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한다
지에스더 지음 / 체인지업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10대에는 집에서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부모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고 20대에는 그토록 바랐던 특수교사가 되었지만 꽃길은 착각이었고 30대에는 두 아이 독박 육아로 죽을 만큼 힘들었다.

자연스레 내면에 비평가를 키우게 된 저자는 어느 날 깨닫게 된다.

"나를 힘들게 한 건 나였다!"

저자는 깨우침을 얻고 새벽에 홀로 일어나 고전을 필사하고 글을 썼다.

그 글이 모여 탄생한 것이 바로 『나는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한다』이다.


저자, 지에스더는 아홉 살, 다섯 살 남매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2007년부터 초등학교 특수교사로 일했고, 현재는 광주에 있는 특수학교에 재직 중이다.

고요한 새벽 4시, 홀로 깨어 고전을 읽고 필사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온전히 나를 느끼고 찾아가는 여정을 즐긴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라는 균형 육아를 지향한다. 엄마로만 사는 것이 아닌 나답게 성장하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나 자신의 팬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Ⅰ 나를 지키는 마음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두려웠던 저자는 남편과 약속을 하게 된다.

트러블이 생겼을 때 과거의 일은 언급하지 않고 현재 사건에 대해서만 다뤄야 하며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그 약속을 지켜냈는데 그런 그녀가 아픈 남편에게 괜스레 화를 낸 일이 발생하고 만다.


평소의 저자였다면 꾹 참았겠지만 저자는 달라지고 싶었다.

꾹 참기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고 건강한 감정 처리 방법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친정엄마가 화를 받아준 적이 별로 없었던 데다 오히려 친정엄마 쪽에서 화를 더 크게 내다 보니 꾹 참는 게 일상이었던 그녀는 오히려 화를 내기보단 숨기는 게 편했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단순히 보이는 평화만 유지하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타인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을뿐더러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기에 더더욱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게는 착하지만 자신에게는 못된 사람으로 살았던 그런 그녀가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먼저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그녀 자신을 진심으로 존중해주었다.

또한 상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있으면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전달했다.

상대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어떻게 해줬을 때 편안하고 사랑받는 기분인지에 대해서만 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말한다.

"그동안 미안해, 이제 나부터 챙길게."



저자의 첫 책은 <하루 15분, 내 아이 행복한 홈스쿨링>이다.

첫 책을 출간하고선 존경하는 교수님께 책 출간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고 이때 친구에게 용기 내어 교수님께 연락드렸단 사실을 말하게 된다.

"너무 바쁘신 분인데, 네 책을 살 시간이나 있으시겠냐?"

한 방 맞은 기분이 들게 한 친구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 바빠서 네 책 읽을 시간 없어. 읽으라고 강요하지 마!"

애써 웃으며 당장 읽을 필요 없고 여유 있을 때 보라곤 끊었지만 저자의 마음은 이미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였다.

남편과 부모님을 제외하면 책을 썼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전한 첫 친구였다.

이후 그 친구와는 연락이 끊어졌지만 쌓였던 관계가 무너져 받아들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복직한 이후 책을 썼다는 사실이 직장 동료들에게 퍼지게 되었고 그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휴직해서 왜 책을 썼어?"

"두 아이를 집에서 키우면서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요. 살고 싶어서요."

"그렇게 힘들었으면 복직을 했어야지."


앞서 말한 친구나 직장 동료는 가까이 하지 않아도 될 분류에 속한다.

응원은 아니더라도 비난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관계의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보니 우리 주변에도 상처와 비난을 주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게 그 누구도 상처입힐 수 없다.

자신의 멘탈을 깨부셨다는 말을 할지라도 그 파편 하나라도 나를 해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말이 옳다고 받아들일 때 상처입는 것이니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말에 끝없이 휘둘릴지 아닐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니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에 정답을 내릴 순 없다.

즉, 한 사람의 판단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멘탈을 부수려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를 지킬 수 있도록 관계를 끝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멘탈을 깨부수는 당신과는 손절하겠습니다."




Ⅱ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법


'지겨워. 제발 부탁이야. 이제 좀 그만하자. 또 시작이니.'


내면의 비평가는 쉴 틈 없이 비평한다.

조금이라도 외면하거나 눈 돌려버릴 것만 같으면 이렇게 말을 한다.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드는 내면의 비평가는 잘해보겠다는 다짐도 무색하게 만든다.

우울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생각의 전환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라는 마음과 함께 최종 목적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길을 잡는 대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마음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분명히 가야 한다.

이때 저자는 고전 필사했던 노트를 살펴보았다고 한다.


'너무 완벽한 목표와 기준을 잡은 거 아닌가?'

그래. 나는 그동안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왔다.

'남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한 거 아닌가?'

그래. 다른 사람들과의 결과물에 비교하며 내가 노력한 과정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나온 판단으로 계속 나를 힘들게 할 것인가?'

그래. 나를 힘들게 한 생각은 바로 내 안이다.


저자는 고전 필사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답을 얻었던 것이다.

세 가지 질문은 꼭 고민하고 있는 자신에게 던져봐도 좋을 질문들이다.

내면의 비평가가 하는 방해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야 하기에.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발전하는 과정을 즐기며 살아야 하기에.




사랑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며 애쓸수록 내 존재는 희미해졌다. 더 외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나를 사랑하는 힘이 점점 사라졌다. 결국 내 곁에 아무것도 남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나 자신에게는 유독 엄격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에, 유독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가정과 학교에 대한 영향으로 인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가정에 작은 잡음이라도 나는 것이 싫어 유난히 나는 속으로 삼키는 훈련을 본의 아니게 받아왔었다.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하는데, 속으로 삼키고 또 삼켰다.

아마 엄마가 그래왔던 것을 첫째인 내가 그대로 따라 했을지도 모른다.

훗날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잘못되었던 일은 잘못되었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했던 내가 참 야속했다.

그게 결국 마음의 병이 되었다는 것도 너무 늦게 깨달았었다.


그나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써왔던 일기와 독서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어느 날, 선생님과 상담과도 같은 대화를 나누고선 집으로 돌아왔었다.

일기와 다이어리를 싹 모아놓고 보니 72L의 상자에 가득 찰 정도였는데, 이내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나고 나면 추억일 텐데 아깝지 않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당연히 아깝다. 그때 그 시간에 한 자, 한 자씩 적었던 소중한 일기인데 안 아깝겠냐마는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억에 남기고 싶은 특별한 일이 있었던 일기장은 그대로 상자에 넣어놓고 벗어나고 싶었던 그 순간이 담긴 일기장들은 싹 버렸다.


책을 읽던 도중에 좋은 구절이 보았을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좋은 대사를 들었을 때,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인상깊었던 말을 들었을 때, 책을 읽고 난 뒤 수기로 서평을 작성했을 때…….

이럴 때, 바로 꺼내 드는 게 '글쓰기 노트'이다.

분홍빛 바인더에 꽉 채워져 있는 기록물들은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하는 도중에 커피를 쏟게 되었다.

곧장 발견하지 못하고 조금 늦게 인지하는 바람에 눈앞에 마주했던 것은 축축해진 바인더였다.

바인더를 펼쳐놨고 바인더 자체는 튼튼했기에 상관없었지만 속은 이미 다 젖어있었다.

한 장, 한 장 분리해 말려보려고도 했지만 앞쪽은 이미 축축해져 있어 통째로 뜯겨졌고 뒷부분도 성치않았다.

나의 실수로 나의 보물이 사라져 며칠을 끙끙 앓으며 자책했었고 한동안은 버리지도 못하고 선반 위에 올려놨었다.

며칠은 무슨, 몇 주를 끙끙 앓았다. 근 10년간의 기록이 사라졌던 것이니깐.

기록물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나였기에 더더욱 힘들었었다.


그런 내가 일기장을 과감하게 버렸다는 건 나름의 큰 결정이었다.


"삶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새해 다짐에 필사를 넣은 것은 책의 영향이었다.

예전에 논어 등 동양고전을 서너 번 필사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 인상깊었던 구절을 글쓰기 노트에 옮기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차 필사 노트는 따로 만들지도 못했다.

저자가 3년 넘게 필사하면서 모은 필사 노트만 무려 총 다섯 권이라고 하는데, 나 또한 내 마음 돌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필사를 택하려고 한다.

사실 12월 31일에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1월 첫째 주부터 병원에 왔다갔다하며 검사하고 컨디션이 좋질 않아 귀한 일주일을 통째로 날렸었다.


1일 2포는 무리더라도 1일 1포는 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노력해본다.

이 책도 1일이나 2일에 올라갔어야 할 서평이었… 지만 지금이라도 올렸다.

3권 정도 추려놨는데 2023년 첫 필사책을 어떤 책으로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나에게 관심을 두기보다는 타인에게 눈을 돌렸다. 온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을 위해 썼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이상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맞추며 애쓸수록 내 존재는 희미해졌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나는 나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스스로 내 행동에 가치를 매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즐겁게 살면 된다. 그러면 충분하다.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주는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다. 나에게 찾아온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지금 내 자리에서 진짜 내 실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32살, 헬레나 로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부와 명성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마냥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니 죽기 전엔 쓰려고 미뤄두었던 마지막 소설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지난 4년간, 비밀로 간직해 온 그녀가 쓰고 싶어 하는 그날의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 앨러산드라 토레는 뉴욕 타임스, USA 투데이, 월스트리트 저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녀의 출세작 『블라인드폴디드 이노센스(Blindfolded Innocence)』는 아마존 전자책만으로 출간되어 전자책 순위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주요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며 작가로 데뷔하였다.

2017년, 그녀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할리우드 더트(Hollywood Dirt)』는 장편 영화로 개봉된 바 있다.

토레의 소설은 지금까지 18개 언어로 번역되어 30여 개국에 출간되었다.

그녀는 또한 작가 커뮤니티이자 온라인 학교인 「앨러산드라 토레 잉크」를 설립하였고 20,000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자비 출판을 장려하는 앨러산드라는 대학, 컨벤션, 작가 단체 등에서 연설과 강연을 한다.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다양한 글쓰기 프로젝트에 매일 몇 시간을 할애하고,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핀터레스트에서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나는 죽고 있다

'나'에게 작은 레몬만 한 종양이 생겼다.

주치의가 구구절절 설명한 바에 의하면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_'말기' 그리고 '석 달'


나는 슬퍼야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해야 하지만 친구는 물론 가족도 없는 '나'였다.


나는 기다려 왔다

어쩌면 탈출구가 나타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4년을 기다려왔다.

지난 4년 동안 회피해온 그 진실을 말이다.


내가 그를 만났던 그 밤에는 퍼넬 케이크 냄새와 담배 연기가 짙게 배어있었다. 그가 미소 짓는데 내 안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허리가 곧게 펴진다. 심장이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세게 뛰었다.

그 같은 남자는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눈으로 계속 나를 쫓거나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나에게 더 많은 걸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는 비웃지 않았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나의 세계가 변한다.


잔잔한 내 삶에 파도처럼 밀려왔던 사이먼, 그는 진정 사랑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나, 헬레나는 이제 일을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케이트에게 은퇴란 말을 꺼내자 서른 두 살에 누가 은퇴하는 사람이 있냐며 규칙 4번을 어긴 채 개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상 헬레나가 은퇴하게 되면 케이트에게는 밥줄 자체가 끊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새 책을 쓸 거예요. 편집은 트리샤 프리전이 맡아주면 좋겠어요."

출판계에서 핫한 스타 에디터인 트리샤 프리전에게 헬레나의 원고를 맡길 순 없었던 케이트는 최대한 마지막 보루로 남겨놨던 친절한 목소리까지 장착한 채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케이트에게 헬레나는 무뚝뚝 그 자체여서 두통과도 같은 존재였다.

처음엔 까다로운 고객이 될 줄 상상도 못 했으니깐.


헬레나의 조기 은퇴 선언으로 케이트는 헬레나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바로 헬레나의 모습이었다.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 은퇴에 대한 얘기요."

"나를 직접 봤으니 이제 답이 됐어요?"

그랬다. 헬레나 로스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세 달 남았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3개월이 남았고, 3백 페이지는 수월하게 넘을 써야 할 책이 있다. 나는 눈을 감고 셈을 해본다. 40일 간 초고를 쓰고, 40일 간 퇴고를 하고, 남은 열흘은 병가로 자유롭게 보내는 것. 그러려면 하루에 여덟 페이지, 그러니까 2천 단어를 써야 한다.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석 달 중 열흘 휴가는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이다. 그리고 하루에 2천 단어는 너무 벅차다. 특히나 책 한 권 쓰는데 보통 1년씩 걸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글은 써야 했던 헬레나.

그녀에겐 대필 작가가 필요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은 기술을 갖춘 사람, 나의 글 스타일을 아는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만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내 이야기에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을 사람. 자신의 감정을 모두 내려놓고 쓸 수 있는 사람이다.

정답에 도달하기까지 필요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정답은 나의 뇌 언저리에서 서성이다가 불쑥 들어온다.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여자에게 부탁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곰곰히 생각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바로 마르카 반틀리였다.

여차저차하여 드디어 마주하게 된 마르카 반틀리, 순간 그녀 스스로 미쳤나 싶을 정도였다.

"마크 포춘이라고 하오. 마르카 반틀리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마크 또한 헬레나를 자신과 비슷한 연배로 생각해 희끗희끗한 머리에 안경을 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작디 작은 여자가 내뿜는 분노를 보고있자니, 분노가 사람이라면 그것을 헬레나 노스라 생각할 정도였다.

단순히 돈이 걸려 대필을 부탁하는 게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예요."

"가족 이야기지만 책의 시작은 그전부터예요. 사랑 이야기요.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거요."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하나 낳아요."

"비극이에요. 결국 아내는 그 둘을 잃고 말아요."

남겨진 시간에 글을 쓰겠다는 헬레나의 말에 마크가 자리에 일어서자 헬레나는 금액을 더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크는 돈 때문이 아니라며 자신에게 열아홉 살의 매기라는 딸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좋으시겠네요. 내 딸의 이름은 베서니예요. 3주 전에 케이크에 초 열 개를 꽂았어야 했는데. …… 그게 내 책과 무슨 상관이죠?"

"나라면 우리 딸이 인생의 마지막 몇 달을 썰렁한 집에 틀어박혀 나 같은 사람이랑 글이나 쓰고 있게 하지 않을 거요."

그러자 헬레나는 이내 입을 열게 된다.

"책은 내 남편과 딸에 대한 거예요. 둘 다 죽었어요. 나는 죽어가고 있고요. 그쪽이 앞으로 세 달 동안의 내 계획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건 나도 유감이에요. 하지만 나에게는 이게 중요해요. 그들의 이야기……. 나에게 중요한 건 이거 하나뿐이라고요."




처음부터 힌트를 던져주지 않아 그 비밀이 궁금해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초반에 마크에게 입을 연 순간, 남편과 딸의 죽음에 분명히 개입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진실을 마주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 혼자 내버려두고 작업실에 있었을 때도 정신병원에서 행복하게 글을 쓰고 있었을 때도, 내 화를 못 이겨 접시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을 때도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나에게는 아이가 필요하다. 나에겐 필요하다…… 필요하다…….


그렇다. 헬레나는 분명 딸을 사랑했다.

그리고 마크 또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헬레나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했는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남편 사이먼과 딸 베서니의 죽음, 그 내용의 실체는 뒷부분에서 밝혀진다.

뒷부분 내용을 적고 싶어도 결말이 오픈될 수밖에 없어 말할 순 없지만, 살짝 말하자면 사이먼에게 문제가 있다.


마지막 장을 덮기도 전에, 이미 헬레나의 마음이 십분 이해갔다.

읽고있는 독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게 남편과 아이가 죽고 4년 후에 눈을 감게 된 헬레나는 딸 옆에 안치되었다.

직접 고른 묘비에는 '미안합니다'라고 적혀져 있는데 에필로그임에도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진실의 문을 열었기에, 이제 헬레나의 완벽한 거짓말은 무너지고 말았다.

헬레나가 가지고 있던 그 진실은 책에서 확인해보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하라 2022-12-24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무게가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기엔 너무 무겁네요.
하지만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 되셔요. 하나님 메리크리스마스^^

하나의책장 2023-02-24 20:42   좋아요 1 | URL
조금 질질 끈 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반전을 쥐고 있던 소설이었어요.

지각쟁이 하나가 이제야 댓글을 답니다ㅠ
하라님께 Merry Christmas! 라고 외쳤어야 했는데ㅠㅠ
다음주면 3월이라는 게 믿겨지시나요?
하루하루가 이렇게 빠를 수가 없어요ㅎㅎ
이제 봄이 성큼 다가왔네요.
아직은 쌀쌀하니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한복 입는 CEO - 일상에 행복을 입히는 브랜드 리슬의 성장 철학
황이슬 지음 / 가디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아무도 찾지 않던 작은 한복 브랜드에서 데일리 패션을 주도하는 트렌드 리더가 된 모던 한복의 창시자, 황이슬 대표.

『한복 입는 CEO』는 그녀가 수백 번, 수천 번 도전하면서 겪었던 경험과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철학과 지혜를 담은 책이다.

전주의 이불집 한 켠에서 시작해 밀라노 패션쇼에 오르기까지, 그녀만의 브랜딩 철학과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 황이슬은 본인 이름을 딴 모던한복 브랜드 ‘리슬’의 대표이자 디자이너다.

한복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며 잔잔하던 한복 시장에 돌을 던진 독보적인 인물이다. 한복과 k-pop을 사랑하는 덕후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 자체를 즐기며 창작자들의 롤모델로 손꼽힌다.

2006년, 스무 살 황이슬은 전주에서 ‘손짱’이라는 한복점을 겁 없이 창업한 뒤 17년간 넘어지고 깨지며 작은 브랜드가 살아남는 법을 체득했다. 결혼식 예복으로 인식되던 한복을 힙한 길거리 패션으로 재탄생시킨 것은 물론 k-pop 아티스트의 무대의상으로 만들어 한류의 중심이 되었다. 2022년, 밀라노 패션위크 런웨이로 데뷔하며 한복을 패션 장르 반열에 올렸다. 삼성, 이랜드, 아모레퍼시픽 등 여러 분야 기업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한복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으며 한복 산업화와 문화확산을 일으킨 공로로 국무총리 및 문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Ⅰ 틀 깨기 정신


몰입을 통해 떠오른 창의적인 생각들을 용기 있게 실험하고 시도하는 단계이다. 소재를 바꾸거나 작업방식을 바꾸거나 다른 장르와의 결합하며 나만의 세계관과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어머, 옷차림이 굉장히 특이하시네요."

"뭐 하시는 분인가요?"

저자가 길을 나설 때마다 꼭 한 번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과감한 염색 머리, 저고리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가 그녀만의 ootd라 할 수 있겠다.


한복 디자이너인 저자는 1년 중 360일은 한복을 입고 다닐 정도로 한복 마니아인데, 실제 한복을 실컷 입기 위해서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전북대 산림자원학과에 입학했던 저자는 나무 이름과 특징을 배우며 무료한 대학 생활을 보냈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뜬금없이 한복이 찾아오게 된다.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대학 축제 때 코스튬 플레이를 하게 되었고, 한창 핫했던 「궁」 한복을 입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 「궁」에서 나온 한복은 미니스커트 한복, 배꼽티를 연상케하는 한복, 저고리를 생략하고 치마를 응용한 드레스 한복 등 대부분 정통 한복이 아닌 퓨전 한복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던 터였다.

어깨너머로 미싱을 보고 배운 19년 경력의 이불집 딸내미였으니 한복 천만 구하면 딱이었다.

저자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한복 천을 구할 수 있었고 어깨가 봉긋 올라온 퍼프 소매가 달린 분홍색 저고리와 짤막한 빨간 치마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렇게 완성한 한복을 입게 되었지만 혹여나 혹평이라도 받을까 괜스레 움츠렸지만 마주한 반응은 정반대였다.

모두들 예쁘고 잘 어울린다고 입을 모아 칭찬해 주신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의 의미가 깃들여서도 좋았지만 아름다운 색감과 특유의 볼륨감이 더 황홀케했다.

한복이 그녀의 삶이 된 결정적 계기는 한복 판매로부터 시작된다.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한복을 만들고 직접 판매까지 했는데, 구매자들 모두가 만족했던 것이었다.

'아예, 판을 제대로 깔아야겠어. 온라인 판매를 하려면 사업자를 내면 되나?'

도서관을 찾아 창업서 몇 권을 읽고 당장 온라인 판매 사업자 등록부터 한 저자, 한복에 대한 불꽃같은 사랑이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저자의 첫 브랜드 '손짱'이었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재미로 시작한 쇼핑몰이 내 인생이 될 줄이야. 산림자원학과 학생이 17년 뒤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복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사업을 하다 보면 갑작스레 도약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저자 또한 맞이하게 된다.

'손짱'이 아닌 '리슬'이라는 이름으로 런칭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호칭을 바꾼 것뿐만 아니라 결혼식, 돌잔치와 같은 예식을 위한 옷에서 티셔츠, 청바지 등 일상복과 같은 형태의 옷으로의 전환을 선포하는 의미 또한 담겨져 있었다.

한복이 패션으로 개념을 바꾼 새로운 카테고리의 등장이었다.

기존에 있던 생활 한복을 입는 연령대는 50대 이상의 시니어층이었지만 저자의 타겟층은 2030 세대였다.

또한 특정 직업 및 사상이나 종교 등을 연상시키지 않게 그 편견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즉, 한복이 패션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까지 가지고 있었던 틀을 완벽하게 깨뜨려야만 했다.


리슬이 탄생한 결정적 동기는 '한복 입기 100번 프로젝트'이다.

한복 입기 100번 프로젝트는 1년 중 100일을 한복을 입고 생활한 일상을 찍어 블로그에 공유하는 활동이다.

생각보다 호의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름의 눈치나 불편함은 존재했다.

처음에는 디자인을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지만 이내 소재, 세탁법, 착용 방식 등 생활 환경에 어울리게 바꿔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복을 활성화시키자는 마음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이런 답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복 입기 100번 프로젝트는 저자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경험의 너비가 이해의 너비가 되기 때문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Ⅱ 열심히 잘 정신


열심히만 해선 안 된다. 잘해야 한다. 꿈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수익, 생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틀 깨기 정신으로 차별화된 상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다음 단계는 비즈니스적으로 사고를 바꿀 때다.


방탄소년단, 마마무, 청하 등 K-pop 아티스트 의상을 제작하면서 리슬의 인지도 또한 자연스레 상승하게 된다.

저자는 영화, 뮤지컬 등 수많은 분야가 있지만 K-pop이야말로 리슬과 찰떡으로 어울리는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만들었던 한복을 입은 아티스트 중 누가 그녀의 기억에 깊게 남았을까?

바로 비비지의 그래미를 위한 한복이라고 한다.

비비지는 여자친구 멤버인 신비, 은하, 엄지로 구성된 K-pop 그룹인데, 그래미 글로벌 스핀에 출연하게 되면서 소속사 담당자가 의상을 부탁하고자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래미에서는 시상식 외에 그래미 오리지널 시리즈라고 해서 전 세계 대중음악을 알리는 일을 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음악과 아티스트들을 영상클립으로 만들어 올린다.

이 오리지널 시리즈에 비비지가 올라가게 되었고 그 무대의상을 만들어 달라고 연락한 것이었다.


"그래미 글로벌 스핀, 여기에 소개된 한국 가수가 많나요?"

"국내 걸그룹으로는 비비지가 최초예요. … 그래미 글로벌 스핀이다 보니 어느 나라 출신이라고 소개가 올라가거든요. 전 세계가 보는 콘텐츠기도 해서 한국적인 느낌을 냈으면 해요. 그래서 무대의상으로 한복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미에서도 한국적인 콘셉트가 담기면 더욱 좋다고 했고요."

"그래미에 한국의 K-pop을 소개하다니, 너무 멋진데요. 게다가 한복도 알릴 수 있으니 저에겐 너무 좋은 기회죠!"

"디자이너님,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네, 뭐죠?"

"시간이 다음 주 토요일까지예요. 하실 수 있을까요?"


5일 남짓한 시간으로 각기 다른 세 벌의 한복 디자인부터 스타일링 소품까지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절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팬들이 만든 교차편집 무대를 보며 곡의 분위기와 컨셉을 빠르게 파악하며 포인트 안무까지 숙지하기에 이르렀고 그녀는 멤버들의 상징색인 파랑, 보라, 빨강을 살려 한복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피땀 흘려 만든 의상을 멤버들이 성공적으로 입게 되었다.

특히 외국에서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K-pop을 통해 한복의 멋을 새삼 알리게 되었다는 뿌듯함을 느낀 저자는 그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다시금 느끼게 된다.


한복과 K-pop의 결합은 한복을 전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일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문화에 기여했다는 보람까지 얻을 수 있으니 어려워도 계속 놓고 싶지 않은 주제다.




Ⅲ 찐 정신


찐 정신이란, 누가 봐도 저 사람 진심이구나 느껴질 정도의 깊은 애정을 쏟아 일하는 태도를 말한다.

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하면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면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초창기 손짱의 매출을 올려주는 것은 해외 유학생들이었다고 한다.

해외에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고객으로부터 받은 우연한 요청에 발견한 신시장이었다.

작은 것이라도 요청 사항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시도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는 소비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

어느 날, 한 고객이 저자에게 해외결제를 할 수 없냐는 질문을 한다.

이전에도 두어번 같은 질문이 받았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외국인들이 편하게 주문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그녀였다.

방법을 찾던 중 현지 유학생에게 해외결제 방식에 대해 물었고 드디어 그녀는 페이팔 결제법에 대해 알게된다.

도움을 받아 페이팔 가입과 결제에 성공하면서, 처음으로 해외에 한복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 두 번, 세 번은 너무 쉬웠다.

그렇게 엉켰던 매듭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해외 주문은 대부분 프롬 파티용 드레스였다.

한인 유학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손짱의 한복 드레스가 입소문을 타면서 다양한 나라의 유학생들이 단 한 번의 프롬 파티를 위해 한복 드레스를 찾기 시작했다.

"여러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너는 어디에서 왔어, 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가장 소중한 졸업 파티 때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리고 싶기도 하고 한국 문화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손짱의 한복 드레스가 딱이었어요."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이러한 말을 전하니 저자로서는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복이 서양에서는 본 적 없는 새로운 드레스로 입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험한 뒤 '한복은 한국에서만 입는 옷'이라는 생각에 갇혔던 나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리슬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의도하고 런칭한 브랜드였기에, 마치 밀라노 패션쇼는 언젠가 꼭 설 수 있는 수순이 아니었나 싶다.

저자는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글로벌 쇼핑몰을 개설하였고 두번째로는 패션 페어에 참가하게 된다.

첫 페어에서는 숙소와 비행기값도 못 건질 정도로 암담했지만 6개월 뒤 다음 시즌에 도전한 페어에서는 정식 계약을 따게 된다.

회사 내부적으로 고비용, 저성과 행사에 지속투자하는 현실이 힘들어 이 페어를 끝으로 해외 페어는 멈추었지만 그녀는 배울 수 있었기에 성과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해외 페어에서의 경험은 먼저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브랜드와의 수준 차이를 보며 얼마나 오만했던 것인지를 느끼며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고 좁은 시야를 넓혀준 계기가 되었다.


한복을 패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눈으로 봤을 때 멋진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상품으로서 상품성을 갖출 수 있도록 시장 분석, 상품 기획, 마케팅 등을 촘촘히 짜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높은 세계 시장의 벽은 나에게 실력만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국인도 안 입는 한복을 해외에서 누가 입겠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반응이 이러했을뿐더러, 해외에서 한복을 코리안 기모노로 잘못 표시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이루었다.

매 순간의 실패를 값진 경험으로 생각하며 다시 도전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만들었던 한복을 시작으로 밀라노 패션쇼에 오르기까지,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복디자이너가 되고 싶을 정도로 한복을 사랑했었기에, 더더욱 궁금했던 책이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책을 읽고선 가야금을 연주하는데 홈웨어 드레스가 한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리슬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경해봐야겠다...♥


오, 한복한 인생 - 리슬 https://www.leesle.com/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2-14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밀라노 패션쇼 무대에서도 한복이
k 팝처럼 한복도 ^^

하나의책장 2022-12-16 23:54   좋아요 0 | URL
책 읽으면서 알았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이 프롬 파티에 한복을 입기도 한다고 하더라고요^^
 
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많은 사람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그날, 나는 살아 있고 싶다."


생명이 끝나기 직전의 사람들은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데, 그 증상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런 이들에게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통증을 완화시켜 존엄성을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완화의료라고 한다.

안락사를 시키는 의사와는 엄연히 다르며,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이 물었다』는 브라질의 한 의사가 쓴 완화의료 이야기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돌보며 느끼고 성찰한 내용들을 담았다.

어떤 환자들을 만났고, 그 환자들에게 치료했던 완화치료는 무엇이며, 무엇보다 죽음이 물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저자, 아나 아란치스는 브라질 완화의료 최고 권위자로 상파울루주립대학병원에서 노인의학으로 레지던트 과정을 수련했고,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완화의료를 전공했다.

20여 년째 저작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완화의료가 올바르게 인식되도록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2013년에 오래도록 금기시돼왔던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TEDx 강연이 큰 호응을 얻으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출간된 《죽음이 물었다》가 브라질에서만 50만 부 이상 판매되고 미국, 스페인, 중국 등 전 세계 10개국에서 출간되며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Ⅰ 나는 누구인가


내가 처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며, 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 행위로도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그 존재 안에서만 죽음은 끝이 아닐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우리는 다수가 믿고 있는 '정상적인 것'을 뒤집어야만 한다.


저자가 의사로 일한 지 무려 20년이나 지났다.

대부분 의사의 길로 들어선 이들은 가족 중에 혹은 존경하는 사람들에 의사가 있거나 꿈 혹은 명예를 위해서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병과 고통이 끊이질 않았는데, 특히 그녀의 할머니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말초동맥 질환으로 인해 절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그녀의 할머니는 긴 시간 비명과 눈물로 고통을 감내했다고 한다.

하느님께 제발 데려가달라고 애원하면서도 그녀를 교육시키고 돌봐주셨던 할머니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고통이 극에 달하는 날이 있었는데 혈관외과 의사 아라냐 선생님이 왕진을 오게 된다.

흰 셔츠, 반짝거리는 버클을 뽐내는 가죽 허리띠, 작은 검정색 가방 그리고 단정하고 좋은 냄새를 풍기는 선생님이었다.

다섯 살밖에 안 되었기에 매번 밖으로 쫓겨났던 그녀는 간간히 열린 문 틈으로 아라냐 선생님이 할머니께 진료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할머니가 울부짖자 선생님은 할머니를 진심으로 위로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아라냐 선생님이 저자의 어머니에게 새로운 치료법에 대해 알려주며 옆에 있는 저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물었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의사요."

그녀에게, 아라냐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힘세고 신비한 존재였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는 결국 두 다리는 절단하게 되었는데, 이후 환상통을 겪어 통증은 계속되었다.

어린 저자에게는 환상통 자체가 무서웠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으니깐.

그러다 인형들의 다리를 모조리 절단하게 되었는데, 인형 로시타가 앉은뱅이로 살고자 해도 삶이 흔적을 남길 것임을 상기하기 위해 볼펜으로 수술 자국을 그려 넣는다.

일곱 살에 병원을 운영하게 된 저자, 그녀의 병원에서는 아무도 고통에 시달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그녀를 보며 자신 또한 그녀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싶다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마음이 바뀐 거니? 선생님이 될 거야?"

"둘 다 될 거예요, 할머니! 누구나 아픈 게 나으면 뭔가를 배우고 싶거든요!"

그렇게 그녀는 상파울루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배우게 된다.


"너 괴상하다."

해부학 수업, 저자가 실습용 표본들의 얼굴들을 살펴보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자 동기는 이티 보듯 그녀를 쳐다봤다.

3학년 말에는 병력 청취를 배우게 되는데, 그 때 저자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환자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의 상세한 지침이 나를 안전한 길로 인도해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는지 깨우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내과 병동에서 안토니우라는 환자를 배정받게 된다.

【남성, 기혼, 알코올중독, 흡연, 자녀 두 명, 간경화, 간암, B형간염 말기】

복잡한 병력을 보고선 마음 속에선 두려움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료실에 들어가 그를 마주하니 수척한 몸에 배가 부풀어 올라 마치 거대한 거미를 연상케했다.

시커멓고 누렇게 뜬 피부,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는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저자 또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저자는 그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물으며 면담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토니우의 고통 앞에서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간호사실에 가 담당 간호사에게 통증약을 더 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방금 해열진통제를 줬다며 기다리라는 답변 뿐이었다.

간호사와 이야기가 통하질 않자 휴게실에 계신 교수님에게 토로했고 교수님은 저자를 크게 질책하였다.

그 순간 저자는 느꼈다. 병원에서 불치병으로 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예상했던 죽음과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마주할 때마다 버틸 수 없었고 결국 저자는 의대 4학년 중간쯤에 대학을 떠나게 된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봤자 시간은 흐르고, 가슴 속 소명 의식은 계속 메아리쳤다.

재능이 부족해도 어떠하리.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것에 적응하게 될지.

저자는 대학으로 돌아간 뒤 동네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1년 후 4학년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후 그녀는 학부 선택에 큰 고민을 했지만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을 읽고서야 답을 얻게 된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걸 배우겠어.'




Ⅱ 완화의료와 안온한 엔딩


스스로 돌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진리를 발견한 저자는 그 때부터 삶이 충만해졌다고 말한다.


23세 환자 마르셀루는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진행도 빨랐고 종양학적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상태였다.

어느 금요일 저녁.

폭우가 쏟아지던 날, 그녀는 첫 방문을 하게 된다.

종양 덩어리로 인해 복부는 일그러져 있었고 방 안에는 피와 대변이 뒤섞여 마치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환자의 눈에는 공포가 서려있고 끊임없이 고통만 내지를 뿐이었다.

비상용 가방에는 소생제가 담긴 약병뿐인지라 모르핀이 필요했지만 마르셀루의 어머니는 끝까지 집에서 돌보겠다는 약속때문에 아들을 병원에 옮기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그렇게 네 시간 가까이 기달리니 모르핀이 도착하였고 심하게 떠는 간호조무사를 대신하여 저자가 모르핀을 투여했다.

차에 탄 그녀는 엉엉 소리내어 울었고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간호조무사는 그녀에게 마르셀루가 사망한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날 밤, 악몽에서 깨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데 거울 속에 마르셀루가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환각 증세를 보인 저자는 심리치료사에게 울면서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애원했고 이후 40여 일 이상을 쉬게 된다.

저자의 가장 훌륭한 재능이자 장점인 공감력으로 인해 직업적으로 가장 큰 고통에 시달렸던 것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질문들에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상태였고, 그중 가장 고통스런 질문은 '환자들의 고통을 오롯이 느끼지 않으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였다.


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킨다. _세계보건기구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주는 고통은 죽음이 진행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고통은 절대적이고, 유일하며, 완전히 개인적인지라 통증의 정도는 개인마다 다른 표현과 지각과 행위의 메커니즘에 달려 있다.

임박한 죽음이 곧 삶의 의미와의 만남을 성사시키기도 하지만 그 만남 자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완화치료는 헛된 치료의 중단 가능성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환자가 겪는 신체적인 고통, 증상을 통제하기 위해, 공격적 치료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의료진이 제공하는 확대된 돌봄이라는 실체적 현실도 포함한다.

환자 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중병에 걸려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족 또한 병이 든다.

오죽하면 암에 걸리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완화치료는 병이 진행되어 신체적 고통이 극심해지고 의학적으로 손 쓸 수 없게 되었을 때 가장 큰 가치와 필요를 지닌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본 딸이 저자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었다고 한다.

완화의료는 환자와 보호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돌봄을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능한 한 가장 숭고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그래요, 언제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의학의 진보입니다.




완화치료는 안락사와는 전혀 다르다.

완화치료가 통증을 없애주다 보니 증상이 좋아지면 환자가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셔서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딱 한 장면밖에 없다.

색동저고리를 입고 철퍼덕 세배를 한 후, 외할아버지 무릎에 털썩 앉아 옹알옹알거렸던 기억.

무려 세 살 때의 일이라니, 이 기억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첫 손녀였기에 마냥 예뻐해주셨다고 하는데, 기억 속의 외할아버지도 매우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셨다.

외할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다.

처음엔 병세에 대해 정확히 알리지 않고 외할머니께서 지극정성으로 돌봐드렸다고 한다.

병세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본인의 병을 정확히 알고나서부턴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엄청 슬펐겠다."

"슬펐지. 많이 슬펐지만, 그래도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지 슬픔을 털어내는 데 수월했었어."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인간의 생명은 한계가 있어 언젠가는 죽는다.

다만, 그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죽는 날을 받게 된다면 크나 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외할아버지께서 정확한 병세를 끝까지 모르셨더라면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을까?

이미 처음부터 말기암 판정을 받으셨기에 그렇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그런 말을 해주신 적도 있었다.

가는 사람은 말이 없다고. 다만 남는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살아야 하기에 간 사람 명복 잘 빌어주며 더더욱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네!"라고 확신있게 대답하고 싶지만 "아니오"가 먼저 떠올랐다면, 돈과 명예 등 물질적인 면이 먼저 떠올랐기에 "아니오"가 먼저 떠오른 것이다.

결국은 살아온 대로 죽는 것이기에,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돌아보고 내게 있어서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봐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 무엇보다 꼭 필요한 책이었던 것 같다.

오늘 열심히 살아내어 내일을 활기차게 맞이하고, 내일이 오늘이 되면 또 열심히 살아내어 다음 날인 내일을 또 활기차게 맞이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