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소파에서 일어나 머리를 감고, 예전에 모라이스와 만났던 캘리포니아의 낙농장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섬이 되는 대신, 섬을 찾아가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조레스 방식은 이렇죠. ‘오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일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오늘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한두 해 전 테르세이라 섬에 있는 프랭크네 집을 고치던 남자들이 일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밧줄 투우를 보겠다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프랭크가 외쳤다. "이봐요! 돈 주는 사람은 나라고. 돈 주는 사람이 중요합니까, 투우가 중요합니까?" 그들은 "당연히 투우죠"라고 대답하고 집을 나섰다.

"열 번째 섬이 어떤 장소나 특정 무리인 줄 알았던 거요?" 알베르투가 놀리듯 내게 물었다. "열 번째 섬은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라오. 모든 게 떨어져 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것이죠. 두 세상을 오가며 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열 번째 섬을 조금 더 잘 이해한 다오. 어디에 살든 우리는 우리 섬을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소."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을 겪는 내내 나는 비밀을 하나 간직하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상대를 잘못 골라 쓸데없이 쏟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나면 결국 내 옆에 ‘상남자 작가’가 있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둘 다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고 둘 다 어린 시절에 아픔을 겪은 적이 있어서 서로의 상처를 이해했다. 게다가 그는 검정 티셔츠가 잘 어울렸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감사하는 마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하늘, 바다, 연보랏빛으로 물든 큼지막한 꽃 뭉치가 여기저기 매달린 수국 덤불, 갓 구운 빵, 와인, 친구들, 또 포르투갈 사람들은 밤 9시가 되도록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했다. 어쩌면 나는 감사로 가득한 행복 속에서 기분 좋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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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죠
당신과 함께 했던 그 순간 너무도 좋았는데
전해진 말 몇 마디에 쌓이고 쌓인 오해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죠
돌아선 나를 붙잡으려는 당신도
차마 발길 떨어지지 않는 나도
보고싶지만 볼 수 없어 슬퍼하고 눈물흘렸죠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닿기엔 부족했죠
사랑한다고 내밀었던 손 끝까지 붙잡지 못해 미안했어요
미안했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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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치지 않았으면... 그걸로 된 거야. 난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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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들었던, 그 말이 마지막 말일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 말을 다시 들을 줄이야.
숨이 막히는 듯 했다.

어쩌면 잊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잊으면 안 되지만 무의식 중에 잊으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상처의 통증이 다시 살아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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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가두었던 마음의 감옥, 그 빗장이 어느 틈에 스르르 열리고 있는 걸까. 나는 그곳에서 걸어 나와 발레 슈즈를 신고 있었다.

인생의 주요한 변곡점에는 대개 ‘만남‘이 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 좋은 취미를 만나는 것,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중요한 친구를 만나는 것 등 좋은 만남은 우리 인생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일이다.
내 인생에서 발레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 발레 배우기를 포기하게 된 계기, 그리고 다시 발레를 취미로 삼게 된 계기의 앞머리에도 모두 ‘만남‘이 있다.

발레를 배우면서 말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표현할 방법은 여러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레를 하는 시간만큼은 몸으로, 눈빛으로, 미소로 나를 표현하는 연습을 해 본다. 그동안 쉽사리 꺼내지 못했던 마음, 내면에 가두어 두었던 감정을 손끝에 담고 발끝으로 펼쳐 본다. 그렇게 발레 안에서 뜻밖의 안도감을 찾고 있다. 말을 잘하지 못하면 어떠한가. 중요한건 나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안녕, 오늘도 열심히 해 보자!‘
발레를 시작하며 다른 무엇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보며 웃고,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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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워 보이지만 차분한 인상을 가진 그는 말쑥한 양복만큼이나 굉장한 외모를 소유한 남자였다.

그런데 남자의 새하얀 셔츠와 블루빛의 넥타이가 커피로 물든 모습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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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마주하여 받는 느낌 중 하나는 '차가움'이었다.

허나 처음 마주한 사람도 몇 초간은 빤히 쳐다볼 정도로 인상깊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렷한 그리고 깊은 눈을 가졌으나 그의 눈에는 슬픔이 서려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누구인지 마음 한 켠에 궁금증이 생겼다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때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훗날 마주칠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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