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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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들을 이어보세요, 『점선의 영역』

 

 

『하나, 책과 마주하다』

전쟁고아였던 할아버지는 종로 한복판에 귀금속 가게를 차렸다 조폭들과 오해가 생겨 머리를 다치고 가게까지 망하였다. 그러다 겨우 작은 보석상을 차리게 되었고 부족하지 않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앞일을 내다볼 줄 안다는 점이다. 그렇게 앞일을 내다볼 줄 아는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주셨는데 다만 그 내다보는 앞일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같이 다 불행한 일이였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말은 무시할 수 없었다. 달려드는 차를 피할 수는 없다는 말 한마디를 고종사촌형에게 툭 던졌는데 실제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큰아버지 과수원에는 불이 났으며 둘째 큰어머니는 투자사기를 당했고 사촌누나는 장염때문에 수능을 망쳤었다. 이 모든 것을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다 예언해 주셨던 것이다.

가족들은 MRI부터 정신과 상담, 기도 굿, 강령술까지 뭔가를 해보자 했지만 꼭 인생이 나쁜 일만 있겠냐면서 그냥 지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 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 돼."라고. 그 말을 해주신 뒤, 며칠이 지나고 할아버지는 보석상으로 출근하다 빙판에 미끄러져 뇌진탕을 일으켜 끝내 일어나시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을 주인공은 곱씹게 된다. 그리고 그 예언은 정말 주인공을 힘들게 하였다.

주인공이 취업 준비를 하던 중 서진이라는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면접이 있던 서진과 저녁 약속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연락이 통 없었다. 걱정도 컸지만 조심스러움에 망설이던 주인공에게 서진이 먼저 연락을 한다. 그리고 머뭇거리며 지금 나에게 무슨 일인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의 집으로 오라고 한다. 일단 오라고 하니 그녀의 원룸으로 간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두컴컴한 방, 불을 켜서 그녀를 보니 그녀에게서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과연 이게 가능한 것일까? 도대체 그 날 무슨 일이 있던걸까?

서진이 2차 면접을 보러 가던 날 면접 내내 부장은 노골적으로 서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다 서진에게 "확실히 자기주장이 강한 분이시네."라는 말을 아무렇지않게 내뱉었다. 그렇게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소문이 있다는 이유로 취업이 좌절되고 만 서진은 회사 건물을 나와 대형 쇼핑몰 지하에 위치한 서점을 들어가게 된다. 무슨 생각으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강연 하나를 듣게 된다. 그런데 일순간 강연장의 조명이 꺼지게 되었고 일단 쇼핑몰 밖으로 나왔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조금 있다 가셨고 무엇보다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서진은 편백나무 옆에 태양을 등지고 앉아 있었는데 순간 그녀는 경악했다. 사라졌다. 자신의 그림자가.

밖을 나와도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는 결국 알게된다. 자신이 그림자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공과 서진이 어느 날 매장에 갔는데 깜빡임이 일어나더니 잠시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그 때 그녀는 그에게 고백한다. 이건 다 자신때문이라고.

"왜 그랬어?"

"뭐가?"

"그림자. 왜 거부했냐고. 무서워서?"

"약간은. 하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야."

"그럼?"

서진이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그걸 직접 봤을 때 깨달았거든."

"뭘?"

"그게 없어서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림자가 없는 것이 행복하기에 찾으려고 하지만 그는 결국 그녀의 그림자를 찾으려고 한다.

그녀는 만류했지만 그는 말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선 너의 그림자를 찾아야겠다고.

후에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이르기까지 하는데 천운인지 다행히 살아남는다. 그리고 서진을 만나며 이야기한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하나는 일어날 일,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일로 두 가지 말씀이였던 것 같다고.

서진은 주인공에게 나는 너에게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라 덧붙이지만 그는 내가 너에게 반하는 바람에 네가 '만나서 안 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지 이미 예언은 실현되었으니 모든 불행한 일은 끝이며 지금부터 우리 미래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점들이 만나면 선이 만들어진다.

내용에서 점들이 주어지는데 이 점들을 연결시켜 선으로 연결하는 것은 꼭 내 몫인 것 같았다.

서진은 어둠과 그녀의 그림자를 맞바꿨고 주인공은 그의 눈과 그녀의 그림자를 맞바꿨다. 그 말은 각자의 불완전함을 포용하며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부딪힐 때가 많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훗날 우리는 과거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갖곤하는데 그렇다고 과거의 일이 완벽하게 재구성되며 미래를 완벽히 예측한다해서 우리의 삶이 완벽하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신이 아니기에, 인간이기에 우리의 삶은 완벽하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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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번리의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7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정지현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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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우리의 친구, 『에이번리의 앤』

 

 

 

 

『하나, 책과 마주하다』

 

빨간 머리에 주근깨 빼빼 마른 한 소녀가 있다. 살짝 엉뚱하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긍정적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나 또한 행복감을 느낀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앤이다.

예쁘고 당찬 소녀였던 앤이 어엿한 숙녀가 되어 돌아왔다. 앤의 교사생활과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에이번리의 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에이번리 학교의 교사가 된 앤은 오롯이 애정을 듬뿍 주며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당찬 포부를 나타내는데 읽는 내내 선생님이 된 앤을 보고있자니 어릴 적 애정으로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애정을 갖고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과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인생의 조언도 많이 받곤 하는데 요즘은 사제관계의 깊이가 깊지 않은 것 같아 참 씁쓸하긴 하다.

 

여전히 앤은 엉뚱하지만 당당하고 예뻤으며 다이애나도 언제나 그녀와 함께였다. 마을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였고 그들 덕에 전작보다 사랑스러움이 배가 되었다. 마을이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할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울하고 불행한 일도 맞딱드리게 된다. 그게 우리네 삶이니깐.

예전에 「빨간머리의 앤」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자연과 함께 하는 그들이 여전히 부럽게 느껴졌다.

아마 「리틀 포레스트」의 영향인 것 같기도하다. 며칠 전 우연히 뒷부분만 짤막하게 봤는데 왜 내가 이 영화를 진즉에 보지 않았을까했다.

이렇다 저렇다 할 큰 내용은 없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분명했으며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마음을 울렸다.

 

초등학교 때 소녀였던 앤을 만났고 지금은 숙녀가 된 앤을 만났다. 나도 앤처럼 어느새 소녀에서 숙녀가 되었다.

다음 이야기는 나도, 앤도 더 성장한 모습이겠지.

 

세상은 좋은 곳이지요. 마릴라 아주머니? 린드 아주머니는 세상엔 별로 좋은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기분 좋은 일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실망만 하게 된다고, 기대와 다르다고 말이에요. 맞는 말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거기에는 좋은 점도 있어요. 나쁜 일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훨씬 좋게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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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겔만 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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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꿈꾼다,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하나, 책과 마주하다』

 

다이아몬드 요양소에 사는 메르타 안데르손. 그녀의 나이는 79살이다.

요양소에 틀어박혀 하루하루를 보내고있는 메르타 할머니는 감옥보다 더 감옥같은 요양소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한다.

모든 규칙이 정해져 있어 그 규칙대로만 생활해야 하며 식욕을 줄이는 약을 먹이고 산책도 가끔씩 시켜주니 바깥 구경이 절실하기만 하다.

요양소는 감옥보다 더 감옥같다. 하물며 감옥도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산책이 허용된다는데 요양소는 그런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메르타 할머니는 요양소에서의 탈출을 감행하기 위해 감옥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실패를 거둡한 그녀는 합창단 친구들인 오스카르, 베르틸, 안나그레타, 스티나와 함께 제대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어느 날, 국립 박물관에 보행기를 끄는 노인들이 등장한다. 보기엔 구경하는 노인들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요양소에서의 탈출을 위해 결성된 강도단이다. 그들은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을 훔쳐 호텔방에 숨겨둔다.

일단 그림값을 받아서 돈을 잘 숨겨두었다가 감옥에서 나오면 숨겨놓은 돈으로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보다. 받았던 그림값 절반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호텔 인테리어처럼 걸어놓았던 그림까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계획의 차질이 생기자 무작정 노인들은 경찰서에 찾아가 자기들이 범인이라고 실토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 맡은 책임을 다하며 사라진 돈과 그림을 다시 찾기 위해 노력한다. 돈은 찾지도 못하고 그림은 반환되었지만 결국 그들은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결말을 말하면 흥미도가 떨어지니 살짝 언급하자면 해피엔딩이다. (모범수로 석방된 그들은 또 범죄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들은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그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국립박물관)의 소유물을 훔쳤으니 절도죄가 저지른 게 맞다.

그런데 읽고있는 내내 그들의 범죄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저지른 '절도'에 대해 응원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난 그저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의 허무맹랑하고도 자유를 꿈꾸는 열정적인 그 행동을 응원하는 것이다.

고령의 나이가 되면 '사회'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혼자 살던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지 한 달만에 발견되었다는 소식들을 뉴스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

이전부터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들이 세상과 고립되면서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이다.

이런 문제들은 갈수록 심해지면 더 심해질텐데 국가에서도 이런 문제는 해결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소설에 적용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니깐.

언제나 젊을 것 같은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도 고령의 나이가 되어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게 해드릴 것이다.

삶을 산다는 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뜻이다. 우리도 언젠가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도 시간만 하염없이 흘려보내며 아무 것도 하지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이 과연 없을까?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날이 와도 책장 옆에 자리잡아 독서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 삶의 원동력일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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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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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 죽음의 그 경계, 『골든아워 1』

 

 

 

 

 

『하나, 책과 마주하다』

 

우리가 이 생을 살아가면서 다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이렇듯 매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는 그들을 붙잡아주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외과의사 이국종이다.

이국종은 외상외과 의사로서 17년간을 일했고 지금도 쉬지않고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현재 의료 시스템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가 '골든타임'이란 말을 처음 들은 것이 MBC스페셜이였다.

실제 골든타임에 도착한 중증외상 환자들의 대부분은 목숨을 건졌지만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들은 대부분 죽음에 더 가까워져야만 했다.

이국종 교수가 말하는 골든아워란 60분 안에 중증외상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 도착하여 빠르게 수술방으로 들어가 치료해야 하는 시간이다.

MBC스페셜을 봤을 때도 참 마음아파하며 눈물이 흘렀는데 또다시 책을 통해 보니 한동안 말문이 턱 막혀 멍하니 있었다.

책에는 그가 말하는 무수한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 몇가지만 말해볼까 한다.

어느 초여름 밤, 폭력조직들의 싸움이 벌어져 응급실에는 피 흘리는 조직원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 중 칼을 맞은 한 남자가 있었는데 피를 수혈하면 몸에서 곧장 빠져나갈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출혈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의사들의 헌신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이국종 교수가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느냐였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도 이국종 교수에게는 언제나 걱정거리가 있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였다. 한정적인 중환자실의 침실은 실제 회복되서 일반병실로 올라가거나 세상을 떠나게 되면 자리가 비는 것인데 실제 외상환자들을 수술하고 나서도 중환자실 자리가 부족해 항상 발을 동동 구른다고 한다. 예전에 메디컬 다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중환자실은 간호사들의 집중케어가 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중증외상 환자들은 수술하고나서 수시로 상태를 체크해야 하기때문에 응급실 혹은 일반병실로 갈 수가 없다. 정말 자리가 없게되면 응급실 침상을 대개 병상으로 쓰기도 한다는데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이국종 교수는 강조한다. 실제 이 교수가 병원 윗선에 여러 번 의견을 올렸지만 딱히 답변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병원 내부 사정도 중요하겠지만 의사들이 수술과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게, 자리가 부족해 발을 동동 굴리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은 병원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싶다.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차승원과 유재석이 극한알바 특집으로 탄광에 간 적이 있었다. 물론 막장의 개념을 알았지만 실제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니 더 와닿았었다.

막장, 삶이 막다른 곳에 이르게 되는 곳을 말한다.

이국종 교수는 말한다. 병원에도 막장은 존재한다고. 어두침침한 복도를 지나 수술방으로 들어서는 그 곳이 바로 막장이라고.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던 한 남자가 8층 높이에서 추락하여 출동한 119구급대가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 곳은 중증외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나 장비가 전혀 없는 상태였는데 필요한 각종 검사를 다 해놓고선 중증외상센터로 보냈다.

사고가 자정쯤 발생했고 이국종 교수에게 환자가 온 시간이 새벽 3시가 넘어서였다. 출혈이 심한 것은 물론이고 이미 환자의 상태는 손 쓸 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환자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위해 보호자들을 만나러 갔는데 어린 아이들 둘뿐이였다고 한다.

자세한 말을 할 순 없었다. 중학생 여자아이와 초등학생 남자아이에게 무슨 말을 할까. '엄마는 어디 계시니?'라고 묻자 '엄마는 없어요.'라고 덤덤히 말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 교수는 그저 '아빠가 좀 많이 아프시단다.'라는 말 밖에 할 순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아이들의 고모라는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두 남매의 아버지는 다음 날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이국종 교수는 여기저기 사회기관에 도움을 청해도 명쾌한 해결책을 들을 수 없자 허 위원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몇달 후, 국회의원 회관에서 회의가 있던 날 허 위원을 만나 들은 이야기는 가히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고모라고 한 사람은 바쁜 남매의 아버지를 대신해 돌봐준 이웃주민이였고 뜬금없이 엄마라는 사람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려가 보험금을 수령한 뒤 아이들을 다시 할머니네에 맡겼다는 것이다.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았다면 분명 두 아이의 아버지는 죽음에 가까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처음 이송되었던 병원에서 바로 중증외상센터로 보냈다면, 만약 이송되었던 병원에서 수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각종 검사를 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증외상센터로 온 환자들은 노동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어린 남매가 받았을 상처에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 삶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니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허나 중증외상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의료진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매달려 있는 그들을 어떻게든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것이다.

 

중증외상센터로 온 환자들은 살거나 혹은 죽어서 수술방을 나간다.

환자에게 단 1%의 확률이라도 존재한다면 의료진들은 그 1%의 희망을 걸고 최선을 다한다.

이국종 교수님의 노고에 존경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중증외상센터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료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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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공화국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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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전해드려요, 『반짝반짝 공화국』

 

 

 

『하나, 책과 마주하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좋아 지금의 느낌이나 순간의 일상을 글쓰기 노트에 하루에 몇 번이고 끄적인다.

하루도 빠짐없이 짤막하게 혹은 길게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선 그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 바인더 노트에 끄적인다.

그렇게 내 일상은 언제나 기록의 연속이다.

이번에 오가와 이토의 『반짝반짝 공화국』이 출간되었는데 초반에 좀 읽다가 잠시 멈추고 『츠바키 문구점』을 책장에서 꺼내 다시금 읽어보았다.

전에 읽었던 여운이 새록새록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그 여운을 그대로 유지시킨 채 『반짝반짝 공화국』을 쭉 읽었다.

물론 바로 읽어도 읽는 데는 전혀 지장없지만 『반짝반짝 공화국』은 『츠바키 문구점』의 속편이기에 시간적 여유가 더 있다면 『츠바키 문구점』을 읽고선 바로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짤막하게 『츠바키 문구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겉보기엔 문구를 파는 것 같지만 그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들은 여성 서사들이 대필을 가업으로 잇고 있는 집안이다. 포포는 할머니 밑에서 대필가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밟게 되는데 대필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엄한 할머니 밑에서 어린 나이에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샤프는 절대 쓰지 않으며 무조건 연필을 사용해야 하고 대필은 어떤 종류든 상관없이 써야 한다. 무엇보다 포포는 다른 사람인 척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사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츠바키 문구점을 찾아오는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포포는 점점 이 일에 빠져든다.
글로서 마음을 전하는 건 쉬운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고 나아가 상처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츠바키 문구점을 찾아온다.

포포를 찾아온 손님들의 사연과 오해가 쌓인 채로 이별한 할머니 즉, 선대와의 화해를 다룬 에피소드가 『츠바키 문구점』의 주된 내용이다.

그로부터 1년 후, 포포는 이웃인 미츠로와 부부가 되었고 딸 큐피를 낳게된다.

주말부부로 살던 포포와 미츠로는 드디어 한 집에 살게 되었는데 이사준비를 하다 미츠로가 버린 노트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미츠로와 사별했던 전부인인 미유키의 일기였다. 미유키의 일기로 인해 포포와 미츠로는 다퉜지만 그들의 화해의 끝은 바로 포포의 손편지였다.

어느 날, 포포에게 자신이 엄마라고 하질 않나, 포포의 삶이 잔잔하지는 않았다.

대필 작업도 계속되었다. 각자의 사연들도 얼마나 슬프던지. 앞을 보지 못한 한 소년의 어버이날 편지부터 사랑을 고백하는 러브레터까지.

포포는 다짐한다. 우리들의 '반짝반짝 공화국'을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그 모습을 보니 포포가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졌구나를 느꼈다.

이제는 문자, 카톡, 이메일이면 용건이 끝나는 시대지만 나는 아직도 손편지가 좋다.

마음을 담아 한 자 한 자 꾹 꾹 눌러 쓰다보면 상대방도 읽는 내내 고스란히 내 마음을 읽는 것 같아서.

포포의 이야기를 읽으니 오늘은 문득 손편지가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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