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종이비행기 - 2022 문학나눔 선정 도서 마주별 고학년 동화 4
최은영 지음, 김소희 그림 / 마주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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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이니 사과탄이니 하는 것이 학교 안에서 터지고 전경, 백골단에 대항하여 쇠파이프 들고 앞장서던 선배들, 동기들도 기억난다. 내가 대학생이던 그 시절 나는 정치적 행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학생이었다. 당시 친구였던 ㅈ 이 나를 꽤나 비판했었다. 국가의 횡포에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우리 하나하나가 힘을 합쳐 한목소리를내야 한다며 …


이 책은 어린이책이지만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단어들과 광주항쟁과 유월민주화투쟁 등이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많이 낯설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꽤 많아보인다. (아니 그런 것까지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알려주며 읽을 필요까지는 없는 것일수도)


누런 갱지에 인쇄된 가정통신문, 학교에 가져가기 위해 모으던 폐지와 빈병, 국민학교라 불리던 그 시절이다. 굴다리 아래 '할매식당'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동규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동규는 부모님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는 동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아빠는 재혼을 해서 다른 집에서 산다. 아빠는 동구더러 함께 살자고 했지만, 동규는 가지 않는다. 새엄마라고 불러야 할 지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할지도 헷갈리는 그 분과 함깨 살고 싶지 않아서이다.


동규는, 종이비행기를 자주 접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머니는 동규가 비행기 접는 것을 꺼려한다. 동규 역시 자신이 무의식중에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게 왜인지는 잘 모른다. 할머니의 반응으로 볼 때 '종이비행기'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장치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 '유월의 종이비행기'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하게 한다.


동규의 학급에는 아이들 위에 군림하는 민석이라는 아이가 있다. 동네에서 제일 큰 병원의 병원장 아들이다. 민석이는 반 아이들을 자기 수하처럼 부린다. 그 중에 승우라는 아이를 특히 많이 괴롭히는데, 승우는 늘 그런 민석이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반 아이들은 승우를 유달리 괴롭히는 민석이를 말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렇게 했다가는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규도 마찬가지다. 동규는 남의 일에는 일체 관심이 없다. 학교에서도 튀지 않게 지낸다. 그런 아이들과는 달리 미진이는 이 상황을 바로 잡아보려고 애쓴다. 반 아이들이 함께 해주면 좋겠지만 언제나 미진이 혼자이다. 선생님은 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이다. (아니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걸까?)


동규집에는 준희라는 대학생이 하숙을 하고 있다. 할머니는 유독 준희에게 신경을 쓰는데 늦게 다니거나 하면 걱정을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동규 엄마의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오는데, 동규는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던 엄마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할머니는 동규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동규가 명동에 잇는 아빠에게 가다가 데모 현장을 보게 된다. 아빠의 도움으로 집으로 온 동규는 준희누나가 백골단에게 쫓겨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이야기는, 과거의 광주의 이야기를 끌고 들어온다. 대통령의 독재로 인해 무고한 광주시민을 무참히 짓밟았던 그때의 이야기를. 수많은 희생이 있었음에도 무엇이 변했냐며 회의적인 사람들과,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때처럼 당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이 행동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6월 항쟁은 그렇게 타오른다.


이 책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규의 시점에서 동규와 같은 나이의 어린이 시점에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독재'를 끄집어낸다. 친구들 사이에서 군림하는 민석이의 행동에 아무도 반발하지 않고 나만 안 당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사리던 아이들이 모두 함께 나서 대항하자 민석이도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미 그런 정치적 경험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마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다면 그들이 자라 사회로 나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 정치적 상황을 보면 우려가 되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자기 이익이 더 우선인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울까? 이 책은 아이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그들이 하나되어 움직일 때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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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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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매혈기를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꽤 오래 전에 들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독서동아리에서 서로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내 손이 가지 않는 책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위화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 이 이야기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죽음만이 유일한 평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평등은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재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을 당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편리함이나 불편함은 개의치않지만 남들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인내력을 잃는다. 작가는 허삼관을 통해서 그러한 '평등'을 이야기한다.

허삼관은 생사(生絲) 공장에서 누에고치 대주는 일을 한다. 할아버지는 허삼관에게 "피를 팔러 자주 가느냐?"고 묻는다. 뼈대가 튼튼하고 건강하다는 증거로 피를 팔 수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몸이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은 밥도 한 그릇 이상을 먹어야 하고, 성 안에 가서 피도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노동력의 대부분이 몸을 쓰는 일이니 당연히 신체 건강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벌 수 없는 돈을 피를 팔면 벌 수 있어서 건강한 사람들이라면 피를 팔러 간다는 것이다. 몸이 부실하면 피를 팔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건강을 확인해주는 방법이기도 하고 '돈'을 버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허삼관이 처음 피를 팔러 간 것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후이다. 사람들은 물을 마셔서 피를 묽게 만들어서 양을 늘리고, 혈두에게 뇌물을 주고 피를 팔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피를 팔겠다는 사람은 많고 피가 필요한 사람은 적을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팔았으니 그럴 수밖에.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어떤 힘이 피에서 나오고, 어떤 힘이 살에서 나오는 건가요?"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우리 집에서 근룡이네 집까지 갈 때는 별로 힘이 들지 않지. 이런게 바로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하지만 자네가 논밭 일을 하거나 백여 근쯤 되는 짐을 메고 성안으로 들어갈 땐 힘을 써야 한단 말씀이야. 이런 힘은 다 피에서 나오는 거라구." (p.31)

허삼관은 처음 피를 판 날 "피땀 흘려 번 돈이 어떤 건지를 안 셈이죠. 제가 공장에서 번 돈은 땀으로 번 돈이고, 오늘 번 돈은 피 흘려 번 돈이잖아요. 피 흘려 번 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지요. 반드시 큰일에 써야죠."(p.33)라고 말한다.

이후 허삼관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가족의 생사가 걸려 있거나 할 때) 피를 판다. 매혈기라 함은 허삼관이 피를 파는 이야기인 것이다. 허삼관은 피를 팔아 번 돈과 일해서 번 돈을 사용할 때 구분을 한다. 피를 팔아 번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허삼관은 장가를 가기로 한다.

허삼관은 '눈 내리는 겨울에 이불 속에서 꼭 껴안고 지낼 만한 여자'로 임분방이라는 아가씨를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결혼은 꽈배기 서시라 불리던 '허옥란'과 하는데, 그녀와 결혼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사주며 환심도 사고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데릴사위'라도 되겠다고 한다. 허옥란은 하소용이라는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허삼관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들을 셋을 낳는다. 나중에 문제가 된 것은 그녀의 첫째 아들 즉 일락이다. 일락이는 자라면서 점점 하소용의 얼굴을 닮아가는 바람에 허삼관의 아이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허삼관은 일락이가 자기를 닮지 않았지만 이락이, 삼락이와 닮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한다. 일락이는 엄마인 허옥란보다 아빠인 허삼관을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허옥란이 도와달라고 할 때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댔지만 허삼관에게는 자기가 먼저 다가가서 이런저런 일을 도왔다. 허삼관은 "일락이는 나를 닮고, 이락이는 당신을 닮았는데 삼락이 저 녀석은 누굴 닮은거지?"라고 하며 일락이를 좋아했다. 그러다, 삼락이가 싸우다가 형들을 불러오게 되고 일락이가 돌로 상대방 아이의 머리를 찍은 후 그 병원비를 물어주는 과정에서 자기 아들도 아닌 일락이가 저지른 일에 왜 자기 돈을 써야하는가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가 그랬어요. 한 번 아버지라고 불러서 대답이 없으면 다시 여러 번 부르라구요. 제가 벌써 네 번이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대답도 안하고.... 꺼지라고만 하시니.... 그럼....갈래요." (p.98)

일락이더러 자기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했지만, 결국은 허삼관이 피를 팔아서 병원비를 갚아준다. 허옥란의 가구며 살림살이를 가져갔던 방씨는 모두 돌려준다. 허삼관은 임분방을 찾아가 관계를 맺는다. 허옥란이 하소용과의 사이에서 일락이를 낳은 것처럼 자기도 임분방과 같은 일을 해버린 것이다. (이런 걸 평등이라고 해야할까?)

일락이는 계속해서 허삼관이 키우지만, 이락이, 삼락이와는 다르게 대한다. 예를 들면 피를 팔아 번 돈은 이락이, 삼락이에게 쓸 수 있지만 일락이에게는 쓰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관계도 하소용이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극적으로 해소가 된다. 사실 이 장면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허삼관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이 쪼그만 자식, 개 같은 자식, 밥통 같은 자식.... 오늘 완전히 날 미쳐 죽게 만들어놓고.... 가고 싶으면 가, 이 자식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널 업신여기고, 만날 욕하고, 두들겨 패고 그런 줄 알 거 아니냐. 널 십일 년이나 키워줬는데, 난 고작 계부밖에 안되는 거 아니냐. 그 개 같은 놈의 하소용은 단돈 일 원도 안 들이고 네 친아비인데 말이다. 나만큼 재수 옴 붙은 놈도 없을 거다. 내세에는 죽어도 네 아비 노릇은 안 하련다. 나중에는 네가 내 계부 노릇 좀 해라. 너 꼭 기다려라. 내세에는 내가 널 죽을 때까지 고생키킬테니..."(p.191)

이야기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로 흘러간다. 허옥란은 중상모략으로 화냥년이 되고 결국 인민재판을 받게 된다. 거리에서 목에 간판을 걸고 벌을 받는 허옥란을 위해 허삼관은 도시락을 싸서 간다. 허삼관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허옥란은 먹을 게 없어 굶주리던 시기에는 아껴둔 쌀로 죽을 해먹이고, 장갑실을 풀어 옷을 해입는 등 살림을 똑부러지게 하는 여성이다. 허삼관이나 허옥란이나 모두 자기 가정을 지키고 건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민들이다. 중국의 대변혁을 겪으면서도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를 위해서라면 피 한번 더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락이가 간염에 걸렸을 때 허삼관은 일락이를 위해 연거푸 피를 판다. 피를 판 돈을 일락이에게 쓰는 것은 할 수 없다던 허삼관이 일락이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이 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연거푸 피를 파는 장면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중국이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서민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옥수수죽을 먹어도 나만 그렇게 먹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굶주리고 있다는 것에 같이 감내한다. 내 아내가 인민재판을 받아 한길에서 벌을 서고 있어도 그건 들러리일 뿐이라며 그 상황을 또 견뎌낸다. 생산부대에 가게 된 일락이와 이락이에게 피 판돈을 보내고, 생산대장에게 잘 보여서 아들들을 좀 편한 곳으로 보내려고 애를 쓴다. 우리 가족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삶이 행복할 리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들 가족의 안전을 위해 걱정하고 보듬는다. 객관적인 행복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불행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묘한 감동이 있었다. 피 파는 이야기라고 해서 처음에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들 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그들만의 '평등'에 관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제대로 전하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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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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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손에 들었다가 푹 빠져서 읽은 책이다.


청소년 대상 도서를 읽다보면, 그 주제나 소재가 얼마나 다양한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회 문제를 끌어안으면서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풀어내어 독자인 나는 다시 한 번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제목이 '훌훌'이어서 '뭔가를 털어내고 싶은가',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은가',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자유롭게 날고 싶은가' 등등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마음이 편안했다.


또래 친구인 유리, 미희, 주봉이, 세윤이, 유리 집에 온 연우, 고향숙 선생님과 할아버지, 그리고 서정희씨가 주요 등장 인물이다. 인물들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나씩 품고 있는데 책을 덮을 때 즈음엔 그들 모두의 이야기에 공감과 응원을 보내게 된다.


'입양'은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을 담당한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이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지만 특히 입양 가족의 지지를 받는 이야기이길 소망하였다. 작가는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장애'를 어떻게 표현하고 이야기하는지에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입양 가족'에게서 외면 받거나 꺼려지는 이야기가 아니길 바란다.


사람들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상처'를 주는 일이 많다. 이야기 속 병규와 진성이처럼 '고의'로 타인의 아픔을 들추어내고 놀리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나는 이 말처럼 더 잔인한 말도 없다고 생각한다. 평소 생각이 언어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남의 아픔이나 상처를 들추어내고, 욕을 하고, 모든 사람이 다 알아야 하는 일이라며 떠들어대는 사람을 본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이 없다.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로 상대를 욕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를 지 모르지만 주로 선거철에 많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소문이 사실보다 더 큰 힘을 갖기도 한다. 고향숙 선생님에 대한 뜬소문은 음주운전, 불륜, 이혼에 이르기까지 커진다. 뜬소문은 선생님의 수업을 방해하고, 언어폭력을 사용하여 선생님의 교권을 무너뜨린다. 선생님이 유리와 상담을 하고, 연우의 이야기를 알고 하는 행동을 보면서 우리는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다.


유리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을 입양한 엄마와도 함께 있지 않다. 자기가 왜 입양이 되었는지 알고 싶지만 내색 없이 살아온 것 같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입양을 해놓고 함께 살지도 않는 엄마에 대해서도 원망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입양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것에 대해서도) 친구 관계도 좋고, 대학을 가서 어떻게 살겠다는 자기 목표도 뚜렷한 아이다.


유리는 어느날 갑자기 입양해준 엄마가 죽고 엄마가 낳은 연우와 함께 살게 된다. 고등학생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우를 돌보는 행동이 자연스럽다. 어쩌면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행동일지도 모른다. 애어른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어쨌든 연우로 인해 유리의 삶은 달라진다. 연우를 통해 우리는 '아동학대'를 엿보기도 하고 '촉법소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 주변에 입양 가정 뿐만 아니라 이혼 및 재혼 가정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사회의 가족 구성이 상당히 많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불합리한 상황에 자연스레 대처하는 과정을 보면서 독자는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짐작하게 된다. 갈등은 있지만 갈등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아 읽는 동안 불편함보다는 공감을 많이 하였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 아이들 뿐만 아니라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훌훌' 털고 자유롭게 날아올랐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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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춤추는 생각
키아라 파스토리니 외 지음, 쥔리 송 그림, 김현희 옮김 / 다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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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갈릴레이인지 갈릴레이 갈릴레오인지 늘 헷갈린다. 남의 이름 외우는데 주의집중을 게을리 한 탓이리라. 최근 지식정보 중심의 어린이책 중에서도 과학을 다룬 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얼마 전 읽었던 다윈과 패러데이를 소개한 책과 함께 이 책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예전에는 과학자들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이 그들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많이 다루었다면 요즘 읽은 책들은 사건 또는 학업적 성과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독서 경험의 안에서 그렇다.

이 책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왜 위대한 과학자라고 불리는지, 그로부터 왜 근대과학이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이론을 실험으로 반박한 사건을 재미나게 소개한다.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써서 진짜 저런 기록이 남아있는거 아냐? 하며 읽었다.)

갈릴레이 이전의 학문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그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실험을 하여 증명해낸 갈릴레이가 새삼 대단해보인다. 세상이 발전하고 성장하는데는 이런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든 말든 호기심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여러 가지 창의적인 방법으로 '실험'을 하며 증명을 해나갔다.

"정말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먼저 떨어질까?"

"공이 구르다가 멈추는 건 정말 힘을 더 주지 않아서일까?"

"은하수는 정말 하늘에 낀 안개일까?"

"정말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도는 걸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에 의문을 표시하고,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갖가지 실험을 하였다. 요즘 우리는 어떤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증명을 위해 실험을 하든 책을 읽고 논리적인 허점을 찾든 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알려주는 불명확한 정보'를 쉽사리 맹신하는 것 또한 요즘의 세태이기도 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자기 신념을 끝까지 주장하지 못하고 '목숨'을 잇는 선택을 했지만 그건 갈릴레이 본인의 선택일 뿐이다. 다윈의 연구가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듯이, 갈릴레이의 실험과 과학적 사고도 많은 후배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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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최고야!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71
토미 드 파올라 지음,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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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우리'가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는 최고야'라고 이해했었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을 때 제목이나 표지 그림을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 이 그림책에 대한 이해 없이 본다면 이런 오해를 하기에 충분하다. 원제를 살펴보니 'Oliver Button Is a Sissy' 이다. 아, 원제는 훨씬 더 직설적이네. '올리버 버튼은 계집애다'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 아이의 이름은 올리버 버튼인데 '우리'로 번역이 된 것 같다.


'우리'는 어떤 아이일까? 원제를 통해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그림책을 넘기자마자 아이들이 '우리'를 여자애라고 놀린다는 사실을 밝힌다. 제목이나 시작 부분의 내용으로 볼 때, 일단 이 아이의 '다른' 성격과 특징이 문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자 아이지만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꽃을 좋아하고, 영화배우처럼 노래하고 춤 추는 것도 좋아한다. 아빠는 '우리'가 여자애처럼 집에서 노는 것이 싫다. 밖에 나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바란다. '우리'와 같은 남자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생물학적인 성이 '남성'이라고 해서 그들과 똑같아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얽매여 '인간'으로 보지 않고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것이 꼭 필요할까?


'우리'는 예술적 감성이 드러나고 민감한 아이이다. 이런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 것은 서로 힘든 일이다. '우리'는 탭댄스를 배우게 된다. 춤을 추는 일이 즐거워서 연습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 '우리'의 예술적 감성을 이해하고 춤을 출 수 있게 도와주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여자애'라며 놀림을 당하지만, 무대에 선 '우리'는 행복하다. 비록 대회에서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우리'가 대회에서 1등을 하고 영웅처럼 되는 결말이 아니기를 바랐다. '다른'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수하거나 성과를 내는 것'에만 국한된다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늘 놀리고 장난을 치던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참 예뻤다.


요즘 읽게 되는 그림책들을 보면 참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 같다. 과거와는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을 하는 모습을 본다. 어려서부터 '다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필요하다. 이 그림책은 그 역할을 잘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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