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책이라 의무감에 다 읽었고, 그냥 그랬다. 여러 인물들이 대부분 대립항으로 단순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나, 화자가 자신은 마치 입체적으로 세계를 관조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소설 내내 다른 인물과 그의 삶에 대해 자꾸 단정짓고 어떤 사소한 일이 그의 인생에선 최대의 아픔이었을 것이라느니 하는 재판관 같은 태도가 거부감을 일으킨다.

다시 말하면 작가가 인물들을 평면적이고 전형적으로만 그린지라, 거기다 쉽게 단정해버린 삶으로 인물을 그리고 그것을 반복하는지라 읽다 보면 지루하다. 화자가 내 아픔이 크니 그저 맑아보이는 타인의 아픔은 축소시켜도 된다는 태도를 거듭하는 게 열패감 때문이라면 오히려 이해하겠지만 작가가 그것까지 의도한 것 같진 않고, 그게 작가의 생각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해 잠언처럼 얘기하는 부분도 거의 공감이 안 가는지라, 그저 가슴 찌르르함을 선망하던 안진진의 나이에 읽었다면 이 책을 좋아했을지도.. 모순 출판 당시 유행했던 쿤데라 냄새도 난다. 그리 비슷하진 않지만.

결말도 소설 내내 작가가 열심히 아주 깔끔하게 그려놓은 평면적 이분법의 세계를 붕괴시켜 새로 조립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세계관 그대로 방치한 채 끝을 내니 찜찜하고, 이게 뭐지 싶다.

나의 상처와 열등감을 설명하기 위해 무결한 삶을 사는 타인을 가상에 띄우고는 그것을 부정하여 ‘열등한‘ 내 삶을 긍정하는 소설로 읽힌다. (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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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녀의 의지가 강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심성이 매우 여린 여자였다. 그래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상황에 이끌려 다닌 적이 많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올바른 사회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회는 몽둥이로 머리를 박살 내듯 순식간에 여자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났고, 자신이 마치 공중으로 던져졌다가 떨어지면서 포석의 튀어나온 모양에 따라 앞뒤가 결정되는 1짜리 동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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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을 극복하고 난 뒤에 오히려 발병하기 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그들은 평생 술을 마실 수 없다는 한 가지 불편함을 얻은 대신에 훨씬 더 많은 이점이 생겼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성찰하고 수양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단점과 결손이 있어도 그냥 그대로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 채 본성대로 살다 인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마음속 번뇌와 고통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고 만다.
단주의 과정은 자신의 문제를 숙고contemplation하고 성찰하며 마침내 변화를 도모하는 위대한 역사와 같다. 그 역사를 이룬 사람이 한 번도 변화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보다 못한 삶을 살 이유가 없다. 훨씬 더 윤택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이때 알코올중독은 마녀의 저주가 아닌 신이 주신 선물로 우리의 기억에 남게 된다. 발병하기 전의 상태로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긍정적인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81)

중독자에게는 미래 역시 몇 년이 아닌 순간의 개념으로 변해버린다. 몇 년 뒤까지 고려한 가정, 건강, 직업에 대한 계획은 막연하다.
몇 분 뒤에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이 편해지는 방법, 즉 술을 마시는 것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익숙한 미래의 모습이다.
단주를 할 때 시간을 쪼개어 대응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즉
‘오늘 하루만 생각하기‘와 같은 방법을 쓰는 것이다.
"오늘까지만 마시고 내일부터 마시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중독자를 유혹하는 가장 흔한 중독성 사고다. 중독자에게 내일은 없다. 중독자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술을 끊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술을 끊었던 과거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며 얻는 위안이나, 오늘이 지나고 내일 술을 참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행동을 계획하고 실천하느냐가 회복과 악화를 가름한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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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은 좋았는데, 이 에세이는 중반 이후부터 지나치게 반복된다(특히 [드링킹]을 읽었다면 더더욱). 같은 생각을 기반으로 어제 있었던 일,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다 풀어놓아 지치는 수다를 듣는 느낌이다.

지금의 내가 읽기에는 이미 아는 내용도 많다. 20대 여성들에겐 꽤나 통찰력을 가진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끔씩 은밀하게 비치는 그녀의 지나친 자의식과 나르시시즘, 불안정 애착, 기질적 우울이 독서에 제동을 건다. 내게 캐롤라인 냅은 2권이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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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도 걱정과 필요에 쫓겨서 그곳의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들여보내달라고 청하곤 했다.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가 내게 아무도 사귀지 않는 것은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때, 나는 혼자라는 상태에 절망하고 혼자 있는 것은 무섭고 열등한 상태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주말에 계획이 없다는 말에 친구 웬디가 불편해하는 것을 볼 때, 나는 한때 내가 아무 계획 없는 시간을 얼마나 겁냈는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내 안의 감정이 밖으로 나오도록 여유를 주는 일을 얼마나 어려워했는지 새삼 떠올린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만난 여자처럼 사람들이 ‘우리‘라는 단어를 수시로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 나는 마치 타인과 결부되지 않은 나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듯이 남들과의 관계로만 나 자신을 정의하려고 애썼던 고통스러운 시절을 떠올린다.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 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명랑한 은둔자, 49-50)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 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 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맑은 정신으로 애도하기,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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