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어드 - 인류의 역사와 뇌 구조까지 바꿔놓은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유강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였으며, <뉴욕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된 책이 있다.

제로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잇는 대작의 주인공! 바로 『위어드』이다.

범위는 광범위하지만 구체적인 참고 자료를 토대로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가져온 다섯 가지의 키워드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었던 그 이야기로 한번 떠나보자!


저자, 조지프 헨릭은 하버드 대학의 인간진화생물학 교수이며 동시에 문화·인지·공진화 분야 캐나다 석좌연구자Canada Research Chair 자격으로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에서 심리학과와 경제학과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공저로 『왜 인간은 협력하는가』와 『사회규범 실험』이 있다.




Ⅰ WEIRD란 무엇인가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개인 개념은 사람을 다른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독특하며, 어느 정도 통합된 동기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 감정, 판단, 행동의 역동적 중심으로서 다른 사람들과는 물론이고 사회적, 자연적 배경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인지적 우주로서 파악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소 독특한 관념이다."라고 했다.

이상할 만큼 개인적이고 분석적인 사람들, WEIRD!

아마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 중 누군가도 WEIRD에 속할 지 모른다.

WEIRD Western-Educated-Industrialized-Rich-Democratic 약자로, 서구의, 교육 수준이 높고, 산업화된, 부유하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자란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WEIRD란 어떤 특징은 가지고 있을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WEIRD는 개인주의적이고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즉, 사회적 역할이 아닌 자신의 성취, 열망에 초점을 맞추며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

권위적인 인물에 동조는 하나 자신의 믿음이 상충된다고 하면 남들에게 순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추론을 할 때 보편적 범주와 규칙을 찾아 패턴을 파악하고 추세를 예상하기 위해 머릿속에 그리곤 하는데, 복잡한 현상을 별개의 구성 요소들로 분해하고 이 요소들에 특정 속성을 부여해 단순화하다보니 각각의 나무들은 잘 알고 있지만 종종 숲을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인내심이 많아 대부분 부지런히 일하는 타입에 속하는데 고된 노동에서 쾌락을 느끼곤 한다. 강한 자기규제를 통해 현재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만족을 미래로 유예하기 때문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집착이 강하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공평한 규칙이나 원칙을 고수하고 낯선 이를 상당히 신뢰하고 타인에게 정직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감정적으로 볼 때, WEIRD는 그들이 속한 문화에서 장려되지만 대개 자신이 세운 기준과 열망에 맞게 살지 못하면 죄책감에 시달린다. 대다수 비WEIRD 사회에서는 (죄책감이 아닌) 수치심이 사람들의 삶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친척, 심지어 친구들이 공동체에서 그들에게 부과하는 기준에 따라 살지 못할 때 수치심을 느낀다. …… 죄책감은 개인의 기준과 자기 평가에 좌우되는 반면, 수치심은 사회적 기준과 일반적 판단에 좌우된다.


WEIRD가 가진 독특한 심리는 어떻게 갖게 된 것이며 그들은 왜 다른 것일까?

저자 또한 이 물음에 의문을 품고 고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았는데, 기독교의 한 교파가 특정한 묶음의 사회 규범과 믿음을 확산시켰음을 확인하여 이에 대해 살펴보게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사회 규범과 믿음은 결혼과 가족, 유산, 소유의 개념을 극적으로 바꿔놓았으니, WEIRD 심리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WEIRD의 가족, 결혼 그리고 종교의 독특한 특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________________다.

이 질문에 WEIRD라면 '열정적이다', '순수하다', '피부과의사다', '승무원이다' 등으로 완성했을 것이다.

'하나의 아빠다'나 '하나의 엄마다'라는 식으로 대답했을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개인적 특성, 이상화된 사회적 집단의 소속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이 다소 독특해 보이는 것이다.


사람의 역할과 관계보다 특성과 성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내가 개인주의 복합체 individualism complex 또는 간단히 개인주의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할 심리적 성향의 핵심 요소다. 개인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각과 관심, 판단과 감정을 조절하여 WEIRD 사회라는 세계를 잘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가족'에 대해 알아야 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먼 친인척까지 포함하는 가족 연결망에 얽매인 채 성장하였다.

규제-관계적 세계에서 사람들의 생존과 정체성 그리고 결혼과 성공이 친족에 기반한 연결망이 얼마나 번성했는지에 달려 있었으며 이는 씨족, 혈족, 가문과 같이 별개의 제도를 형성하였고 촘촘한 그물망 같은 관계를 맺으며 의무, 책임, 특권을 물려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상호의존은 정서적 상호의존을 낳게 되고 사회적 상호연결에 근거해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별하니 먼 사촌을 모른다 해도 가족관계로 얽혀져 있는 여전히 내집단의 성원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얼굴을 안다해도 사회적 유대가 연결되지 않았다면 사실상 이방인이다.

여기서 성공과 존중은 이러한 친족에 근거한 제도를 능숙하게 헤쳐나가는 데에 있어 동료 내집단 성원들에게 순응하고, 연장자나 현자 같은 권위자를 따르고, (이방인을 제외한) 가까운 사람의 행동을 단속하고, 내집단을 다른 모든 이들과 분명하게 구분하고, 가능하면 언제나 자기가 속한 연결망의 집단적 성공을 도모해야 한다.

오늘날 심리적 개인주의와 정부의 효율성 사이에서 나타나는 긍정적 상관관계는 일방적인 인과적 과정을 반영한다고 가정한다.

즉, 경제적 번영이나 자유로운 정치제도가 개인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 차원의 심리적 변이를 계속 살펴보기 전에 먼저 기억해두어야 할 네 가지 중요한 논점이 있다.

1. 우리는 심리적 다양성을 비롯한 인간의 다양성을 찬양해야 한다. WEIRD의 특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내가 WEIRD 인구 집단이나 또다른 인구 집단을 모독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목표는 심리적 다양성의 기원과 근대 세계의 뿌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2. 머릿속으로 WEIRD와 비WEIRD를 이분법으로 구분해선은 안 된다. 여러 지도와 도표에서 살펴보겠지만, 전 세계적 심리적 변이는 지속적이면서도 다차원적이다.

3. 심리적 변이는 나라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나는 국가별 평균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얻을 수 있는 데이터가 그런 것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전체에 걸쳐 종종 지역, 지방, 마을, 그리고 심지어 다양한 출신의 이민 2세들과 같이 하나의 국가 내부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차이를 검토할 것이다. WEIRD 인구 집단들은 대체로 전 세계적 분포의 한쪽 끝에 몰려 있지만, 우리는 유럽, 즉 '서구 사회'와 산업 세계 내부의 흥미롭고 중요한 변이도 탐구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4. 우리가 관찰하는 인구 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차이 중 어떤 것도 민족이나 부족, 종족 집단이 가지고 있는 고정적이고 본질적인 불변의 특징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의 심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왜 변화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개인주의적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다양한 맥락과 관계 속에서 개인적 특성을 지속적으로 갈고닦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일본,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다양한 사회의 심리학적 증거를 보면 이러한 양상이 잘 드러난다.

WEIRD는 어린 동료, 친구, 부모, 교수, 낯선 타인과 같은 각각 다른 유형의 관계 속에서 일관된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대조적으로 한국, 일본은 오직 관계의 맥락 안에서만 일관성있게 행동한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모님, 친구, 교수를 대하는 행동이 달라진다.

친구에게는 장난도 치고 농담도 주고받지만 교수에게는 자신을 낮추는 언행과 행동을 보인다.

한국인에게는 이러한 행동이 익숙하지만 미국인이 보기에는 이러한 행동의 유연성을 두고 양면적이거나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우리는 지혜, 나아가 사회적 능숙함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다양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규범적 기준이 독특한 심리적 반응을 형성하는 것이다.

즉, 심리학에서 자존감과 긍정적 자아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WEIRD적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소수의 비WEIRD 사회에서는 높은 자존감, 긍정적 자아관이 삶의 만족이나 행복이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내지 않는다.

많은 사회에서 자존감이 아닌 타인의 평가를 중시하지만, WEIRD 사회에서는 관계, 상황에 상관없이 일관된 특성을 길러내는 압력이 성향주의로 이어진다.




Ⅱ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집단의 탄생


WEIRD 사회에서의 가족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독특하고 이국적이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면서도 어떤 씨족에 속해있는 지에 대한 여부부터 친족 연결망에서 차지하는 당사자의 위상까지 신경쓰지 않는다.

한 배우자하고만 관계를 맺으며 친척과 결혼하지 않고 중매결혼이 아닌 연애결혼을 하며 신혼부부는 독립거주를 한다.

재산은 개인이 소유하고 유산 증여는 개인이 결정하며 형제가 소유한 땅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형제가 땅을 팔기로 결정한 것을 거부할 수 없다.

WEIRD 친족 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으로 혈통을 추적하여 계산한다.

정리하자면, (1) 부모 양계 출계 (2) 사촌 간 결혼을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음 (3) 일부일처제 (4) 핵가족 가구 (5) 독립 거주가 바로 WEIRD이다.

대부분 WEIRD 가족의 독특한 성격은 산업혁명, 도시화, 근대 국가 차원의 제도가 낳은 산물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오늘날 세계화를 통해 그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비WEIRD 사회들이 WEIRD 사회의 공식적인 세속적 제도를 채택함에 따라 집약적인 친족 기반 제도가 서서히 퇴화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 지구적인 경제, 정치적 힘이 습격하는 가운데 친족 기반 제도는 상당한 회복력이 있음이 밝혀졌다.

유럽의 경우, 역사적 순서가 정반대였다.

서기 약 4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유럽의 많은 부족적 인구 집단들이 지닌 집약적 친족 기반 제도가 퇴화하고 해체되었으며 결국 파괴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로 발전한 기독교의 한 분파가 주범이었다.

이후 전통적 사회 구조의 폐허 위에서 이해나 믿음에 근거하여 자발적 결사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는데, 친족 관계의 강화라는 경로와 차단된 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유럽에서 집약적인 친족 기반 제도가 해체되고 독립적인 일부일처제의 핵가족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 근대 세계로 나아가는 어마어마한 눈사태를 일으킨 하나의 조약돌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WEIRD 가족의 뿌리는 교회가 점진적으로 채택하였던 교리, 금기, 규정들이 서서히 확대되는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서로마 제국이 종언을 고하기 전에 시작되었다.

교회의 믿음과 관행은 유럽인들의 마음과 생각을 놓고 많은 신들과 의례, 제도 등에서 경쟁했다.

오늘날의 시점에서, 서방교회가 이러한 종교 경쟁에서 수월하게 승리를 쟁취하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서방 교회가 유럽의 전통적인 여러 신과 의례를 절멸시키고 다른 형태의 기독교를 앞지르면서까지 그들을 압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금지, 규정, 선호 등의 극단적인 교리에 있다.

기독교의 성서에 이러한 교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방침들이 초자연적 위협, 세속적 차별과 결합되면서 점차 의례로 포장되어 모든 것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이러한 관행이 기독교인들의 내면에 자리잡아 이후 세대들에게 상식적인 사회 규범으로 전달된다.

"서구 기독교가 우연히 갖게 된 특별한 능력은 친족 기반 제도를 해체하는 동시에 기독교 제도의 확산을 촉진하는 법을 '알아낸' 것이었다."


참고로 교회의 영향력이 미치기 이전에 유럽 부족들은 이러한 양상을 나타내었다.

1. 사람들이 부족 집단이나 부족적 연결망 안에서 친족 기반 조직에 얽혀서 살았다. 확대가족 가구는 지펜 sippen(게르만족)이나 셉트 septs(켈트족)라고 불리는 (씨족, 가문, 혈족 등) 더 큰 친족 집단의 일부였다.

2. 상속과 혼인 후 거주는 부계 편향적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확대 부계 가구에서 살았고, 부인이 남편 쪽으로 거주지를 옮겨서 남편 친척과 함께 살았다.

3. 많은 친족 단위가 영역을 집단적으로 소유하거나 통제했다. 개인적으로 영역을 소유하는 곳에서도 종종 친척이 상속권을 보유했고, 따라서 친척들의 동의 없이 땅을 팔거나 양도할 수 없었다.

4. 규모가 큰 친족 기반 조직들이 개인에게 법적,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했다. 친족 집단 내부의 분쟁은 관습에 따라 내부적으로 판정되었다. 공동으로 책임을 지기 때문에 친족 집단 간 분쟁에 대해 처벌이나 벌금을 부과할 때 의도성은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5. 친족 기반 조직이 성원들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했다. 이 조직들은 노인뿐만 아니라 병들거나 부상당하거나 가난한 성원들까지 보살폈다.

6. 친척과 중매결혼을 하는 것이 관습이었고, 혼인 지참금이나 신부값 (신랑이나 신랑 가족이 신부의 값을 지불한다) 같은 혼인 지불금도 관습이었다.

7. 신분이 높은 남성의 경우에 일부다처제가 흔했다. 많은 공동체에서 남성은 보통 동등한 사회적 신분의 '본처'를 한 명만 얻을 수 있었지만, 이후에는 사회적 신분이 낮은 후처를 더 얻을 수 있었다.


가족 조직과 사회적 연결망에서 일어난 변화에서 비롯된 심리적 변화를 살펴보면 새롭게 형성된 제도, 조직이 왜 일정한 방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새로운 수도회, 도시, 대학은 점점 개인에 초점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법률과 규범을 구축하면서 각 구성원에게 특권, 의무, 책무를 부여했다.

이러한 자발적 조직들이 번성하기 위해 유동적 개인들을 끌어모아야 했기에, 상호 합의한 원칙을 고수하게 된 것이다.

집약적 친족 관계의 구속을 받는 중세 유럽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보편적 도덕, 개인적 책임 의식, 강한 자유의지 개념을 가진 기독교였다.

즉, 이러한 독특한 토양에서 사회 규범의 씨가 발아해 점차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Ⅲ 근대 세계의 문을 열다


몇 세기에 걸쳐 서구의 과학, 법률, 유럽의 종교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되었는데, 이러한 유력한 공식 제도와 세계 각지에 스며든 종교들은 정확히 어디서 온 것일까?

많은 이들은 이러한 거대한 제도가 이성의 소산이자 합리성의 중대를 대표한다고 보는데 이는 교회의 교리를 벗겨내고 이성을 적용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 각지의 파편화된 공동체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WEIRD 심리는 이에 속한 사람들이 특정한 종류의 사고, 규칙, 믿음, 관행 등을 고안하고 지지하고 채택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러한 새로운 사고, 법률, 정책은 자발적 결사체들 사이에 끊임없이 벌어진 집단 간 경쟁에 의해 걸려지고 선별된다.

공식적 제도에 폭넓게 영향을 미쳤을 WEIRD 심리의 네 가지 측면은 바로 이렇다.

1. 분석적 사고: 촘촘한 사회적 상호연계가 부재한 채 개인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더 잘 헤쳐나가기 위해 사람들은 점차 전체론적(관계론적) 사고를 버리고 분석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 좀 더 분석적 사고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개인, 사건, 상황, 사물을 설명할 때 그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것이 가진 속성에 따라 관련된 범주로 분류하는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개인은 행동이나 사물을 ('그것은 원자다' 혹은 '그는 외형적인 사람이다'와 같이) 그 속성이나 범주에 따라 분류하여 분석적으로 설명한다.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모순을 걱정하기 때문에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더 높거나 낮은 범주나 구분을 찾으려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체론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모순을 보지 못하거나 포용해버린다. 유럽에서는 분석적 사고방식이 점차 전체론적 사고방식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분석적 사고가 규범적으로 옳고 높게 평가된다.

2. 내적 속성: 사회적 삶을 이루는 핵심이 관계에서 개인으로 이동함에 따라 개인의 내적 속성의 유의미성이 점차 강조되었다. 여기에는 성향, 선호, 인성 같은 안정된 특성뿐만 아니라 믿음과 의도 같은 정신 상태도 포함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률가와 신학자들은 심지어 개인이 '권리'를 갖는다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3. 독립성과 비순응성: 자기만의 독특함을 배양하려는 동기를 자극하는 가운데 전통과 오랜 지혜, 현명한 연장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공경심이 서서히 약해졌다. 타당한 진화적 이유 때문에 모든 곳의 인간은 또래에 순응하고, 연장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지속적인 전통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친족 간의 유대가 약하고 비개인적 시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경향을 강하게 밀어내면서 자기 과신과 자기 자랑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주의와 독립성, 비순응을 선호한다.

4. 비개인적 친사회성: 관계가 없는 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대하기 위한 비개인적 규범이 점차 삶을 지배함에 따라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나 부족적 정체성, 사회 계급과 무관하게 자기 집단이나 공동체(도시, 길드, 수도원 등)에 속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공평한 규칙과 비개인적 법률을 선호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맹아적인 느낌을 근대 세계에 만개한 권리나 평등, 공평 등의 자유주의적 원리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중세 성기, 교회와 자유도시에서 더 WEIRD한 심리가 등장하니 서구적 정부와 법률 개념을 뒷받침하는 관념이 더욱 직관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으며 집약적 친족이 해체되고 부족적 소속 관계가 사라지면서 개인을 다스리는 법률이 더 쉽게 시행되고 대표의회가 더 수월하게 발전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주의적 심리를 가진 보통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자발적 결사체를 이루면서 관념들이 서서히 형성되었다.

다른 조직과의 경쟁에서 신규 성원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자신들의 조직을 이끌어야 하니, 사회 규범은 점점 늘어가고 조직적 관행의 목록이 만들어지고 현장에 기록되고 성문법으로 정식화된 것이다.

12세기 문화를 특징 지은 개인적 의도, 개인의 동의, 개인의 의지에 대한 관심은 교회법의 여러 분야에 파급 효과를 미쳤는데, 12세기 말에는 두 당사자가 동의만 하면 어떠한 형식적 절차 없이 결혼이 유효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즉, 계약법에서 기본적인 요건만 갖춘 약속도 구속력을 갖는다고 간주했던 것이었다. 핵심은 약속한 당사자의 의도이다.


산업화 이전 몇몇 유럽 인구 집단에서 더 WEIRD한 심리는 인간 관계와 물리적 세계를 다루는 것을 포함해 일정한 종류의 법과 규범, 원리의 발전과 확산을 선호하였고 새로이 등장한 서구 법률과 과학은 거꾸로 WEIRD 심리의 측면들을 더 강화하였다.

새로운 법적 개혁의 영향을 살펴볼 때, 민주적 제도가 미친 심리적 효과에 관한 연구가 가장 적합하며 과학 또한 인식 규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부분도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동물인 것인가?

문화와 문화 진화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제도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인가?

친족, 결혼, 의례가 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인가?

사회의 규모와 복잡성이 왜 커진 것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인가?


애덤 스미스가 말하길, "사회를 위해 인간을 만들 때, 조물주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자신의 형제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욕구와 그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에 대한 혐오를 부여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형제들의 호의에 기쁨을 느끼고 형제들의 혐오에 고통을 느끼도록 가르쳤다. 그리고 형제들의 동의를 가장 기쁘고 가장 유쾌한 것으로, 동시에 형제들의 반대를 가장 수치스럽고 불쾌한 것으로 만들었다."라고 했다.


문화적 학습 능력이 향상되면서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가 강화되었고 복잡한 적응 과정의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자 유전자와 문화 사이에 자가촉매 피드백이 형성되었다.

결국 인간은 공동체의 유산에 생존 자체를 의존하는 불가피한 문화적 학습자가 되었다.

어떻게 누적적인 문화적 진화 과정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해야 앞서 언급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밝힐 수 있다.


범위는 광범위하지만 구체적인 참고 자료를 토대로 현대 서구 문명의 번영을 가져온 다섯 가지의 키워드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

인간은 문화적인 종이기에, 오랜 시간동안 주적적인 문화적 진화의 산물인 기술, 언어, 제도 등을 흡수하면서 단순히 치아, 어깨, 발 뿐만 아니라 뇌와 심리까지 형성할 수 있었다.

즉, 우리는 매우 다양한 여러 문화적 심리가 이질적인 여러 사회의 저변에 흐른다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동물행동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님의 특별 추천사가 수록되어 있어 흥미로웠는데, 참고로 하버드대학교 에드워드 윌슨 교수님이 최재천 교수님의 스승이라고 한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고 「총, 균, 쇠」 다음으로 집중해 읽은 책 중 하나이다.

역사와 인문의 콜라보는, 나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아 언제나 새롭고 짜릿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구석 뮤지컬 - 전율의 기억, 명작 뮤지컬 속 명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뮤지컬, 발레는 물론 음악 영화를 굉장히 사랑하기에, 놓칠 수 없었던 책 중 하나이다.

역대 명작들이 한데 모여 가장 좋은 명언들만 추려놨으니 책장에 꽂아놓고선 두고두고 보기 좋다.


저자, 이서희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고전을 재창작한 뮤지컬부터 한 번쯤 제목은 들어보았을지도 모르는 국내 창작 뮤지컬까지, 저자는 5가지의 주제로 30편의 작품을 큐레이션하여 뮤지컬이 낯선 관객을 위한 가이드를 만들었다. 뮤지컬이 품고 있는 배경과 서사부터 아름다운 가사와 무대 영상에 이르기까지, 어느 순간 공 연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며 누구나 쉽게 뮤지컬에 다가갈 기회를 만들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우리는 살아가며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려움을 맞닥뜨리고는 한다. 하지만 뮤지컬 속의 인물들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고민하고, 사랑하고, 도전한다.

가까우면서도 낯선 장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시작으로 순식간에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 저자는, 보면 볼수록 흥미롭게 다가오는 뮤지컬의 “회전문”에서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 사회에 지쳐 있는 독자들에게 ‘알고 보면 더 흥미진진한’ 뮤지컬의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부랑자의 노래, 「노트르담 드 파리」


시인 그랭구아르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대성당의 높은 벽이 펼쳐진다.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를 대성당의 시대로 이끌며 파리에서 일어난 특별한 연애 사건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클로팽이 이끄는 부랑자의 무리가 파리에 도착해 노트르담 성당의 안식을 청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느 날, 생김새가 흉한 이를 교황으로 삼는 광인들의 축제가 열린다.

교황으로 선정된 사람은 다름아닌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인 콰지모도였다.

생김새가 흉하고 꼽추였던 콰지모도에게 사람들은 왕관을 씌워 모두가 구경할 수 있게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소란스러워지자 성당의 부주교인 프롤로는 이들을 해산시키고 콰지모도에게는 민중을 현혹하는 에스메랄다를 체포하라고 지시한다.

프롤로의 손에서 자란 콰지모도는 거절하지 못하고 에스메랄다를 납치하기 위해 미행하지만, 근위대장인 페뷔스에게 발각되어 체포되고 에스메랄다를 위험에서 구한 페뷔스는 '발 다무르' 카바레에서 만나자고 제안한다.

부랑자들은 자신들만의 궁전을 세우고 무질서한 몸짓과 우렁찬 목소리를 과시중이었는데 그랭구아르가 부랑자들의 영역에서 어슬렁거리다 붙잡히게 된다.

클로팽은 구랭구아르와 결혼할 자가 나타나면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니, 에스메랄다는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명목뿐인 결혼이지만 그와 결혼하겠다고 나선다. 사실 에스메랄다 또한 페뷔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한편 페뷔스에게 붙잡힌 콰지모도는 사지가 묶인 채 광장으로 나와 에스메랄다를 납치한 벌을 받게 되는데, 콰지모도가 힘겹게 물 한 모금을 군증들에게 원하자 그 틈에서 나타난 에스메랄다가 그에게 물을 건네준다.

이를 계기로 콰지모도 또한 에스메랄다에게 애정을 느낀다.

결국, 콰지모도, 프롤로 그리고 페뷔스는 각자의 방식으로 에스메랄다를 염원하게 된다.

발 다무르 카바레에서 만난 페뷔스와 에스메랄다. 그런데 누군가 에스메랄다의 칼을 훔쳐 페뷔스를 찌르게 되어 에스메랄다는 살인 혐의를 받고 성당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프롤로는 에스메랄다를 교수형에 처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한편 죽은 줄로만 알았던 페뷔스가 죽지 않고 살아나 약혼녀 플뢰르를 찾아가는데, 플뢰르는 에스메랄다가 처형당하지 않는다면 약혼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처형식이 치뤄지는 날, 프롤로는 페뷔스를 찌른 사람이 자신이며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자백하게 되고 콰지모도 또한 에스메랄다를 구하기 위해 감옥에 갇혀 있던 부랑자들을 풀어줘 버린다.

에스메랄다는 부랑자들과 함께 도망가지만 프롤로의 군인들에 의해 이내 붙잡히고 부랑자 무리들은 파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국 클로팽은 사망하고 페뷔스는 플뢰르와의 약속때문에 에스메랄다를 냉정하게 외면해 버린다.

콰지모도와 프롤로는 노트르담 성당의 탑 꼭대기에서 에스메랄다를 찾아내게 되고 콰지모도는 프롤로에게 에스메랄다를 살려주라고 애원하지만 자신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던 에스메랄다를 떠올리며 조소를 짓는다.

이에 분노한 콰지모도는 프롤로를 탑 꼭대기에서 밀어버리고 에스메랄다 또한 결국 처형당하게 된다.

그렇게 죽음 속에서도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겠다는 콰지모도의 노래로 막이 내린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인 「파리의 노트르담」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운명과 비극의 시대 속에서 몰아치는 감정을 웅장한 노래와 세밀한 연출로 표현된 작품이다.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힘, 「헤어 스프레이」


1962년 볼티모어, 뚱뚱하지만 밝고 유쾌한 소녀 트레이시가 그 주인공이다.

학교에서도 항상 시계만 바라보는 트레이시는 친구 페니의 집에서 <코니 콜린스 쇼> 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코니 콜린스 쇼>는 앰버와 링크가 주연인 10대들의 댄스쇼이다.

다만, <코니 콜린스 쇼>는 모두 백인의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흑인의 날에만 흑인 아이들이 출연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니 콜린스 쇼>에서 새 멤버를 영입하기 위해 오디션을 진행하게 되고 트레이시는 뚱뚱할 뿐만 아니라 하얀 피부가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오디션 요청을 거절당한다.

오디션 때문에 학교를 빠졌었던 트레이시는 벌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흑인의 날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춤연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트레이시는 춤을 가장 잘 추는 흑인 소년 시위드와 친구가 되어 춤을 배우게 되고 링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후 트레이시는 무도회에서 춤을 춘 계기로 <코니 콜린스 쇼>의 고정 멤버로 발탁되고 인기 멤버로 부상하게 된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앰버는 미스 틴에이지 스프레이가 될 기회까지 날려버릴 것 같자 앰버의 엄마인 벨마는 급기야 쇼에서 흑인의 날을 폐지해버린다.

이에 반발한 트레이시는 선발 대회 하루 전날 방송국까지 시위 진행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경찰들에 의해 중단되고 시위드와 흑인 친구들의 도움으로 벨마를 피해 트레이시는 겨우 스튜디오에 들어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회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앰버도, 트레이시도 아닌 아이네즈였다.

생방송임을 망각한 채 앰버에게 투표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털어놔버린 벨마는 결국 프로그램에서 해고되고 트레이시는 링크와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며 해피엔딩으로 막이 내린다.


1988년 코미디 영화를 기반으로 2002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2007년에 다시 한 번 각색하여 완성된 뮤지컬이다.

세상의 억압과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미래를 마련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노래한 「헤어 스프레이」는 미래를 향한 작은 기적을 이뤄내는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 각광받았던 작품이다.




짙은 어둠 속에서 듣는 유령의 세레나데, 「오페라의 유령」


1905년, 파리 오페라 극장.

원숭이 모양 오르골을 낙찰받은 라울은 1880년대의 파리 오페라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프리마돈나 칼롯타의 리허설 도중 무대 소품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소홀한 대처에 화가 나 극장을 나가버리게 되고, 그 빈자리를 메꾼 것이 바로 크리스틴이다.

칼롯타를 대신해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 크리스틴에게 어린 시절 친구였던 라울이 찾아온다.

라울과 크리스틴은 음악의 천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라울은 단지 상상 속 인물일 뿐이라며 저녁 식사를 하자고 청한다.

라울이 돌아가자 화가 난 음악의 천사, 오페라의 유령은 거울 속에서 나타나 크리스틴에게 밤의 음악을 만드는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며 유령의 은신처로 데려가게 된다.

호기심이 생긴 크리스틴은 몰래 유령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흉측한 얼굴을 들킨 유령은 크게 분노하며 크리스틴을 돌려보낸다.

한편 새로운 오페라를 준비하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로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크리스틴이 카롯데의 역할을 대신하라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고 결국 공연 중 단원의 시신이 천장에 매달린 채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자신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 크리스틴을 데리고 무대에서 도망치는 라울, 그는 크리스틴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두 사람은 사랑의 노래를 주고받는다.

이를 본 유령은 분노하여 공연장에 있는 샹들리에를 추락시켜 버린다.

시간이 흘러, 극장에서는 가면 무도회가 열린다.

그사이 크리스틴과 라울은 약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오페라의 유령이 나타나 자신이 쓴 오페라에 크리스틴을 주연으로 내세워 즉시 제작하라고 요구한다.

유령을 잡기 위한 극의 막이 오른다.

크리스틴은 피앙지가 아닌 유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크리스틴은 유령의 가면을 벗겨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게 한다.

분노한 유령은 지하 은신처로 크리스틴을 강제적으로 데려가고 뒤쫓아온 라울을 붙잡아 크리스틴에게 협박한다.

연민을 느낀 크리스틴은 그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며 다정하게 키스하고 이에 위로와 감동을 받은 유령은 라울과 크리스틴을 풀어준다.

은신처로 도착한 군중들이 유령을 잡으려고 했을 때는 그의 가면만이 남아 있었고, 그렇게 막은 내린다.


사랑을 주제로 한 「오페라의 유령」은 깊고 비극적이며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집착의 끝을 보여주기도 한 작품이다.




책에 나온 작품들 중 세 작품 빼고는 다 봤었으니 뮤지컬도, 영화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특히나 애정하는 작품들은 2-30번도 넘게 봤던지라 가사가 절로 머릿속에서 그려질 정도이다.

미국에서 잠시 머물렀을 때, 무조건 많이 듣고 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지라 방대한 양의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거니와 뉴스까지 섭렵했었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사라 브라이트만이 주연으로 섰던 뮤지컬부터 지금의 주연들로 메꿔진 뮤지컬까지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모른다.

특히 영화는 스무 번도 넘게 봤으니 노래만 나오면 곧장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뮤지컬로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 보지 못했고 극장에서 영화로 아쉬움을 달랬던 「헤어 스프레이」였기에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헤어 스프레이」와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영화와 뮤지컬 흡사하게 만들어져서 뮤지컬 일부 영상은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자신을 믿고 선택한 길을 꿋꿋하게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미래를 향한 준비과정은 아무리 고되고 힘들지라도 결국은 그 모든 순간들이 설렘으로 가득찬 순간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활기찬 내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뮤지컬로 최고이기에 고민이 많을 때면 영화 「헤어 스프레이」를 꼭 보곤 한다.


줄거리를 신나게 쓰는 내 모습을 보니 약간의 웃음이 새어나왔다.

(발레, 뮤지컬, 영화는 없어서는 안 될 문화생활인 것 같다...♥)

코로나 터지고나서 극장 한 번도 못 가봤을 정도로 문화생활 자체가 없어졌지만 이번 달부터 조금씩 즐겨보려고 한다.

(뮤지컬 볼 생각에 신이 난다, 신이 나♪)

하나도 빠뜨릴 것 없이 명작들로만 한데 모아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에세이, 『방구석 뮤지컬』은 힐링 그 자체다.

연말선물로 몇 권 더 구매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
백승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니체 그리고 니체 철학.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철학적·문학적 해석이 담아져 있으며, 우리가 긍정의 철학으로의 길로 갈 수 있게끔 안내해준다.


저자, 백승영은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이자,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 니체학회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차라투스트라


이란 북부 출신의 예언가인 그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고 절대 유일신 숭배를 주장했던 조로아스터교의 지도자이다.

이전에 있던 관습들이 있기에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다기보다는 체계적인 형태로 재편한 것이 옳다고 표현되며 이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근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한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의지에 세상이 따른다고 주장한 바를 보면 이원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원론에 가까우며 어느 정도 유일신 사상을 지녔다고 파악하는 것이 맞다.

그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알렸던 것은 역시 프리드리히 니체의 영향이 크다.

"신은 죽었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10년간 수행하여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는 내용을 담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내었다.

실질적으로 이는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이라고 하기보단 니체가 그를 인용해 자신의 사상을 내비친 것이 더 정확하다.

참고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책의 영감을 받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 라는 교향시를 발표했다.



◈ 니체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목사였던 니체는 첫째 아들로 태어난다.

니체는 어린 시절부터 엄숙하고 진지해 소년 시립초등학교에 함께 다녔던 급우들이 그를 '어린 목사'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니체는 학교를 옮겨 피아노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이 굉장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니체는 수업료 면제를 받으며 다닐 수 있었던 수도원을 마다하고 '돔 김나지움'에 다니게 된다.

창의성이 높았던 그는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는 내면적으로 매우 고독했다고 한다.

휴학할 정도로 심한 두통을 앓았으며 이후 증세가 악화돼 정신착란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평생 반복되었다고 한다.

수학에 매우 취약했던 반면에 그리스어와 라틴어 논문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니체는 굉장히 생각도 많고 (내면적으로) 고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교시절의 반항기질이 대학교 때까지 흘러가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에 빠졌었다.

결국 신학과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덕분에 철학과 연을 맺게 된다.

군대생활을 하던 도중 다치는 바람에 제대하게 되면서 스승의 추천을 받아 스물네 살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고전어 교수로 초빙된다.

이후 1870년에 전쟁이 일어나 위생병으로 지원했다가 심한 이질에 걸려 곧 제대하였고 이때부터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도덕이 삶을 죽인다면서 전근대적 철학과 도덕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

서양에서의 기독교 사상은 이랬다. (참고로 로마제국 이후 유럽은 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가진 것이 없고 아픈 자들을 축복하는 반면에 가진 것이 많고 힘센 자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 영원히 저주를 받는다고.

이것이 바로 노예도덕이다.

도덕을 단순히 반대하기보다는 새로운 도덕을 확립시키고자 했던 니체, 그의 사상은 20세기의 철학자들에게 많은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차라투스트라』 1부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과 <차라투스의 말>로 구성된다.

<서설>은 10개 절을 갖고 있고 <말>은 총 22개 장이 엮여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의 서설>로 시작하는데, 이는 총 10절로 형식적인 서문 대신 『차라투스트라』의 서문 역할을 한다.

핵심사유들로 간단하게 스케치되며 스토리라인은 '차라투스트라의 산에서의 하강(1) -> 신의 죽음에 대한 고지와 소통의 실패(2) -> 위버멘쉬에 대한 가르침(3) -> 당위로서의 위버멘쉬와 그 위험(4) -> 소통의 실패와 인간말종에 대한 가르침(5) -> 사이비 자유정신의 추락(6) -> 차라투스트라의 불완전한 지혜와 소통의 실패 및 그의 책임회피(7) -> 세 가지 유혹과 극복(8) -> 차라투스ㅡ라의 새로운 지혜, 창조자(9) -> 인간을 창조자로 만드는 영원회귀 사유(10)에 대한 인식'의 순서로 전개된다.

이 중심에는 소통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염원이 놓여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지혜를 전수함으로써 사람들이 깨우치기를 바랐지만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 완전히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깨우친다.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선결과제라는 것을.

이러한 존재가 바로 창조자이며, 인간이 창조자가 되기 전에 차라투스트라가 원하는 소통은 불가능하며 위버멘쉬로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위버멘쉬는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신체적 존재이며 인간 자신과 세계를 긍정할 수 있는 존재이자 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완성시키는 주인의 역할을 하는 존재다.

여기서의 개념은 힘의 의지와 허무주의 그리고 영원회귀 사유와의 정합적 구도를 완성시키는 매개 개념으로 사용된다.


<서설>의 1절은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을 그리는데 하강의 이유가 관계론의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니체는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과 차라투스트라의 높은 산에서의 10년의 차이를 주목하라고 한다.

산은 생명력이 풍부한 공간이자 넓은 시야를 갖춘 해방과 자유의 공간인데 광야는 생명력 측면에서 산과 비교할 수 없으며 인간에게 있어서 살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공간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의 지혜의 차이를 결과로 보여주며 니체는 자신의 철학적 사상이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능가한다고 누설하려 하는데 이는 말그대로 자신만만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을 두고선 심장의 변화때문이라고 묘사하지, 정신이 변했다거나 생각이 변했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을 신체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로지 정신적인 존재도, 육체적인 존재도, 의지적인 존재도 아니며 정신성과 육체성과 의지가 어우러져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통일체다.

우리가 자신이라 부르는 것도 이런 총체적인 모습인 것이다.

니체의 이런 생각은 인간을 정신성과 육체성의 두 단위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원론적 인간 이해 전체를 겨누지만, 특히 정신성을 인간의 핵심으로 보는 '이성중심적 인간관'에 대한 반박이다.

심장이 멈추면 육체도 죽지만, 정신도 죽는다. 아니, '나' 전체가 죽어버리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심장의 변화는 곧 '총체로서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 신체이기에 내적변화는 행동으로 곧 표출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이유를 태양에게 말하며 축복해 달라고 요청한다.

"시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그대여. 나를 축복해 달라! 그대의 환희를 온 누리에 되비추어 줄 이 잔을 축복해 달라"

시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태양이라 표현한 것은 니체의 의도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지혜가 태양과의 협동작업의 결과였듯이 행복 또한 마찬가지이기에 관계론적 시각이 전제되어 있으며 시샘하는 신에 대해 의도적으로 대비하였으며 태양이라는 지상의 자연물을 초월적 존재인 신의 자리에 대체시키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차라투스트라가 신에게 축복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니체에게 있어서 초월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창작물에 불과했다.

시샘 없는 태양은 "대지에 충실하라",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데 차라투스트라의 이러한 태도는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태도와 극적 대비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로서 믿음, 겸손, 지적 겸양 등을 가르치며 축복도 신에게 요청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겸손하다.

초월세계와 신을 믿는 자의 모습은 차라투스트라는 현실세계와 인간을 믿는 자가 이렇게 다른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나라를 알리는 선지자라는 자화상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하려는 교육자라는 자화상으로 등장하게 된다.


3절에서 차라투스트라의 두 번째 메시지가 전달된다.

'인간은 위버멘쉬로 살아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의 현재 모습은 사람답지 않으니 지금의 모습을 뛰어넘어 더 나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정언정 주장 하나를 가르침이라며 불쑥 제시한다.

이는 19세기 유럽인들에 대한 일침으로, 니체에게 유럽인은 데카당이며 니체는 정신의 병리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를 건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니체는 출발점은 인간의 각성이기에 이를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소크라테스처럼 등에의 역할을 자처하게 한다.

이것이 일차적인 이유였다면 사실상 이는 인간 일반에게로 향하는 가르침이었다.

앞서 위버멘쉬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듯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 간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고 지녀야 할 과제라고 니체는 생각했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그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버멘쉬의 이 기본적인 속성을 충족시킨다. 물론 이것이 위버멘쉬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위버멘쉬로 사는 첫걸음을 떼고 있는 셈이다.


9절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새로운 지혜를 얻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새롭게 얻은 지혜를 진리라고 부르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새로운 지혜가 서사 전체를 전개시키는 핵심요소라고 강조한다.

인간이 '창조자'라는 것은 줄타기 곡예사가 아닌 줄 타는 춤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리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수행하려는 건강한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는 창조자라는 조건의 의존한다.


10절에서는 인간을 창조자로 결단하게 만들 때 필요로 한 영원회귀 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차라투스트라의 독백이었던 9절에서 그는 혼자였고 여전히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니체는 자유정신, 자율적 의지, 창조자라는 지혜만으로 아직 차라투스트라의 진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설정을 염두에 두고 10절을 시작한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하강은 시작되었다."



◇ 차라투스트라의 말


서문 역할을 했던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뒤에는 1부의 본문이 따른다.

1장 앞에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1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를 아우른다. 『차라투스트라』 2~4부의 시작에는 제목이 따로 없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 및 최종부>라고만 되어있다.


1부에서 인간의 건강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창조자는 "위험하게 살지어다!"를 모토로 삼으며, 정신의 자유를 발휘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기, 극복 과정을 견디기, 그 과정에서 명랑성과 용기를 잃지 않기,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쟁취하기, 내적-외적 싸움을 창조적 힘으로 활용하기, 허영기나 대중성을 벗어버리기, 패배의식을 버리고 저항하는 것들로 수행한다.

이것이 자율적이고도 주권적인 인간의 모습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긍지, 용기와 의지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창조자의 모습이 위버멘쉬의 한 측면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는 1부처럼 총 22장으로 엮여있으며, 차라투스트라의 자세와 새로운 시작의 이유를 간단히 제시하면서 2부의 문이 열린다.

2부의 시작이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의 위기와 사람들이 처한 위험때문이었다면 그 끝은 차라투스트라 자신의 위험때문이며 그 위험을 타개할 성숙된 지혜의 필요성이 3부를 여는 계기가 된다.

2부는 니체의 시대비판을 다루고 있다.

니체 철학의 대명사인 '힘에의 의지' 개념이 중심축으로 작동하는데 전면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3부는 총 16장으로 영원회귀 사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원회귀 사유는 니체 스스로 "사유 중의 사유"라고 할 정도로 니체 철학에서는 물론 『차라투스트라』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허무주의 극복을 위한 사유실험의 형태, 매 순간의 영원성 확보, 힘에의 의지로서의 세상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가능성 확보 등의 양태로 제시되는데 이 면모들이 잘 어우러져야 인간을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노래'를 부르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려는 차라투스트라의 과제가 비로소 수행된다.

1-2부에서 묘사된 자유정신에는 명령자의 엄중함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2부 말미에서 자신이 지혜와 진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는 자의 엄중함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가시화시켰다.

인간에게 위버멘쉬로 결단하라고 명령하는 자세로 영원회귀 사유를 입에 올린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자기극복을 담은 3부는 이를 왜 필요로 하고 어떻게 발휘되는지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으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 가지 위대한 (독일인에 의해 발견된) 철학적 관점들.

생성과 발전이라는 관점.

인간 삶의 가치라는 관점(독일 염세주의의 불쌍한 형식이 극복된다).

나에 의해 결정적인 방식으로 한데 모아진다.

모든 것은 되어가고 영원히 다시 회귀한다. 탈출은 불가능하다."


니체는 영원회귀 사유가 생성과 발전, 인간 삶의 의미라는 문제와 연결되고 이를 한꺼번에 해명하려고 했다.

생기존재론과 관련한 측면을 보면 영원회귀 사유는 생기존재론을 이론적으로 보충해서 완성시키고 있다.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한다. 이것이 가장 최고의 힘에의 의지다.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가 존재의 세계에 극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고찰의 정점."

이원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내재적 필연성을 확보해 무조건적 긍정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니체는 생기존재론을 최고의 이론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생성이 영워니 지속된다는 것이 보증되어야 한다.

그것이 언제든, 위나 아래에 힘에의 의지 생성 외에는 다른 존재방식이 없으니 이후 생기존재론은 보증된 이론일 수 있었고 비로소 고찰의 정점일 수 있었다.


양적으로 불변하는 고정된 힘의 크기를 지녀도 결국 질적으로는 변화한다.

힘의 양의 성장과 감소는 대응관계를 형성하는 변화를 보이지만 유한한 양의 힘에의 의지의 싸움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 진행되기에 한 번 형성된 특정한 힘질서의 관계는 반복된다.

즉, 힘에의 의지의 관계세계가 그 세계가 아닌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은 없다.

이렇듯 영원회귀가 확실하면 세계는 생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는데 이는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니체 철학에서 실제로 회귀하는 것은 단 하나 힘에의 의지다. 자신의 본성으로의 회귀라는 양태로.

힘에의 의지의 본성은 항상 힘상승과 지배를 추구하는 것인데 이는 본성에 맞게 의지는 움직인다는 것이다.

본성에 충실하게 자신의 힘을 사용하면 또 다시 본성에 충실한 움직임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본성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점이다.

니체는 영원회귀 사유를 사유실험의 형태로 제시하면서도 실존적 결단을 요청한다.

이를 간절히 바랄 정도로 삶의 주체가 될 것인지 그 반대가 될 것인지를.


유의미한 삶의 영원회귀를 선택하는 주체는 바로 위버멘쉬이기에, 영원회귀 사유는 우리를 위버멘쉬로 결단하게 하고 각성시키면서, 허무주의를 극복해 내는 실천적 기능을 하게 된다.




니체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에 요구되는 것은 학문적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을 위해 모든 개인적 요소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원칙을 과감하게 파괴했다.

자신의 삶을 철학적 방식으로 행해지는 '큰 해방'으로 해석했고 깊이 묶여있던 인식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것이 그의 삶이었다.

이를 믿었기에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니체는 자유로운 사고를 구속하는 감옥이 확신이며, 이는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라고 말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공부하며 읽었던 적이 언제였을까?

대학교 때, 교양으로 철학수업을 들었던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한 번에 슥- 읽고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남아 한 달 동안 곱씹으며 읽고나니 이제야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요점정리를 다 하기에는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인상깊었던 부분들만 서술해보았는데, 글쓰기노트에 적어가면서 읽었던 것을 썼기 때문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니체를 알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알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다가 읽은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도중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선 이해했으니깐.

무엇보다 굉장히 세심하고 구절 하나하나 해설이 잘 되어있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내용이 함께 올라가야 할 부분이 있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평을 쓸 때,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를 조금 더 보충해 쓸 예정이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그 본질을 찾아가는 것이 철학이라 하였다.

역시 철학은 재미있어도 참 어려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수많은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문의 세계를 들여다본 적은 있는가?

첵을 통해 소설에서 나오는 소재부터 배경까지 찬찬히 살펴보고 나니,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왜 찬사를 받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저자는 말한다, 소설은 가장 공을 들여 만든 정교한 이야기라고.




Ⅰ 역사의 단면을 다룬 벽돌책 도전하기


♣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 시베리아를 담다


'러시아'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단어들이 떠오를 것이다.

애서가인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이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연결되는 끝지점이 있는데 바로 '시베리아'이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드미트리도, 「죄와 벌」의 로댜도, 「부활」의 카튜샤도 시베리아 유형지로 향하게 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실제 도스토옙스키는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명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다행히 사형 집행은 취소되었지만 4년을 감옥에서 보낸 후, 시베리아로 보내져 4년 동안 복역했어야만 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에서 복역했던 경험을 토대로 지은 소설이다.

저자는 특히 시베리아 유형지에는 또 다른 세상이 연결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죄와 벌」의 주인공이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면서 소설이 끝났다는 점을 아쉽게 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궁금증은 책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바로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이다.

사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처음 보게 되는 책이라 드미트리, 로댜, 카투샤의 유배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는 아시아계 민족이 거주하며 수렵과 유목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곳이다.

러시아에게 있어서 시베리아는 모피와 지하자원을 조달하는 식민지에 불과했는데 표도르 1세가 시베리아를 영토로 합병하고 예카테리나 2세가 시베리아 행정청을 러시아 중앙 행정체제로 대체하면서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17세기 러시아에서 중범죄는 대부분 사형으로 다루어졌으며, 있었긴 해도 드물었던 유형 제도가 1649년 전국주민회의법전에서 시베리아 유형으로 공식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지주에게 속한 농노가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시베리아라는 지역을 유배지로 삼는 법안이었다.

광활하고 척박한 땅에서 사람이 살 만한 땅으로 개척을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통제로 공포감을 줄 수 있으니 시베리아 유배형은 러시아 정부입장에서 매우 이득인 셈이었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내용처럼 러시아 권력 체제를 비판하는 위험인물들을 손쉽게 사회에서 격리시키려면 시베리아 유배만 한 것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17세기 중반부터 사형보다 시베리아 유배형이 더 많아져 시베리아는 유배의 땅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 로맨스 소설에 가려진 노예들의 삶


「맨스필드 파크」를 책으로 혹은 영화로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책은 읽었지만 아직 영화는 보지 못해 영화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책과 영화의 내용은 살짝 다르게 흘러간다고 한다.

(책으로) 짤막하게 소개해보자면… 가난한 집안환경에서 성장한 주인공 패니는 이모네집이 있는 맨스필드 파크로 보내지게 된다.

이모부는 엄하고 이모는 무신경하고 큰이모는 구박하고 사촌들 또한 무관심으로 그녀를 대하니 모든 것이 낯설어 쉽게 적응하지 못하지만 사촌오빠 에드먼드만이 유일하게 그녀에게 마음을 써주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패니는 점점 굳건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후 잔잔했던 맨스필드 파크에 스캔들이 터지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에드먼드를 사랑했던 패니는 결국 그와 결혼을 하게 된다.

책 「맨스필드 파크」에서는 이모부가 엄하고 가부장적이어도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영화 「맨스필드 파크」에서는 남미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를 학대하고 성폭행하는 사디스트로 표현된다고 한다.

소설에서 다루지 않는 노예 무역을 영화에서는 여실히 나타내어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준다고 한다.


책에서는 노예 무역이라는 단어가 한 번밖에 나오질 않아 제인 오스틴을 비판하는 비평가들도 더러 있다.

제인 오스틴은 과연 노예 해방에 관심이 없었을까?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는 1800년대로 장남과 함께 안티과로 떠난 해가 1806년이었는데, 1806년은 영국 의회가 노예 매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값싼 노동력으로 운영되던 농장들이 경영난에 부딪히고 있었다.

즉, 출간되기 이전부터 노예 문제는 영국 사회의 큰 쟁점이었던 것이다.

식민지에 농장을 소유했던 이모부 토마스 경이 의회의 일원이었다는 설정 자체가 노예제도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책으로 접해서 노예 무역에 초점을 두지는 않았었다.

줄거리의 흐름에 따라 읽었기에 그러려니 했었는데, 글을 읽고나니 무엇이든 깊게 살펴볼 필요는 있겠구나 싶었다.

어떤 부분으로든 '연결'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저자처럼 노예 무역과 농장체제에 대해 궁금해졌다면, 마커스 레디커의 「노예선」을 살펴보면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선장과 선언, 노예의 시각에서 심층 분석했기에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Ⅱ 복잡한 인간 내면의 소우주 이해하기


♣ 예술의 불멸하는 재료, 질투


출간한 지 80년이 지났지만 대중들에게 뮤지컬이나 영화로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전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증상을 뜻하는 레베카 증후군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고아로 자라 귀부인의 하녀였던 '나'는 한 홀아비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하지만 모두가 전 부인이었던 '레베카'를 사랑하고 잊지 못해 대놓고 무시를 당한다.

모두가 레베카만을 신봉하니 자존감 또한 바닥으로 추락하여, 스스로 레베카보다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질투심에 시달린다.

이 모든 것이 하녀가 꾸민 계략이지만 '나'는 남편에게조차 한 여자로 취급받는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레베카가 앉았던 자리에서 앉아야 했고 레베카가 사용했던 식기를 이용해 식사해야 했고 레베카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그대로 사용해야만 했다.

직접 대면한 적도 없는 레베카이지만 상황 자체가 더 몰고간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진심을 마주하고 나니 '나'가 가졌던 질투심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질투가 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질투에는 샤덴프로이데가 존재한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레베카가 불행해지니 이는 곧 '나'의 행복으로 연결되었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자존감이 올라가니 '수습 하녀'에서 '엄격한 여주인'으로 스스로를 승격시켰고 남편 맥심이 저지른 살인마저도 감싸안는 대담함까지 보여준다.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 는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말하는데 상처를 뜻하는 Schaden과 즐거움을 뜻하는 Fredue의 합성어이다.


질투에 능한 사람들은 삶에서 사소한 질투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시기나 질투가 나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다면 문제가 된다. 「레베카」의 주인공 '나'처럼.

'나' 자신을 잃지는 말아야 한다. 즉, 적정선이 중요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조건이나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니 경쟁사회 속에서 질투는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신들도 질투를 하였다. 질투의 여신이 던져놓고 간 황금사과때문에 트로이 전쟁까지 일어나지 않았는가.

질투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 중의 일부이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는 않을 감정 중 하나인 것이다.




Ⅲ 아는 만큼 빠져드는 일상의 인문학


♣ 고양이, 인류 이전 신의 대리인


저자가 어린 시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선 막연하게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후 다시 읽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이 벽에 넣고 묻어버린 고양이가 끝내 살아남아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아내를 죽인 범죄가 탄로나게 된 이야기인데, 그 기억만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무서웠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고보니 그제서야 보였던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고양이를 일방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을.

고양이 플루토는 애교도 많고 주인을 잘 따랐으며 심지어 외출할 때도 주인을 따라 나오려고 했다.

개는 주인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고양이는 자기 생활도 매우 중요하기에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편이다.

그런데 플루토는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개과였다.

「검은 고양이」를 읽을수록 고양이의 참모습이 궁금해진 저자는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펼치게 되었다.


과거 서양에서는 검은 고양이를 마녀로 생각했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국보 그 자체였다.

이집트인들이 특히 귀히 여긴 이유는 건조한 사막에서 사람과 가축의 목숨을 노리는 코브라를 고양이만이 유일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곡식과 목숨을 지켜주는 고양이에게 신앙의 권위까지 부여하게 된다.

개는 사냥을 할 수 있어 구석기 시대부터 인간의 동료가 되었었다.

이후 농사를 짓는 신석기 시대가 왔고 쥐로부터 식량 창고를 보호하게 되면서 고양이가 뒤늦게 인간의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외가집에 가면 방학 때마다 강아지와 시간을 보냈다.

단독주택이라 옥상에 가끔씩 길고양이가 지나다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없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었는데 미국에 잠시 머물렀을 때 함께 했던 고양이덕분에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조용히 내 곁으로 다가왔고 shake it, shake it, hands를 하면 발톱을 감춘 채 뽀송뽀송한 젤리를 뽐내며 앞발을 손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깨끗하고 깔끔한 것은 물론 조용하고 애교많은 고양이를 보며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을 정도였다.


어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고양이 연쇄살해범, 캣 프레데터를 조명하였다.

재작년 봄, 포항 한 대학교에서 나무 위에 물체를 보곤 모두가 기겁했다고 한다. 잔혹하게 살해된 고양이의 사체였던 것이다.

심지어 고양이를 십자가에 못 박거나 잔인하게 사체를 훼손시키기까지 했는데 경찰의 잠복 수사 끝에 한 남성을 체포하게 되었다.

그는 고양이에게 분노를 표현하였지만 사실 그 대상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쳐 너무 무서웠었다.


성경에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신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릴 임무를 맡겼다고 하지만 사실 그 임무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에게 처음 맡겨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중국 고대 신화에서는 신이 세상을 창조한 다음 동물들을 관리하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고양이에게 맡겼다고 전해진다.

왜일까? 생각이 많고 사색을 즐겼으며 신과 소통하고 다른 동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선사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세상 돌보기보다 따뜻한 햇볕 아래 낮잠 자는 것이 더 좋았던 고양이가 그 다음으로 사람을 신에게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중국 신화를 통해 고양이에 대한 3가지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첫째, 고양이가 원래 언어 체계를 가졌던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고양이는 어쩌면 인간보다 더 똑똑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는 고양이가 쓸데없이 잠을 많이 자는 모습에서 고양이가 철학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잡아내야 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맞을 수 있다.

정신 활동은 육체 활동만큼이나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고양이를 보면 하염없이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을러 보여도 매우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동물이 사실인가보다.

특히 미국에서 고양이와 함께 하며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게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첫번째 이유를 보니 우연은 아니었나보다.




'책이 책을 불러 일으킨다.'

'인문학적 견문이 넓어지는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나니 이 생각부터 번득 들었다.

『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에서 나온 책들을 이미 읽었다면 충분히 배경지식이 되어 새롭게 혹은 덧대어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읽지 않았어도 어려움은 없지만 아마 그 내용이 궁금하여 언급되었던 책들이 어느새 책장에 꽂혀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독서습관 중 하나인 재독에 확신을 들게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 시대를 대표했던 작가가 쓴 고전 소설이라면 꼭 '재독'하기를 추천한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생각의 깊이도 깊어지는데 이 때 읽고 보는 것들이 전부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 제목만 보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성인이 되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여담으로, 책 속의 책을 풀어쓰자니 혹여나 안 읽은 사람들도 있겠다 싶어 나도 모르게 작품마다 줄거리를 쓰고 있었다.

알라딘에서 진행했던 북펀드였던 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덕분에 「죄와 벌」부터 「가난한 사람들」,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재독할 수 있었는데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거의 다 쓰는 바람에 내용이 너무 길어져 따로 빼놔 저장해놨으니 이는 따로따로 작성해 또다른 리뷰로 업로드 할 예정이다.


나도 꽤 많은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중에서 딱 절반밖에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하니 더 많이 보고 읽어야겠구나 싶었다.

특히 아직 보지 못했던 고전소설 위주로 섭렵해야겠다 :D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8-07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의책장 2022-12-16 19:25   좋아요 0 | URL
댓글을 이제야 봤어요! 감사합니다^^
요새 날씨가 정말 추워요. 감기 조심하세요♥

persona 2022-08-07 2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베카도 사두고 읽지 않았는데 얼른 읽어봐야겠네요.

하나의책장 2022-12-16 19:26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전 재미있게 읽었었거든요!ㅎㅎ
Persona님 마음에도 쏙 들 거예요♥
 
착한 여자가 더 상처받는다
라이이징 지음, 신혜영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문득 조그마한 불화가 생긴다면 곧장 생각하게 된다.

'어디서 잘못된 걸까?'

'내가 어느 부분에서 잘못을 저질렀을까?'

나의 잘못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상대방은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예의와 존중이 중시되는 관계라면 상관없지만 같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위치를 '을'로 만든다면 마냥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좋은 며느리, 좋은 딸, 좋은 엄마라는 짐을 내려놔도 좋다.

물론 남자도 마찬가지다.


실제 정신과 의사가 상담했던 다양한 사연들을 다루었으며 사연에 대해 분석하고 조언해주는 것까지 담겨 있다.


저자, 라이이징은 정신과 전문의, 공중보건석사, 의학박사이다. 의학센터 주임을 맡았고 여러 차례 의술 연구를 진행했다.

국제 학술 간행물에 논문 열 편을 기고했고, 현재 개업하여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문과적 뇌로 이과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고, 결혼 경험이 의사 경력보다 3년이 적다. 일만 많고 낭만 같은 것은 잘 모른다.




Ⅰ '좋은 며느리, 좋은 딸, 좋은 엄마'라는 짐을 내려놓다


♠ 사연 | 효도는 아들의 책임이지 며느리의 의무가 아니다


시부모님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면 역시 그냥 순순히 따르는 게 모두가 편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를 감정 없는 로봇으로 만들어갔다.


그녀는 결혼 전에 친정에서 정말 행복했다. 오히려 결혼 후 시집에서의 노동이 힘들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아내와 며느리로서 여러 역할을 해야 했고 거기에 회사까지 다녀야 했으므로 그녀는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야말로 남편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내 부모님이야, 당신 부모님이야?

비록 시어머니의 친구분이 '정말 훌륭한 며느리야'라는 말을 남기긴 했으나 '친정에서 그러고 살다가 이렇게 좋은 집으로 시집왔으니 당연히 감사하며 살아야지'라는 노골적인 눈빛에 그녀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한 번씩 그녀가 옆에 있는 것을 잊었는지 이웃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꾸만 그녀의 친정을 흉봤다. 마치 그녀가 결혼을 통해 고통에서 구제된 것처럼 말했다.



♠ 정신과 의사의 분석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결혼 후의 삶이 쉽지 않음을 느낄 것이다. 왜 결혼 후에 남자의 생활은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 걸까. 남자들은 결혼 후에도 전과 다를 것 없이 쉽고 편하다. 그런데 왜 여자는 시집에도 적응해야 하고 시집 식구들의 요구사항에도 따라야 하며 심지어 주변 사람들의 평가까지 받아야 할까.


과거에 여성이 약했던 것은 경제 문제에서 기인한다.

남편은 결혼 후 집을 떠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아들로 살았다. 거기에 아내가 성실한 사람인 덕분에 '효도는 남에게 맡기고' 본인은 누릴 것을 다 누리며 살았다. 책임감도 떠넘기고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까지 저버렸다.

균형을 잃은 관계는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시부모는 특권을 가졌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시부모와 며느리는 서로 '존중'해야 그 관계가 오래간다.


시부모님을 남편의 부모라고 생각하면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잘 지낼 수 있다. 효도는 남편의 책임이지 그녀의 의무가 아니다.

나의 노력과 희생에 묻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위 사연과 마찬가지로 맞벌이인 경우) 남편과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

원래 가족도 아니었던 며느리도 함께 살면 가사를 분담해야 함을 아는데, 아들로서 당연히 아들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 아닌가.

남자들이 자신의 부모 앞에서는 입을 닦을 수 있어도 아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부모는 아들이니까 받아주지만 아내는 그냥 넘어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너무 말을 잘 들으면 자아를 잃을 수도 있다.



▶ I think …


딸처럼 예뻐해주시는 시부모님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일부일 뿐이다.

처음엔 새식구이기에 잘해줄 순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점차 흐를 수록 느끼게 된다.

결국 시부모님에게 남편만 자식일 뿐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Ⅱ 나의 원칙을 지키면서, 상처받은 나를 사랑으로 감싸 주자


♠ 사연 | 은혜에 보답하라는 형의 강요에 그는 반드시 싫다고 말해야 한다


한 남자가 오랜 시간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다 병원에 오게 되었다.

건장한 체격이지만 두 눈은 실핏줄이 터졌고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상담 내내 아무 일 없다고만 하면서 수면제만 처방받으려고 했던 그가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섯 형제 중 막내였던 그가 태어났을 때 첫째 형은 거의 어른이었다.

고 3이 되던 해에는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형제 중 가장 먼저 결혼한 큰형과 큰형수는 돈에 예민했고 둘째 형네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넷째, 다섯째 형들은 스스로 돈을 벌고 있었으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막내는 아직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보니 돈이 필요할 때면 형들의 잔소리를 번갈아가며 들어야 했다.

명절 때는 형수들까지 잔소리를 보태니 여자친구 집으로 피신해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급하게 결혼이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나무라지 않고 차분히 새식구를 맞아들였지만 형과 형수들은 아버지 돈으로 장가간다고 비꼬았고 새로 식구가 된 그의 아내를 탐탁치 않아했다.

나이차가 워낙 큰데다 대꾸할 능력도 없다보니 형과 형수들의 잔소리로 인해 부부가 매우 힘들어했다.

결국 그들이 택한 것은 분가였다.

하지만 본가에 혼자라도 내려가면 형과 형수들의 잔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가족 단톡방에서는 막내가족을 향해 온갖 비난과 조소가 가득했다.

아버지는 뵙고 싶지만 형들의 잔소리에 전화마저도 못하자 결국 그는 불면증까지 생긴 상태였다.



♠ 정신과 의사의 분석


형과 형수는 부모가 아닌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부모처럼 행동하고 있다.

덧붙여, 금전문제에 가장 예민한 첫째와 둘째가 가장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키워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면 그 대상은 누가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부모님이죠!"

"형들은요?"

"제가 어릴 때 형들은 학생이었어요. 나이차가 많이 나다보니 같이 놀지도 않았고 온전히 부모님께서 저를 케어해주셨죠. 그리고 형들도 결혼할 때 부모님이 지원해주셨어요."


나보다 윗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진심으로 무엇을 해준 사람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예의로 존중해드리는 것으로도 할 도리를 충분히 하는 것이다.

베푼 것도 없으면서 '도덕심'을 무기 삼아 자기 대접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을 우리가 다 상대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고수해야 하는 원칙이고 중심이다.

그에게 중요한 사람은 아버지이자 돌봐야 하는 대상은 아내와 아이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아무리 혈육이고 연장자라 할지라도 '남'이라고 봐야 한다.



▶ I think …


남자든, 여자든 실제 형제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장 새겨야 할 말은 무엇일까?

그들이 마음대로 말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아무 말이나 내뱉듯이, 당사자 또한 보지 않고 듣지 않고 관심을 두지 않을 권리가 있다.

위 사연처럼 톡방에서 비난하는 말을 받았을 때 당사자에게 '스트레스'가 된다면 그들이 원맨쇼하듯이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예 신경쓰고 싶지 않다면 차라리 연락을 끊고 차단하면 된다.

잔소리는 듣기 싫은데 전화는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전화는 받되 잔소리나 비난이 시작된다면 휴대전화를 옆에 내려놓고 본인 할 일만 하는 현명함도 장착해야 한다.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다.

특히 연장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도 널리고 널렸다.

담담하게 돌아보며 생각해야 한다.

혹시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아니면 그 사람에게 어떤 빚을 진 게 아닌지.

해당사항이 전혀 없다면 무시해도 된다.

"우리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어 준 사람이다."




Ⅲ 결핍된 인생은 그 사람의 원가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 사연 | 가장 가까운 사람이 준 가장 큰 상처


그녀의 엄마는 노는 것을 좋아해 딸을 돌보지 않았고 그녀는 양쪽 할머니 집을 전전하며 부모없는 아이처럼 성장했다고 한다.

아빠는 구치소에 들어가 있거나 집에 있을 때면 엄마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자녀 양육에는 관심은커녕 걸핏하면 그녀에게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후, 엄마는 남동생을 낳았고 그녀는 남동생과 의지하며 덜 외로울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남동생만큼에게는 큰 사랑을 주었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자기가 정말 뭘 잘못한 건 아닌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교복도 깨끗하지 못했고 학용품도 부족했었다. 학교에 내는 비용 또한 제대로 낸 적 없는 학생이니 선생님도, 친구들도 그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심지어 엄마에게 맞아 뼈가 부러졌을 때 오랜만에 온 아빠에게 강간당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그녀는 집을 나왔다. 지옥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혼자 힘으로 산 것이다.

일생을 함께하고 싶은 남자를 만났지만 결혼에 있어서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누워있기만 하니 남자친구는 별말 없이 조용히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식탁 위에 있는 과도가 눈에 띄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손목을 긋는 게, 죽는 게 낫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칼이 손목을 파고드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 정신과 의사의 분석


"누구에게나 행복한 가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엄마와 아빠는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었다.

십 대 중반때, 관계를 맺어 그녀를 낳았던 것이었다.

과연 합의된 관계였을까?

표면적으로 성범죄 사건이 될 수 있었으나 양쪽 부모님들은 부끄러움과 수치심때문에 서둘러 합의하여 결혼을 시켰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도 부부관계가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고 그녀의 엄마는 정신적으로도 점점 피폐해지는 상태이니 애초에 외조부모가 그 때 고소를 해야 했었다.

같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무마때문에 여성들의 비극은 끊이질 않는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가해자는 절대로 피해자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다. 그건 무고하게 태어난 작은 생명에게도 마찬가지다.



▶ I think …


피가 섞였다고 반드시 사랑이 있는 건 아니다. 살려면 그들을 떠나는 수밖에 없다.


이 사연만 봐도 선택 한 번으로 인해 3대가 무너지는 꼴이 되었다.

그녀의 아빠는 가해자이자 조부모는 방조자였지만, 그녀가 태어나고서부터는 그녀의 엄마는 더욱 더 폭력적인 가해자가 되었다.

잘못한 건 어른인데 아무 죄없는 그녀가 쓸모없는 인간이라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살게 된 것이다.


저자가 말하길, 우리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곧 우리의 내면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방치되고 비난받아 왔기에 이미 성장했어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어른이 된 이후에 후유증이 크게 남아 버려질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책에서 나온 모든 사연이 실제 진행했던 상담 내용들인지라 나 혹은 주변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여유로운 집안을 바탕으로 자상하고 다정한 부모님, 우애좋은 형제, 그리고 딸처럼 여겨주시는 시어머니와 언제나 내 편인 남편, 말 잘 듣는 토끼같은 자식들. -이렇듯 다정하고 화목한 가정 아래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두가 고요하고 평온한 나날들을 누리지는 못한다.


혹시 그것 아는가?

'평범하게' 산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을!

화목하고 다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리 '나'만 애쓰고 잘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모두가 잘해야 한다.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만 흔들림없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흔들림없이 단단해야, 조금의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공동체 내에 한 사람이 상처주기 시작하면 결국 상처받은 사람은 마음을 닫아버릴 것이고 결국은 침묵 나아가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

단단하게 쌓는 것은 꽤 쉬운 일일 수 있으나 부서지고 허물어지면 다시 쌓기란 쉽지 않다. 허물어진 크기만큼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책에 나온 사연 중 비슷하게 겪은 사연이 있었기에 더 와닿았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가족 험담을 하는 것 같아 성인이 되어서도 얘기하고 다니진 않았다.

어떤 일을 겪었던 간에,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니 괜히 분란을 조장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삭히고 삭혔었다.

무엇보다 매일매일이 나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잠깐동안이기에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르는 사람 눈에는 화목하고 다정함만 가득한 가족 품에서 자라났구나로 보이는 것 같다.


흔히들 겪는 사춘기 없이 부모님 속 한 번 끓이지 않는 착하고 예의 바른 딸, 어른들은 날 이렇게 표현한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옥죄어 오는 느낌이 나날이 심해졌고 중학생 때부터 두통과 위염에 시달리기 시작했었다.

한 번씩 마음에 생채기를 받으면 모른 척 하며 넘기고, 그 순간순간이 반복되니 당연히 마음은 병 들어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의사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해 주신다. (집안과 친한 의사선생님인지라 나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시는 분 중 한 분이다.)

굉장히 예민한 시기이기에, 대부분 예의범절 모르거나 성격이 엇나가는 등 어떤 부분 하나라도 삐딱하게 클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참 잘 컸다고.

병원 갈 때면 항상 위로 한 마디, 격려 한 마디씩 해주시는데 그럴 때면 철옹성같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열리는 기분이 든다.

아마 나를 조금은 봐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친하게 지내시는 분을 소개시켜주셔서 나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시기를 계기로 전부터 관심있었던 심리학을 배우게 되었고 자격증도 취득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또 이야기를 꺼내면 나도 모르게 구구절절 쓰게 될 것 같아 이만 줄여야겠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이 있는데 여자든, 남자든 꼭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가 잘하면 상대방도 당연히 잘할 것이라는 생각은 꼭 버려야 한다.

물론 상대방도 내가 한 것처럼 잘해줄 순 있겠으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기 때문에 절대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책 제목부터 대상이 '여자'라는 사실에 너무 여성에게 편향된 내용이 아닐까 우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위 사연에도 언급했듯이 여자, 남자라는 구분이 없다.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충분히 입장 바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밀린 서평이 너무 많다.

마음같아선 하루에 서너개씩 뚝딱 올렸으면 좋겠지만 몸이 좋질 않아 하루에 하나 올리는 것도 참 버겁다.

가뜩이나 안 좋은 몸에 후유증까지 겹쳐 너무 힘들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정말 체력이 1도 없나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쓰다 만 서평이 열 개나 넘는데 누군가 마무리 좀 해줬으면 좋겠다.

마법지팡이 한 번 휘둘러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정리해 임시저장글에 쓰다 만 서평들 좀 마무리 해줬으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4-04 2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설명에 더해진 하나의책장님의 생각이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마다 다르니까, 적당한 거리를 잘 유지하는 것도 괜찮더라구요.
잘 읽었습니다. 하나의책장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나의책장 2022-06-27 16:06   좋아요 1 | URL
어떤 관계든 적정선을 유지한다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선이 넘어가면 결국은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좋은 관계를 쭉 유지할 수 있는 관계도 있는 반면에 마냥 잘해주면 권리라 생각해 도를 넘기도 하고 일부는 배신을 하기도 하니깐요.
짤막한 짤을 우연히 봤었는데, 윤여정 선생님이 그러셨더라고요.
인생은 항상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 사실 마냥 잘해주는 쪽에 속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믿었던 사람에게 당해보니 참 힘들더라고요.
그 때 이후로 관계에 있어서 적정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scott 2022-04-17 0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 사회에서 착함은
타인에게 쉽게 이용당하고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
적당히 선하게
적당히 너그럽게 ^ㅅ^

하나의책장 2022-06-27 16:07   좋아요 0 | URL
정말요! 백 번, 천 번 옳아요!
scott님 덕분에 마음에 한 번 더 새겨봅니다.
적당히 선하게! 적당히 너그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