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외로움, 쓸쓸함, 고독함, 혼자라는 것.

이 말들은 의미만 비슷할 뿐 결은 분명 다르다.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세상에 오롯이 나 혼자라고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이다.

특히 글을 쓰던 중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덮치게 되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의 무게를 견디는 동시에 과거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 혼자였던 순간을 끄집어내야 했던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투명 인간이 된 것 같은 사람, 고독 앞에 담대해지고 싶은 사람, 은밀하게 고독을 갈구하는 사람, 모두 환영한다!


저자, 에이미 션은 《브루클린의 인어The Mermaid of Brooklyn》, 《바다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How Far Is the Ocean from Here》, 《보이지 않는 도시Unseen City》의 저자로 ‘2021년 인디펜던트 퍼블리셔 북 어워드’ 소설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미디엄Medium》에서 시니어 에디터로 일하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슬레이트》, 《리터러리 허브》 등에 작품이 게재되었다.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브루클린에서 두 자녀와 함께 거주하고 있다.


저자, 줌파 라히리는 1967년 영국 런던 출생.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곧 미국으로 이민하여 로드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같은 대학에서 르네상스 문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 첫 소설집 『축복받은 집』을 출간해 그해 오헨리 문학상과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002년 구겐하임재단 장학금을 받았다. 2003년 출간한 장편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뉴요커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로 꼽혔고 전미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2008년 출간한 단편집 『그저 좋은 사람』은 그해 프랭크오코너 국제단편소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최우수 도서 10’에 들었다. 2012년 미국문예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두 번째 장편소설 『저지대』를 발표해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침착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고, 맨부커상과 미국 내셔널북어워드 최종심에 각각 오르며 또 한 번 저력을 과시했다.


저자, 레나 던햄은 작가, 감독, 배우,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제작사 ‘굿 씽 고잉’을 설립하고 영화, 텔레비전, 극장, 팟캐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BO의 인기 시리즈 〈걸스Girls〉의 배우이면서 동시에 HBO와 BBC가 제작한 〈인더스트리Industry〉와 HBO가 제작한 〈캠핑Camping〉과 같은 쇼 프로그램에서 작가, 제작자, 프로듀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보그》,《하퍼스 매거진》,《뉴욕 타임스》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The Woman who walked alone _Amy Shearn


그녀의 여정은 혼자였다.

뉴욕에 살던 동유럽계 이민자 릴리언 올링은 이유 없이 뉴욕을 떠나 시베리아에 걸어서 가기로 마음 먹는다.

또한 동유럽에서 추방당한 후 시베리아에 있는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난 고향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여행에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을 표했지만 릴리언은 모든 관심을 거절했다.

릴리언은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 해안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언제나 혼자 걸었다.


일을 마치고 가는 길, 릴리언 올링에 대한 팟캐스트를 듣고 있던 저자는 새삼 그녀의 여정에 대해 감탄했다.

학교 다니는 아이 둘을 둔 워킹맘으로서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만 먹어선 실행시킬 순 없는 거니깐.

하늘과 땅을 벗 삼아 고요히 머물 수 있는 곳을 갈망해 온 저자는 릴리언과 같은 여정을 떠나면 춥고 배고프더라도 이러한 일 자체가 용기를 주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로지 혼자 머물며 머릿속을 말끔히 비워 내고 싶다는 생각,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우는 대신 반대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싶다는 생각, 198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낯선 통근자들 무리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대신 고독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유콘강의 시원한 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졌다.


무엇때문에 나는 이토록 외로움을 갈망하는가?

도대체 누구를 그리워해야 하는 것인가?

절대로 혼자 있을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외로움을 만끽할 수가 있겠는가?


모험을 찾아다니는 독립적인 사람이었던 저자는 여행을 다니며 일기를 썼던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삶을 살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목적의식 없이 향에 이끌려 방향을 바꾸기도 했던 그 모든 여정들을 떠올리니 어떻게 하면 언제나 혼자 지내던 시절의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녀는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잠들면 곧장 침대로 가 여행 다니는 동안 썼던 일기를 정독했다.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를 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고수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생긴 크나큰 틈에 대해, 군중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외로운 섬처럼 느끼는 감정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람들로 가득한 동시에 외로움이 느껴지니 고독, 긴 여정 그리고 혼자 걷기를 택한 릴리언은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무엇이 그토록 불행하다고 느껴지고 생각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답은 바로 결혼 생활이었다.

오랜 시간 일하고 밤늦게 퇴근한 남편은 주말에 주로 잠만 잤다. 이렇다 보니 접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둘만 방에 있을 때 그녀가 남편에게 질문을 던지면 남편은 TV나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단답으로 일관했다.

즉, 사람과의 관계에 목이 말랐던 것이었다.

소소한 그 날의 일을 대화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 것일까.

저자는 그때부터 릴리언 올링에 대해 찾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으면 대답 대신 짜증부터 내며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릴리언이 누리는 고독이 마냥 부러웠다.

결국 남편을 떠나 이사를 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 저자, 이 또한 오래 걸렸지만 결혼 생활이 너무나 외로웠기에 홀로 설 수밖에 없었다.

매주 아이들이 몇 블록 떨어진 남편 집에 놀러가 있으면 저자는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도 쓰고 생각도 한다.

그녀 스스로 여유가 생기니 매사 에너지도 넘치고 아이들과 있을 때면 집중력, 인내심, 관대함까지 담아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녀는 결국 고독 속에서 답을 찾아내었다.

불안감이 잦아들었다. 드디어 불행이 사라졌다.


가끔 스스로 위축되는 기분이 들 때면 '고향' 혹은 어딘지 아무 상관없는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던 릴리언 올링을 떠올린다. 어쩌면 나는 바로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On Witness and Respair _Jesmyn Ward


크고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를 지녔으며 다정하고 손재주가 좋았다.

매일 아침 아침 식사와 찻잎이 든 주전자를 준비해 주었다.

전업 남편으로서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과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훌륭하게 해내었던 그는 바로 저자의 남편이다.

1월 초 저자의 가족 모두가 병이 났는데, 저자와 아이들은 독감이지만 남편은 원인불명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일단은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남편만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며칠 후 남편은 숨을 쉬지 못하겠다며 헐떡거렸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응급실에 갔지만 그의 장기는 이미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직접 응급실로 들어간 지 15시간 만에 저자의 남편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의 나이 고작 33살이었다.

그녀는 타는 듯한 슬픔 속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 달 후,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농담을 던지거나 위험한 팬데믹을 비웃기라도 할 때면 저자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학교도 폐쇄되고 어디에서도 휴지, 세제 등을 구매할 수 없었다.

며칠이면 끝날 것 같은 상황은 결국 몇 주나 흐르게 되었다.

어느 날, 아이가 저자에게 얼굴을 비비며 아빠가 보고싶다며 꺼이꺼이 울어댔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모든 공간에 메아리치기 일쑤였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산소호흡기, 코드블루 경보음 그리고 죽어가던 남편에게 온몸을 실어 의료진이 심폐소생하는 모습들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저자는 팬데믹이 이어지는 동안 집 밖으로 나갈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부디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을 잘 견뎌 주길 간절히 바라며 마음속으로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주절거려야 할까 봐 겁이 났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목격자처럼 그곳에 서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거듭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뿐이었다. 사랑해. 우리 모두 당신을 사랑해. 우린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저자는 팬데믹이 확산되자 진행 중이었던 소설을 이어 쓰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녀보다 더한 슬픔을 온몸으로 겪어 낸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글쓰기라는 외로운 소명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목적도 발견해 낼 수 없었으니깐.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해 사촌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었는데 곧 시위로 번져 고속도로까지 점령했었다.

거리로 나서는 그들을 보며 저자는 유행병이 퍼질 대로 퍼진 방 안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일을 결코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세계 사람들이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라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생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결코 변할 것 같지 않았던 믿음이 부서져 내린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사랑하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의사는 내게 말했다. 청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죽을 때 시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을 잃게 돼요. 심지어 자신이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되지요. 하지만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걸 듣고 있어.

나는 당신이 말하는 걸 듣고 있어.

당신이 말한다.

사랑해.

우리는 당신을 사랑해

우린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야.

나는 당신이 말하는 걸 듣는다.

우린 여기 있어.




우리는 평소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접하지 못 한다.

왜일까? 외로운 삶은 꼭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든지간에 오롯이 혼자 되는 경험은 꼭 겪게 된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난생 처음 보는 공간에 있을 때.

무수히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되는 경험을 종종 할 수밖에 없다.


감정을 털어놓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쉬울 순 있지만 누군가에게 어렵기만 하다.

털어놓는 것이 어렵다보니 자연스레 꺼내드는 건 일기장이다.

기록으로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면 털어놓는 연습도 필요하긴 하다.

간혹 무지개가 솟아올랐는데도 지나칠 수도 있으니깐.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 잊어버릴 수도 있으니깐.

즉, 함께 하는 삶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가장 좋다.

반대로 혼자인 삶 속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고.


오롯이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6-3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표지랑 제목이 너무 좋아서 구매했는데, 22명의 작가중에 줌파 라히리 1명밖에 모르더라구요 ㅡㅡ
그래도 하나님의 글을 보니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
 



언덕에 누워


언덕에 누워 바다를 보면
빛나는 잔물결 해일 수 없지만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
뵈올 적마다 꼭 한 분이구려


_김영랑





하지 않은 죄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고 남겨둔 일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바로 그것

부드러운 말을 잊었다면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꽃을 보내지 않았다면
잠자리에 든 당신은 괴로울 것이다

형제의 길 앞에 놓인 돌을 치워주지 않았다면
힘을 주는 몇 마디 조언조차 해주지 못했다면
당신의 문제를 걱정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랑이 담긴 손길
마음을 끄는 다정한 말투
그것들을 소홀히 대했다면

인생은 너무 짧고 슬픔은 너무 크다
늦게까지 미루는 우리의 느린 연민을 눈감아주기에는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고 남겨둔 일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바로 그것


_마가렛 생스터





혼자서


하이얀 티셔츠 차림으로
미루나무 숲길에서 온종일 서성이고 싶은 날은
깊은 산골짜기 새로 돋은 신록 속에 앉아 있어도
안개 자욱 개구리 울음소리 속에 앉아 있어도
귀로는 연신
머언 바다 물결 소리를 듣는답니다

아야, 아야, 아야, 아야,
산 너무 산 너머서
흰 구름 생겨나고 죽어가는 소리를 듣는답니다

바다에는 지금
하얀 돛폭을 세워 떠나가는
돛단배가 한 척.


_나태주




나태주

처음 사는 인생, 누구나 서툴지


"서툰 것이 인생. 부디 당신, 외로워하지 마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봄날인 너에게 - 인생의 꽃샘추위에 지지 않는 햇살 같은 위로
여수언니(정혜영) 지음 / 놀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유튜브를 즐겨본다면 '여수언니'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여수언니의 컨텐츠는 먹방이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먹방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힐링받는다.

왜일까? 영상 내내 자막을 통해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아낌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기 때문이다.

먹방은 두번째이고 그녀의 조곤조곤한 말솜씨에 보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햇살 같은 응원과 위로를 글로 써내었으니, 바로 『나의 봄날인 너에게』란 에세이다.


여수언니는 말한다.

나의 응원은 언제나 당신을 향해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라고.


저자, 여수언니(정혜영)는 여수언니 채널과 봄날언니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매일 달콤한 행복을 선물하는 디저트 브랜드 봄날엔 대표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줄 사랑도 많은 사람이다.

2019년도부터 각종 음식과 디저트를 리뷰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으며 누적 구독자 수 약 100만 명, 누적 조회 수 약 2억 뷰, 영상당 평균 댓글 수 1,000개 이상을 기록하면서도 구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튜브 여수언니정혜영[Yeosu Unnie], 봄날언니정혜영[Bomnal Unnie]

인스타그램 @yeosu.unnie




Ⅰ 행복의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저자의 DM은 항상 넘쳐난다. 짧은 안부부터 그녀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다양한 고민까지.

특히 오랫동안 생각하며 보낸 고민들은 지나칠 수 없어 꼭 살펴본다고 한다.

항상 미소 지으며 구독자들과 만나는 여수언니지만 그녀 또한 우울감에 빠졌었던 시기가 있었고 그럴 때면 털어놓고 싶은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모르고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구독자의 메시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하였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을 때 제가 생각났나 봐요.

감정을 꾹꾹 누르고 있을 때는 너무 크게 느껴지지요.

하지만 밖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이겨낼 만하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저는 뭐든 들어줄게요.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거든요.

어쩌면 추운 겨울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시기도 언젠가는 모두 지나고 반드시 따스한 봄날이 찾아올 거예요.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 불과 몇 년 되질 않았다.

즉, 하루 아침에 180도 달라질 순 없다.

올바르게 말하고 행동하고, 잘 보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싫은 내색 없이 홀로 다 감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착하게, 예의바르게, 똑똑하게, 야무지게" _첫째이기에 더더욱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런 것들이 내 마음을 갉아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순응하며 살아오니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상처 또한 크게 받은 적도 많았고 도저히 마음이 감내할 수 없는 수순에 이르자 사람 자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었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항상 흠 없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잘 보이기 위해 부지런히 꾸몄고 누군가 똑 부러져서 좋다고 하면 실수하는 모습을 필사적으로 숨겼다.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다.


저자는 딸 은채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잔뜩 주며 문득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조건 없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나 자신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야 한다는 것을.

그녀는 오늘도 말한다.

스스로를 무조건 사랑하자.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런 조건이 없으니까. 오늘도 나는 나를 무조건 사랑한다.




Ⅱ 언제나 파릇파릇 돋아나는 자존감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답답함에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부여잡고 저자는 그저 달렸다고 한다.

'나한테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라는 물음에 좌절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고 난 뒤에는 그 질문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병하는 우울증이지만, 물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만 해도 과거의 나쁜 일에서 멀어진 것처럼 느끼게 되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힘들고 우울한 일이 생긴다면 일단 달려보자고!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손에 자란 저자는 자신의 가정만큼은 꼭 지키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불안에 떤 저자는 항불안제를 처방받게 된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맨 처음 권하는 것이 있다.

바로 햇빛과 운동 그리고 규칙적인 식사이다.

저자 또한 스스로를 탓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햇빛을 쬐며 정기적으로 산책하기 시작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내니 그동안 미루었던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돈이나 명예 같은 사회적 성공도, 인간관계도 아닌, 바로 일조량과 활동량이다.




Ⅲ 흔들릴지언정 열매를 맺으며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려면 결국은 찾아야 한다.

저자는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고 말을 차분하게 잘하는 편이며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글로 쉽게 잘 풀어낸다!

그래서! 탄생하게 된 것이 「여수언니 정혜영」 유튜브 채널이다.

상위 1퍼센트의 기술을 가지지 않았지만 상위 25퍼센트에 든다고 생각할 만한 기술과 능력들을 결합하니 시너지를 도출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떠올리자.

그 일을 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상의 기술을 상위 25퍼센트 안에 들도록 개발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예전에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밥 반 공기도 거의 못 먹을 정도로 입맛이 아예 떨어져 물과 이온음료만 먹던 때가 있었다.

체내 수분까지 쭉 빠져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고 삼키는 것조차 버거워 오히려 약이 더 달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내게 친구가 유튜브 영상 한 편을 보내줬었다.

계속 보다 보면 치킨이 먹고 싶어질 거고 계속 보다 보면 떡볶이가 먹고 싶어질 거고 계속 보다 보면 과자가 먹고 싶어질 거라고.

그 때, 여수언니 컨텐츠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친구의 의도와는 달리 막상 여수언니 유튜브를 보고나니 먹방이 아닌 조곤조곤한 말솜씨에 빠지기 시작했다.

어쩜,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지! 무엇보다 어쩜, 이렇게 맛있게 말할 수 있는 건지!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여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왜 여수언니 유튜브를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자의 이야기에 읽으며 공감한 부분이 많았다.

영상 속 자막을 통해 응원과 조언을 아낌없이 주는 여수언니, 그런 저자를 보며 그녀의 높은 자존감이 마냥 부러웠다.

자존심은 버려도 자존감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인데, 언제 내 자존감이 이렇게나 조그맣게 구겨진 것인지.

나의 이야기를 완전히 꺼내볼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스스로 삭히는 게 맞다고 생각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절대 꺼내 보이지 않았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속적으로 사람에게 상처받은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사람 자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더더욱 생각에 휩싸였었다.

나의 부족함이 드러남으로써,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이러한 부족함을 보일 때,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초점이 '나'가 아닌 '남'에게 있으니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었다.

분명 스스로 알고 있는데 한순간 고쳐지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내가, 겁이 많은가보다.

중학교 때부터 다니던 병원이 있는데 오랫동안 날 지켜본 원장님은 내 감정을 잘 헤아려주시는 편이다.

가족들도 서로 잘 아는 편이라 안부 묻는 게 일상인데 어느 날 위염이 심해져 병원에 갔었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을 주고 받았는데 원장님께서 조심스럽게 명함 두 장을 건네주셨다.

스스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게 아니였었나 보다.


사람마다 느끼는 깊이감의 차이는 있지만 상처가 크고 우울과 불안이 깊다면, 어쩌면 당연하고도 형식적인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진 않을 수도 있다.

스스로 답을 알고 있고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하루아침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다.

땀 흘리며 열심히 운동하는데, 끼리 거르지 않고 열심히 챙겨먹는데, 뜨거운 햇빛 받으며 열심히 산책하는데도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나진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공감받으며 위로의 감정을 주고받다 보면 조금의 위안은 된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듯이, 그 시기가 길더라도 결국 봄은 찾아오지 않겠는가.



나의 응원은 언제나 당신을 향해 있어요. 그러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_여수언니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05-1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오늘은 조금 더운 날이긴 했지만, 아직 봄이라서 좋은 것 같아요.
행복한 일들은 미루지 않고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매일 매일 좋은 일들 가득한 하루 되세요.^^
 
별빛 너머의 별 - 나태주 시인의 인생에서 다시없을 사랑 시 365편
나태주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은 다시금 빛나게 될 거야!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빛과 같은 시로 응원하다.


그는 진정 시의 마법사가 아닐까.

그 어떤 것도 그의 영감이 될 수 있다.

그 영감을 이내 시로 변신시키니, 그는 진정 시의 마법사라 할 수 있겠다.


그의 사랑 시 365편은 시인의 일생을 담듯 한 편 한 편 정성스럽게 고르고 고른 시들이며 그 또한 자신의 사랑 시 중 결정판이라 강조하며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저자, 나태주는 1945년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초현리 111번지 그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공주사범학교와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2007년 공주 장기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43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친 뒤, 공주문화원장을 거쳐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1971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등단 이후 끊임없는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수천 편에 이르는 시 작품을 발표해왔으며, 쉽고 간결한 시어로 소박하고 따뜻한 자연의 감성을 담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풀꽃」이 선정될 만큼 사랑받는 대표적인 국민 시인이다.

흙의문학상, 충남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향토문학상, 편운문학상, 황조근정훈장,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김삿갓문학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별처럼 꽃처럼


별처럼 꽃처럼 하늘에 달과 해처럼

아아, 바람에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처럼

곱게 곱게 숨을 쉬며 고운 세상 살다가리니,

나는 너의 바람막이 팔을 벌려 예 섰으마.



까닭


꽃을 보면 아, 예쁜

꽃도 있구나!

발길 멈추어 바라본다

때로는 넋을 놓기도 한다


고운 새소리 들리면 어, 어디서

나는 소린가?

귀를 세우며 서 있는다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하물며 네가

내 앞에 있음에야!


너는 그 어떤 세상의

꽃보다도 예쁜 꽃이다

너의 음성은 그 어떤 세상의

새소리보다도 고운 음악이다


너를 세상에 있게 한 신에게

감사하는 까닭이다



은방울꽃


누군가 혼자서 기다리다

돌아간 자리

은방울꽃 숨어서

남모래 지네


밤마다 밤마다

달빛에 머리 감고

찬란한 아침이면

햇빛에 몸을 씻고


누군가 혼자서

울다가 떠나간 자리

어여뻐라 산골 아씨

또다시 왔네.



또 다른 행복


그 애를 마음의 꽃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어딘가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되었고

조바심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낮이면 스스로 들판에 나아가

벌 받는 나무가 되었고

밤이면 어둠 속에서

혼자 우는 꽃이 되었다


그렇다 한들 어떠랴!

그 애가 주는 불행은

또 다른 행복


숨 쉬는 사람으로

살아 있는 순간순간만 그저

기쁘고 고마울 뿐이다.



너를 보았다 1


세상을 한 바퀴 돌아왔을 때

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늦게 만난 것이었다


너와 함께 떠날 세상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도 너를 보았다


빈방에서 흐느껴 울다가 보았고

골목길 걷다가 소낙비 끝에 보았다


너는 별빛 너머 빛나는 별

꽃송이 속에 웃고 있는 꽃


더는 꿈꾸지 않아도 좋겠다.



그냥 약속


10년 뒤에도 우리가

이렇게 정답게 만날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네가

오늘처럼 예뻐 보일 수 있을까?


10년 뒤에도 우리가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일 수 있을까?


나무 아래 바람 아래

하늘과 구름 아래 오직 땅 위에서.



'곁에 두고선 읽고 싶은 시집이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그 중 한 권은 분명 나태주 시인의 시집일 것이다.

풀꽃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작은 풀꽃 하나에서도 큰 세상을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이 그의 문체는 간결하다.


시 하나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좋은 시 다음에 좋은 시가 연이어 등장하니 올해 첫 필사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은 내게 무지개같은 존재였다.

힘듦과 절망에 부딪혀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면, 선생님께서는 항상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시고선 매번 손수 적은 시를 건네주셨다.


그 때, 처음 깨달았다. 시 하나로도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것임을.


중학교 때의 선생님이 무지개같은 존재였다면 고등학교 때 문학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은 내게 햇살과 같은 존재였다.

귀 기울여 성심껏 이야기를 들어주고 환하게 미소지어주시는 어른은 선생님을 따라올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에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은 내겐 큰 재산인 것 같다.


자주 연락하지 못해도 간간히 연락하면서 명절과 생일 선물을 챙겨드리고 있는데, 선물과 함께 꼭 넣는 것이 있으니 바로 손편지를 첫 장에 끼워 담은 시집이다.

두분 모두 문학에 대해 남다른 분이시기에 책 또한 신중하게 고를 수밖에 없는데, 시집만큼은 절대 실패가 없다.

올 초부터 주구장창 읽고 있는, 나의 올해 첫 필사책으로 선정한 별빛 너머의 별로 올해 첫 선물을 보내드렸는데 명절은 지났지만 명절 선물 한가득 받은 기분이라 좋으셨다는 선생님들의 연락을 받고 나니 이번 선물들도 성공적이었어서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다할 말도 없이 언제 3월이 된 건지.

분명 몸과 마음은 움직이고 있는데 시간만 덧없이 빠르게 흐르고 몸과 마음은 그대로인 것 같아 이상하다.

나태주 시인이 말하길, "행복은 우리 안에 이미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할 일은 그 행복을 찾아내는 일뿐이다."라고 했다.

세상에는 없는 꽃, 아무도 모르는 꽃, 아직은 이름도 없는 꽃이지만 겨울에라도 꼭 꽃이 피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나무 - 각본
이지하 지음 / 프로젝트이오공일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 책과 마주하다』


지인의 소개로 연극 <그 나무>를 보게 된 지하.

연극의 ‘그 나무’처럼 남자 성기 모양을 본 따 깎은 나무를 보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심한다.

연극은 대학원 사회의 밀폐되어 있는 공기와 사건사고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지하는 이 연극이 특정 대학을 겨냥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연극이 알려지자 성기 모양 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여러 대학들이 등장하고, 서로 이 연극이 자기 대학의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공연중단의 기로에서조차 연출가와 작가는 확답을 내리지 않고, 진실을 알고 싶은 지하는 취재를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뜻밖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저자, 이지하는 89년 서울 출생으로 대학에서 문학과 외국어를 공부했다.

졸업 후 여러 서점에서 서점원으로 지냈으며 이따금 영상을 찍고 글을 쓴다.




학생1 거기 뒤편에 나무들이 있어.

학생2 (눈을 끔뻑거리며) 맞아요. 화단 있잖아요.

학생1 지나갈 때 한번 구석을 유심히 봐봐

학생2 구석에 뭐가 있어요?

학생1 잘 보면, 그 중 하나가…. (주변을 살핀 후 작은 소리로) 고추 모양이다?

학생2 (마찬가지로 작은 소리로) 예?! 그런 게 왜 있어요?

학생1 나도 A교수님한테 들은 건데, 완전 골 때리잖아.

학생2 학교에서 심은 거예요?

학생1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음기 누르려고 그런 거래. 대학원 건물에 음기가 너무 강하다고.



A교수 나는 여러분들이 아~주 존경스러워.

학생1 (갑자기 숙였던 고개를 들어 당혹스러운 듯 두리번댄다)

A교수 정말이야, 진짜! 이 시대에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원까지 온 게 아주 존경스러워. 내 딸이 지금 고3인데, 나는 내 딸한테 절대! 내 딸이 문학 공부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반대할 거야. 그 정도로 여러분 결정을 믿어준 여러분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신 거지. 부모님들 아주 대~단하셔! 내가 정말이지! 존경해! 응! 자, 그런 의미로 한 잔 하자!


학생1 (울먹이며) A교수이 술에 취하셔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흐느끼며) 제 허벅지에 손을 올리셨어요. 제가 계속 뿌리쳤는데도 만지셨어요.



아라 논문심사 전날 카페에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같은 지도 제자였던 오빠가 들어와서 얼렁뚱땅 잡담을 나누게 됐어요. 거의 그 오빠의 하소연이었어요. 지도교수가 어떻고, 저떻고, 힘들다, 어쩐다. 그래도 논문은 꼭 쓰자, 그만두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데 갑자기 기운이 쏙 빠지더라고요. '내가 겪은 일은 아예 모른 채로 살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퍼득 들었어요. 저보고 택일 하라면, 무조건 그 오빠의 고충을 선택했을 거예요. 그 오빠가 겪은 일이 그 정도로 사소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힘들었을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이 사람이 '부럽다'고 되뇌었어요. 차라리 남에게 언제든 털어놓을 수 있는 정도의 일을 겪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아라 …… 그 정도는 괜찮다고 누군가 얘기해줬다면 좋았겠지만, 제 얘기 자체를 동기 외에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었어요. 지도교수를 바꿀 수도 없었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제 연구 분야와 무관했거든요. 그렇다고 연구 분야를 바꾸는 것은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해오던 사람에게 갑자기 그것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하라고 강요하는 일과도 같았고요. 꼭 그 안에서만, 꼭 그 교수에게서만 그 공부를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당시에는 다니던 학교를 갑자기 그만두는 게 두려웠어요. 무엇보다 부모님께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이 커지면 어떡하지, 겨우 그걸로 관뒀냐고 혼날 것 같았어요. 오직 동기하고만 모든 걸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동기와 여러 번 논의를 하면서, 논문은 무조건 써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책에 대한 느낀 점을 말하기에 앞서,

모든 대학원과 모든 교수님들이 다 그렇지는 않으며, 이러한 행동을 행한 교수님과 이를 방치한 대학원이 그 대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책에서는 대학의 부조리함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각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내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해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나 또한 대학교 다닐 때부터 선배들에게 대학원의 부조리함에 대해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조교라도 하게 되면 일부 교수님의 심부름꾼이 된다는 소문도.

아무래도 대학원은 대학과 달리 그 전공으로 나아가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어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사회에 나가기 전단계나 다름없어 혹여나 교수가 그 분야의 굵직한 사람이라면 교수의 입김으로도 좌지우지될 수 있는 부분도 있어 대학보다 대학원이 특히 수직관계가 더 심한 편이다.

이렇게 책에서는 대학원 생활이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좋은 선생님, 교수님들과 만날 수 있었고 지금도 몇몇 분들과는 꾸준히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다 좋을 순 없는 법!

고등학교 1학년 때, 음악 선생님께서 과하게 나를 예뻐해주셨다.

평소 내게 이름까지 불러주며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셨는데 그게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어느 여름 날, 영어선생님의 개인적 사유로 인해 자율 학습으로 전환되어 음악 선생님이 대타로 교실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다들 자습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음악 선생님이 내게 다가오더니 공부 열심히 한다며 등을 가볍게 두들기며 머리를 쓸어내렸다.

물론 가볍게 한두 번 두들겨 줄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이라 하복을 입으면 끈나시를 입었어도 속옷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 등을 두들기면 당연히 후크 부분이 만져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살짝 미소지으며 "아, 네."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책을 봤다.

그 순간, 어쩜 이렇게 열심히도 하냐며 기특하다는 말과 함께 내 왼쪽 뺨을 살짝 꼬집고선 왼쪽 귓볼을 만지는 게 아니겠는가.

기분이 좋질 않아 눈만 미소지으며 '네, 열심히 하려고요.'라는 말과 함께 몸을 틀었다.

훗날 대학생이 되어 무슨 얘기를 하다 음악 선생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니 다들 기겁을 했었다.

사실 그 때는 어려서 기분나빴던 터치라는 것만 느꼈을 뿐 무슨 의도로 만졌었는지 전혀 몰랐었다.

당시에 선생님이 시킬 게 있다고 음악실로 와보라고 했을 때 혼자 안 내려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항상 혼자 다니지 않고 친한 친구들이랑 같이 다녔었는데, 두어번 친구랑 함께 내려가니 '아, 다른 얘 시켰으니 괜찮아'라는 말로 보낸 게 지금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순수하게 심부름 시키려고 부르신 걸 수도 있다.

그렇기에 크게 의심하진 않고 있지만 결국 심부름은 시키지 않으셨다.


한 기사에 따르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019년 학부생과 대학원생 190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이들 중 46.4%가 입학 이후 '인권침해' 피해 경험이 1회 이상 있었다고 답했다.

또 이들 중 49.5%가 사적 만남 강요, 스토킹, 성희롱 등 성폭력을 가장 힘들었던 피해 경험으로 꼽았다.

주된 성폭력 가해자 중 교수(전임교수·비전임교원)는 25.5%를 차지, 1위인 선배(32.4%) 다음이었고 동기(23.5%)보다 많았다.

특히 이공계와 예체능계, 의학계 등에 속한 피해자는 가해 교수가 학계에서 얼마나 많은 네트워크를 가졌는지,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안다며 문제 제기를 할 때 한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싸운다고 생각해야 한다.

가해 교수가 파면되거나 해임되어도 사실상 관련 업계에서는 그의 입장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권력형 성범죄가 만연한 대학이 분명 있을 것이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지만 침묵해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기만 하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내부 고발을 배신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어 폭로하는 것이 어려운 것 또한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면서 대학에 만연한 위계형 성범죄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처해있는 학업·연구·노동 여건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하며 사회적 인식 또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올리지 못했던 임시저장글을 정리하다 진즉 올렸어야 할 글들이 있어 후다닥 올려본다.

설 연휴 전에 업로드하려고 작성했던 글인데, 병원 왔다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라도 봤으니 다행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2-08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