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데이의 촛불 - 양초 한 자루가 던진 질문 과학자처럼 2
달시 패티슨 지음, 피터 윌리스 그림,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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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3학년 이상 과학 그림책으로 지식그림책에 해당한다. 주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다. 글밥이 많지는 않지만, 어려운 용어도 있어서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라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다만, 그림이 있어서 이해를 도와주므로 용어에 얽매이지 말고 그림을 보면서 원리를 이해하려고 하면 도움이 되겠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과학 교육 강연인 영국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강연을 배경으로 하여 마이클 패러데이의 강연을 소개하고 있다. 1848년에 처음 강연을 한 <초의 화학사>는 1861년에 책으로 출간되었다. 마이클 패러데이는 책 제본사의 조수였는데 책 제본보다 과학책 읽는 데 더 큰 흥미를 느껴 실험 일기도 쓰고 다른 과학자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과학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관심이 호기심을 낳고 호기심은 또다시 즐거운 집중을 하게 한다. 우리가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이 재미있어하고 더 알고 싶은 영역은 시키지 않아도 집중하게 되고, 가르치지 않아도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마이클 패러데이 역시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잘 살려 공부를 하였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과학책을 썼다.

"여러분 이 초 한 자루에 어떤 과학이 담겨 있을까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 새로운 결과가 나올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그 원인은 뭘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런 의문을 가져야 시간이 걸려도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촛불 하나를 보면서 초의 재료는 무엇인지, 모세관 작용이란 무엇인지, 공기의 흐름에 따라 불꽃의 모양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패러데이의 질문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우리가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과학 지식을 알게 된다.

#패러데이 #초등저학년과학책 #과학그림책 #지식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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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소리 스콜라 창작 그림책 30
정진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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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호 작가의 《심장 소리》를 읽었다. 


아이는, 달린다.

일 등을 하려고 달리는 것도 아니고

공을 잡거나 살을 빼려는 것도 아니다.

달리기마다 많은 이유가 있듯이

이 아이가 달리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아이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그제서야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아이는 달리기를 한 후 만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개인 SNS를 사용하다 보면 1년 전, 5년 전, 10년 전, 혹은 무려 14년 전의 게시글이나 사진을 보여 주며 과거의 나를 추억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오래전 작성했던 일기장이나 주고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남긴 기록을 통해 기억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장면들, 거기서 나던 냄새, 귓가를 간지럽히던 소리들, 내 손에 느껴지는 감촉들. 그런 것들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왜 달리는 것일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에 이르러서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품에 안고 있었던 그 긴 시간이 떠올랐다. 이 그림책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독자인 나는 과거로, 기억 속으로 그렇게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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떴다! 배달룡 선생님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저학년) 신나는 책읽기 61
박미경 지음, 윤담요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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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으로 초등 1~3학년에게 적당한 글밥책이다. 표지 그림을 보니 배달룡선생님은 어린이의 모습을 한 귀여운 선생님이다. 한 손에는 딱지를 한 손에는 사탕바구니를 들고 있고, 넥타이에 그려진 스마일조차 배달룡 선생님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린이책의 삽화는, 그림책과는 또 달라서 이야기의 분위기와 상상을 조금 제한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배달룡 선생님의 이미지가 그러하다. 어찌되었건 배달룡 선생님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앞 이야기에서 배달룡 선생님은 어렸을 때 '학교 짱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물론 우리는 이미 '짱'이 주는 부정적 이미지에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서 아이들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짱"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꿈을 드디어 이룬다. 햇살초등학교의 교장이 된 것이다. 처음 학교에 가서 교장실에 앉아 사탕 하나를 빨던 배달룡 교장선생님은 쉬는 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딱! 딱! 딱!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교실배치도를 확인하던 선생님은 교장실 바로 위가 1학년 교실임을 알게 된다. 1학년은 가장 용감하면서도 가장 잘 우는 학년이기 때문에 배달룡 선생님도 쉽게 건드릴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까?

배달룡 선생님은 학교 앞에서 광고지를 받아서 딱지를 접는다. 쉬는 시간이 되자 1학년 교실로 달려간 선생님은 아이들과 딱지치기를 한다. 이긴 딱지는 가져오고, 진 아이에게는 사탕을 나눠준다. 배달룡 선생님의 첫 해결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는 배달룡 선생님이 학교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어렸을 때생각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잘 이해하는 짱이 된 배달룡 선생님은, 해결 방법도 남다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수진이의 특기를 알아봐주고, 맛이 없는 학교 앞 가게의 메뉴 레시피도 알려주고, 다문화가정의 어린이와 (자칫하면) 학폭으로 연결될 수도 있었던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많은 선생님들이 배달룡 선생님처럼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을 보면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비슷하다고. 그러니까 초등학교 선생님은 초등학생 같고, 중고등학교 선생님은 중고등학생 같은 느낌. 매일 같이 있는 사람들과 닮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교 선생님이 무섭고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도, 학교 선생님과 친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아이들에게도 '배달룡 선생님'같은 분을 만나는 일은 행운일 터이다. 학생들의 진로를 걱정하고 함께 고민해 주는 선생님, 학업이나 학교 생활에서 불편이나 어려움을 제거해주려고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많은 학교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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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학 (10만 부 기념 골드 에디션) -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
모건 하우절 지음, 이지연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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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심리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로널드 제임스 리드와 리처드 퍼스콘이라는 사람의 일화를 비교한다. 잡역부이자 주유소 직원이었던 로널드 리드는 92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순자산이 800만 달러가 넘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이 번 얼마 안 되는 돈을 저축했고 우량 주식에 투자를 했으며 수십 년간 기다렸다. 또다른 한 사람 리처드 퍼스콘은 40대에 이미 자선사업가가 되어 이름을 날렸으나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파산했다. 로널드 리드는 인내했고, 리처드 퍼스콘은 탐욕을 부렸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인생에서 교육과 경험으로 생긴 엄청난 격차를 무색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는 금융 성과가 지능, 노력과 상관없이 운에 좌우되며, 금융은 아는 것보다 행동이 중요한 소프트 스킬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소프트 스킬을 돈의 심리학이라 부르며, 이를 통해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들의 투자 의사결정은 본인 세대의 경험, 특히 성인기 초기의 경험에 크게 좌우된다. 모든 금융 의사결정은 판단을 내리는 그 사람만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타당하게 내려진 의사결정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부를 만들어내는 것과 부러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충분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재미가 없다. 행복은 결과에서 기대치를 뺀 것을 말한다. 내가 가진 게 주변 사람들보다 적더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충분하다'는 것은 그 반대로 했다가는 후회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명성, 자유, 독립, 가족, 친구는 귀중한 것이다. 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일, 행복도 귀중한 것이다. 이것들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리스크를 언제 멈춰야 할지 아는 것이다. 즉 내가 '충분히' 가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워런 버핏이 부를 쌓은 과정을 다룬 책은 2,000권이 넘지만 그렇게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냥 훌륭한 투자자여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훌륭한 투자자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버핏의 성공을 투자 감각 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성공의 진짜 열쇠는 그가 무려 75년 동안 경이로운 투자자였다는 점이다. 그의 재주는 투자였지만 그의 비밀은 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복리의 원리다.(p.90)

부자가 되고 싶은가? 저자는 부자로 남는 방법은 겸손함과 편집증이 어느 정도 합쳐져야 한다고 말한다. 돈을 버는 것은 버는 것이고, 유지하는 것은 별개다. 돈을 버는 것에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낙천적 사고를 하고, 적극적 태도를 갖는 등의 요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을 잃지 않는 것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재주를 요한다. 겸손해야 하고, 또한 돈을 벌 때만큼이나 빨리 돈이 사라질 수 있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번 돈의 적어도 일부는 행운의 덕이므로 겸손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p.103~104) 투자든, 커리어든, 사업이든 상관없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능력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복리의 원리가 빛을 발하려면 자산이 불어날 수 있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내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있다는 게 돈이 주는 가장 큰 배당금이다. (p.139)

돈이 가진 가장 큰 가치는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독립성과 자율성, 그리고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질 수 있다. 어느 정도의 부는 내가 아플 때 빈털털이가 되는 일 없이 며칠 일을 쉴 수 있다는 뜻이다. 부가 그보다 조금 더 있다면 해고가 되더라도 좀더 기다릴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은 일자리에 어쩔 수 없이 취업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자리를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이다. 6개월 치 비상자금이 있다는 것은 상사가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새 직장을 구하느라 좀 쉬더라도 별일 없이 지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부가 있다는 건 월급이 좀 낮더라도 시간 조정이 자유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필요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은퇴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141~142 요약)

'부'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이 문장들이 직관적으로 탁 와닿았다. 나는 지금 현재 어느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는가? 앞서서 말했던 '충분함'을 생각하면 나는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도...

옛날과 비교하자면 부나 소득이 현저하게 증가했지만, 더 행복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오히려 더 많은 걱정과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말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우리가 많아진 부를 더 크고 더 좋은 물건을 사는 데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포기하고 있다. 부는 많아졌지만 자유로운 시간은 줄어들었다.

오늘날에는 1950년대의 제조업 노동자보다 머릿속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과거에는 일이 끝나면 도구를 직장에 두고 왔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머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앞선 세대에 비해서 시간에 대한 통제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처럼 보인다. 나의 시간을 마음대로 쓰는 것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정 수준의 소득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저축을 하는 사람, 자신이 저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저출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갈린다. 부를 쌓는 것은 소득, 투자수익률과 거의 관계가 없다. 저축률과 관계가 깊다. (p.172) 투자 수익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지만 결과는 늘 불확실성 위에 놓여 있다. 저자는 개인의 저축과 검소함은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부분이고 확실하다고 본다. 소득이 높지 않아도 부를 쌓을 수 있지만 저축률이 높지 않고서는 부를 쌓을 가능성이 없다. 여기에는 앞에서 말한 '충분함'이 또 전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적은 돈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상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축은 돈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욕망을 줄이면 돈도 덜 쓸 수 있다. 성공적인 투자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 대가는 변동성, 공포, 의심, 불확실성, 후회를 지불해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나는 부자가 아니지만, 나의 '충분함'을 고려할 때는 어느 정도 '부'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적지만 소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책은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를 묻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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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 아이 장애공감 어린이
뱅상 자뷔스 지음, 이폴리트 그림,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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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혹은 만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묘한 감동이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느꼈다. 처음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을 때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숨을 참는 아이"라는 제목은 이 책을 선택하는데 별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원제가 Incroyable 인 것 같은데... 굳이 이런 제목으로 바꿨어야 하는지... 벨기에문학상 만화 부분에서 최고작품상, 브뤼셀 국제 만화축제에서 그래픽노블 최고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그래픽 노블 최종 후보로도 올랐다.

어쨌든 이 책이 나의 눈길을 끈 건 바로 아이가 있는 공간 때문이다. 서재일까? 아니면 도서관? 우리는 책장을 넘겨서 루이의 방문을 연다. 특이하게 시작부터 막이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1983년 가을, 사람들이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 벨기에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아,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마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들리다니... 나의 기억 속에 카세트테이프는 음악을 듣고 음악을 녹음하던 훌륭한 미디어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 속 배경은 1980년대이다. 벨기에는 3개 국어를 쓰며, 국왕이 있는 나라이다. 루이는 이곳에 사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평범하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누군가 먹고 버린 바나나 껍질처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 루이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P.6) 체호프가 "무대 위에 권총이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을 쏜다."고 말한 것처럼.

루이는 열한 살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조잘조잘 떠들고 놀아야 할 나이의 루이지만, 학교에서도 는에 띄지 않으려는 듯 움직이고, 도서관에 푹 파묻혀 책을 읽으면서 오로지 혼자 있을 수 있는 집에 갈 시간만 기다린다.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며 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루이. 코를 세 번 톡톡톡 친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없는 아이처럼 군다. 일생 생활에 하나하나 점수를 부여하고 그 점수를 계산한다. 엄마 생각을 안하면 200점, 하얀 선을 밟지 않고 건너면 60점, 정해진 시간 안에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500점을 넘기기 위해 이런저런 행동을 반복한다. 루이의 이런 행동은 '강박적인 반복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집으로 가면 루이는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카드 기록하기. 갖가지 정보들을 작은 카드에 기록해서 주제별로 모아두는데 이 카드만 해도 무려 1500장이 넘는다. 루이의 카드함은 도서관의 대출카드보관함과 똑같다. 루이의 방은 하나의 도서관이다.

조금 '독특한' 루이는 벨기에 국왕과 친하다. 이 벨기에 국왕 필리프는 루이의 머릿 속에 살고 있다. 물론 필리프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뭐랴고? 머릿속이나리.... 아냐...인졍 못 해!"(P.24) 루이와 필리프는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다. 늘 루이 옆에서 함께 하는 친구.

물론 가끔 조상님 유령들이 나타낼 때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때도 있다. 루이는 언제나 형편 없는 녀석. 멍청한 녀석, 어디서든 대장이어야 한다고 다그침을 당한다. 점점 더 크게 루이를 위협하지만 필리프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루이는 "저리 가! 넌 그냥 내 머릿속에 사는 바보 장난감이잖아!"(P.33) 라며 화를 낸다. 그래도 필리프는 가만히 루이 옆에 눕는다. 루이는, 그렇다. 아픈 아이다. 마음이 아픈 아이다. 매일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사는데 어떻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루이는 반 아이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 일주일동안 아주 열심히 자료를 준비했지만, 평소 루이의 관심을 끌던 주제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주제를 골랐다. 왜냐면 눈에 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아주 우연히도 진드기 한 마리 때문에 루이의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맨 앞에서도 말했지만, 무대 위에 등장한 어떤 것이든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드기일지라도 말이다. 학교에 늦어버린 루이는 허둥지둥 달려가지만 발표자료를 집에 두고 간다. 발표 자료가 없는 루이는, 자기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주제에 대해 원고 없이 발표를 시작한다. 늘 있는 듯 없는 듯 눈길을 받지 않던 아이였는데, 루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로 발표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루이에게 집중한다.

루이는 어쩌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살게 된 걸까? 좋아하는 주제를 신나게 이야기하던 루이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온 루이와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 그렇게 신나게 발표를 한 루이도 하늘을 날아갈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물론 나머지는 평소와 똑같았다.

루이는 혼자서 집을 떠난 적이 없지만 새로운 주제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숨소리만 들리는 전화를 오늘도 받았지만, 루이는 다 잘 될거라며 길을 떠난다. 아빠가 역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오늘도 아빠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엄마의 유골함을 늘 곁에 두고 있는 루이는 길을 떠날 때도 가방에 넣어서 간다. 루이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없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순간 다시 조상님 유령들이 나타난다. 우울중, 불신, 자기비하... 루이의 의지를 꺾는 수많은 소리들.

발표대회를 무사히 끝내고 난 후, 루이는 여전히 강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지역 발표대회에서 잠깐 생기를 되찾았던 루이가 우연히 다시 전국 발표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용기를 얻는다. 구겨 던져 놓은 발표 자료도 다시 꺼내고, 그동안 들어가보지 않았던 엄마의 서재에도 들어간다. 엄마 사진도 보고, 아빠의 편지도 본다. 엄마 아빠가 없었더라면 루이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리고 보려고 하지 않던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루이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점점 루이에게 빠져 들었다. 조금 독특한 행동을 하고, 남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살아가는 루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생기가 넘친다. 자신을 옭아매는 조상님 유령들도 혼자서 통제할 수도 있는 아이다. 7막에 이르면 루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왜 루이가 그렇게 강박에 갇혀 살고 있는지, 늘 들고 다니는 엄마의 유골함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필리프는 왜 루이 옆에 있는지....

루이의 마음을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루이 곁에서 루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야 했지만 아빠는 그러지 못했다. 외삼촌을 통해, 그리고 학교 선생님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때로는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이 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나를 믿고 이해해주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훨씬 가까워질 수 있다. 한 걸음 내 딛는 그 걸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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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4-1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서재에 들어왔더니 읽고 싶은 책이 마구 눈에 들어오네요.
이 책도 그 중 하나.
표지 그림에 빈틈 없는 책들, 그리고 아래에 광활한 우주가 함께 그려져 있어요.

하양물감 2022-04-14 15: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그래픽노블이라 별 기대없이(이 장르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제 달라져야할듯요) 봤다가 감동받은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