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 - 프로와 아마의 차이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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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로마제국이 천 년 이상 서양 고대사를 독점했지만 오도아케르가 누구인지, 로마는 어떻게 망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된 책이 없어서 항상 궁금했었다.

그 궁금증을 해결해 줄 책이 나타났으니, 바로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시시껄렁하게’사라지는 순간』이다.

참고로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시리즈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일생이 아닌 역사에 등장했던 순간 그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 최봉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김영사 편집장, 중앙M&B 전략기획실장, 랜덤하우스중앙 COO를 거쳐 웅진씽크빅,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프린스턴리뷰 아시아 총괄대표를 지낸 후 현재는 기업, 단체의 자문과 집필을 하고 있다.




Ⅰ 훈족의 영웅, 아틸라


혹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본 적이 있는가?

자연사 박물관 야간 경비원을 맡게 된 래리는 첫 날 밤 밀랍인형들이 살아 움직이는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중 한 무리들이 래리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들이 바로 훈족이며 그 중 대장이 바로 아틸라다.


흉노족이 무제의 정벌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목 생활을 하다 헝가리를 통해 유럽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유럽인들은 이들을 훈족이라 불렀다.

북쪽에서 남하하던 '야만스러운' 게르만족은 '문명스러운' 로마와 국경에서 잦은 충돌을 하면서 순화되고 또 일부 편입되고 있었는데 '더 야만스러운' 훈족이 동에서 서로 게르만족을 압박하며 들어온 것이었다.

로마국경에서 자리를 펴던 게르만족은 뒤에서,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훈족에게 떠밀려 다시 대이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유럽 대륙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훈족은 영웅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친형을 암살하고 훈족 11대 왕에 오르게 된 아틸라다.

이전 훈족 왕과는 달리 헝가리 일대에 흩어져 살며 고트족을 압박하고 동로마를 위협하며 금을 뜯는 데 그치지 않고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과 로마로 직접 쳐들어가기에 이르렀다.

훈족 왕으로서 서유럽 정복 활동을 펼친 것이 8년에 불과하니 서양인들에게 훈족의 아틸라는 '잔인한 파괴자'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동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어린 나이에 집권을 하게 된다.

7살 어린 나이에 즉위한 아들이 걱정되었던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앙숙 페르시아 황제에게 아들의 후견인을 부탁하게 된다.

위험하고도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이는 제대로 수용되었고 실제 재임 기간 동안 페르시아 황제는 동로마 침공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집권 말기에 환관 크리사피우스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페르시아 황제와 맺었던 커넥션도 깨지고 서로마를 지원해주겠다고 부대를 파견했다 참패를 당하고 만다.

이 때, 아틸라의 형 블레다가 이끌었던 훈족이 치고 들어와 많은 공납금을 요구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섭정에 익숙했던 황제는 머리가 깨질 지경이었다.

훈족의 공납금 요구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보니 크리사피우스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선택의 순간에 항상 해오던 방식대로, 자신에게 익숙한 패턴으로 사고하여 결론을 얻는다. 새로운 도전에 맞부딪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심지어 자신의 판단히 현실에서 엇박자를 낼 때도 곧, 다시 익숙한 패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현실을 왜곡하여 해석한다.


이렇게 생각했던 크리사피우스였지만, 아틸라는 달랐다.

아틸라는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를 떠나 세르비아, 불가리아를 거쳐 동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로 향하게 된다.

이 때, 내부 단속을 외부 전쟁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콘스탄티노플 코앞까지 다가온 아틸라는 섣불리 나서지 않고 성벽을 앞에 둔 채 인근 도시들을 휩쓸어 나갔다.

성벽에 갇혔던 황제와 신하들은 가타부타 할 새도 없이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치욕적인 조약을 맺는 것으로 전쟁을 마무리맺을 수 있었다.

유럽 전역은 그야말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민족에 의해 로마제국이 무너질 수 있음을 직면했으며 단순히 황금만 뜯는 것이 아닌 제국 전체를 삼켜버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백척간두 진일보, 백 척이나 되는 긴 장대 위에 서서 허공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딛기는 쉽지 않다. 백 척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상 때문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허공을 향해 한 발 내디딘다.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시공간이 바뀌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지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한 발 더 내딛지 않으면 끝내 모를 차원이다.




Ⅱ 비겁한 시간의 권력자, 오도아케르


천년 제국 서로마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이다.

게르만족 출신의 서로마 장군인 리키메르는 아리우스파라는 이유로 황제에 오를 수 없자 실권을 장악해 무려 17년 동안 꼭두각시 황제를 내세워 권력을 잡았던 인물이다.

그가 폐위시킨 황제만 해도 4명이다.

아비투스는 루비콘강을 건너 황제에 올랐지만 리키메르 반란군과 전투에 패하여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리키메르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던 마요리아누스는 반달족 정복에 실패하고 귀국하던 길에 리키메르의 기습을 받아 살해당하게 된다.

세베루스도 리키메르의 의해 독살당했고 안테미우스는 새 황제를 옹립한 리키메르의 공격을 받아 거지로 분장해 성당에 숨어들어갔지만 결국 참수당하고 만다.

각 황제들의 재임기간은 이렇다. 아비투스는 1년 3개월, 마요리아누스는 4년 4개월, 세베루스는 3년 9개월 그리고 안테미우스는 5년 3개월.

황제도 아닌 실권자에 의해 네 명의 황제가 살해당하고 폐위당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즉, 그는 제국의 위엄과 황제의 권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권력만이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후 리키메르는 안테미우스를 참수한 지 40일 만에 급사했다고 하는데 자연사한 것인지 독살당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리키메르가 죽고난 뒤, 권력을 잡은 이는 오레스테스였다.

오레스테스는 아틸라에게 자신의 딸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했던 인물로, 로마 약탈자의 장인이자 심복이었다.

리키메르가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면 오레스테스는 잔머리 하나로만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셈이다.

황제의 자리는 아니었다. 황제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만 어린 아들을 황제로 대신 내세웠는데, 그가 바로 서로마 제국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다.

그러나 권력을 쥐었어도 내리막길 걷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오레스테스가 잔머리를 굴렸지만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쿠데타가 일어났고 오레스테스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다.

당시 게르만족 용병 국경 수비대 지휘관들이 추대했던 인물이 바로 오도아케르 장군이었다.

무혈 입성에 성공한 오도아케르 장군이었지만 로마인이 아니었기에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순 없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살해하고 다른 이를 올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는 로물루스가 스스로 퇴위하도록 조건을 제시했고 어린 로물루스는 스스로 황제 자리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스스로 황제에 오르지도 못한다면 황제를 새로 옹립해야 하는데, 오도아케르는 이를 공석으로 만들어버렸다.

즉, 서로마 제국에 황제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때 오도아케르는 동로마 황제인 제노에게 자신의 실권 승인을 요청하게 되고 제노는 그에게 총독에 해당하는 호칭을 하사하며 이탈리아 국왕으로 임명하게 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적당한 지위였다.

결과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사라졌으니 서로마 제국의 문패 또한 사라진 셈이 되어버렸다.

당시 오도아케르는 이와 같은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제국은 이렇게 멸망했다. 야만족이라도 쳐들어와서 치열한 공방전이라도 벌인 끝에 장렬하게 무너진 게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없고, 처절한 아비규환도 없고,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_시오노 나나미



앞서 책을 읽기 전, 세계사 공부했던 기억을 되살려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대해 생각해 보니 〈… 로물루스가 폐위되자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였다〉가 떠올랐었다.

떠올렸던 게 딱 그뿐이었는데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충분했다.

역사적인 흐름이 아닌 인물을 중점적으로 두며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당시 사정을 세세하게 알 수 있어 더 깊게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인문학 책임에도 불구하고 100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만들어진 미니북 형식으로 되어있어 내용이 길지 않다.


길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다 보면 선택에 따라 미래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데, 이러한 선택을 했던 인물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결국은 과한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게 대부분이었다.

물욕이든, 권력욕이든 적당한 욕심은 나 자신을 이끌어주는 동기부여의 역할도 하지만 선을 넘어버리게 되면 상황 판단이 흐려져 결국 나 자신도 잃어버리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한나라도, 서로마 제국도 몇몇 인물들의 과학 욕심으로 인한 선택 때문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나라의 운명이 다르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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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 역사를 뒤흔든 지리의 힘, 기후를 뒤바꾼 인류의 미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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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초기 인류는 어떻게 지구 곳곳으로 이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대륙 곳곳에서 일어났던 문명 발달 양상은 왜 그렇게 다르게 나타난 것일까?

세계에서 주목받은 찬란한 문화와 문명들은 어떻게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것일까?

이러한 모든 궁금증을 기후 변화의 관점에 의하여 살펴볼 수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이다.


저자, 이동민은 지리학의 시각으로 전쟁사와 지구사에 대한 글을 쓰는 지리학자이다.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문인협회 정회원이다. 대구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리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가톨릭관동대학교에서 우수연구교원 표창을 받았으며, SSCI 등재 국제저명학술지 Journal of Geography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유방과 항우의 전쟁을 지리·지정학적으로 바라본 역사서 《초한전쟁》, 수필집 《서해에서》를 썼다.




Ⅰ 인류, 그 시작의 발걸음


기후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중생대의 지구는 기온이 높아 공룡이 번식할 수 있었지만 화산 분출, 운석 충돌에 따른 여러 이유로 인해 기후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멸종했다고 전해진다.

신생대에도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때문에 여러 동식물들이 탄생과 멸종을 거듭했었다.

160만에서 1만 2000여 년 전의 시기를 플라이스토세라 부르는데, 이 시기에 빙하기로 이어져 빙하기가 절정이던 시기는 1만 8000여 년 전으로 보고 있다.

플라이스토세에는 매머드, 검치호와 같은 추위에 강한 동식물이 번성했었다.

특이한 점은 수만 년 혹은 십수만 년 주기로 간빙기가 왔다가 다시 빙하기로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고 하는데 일부 학자들은 1만 2000여 년 전에 간빙기가 시작되었으며 가까운 미래에 다시 빙하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한다.


20만여 년 전, 아프리카 남부에서 인류가 등장했다.

피부도 얇고 근력도 약했으며 털있는 동물과는 달리 맨몸이다 보니 한랭한 기후를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빙하기를 견디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직립보행 이후 팔, 다리를 자유로워지자 도구와 불을 사용했으니, 선사시대부터 이미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아프리카를 벗어났을 무렵에는 지구 자전축이 바뀌던 시기였다.

사하라 사막에는 습기 가득한 계절풍이 불었고 기온도 계속해서 낮아졌다.

이로 인해 사막에 비가 자주 내리게 되어 강물이 흐르고 모래언덕이 초원으로 바뀌게 되면서 인류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북쪽으로 이주했지만 7만여 년 전에 일어난 기후변화로 인해 잠시 멈추게 된다.

빙하기로 인해 사하라 지역이 또다시 사막이 되면서 사하라 북쪽으로 이주한 인류는 발목이 붙잡혔던 것이었다.

그래도 빙하기 덕분에 당시 해수면 또한 90미터로 낮아지면서 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영국, 일본, 필리핀 그리고 호주, 아메리카 대륙이 이어져 인류가 넓게 이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Ⅱ 기후변화의 역사에서 기후위기의 시대로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거대한 변화를 안겨 주었다.

증기기관 덕분에 공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생산성은 한층 증가하였다.

덕분에 마차와는 차원이 다른 증기선, 열차 등의 교통수단을 얻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증기기관이 점차 발전하게 되자 열차는 더 적은 연료로 더 빠르게,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며 새로운 교통수단까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이다.

산업화는 인류에게 물질적 풍요로움을 안겨주긴 했으나 인위적인 기후변화의 시작이기도 했다.

필수 불가결하게 쓰이며 증기기관의 후손들을 이끌게 하는 것, 바로 화석연료이다.

석탄과 석유는 산업혁명 전에도 사용되었지만 무기 만드는 재료로나 사용했을 정도였는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해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화석연료는 그야말로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하다보니 자연스레 온실가스 배출량 또한 급증하게 되었고 온실가스 대기 중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의 기온이 급변하게 된 것이다.

(지난 번에 올렸던 『인류의 여정』과도 내용이 겹치는데)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게 되니 더 많은 주거지와 시설들이 필요해졌고 이 때문에 삼림과 습지가 파괴되었는데 유럽을 시작으로 아시아, 아프리카로까지 산업화가 확산되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급증했던 것이었다.


산업화로 인해 인류는 자연에 의한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기만 하던 존재에서,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기후를 바꾸는 주체로 변모한 셈이다.




새로운 관점을 통해 역사를 둘러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요즘이다.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는 물론 동물, 식물에 이어 기후의 관점에서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색다르니 지루할 틈이 없다.


1만 2000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면서 수천 년에 걸쳐 지구는 온난한 기후로 바뀌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유라시아와 이어졌던 호주와 아메리카는 분리되었고 영국, 일본 등은 섬이 되었다.

멸종된 동/식물들에 반해 인류라는 존재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역시 기후이다.

혹시 알고 있는가?

도구와 불을 이용했다고는 하지만 19만 년 동안 식량을 생산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그런데 타이밍 좋게도 빙하기가 끝남과 동시에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자연스레 생태환경 또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덕분에 다양한 식물이 등장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주식으로 삼는 재료들을 자연스레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단백질과 지방을 얻었던 동물들이 사라져 위기도 있었다.

즉, 기후로 인해 울고 웃었던 인류였다.


오래 전, 온난한 기후 덕에 인구가 증가하였고 더 넓은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었으니 기후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렇기에 기후 위기를 단순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일부 학자들의 견해라고는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듯이 일부 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다시 빙하기가 올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일으켰지만 이를 되돌릴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선진국 전체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가 바로 중국인데 전체 20%를 차지하고 있다니 이는 정말 높은 수치이다.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들부터 지켜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전세계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이번 황사가 정말 심하다고 하던데, 마스크 잘 쓰고 다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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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 -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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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중국에는 한(漢)이 있다!

로마제국과 함께 읽어보기 위해 책을 펼치게 되었는데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한도 어떻게 멸망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시리즈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일생이 아닌 역사에 등장했던 순간 그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다.


저자, 최봉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김영사 편집장, 중앙M&B 전략기획실장, 랜덤하우스중앙 COO를 거쳐 웅진씽크빅, 메가스터디 대표이사, 프린스턴리뷰 아시아 총괄대표를 지낸 후 현재는 기업, 단체의 자문과 집필을 하고 있다.




망탁조의, 왕망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문명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문화의 꽃을 피운 역사의 뿌리가 바로 한나라이다.

전한, 후한 합쳐 500년 동안 이어지는 한은 초한지로 건국하여 삼국지에서 망한다.


망탁조의,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녹을 먹다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했던 역적들을 묶어 일컫는 말이다.

왕망은 망탁조의의 첫 인물이다.

동탁은 후한 소제를 시해하고 폐위시켰지만 황제자리에 오르진 못하고 살해당했다.

조조와 사마의는 직접 황제를 폐위하지도, 스스로 황제 자리에도 오르진 않았으나 아들 조비와 손자 사마염이 황제에 오를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았었다.

그러나 왕망이 전한 평제를 독살하고 유영을 꼭두각시로 만들어 다음 선양의 형식을 빌려 스스로 황제에 오르고 새 왕조까지 열게 된다.

그래서 망탁조의의 첫 인물이라 했던 것이다.


왕망의 역사적 평가는 두 시기에 집중된다.

첫번째 시기는 마흔다섯 살에 두번쨔로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사마에 올라 실권을 장악한 후 전한의 막을 내릴 때까지이다.

평제가 아홉 살에 즉위하자 태황태후 추천으로 왕망이 두번째로 대사마에 오르면서부터 시작된다.

참고로 태황태후는 평제의 할머니이자 왕망의 고모였다.

두번째 시기는 새 왕조를 세우고 황제에 오른 시기이다.

왕망은 국상에 오르자마자 태후의 정사 개입을 차단하고 평제의 외가를 멸족시켜 버린 뒤 장녀를 효평황후에 올려 황실을 정리한다.

그렇게 그는 대사마 국상이자 황제의 장인인 국구의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허나 그는 자리에 만족하지도 못했고 자신이 한 일들 때문에 매번 전전긍긍하였다.

결국 그는 사위인 평제마저 독살시킨 뒤 외손자 유영을 황제에 올려 섭황제로 군림하게 된다.

이것 또한 만족하지 못한 그는 선양의 형식을 빌려 제위를 찬탈하고 새 왕조를 세우게 된다.

황제를 독살하고, 폐위하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망탁조의의 끝판왕이 된 것이다.

그의 개혁 슬로건은 탁고개제였다.

(탁고개제란 옛것을 본받아 당대 제도를 개혁한다는 의미이다.)

주나라의 정전법을 모방해 전국 토지를 왕전으로 바꾸고 개인 토지 매매를 금하여 영농의 빈민화를 막고자 하였고 빈농들에게도 저리의 자금을 융자해주고 노비 매매를 금지하였지만 지배계급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개혁 자체가 너무 이상적이고 전한 말의 사회모순이 누적되어 개혁은 실패를 맞고 만다.


조조와 사마의는 창업 군주라도 재평가되었지만, 왕망은 실패한 개혁가이자 건너뛰어도 무방한 폭군으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의도가 정당하다고 과정과 결과를 가벼이 볼 순 없지만 그 결과가 잘못되었다고 동기와 시도까지 묶어 매도하면 안 된다고 의견을 내비친다.

왕망은 젊은 시절부터 개혁에 대한 욕구가 지대했다고 한다.

지배계급의 이중성에 대해 깨닫고나니 지금의 체제를 바꾸고 싶어했다. 그러던 중 유교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단순히 학문으로서가 아닌 사회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이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대사마에 오르자 개혁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지만 조정의 극심한 반대와 사회의 모순 앞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물러서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기득권 세력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의식과 함께 자신의 주장이 역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음을 스스로 확신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두번째 대사마에 올라서도 어떻게든 나아가려고 했으나 나아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그의 간절한 바람이 역사에 기록될 만도 하지만 개혁을 위해 패륜을 저질렀던 왕망이었기에, 역사는 그의 패륜만을 기록하게 된다.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믿는 자들은 근본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강요하기에 이르른다.

그 강요가 공격성을 띠게 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덕성은 결국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목표가 추구하는 가치와 수단에서의 도덕을 분리하여 가치에 우선을 둔다.

사실 왕망 뿐만 아니라 역사에서 몇몇 인물들이 이러한 절차를 밟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왕망은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고 마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멸망의 길


한나라가 멸망의 길로 접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후한은 장각의 황건적 난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데 언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아마 통일왕조 없이 400년 동안 혼돈의 시기가 이어지는 것이 이유일지도 모른다.


후한 멸망 과정의 중요 사건들은 아래와 같다.

1.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자 무력한 조정을 대신하여 난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지방 군벌이 세력화되고, 중앙 조정은 십상시의 수중에 떨어진다.

2. 십상시의 난을 진압하러 낙양으로 밀고 들어온 군벌 중동탁이 정권을 장악한다. 그는 소제를 시해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왕망에 이어 망탁조의에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다. 그리고 후한은 이때부터 명목상의 수명만 이어간다.

3. 조조가 동탁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후 헌제를 내세워 지방 군벌을 토벌하는데, 이에 대항하여 촉의 유비, 오의손권이 나서며 삼국시대가 열린다.

4. 조조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조비는 명목상 연명하던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에게 선양의 형식을 빌려 제위를 뺏는다. 이로써 후한이 멸망하고, 그 뒤를 위가 잇는다. 220년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한나라는 기원전 206년에 세워져 서기 220년에 멸망하여, 426년 동안 존속한 중국 역사상 최장수 국가로 평가된다.

5. 유비가 세운 촉을 촉한으로, 한나라의 정통 계보로 인정하여 전한, 후한에 이어 촉한까지를 하나의 왕조로 본다면 수명은 좀 더 연장된다. 유비는 후한이 망한 다음 해에 한 황실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촉한을 세우나, 유비의 아들 유선에 이르러 위나라의 침공을 받아 263년에 멸망한다. 이를 포함한다면 한의 수명은 470년으로 늘어난다.

후한이 멸망한 후 수가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재통일하기까지의 기간을 약 400년으로 추정하는데, 이 시기를 위진 남북조시대라고도 부르며 크게 삼국시대, 서진시대, 오호십육국시대, 남북조시대로 나눈다.


중국에서 위진 남북조시대는 흑역사나 다름없어 최근까지도 역사 시간에서 건너뛰었을 정도라고 하는데 서양사에서도 서로마 제국 멸망 후 분열의 시기를 맞았을 때 재통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로 한나라와 관련된 책리뷰에 이어 서로마 제국에 대한 책리뷰를 곧장 올릴 예정인데, 두 나라가 비슷한 점이 많다.

이를 비교한 내용은 다음 서로마 제국 때 다룰 예정이다.




좋아하는 과목을 질문받으면 단연 국어와 영어가 으뜸이었지만 고등학교 때 재미를 흠뻑 느끼게 된 과목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사였다.

수업해주시는 선생님이 마치 책을 읽어주시는 것만 같아 수업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만 내신때문에 점수 따기 목적이 크다보니 흥미를 두었던 일부 유럽사만 지금까지 기억할 뿐 그 외에 역사적 사건들은 기억 속에 묻힌 지 오래이다.

스무살이 되고서도 대한민국과 유럽사만 흥미를 느껴 관련 역사책은 간간히 챙겨보긴 했으나 중국 역사는 관심이 없어 한시와 동양고전에 나온 배경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작년 책결산을 하면서 언급했었지만 삼국지를 아직 읽지 못해 숙제처럼 쥐고 있는데 『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을 읽고나니 삼국지를 펼쳐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죽림칠현이란 말을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죽림칠현이란 위/진 정권교체기에 부패한 정치 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세월을 보낸 산도, 완적, 유영, 혜강, 향수, 완함, 양융, 즉, 일곱 명의 선비를 일컫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던 산도는 어렵게 살았지만 노장사상을 좋아해 완전, 혜강과 교유했다고 알려졌다.

마흔이 되었을 때 관직에 나갔으나 조상이 권력을 잡자 낙향했었다.

이후 고평릉 사변 이후 사마의가 정권을 잡자 다시 조정으로 나갔고 고위관직을 두루 거치다 말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은거하다 숨을 거두었다.

그의 생애를 보면 과연 죽림칠현과 어울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역시나 산도보다 열여덟 살 아래였던 혜강이 죽림칠현의 실질적 영수였다고 한다.

수려한 용모와 총명함을 지녔던 혜강은 일찍이 이름을 날린 인물이었다.

그는 조조의 외손녀와 결혼하여 중산대부라는 벼슬이 내려지나 뜻이 없어 관직에 나서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동무 향수와 함께 술과 시, 거문고를 즐겼다고 하니 죽림칠현에 딱 맞는 인물이 아닐수가 없다.

이후 종회의 모략으로 죽음에 몰리게 되는데 태학당 3천 여명의 학생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함께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했단다.

처형이 집행되기 전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문고를 뜯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정말 대단했던 인물이 아닌가 싶다.

혜강의 죽음 이후 사실상 죽림칠현은 해체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뒤를 이은 자도 없었으니.

죽림칠현은 스스로 속딤을 멸시하고 속됨을 깨뜨리고 속됨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으나 속됨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실패하자 다시 속됨과 어울리는 현실을 맞게 된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인물들이 있지 않는가.

저자는 이런 말을 남긴다.

고고한 자들은 높은 봉과 같아 홀로 떨어져 있어도 우뚝 솟아 있는데 그런 무리들은 개천의 자갈 같아 무리 지어 흘러가는 물소리보다 더 시끄럽게 목소리 높이며 얼굴마당에 출몰하지만 다 애기 주먹보다 잘고 꼬락서니도 닳고 닳아 누가 누군지 분간조차 안 된다고.


역사적인 흐름이 아닌 인물을 중점적으로 두며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읽는 재미도 흥미로울 뿐더러 앞서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느끼는 바가 매우 컸다.

죽림칠현을 잠깐 언급한 것도 다 이런 이유였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읽다보니 삼국지도 올해 꼭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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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여정 - 부와 불평등의 기원 그리고 우리의 미래
오데드 갤로어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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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호모사피엔스 등장 후 30만 년, 인류가 풍요를 누린 시간은 200년에 불과하다. 나머지 29만 년이 넘는 시간은 배고픔, 질병과의 싸움이었다.

최근에는 몇 년간 코로나가 전세계를 강타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앞으로도 인류의 영원한 숙명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29만 년 전으로 돌아가보려 한다.


저자, 오데드 갤로어는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통합성장 이론’의 창시자이다.

통합성장 이론은 인류사 전체에 걸친 개발, 번영 그리고 불평등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갤로어는 경제학자로서 일생을 바쳐 얻은 통찰을 세계 각지에 공유했으며, 그렇게 얻은 통찰과 발견을 모아 『인류의 여정』을 썼다.




Ⅰ 인류의 여정


카르멜산, 이스라엘 하이파 동남쪽에 있는 산악 지역으로 카르멜산의 여러 동굴로 가는 길을 오르다보면 선사시대가 자연스레 그려진다고 한다.

여러 산을 뚫고 굽이져 흐르는 시내, 산맥 옆자리 숲에는 사슴과 가젤, 멧돼지가 가득했을 것이고 사마리아산맥에 접한 광야에는 곡물과 과일나무가 즐비했을 것이다.

카르멜산 동굴에선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조우 가능성으로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선사시대 정착지에 대해 증언하기도 한다.

고인류와 초기 현생인류는 불을 능숙히 사용하고 석회석 도구를 개발하며 꾸준히 나름의 신기술 또한 익혔을 것이다.

이렇듯 인류를 정의하고 인류를 다른 종과 구분해 주는 이 문화적, 기술적 진보의 핵심적 동력은 다름 아닌 인류 뇌의 진화이다.


인류 뇌는 비상하다.

지난 600만 년간 3배로 커진 인류 뇌 크기는 호모사피엔스 출현 전에 압축적으로 일어났으며, 발달한 뇌를 가진 인류는 지구상의 어떤 종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안전과 번영을 이루게 된다.

인류 뇌가 생존에 유리하다면 왜 수십억 년간 다른 종들은 뇌를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즉, 강력한 뇌가 명백한 이점을 가졌음에도 왜 자연계에선 드물게 나타난 것일까?

이 답은 강력한 뇌의 약점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우리의 뇌는 일반적으로 체중의 2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에너지 20퍼센트를 소비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크다.

둘째, 다른 종의 새끼는 태어난 직후 스스로 걷고 빠르게 먹을 것을 구하지만 인류 뇌는 다른 종보다 주름 잡혀 압축되었으며 인류 아기는 성숙기에 이르는 몇 년간 미세 조정이 필요한 반쯤 여문 뇌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크기 때문에 태아의 머리가 산도를 통과하기 어려워진다.


생태적 가설에 의하면 인류 뇌는 환경상 노출된 데 따른 결과물로 보고 있으며 사회적 가설에 의하면 진화의 요인을 복잡한 사회 구조 안에서 찾고 있다.

문화적 가설은 정보를 흡수하고 저장한 뒤 다음 세대로 전해 주는 뇌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듯, 인류 뇌의 진화는 인류를 독특한 발전 경로로 나아가도록 한 주요한 추진력이다.


지난 2세기 동안 인류는 상전이를 경험했는데 정체에서 성장으로의 전환은 매우 급작스럽게 보이기까지 했었다.

지나고 보니 일찍이 상전이를 거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는 거대한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류의 상전이를 불러온 것일까?

통합성장이론은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확신에 자극을 받아 개발되었으며, 경제 발전의 요인을 연구하려면 한정된 기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보며 밑바탕의 추진력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론이 무너지기 쉽고 불완전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통합성장이론을 통해 30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출현부터 오늘날까지 전 과정을 조망하며 인류의 여정을 담아내었고 그 과정에서 찾은 힘은 인류가 빈곤의 덫에서 탈출해 지속 성장의 시대로 가는 상전이를 촉발시키게 된다.

인류사를 정체기에서 성장기로 전환할 수 있게 한 촉매를 찾을 때, 산업혁명이 거론된다.

외부적 충격을 가했다고는 하지만 18-19세기를 살펴보면 실제 급격한 전환은 없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빨랐다고 느껴지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극적인 변혁을 촉발한 변화의 톱니바퀴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요인들 중 하나가 바로 인구 규모이다.

기원전 1만 년 전에는 240만 명이 지구상을 돌아다녔고 로마, 마야문명이 정점에 이르던 기원후 1년까지는 전체인구 대비 78배로 불어나 1억 8,800명에 이르게 된다. 이후 산업화 초기인 19세기 초입에는 10억 명을 넘기게 된다.

인구 규모가 클수록 개개인의 전문화가 발달되니 기술을 발전시키고 기술 퇴보까지 막을 수 있어 기술 변화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기술적 혁신은 더 많은 인구를 떠받치면서 인류가 생태적·기술적 환경에 적응하도록 자극했으며, 규모와 적응력을 키운 인구는 다시 신기술을 고안하고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도록 역량을 키웠다. 이것이 인류사 표면 아래에서 돌아간 변화의 톱니바퀴다. 마침내 인류사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규모로 혁신의 폭발을 불러온 것 역시 변화의 수레바퀴였다. 산업혁명은 그러한 혁신의 폭발이었다.




Ⅱ 부와 불평등의 기원


해마다 수천 명이 유럽과 미국 국경에 이르려다 죽곤 한다.

아마 뉴스에서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파도에 휩쓸려 혹은 배가 침몰하여 목적지에 이르지도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을.

이들 대부분이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이주자들인데 배를 타기 위해서 밀입국 브로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쉽지 않는 여정을 걸어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국가 간 생활수준의 엄청난 불평등' 때문이다.

기대수명, 평균 취학 연수, 유아사망률, 인터넷 서비스 확보 및 전기 사용 인구 비중은 각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국가도 있기에 목숨을 걸면서까지 탈출하려고 하는 것이다.

글로벌 불평등의 표면에 드러난 사실을 놓고 봐도, 선진국의 1인당 소득이 개발도상국보다 상당히 높은데다 그만큼 투자에서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소득 격차는 부분적으로 노동생산성의 차이를 반영하기 때문에 각 국가 거주자들마다 상이할 수밖에 없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 농민 1인당 노동생산성은 케냐의 77배, 우간다의 90배, 에티오피아의 147배라고 한다.

미국 농민이 남쪽 아프리카, 남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지역보다 소득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교육, 훈련, 경작과 수확 기술의 차이다.

미국 농민은 높은 수준의 직업훈련을 받고 유전자 변형 종자나 좋은 비료, 농약 등을 사용할 수 있는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애초에 실행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기술 진보와 물적/인적자본의 축적이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

그래서 20세기 후반 정책 결정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개발도상국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추진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국가 간의 불평등이 너무 심해 정책 효과는 결국 제한적이었다.

불평등을 불러온 근원보다 표면상 요소와 드러난 불균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요소가 투자, 교육 등을 가로막아 세계의 불균등한 발전을 조장했다는 것인데, 불평등의 근본적인 요인은 무엇이며 전 세계적인 번영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무엇일까?


19세기 국제무역은 큰 폭으로 늘어나 유럽의 급속한 산업화를 촉발하게 하고 식민주의를 가속화시켰다.

당시 북서부 유럽 국가는 제조업 상품의 순수출국이었고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원재료와 더불어 농업 기반 생산품의 수출 비중이 높았었는데 국제무역의 도움 없이도 산업혁명을 낳을 정도의 기술수준이었는데, 서유럽 국가가 국제무역 덕분에 산업화 속도와 성장률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즉, 자원, 식민지,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과 그 후손에 대한 착취에 더해 국제무역에 힘입은 결과가 서유럽의 성장이 된 셈이었다.

산업화 초기, 국제무역의 확대는 산업화된 경제와 그러지 못한 경제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불균형적 영향이었다.

산업화를 이룬 경제에서의 무역 확대는 숙련노동이 필요한 제품 생산에 대한 전문화를 촉진시키니 숙련 노동자 수요가 자연스레 증가하게 되고 이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시키고 인구변천을 촉진시켜 기술 진보를 더 자극하고 관련 상품 생산에 대해 비교우위를 점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2세기 동안 이루어졌던 세계화와 식민주의는 국가 간 부의 격차를 더욱 키우게 되었다.


국가의 부에서 나타난 거대한 격차는 국가 간 기술과 교육의 차이 같은 근사 요인, 그 핵심에는 제도와 문화, 인구의 다양성처럼 모든 뿌리에 존재하는 근본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근사 요인과 근본 요인이 미친 영향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지만 얼마나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무엇이 그 속도와 변화를 좌지우지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짚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인류가 이룬 발전만 놓고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불을 통해 어둠을 밝히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했으며 도구를 통해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것이 첫 시작이었고 인류는 이내 자동차, 기차까지 만들었으며 전자기기를 발명시켜 지금은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빠르고 쉽고 편리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고 인구 증가는 더더욱 발전된 기술력을 가져오게 된다.


책에서도 나와있듯이, 생활수준만은 대체로 영향을 받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기술 진보도 빈곤의 덫을 막을 순 없었다. 기술 진보를 통해 자원이 늘면 이를 바탕으로 항상 인구가 늘어났으니 이는 진보의 과실을 더 많은 이들이 나눠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기술 진보와 혁신을 통해 몇 세대 정도는 번영할 순 있었지만 이후 인구가 증가하면서 또다시 생활수준은 생존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뒷걸음질 하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개개인이 가지는 기술적 능력만이 빈곤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기술과 지식의 역량을 키워 주기 위해 부모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의학기술 발달에 의해 인류의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사망률이 낮아짐에 따라 교육투자에 대한 기간 또한 길어지니 이는 결국 인적자본 투자 증가와 출산율 감소를 촉진하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는 게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경제 발전은 인구 증가에 따른 상쇄 효과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기술 향상이 불러온 번영은 영구적인 개선이 된 셈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지난 200년간 1인당 평균소득은 14배로 높아졌고 기대수명 또한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지게 된다.

대중교통 및 배, 비행기를 통해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고 전자기기를 통해 곧장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국가 내에서는 물론 국가 간에서도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했다.

효율적인 경제 정책이 있더라도 빈곤에 빠진 국가를 하루아침에 선진 경제로 바꾸는 것은 불가하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 격차이다.

이미 오랜 기간동안 여러 부분에서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따라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해도 실행시켜 성공시킬 순 없는 것이다.


특히 2장은 현 대한민국이 가장 고심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불평등 근본 원인을.

내용이 길어지는 것 같아 최대한 추려보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꼭 확인해보길 바란다.



역사의 긴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운명은 돌에 새겨지지 않았다. 인류의 여정을 지배했던 거대한 변화의 톱니바퀴는 계속 돌아가므로, 성 평등과 다원주의, 차이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미래지향성을 강화하고 교육과 혁신 역량을 키우는 조치는 보편적 번영의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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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생활자를 위한 시시콜콜 100개의 퀘스트 - 기후와 자연 IQ를 키우는 지구살이 안내서
루시 시글 지음, 이상원 옮김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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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구를 알고 싶은데 무엇부터 알아야 할까?

지구인도 아니고 지구생활자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지구와 함께 살고 싶지만 상황을 바꾸기 어렵고, 실천이 얼마나 효과 있을지 의심이 간다면?


저자인 루시 시글은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에 대해 흥미롭지만 생소했던 사실들을 재치 있게 소개하며 지구와 친구가 되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과 나누려고 한다.

퀘스트는 10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물권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생소하게 느꼈던 지구 공동생활자들의 삶을 밀착 탐색하고 업계와 개인이 어떻게 공존하며 살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 루시 시글은 저널리스트이자 자연과 기후 문제 전문가이다.

영국 중앙일간지 최초의 생태 전문 칼럼니스트로, 《옵저버The Observer》지에 윤리적 삶에 관한 칼럼을 10년 넘게 기고해왔다. BBC 토크쇼 〈더 원 쇼The One Show〉에서 지구 리포터로 활동하며 개인의 생태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조언을 해왔다.

환경 비정부단체 SAS의 이사이고, 기후위기를 다루는 팟캐스트 ‘너무도 뜨거운 지금So Hot Right Now’을 진행하고 있으며 싱어송라이터 엘리 굴딩 등 여러 유명 환경활동가들과 기후 관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Ⅰ 플래닛 하이프에 입장하셨습니다


플래닛 하이프는 「심슨 가족」에 나오는 테마 식당의 이름이다.

Planet Hype, 대박 행성으로 풀이되며 말그대로 지구가 대박이라는 의미로 저자는 사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환경의 범위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코앞의 환경에만 국한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를 더 넓게넓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생명체 대부분이 온대 기후에서 번성한다는 점으로 봤을 때, 지구와 태양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대기를 유지할 수 있는 크기를 갖추었으며 지구에서 물은 액체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생물권은 나무들의 가장 깊은 뿌리 체계부터 대양의 깜깜한 해구, 빽빽한 우림, 높은 산꼭대기까지 걸쳐 있다."

지구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생물군계와 맺는 밀접한 관계를 인식하고 중요한 사항들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 연구에서도 증명되었듯이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힘겹게 진화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 생태계가 무너지고 예상치못하게 자연재해가 닥치면서 지구가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니 다른 행성 이주를 추진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분리수거, 텀블러 사용하기 등 작은 행동들을 실천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것으로만 끝이 아닌, 지구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지구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잊지 말자! 우리는 지구에서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지구는 우리가 밟고 다니면 그만인 바윗덩어리가 아니에요. 지금까지 우리는 무심코 그렇게 행동해왔지만, 생명체가 살아갈 만한 조건으로 환경을 안정시키기 위해 지구가 힘겹게 진화해왔음을 보여주는 연구는 아주 많지요."




Ⅱ 지구 공동생활자와 팀을 결성하십시오


온갖 동식물 생명체로 가득한 지구, 즉, 동식물이 넘치도록 많다는 것은 지구가 건강하다는 것이다.

지구와 진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자연의 모든 존재를 옹호한다는 의미이다.

가장 작은 생명체를 크게 인식하고 이를 생태계에서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수상자 몇 명을 선정해 보았다.

첫 번째 수상자는 바로 "지렁이"다.

지렁이는 유기물 잔해를 처리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며 흙에 산소를 공급한다.

'지렁이는 지렁이일 뿐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지렁이 종만 해도 6,000개 이상이며 1,200평 당 100만 마리가 넘게 산다고 한다.

두 번째 수상자는 바로 "크릴"이다.

바다의 크릴 떼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 탄소와 영양소를 배출해 토양에 비료를 뿌려 생산력을 높이듯이 바다의 생산력을 높여준다고 한다.

또한 덩어리로 뭉쳐진 크릴의 배설물은 바닷속 바닥으로 내려가 안전하게 탄소를 저장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해 습한 날씨에 취약한 지렁이가 이전에 없던 캐나다 최북단 숲에서 발견되는 초유의 상황도 벌어졌다.

숲에서는 유기물질을 먹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탄소가 추가로 배출되기 때문에 지구의 친구에서 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21년 동안 미국에서만 총 22종이 공식 멸종되었으며 2022년은 최대 많은 종의 멸종이 선언된 해라고 한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찍으면서 유일하게 퇴짜 맞은 곳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탐 크루즈가 와도 촬영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곳은 바로 노르웨이였다.

제작팀은 노르웨이에서의 헬기 촬영을 추진했으나 촬영 허가를 요청했던 스발바르 제도는 북극곰, 북극여우, 턱수염바다물범, 바다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였기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자연 보호가 곧 지구 보호이다.

개발 명목으로 인한 지역 서식지 파괴, 토지 사용 변화로 인한 멸종은 막아야만 한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지구와 진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자연의 모든 존재를 옹호한다는 뜻이에요. 가장 작은 생명체를 크게 인식하고 그것이 생태계에서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제인 구달이 말했다.

"주변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당신의 행동은 분명 차이를 만든다. 어떤 차이를 만들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했지만 100개의 퀴즈를 보고 나니 꼭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다름없었음을 느꼈다.

넓게 바라봤다고 생각했지만, 더 넓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무엇보다 지구에 대한 생각에 큰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지구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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