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스트 -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나를 지키며 사는 법 EBS CLASS ⓔ
유영만 지음 / EBS BOOKS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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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 철학을 만난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부러 외면하게 되긴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영역에서 '철학'을 만나게 된다. 철학의 과제는 개념 창조에 있다고 말했던 들뢰즈의 말처럼 수많은 철학자들은 각자의 '개념'을 만들어왔다.

사람은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개념만큼 세상을 보고,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바뀌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스트 P.9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자를 사유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고 내 삶에 사유를 투영하여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리처드 로티는 기존의 문법을 파기하고 자기만의 언어 사용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다르게 만들어가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이르러 아이러니스트라고 불렀다. 즉 아이러니를 의도적으로 창조하는 사람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관성적으로 움직이려는 삶을 버리고 나다운 삶을 위해 결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열 두명의 철학자가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존 듀이, 프리드리히 니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이클 폴라니, 질 들뢰즈, 움베르트 마투라나, 미셸 푸코, 리처드 로티, 자크 데리다, 조지 레이코프, 브뤼노 라투르가 바로 그들이다. 익숙한 이름도 보이고 낯선 이름도 보인다.

지식으로 지시하지 말고 지혜로 지휘하는 방법: 아리스트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몇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왔지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다면, 지금은 팬데믹 상황을 거치면서 어느새 우리 삶에 쑥 들어와버렸음을 깨닫게 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인간 고유의 능력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소환해내다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적 지혜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천인지를 숙고하고 이 상황에적절한 대응을 취하는 자세를 말한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는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능력,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생각하는 능력(감수성), 이연연상의 상상력, 그리고 현실 구현의 실천력을 말한다.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육이 변해야 하고, 공감능력을 키우면 상상력도 키울 수 있다.

가장 와 닿았던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의 영향이기도 하다. 언어가 틀에 박히면 생각도 틀에 박힌다.

언어적 해상도가 높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상응하는 적확한 단어를 선정해서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휘력이 짧은 사람은 감정 표현에 동원할 수 있는 단어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쓴 글을 봐도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언어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법은 여러 분야의 책을 편식 없이 읽고 적확한 개념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많이 만나는 것입니다.

P.117

한국어처럼 의도를 함축적인 언어로 우회해서 표현하는 고맥락 문화에서는 본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드러내서 상대방이 알아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표현이 많다. 그래서 어떤 말이 왜 여기서 사용되는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대체로 세상의 변화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위깊게 관찰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사고의 한계를 규정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언어경작이 필요하다.

질 들뢰즈에 의하면 사건은 반복할 때마다 이전과 다른 차이를 드러내며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말한다. 그래서 모든 현상은 낯선 의미, 낯선 기호를 품고 있다. 들뢰즈가 말하는 기호는 나한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모든 현상이다. 낯선 기호가 나타나지 않으면 이전과 동일한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공부하는 과정은 나한테 다가오는 낯선 기호를 해석하는 과정이다. 기호를 품고 있는 사건은 '아장스망'일 때 발생한다. 아장스망은 기존 사물의 낯선 조합과 우연한 마주침으로 형성된 낯선 환경을 말한다. 전문가일수록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기회보다 깊이 있는 분야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동일성을 반복한다. 그러므로 아장스망을 마주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전공에서 느끼지 못했던 깨움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장스망일 때 가능하다.

조지 레이코프의 체험적 은유법은 체험해보지 않으면 사유는 멈춘다고 말한다. 레이코프에 의하면 은유를 바꾸면 부정적 사고방식이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바뀌고, 은유가 바뀌지 않으면 사유는 틀에 박힌대로 움직인다. 은유의 핵심은 겉으로 보기에는 닮지 않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닮은 점을 포착해내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방법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거나 기좀 개념에 담긴 나의 신념을 바꿔서 재정의하는 것이다. 비유는 막힌 사유를 뚫어주는 치유라고 한다.(P.343) 나만의 독창적인 비유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한 권을 읽었을뿐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 내 삶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리고 인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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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 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속 명언 320가지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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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너에게 권하는 동화 속 명언 320가지,

유독 지친 날, 한 줄기 위로가 되어주는 동화 속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세계명작 같은 전집을 집에 들여놓기가 바쁘게 바깥놀이도 하지 않고 책을 읽어대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림책을 읽은 기억은 거의 없고 동화책을 읽은 기억은 많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동화는 모두 25편. 그 중에 몇 권을 제외하고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르게 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내 또래 독자라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감동을 받거나 마음에 위로를 느끼는 인물의 대사나 작가의 메시지는 독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멋진 문장이나 챙겨야겠다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어떤 맥락과 어떤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원작을 찾아보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또 저자는 좋은 문장이라고 뽑았지만 나는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문장도 당연히 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한 번 쓰윽 훑어보는 느낌으로 읽어도 괜찮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 책은 E.B.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이다. 아이들 독서 수업 때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책이다. 아이들에게 친구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오랜 시간을 들여 우정을 쌓은 소중한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를 보자. 틸틸과 미틸의 이야기로 기억되는 책이지만, 작가의 이름은 낯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벨상을 받은 작가이다). "단지 네가 그걸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거지... 앞으로는 우리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겠어. 그러면 더 고귀하고 고상한 행복들을 만나게 될거야."

J.M.데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랜지나무'를 중학교 2학년 때 읽었다. 무려 35년 전 이야기다. 그때는 여섯 살짜리 제제와 밍기뉴의 이야기가 마음을 끌었다면, 지금은 제제와 친구가 되어주었던 뽀루뚜가 아저씨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괴로움을 견디고 기운을 내는 데는 맑은 날이 더 좋잖아요. 슬픈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주인공인 것처럼 씩씩하게 고통을 이겨내는 상상을 하는 건 재미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을 겪는 건 별로예요." 아, 정말 이런 말은 '앤'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또 다른 걱정거리들이 생길 거예요. 항상 골치 아픈 일들은 새롭게 일어나니까요.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이어지죠. 나이를 먹으니 생각할 것도, 결정해야 할 일도 많아져요. 뭐가 옳은지 곰곰이 생각하고 결정하느라 늘 바빠요.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국 작가가 쓴 동화가 있었으면 했는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정채봉의 '오세암', 이현의 '푸른사자 와니니', 루리의 '긴긴 밤'이 보인다. 마당을 나온 암탉 '잎싹'은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좋은 캐릭터였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니까. 잎싹도 아카시아 나무의 그 잎사귀처럼 뭔가를 하고 싶었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읽었던 책을 다시 한 번 리뷰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책들을 읽지 못했다면(아마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책도 있을 것) 지금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때의 감성과는 달라진 내게 이 책들도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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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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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사람들의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책.

회화는 책과 함께 발달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은 글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책이 물리적 대상으로서 결정적인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중세 때라고 한다. 목판, 점토판, 나무껍질, 비단, 파피루스 등의 소재로 서판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중세에 이르러 코덱스의 출현과 인쇄술의 발달은 책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인들은 두루마리에 모세의 경전을 기록하는 유대인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코덱스를 채택했다고 한다. 중세에는 글을 쓰기 위한 소재가 세가지가 있었는데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가 그것이다. 15세기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필경사가 글을 쓰는 전문가였다.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흑연이나 은, 주석으로 된 필봉, 갈대, 새의 깃 등을 이용하였다. 잉크는 식물 성분에 납이나 철의 황화물을 더해 만들어 썼는데, 특히 붉은 잉크는 저작 전체나 장의 표제에 썼다고 한다. 이것은 '차례'가 없던 시절에 독자들이 특정 대목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중세 수서본 중에서 삽화가 들어가는 책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그런 책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삽화는 장식적인 기능과 텍스트의 내용을 보완하는 교육적 기능이 있다.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만들어지던 수서본이 도시로 옮겨가면서 책 시장이 생겨났다. 5세기 로마제국의 붕괴 후 12세기경까지 출판은 수도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책의 상업적 거래가 끊기고, 수도사들이 출판을 하면서 비영리적 활동으로 변모하였다. 수도원에는 수서본을 제작하는 스크립토리움(필사실)을 두고 있었다.

11세기 독서가 묵독의 형태를 띠게 되면서 독자와 책의 관계가 달라졌고, 12세기에는 학교에 다니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책 장사도 본격화되었다. 13세기 초에는 서적상들이 나타났다. 서적상은 서적 생산과 관련된 네가지 직업인들(양피지 제조사, 필경사, 채식사, 제본사)을 지배했다.

중세 사회에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기독교 대중을 지배하던 성직자와 귀족만이 누릴 수 있던 특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독서의 즐거움은 곧 장서의 구비로 이어져 도서관들이 탄생하였다. 서구의 큰 도서관들은 중세 초기 수도원에서 생겨났다. 대부분의 수도워 공동체가 따랐던 성 베네딕투스의 규율은 공동체적 독서를 권했다. 13세기에는 수도원이 쇠퇴하면서 책의 제작과 내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종교서적은 줄어들고 대학 교재나 문학에 속하는 속어 작품들의 필사가 발달했다.

12세기 서구에서 도시 학교들이 발달하고 뒤이어 13세기에는 대학들이 창설되면서 새로운 대중 독자들이 나타난다. 종교적 묵상을 위한 독서에서 새로운 지식을 알고자하는 독서로 이어졌다. 교사와 학생들은 책을 학문의 도구로 여겼으며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책이 있어야 했다.

영국의 애서가 리처드 베리가 1343년~1345년 사이에 공공도서관에 출입하는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쓴 글(학생 족속의 뒷모습)은 당시의 세태를 보여준다. (p.85 내용 참조) 중세나 지금이나 도서관에서 공공이 함께 보는 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많다.

책을 읽는 두 가지 방식(낭독과 묵독)은 중세 내내 뱡행되었다. 낭독이 문맹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묵독은 성직자와 학자들의 방식이었다. 묵독은 학교에서 행해지면서 학문의 도구가 되었지만 문맹자들은 '기억력'에 의존하여 배웠다. 12세기와 13세기에는 학교의 발달과 더불어 독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텍스트는 규격화되었고, 장식은 장절을 알아보는데 필요한 머리글자 장식에 제한되었다. 주서와 색인은 수서본을 편리한 학습용 책으로 만들어주었다. 중세말기에는 여성들도 문자 문화에 참여하여 글을 읽고 썼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구 특히 중세 서구의 책과 관련된 사회 문화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서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적 내용을 다룬 책들이 주를 이룰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로지 종교적인 책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더왕의 이야기를 다루거나, 신화를 차용하거나 속인들의 세속적인 관심사를 드러낸 책도 나타난다. 그것은 인쇄술의 발달과 종이의 보급으로 인해 대중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책이 수집의 대상 또는 유산의 한 부분이 될만큼의 가치가 있던 시절에는 당연히 책이 재산이었을 것이다. 요즘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을 것.

얼마전 이사를 하면서 집에 쌓여있던 책을 버리고 묶어서 보내고 기증을 하고 정리를 하였다. 한번 읽고 말 책, 그 한번도 끝까지 읽지 않을 책이 얼마나 많던지. 책이 귀했을 당시에는 책으로 남겨야 할 내용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그러니 그 책은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버리고 비우고 나니 나도 책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책의 역사, 도서관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알고 있던 내용도 있었지만, 다양한 사진 자료를 보면서 읽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과거의 우리나라 책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있다면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서구 중세 중심의 내용이므로 조금 아쉬움은 있다. 물론 저자는 처음부터 중세의 책에 관한 열정을 그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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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하여 - 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박설영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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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읽었다. 충격적인 이야기의 설정때문에 한편으로는 불쾌했고, 한편으로는 불안을 느꼈다. 그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도 꽤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작가가 쓴 '글쓰기에 대하여/작가가 된다는 것에 관한 여섯 번의 강의'를 보았을 때 호기심이 일었다.

"이것은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하지만 글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의 저술 활동에 대한 책도, 특정한 사람, 시대, 국가의 글에 대한 책도 아니다. "(p.16)

사실 이 책 제목만 보고 그런 책인 줄 알았다. 이 책의 내용을 목차를 통해 살펴보자.

제1장 길 찾기: '작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나

제2장 이중성: 왜 항상 둘로 나뉘는가

제3장 헌신: 작가가 숭배해야 하는 제단은 어디일까

제4장 유혹: 누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줄을 조종하고, 악마의 책에 사인을 하는가

제5장 성찬식: 작가, 독자, 그리고 매개체로서의 책

제6장 하강: 누가 왜 지하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걸까

'글쓰기'란 무엇이며, 독자들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글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을 '작가'라고 부른다면 정확히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독자와 작가 자신이 작가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쓰는가? 글은 어디에서 오는가? 글을 왜 쓰는지 그 동기란 것이 작가들마다 공통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동기는 너무도 많아서 어느 하나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작가들에게 글을 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물어본다.

첫번째 장에서는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들의 어린 시절은 '작가'가 될 떡잎이 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물론 책은 늘 곁에 있었고, 독서광이었으며 상상하는 태도 등이 그들을 글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다.

글쓰기에 관한 여러 책이 있지만, 과정이나 직업으로서의 글쓰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는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로서의 글쓰기'는 어떤 것일까? 마거릿 애트우드는 "머릿속으로 시를 쓴 뒤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그때부터 오로지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내가 쓴 시가 훌륭한지 어떤지도 몰랐지요. 하지만 알았대도 아마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이었으니까요. 너무 강렬한 경험이었어요."(p.43)라고 말한다.

사회가 단지 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여성' 작가로서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조금이라도 의심했더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많은 작가들이 작가는 능력적인 측면에서 남녀구분이 없다고 말하지만 남녀 작가는 비평가들에 의해 다르게 취급된다.

남성 예술가들에게도 성적인 것, 민중을 자극하는 정치적 견해, 종교에 대한 비판적 의견, 또는 지나친 폭력과 누추함 등에 대한 제재가 있었다. 위대한 예술가 역할을 맡은 남자가 삶을 사는 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는데, 여기서 '삶은 산다'는 것은 술, 여자, 노래를 즐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여자는 술과 와인을 가까이 하면 헤픈 술주정뱅이로 간주됐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었다. 평범한 여성이 결혼을 하는 건 정상이었지만 여자 예술가는 아니었다. 남성 예술가들은 예술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질 수 있었던 반면, 여성 예술가에겐 그런 삶이 걸림돌이라고 여겨졌다. (p.128)

그래도 글쓰기는 다른 예술과 달리 외견상으로는 민주적이다. 즉, 거의 모든 사람이 글쓰기를 표현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쓴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작가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가'는 책 위에 적힌 이름이고, 나는 그와는 다른 사람이다. 모든 작가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일상을 살고 또 하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자아와 일상생활을 하는 자아는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이중성을 가진다.

작가들의 전기를 보면 돈 문제보다 연애, 신경쇠약, 중독, 음주, 질병, 나쁜 습관 등을 많이 드러낸다. 그러나 작가가 쓰는 글에도 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작가는 돈에 무관심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들이 글을 쓰는 것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이유는 보람을 얻기 위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글을 쓰고 이문을 남기는 사람이 살아남아 다른 날 또 글을 쓸 수 있다. (p.105)

저자는 문학적 가치와 돈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돈이 되는 좋은 책, 돈이 되는 나쁜 책, 돈이 안 되는 좋은 책, 돈이 안 되는 나쁜 책. 진지하게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예술의 영역과 돈의 영역을 중재해줄 수 있는 중재인을 잘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재인들이 작가를 대신해 몸값을 올려주고 작품을 낙찰시켜주는 동안, 작가는 품위를 지키며 작품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네 번째 장에 오면 작가를 환상주의자, 숙련공, 사회 정치권력의 참여자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시인은 세상의 공인되지 않은 입법자다."(p.146) 한국에서 작가는 사회참여의 역할이 무척이나 크게 여겨진다. 근현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서양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된다. 작가들이 쓰는 글이 세상 밖으로 나가 영향을 미치고 결과를 낳는다면 윤리, 책임 그러한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작가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그것을 책에 담는다면 그가 다루고자 하는 사안에 대해 작가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등장 인물에 대한 판단과 결과에 대한 가치 판단은 나는 독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러한 상상을 풀어놓고 독자로 하여금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가는 상상을 마치 실화처럼 풀어낸다.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쓸까? 어떤 글을 쓰든 작가는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쓴다. 어떤 독자가 그들의 글을 읽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고 독자 역시 작가를 볼 수는 없지만 그들 사이에 연결된 텍스트를 통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물론 글을 쓸 때 상정한 독자는 책이 대량생산됨으로써 더더욱 누군지 모를 독자로 바뀐다. 독자가 글을 읽을 때 작가는 어디에도 없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독자를 위해서이다.

글쓰기와 작가에 관해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라 책 속 주인공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작용은 경험하기 좀 힘들긴 하지만, 작가를 배제한 채 책 속 주인공과 나의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작가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작가의 성향과 취향을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나와 대척점에 선 작가는 피하기 때문이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되겠고, 일반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을 기대한 독자라면 조금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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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3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애트우트 여사 인터뷰에 처음 출간 했던 시집이 딱 8권 팔렸다고 출판사로 부터 통보 받았다며
길에서 전단지 돌리듯 시를 팔아야 인쇄비용을 충당 할 수 있을지 고민 했다고 하네요

영미권 작가들은 한번 베스트 목록에 올라가면 다른 언어권 작가들에 비해 수익이 많이 올라가지만

인정 받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책 출간 당시 찜! 했다가
몇장 읽어 보고 작법에 관한 책이 아닌것 같아서 보류 ㅎㅎㅎ

하양물감 2021-09-23 06:3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목때문에 작법으로 오해하기 좋아요. ㅎㅎ
 
나무, 돌, 그리고 한국 건축 문명 - 동과 서,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는 건축 교양 강의
전봉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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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딘가를 여행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것은 '건축물'이다. 물론 힐링을 위한 여행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올 수도 있지만 우리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많은 것들이 그 지역의 건축물이 아닐까? 여행지를 선택할 때 우리의 눈을 호강시켜줄 자연과, 스릴을 만끽할 레저도 고려 대상이지만 어디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숙소 선정도 아주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 역시 건축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에 대해 혹은 건축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은 그렇게 한국 건축물의 특징을 찾아 나선다.

"종합적인 교양과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춘 건축가의 직능을 이해한 서구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건축가는 19세기 발, 20세기 중반에야 비로소 등장한다."(p.14)

이 책에서는 우리의 건축이 목조건축이어서 갖는 특성과 온돌로 형성한 공간 이용에 대해 설명한다.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부 건축 문명의 동과 서, 나무 건축과 돌 건축

2부 전통 건축, 단조로움 속의 차이를 발견하다

3부 한옥에서 아파트까지, 가장 일상적이고 친밀한 건축의 진화

4부 세계와 만나는 한국 건축 문명

저자는 건축적 교양을 기르기 위해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건축을 다룰 필요가 있다고 전한다. 의무 교육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생활인을 양성해야 한다면 적어도 자기에게 알맞은 집을 고를 능력, 거대한 실내에서 재빨리 피난처를 찾는 법, 도시 문명의 형성 이해, 정치 공략으로 휘둘리는 도시 프로젝트의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물 또한 상품이라고 봤을 때 이 상품의 수준은 소비자의 안목과 구매력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서 안목은 경제력 뿐만 아니라 교양과 경험을 필요로 하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이런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부동산 광풍'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이런 교양이 필요하지 않을까?

건축은 자연조건에 의해서도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조선 후기부터 모내기를 하는 논농사가 보급되어 자연스럽게 낮고 평평한 지역은 논으로, 그 주변은 주거지가 되었다. 그 외의 활동은 산에서 일어났는데 조상의 산소, 서원이나 향교, 절과 성황당, 산신각이 들어서는 신앙의 공간이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지금도 주말이면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라는 것이 조선 후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화의 시기별 다양성과 시간적 변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필요하다. 건축은 디자인 뿐만 아니라 산업, 사회, 자연 환경이 복합된 결과물이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기, 그래서 많은 것들이 남아서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조선 후기의 그것을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옭아매고 있는 것도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의 산업, 사회, 자연 환경은 그때와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바뀌어야 할 것도 분명 많을 것이다.

"건축은 안이 비었기 때문에 쓸모 있고, 우리는 그 빈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건축과 토목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건축은 빈 곳을 이용하는 것이고 토목은 구조물을 이용한다. 피라미드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미터씩 되는 돌을 수백만 개 쌓아 그 안쪽의 조그만 틈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판테온은 하늘을 닮은 둥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대한 얇은 껍데기로 둘러싼 것이다."(p.34)

건축의 목적이 내부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관건은 지붕을 덮는 일이다. 이때 사용되는 기본 구조는 아치 구조(조적식)와 기둥-보 구조(가구식 구조)이다. 돌은 기둥 재료로는 적합하지만, 보로는 부적합이다. 그러나 돌은 내구성이 강하기 때문에 종교 건축이나 귄위 건축에 사용되었다. 기념비적 건축 또는 기념비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석조인 것은 이 때문이다. 나무는 가공성이 좋아 건축물로 쓰기에 좋아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굳이 건축 문명을 돌 조적식과 나무 가구식으로 나눈다면 그것은 최고급 기념비적 건축물을 무엇으로 지었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 중국 건축 문화권에서는 궁전, 사찰도 모두 나무로 지었다.

중국 문명권이 가장 크게 뒤지는 분야가 조형 예술 분야이다. 돌을 쓸 줄 몰라서 못 쓴 것이 아니라 안 쓴 것이다. 왜냐면, 서양과는 다른 '영원'에 대한 생각 차이 때문이다. 유형한 것은 유한하고, 영원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 즉 신체가 아니라 정신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전 주조의 차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동상이나 조각 대신 비석을 세우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는 매우 한정된 지역에 국한된 특수한 문명권에 자리하고 있다. 또 형식보다는 내용을 숭상하고, 기념비보다는 의례 행위, 조형보다는 문자, 높이보다는 깊이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p.87)

2부에서는 집짓기의 설계, 풍수, 기둥 세우기, 보와 도리, 지붕에 대해 설명한다. 전통 목조 건축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지붕, 기둥, 공포, 기단과 계단'이 있고 단청과 세부 장식, 문과 창의 형식 등으로 건물의 격식과 상징적인 의미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 건축의 특징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닥 형식이다. 크게 땅 바닥과 뜬 바닥으로 나뉘는데, 흙바닥을 그냥 다져 사용하거나 전돌을 까는 것이 땅 바닥식이고, 온돌이나 마루를 깔아 실내 바닥을 한 단 높게 올린 것이 뜬 바닥식이다. 즉 신발을 신고 사용하는 공간은 땅 바닥식, 신발을 벗는 공간은 뜬 바닥식이다.

'한옥'이라는 말은 모두가 한옥에 살 때는 필요가 없던 말이니 한옥이 아닌 것이 등장했을 때 쓰이게 된 말이다. 한옥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전에는 재료와 외양에 따라 와가, 초가, 용도를 기준으로 궁실, 사우, 관아, 주택이면 인가, 주가로 불리었다. 민가라는 말은 조선시대 문서에는 거의 없다. 민가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말이다.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인은 신분이라기보다는 계층에 가까웠기 때문에 반가와 민가로 구분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온돌은 전통 한옥에는 반드시 있고 또 전통 한옥에만 있는 것이어서, 전통 한옥을 대표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또 온돌은 단지 방 모습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이와 연결된 부엌과 마루 모습도 바꾸었기 때문에 전통 한옥의 모습을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한국 주택은 '온돌을 사용하는 집'이라고 해도 좋다."(p.197)

온전한 온돌은 한반도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온돌은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비싼 장치라서 온돌 비중이 크지는 않다. 온돌은 바닥을 데우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 양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닥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좌식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온돌은 공간을 이용하는 다른 유형의 건축물에도 영향을 끼쳤고 크게는 토지 이용 계획과 미학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한국적 전통이나 현상 등을 설명하면서 우리의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많다. 우리의 전통이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산업, 사회, 자연 환경에 맞게 개발되고 이용되어졌기 때문에 그 효과나 효능이 뛰어난 것이다. 무조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야...가 아니라 왜 이러한 것을 사용했는지, 왜 이런 구조와 형식으로 발전을 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조금 넓은 시야로 보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기 위한 건축물을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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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9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양 물감님,
추석 연휴 동안 가족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해피 추석~


∧,,,∧
( ̳• · • ̳)
/ づ🌖

하양물감 2021-09-19 23:1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scott님도 풍성하고 넉넉한 한가위 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