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늘 속 파람 그리고 별, 1997

저자 : 박무직

출판 : (주)서울문화사

작성 : 2009.03.01.



“내 마음 속의 별은 어디에 있는가?”

-즉흥 감상-



  심심할 때마다. 그리고 근심걱정을 뒤로 풀기위한 장소를 들를 때마다. 도대체 몇 번이나 손에 들었었는지 세기를 포기해버린 ‘읽기’가 있었음을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중 하나로 제가 좋아하는 만화작가의 작품에 대해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작은 우물 속에 살고 있던 작은 개구리공주가 있던 어느 날. 그녀의 우물 안으로 두꺼비가 하나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으로 우물 바깥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하늘 속 파람 & 별]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인도의 어느 고대 유적지를 방문하게 된 한 여인이 경험하게 되는 시공의 초월인 [수트라], 어느 날 팔이 길어지는 병에 걸린 한 남자가 경험하게 되는 실연의 슬픔과 새로운 사랑 [별에 닿는 팔], 우주여행으로 인한 시간의 상대성으로 이별하게 된 한 쌍의 남녀 [LTU], 밥이라면 목숨이라도 걸 듯한 ‘마쉬맨’이 언젠가부터 ‘미래’라는 이름의 처자를 좋아하게 됨에 어쩔 줄 모르고 [마쉬맨은 미래양을 사랑합니다], ‘전사의 램프’를 탈취하여 인간계로 도망친 요정공주님의 엄마 찾아 삼만리 [엄마가 보고 싶어], 별을 팔고 있는 한 마녀와 어린 시절 그녀를 처음 만나 자신의 명이 다할 때까지 별을 사게 되었던 한 소년의 이야기 [전설의 밥],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사랑하던 아빠가 얼굴한번 본적 없는 엄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아빠 미워!!”를 선언하게 된 공주를 달래기 위한 임무 [미미르], 영원한 빛의 밝음으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 소년과 컴퓨터 [Night] 와 같은 이야기가 있게 되는군요.



  앞서 소개한 적 있던 ‘TOON, 1998~2000’ 이라는 작품을 통해 좋아하게 되었던 박무직이라는 만화가의 작품에 이어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면 좋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그리 많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 감히 팬이라고 까진 자신하지 못하겠는데요. 아무튼, 방금 요약한 줄거리만 보아도 아셨겠지만 이 책은 단편집이 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단편집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각각 이야기마다 있는 [작가 노트]를 통해서도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긴 하지만, 독자인 제 입장에서 이야기해보면 한 편 한 편을 통해 각각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생각되면서도, 전체를 통해서는 위의 즉흥 감상처럼 ‘별’을 떠올려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연상했다는 ‘별’의 이미지는 조용필의 노래 ‘모나리자’의 예로 들고 싶다는 것은 일단 넘기고, 음~ 뭐랄까요? 또 다른 세상의 동경에 대한 대상으로서,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대상으로서, 시간을 초월하는 모습의 은유로서, ‘스타-우상-’을 바라보는 용기 있는 자세로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기 위한 도전정신으로서, 자체로 별 따는(?) 이야기로서, 진실을 마주하려는 별똥별과 같은 자세로서, 꿈을 발견하기 위해서 등 조금은 억지 같을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별의 이야기’를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하신 것을 언제로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대학생활의 MT등 각종여행과 남자일 경우에는 군 생활을 대표적인 예로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한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골 어느 마을로도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해버렸음에 ‘칠흑’은커녕 그 무한으로 찬란하던 밤하늘의 기억이 그저 꿈결 같은 추억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되었는데요. ‘별자리’와 관련된 각종 신화까지 그저 그림책을 통한 이야기 거리가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라도 시야 아니, 마음 하나 가득 별들 담아 보아야겠다 다짐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영화를 통해 인식하게 되었던 ‘오리온좌’는 일단 넘기고서라도, 뱃사공과 지표에 대해 말할 때마다 자주 언급하던 ‘북국성’을 찾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함에 그것을 찾아보고 저의 소원을 걸어보겠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보는 바입니다.

 

 

TEXT No. 08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목 : 카지카 KAJIKA, 1998

저자 : 토리야마 아키라

역자 : 최현미

출판 : (주)서울문화사

작성 : 2008.12.08.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즉흥 감상-



  아아. 만날 작품은 너무나 많은데, 만날 시간은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아무튼, 화장실에 갈 때마다 수 십 번은 더 읽었었는데 감상문이 없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버렸다는 것으로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작품은 가파르기 짝이 없는 낭떠러지 위에서 유심히 사방을 살피고 있는 꼬리 달린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찾았다면서 뛰어내리더니 폭포를 마주하고 있던 도마뱀의 목숨을 구해내게 되는군요.

  한편, ‘용의 알’과 관련되어 무장한 남자들과 대치중인 소녀가 있게 되는데요. 10마리만 더 구하면 인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서 좋다가 슬펐다가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던 소년이 그런 소녀를 발견하고는 위기상황에서 구해내게 됩니다. 그리고는 여차저차 알이 처음 있었던 섬의 연구소로 배달하는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는군요.

  그렇게 뜻하지 않는 임무를 부여받아 여행길에 오르게 된 소년에게 그 알을 되찾아오기 위한 ‘해결사’가 한명 따라 붙게 되고, 소년의 여행은 뜻하지 않는 방해로 자꾸만 험난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세계 인류의 현상금 사냥꾼이자 어린 시절의 저주로 인해 여우의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소년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도 잠시, 멸종위기에 처해있던 용의 마지막 알이 부화되어버림에 이야기의 모든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지만…….



  사실 애니메이션 ‘DEATH NOTE Rewrite: 환시 하는 신 幻視する神, 2007’의 감상문을 작성하려 했지만, 최근 들어 컴퓨터의 상태가 악화되어버린 나머지 계속 멈춰버리자 일단은 ‘Death Note R2: L을 잇는 자 Lを繼ぐ者, 2008’을 보면서 짜증을 눌러 담았는데요. 그런 여파 때문인지 속이 안 좋아 화장실을 찾게 되면서 이번의 만화책을 집어 들게 되었습니다.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화장실에 가실 때 무엇을 들고 가시는지요? 요즘은 대여료도 아까우신 것인지 다운 받아보시며, 모바일PC의 발달로 PMP와 같이 들고 다니는 컴퓨터까지 생활화되고 있는 편이다보니 어떠실지 모르겠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집에 잔뜩 싸여있는 것이 만화책과 소설책이며, 화장실 입구에도 책장을 하나 만들어 만화로 보는 전례동화 같은 책을 따로 관리하고 있을 정도 이다보니 가끔은 화장실이 두 개있었으면 할 때도 있다는 것은 농담이고, 이런 환경이기에 알게 모르게 만화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감상문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에 이번과 같은 감상문을 작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번 작품은 만화책 ‘드래곤 볼 ドラゴンボール, 1984~1995’로 유명하신 토리야마 아키라 님의 한 권 분량으로, 훨씬 안정된 그림체와 짧은 듯 하면서도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우화식 유머가 담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종족 특성상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 이유 없이 늙은 여우를 죽인 대가로 저주를 받아 1000개의 목숨을 구해야만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주인공. 그리고 그런 소년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인간의 욕심이 부른 비극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질주하고 있었는데요. 만일 화장실에 들고 들어가실 것이라면 다른 가족 분들을 위해서라도 한창 분주할 아침 시간은 피해주실 것을 적극 권장해보는 바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밖으로도 이렇게 한 권 단위로 끝나는 토리야마 아키라 님의 작품이 몇 권 더 있었는데 어디 간 것인지 찾을 수가 없는데요. 최근 들어 유명을 달리하시는 작가님들의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는 바. 토리야마 아키라 님~ 요즘은 뭐하고 계시나요?

 

 

TEXT No. 08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목 : 도서관 할머니 이야기-이봉순 자서전, 2001

저자 : 이봉순

출판 : 금풍문화사

작성 : 2008.04.02.



“나는 역사의 흐름 속에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즉흥 감상-



  안 그래도 한번을 읽어봐야 겠다 생각하던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라는 단어 때문인지, 아니면 읽어야 할 다른 책들이 많았던 탓인지 그동안 보류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국내 도서관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나날이 커져가던 저는, 마침 학기 중 읽어야 할 목록에서 이번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음에 만나보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며,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합니다.



  책은 자서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가도, 제자들의 요구에 고민을 하던 중 결국에는 집필을 하게 되었다는 ‘책머리에’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삼일 운동의 여파로 가세가 기울었다 말하는 집안의 증손녀로 태어나, 친가의 기독교와 외가의 유교문화권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간도 용정으로 학교를 옮기는 등의 진학 과정이 하나 둘씩 드러나게 되는데요. 계속되는 옛날이야기의 1차적인 종착지점으로 구 이화여전인 이화여대를 통해 맺어지게 된 도서관과의 인연이 말해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꿈과는 다른 배움의 장과 이어지는 유학의 기회를 통해 도서관 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격변을 통해 ‘도서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함으로 피나는 노력의 일대기가 보여 지게 되는데요. 그 밖으로도 수업 시간을 통해 조금씩 들어볼 수 있었던 한국 도서관의 변천사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진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으로 정신없이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에. 결론부터 적어 보아, 이런 자서전적 전기를 읽으면서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로 발을 들인 것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이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는데요. 덤으로 이런 기록 속에서 익숙하신 분의 성함이 언급됨에 그만 배가되는 감동을 받아버렸습니다. 바로 저의 지도교수님으로 지정되어 계시는 교수님의 성함이 언급되었던 것인데요. 이렇게 기록된 역사의 한 부분에서 언급되신 분이 바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기록을 읽어 들어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그저 영광이 아닐 수 없을 것 입니다.



  일단 흥분을 진정시키고 자리에 앉아봅니다. 저는 솔직히 ‘역사’라는 ‘기록’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역사란 힘 있는 자의 기록이다.’라는 선입견이 언젠가부터 저의 뇌리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발명왕 애디슨’의 이야기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니콜라 테슬라’를 말할 수 있음을, ‘니콜라 테슬라 TESLA : MAN OUT OF TIME, 1981’라는 책을 통해 어떤 사실에 대해 알게 된 시점으로부터 더 심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 만나본 책 또한 만남으로의 시간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데요. 이렇게나마 좋은 ‘역사 기록’을 만나볼 수 있었기에, 현재 시중에서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나! 일반 서점의 검색 장치에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그만 고함을 내지르고 싶어졌습니다!! 아무리 저 또한 ‘역사’에 대해 믿음을 버린 지 오래였다지만, 이렇게 그 당시의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는 멋진 기록이 존재하는데도, 거기에 도서관의 중요성이 나날이 부각되고 있는 중인데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는 이 기록의 모습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실천해야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한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You've GOT to Read This Book, 2006’이라는 책을 읽다보면, ‘크게 생각할수록 크게 이룬다 The Magic of Thinking Big’라는 책의 언급을 통해 ‘희망 목록’이라는 것의 작성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 사례를 접해 볼 수 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그런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됨으로서 그동안 불가능하다 생각된 어떤 ‘한계’를 하나하나 무너뜨리게 되었던 실질적인 예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물론 전부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이젠 더 이상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저 또한 취업을 앞두게 된 시기에 살아가고는 있다지만, 어째서 모든 학문의 목표지점이 ‘공무원’이 되어버린 것인지, 집에서건, 친구들이건, 아는 사람들이건 전부다 정신 차리라고 말하며 제가 가진 꿈에 대해서는 일말의 희망에 대한 이론보다도 일단 하나같이 ‘불가능’하다고만 의견을 제시하는 모습을 통해, 오히려 저보고 너무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역설을 듣고 있다는 판단이 서자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았는데요. 아아. 다시 고등학교 때 마냥 자칭 왕따를 선언하고 세상과의 단절을 행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으흠. 이번에는 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또 흥분해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물 한잔 마시고 위의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하는데요. 이 책에서도 지난 시절의 도서관에 대해 ‘공부방’으로서의 인식에 대한 언급이 나오며, 그토록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공부방’의 인식이 여전한 현재의 도서관 실태를 발견해볼 수 있었음에, 이런 역사적 기록을 통해 현재의 재 별견이 필요하다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끊이지 않는 전쟁이라는 시대의 혼란 상황 속에서 무에서 유를 창출해대듯 도서관 체계가 구축 되었다면, 현재는 정채성의 혼란을 통해 질서가 뒤죽박죽이라 판단이서는 고로, 국내 도서관의 취지를 다시금 분석 평가하여 올바른 방향으로의 탐색이 필요하다 인식하게 되었는데요. 비록 ‘인턴’으로서 ‘노동’에 가까운 모습으로 동네의 공공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기증’을 핑계 삼아 대구시립 공공도서관들을 돌아봤던 저의 입장에서는, 이론으로만 배우는 도서관의 모습과 현실에서의 도서관이 보이는 많은 차이를 둘째 치더러도, 너무나도 국내 정서에서는 ‘말이 안 된다!!’고 고함을 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 와중에도 듣는 말이라는 것이 ‘네가 취직해서 도서관을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였는데요. 글쎄요. ‘조직’이라는 것이 ‘수직관계’라는 것은 군대만 갔다 와도 알 수 있는 법.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상은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2006’라는 책을 통해 만나본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의 사례를 참고하여 저만의 도서관 만들기를 추진하는 것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기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산출해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나, 우리나라가 자기 고집 센 민족인 동시에 남 따라 하기 좋아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국내 대학도서관에 적용될 ‘분류법’ 때문에 마음고생 많으셨던 저자분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세월을 따라 많은 것은 바뀌어도 민족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번에 읽은 ‘도서관 할머니 이야기’를 통해서는 한국형 도서관의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지는 바. 아직은 여유롭다는 느낌이 드는 4학년의 삶 동안 열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볼까 하는군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해라’고 많은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것을 해본 기억이 없는 저는, 또한 어린 시절동안 많은 다양한 체험을 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것이 현재의 저를 구축할 수 있었음을 부정 할 수 없는바. 어차피 남다른 인생을 살아왔기에 남과 같은 길을 쉽게 걸을 수 없게 되었다면, 차라리 저만의 길을 걷는 수밖에 없음을 이번 책을 통해 또 한 번 깨달아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인생의 멘토를 만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저 자신이 멘토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보았는데요. 일단은 즐거운 마음으로 잘 될 거라는 믿음으로서 하루하루를 열어봐야 겠다 다짐해보렵니다.



  그럼, 본문의 내용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을 마지막으로 기록을 마쳐볼까 합니다. 



“문헌 정보학에는 국적이 있다.”

 

 

TEXT No. 06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목 : 땅끝의 저주 hunter, 1996
저자 : 김선
출판 : 다솔
작성 : 2004. 9. 25.


   앞서 기록한 '아홉 번째 날'과 같이 구입한 작품입니다. 익히 아셨겠지만 제가 미스터리나 저주, 초자연적인 내용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물론 걱정하시는 것처럼 글자 하나 하나를 다 믿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나름대로의 삶의 지혜와 생애의 현상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지요. 일상은 무조건 똑바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만일'의 경우는 언제나 당연시되는 것을 뒤엎어버리니……. 가끔씩은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이런 류의 작품을 접하며, 또한 즐기는 것이랍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인 '땅끝의 저주'는 5개의 단편이 묶인 작품입니다. 어느 한 이야기를 기준 잡아 적어 볼까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저는 다 흥미 있게 읽어서 말입니다―어느 하나를 딱 꼬집기가 죄송하군요.
   뱀과 뱀을 잡은 땅꾼과의 이야기, 영생을 위한 담비―괴와 사람간의 이야기, 황금 멧돼지와 사람의 욕심 그리고 보답, 붉은 새치 늑대와 사람의 탐욕, 범과 사람의 연. 이렇게 사람과 동물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마치 권선징악이 뚜렷한 현대판 동화를 읽는 기분이랄까요? 특히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특수한 사건만을 전담하는 김 형사의 등장으로 동물과 인간과의 저주와 음모 등을 파헤치는 내용이, 마치 한국형 X-file을 보는 것만 같아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전설, 민담, 괴담. 예전에 찾았던 환상문학의 정의를 저는 앞의 세 가지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따지자면 이번에 읽은 작품은 그 세 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군요. 다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람과 동물의 유대관계를 상실해 자연의 균형이 깨지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말입니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예전에 신문에서 연재되었던 동물 관련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제목이 '신비한 동물 이야기'인지 '신기한 동물 이야기'인지 그랬던 거 같은데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군요. 지금 감상문을 기록하는 곳이 집이라면 수납장 어느 한구석에 있는 스크랩이라도 찾아 볼 것인데 말입니다. 그것도 이 작품처럼 동물과 사람―특히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인 무대에서 밀렵꾼과 동물의 이야기가 많다―과의 이야기가 가득했었습니다.


   기계화, 도시화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 자연의 지배자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진 인류. 무한의 은혜이자 모든 것의 어머니인 자연을 파괴시키는, 그리고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자연과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선조 들의 지혜를 무시하며, 오로지 앞만 보며 새로운 문명에만 빠져들 줄만 아는 자들. 우리 인류 또한 자연 앞에서 한낮동물일 뿐인데 우리들은 이 모든 것의 주인인양 살려는 것인지 원…….


   인류는 과학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도道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만을 봐왔기에 정작 인과의 법칙을 잊어버렸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본디 동양철학은 모든 것의 융화와 공존을 말하는데 왜 그것을 무시하기 시작했을까요?


   상부상조하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래도 신기한 것이 한국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 세계 각지의 종교가 섞여있어도 종교전쟁, 분쟁 같은 것이 그리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나름대로 무의식적으로라도 상부상조―공존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로부터 조상 님들은 동물과 공존하며 살았습니다. 그 어느 것도 완벽할 수 없었기에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렇다보니 옛날이야기에 보면 동물과 인간사이의 은혜 갚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반대로 서로에게 저주를 내리는 이야기도 없지 않아있지만요.
   은혜는 은혜로 갚고, 복수는 복수로 갚는다. 공존의 혜택을 저버린 인류는 과연 이 지구상에서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의식치 못하게 자연으로부터 수많은 은혜를 입으면서까지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는 인류라…….


   '땅끝의 저주'에는 작은 마을단위로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지만. 글쎄요? 이런 이야기가 전 세계적인 것이 되어 동물들의 대 반란이 된다면 인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듯한 마을 전설 같은 이야기. 이렇게 이번 감상의 기록을 종료하는 바입니다.


TEXT No. 00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목 : 미녀와 야수 Beauty and the Beast, 1989

저자 : 바바라 햄블리

역자 : 정성호

출판 : 열림원

작성 : 2002.02.27.



수중에 있는 돈은 오천 원. 헌책방에서 약간 두껍다 싶은 것은 삼천 원으로, 보통은 이천 원이면 한 권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의 원작이자 법정 소설로 유명한 작가인 존 그리샴 님의 책을 사고 싶었기에 헌책방을 들르게 되었는데요. 작가님의 책을 일단 두 권 뽑아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리저리 복잡하게 섞인 모습을 자랑하는 책들을 살펴보니, 아닛!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입니까? 몇 년 동안 찾다가 포기했었던 추억의 책이 저의 시야에 포착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떨리는 손, 떨리는 몸, 거기에 온 마음이 떨려버렸기에 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아버렸습니다!!


제 기억이 옳다면 이 작품은 초등학교 때쯤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외화드라마 중 하나였는데요. 맨하탄 지하도시에 사는 반은 사자 반은 인간인 야수 ‘빈센트’와 지상에서 사는 미녀 ‘캐서린’이 주인공인 이야기입니다. 화면상의 빈센트의 모습은 ‘인자함’과 ‘부드러움’ 그 자체로, 드라마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고 사진 같은 화면과 그 당시에 느꼈던 감동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는데요. 아무튼, 중학생일 당시 읽었던 원작 소설을! 헌책방에서도 포기해버린 그 책이 제 앞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방금 짧게 서술했지만 그 내용을 좀 더 적어보겠습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의 과보호 속에서 반발심과 함께 성장해온 캐서린. 하지만 성인임에도 아버지 아래에서 법률 사무소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조금씩 그 사이가 벌어지고 있던 애인인 톰과의 생활은 잠시. 어느 날, 납치를 당하는 캐서린은 센트럴 파크에 버려지게 되면서 '죽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구해주는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빈센트. 그녀는 치료를 받으며 맨하탄 지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버려지고 역시 세상을 버린 사람들의 집단을 알게 되는데요. 10일 동안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고 지상으로 복귀하게 되는 그녀는 아버지에게 독립을 선언하고는 지방검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사건을 역 추적해 나가기 시작하는데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빈센트와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사건의 진상이 하나 둘씩 밝혀지려 하지만, 그 사건과 관련된 자들이 연이어 죽음을 마주하게 되더니 이번에는 그녀 자신이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아아. 너무 캐서린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지하 도시로 시점을 옮겨, 캐서린이 떠나고 빈센트는 이제껏 알지 못한 감정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떠나보낸 그녀를 느낄 수 있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런 변화된 삶에 놀라는 것도 잠시, 지하도시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바로, 펌프의 고장으로 지하도시가 침수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었는데요. 최소한의 인명피해는  뒤로, 다시 보수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 지하도시여 영원하리라! 한편, 보수작업을 열심히 돕던 빈센트는 본능적으로 캐서린의 위험을 감지하고,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데…….


흠~ 너무 정신없이 내용만 말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제가 싫어하는 멜로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적으로 다시 만들어진 고전 ‘미녀와 야수’에, 파이프를 두드림으로서 신호이자 대화를 나누며, 지상의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를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만, 연속극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장면들의 잔상 때문일까요? 너무나도 이색적이면서 낭만적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이야말로 대단한 힘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요. 육체적인 것을 초월한 정신적인 사랑.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이란 말입니까? 그런 한편으로는 ‘독립의 정신’을 말할 수 있겠는데요. 지하도시의 젊은이들이 지상으로 나가려 하는 것과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캐서린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 그것의 정의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요? 이 물음에 대해 작품은 위험하지만 아름다운 하나의 우화를 보여주는 듯 했는데요. 제 기록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하시렵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TEXT No. 00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