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 20만 부 기념 개정판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2년 5월
평점 :
품절





『하나, 책과 마주하다』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필요한 것이 위로와 격려 그리고 응원이다.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따뜻한 세상이라 단언할 순 없을 것 같다.

경쟁

사회·이익사회로 변모되면서 자연스레 자기 이익 위주로만 생각하게 되었으니깐.

그렇게 우리는 이전보다 크고 작은 상처를 받게되는 일이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깨움과 치유는 동질의 마음에서 나온다.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동감어린 시선으로 글을 통해 진심어린 마음을 전해보고자 한다.


저자, 정영욱은 주식회사 부크럼의 대표로 부크럼 출판사와 이외의 문화 사업을 운영 중이다.




Ⅰ 응원했고 응원하고 있고 응원할 것이다


… 현대에 우리의 삶은 진퇴양난일 상황도 배수지진일 상황도 많지 않습니다 굳이 삶 전체로 보지 않아도, 오늘만 하더라도 그랬습니다.

애초에 지금 피나는 노력이나, 혈투에 가까운 열정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면 오늘은 반만 치열하게, 내일도 반만 치열하게 해도 고작 하루 차이로 해결됩니다. 하루 늦는다고 내가 나락에 떨어지는 것도, 누가 날 죽일 듯 쫓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장기전이기에 쉬어갈 여유를 주는 것은 꼭 필요하다.

사탐에서 유명한 이지영선생님이 세바시에 나와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뼈를 깎는 노력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주제였다.

그렇게 독하게 공부하라고 채찍질하던 선생님께서 왜 그런 주제로 강연을 하셨을까?


상에는 아직도 독함을 강요하고 성공의 중요한 키워드를 부단한 노력이라 강조하는 동기부여 강의가 많이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뼈를 깎는 노력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요.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큰 선물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아껴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그 어떤 성취도 그 다음 단계의 자기 혹사를 위한 변명이 될 뿐이에요.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의미 없잖아요.

자신을 아껴주세요.

자신에게 좋은 것을 베풀어 주세요.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만이 진짜 귀한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시험이 있을 때면 한 달 전부터 꼬박 앓았었다.

처음에는 전혀 그러지 않았으나 여러 상황과 한계에 부딪히고 부담감이 생기면서부터, 밥 먹듯이 밤을 새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몸은 점점 아파져만 갔고 쇠약해졌었다.

(당시 입시뿐만 아니라 다른 사정들이 짓누르는 상황이었었다.)

그 때, 결정적으로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이 문학선생님과의 상담이었다.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힘들어하는 나를 안타까워 하셨는지, 토요일 당직하시던 날에 학교에 잠시 오라고 연락해주셨었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많은 힘을 얻었으며 무엇보다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날이었다.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성과나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되면 결국은 내가 이끄는 삶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이 된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물론 내 삶에서 나 자신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여 주셨다.

이 모든 말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나 자신이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기에 항상 마음속에서 되새김질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 나는 빠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내색없이 꾹꾹 참으며 감내했던 일들부터 여러 상황들이 자연스레 떠올랐었다.

당연한 건데도 당연하게 하지 못했던 일들이, 나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옥죄었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기 시작했고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물론 진심으로 아껴주는 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을 제대로 새길 수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

▣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껴안고 나를 쓰다듬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이다. 곧 스스로를 껴안을 때, 채찍질할 때를 아는 것이다.

▣ 나를 알지 못하는, 곧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자신감과 자존감은 외려 나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근본 없는 자신감과 자존감이다.

▣ 나에 대한 실례는 곧, 내가 나를 믿어주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곧, 나를 믿어주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근거 없이 자신감만을 가지라는 건 아니다. 어떤 때에는, 예외 없이 나를 믿어 행해 줘야 하는 일들이 있다.

▣ 주위를 살필 줄 알되 그 중심에는 내가 있는 것. 간혹 이를 잘못 이해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 나를 인정하는 것, 즉 나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것은 무엇을 이뤄야지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자. 대단한 걸 이루지 않은 나라도 충분히 자랑스러울 수 있다. 나 자신이 스스로의 자랑이 됨은,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윤활제가 될 것이라는 걸 기억하자.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해야 내가 하는 일들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다. 또 내가 자랑스러워져야 내 주변의 자랑도 기쁘게 받아줄 수가 있다.


상황에 따라 자존심은 버려도 자존감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잘 웃고 넘기는 것에 도가 텄으니 단단하고 강한 줄만 알았었다.

스스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것만큼은 자신있다고 자부했는데 한 번 무너지고 나니 끝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작게, 작게 무너지다 크게, 크게 무너지고 나니 얼마나 스스로가 하찮아 보였는지 모른다.

스스로 인정해주는 것은 둘째치고 아껴주는 마음까지 희미해진다.


몸도 계속 아프다 보면 결국 마음도 아프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를 더 돌보고 아낄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작은 성취라도 잊지 말고 인정해 줘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말자. 듬뿍듬뿍 칭찬해주자.




Ⅱ 이겨냈고 이겨내고 있고 이겨낼 것이다


「흔들리는 나를 꽉 잡아 주는 주문」

▣ 내 생각은 곧 말이 되고, 말은 곧 행도이 되며, 행동은 곧 내 하루이며, 하루가 모여 삶이 이루어진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 에스키모인은 화가 나면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화가 풀릴 때까지 얼음 평원을 걷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화가 다 풀리면, 멈춰 서서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 되돌아온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은 뉘우침과 이해와 용서의 길이다.

▣ 명심해야 할 것은 성인군자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비난을 받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시기하며 모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값없는 미움에 무너지지 않는 것이, 그들에 대한 가장 현명한 복수가 될 것이다.

▣ 오늘 당장, 재미있게 살자. 꼭 오락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것 많이 쌓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 하나쯤 이뤄 보고, 평생 안줏거리가 될 만한 미친 짓도 한 번씩 해 보고 살자.

▣ 다만, 기억하자. 단지 지금이니까 그런 거라고. 아픈 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나중을 이야기하진 않겠다만, 그냥 지금이니까 그런 거다. 마음껏 아프고 슬퍼해 줘라. 나중엔 느끼고 싶어도, 멀어져서 희미한 감정들이 될 것이다. 지금이니까 그렇겠지, 좀 지나면 괜찮을 거야.


의지 하나가 있다. 몸무게를 감당할 만한 튼튼한 의자지만 간격이 어긋나거사 한쪽 다리가 짧아지면 쉽게 흔들리고 금세 무너진다.

저자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의, 식, 주 모두 앞서 말한 의자처럼 평행한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즉,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균형에 달린 것이지 짓누르는 시련의 크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만 주어진다.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저자의 말처럼 무게를 견디는 것은 균형에 달린 것이지 시련의 크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면 좀 더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기에 누군가의 말에 휘둘릴 필요도, 그 말로 인해 나약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 모든 과정이 결국은 삶을 살아가는 토대에 불과하니깐.


친구들과 종일 시간을 보내고 늦은 밤이 되었었다.

그렇게 샤워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 거실에 모여 한밤의 수다를 또 시작하려는데 그 순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따라 부르며 눈만 땡그르를 굴리며 혹시 '내가 우리 얘들 생일을 놓친 건 아니고, 뭐, 축하할 일이 또 있었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초를 붙인 케이크를 내 쪽으로 가져오니 당연하게 나는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바라보았는데 그 친구 또한 나만 계속 보는 게 아니겠는가.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하나야."

한참이나 늦은 생일인데… 생일날 아팠던 내가 계속 마음에 걸려 미리 준비했던 것이었다.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이미 눈물은 또르르 흘러내리고 심장은 쿵쾅거리고 손도 바들바들 떨렸을 정도였다.

만나기 전부터 케이크를 골라 어떻게 숨길지, 어느 타이밍에 노래를 불러주며 깜짝 파티를 해줬을지 고민했던 N, J, A를 생각하니 마냥 귀여웠다.

친구들이 불러주는 노래가, 나를 아끼고 격려해주는 그 마음 자체가 오롯이 느껴져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나의 두 번째 생일이나 다름 없는 이 순간,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날, 친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놨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은 균형에 달린 것이지 짓누르는 시련의 크기가 아닌 것 같다.

끊임없이 위기가 찾아오고 작든, 크든 흔들리는 삶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혹은 처한 상황으로 인해 상처받을 순 있지만 휘둘릴 필요도 없고 나약해질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게 삶이니깐.

다만, 나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마음만큼은 굳건하게 지킬 필요는 있다.




Ⅲ 함께했고 함께하고 있고 함께일 것이다


사람보단 사이가 쉽게 변한다. 지나가는 세월에 따라 시시각각. 내가 냉정하게 변한 게 아니라, 우린 그냥 그렇게 거절하고 끝내는 게 편한 사이로 변했을 뿐이었다. 지나가는 세월에 못 이겨, 자연스럽게.


사람의 진가는 힘들 때보다 행복할 때 나온다.

꾀죄죄할 때보다 여유로울 때 나온다.

어려울 때의 겸손과 배려는 처지로부터 나오는 법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겸손과 배려는,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I think…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사이는 변할 수밖에 없다.

예외도 있지만 결국 영원한 관계도 없는 셈이다.

사실 나는 변한 것이 전혀 없다. 변한 것 없이, 똑같이 그 자리에 있지만 누군가는 내가 달라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결국 상대방이 느끼는 관계의 변화일 뿐이지 변한 것은 전혀 없다.


「요즘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관계에 덜 상처받기 위한 것들」

▣ 나 싫다는 사람은 신경 끄고, 나 좋다는 사람을 신경 쓰고 살아갈 것.

▣ 혹해서 나의 약점을 보여 주는 순간, 그 사람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내 치부를 보여 주는 건 정말 주위 손꼽을 몇 사람이면 충분하다.

▣ 마음에는 이자가 없다. … 줄 거면 그 이상 되돌려 받을 마음은 버리고 줄 것.

▣ 나를 대하는 태도가 갑작스럽게 변했다면, 나에게 이득을 취하기 위해 변한 척하는 건 아닌지 주의를 기울일 것.

▣ 언제 개선될지도 모를 관계를 오래 붙잡고 끙끙 앓지 말고, 지금 내 앞의 소중한 관계를 붙잡아 둘 것.

▣ 사회에서의 관계는, 대가 없는 관계가 드물다는 것을 늘 기억할 것. 선의가 있다면, 그 선의만큼 후의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 늘 기억하며 주고받을 것.

▣ 영원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기억할 것. 특히나 요즘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선 어제의 적, 어제의 친구, 오늘의 적, 오늘의 친구.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

▣ 나를 지배하려는 사람 … 지극한 강약약강. 강약은 그러려니 해도, 약한 자에게 유독 강해지려는 인성은 피해야 한다.

▣ 술 마시면 심하게 추태인 사람. 흔히 개가 된다거나 하는 부류.

▣ 좀 불리한 건 다 모르는 사람 … 꼭 불리한 상황만 되면 모르쇠가 되더라. 꼭 거짓말을 해도 기억 안 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꼭 때리지는 않아도 과격하게 때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사람은 믿고 걸러야 한다.

▣ 모든 것이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사람. 결정의 기준이 오롯이 자신을 향해 있는 사람.

▣ 앞에서 웃고 뒤에서 칼 꽂으려는 사람. … 대부분의 사람에게 앞에선 웃어 주고 뒤돌아서면 표정 싹 변하는 사람. 괜한 걸로 미움과 열등감이 꽉 찬 사람. 나 또한 그 희생양이 될 게 뻔하다.


「관계를 오래 지키는 사람들의 공통점」

▣ 표현을 예쁘게 한다 : 보통의 대화뿐 아니라 서로 간의 이해가 틀어져 서운함을 표현할 때에도 그 표현법이 선을 넘지 않는다.

▣ 경청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 사회생활에서 화법이 중요한 만큼, 관계에 있어서 듣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것은 곧 대체할 수 없는 치유이며 응원인 셈이다.

▣ 의외로 약속에 얽매이지 않는다 : 물론 관계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지만, 자신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의 어김은 충분히 관용을 베푼다.또한 어느 정도 피해가 있는 약속 어김의 경우, 약속이라는 규율보다도 피해의 정도에 따라 서운함을 표시한다. … 사소한 약속은 어느정도 눈감아 주는 관계에서는 스트레스가 현저히 줄어든다. 세상이 그만큼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

▣ 다름을 인정한다 :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 틀리고 다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상대가 아니고 상대도 내가 아니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다. … 또 물러선 이후엔 그의 대처에 상대가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스트레스는 덜고, 인정받는 상황을 만드는 현명한 사람이다.

▣ 거절 의사 표현이 정확하다 : 부탁을 거절했을 때의 껄끄러움이 싫어 거절을 하지 않는다거나,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애매모호하게 미룬다거나 하는 경우가 적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껏 어떤 가치가 있는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곧,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미래입니다.


I think…

부정적인 감정을 풍기는 사람은 당연히 멀리해야 하지만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을 심어 주는 사람 또한 그 익숙함에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그렇기에 가까이 할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 정도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관계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사람이 곧 나의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며칠 전, 아빠와 동생의 생일이었다.

간단하게 차리자고 마음 먹었지만 엄마와 내가 손이 워낙 크다보니 상에 음식을 다 못 놓을 정도로 푸짐하게 차렸었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떠들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가족의 화목함과 단합을 위해 크고 작은 파티들을 많이 하곤 하는데, 그 뒤에는 언제나 나의 숨은 노력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 결혼기념일을, 고등학교 때부터는 엄마의 생일상을 차리기 시작했고 대학교 때부터 크고 작은 기념일들을 만들어 챙기기 시작했다.

출근 전, 퇴근 후 짤막하게 나누었던 말이 전부였지만 이런 날만큼은 편안한 분위기와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푸짐하게 차려진 집밥을 마음껏 즐길 수도 있다.

막상 하기 전에는 힘들다가도 맛있게 먹어줄 생각만 하면 음식 만드는 과정 또한 내겐 힐링이다. 가족들은 맛있는 음식 잔뜩 먹을 수 있어서 좋고.

축하하는 기념일이 아닌 날은 노래를 부르지 않더라도 케이크 초에 불을 붙여 박수를 치고 서로를 응원하는 말 한마디씩 건네며 불을 끈다.


다들 각자의 삶이 있으니 밥 한 번 같이 먹는 것도 매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나마 이런 기념일이라도 있어야 맛있는 것 먹으며 웃고 떠들 수 있으니 더더욱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우리에겐 참 소중한 존재들이다.

마음을 담아 한껏 챙겨주고는 있지만, 나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그 마음 잊지않고 더 챙겨주고 더 아껴줄 것이다.

물론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도 잊지 않고.



무언가 알려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라, 나도 이랬었다고 미련했던 마음을 적어 본다. 단지 그뿐. 난 이렇지만 기필코 살아간다고.

그러니 당신도 꼭 살아내었음 한다고. _저자 정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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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17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조건 1주일에 한 번은 부모님과 식사를 합니다. 그게 여러모로 좋은 거 같습니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거 같아요. 물론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한 건 아쉬움이 있지만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하는 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거 같습니다. 어쨌거나 가족이 같이 모여 밥을 먹는 건 점점 어려워지는 일이 되고 있으니까요..ㅎ

하나의책장 2022-11-30 08: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대부분 개인 스케쥴이 있으니 빙 둘러앉아 밥 한 번 먹기 참 힘들죠.
저희 가족도 yamoo님처럼 일주일에 한두번은 서로의 시간 맞춰 저녁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어요^^
제 친구는 부모님이 제주도에 살다보니 일이 너무 바쁘다보면 일년에 두어번 밖에 못 만난다고 하더라고요.
예전과는 달리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yamoo님 말처럼 식사 이상의 의미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 책과 마주하다』


진한 에스프레소같은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매우 강렬하다.


두려울 때면 기억해야 할 유일한 사실, 변화란 화학적으로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저자, 보니 가머스는 소설가로 올해 예순다섯 살 생일을 맞은 문학계의 후발 주자다.

미국과 영국에서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야외 수영을 즐겨 하며, 조정 선수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최근까지 시애틀에 살다가 두 명의 딸과 남편 그리고 강아지 99와 함께 런던으로 이사했다.

그녀의 데뷔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20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는 보니 가머스의 원고 『레슨 인 케미스트리』였다.

“올해의 출판 센세이션”이라는 평과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영국에서 16개의 출판사가 경쟁한 뒤 데뷔작 사상 가장 높은 계약금 200만 달러(한화 약 25억)에 출판권이 계약되었다.

출간 후에는 아마존 4.7점, 굿리즈 4.5점의 기록적인 평점을 달성했다.

현재는 35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고, 애플TV는 이 소설을 브리 라슨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하고 있다.




험난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꽃 피웠던 그녀, 엘리자베스 조트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그녀와 그녀의 오빠는 방치되며 살아왔었다.

그녀의 부모는 거짓 종말론을 사람들에게 설파하며 이와 관련된 성물을 판매하였는데 그들의 자녀는 그들의 관심사 밖이였다.

그렇게 방치된 채 자란 두 남매였다.

그녀에게 하나 남은 오빠는 동성애자였고 이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평범한 가정 속에서 살지 못했던 그녀의 운명은 초년부터 기구했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구한 인생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캘빈, 그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인생이 참 기구했다.

보육원에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평범하게 사나 싶었지만 양부모가 사고로 죽어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야만 했었다.

그런 그는 "살아갈 날이 많으니까 힘내자. 내일은 달라질 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캘빈에게 있어서 엘리자베스는 말그대로 '빛'이었다.

이렇게나 힘든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지칠 줄 모르는 오뚝이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녀의 자존감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자존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녀는 전도유망한 화학자였다.

그렇기에 과학자다운 합리주의에 따라 모든 것을 생각해본다.

사실에 근거해서만 판단을 내리기에 자기 확신이 흔들릴지라도 무너지는 법이 없다.

그녀는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치고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밝혀내지 못한 ‘진화 이전’ 분자의 비밀을 연구하고 있었다.

1955년, 당시 여자들은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으며 일을 하더라도 보조원이나 행정직원이 전부였다.

즉,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은 엘리자베스를 심부름이나 시킬 수 있는 보조원이라 생각할 뿐 동등한 화학자로 생각하진 않았다.

단, 한 사람을 빼고! 노벨과학상 후보인 캘빈 에번스만이 오롯하게 그녀를 봐주었다.

앞서 설명한 엘리자베스가 사랑했던 인물이 바로 캘빈 에번스이다.

이 때 둘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화학자 엘리자베스 조트라는 이름을 지키고 싶었던 그녀의 마음을.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게 되었으며 둘 사이에 예쁜 딸도 낳게 되었다.

그렇게 행복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알았지만, 그녀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캘빈이 사고로 죽고 비혼모가 된 것이었다.

마냥 슬퍼하고 울부짖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 딸린 여자라며 연구소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오뚝이다.

이미 훌륭한 화학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는 집 부엌을 실험실로 개조해 연구를 이어나간다.

그렇게 딸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우연한 기회로 TV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의 MC로 발탁된다.

그런 말이 있다.

초년 고생길을 걸었다면 중년, 말년에는 꽃길만 가득하다고.

TV 요리 프로그램을 계기로 그녀는 미국 최고의 슈퍼스타가 된다.




참 대단한 인물이라 평할 수 있겠다.

소설이지만, 어쩌면 현실은 더 험난하기에 더 공감하며 읽은 게 아닐까 싶다.

진한 에스프레소같은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매우 강렬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곧장 떠오른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Hidden Figures이다.

Hidden Figures는 Lessons in Chemistry와 달리 실화를 다룬 영화로,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가진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 당시에도 백인·남성 우월주의인 시대였기에 흑인 그리고 여성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나사에서 전산원으로 일한 캐서린 존슨은 "흑인 여성"이었으니 자신의 천부적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는 없었다.

소설 속 엘리자베스 조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캐서린 존슨 또한 오뚝이 같은 뚝심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손가락질에도 자존감만큼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세상은, 참 어렵고 험난하다.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르기에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자존심은 내려놓을 수 있지만 자존감은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 안주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는 뚝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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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6-17 09: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엘리자베스 정말 대단하네요!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습니다.

하나님 관심 갖고 있었던 책이었는데 덕분에 도움을 받습니다^^ 히든 피규어스도 함께 보고 싶어졌어요.

하나의책장 2022-07-23 17:2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히든피겨스 꼭 보세요! 몇 번이나 더 봤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거든요ㅎ
아마 거리의화가님 마음에 쏙 드실 거예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2-06-17 1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질거같은 책이네요. 리뷰만으로도 약간 힐링이 되는 기분입니다. ^^

하나의책장 2022-07-23 17: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비가 오긴 하지만 기분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06-17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첨들어본 작가인데 표지도 인상적이고 내용도 인상적이네요~! 판권이 크게 계약될 정도면 책도 재미있을거 같아요~! 중요한건 역시 뚝심 ^^

하나의책장 2022-07-23 17:23   좋아요 2 | URL
맞아요!ㅎㅎ
주말 내내 비소식이긴 하지만 행복하게 보내세요♥

mini74 2022-06-17 1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든피겨스 넘 재미있었어요. 유색인종의 여성과학자들이 실력으로 이겨내는 모습 멋있었어요. 이 책도 넘 재미있겠어요 하나님 ~

하나의책장 2022-07-23 17:26   좋아요 1 | URL
역시 미니님도 보셨군요^^
재미도 있고 영어공부도 할 겸 보고 또 보는 영화 중 하나예요!
요새 인문/철학서만 읽는 것 같아 소설도 살짝 살짝 보고 있는 중이에요ㅎ
미니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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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22년 2월 26일,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하나의책장】을 열어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 책장에 몇 권이나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적지 않은 권수를 보니, 그의 작품을 꽤 읽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때, YES24이었는지 알라딘이었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한 해의 키워드 중 하나가 '이어령'이었으니깐.

2월 말,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선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3월에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바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이다.


저자, 이어령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굳건한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향년 89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Ⅰ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


서구의 두 모험가가 에티오피아를 구석구석 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었다. 금과 은을 구하기 위해 돌까지 조사했을 정도로 세밀하게 살펴보았으니 황제는 그런 그들에게 선물까지 내렸었다.

그렇게 그들이 에피오피아를 떠나기 위해 배에 타려고 하자 근위병들이 조심스레 그들의 구두를 벗기고 깨끗하게 닦아 황제의 말을 전했다.


그대들을 멀리 떨어진 강한 나라에서 왔다. 그대들은 에티오피아가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대들의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이 땅의 흙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우리는 그 흙에 씨앗을 심고 우리의 죽은 자들을 묻는다. …… 에티오피아의 흙은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다. 우리는 그대들을 환대했으며 귀한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값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흙을 단 한 알갱이도 줄 수 없다.


모험가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한 알갱이의 흙에서 나오는 힘이 에티오피아인들을 지켜준 것이었는데, 흙의 감동과 아름다움때문에 3000년의 긴 역사를 읽고 서구인의 지배를 받았으니 말이다.

서양인들은 에티오피아를 침략해 먹지도 않는 땅콩을 대지에 잔뜩 심었었지만 이는 토양에 맞지 않았고 결국 심었던 땅콩이 아프리카 땅을 황폐화시키고 말았다.

결국 흙의 시대, 그 지혜와 생명의 시대는 끝이 난 것이었다.

단순히 보이는 흙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었다.

모험가의 구두에는 나라를 구석구석 다니며 얻었던 보이는 흙이 아닌, 보이지 않는 흙의 정보가 잔뜩 묻어 있었다.

이는 결국 흙과 디지털이 하나되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디지털 정보는 흙의 지혜를 압도한다.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지식을 검색해 습득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모두가 사전을 이용했었다.

모든 면에서 방대하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으며 심지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기까지 한다.

일론머스크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를 위해 스타링크를 전격 지원하지 않았는가.

과거 아프간 전쟁도 모두가 10년은 걸릴 것이라 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끝났으니 디지털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비행사들에게 수직 폭격의 기술을 가르쳐 수평 폭격의 적중률을 높였었던 반면에 스마트탄은 날렵하고 지능을 가진 폭탄이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교량 하나를 파괴하려면 200톤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어야 했는데 레이저 유도 폭탄이 생겨나면서 12.5톤으로 줄었고 이후 이라크전에서는 4톤이면 충분히 폭발시킬 수 있었다.

GPS 유도탄처럼 위성으로 받은 위치 정보로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가격하여 적중률을 높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스마트탄이 마냥 스마트하지는 않다.

걸프전 때,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대통령궁을 폭격한 일이 있었다.

물론 스마트탄은 완벽하게 투하되었지만 후세인은 죽지 않았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때, 밖에서 천막을 치고 자는 풍습이 있었는데 미군이 이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즉, 목표물을 파괴하는 정보기술은 뛰어났으나 문화에 대한 정보는 백지나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정보기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유도탄같이 기계를 다루는 하드웨어의 정보기술이며 또 하나는 상대방의 문화나 인간의 마음을 읽는 소프트 콘텐츠에 관한 것이다.

전자를 기계 기술, 후자를 지식 기술이라고 구별하기도 한다.


정보기술은 부국과 강병의 수단이자 도구이다.

지식이나 문화를 목적으로 정보기술이 사용되는 경우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드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 옮겨지는 추세로 바뀌었다.

교육, 학문, 예술, 과학, 기술 등 인간의 이성과 감성적 능력이 빚어내는 창조적 산물과 연관되어 있으며 외교와 국방에서도 커맨드 파워 command power 가 아닌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 cooperative power 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더 나아가 하드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어떠한 방식으로 활용할지 결정하는 기술인 스마트 파워를 강조하는 추세이다.




Ⅱ 벽을 넘는 두 가지 방법


허허벌판에서 살 수 없기에 인간은 벽을 만들었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인 듯하다.

창을 벽의 상처라고 말하듯, 그림 또한 피가 흐르는 벽의 상처인 것이다.

벽은 태양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강하며 오직 날카로운 설치류 쥐만이 구멍을 뚫을 수 있다.


벽은 바람을 막고 풍경을 도살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이 때 날카롭고 빨리 자라는 송곳니가 필요하다.

한밤의 어둠 속에서 갉고 갉은 색채와 선 그리고 회화의 구도가 탄생한다.

이것이 바로 그림의 탄생이다.


희랍의 전설에는 회화와 조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한 청년을 마음에 품은 소녀가 그와의 이별을 앞두고 상심하여 앓게 되자 소녀의 아버지가 그 마음을 알고 그 청년의 옆얼굴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따라 윤곽의 선을 그리고 색을 칠했다.

곧 청년과 꼭 닮은 릴리프, 즉 그림과 조각의 중간인 부조가 생겨났는데 딸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림자를 그림으로, 조각으로 옮긴 이야기는 상징적이라기보다 사실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벽을 긁는 것, 벽에 어리는 그림자, 그리고 벽 너머로 사라질 연인에 대한 그리움.

긁는 것, 그림자, 그림, 그리움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따로 떨어져 불리던 그 말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합쳐지면서 떼어낸 달력의 벽면 윙는 글과 그림과 그리움 같은 것들이 하나의 관자놀이처럼 뛴다.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벽은 무엇일까?

저자는 올림픽 개폐회식을 기획할 때 그 주제를 '벽을 넘어서'라고 했다.

그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도 철의 장막이 무너졌으니 서구 문화는 즉 벽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도시든 개인의 삶이든 무엇이든 간에 두꺼운 벽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니깐.

성벽 안에 세워졌던 도시들로 이루어진 서양만 봐도 그렇다.

유럽은 섬이 아닌 대륙인데도 성벽이라는 제한된 도시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일찍이 고층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도시가 커져도 옆으로 퍼지지 못하고 위로 치솟아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두께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가 있는데, 그만큼 벽이 얇고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서양 집은 대개 적조식으로, 돌이나 벽돌로 벾을 쌓아 만든 것이다.

거기에 비해 한국 집은 가구식이라고 하여 기둥을 세워놓고 집을 지은 비내력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옥은 벽을 터도 무너지지 않지만 양옥은 집 전체가 무너지고 만다.




Ⅲ 전통 물건에 담긴 한국인 생각


전통적인 물건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 뜻이 담겨져 있다.

문풍지와 한복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밀함에서 문화의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적당히 문을 짜서 단 후에 틈이 생기면 문풍지로 막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반면에, 일본은 융통성보다는 정확성에 중점을 두어 문을 닫으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꼭 들어맞도록 만들기에 문풍지라는 것이 없다.

바지, 버선 그리고 되질, 말질 등도 치수를 무시하곤 한다.

즉, 한국의 멋은 약간의 비규격이 있는 멋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양의 양복 바지는 기능주의, 합리주의를 지향해서 허리춤에 꼭 맞도록 만들었었다.

반면, 한복 바지는 인체의 허리 부분은 밥 먹을 때와 굶었을 때가 다르고 건강할 때와 병을 앓고 있을 때가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게 치수를 재서 만들었기 보다는 풀어 입을 수도 있고 조여 입을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저자는 전통 물건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로'융통성'이다.


치수가 잘못되면 사람이 옷에 몸을 맞추어야 하는 주객전도의 양복 문화, 그것이 인간 소외 현상을 낳는 것이라면, 넉넉한 한국의 허리춤은 끝없이 인간을 감싸주는 융통성 있는 문화의 상징이다.


서양은 자아를 중심으로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어 그들의 문화는 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즉, 자아의 문화란 너와 나를 구별하는 방벽과 도시와 도시를 분리하는 성벽의 문화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동양권 시인들은 두꺼운 벽이 아닌 병풍을 둘러치고 작업을 하였다.

병풍은 가볍고 신축성 있는 벽으로, 펴면 벽이 되고 접으면 한 공간이 된다.


병풍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아름답고 밝고 가동적인 벽이라고 할 수 있다.

병풍의 가동성과 신축성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기술의 원형이며 서구 문화와 동양 문화를 나누는 가장 상징적인 경계다.

즉, 병풍의 공간은 하나이면서 전체인 것이다.


(지금은 없지만) 어릴 적에 외가집에 가면 큰 병풍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저 보기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일종의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벽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병풍에 그려져 있는 그림 또한 누군가의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때 봤던 병풍 기억을 되살려보고 싶다.

병풍이 다락방 옆에 있었기에 더 쭉 피면 조그마한 공간이 새로 만들어져 그 안에서 동생과 함께 놀기도 했다.

8살과 6살이 뭘 알겠냐마는 이미 그때 느꼈던 것이었다.

병풍의 공간은 하나이면서 전체라는 것을.




2022년 2월 26일.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던 이어령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쓰셨던 작품 중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무엇이었는지 책결산을 살펴보니 『너 어디에서 왔니』였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작품들을 적지 않게 읽었었고 책장에 있는 그의 책들을 살펴보니 80년대에 출간된 책도 가지고 있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은 다름아닌 엄마의 책이었다. 20살이 되고서부턴 책을 더 읽었다는 엄마도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외가집에 가면 오래된 LP부터 핑글핑글 돌려서 거는 전화기 그리고 책이 다락방에 가득해 병풍을 친 뒤 다락방으로 올라가 동생과 함께 탐험 놀이를 했었다.

그러다 다락방에서 엄마 이름을 새겨놓은 책 한 권을 보게 되었고 오래된 책이 신기해 그 책을 들고 다락방에 내려왔었다.

아, 그러고보니 내가 이어령 작가님의 책을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에 집으로 데리고 왔으니, 그 책을 중학교 1학년 되는 시기에 읽었었다.

참 신기하다. 책 한 권으로도 나의 과거의 흔적들이 생각난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소재로 생각될 수 있는데 소재 하나로도 이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그 생각이 이어진다.

국문학과도 가고 싶었던 학과 중 하나였는데,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비슷한 과목이 교양으로 나와 한 번 들은 적이 있었었다.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이어령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었는데, 그 때 다시금 느꼈었다.

'역시 지성인이 맞구나. 지성인이구나!'


2월 말, 이어령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듣고선 그와 그의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3월에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는데 그 책이 바로 『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이다.

14년 전, 「날게 하소서」란 제목의 시에 구술 해설을 입혀 서문을 완성한 책으로 열 세가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메시지를 꼭 얻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개해 보았다.

앞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표현하였었다.

틀에 박힌 생각은 결국 제자리 걸음하는 것과 다름없어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될 수 있다.

틀에서 걷히는 순간, 그 때 창의적 사고가 발휘되는 것이다.

에세이지만 사고에 대한 메시지가 분명해 인문서와 다름없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책은 3월에 읽었는데 3개월만에 올리게 되었다.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가 이제야 재독하고 제대로 올리게 되었다.

책을 읽고선 글쓰기 노트에 정리를 마친 후에야 글을 쓰는 것인데, 지금까지 쭉 해왔던 방법이지만 바꿔야 하나 생각중이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새는 노트북 앞에 앉다가도 아프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니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아 더 느려지고 더 느려진다.

그럼에도 쭉 고수해 왔기에 쉽게 바뀌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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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16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어령님 마지막 병실에서도 스케치를 하고 채색을 하셨다고 합니다
육체의 고통과 쇠락의 끝자락에서도 글과 그림을 그리며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정신력에 탐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책장 스케치 멋져요
알라딘 이달의 굿즈로 줬으면 ㅎㅎㅎ

하나의책장 2022-07-17 18:26   좋아요 0 | URL
역시 시대의 지성이셨던 분이네요.
마지막 병실에서도 스케치하고 채색하셨다니.. 저 또한 그 정신력에 탐복했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꽤 덥네요.
한여름인 8월에는 얼마나 더울지;
scott님은 주말 시원하게 잘 보내셨나요?^^
 
우리는 이미 여행자다 - 일상이 여행이 되는 습관 좋은 습관 시리즈 13
섬북동 외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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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해외여행 수요가 급증한 것을 보니 이제야 조금씩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여행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있었을까?


저자, 섬북동은 2011년 11월 서울 출생으로 양손잡이다. 실제로 만난 사람들은 이십 대로도 보고, 오십 대로도 보는 신기한 외모다.

사정상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전국을 떠돌며 자라 딱히 서울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카피라이터, 드라마 작가, 영화 마케터, 번역가, 디자이너 등의 직업으로 밥벌이를 한다. 책을 좋아한다. 아니, 그보다는 책을 읽고 나서 떠드는 걸 더 좋아한다. 그렇게 10년째 격주 토요일마다 떠들어댄 결과물은 브런치 ‘뒷book’에 기록하고 있다.

애인과 나란히 캠핑 의자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제일 좋아하지만, 까뽀에이라로 몸을 만들고 시장이나 온라인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요리하는 것도 즐긴다. 주말에는 따릉이를 타고 한강을 달리며 노을 지는 하늘을 구경하기도 한다.

다양한 부캐를 품고 살아가는 나를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섬북동 씨~'

참고로, 섬북동씨 안에는 7인의 여행자가 있다.




Ⅰ 방구석 생존 여행


뉴욕의 봄. 드디어 뉴욕에도 봄이 오나 보다. 두꺼운 파카를 벗고 올해 처음으로 코트를 입고 출근했다. …… 퇴근길, 강 너머로 보이는 뉴욕 도심 풍경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친구와 헤어져 돌아가는 귀갓길, 강 너머로 내다보이는 불 켜진 뉴욕 풍경.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볼 때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는 장면이다.

주말 아침. 오늘은 전철을 타지 않고 걸어서 골목 구석구석을 걷다, 다리 건너 루즈젤트섬으로 가본다.


후쿠오카의 여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여름 더위가 시작됐다. 커피에 얼음을 잔뜩 넣어 냉동실에 잠시 넣어뒀다. 그 사이 빵을 한 장 꺼내 굽는다. 밤새 더위에 잠을 설친 뒤 조금은 멍한 여름날 아침에는 역시 믹스 커피가 좋다. …… 오늘은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마스크에 양산까지, 요즘은 나가려면 챙겨야 할 짐이 너무 많다. 이 더위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려니 괴롭다. 언제쯤 마스크를 벗게 될까? 이러다 친구들 얼굴도 잊을 것 같다. 커피를 마시며 세계 여행지가 담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얼른 여행을 떠나고 싶다. 사우나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푹푹 찐다. 그래도 이제 8월 말이니 이 여름도 어느새 끝나겠지.


에든버러의 가을. 스코틀랜드에 오고 난 이후에는 모든 계절을 사랑하게 됐다. 특히 햇볕이 귀한 나라에 오니 가을 햇살은 더 귀하고 사랑스럽다. …… 토요일이라 외출을 감행했다. …… 제일 자주 사고 또 좋아하는 기념품은 에코백과 책갈피다. 흔해 빠진 것 같아도 오래 그곳을 기억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선물이다. 폐장 시간이 다 되었다. 바깥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더 해가 짧아지는 계절로 들어서고 있다.


스톡홀름의 겨울. 아침을 먹은 다음 든든히 껴입고 딸,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남편은 딸의 썰매에 줄을 매달아 끌고 눈 쌓인 길을 앞서간다. …… 겨울이 길어서 힘들지만 날씨가 좋은 날은 지상의 풍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눈 쌓인 꽁꽁 언 호수 위로 우리처럼 해를 보러 나온 사람들의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다. …… 거의 한 달 만에 해가 뜨는 날, 이런 날을 놓칠 수 없어 온 가족이 근처에서 썰매를 타기로 했다. 도시가 온통 눈 천지다. 양옆으로 늘어선 삼나무 위에도 하얗게 눈이 쌓였다. …… 요즘은 오후 한 시가 넘으면 해가 진다. 그러니 더욱 부지런히 움직여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즐겨야 한다. 다시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던 <HEYJOO>

남편과 딸과 함께 스웨덴에 사는 <펩선PEPSUN>

뉴욕에서 회사에 다니는 <배배 뉴욕BaeBae NY>

남편과 후쿠오카에 살며 일상을 공유하는 <윗시 wish>

옷도 음악도 취향도 감각적인 뉴욕의 <정윤 UniAvenue>

영국 런던에서 회사에 다니며 집안과 출퇴근 생활을 담아 올리는 <Yookyung's Day유경데이>

앞서 각 나라의 계절을 묘사했던 일상이 바로 위와 같이 나열한 유튜버들의 일상이다.


코로나로 인해 국내는 커녕 집에만 갇혀 있다보니 여행을 '낙'으로 살았던 이들에게 특히 유튜브는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을 것이다.

유튜브 외에도 패션을 통해 현지를 느낄 수 있는 브랜드, 가고 싶은 나라의 특색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맛 그리고 화면으로 만나는 영화와 드라마, 글로 만나는 책 등을 통해 방구석에서 여행을 떠났으리라.

나는 여행이 너무 고플 때 어떻게 하더라?

책 중에서도 특히 여행 에세이를 보고 외국 영화 중에서도 「Midnight in Paris」 등을 보고 굳이 드라마나 예능으로 여행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를 보곤 한다.

여행 에세이는 일반 여행서와 달리 저자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풀어쓴 글이기에 읽다보면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 절로 들게 된다.

글과 그림이 동시에 같이 움직이면서 당시 저자가 느꼈던 느낌들도 함께 느낄 수 있기에 여행 에세이는 특히나 함께 하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많이 보고 드라마, 예능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여행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는 꼭 「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를 본다.

꽤 오래 전에 방영했었던 아임 리얼 시리즈나 잇시티도 어렸을 때 보던 기억이 선명해 가끔 보곤 하지만 그래도 나의 픽은 현지 느낌을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더 추가하자면, 바로 유튜브이다!

몸이 좋질 않아 어쩔 수 없이 집에 콕 박혀 있을 때 유튜브를 보곤 했는데, 유튜브는 새로운 것을 터득하고 습득할 수 있는 공간으론 최고인 것 같다.

온갖 학습의 장인지라 전문가들의 교육이 담긴 영상과 다큐멘터리 위주로 보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RECIPE나 DAILYLIFE에 빠져 (해외) 일상, 여행 브이로그를 보다보면 순식간에 1-20분이 훅 지나간다.

책에서 나온 채널 영상을 한 번씩 쭉 봤었는데 저자가 이렇게까지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박에 알 것만 같았다.




Ⅱ 집 밖 일상 여행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프리랜서 생활로 돌아오면서는 조바심이 났는지 일을 무리하게 받았다가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 정도로 깊이 가라앉았지만, 어떻게든 일어났다. 그러고 무작정 걸었다. 언덕을 넘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옆 동네 마트라도 갔다.


2만 4,905걸음. 제주에서 돌아온 문언니의 소환에 금요일 밤 공덕역으로 향했다. …… 공덕 꽃길을 걸어 어느새 홍대입구역까지 왔다. 헤어지기 전, 홍대입구역 7번 출구 앞 노점에서 문언니는 한 다발에 5,000원 하는 '옥시'라는 꽃을 하나씩 사서 안기고는 사라졌다. 옥시의 영어 이름은 'starflower'. 별을 꼭 닮아 붙은 이름이란다. 밤 11시에 퇴근하면서도 벚꽃을 보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는 옥 언니, 제주가 너무 좋다면서도 서울에 오면 외국이라도 온 것처럼 탄성을 질러대는 문 언니. 나와 봄밤을 같이 걸어 주는 별처럼 따뜻한 친구들. 휴대폰을 보니 2년 전에 갔던 부다페스트 여행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또 걸었던 그 날의 걸음 수가 나왔다.


1만 3,219걸음. 7시에 일어나 30분 정도 걷고 돌아와 아침 글쓰기를 한 뒤 30분 정도 요가를 했다. 달걀 두 개를 꺼내 삶고, 그 사이에 머리를 감았다. 오늘은 연남동까지 걸어가서 일할 계획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좋은 점 한 가지는 평일 오전 시간에 카페를 한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날 저녁에는 합정역에 살다가 얼마 전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친구를 만났다. ……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휘적대며 꽃잎을 잡느라 분주했다. …… "저기저기, 저거 잡아!" "와앗! 2021년 대애박!" 용케도 내 손 안에 꽃잎이 들어왔다. 우리는 부적이라도 되는 듯 휴대폰 케이스 안에 꽃잎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에는 꼭 다시 떠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도 함께 넣었다.


2만 2,327걸음. 윤문 일을 같이하기로 한 선배와 일을 준 회사의 대표와 광화문에서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동네 친구에게 맥주 한잔하자는 연락이 왔다. 오늘은 어차피 일하긴 글렀다. …… 친구와 나는 어느새 만석이 된 가게를 나와 배도 꺼뜨릴 겸 연남동 카페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 밤공기는 쌀쌀하다. 그래도 이 시간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계절이 왔다는 게 믿을 수 없이 좋다. 하루 건너 하루 보는 사이인데도 도통 마르지 않는 수다를 떨고 횡단보도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섰다. 걸음 수를 확인한다. 또 해외여행 다녀온 기분.


1만 9,878걸음. 다음 날 점심엔 효창공원까지 걸어가 친구와 각자 싸 온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 카피라이터 생활을 접기로 한 12년 전, 친구가 살고 있던 미국 버클리에 작은 집을 빌려 3개월간 영어 수업과 도서관, 마트만 오가며 한가롭게 지냈던 시간이 가끔 그립다. ……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나이와 시간, 지금 이 시간도 몇 년 뒤에 뒤돌아보면 또 다른 추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 언제나 지금이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1만 6,379걸음. 거의 3년 만에 알고 지내던 편집자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 나는 잡지사에 들어가기 전이었고, 편집자는 출판사를 막 그만둔 뒤였다. …… 새로 작업할 책이 든 가방이 든든하다. 새 책을 번역하는 기분은 새로운 도시에 처음 발을 내딛는 기분처럼 언제나 두근거린다. 이 도시에 내가 모르는 즐거운 이야기가 더 많기를 바랄 뿐.


1만 3,895걸음. 작년에 번역가 작업실에서 나온 뒤부터는 작업하는 공간이 늘 고민이었다. 카페를 가자니 밥 먹기도 애매하고 오후가 되면 사람이 많아졌다. 도서관은 좀 답답하기도 하고 방역 시간이 있어 자리를 비워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집은 그보다 더 답답하고 침대가 너무 가까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 여름처럼 더운 날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2년 전 가을, 언니네가 사는 캄보디아로 떠났던 날이 떠오른다.


1만 9,883걸음. 작업료가 입금된 기념으로 함께 일한 선배가 밥을 사고 내가 커피를 사기로 했다. 오랜만의 이태원 약속. …… 오후에는 동네 친구의 생일 축하 겸 집들이 모임을 다녀왔다. 이사 당사자이자 생일자인 친구는 어제 미리 봐 둔 장으로 화려한 손님상을 차려냈다. 실컷 배부르게 먹고, 배도 꺼뜨릴 겸 불광천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나는 걸으며 여행의 감각을 기억해내려 한다. 새로운 골목과 나무와 풍경을, 친구와 함께 와야지 어느새 다짐하고 있는 식당과 카페를, 그리고 잊은 줄 알았던 여행자의 기분을.


반복적인 루틴에서 조금의 산뜻한 순간을 더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이것 또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집 밖으로의 여행!

누군가는 플랭크를 통해, 다른 누군가는 만 보 걷기를 통해, 또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통해, 달리기를 통해 집 밖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나는 '산책'을 통해 즐기는 편이다.

어느 한 곳에 탁 내려놓으면, 그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적당한 걸음을 유지하며 걷고 있는 그 곳들을 눈에 담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생각이 많을 때, 여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을 때, 새로운 것을 담고 싶을 때,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걷곤 한다.




Ⅲ 기억에 기댄 여행


여행을 통해 남기는 모든 것은 곧 추억이 된다.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기념품은 역시 사진이다.

휴대폰으로, 카메라로 곳곳을 담아내면, 이후 사진을 통해 그곳에서 있었던 일부터 감정까지 순식간에 되새길 수 있으니깐.


그 외에 꼭 챙기는 것이 있다면 엽서와 마그넷 그리고 영수증이다.

엽서와 마그넷은 그렇다치지만 누군가에게 영수증이라고 말하면 갸우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영수증은 최고의 기념품 중 하나이다.

어차피 버리기에 대부분 영수증을 받지 않지만, 나는 다녀온 곳의 영수증을 테이핑처리하여 일기장에 붙여놓고 그 때의 기록을 한다.

기억을 상기시킬 때 영수증은 사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모으고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진부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닐까. 다음 여행을 다 같이 기다린다. 반드시 찾아올 여행을.




나의 활동은 코로나가 딱 터지자마자 멈추었었다.

코로나에 호되게 당했었던 그 날들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져 아직도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코로나도 잠잠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프기도 정말 아팠었고 지금도 후유증이 심한 편이라 아직은 무섭게 느껴지나 보다.


코로나 터지기 두어 달 전에 갔던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었으니 반년 이상을 집과 병원에서만 맴돌았다.

한 두달에 한 번씩 갔던 미술관이나 전시회 그리고 꾸준히 VIP이었을 정도로 자주 갔던 영화관도 코로나 터지자마자 발길을 뚝 끊었으니깐.


그러다 6월 첫째주부터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외식을 하고, 외출다운 외출을 하고, 여행을 하고, 극장을 가고.

원래의 일상인데 이 모든 것들이 올해 처음으로 한 일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 어디에 감금되어 있었던건가 싶을 정도로 헛웃음이 난다.

그런데 갇혀있었다는 느낌을 크게 받지는 않았다.

저자들처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나만의 방법들을 통해 답답하고 지친 마음을 나름 위로해줬었으니깐.


일상을 여행처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습관을 잘 습득한다면 단순히 코로나때문만이 아니고 지친 일상 속에서 한 줌의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코로나가 끝나는 시점에서,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던 것들이 오프라인으로 다시 전환되면서 이전에 빡빡하게 느껴졌던 삶을 다시금 느껴야 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생각해보라. 이전의 삶이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긴 했지만 단점도 있지 않았던가!

오히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면서 본인에게 정신적으로 이로웠던 점도 있었을 테니깐.


책상에 잔뜩 쌓아놓고 공부할 수 있었고,

책도 잔뜩 읽을 수 있었고,

그간 봤던 영화와 미드들을 다시 볼 수 있었고,

피아노, 가야금 외에 하프와 기타를 시작할 수 있었고,

마스크 꼭 쓰고 늦은 저녁 산책을 할 수 있었고,

마당 한 켠에 나만의 조그마한 텃밭이자 식물원을 만들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사진으로도, 글로도 남겼으니

나는 이미 여행자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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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16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코로나 후유증으로 고통 받으셨다니 ㅠ.ㅠ
유월 맑은 공기로 심신의 휴식과 평온을!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여행은 이제(비행기 타고) 목숨을 걸어 야 하는 시대가 된것 같습니다 ㅎㅎㅎ

하나의책장 2022-07-13 21:27   좋아요 0 | URL
코로나 걸렸을 때도 정말 아팠었는데 이제는 후유증으로 고생중이니.. 참 답답해요ㅠ
몸이 아프다보니 잠수 아닌 잠수를 타게 되네요ㅎㅎ
저는 미각, 후각 돌아오는 것만 해도 6개월이 걸렸었는데 완벽하게 돌아오지는 못하고 후각 신경에 조금 이상이 있는 것 같아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어요. 사실 후유증이라고 해도 별 것 없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ㅠ
정말, 건강이 최고임을 절실하게 느꼈던...^^

요새 정말 미국으로, 유럽으로 여행다녀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많이 부럽긴 하지만 전 아예 백신을 안 맞은 상태인지라 해외여행은 지금도 여전히 꿈도 못 꿀 일이에요>.<

요새 코로나 확진자가 알게 모르게 더 늘어난 상태라 병원에서도 조심하라고 했으니 여름 휴가는 생략하고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에 상황 봐서 국내 어디라도 다녀오려고요ㅎ
scott님은 여름 휴가계획 있으신가요?
 
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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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막연히 평범해보이는 오브제지만 번역가인 저자에게 사물 하나도 이야기로 보이는 것만 같다.

그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고전부터 현대를 배경으로 타임슬립하며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저자, 이재경은 서강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했다.

경영컨설턴트와 출판 편집자를 거친 월급쟁이 생활을 뒤로하고, 2010년 전업 번역가가 됐다. 번역가는 생각한 만큼, 겪은 만큼, 느낀 만큼 번역한다.

자기객관화와 감정이입에 동시에 능해야 한다. 그간의 내 이력이 밑천이요, 비전공자로 산 세월이 저력이었다.

어느덧 번역이 가장 오래 몸담은 직업이 됐다. 밑천이 바닥날까봐 번역가의 참호 안팎에서 틈틈이 소소한 모험을 추구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거기서 얻은 발상과 연상을 기록한다.

산문집 『젤다』, 시집 『고양이』, 고전명언집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해』를 엮고 옮겼고, 『편견의 이유』 『쓴다면 재미있게』 『깨어난 장미 인형들』 『민주주의는 없다』 『바이 디자인』 『소고기를 위한 변론』 『가치관의 탄생』 『셜로키언』 『뮬, 마약 운반 이야기』 등 50권 넘는 책을 번역했다.




Ⅰ 소소한 모두스 오페란디


지난 시대의 실용, 장식이 되다! 【뱅커스 램프】

"특정한 분위기가 있지만 놀랍게도 어느 공간에나 어울린다. 묵직한 마호가니 책상 위에 올라앉아 있어도 멋스럽고, 차가운 철제 가구 사이에서도 멋진 포인트가 된다. 어둠 속에서는 고양이 눈처럼 빛나고, 데이지 화분 옆에서는 더없이 정겹다."

초록색 유리 갓과 황동 받침대 그리고 쇠줄 스위치가 달린 탁상용 전등!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영미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템으로 일명 뱅커스 램프이다.

뱅커스 램프는 영롱한 초록색 유리 갓이 포인트로 안쪽은 오팔처럼 유백색이고 바깥쪽은 에메랄드빛이라 불을 켜면 아늑하게 밀도감 있는 빛이 생긴다.

그렇다면 왜 뱅커스 램프라 불리우는 것일까? 은행보다는 법정과 도서관에 더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던데 말이다.

분명한 것은 녹색이 피로를 덜어주는 색이기에 아마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애용했을 것이고 은행업 종사자를 비롯해 장시간 장부를 보며 계산하는 사람들이 녹색 바이저를 쓰고 일했다는 것이다.

초록색 갓이 달린 전등을 뱅커스 램프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이렇게 시력 보호용 바이저라는 꽤 실용적인 연결고리가 있다. 아니, 있다고 추정한다.



참을 수 없는 수집의 가벼움! 【페이퍼백】


책을 정리했다. 눈 딱 같고 정말 많이 버렸다. …… 20대부터 가방에 늘 한 권씩 넣고 다니며 출퇴근길에, 카페에서 누구 기다릴 때, 짬짬이 버릇처럼 읽던 작은 책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인 텍스트와 '먹고사니즘'과 상관없는 내용은 뇌의 정보처리 프로세스가 평소 닿지 않던 구석들을 은밀하게 자극하는 쾌감을 주었다.


페이퍼백은 대중적 수요가 있는 책을 값싼 종이로 다시 찍어낸 보급판 종이커버 책을 말한다. 즉, 하드커버, 페이퍼백 두 가지로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양장본 아니면 반양장본 식이라 외국과는 조금 다르다.

나 또한 외서를 구입할 때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하드커버로 구매하고 단순히 읽기만 할 책들은 페이퍼백으로 구매한다.


나는 페이퍼백 책들을 한참 버리다가 문득 미련이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몇 권은 충동적으로 표지를 뜯어내고 버렸다. 표지만 남겨서 뭐할 건데? 나중에 메모장 만들 때 표지로 쓰자. 아니면 북마크로 활용? 아니면 카드 대용으로? 껍데기의 용도 변경. 껍데기의 재해석.


저자의 말처럼 참 동감하는 것이 사람의 수집욕이란 참 묘한데서 황당한 핑계로 발동한다.

사실 나도 이렇게 책을 수집할 줄은 몰랐다. 지금은 북카페를 차릴 정도의 책을 가지고 있으니 10년, 20년 후에는 도서관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책장으로 데려온 만큼 선물하고 버리고 팔고 있는데도 금세 채워지는 건, 내 책장에 꼬마 마법사가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페이퍼백들의 표지만 남겨둔 것도 한때 읽은 것에 대한 일종의 목록화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치의 고백(의지)도 선혐의 발현(운명)도 없었다. 그저 충동적 미련이 남긴 경험의 조각들이었다.


책을 읽고 수집하기도 하지만 책에 있어서 꼭 수집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을 찍은 사진이다.

사람도 프로필이나 증명사진을 찍듯이, 나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책들의 사진을 꼭 남겨준다.

예전에는 책표지를 인쇄하여 독후감을 쓴 후에 붙여넣는 식으로 글쓰기 노트를 채워갔었는데 나의 실수로 인해 글쓰기 노트 절반 이상이 쓰레기통 신세가 되어 그 때 이후로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남기다 보면, 쌓여가는 기록물이 되고 이는 추억을 가지고 있으며 결국 '나'를 표현하기도 하니깐.



Ⅱ 일상의 궤도 밖에서


지구 서식자의 행복! 【에스프레소】

1996년 7월, 나는 브장송을 떠나며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켰다. 프랑스에서는 그냥 "커피 주세요." 하면 우리가 아는 에스프레소가 나온다. 커피가 곧 에스프레소다.


우리나라에서 밥을 깨작거리는 것만큼 프랑스에서는 커피 한 잔을 오랫동안 홀짝 거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 음료, 그 중 카푸치노를 수없이 마셨다는 저자는 특히나 20대의 어느 여름 브장송 기차역에서 3.8프랑 내고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플랫폼을 바라보며 선 채로 마셨던 그 에스프레소가 최고였다고 찬사한다.

그 때만 해도 번역가가 되어 처음 번역하는 책이 커피의 역사에 관한 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니 인상깊었던 첫 경험은 평생 가는 것 같다.


에스프레소는 원두를 곱게 갈아 다져 넣고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빠르게 추출하는 커피로 열대 원시림의 축축한 바닥에서 자라던 작은 나무가 커피 전용 추출 기계의 발명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16세기 말, 커피콩이 유럽 대륙에 처음 상륙했지만 커피머신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이탈리아 장인들의 손을 거치며 발전되었다고 한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특급'을 의미하는데, 십여 초만에 커피가 완성되는 추출 속도를 반영한 이름이다.

또한 '특별히'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주문 순서대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잔씩 뽑는 것이니 이 의미도 들어맞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에스프레소는 지구 서식자의 행복이라고.

삶의 애착을 일으키고 무위에 짜릿함을 주고 집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각성의 영약이라고.



도시 산책자의 자의식! 【트래블러 태그】

트래블러 태그는 여행자의 신분을 부여함으로써 능동적 자기 보고라 할 수 있다.

초현실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여행자의 신분을 제대로 누린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가 스콧&젤다 피츠제럴드 부부이다.

집 없이 유럽과 미국의 호텔들을 전전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젤다는 호텔을 "세상사에 포위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 여행자의 신분이 되면 생활에서 분리되어 관찰자의 자의식을 얻게 된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질수록 여행이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참 좋을 수밖에 없다.



Ⅲ 욕망의 부득이함


시간을 밀봉하다! 【차통】

땅이 넓고 생산물이 다양해 자국 생산만으로도 충분했던 중국은 아쉬울 게 없었다.

17세기 중반, 중국 차는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왕비를 통해 영국 왕실에 처음 소개되었다.

그 이후로 차 문화가 왕실에서 귀족층으로 퍼졌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중산층, 서민층에게까지 퍼지면서 차 수입량이 크게 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차' 문화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중국이 아닌 영국부터 떠올리게 된다.

중국과 맞교역할 수 있는 아이템이 없었던 영국은 그 금액을 은으로 지불하면서 심한 국부 유출을 겪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수를 쓰게 된다.

바로 인도에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로 유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은 영국의 차 열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아편에 중독되었고 이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청나라의 선종이 아편 반입 금지령을 내리게 되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를 영국이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빅토리아 왕은 곧장 전쟁을 일으켰고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반식민지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전쟁이 나도 티타임은 꼭 해야 할 만큼 영국인의 차 사랑은 매우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저자는 이 차보다 티캐디로 불리는 차통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사치품이었던 차는 주인이 차통 뚜껑에 자물쇠를 달아두고 안주인이 직접 보관하면서 차를 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부엌이 아닌 응접실에 어울려야 했기에 차통은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저자는 차는 꼭 향수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이니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꽤 성공한 케이스라고.


대학교 때, 예쁜 카페에 가서 먹었던 홍차가 나의 첫 홍차라 할 수 있겠다.

밀크티는 먹어봤지만 순수하게 우린 홍차를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은 딱 이랬다.

'이게 무슨 맛이지?'

절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면서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커피만큼이나 차를 좋아하고 차에 대해 이해도가 높았던 언니에게 홍차를 배웠고 차츰 그 맛과 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 때, 한창 틴케이스도 모으면서 커피보단 차를 많이 마셨었었다.

특히 버찌 그림이 있는 카렐 티를 참 많이 마셨는데, 마지막으로 언제 마셨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4-5년 전에 시즌티를 직구해 마셨던 것이 마지막인 것 같다.

차통은 브랜드별로 특색있게 예쁘다보니 모으는 재미가 있긴 하다.

집에 있는 차통도 꽤 오래되었는데 시즌 틴케이스는 창고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연필꽂이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차통은 원래의 용도를 다한 후에도 녹을 훈장처럼 달고 추억과 앞날을 모아두는 용도로 쓰인다.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을 담아두려는 인간의 노력 가운데 차통은 꽤 성공한 케이스다.




'검색'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을 꼽자면, 번역가인 저자를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직업적인 이유때문에도 검색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이해하고 터득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사물 하나하나에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그녀는 사물이 지닌 물성을 넘어 감성을 소유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

갖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수집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당신은 무엇을 수집하시나요?

수집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남들처럼 평범하게 모으는 무언가 혹은 상상치도 못한 특별한 무언가를 모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오브제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품이나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한 후 작품에서 사용해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는 물체를 일컫는다.

즉, 사물 하나에도 사연을 가지게 된다.


“매일 언어의 국경에서 텍스트가 건널 다리를 짓고 그림자처럼 참호 속에 숨습니다.”

사물 뒤에는 문화적 맥락이 쌓여 있을 때가 많다. 사물에 붙은 이름과 그것이 일으키는 심상도 그 맥락들과 무관하지 않다.

…… 우리가 읽는 텍스트는 거기 등장하는 사물들 뒤의 사연들까지 모두 합쳐서 완성된다.


엄마도, 동생들도 내 방에만 오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뭐 하나만 톡 건들이면 보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볼거리가 많아 이것저것 헤쳐보면서 구경하고 싶다는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그리고 엄마가 물려준 오브제도 물려받아 잘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희한한 것도 참 많다.

이 외에도 물건으로 보관하기 힘든 것들은 꼭 사진으로 남겨 보관한다.

그 사진이 곧 그 물건이리라.

앨범 속 사진 하나하나를 짚어내면 그것과 나의 추억을 저절로 읊게 되는 것이다.

수집가는 꼭 온전하게 사물의 모양을 유지시키며 보관할 필요는 없다.

저자의 말처럼 단순히 사물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사물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감성까지 수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범주화가 없는 대신 교차점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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