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피의 위로 - 카페, 계절과 삶의 리듬
정인한 지음 / 포르체 / 2023년 8월
평점 :
"낯선 손님 중에서 나에게 대뜸 부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카페 이름이 '좋아서 하는 카페'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런 손님들은 대개 나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사는, 팔자 좋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카페 밖 풍경도 제법 그럴듯하다." - 프롤로그
따끈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놓이고 꼭 막혔던 가슴이 열린다.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면 언제나 향이 좋은 커피가 그리워진다. 그런 커피향이 좋아서 언젠가 카페 창업을 꿈꿨지만 먼저 창업한 주위 친구와 지인의 폐점 소식에 현실의 벽을 실감하며 뒤돌아섰다. 그래서인지 카페를 본업으로 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고 염려되는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스며든다.
율하 카페거리에서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정인한 작가의 <커피의 위로>는 담백한 문체로 카페의 희로애락을 풀어냈다. 10년 이상의 시간을 카페에 바치며 느낀 카페의 전반적인 노하우와 가게를 이어나가기 위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 그리고 바리스타 겸 사장으로서 겪게 되는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여러 인연들과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상실감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새로 오는 이에게 가벼운 마음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더 좋지 싶다.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보다 우리의 태도를 납득시키고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카페의 내부자가 늘어갈수록 카페를 둘러싼 껍질 같은 것이 조금씩 얇아지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한 것은 없어지고 어떻게 보면 본질인 장사꾼의 모습만 남게 될까 걱정된다." -p47
나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위해 보내는 시간은 갖고 있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아닌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긴 시간 집중하며 연마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긴 시간 동안 지킬 힘을 만들기 위해 섭취해야 할 영양소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다음에 오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상황과 사정에 따라 시작의 방법은 달라지겠지만, 첫 마음의 온도를 지키며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는 저자의 작은 바람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일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새로운 신입 사원을 맞이할 때도 온전히 진실 자체로 그 사람을 대하였던가, 상대의 배경이나 처지를 저울질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내 합리화가 우선시 된다. 누군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기를 소원할 뿐이다. 감성에 빠진 내가 때때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를 하더라도, 사회윤리와 관습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인간이니까,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독백하듯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도 돌아서서 그 말을 괜히 했어,라고 후회하지 않아도 될 사람, 옳고 그르다는 판단으로 나를 심판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 한 명만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다면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건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고,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고, 그리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이때. 나잇살에 붙은 군살은 굳은살로 바뀌어 단단해지고 있다. 불안함은 초연함으로 바뀌고, 유약함은 유연함으로 바뀌어 간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감사이자 목표인 나이를 나는 지나고 있다. 여전히 꾸미지 않은 얼굴로, 가벼운 옷차림에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찾으면 다 있는 풍요. 엉키지 않고, 끊기지 않고 순조로이 돌아가는 일상. 용도에 맞는, 역할에 맞는 것들이 착하게 자리를 지켜 주는 안정감. 질릴 때쯤 새로운 것을 맛보게 해주는 설렘. 그런 여벌의 것들이 있다는 여유와 사치에 감사한다. 지금 이대로 조금의 여유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