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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박미라 지음 / 그래도봄 / 2021년 10월
평점 :
그 어떤 글이라도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치유적 글쓰기다.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문학적 수준의 높고 낮음이나 지식인 정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치에는 등급도 없다. 그러니 치유를 위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저 쓰면 된다. (P.21)
열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열 수 없는 것. 그것은 마치 인간의 입과도 같다. 인간은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지만 말해서 안되는 것들의 긴 목록도 가지고 있다. 미움, 시기, 질투, 경쟁심, 원망 같은 것들을 말해서는 안 된다. 고통, 절망, 슬픔, 분노, 수치감 등도 말할 수 없다. 때로는 외로움이나 우울감 등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므로 거부당한다. 문화에 따라서는 자기를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도 문제가 되며, 심지어 피해자임을 폭로하는것도 제지당한다. 어쨌든 우리는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을 말할 때 불편함을 느껴야한다. 그런데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럼에도 우리는 발설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는 것이다.(P.27~28)
저자는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어떤 것이라도 말하고 싶다면 말해야 한다. 한 번 입을 다물고 말을 삼키고 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 삼킨 말은 가슴 속에 쌓이고 쌓여 돌덩이가 된다. 그러고보니 나는 집에서는 주로 입을 닫고 밖에서는 쏟아낸다. 아마도 그렇게라도 쏟아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 놓고 말하기 시작하면 치료가 시작된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발설을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듣게 된다는 사실이다. 욕구가 몸 안에 쌓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언어화되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직면하게 된다."(p.32~33)
그러나 좋은 발설에는 조건이 있다.
첫번째는 억지로 내뱉은 발설은 오히려 화가 된다. 말하고 싶은 욕구가 차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두번째는 적합한 상대를 찾아야 한다. 주변에 긍정적인 반응을 해 줄 사람을 찾아야한다. 그런 상대가 없다면 글쓰기를 권한다. 많은 글쓰기 치료사와 상담자들은 일기 쓰기를 통한 심리치료의 효과를 인정한다고 한다.
세번째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인터넷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에도 미리 양해를 구하면 읽는 이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격려와 지지를 통해 힘을 얻게 되면 누군가의 쓴소리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발설했을 때는 기회를 한 번 더 잡아 발설 후 자신의 심정을 전화다. 어떤 경우라도 자책하거나 주눅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홀가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글을 쓸때 누군가(일기장이나 나만의 블로그, 내면 깊숙이 감지되는 어떤 존재)와 대화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기게 되면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생각이 발전한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누군가'를 특정하지는 않고 '다수'를 향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보니 사실 솔직한 내 마음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비해 나의 아이는 블로그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꽁꽁 숨켜서 그 '누군가'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숨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의 중요한 치유 기능은 생각을 단순화하기 위한 기록, 내면과의 대화,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거리두기가 가능해지는것이다. 그 다음이 '나를 보'고 ' 나의 마음과 상태를 관찰'한다.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솔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잘 보는 것이 온전한 치유다. '글쓰기는 주의 깊게 보는 행위 그 자체이며 자신이 어떻게 보고 경험하는지 알게 해주는 행위이며, 그것도 성찰적이고 치유적이다.' (P.69~70)
치유적 글쓰기에는 공감이 절실하다.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과정에서 글을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면 공감과 칭찬은 어떻게 하는걸까? 회사에서도 옆에 있는 직원 칭찬하기를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칭찬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첫째, 상대의 글을 통해 내가 느끼거나 배운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둘째, 글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면 입장을 유보하고 있음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셋째,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격려한다.
넷째, 좋은 질문을 한다.
다섯째, 상대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 세 번 읽는다.
여섯째, 잘 들어줬다면 나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2부에서는 글감찾기를 주제로 무엇을 쓸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반적인 편지쓰기는 편지를 받는 대상이 있고 그에게 부치기 위해 쓰지만, 치유하는 글쓰기로서의 편지는 상대에게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쓴다. 편지 글쓰기의 대상은 다양하다. 미운 사람, 그리운 사람, 오해를 풀지 못한 사람, 자기자신이나 내면의 자아, 과거 어느 시점의 나, 나의 성격이나 우울한 자아, 사춘기의 나, 신체의 장기나 부위 등도 대상이 된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살기 때문이므로 그런 감정을 소재로 풀어내본다. 그리고 무의식이 보내는 신호들, 일상에서 반복하거나 패턴이 된 것들, 우리를 불편하게 하거나 불쾌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본다. 신호를 찾는 시간을 경험해보면 일상의 작은 것들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가족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이다. 가족을 주제로 쓸 때는 첫째, 나는 과거 가족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나, 둘째, 가족들 사이에서 어떤 죄의식이 있나, 셋째,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과거의 어떤 감정 에너지를 끌어오는가, 넷째, 보이는 관계와 보이지 않는 관계는 무엇인가? 다섯째, 부모가 물려준 심리적 유산은 무엇인가를 고려한다.
재미난(?) 소재도 있는데 미친년 글쓰기가 그것이다. 미친년 글쓰기는 '미친년'을 만드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다. 남들과 다른 것,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것 등 두려움을 발설하는 글쓰기다. 여성작가들이 작품에 등장시키는 미친 여자들은 작가의 분노와 분열을 투사한다. 여성뿐 아니라 세상 모든 약자들은 다양한 언어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일관되고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없는 약자들은 강자와 약자의 언어를 사용해서 조롱하고 웃고 넘긴다.
나는 여기쯤 읽고 나자, '치유하는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이 누군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약자인가? 사람은 누구나 강자이기도 하고 약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풀어볼 필요가 있다.
3부에서는 어떻게 써야하는지 글쓰기 방법을 알려준다. 떠오르는대로 자유롭게 쓰기, 가슴으로 쓰기, 상대에게 말 걸듯이 쓰기, 솔직하게 쓰기 등의 방법이 있다. 글을 자꾸 쓰다 보면 나만의 방법이 만들어진다. 많이 써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상처입은 마음을 드러내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법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책에 예시로 소개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는 사실 좀 갑갑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어두운 면, 내가 꾹꾹 누르고 있는 것이 무엇일지 예측해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