미루는 사람은 '불가능하다', '어렵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경우가 많다. 불가능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순간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하지 않을 이유, 바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행동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 된다. (P.125~126 요약)


10초 만에 할 수 있는 자기 긍정감을 높이는 다섯 가지 행동을 살펴보자.


1) 자신에게 지적할 때는 '알아, 알아'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2) 인정받고 싶을 때는 '열심히 하고 있어'라며 스스로 어깨를 토닥여준다.

3) 머리로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생각이 지나친 사람은 머리로만 생각하고 오감을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감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면 좋다.

4) 좋지 않은 기억을 잊고 싶다면 입꼬리를 1mm 올린다.

5) 지쳐 있을 때는 위를 바라보고 크게 기지개를 켠다. 지치고 피곤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 본 내용을 보더라도 하지 못할 것은 없다. 저 정도 행동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의심스러울 수도 있다. 이 행동에는 '동기'와 '목표'가 필요하다. 분명한 동기와 목표가 있다면 망설이고 미룰 일이 없다. 사람이 행동을 하는데는 강력한 동기와 원대한 목표가 구심점이 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37가지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어렵지 않은 행동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할 수 있겠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우리 뇌의 도파민을 분출시켜 행동하게 만든다.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재바르게 행동하고 진척도가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시작도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원칙적으로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일하는 모드와 쉬는 모드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었으며, 위의 내용은 제가 직접 읽고 쓴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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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제전 -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걸작 논픽션 23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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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3년 5월 파리에서 초연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반란의 에너지와 제물의 죽음을 통해 삶을 찬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작품에 ‘제물’이라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스트라빈스키의 작품과 제1차 세계대전을 비교하며 그 의의를 설명한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서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른’ 것처럼 전쟁에서는 ‘이름 없는 병사’들이 죽어갔다. 저자는 이 병사들을 ‘제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봄의 제전」에서 희생양은 애도 되는 것이 아니라 영예롭게 기려졌다. 메시지, 음악, 작품의 테마, 안무까지 모든 것이 불편했다. 이 작품은 현대적 반란의 여러 본질적 특징을 담고 있었기에 단편적 관객으로부터는 열광적 참사를 이끌어냈지만, 떠들썩한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관객은 문학작품과 예술작품, 주인공들 그 자체보다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훨씬 더 중요한 증거의 원천(p.10~11)이라고 보며 ‘관객’에 대한 묘사를 이어간다. 작품이 공연되었던 그날 밤은 그 시대의 상징이자 20세기의 지표가 되었고 최신식 파리 샹젤리제 극장, 핵심 관계자들의 사상과 의도, 관객의 소란스러운 반응까지 모두 ‘모더니즘’의 발전에서 획기적인 이정표였던 셈이다.


러시아 발레단의 단장이었던 댜길레프는 예술을 구원과 재생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구원은 도덕적 관습과 관습의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러시아를 포함한 서구 문명의 경쟁적이고 자기 부정적인 윤리에 지배되는 우선적 가치들로부터의 해방이었다.(p.65) 예술은 생명력이며, 삶을 붇돋우는 종교적 힘을 지닌다. 그는 예술가의 자율성과 도덕성은 상호 배타적이라고 믿었고, 예술가는 도덕과 무관해야 한다고 보았다. 도덕은 추(醜)의 발명품이며 추의 복수였다. 미(美)를 향한 해방은 에고이즘과 개인적 구원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댜길레프는 예술이 현실을 가르쳐주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관객은 예술적 경험에 중요하다고 보았다. 


19세기의 많은 지식인에게 자아와 사회, 물질계로부터 소원해지는 진짜 원인은 성(性)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중간계급은 쾌락을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으로 해석했고 감각은 죄악이라고 의심받았다. 따라서, 성도덕 쟁점이 현대적 운동을 위해 부루주아적 가치에 맞서는 반란의 매체가 돼야 했다. 동성애자는 반란의 이미지의 중심이 되었다. 무용의 신이라 불렸던 니진스키는 뛰어난 신체능력과 대담한 정신, 순수함과 무모함의 조합으로 한 세대 관객 전체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p.71) 이전까지는 시적 영감의 원천이자 숭배의 대상, 공연 예술에서의 주인공으로 여성이 주목받았다면,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갖춘 남자가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 


1914년 8월, 대부분의 독일인은 자신들이 개입하게 된 무력 충돌을 정신적 의미로 이해했다. 전쟁은 무엇보다 하나의 관념이지, 독일의 영토 확장을 노린 음모가 아니라는 것이다. (p.156) 전쟁이 발발했을 때 독일인들은 자기들의 “도덕적 우월성”, “강한 정신력”, “도덕적 정당성”을 확신했다.(p.158) 영국과 프랑스, 미국에서는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민주주의를 위하여 세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전쟁”이라는 관념이 부상했다. 많은 이에게 전쟁은 천박성, 제약, 관습으로부터의 구원이었고. 예술가와 지식인들은 전쟁 열기에 사로잡혔다.


일부 젊은이들은 전쟁을 반가운 모험으로 여겼다. 그들은 전쟁을 미래로, 진보로, 혁명으로, 변화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이 변해감에 따라서 적은 갈수록 추상화되고 영웅은 이름을 상실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무명의 병사로 바뀌어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중반부가 되면 전쟁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들은 뒤집어진다. 무인지대에서 무더기로 희생자가 된 병사들은 전쟁의 최대 이미지가 되었다. 


무수한 공격에 노출되어 시간이 지나면 병사는 반사작용에 따라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왜 앞으로 나아가는지는 몰랐지만 충성스럽고 성실하며 명예롭게 움직인다. 다층적 해석이 가능한 ‘대의명분’은 개인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병사는 훈련을 통해 몸에 밴 규칙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교육, 성장 배경에 의해 주입된 가치 체계에 따라 움직인다. 개전 후 몇 달이 지나자 영웅주의가 빛이 바래고 진 빠지는 소모전에 들어서자 의무라는 개념이 노력을 결집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목적이 변하는 지점이다.


19세기 중간 계급의 이상적 도덕률에서 개인적인 노력의 목표는 언제나 사회 조화, 공공복리, 공공선이었다. 개인적인 자제는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태도의 특징이었다. 그리고 공공에 봉사한다는 관념, 즉 의무는 이 계급의 위대한 성취가 됐다.(p.300) 1914년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전쟁에 나간 사람들은 주로 봉사와 의무 관념으로 충만한 중간계급이었다. 이전 전쟁이 왕조 간, 봉건적/귀족적 이해관계, 군주 간 대립으로 시작한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역사상 최초의 중간계급 전쟁, 부루주아 전쟁이었다. 의무는 신의가 없고 비열한 외국의 공격에 맞서 조국을 지킨다는 말로 들렸다. 따라서 전쟁 초기에는 이 의무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인 명령이었다. 


전쟁은 문명의 행진과 진보의 지속에서 거쳐가는 한 단계였고, 문명과 진보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토대로 여겨지는 것에 기반을 뒀다.(p.303)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 의무 관념은 옅어지고, 병사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무너지거나 자제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위기 상황에서 손발이 말을 듣지 않거나 용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1917년이 되자 의무라는 말은 사라진다. 진짜 전쟁은 1918년에 끝났다.


전쟁의 이미지와 어휘는 1920년대 모든 형태의 문화에 스며들었다. 그 시대의 문학, 영화, 광고, 정치까지 청년 숭배에 지배됐다. 전쟁에서 젊은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과 슬픔에 빠진 구세대는 젊은 반항아들에게 딱히 항의하지 않았다. 1920년대의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정치를 멸시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성과 합리성, 불변성, 신념은 사라지고 운동, 우울증, 신경증만 남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이 나타난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어른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라는 말을 많이 했다. 누군가의 경험은 그 사람의 가치체계와 사고방식을 바꾸거나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지금 젊은 세대는 외국과 총칼 들고 싸우는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삶이 곧 전쟁이라는 생각을 한다. 국가를 위한 의무와 충성보다 개인의 이익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한다면 그것이 정의인가? 


가까운 곳에서 지금도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민간인이 죽음을 당하며 이름없이 스러져간 군인들이 있다. 세계 질서를 바로잡는다면서 무기를 들이밀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불이익을 강제하고, 네 편 내편 갈라서 편 먹지 않으면 따돌리고, 무시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가까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소식을 듣고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쉽지는 않았다. 봄의 제전과 세계대전을 엮어서 생각하기 위해 두 번, 세 번을 다시 읽었다. 잠재적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쟁이 실제로 일어날 거라’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걱정’이 커진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 무슨 봉사 활동 하듯 참전하러 간 개인이 있는가 하면, 자취방 이사할 때도 챙기고 알아보고 살펴볼 게 많은데, 두 달 만에 옮기겠다고 큰소리치는 정치인도 본다. 명분과 목적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실리’가 없으면 국민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축제의 제물’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희생의 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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