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키
요헨 구치.막심 레오 지음, 전은경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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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너, 내 집사가 돼라!

죽기로 결심한 그 밤, 골드에게 프랭키가 찾아왔습니다!


저자, 요헨 구치는 1971년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언론인과 작가로 일하며 베를린에 살고 있습니다.

막심 레오와 함께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그래서 좀 쉬라고 호르몬에서 힘을 살짝 빼준 거야》는 1년 넘게 《슈피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저자, 막심 레오는 구 동독에서 태어나 통독 후 베를린 자유대학교와 파리 정치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독일 TV 방송국 RTL 기자를 거쳐 지금은 독일의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의 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론인으로 2002년에는 '독일-프랑스-언론상'을 2006년에는 '테오도르-볼프상'을 수상했습니다.

2011년에는 동서독 분단시절 동독에서 생활했던 자신의 가족 이야기 '마음의 준비를 해 둬'를 출간해 '유럽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70년 넘게 방영되고 있는 범죄수사드라마 '타트오르트'의 대본 작가로도 활동 중입니다.




여기 죽고 싶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사고로 잃고 충격과 좌절에 모든 것을 놓아버렸거든요.

그렇게 두툼한 끈을 목에 감고 계획을 실현하려는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그 고양이는 바로 쓰레기 언덕에 사는 프랭키.

자신을 향해 팔을 마구 내젓는 프랭키를 쫓기 위해 골드는 엉겁결에 물건을 던지는데, 아뿔싸!

그 물건을 머리에 맞고 프랭키는 기절하게 됩니다.

일단 골드는 프랭키를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 런! 데!

프랭키가 말을 하네요?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잠시 제정신이 아닌 건가 싶었지만... 맞습니다. 분명 맞아요.

고양이가 말을 합니다.


사실 프랭키가 커다란 창문을 들여다보았을 때 수집했던 내용은 이랬습니다.


자세한 상황 1 : 정말 어떤 남자가 있었다.

자세한 상황 2 : 그는 의자 위에 서 있었다.

자세한 상황 3 : 방 천장에서 끈이 하나 내려와 있었다.

자세한 상황 4 : 남자는 그 끈을 목에 감고 있었다.

자세한 상황 5(상황 4에 보충하여) : 그 끈은 무진장 두툼했다.


끈을 무진장 좋아하는 프랭키는 여태껏 이런 멋진 끈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묘생 최고의 시절이었던 베르코비츠 부인과 살던 때가 생각날 정도였으니깐요.


"낭수고!"

"뭐라고?"

"난수고양!"

날아온 물건에 머리를 맞아서 인간어가 조금 나른해진 것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골드가 답답해 프랭키는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습니다.

"나는 수고양이라고!"


그렇게 그 일을 계기로 골드의 집에 눌러 앉은 프랭키와 엉겁결에 집사가 된 골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실 골드의 계획이 무산되었다고 해서 그 계획을 포기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엉겁결에 집사가 되었지만 점점 더 무리하게 요구하는 프랭키의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골드는 죽을 시간도 부족해집니다.

만약 이러한 일들이 싫었다면 프랭키를 외면하고 쫓아냈겠죠.

희한하게 황당한 일이 분명한데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골드였습니다.

그리곤 어느새 프랭키를 통해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바로 '삶의 의미'였습니다.


날이 밝았지만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골드의 무릎에 뛰어 올라 외쳐도 반응하지 않자 코를 꾹 누르며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나 오줌 눠야 해. 그러니까……."

"지…… 지금 몇 시야?"

"몰라. 나는 수고양이라고. 시계가 없어."

"4시 반……."

"그래서 뭐?"

"일러. 너무 이른 시각이야."

"나 오줌 눠야 해."


또한 프랭키가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골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니, 이 문제에 전혀 관심조차 두지 않았지요.

"나 배고파!"

필살기 [귀엽게 보기]를 시전해도 아무 반응 없는 골드는 프랭키를 보며 나지막히 말했습니다.

"쥐를 잡아."

"배고프지 않아? 당신도 뭔가 먹고 싶을 거잖아. 아니야?"

"이제 더는 필요 없어. 관심 없다고. 만사가 귀찮아."


여기서 물러설 프랭키가 아니지요!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골드를 끝내 깨워 소변을 보러 나가고 밥도 얻어 먹습니다.

과하다 생각들지 모르겠지만, 짝사랑하는 암고양이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며 영화에 출연시켜달라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사실 이렇게만 들어도 [귀찮은 +10], [귀찮은 +20] ……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무기력한 골드를 움직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요.


(스포가 될 것 같아 자세한 언급은 안 하겠지만)

마지막에 골드와 프랭키는 잠시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 때, 골드가 프랭키에게 남긴 편지 한 통이 있어요.


너는 이렇게 말했지. "인생은 단순해. 그 어떤 멍청이라도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나는 매일 일어나고, 계속 살아가는 일이 힘겨워. 너무나 피곤해. 내 분노 때문에. 영원한 고통 때문에. 난 이제 다시 가벼워지려고 해. 어느 날 아침 일어났는데 빛이 있기를 바라. 내가 그냥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멍청이라면 좋겠어. 하루, 또 하루 살아남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멍청이.



간혹 tv 프로그램들을 보면 동물로 인해 삶의 의지를 다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는데, 소설이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화같은 소설이라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근래 읽은 소설 중 BEST 5에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프랭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힐링 소설, 그 자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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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공식
양순자 지음, 박용인 그림 / 가디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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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2014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난 저자는 인생이 힘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이 먹을수록 인생이 힘들어지면, 그것은 인생공식을 모르기 때문이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위로와 돌직구 조언이 우리를 깨우쳐 줄 것이다.


저자, 양순자는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30년간 사형수들을 상담해왔다. 영암군청 사회복지과 상담실장으로 일했으며, 법무부 교정대상(박애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법무부 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안양교도소 정신교육 강사 군부대 강사 활동을 하면서 양순자심리상담소를 운영했다.

남을 돕는 일에는 계산하지 말고, 누군가 넘어지면 빨리 일으켜줘야 한다가 신조인 그녀는 누군가가 SOS를 치면 언제든 달려가는 열혈 상담가였다.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그녀 옆자리에 앉기만 해도 그녀의 긍정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그래서 그녀를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사는 게 우울하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 린다. 그녀는 2010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지만 두 번의 수술 후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암세포와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살다가 2014년 7월, 향년 73세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인생 기본 基本 공식


인생이란 놈이 그렇게 혼란스럽지만은 않다는 거야.

다른 좋은 점도 있지만 나는 이게 제일 좋아. 지혜가 생긴다는 거, 그리고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거 말이야. 내 식대로 말하자면 인생의 공식을 터득하게 되는 거라. 이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소용없는 거거든. 반드시 그만한 경험을 쌓아야 하는 거란 말이지. …… 나잇값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단 말이지. 이런 사람들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그냥 늙은 거야. '어른'이 아니고 그냥 '늙은이'란 거지. 나이가 들수록 쌓이는 경험과 지식을 잘 버무려서 소화를 해야 자꾸 성숙해지는데, 그걸 못했으니까 고집불통에다가 욕심만 많은 늙은이가 돼버리는 거라.

이제 '나이 먹는 것도 괜찮아,'라는 말의 진짜 뜻은 알겠지? 그냥 나이 먹는 게 괜찮은 게 아니라 '나이 먹는 것도 괜찮을 만큼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란 말이지.


사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말처럼 나잇값을 못 한다면 어른이 될 순 없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 거야.'

'어쩔 수 없어. 그건 네가 눈 감아줘야 해.'

'왜냐고? 옛날 사람이니깐.'

잘못된 말 혹은 행동을 나이로 방패삼는 게 과연 어른다운 행동일까?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한 번은 행복해야 해.

길게 오랫동안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면 좋은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잠깐이나마 행복한 순간을 주자는 말이야.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돼.

경우에 따라서는 과자 한 봉지로도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을 줄 수도 있거든.


이 말이야말로 '어른'이 우리에게 해주는 진정어린 말이 아닐까.

당연시 여기게 되면 무심코 지나가 버리게 되는데,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분명 행복의 한 순간일 수도 있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하며 지나 보낸다면 그것은 결국 행복으로 연결될 순 없다.

그래서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야말로 '어른'이 우리에게 해주는 진정어린 말이 아닐까.


쓰레기라고 그냥 버리는 게 아니야. 버리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한 거거든. 쓰레기라고 마음대로 버리지 말고 성의껏, 최선을 다해서 버려야 한단 말이지.

"청소도 의미를 새겨 가면서 하고 버리는 것도 정성을 다해서 버려봐. 그러면 당신이 사는 곳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할 테니까.


마음이 어지럽고 복잡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주변 정리다.

청소라는 것이 단순히 쓸고 닦는 게 아니다.

쓸데없는 것을 버려야 깨끗해지는 것이기에 쓸데없는 것을 쌓아놓고 있다면 진정한 청소라고 말할 순 없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 단수를 올리고 싶다면 버리는 연습을 자꾸 해야 한다.


윤회란 게, 업이란 게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면 '그런 게 어디 있어?'하면서 갖다 버려.

그런데 그게 사는 데 도움이 되면, 고된 인생을 사는 당신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한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뭐든지 당신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거면 받아들여.

그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않는 거라면.


윤회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구나.

어른을 통해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볼 수도 있음을 배워본다.

사람 사는 것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어야 재미있는 것인데 성인은 다 통달 해버렸으니 기쁘고 슬픈 것이 없다.

즉,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무 기뻐하지 않는다면 사는 게 재미있을 거란 뜻이다.

윤회가 주는 또 다른 선물은 바로 사람을 덜 미워하는 것이며 무슨 일이든간에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 사이 家族間 공식


자, 그럼 뭘 준비해야 할까? 돈을 준비하겠어, 아니면 차를 준비하겠어? 마음을 준비해야지. 어떤 마음이냐 하면 남자는 머슴이 될 마음, 여자는 식모가 될 마음을 준비해야 해.

머슴이 하는 일이 뭐야? 어떡하든 부지런히 농사지어서 한 톨이라도 더 거둬서 창고에 쟁여 넣어야 하는 게 머슴이야. 지붕에 구멍은 안 뚫렸나, 농사지을 연장들이 휘지는 않았나, 늘 살피는 거야. 밤중에 식구들 다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대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도, 손님이 찾아오면 제일 먼저 달려 나가 맞이하는 것도 다 머슴의 몫이지. 말하자면 집안의 파수꾼 같은 거야.

그럼 식모의 몫은 뭘까? 머슴이 든든하게 기반을 다져 놓으면 그 위에 평화와 부드러움의 숨결을 불어 넣는 게 식모의 일이야.

남자는 머슴 될 마음 없으면 결혼하지 마. 그리고 여자는 식모 될 마음 없으면 결혼하지 마. 요새는 뭔 놈의 공주, 왕자가 그렇게 많은지.

왜 이 이야기를 하냐 하면, 왕자하고 공주는 머슴이나 식모가 될 수 없거든. 마음이 온통 왕자, 공주인 사람들이 어떻게 머슴이나 식모가 될 수 있겠어.


사랑하는 상대에게 헌신하는 마음가짐만으로는 결혼 생활이 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의 가족과의 결합으로 또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저자의 말 따라 마음이 온통 왕자와 공주인 사람들은 결혼 생활 내내 트러블이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 자신만을 생각해선 안 되며 항상 배려와 존중을 바탕으로 배우자를 대해야 한다.


파릇파릇하고 생생하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시들어버리는 게 이라는 놈이야.

벌써 시들어버린 놈 붙들고 원망해 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야.

그러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관리를 잘해야 하는 거야.


예외없이 남자도, 여자도 사회생활은 꼭 필요하다.

할머니께서 고모집으로 옮기시고 나서야 엄마는 근래 들어 동창회를 나가셨다.

결혼하고나서 엄마는 동창회에 나가질 못 했고 친구들과의 연락도 자연스레 끊어졌었다.

할머니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바람에 외할아버지 제사에도 딱 한 번 가보고 못 가봤다고 한다.

어렸을 때 이걸 깨닫고 나니 뭐, 이런 집안이 다 있나 싶었다.

동창회에 다녀와 집에 온 엄마는 설렘과 신남이 묻어난 열 여덟살 소녀의 표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여고 동창회가 열린다고 하면 이제는 등 떠밀며 나가라고 부추기곤 한다.

예외없이 남자도, 여자도 사회생활은 꼭 필요하다.


자식이 정말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통장의 잔고가 아니라 행복을 물려주는 게 좋아.

부모들이 행복하면 아이들 인생도 행복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자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보여줄까 그 궁리나 해.


생각해보면, 온전히 우리 가족들만 있을 때 마냥 웃고 떠들기 바쁜데 친가쪽 친척들이 모일 때면 간간히 트러블이 일어나곤 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 고모들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는데 장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나와 동생들이 자고 있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깨어 있었다.

그나마 동생들이 자고 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말리던 엄마가 조용히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을 들춰 누우라는 제스처를 취했었다.

7살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보고 들었던 그 장면들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 말이 더 크게 와닿았다.

가정을 꾸린 여동생에게도 항상 당부하곤 한다.

어려서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절대 아니라고.

(조카 앞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만 보여줘도 부족하다고.

아이에게 온전히 행복을 물려준다면 엄청난 자존감을 무기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진짜 어른으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삶의 가치와 자세는 두고두고 배웠으면 좋겠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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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2-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도 좋은 글이네요. 특히 머슴이 되고 식모가 되야 한다는 얘기가 굉장히 와닿게 느껴졌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셸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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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참 볼품없는 남자였다.

적어도 첫눈엔 그랬다.


까맣고 꾀죄죄한 한 이방인이 길을 물었다.

이방인과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가 상냥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웃기려고 한 말도 아니었는데 낯선 이가 하던 말을 멈추고 빙긋 웃으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으니깐.

어머니를 일찍이 여읜 탓에 끌림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자랐는데 그 이방인과의 순간순간에는 끌림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은 서로의 애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지라 서로가 사랑했는지를 알 순 없었지만 열 두 살에 마주했던 그 사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캐니언 시티로 복숭아 배달을 나갔던 어머니, 캘러머스 오빠, 비비언 이모가 집에 오질 않았는데 그들 대신 보안관 아저씨가 집으로 왔다.

보안관 라일 아저씨가 무슨 말을 꺼내자 아버지는 빗물이 고인 진흙탕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그렇게 아버지, 남동생, 이모부 사이에서 빅토리아는 의지할 곳 없이 자라게 된다.


"윌이야." 내가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그가 내 말을 가로챘다. "윌슨 문."

그는 자기 이름이 내 귓가에 감돌도록 잠시 기다리고는 내 쪽으로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알게 되어 영광입니다, 빅토리아 양."


그런 빅토리아가 이방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타인에게 관심받는 것이 이렇게 좋은 일이구나.

17년 동안 어떻게 관심 없이 살아오게 된 것인지 빅토리아 스스로도 놀란다.




"야!"

"저 새끼 누구냐?"


윌과 함께 말을 주고 받던 그 때, 익숙한 목소리라 귓가를 때렸다.

바로 한 살 터울의 남동생, 세스였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자신과 남동생에게 한껏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던 아버지보다 더 골치아팠다.

평소처럼 길거리 한복판에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한껏 폭력성을 드러내는 세스, 빅토리아와 함께 있는 윌에게 막말도 서슴치 않았다.


더 이상 꾸며낼 거짓말도 없는 데다가 밀리 아주머니의 따뜻함에 지나치게 위안을 받은 나머지 나는 어리석게도 속내를 털어놓고 말았다.

"혹시 여기에 윌슨 문이라는 남자애가 있는지 궁금해서요."

나는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고, 처음 뱉어보는 그의 이름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변하는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니 아차 싶었다.

"그 인전 남자애 말이니?"

(Injun : 아메리칸 인디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아주머니가 어디서 지독한 냄새라도 난다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토리, 대체 무엇 때문에 그 더러운 인전을 찾는 거야?"


한바탕 소동이 생겨 목발을 짚게 된 빅토리아가 여인숙의 밀리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실 윌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밀리 아주머니의 반응을 보고선 곧장 과수원의 일꾼이 필요하다 둘러대었다.

윌의 혈통보다 걱정스러웠던 건 그가 이미 마을에서 떠나고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 아버지, 이모부, 세스 그리고 데이비스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

윌에 대한 얘기였다. 윌에 대한 온갖 험한 말들이 오갔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데이비스는 윌을 쫓고 있었다.

다음 날, 아빠, 세스를 도와 배달을 나갔는데 윌을 잡는다는 수배 전단을 보게 된다.

현상금까지 붙어있던 그 전단이 세스의 눈에도 포착된다.

배달을 마친 후, 복숭아 노점에 가서 일손을 보태라는 아버지의 말에 빅토리아는 노점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윌슨 문과 다시 재회하게 된다.


식사를 마치고 부엌을 나서려는 아빠에게 다시 노점으로 나가 마감을 도와주고 오겠다고 얘기했다.

"그러렴."

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아빠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서 대충 대답했다. 그건 내가 아빠에게 생전 처음 하는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윌슨 문의 품에 다시 한번 안기기 위해 기꺼이 지불해야 할 대가였다.


루비앨리스 에이커의 집에 있던 윌과 다시 재회하게 된 빅토리아, 짧은 입맞춤을 나누고 그날 오후 미루나무에서 다시 만나 긴 포옹을 나누었다.

그들은 결국 연인이 되었다.

이런 저런 말들로 둘러대고 나와 윌과의 시간을 보내는 빅토리아는 윌과 사랑도 나누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자유에 순종적이고 소심한 소녀에서 스스로 결정내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여성이 된 기분이었다.


윌이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간다 한들 세스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 어디로 간들 세스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려는 사람이 없겠는가? 윌은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




세스가 언제부터 미행한 것인지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둘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버드나무 숲에서 윌이 빅토리아의 손을 붙잡고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윌은 사라졌다.


"내가 현상금보다 더 좋은 걸 건졌어, 누나."

"더 큰 걸 건졌고말고."

"응, 더 크고 좋은 거지."


세스는 윌을 당국에 넘기지도, 마을 밖으로 쫓아내지도 않았다.

불을 켜면 눈앞에 피 묻은 세스의 손이 나타날 게 틀림없었기에 빅토리아는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복도를 지나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11월 말의 어느 날 아침, 빅토리아는 슈퍼마켓 구석에서 한 대화를 듣게 된다.


시체를. 블랙 캐니언 바닥에서. 그 인전 놈. 피부가 거의 벗겨진 채로. 차 뒤에 있었다나. 던져졌대.


사랑 그리고 슬픔과 죄책감같은 여러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빅토리아를 짓눌렀다.

그리고 그녀 안에는 아주 작은 태아가 자라고 있었다.

무고한 소년을 포용하기엔 세상은 너무나도 잔인했다.

그녀를 사랑했기에 이곳에 남으려고 했던 윌의 선택.

결국 이곳은 그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무지한 저를 탓하기엔 이미 늦었다.

몸이 무겁고 피곤한 줄 알았는데 배가 동그랗게 부르고 안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인해 그제야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아차렸다.

만삭에 접어들어 두꺼운 옷으로도 커버할수 없게 되자 빅토리아는 편지 한 통을 남기고 결국 가출을 택했다.

그렇게 5월이 지나 6월이 되었고 빅토리아는 출산을 하게 되었다.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몇 차례의 허물을 벗고 성장하는 애벌레는 마지막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된다.

그렇게 겨울을 보낸 후 허물을 벗은 번데기는 나비가 되는데 빅토리아와 꼭 닮았다.

순탄치 못했던 그녀의 삶을 보며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에게 자연스레 대입하게 되는데 이렇다보니 시대가, 나라가 달라도 주인공의 삶에서 자기 삶의 편린을 발견할 수 있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굳센 회복력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결국 주어진 것은 '결실'이었다.

제목처럼 우리의 삶도 흐르는 강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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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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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면 망설이지 마라.

문학과 인문학의 세계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버지니아의 13편의 작품들을 한번에 볼 수 있다.


저자, 버지니아 울프의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날씨가 춥다. 추워도 너무 춥다.

차라리 더운 여름을 버티는 게 낫지 개복치 체력인 나에겐 겨울은 너무나도 힘들다.

단독주택은 보일러 빵빵하게 틀어도 우풍까지 완벽하게 막을 수 없어 마냥 좋다고 할 순 없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컨디션이 좋질 않아 약으로 버텼다.


병원에서 검사받느라 반나절을 꼬박 보낸 덕분에 업로드하지 못한 책을 이제야 올려본다.

필사도 함께 하고 있는데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ෆ



Women have sat indoors all these millions of years, so that by this time the very walls are permeated by their creative force, which has, indeed, so overcharged the capacity of bricks and morrar that it must needs harness itself to pens and brushes and business and politics.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


현대로 넘어와서야 많이 누그러지긴 했으나 지금도 여성 차별은 존재한다.

하물며 과거에는 어땠을까?

역사서를 펼친 그녀는 여성이 문학 창작에서 그간 소외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아무리 능력이 대단한들 사회적 환경이 여성에게 있어서 철저하게 불리하기 때문에 같은 선에서 출발했다 해도 결국은 남성만큼 우대받지는 못했을 것이란 결론에 다다른다.

19세기 초는 여성이 슨 작품들이 서가의 한 칸을 채웠을 정도로 많이 발전한 시기였다.

특징이라면 이들은 대부분 소설을 썼는데 제인 오스틴의 회상록 일부를 보면 이에 대한 이유를 확인해볼 수 있다.

중산층이었기에 가족으로부터 빈번하게 방해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경험 부족이 곧 작품의 한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One can only show how one came to hold whatever opinion one does hold. One can only give one's audience the chance of drawing their own conclusions as they observe the limitations, the prejudices, the idiosyncrasies of the speaker. Fiction here is likely to contain more truth than fact.


사람들은 자신이 지니게 된 의견의 결과물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청중들은 연설자의 한계, 편견, 특이점을 관찰하여 자신만의 결론을 도출해야 합니다. 특히 소설에 있어서는 사실보다는 진리가 더 많이 담겨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Women have served all these centuries as looking glasses possessing the magic and delicious power of reflecting the figure of man at twice its natural size.


여성들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두 배로 확대하는 마법과 매혹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돋보기 역할로 남성의 모습을 비춰주었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물질적 풍요로움도 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자기만의 방」을 읽어보면, 버지니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한 두 가지 조건으로 돈과 자기만의 방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로 돈은 경제적 자유를, 자기만의 방은 시공간적 자유를 의미한다.

맞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면서 꿈을 펼치려면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만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 갈 수 있을 테니깐.



Perhaps it was the middle of January in the present year that I first looked up and saw the mark on the wall. In order to fix a date it is necessary to remember what one saw.


아마도 올해 1월 중순쯤, 나는 처음으로 눈을 들어 올려 벽에있는 자국을 보게 되었어요. 날짜를 정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The mark was a small round mark, black upon the white wall, about six or seven inches above the mantelpiece.


이 흔적은 작은 원 모양의 흑색 표식이었고, 벽난로 위로 6~7인치 정도 높이에 있었어요.


How readily our thoughts swarm upon a new object, lifting it a little way, as ants carry a blade of straw so feverishly, and then leave it.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쉽게 새로운 대상으로 옮겨가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마치 개미가 한 조각의 짚을 열심히 들어 올려 옮겨두는 듯하다 금방 놓아버리듯 생각합니다.


That is the sort of people they wereㅡvery interesting people, and I think of them so often, in such queer places, because one will never see them again, never know what happened next.


그들은 정말로 흥미로운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들을 자주 생각하곤 해요. 정말 이상한 곳에서까지 그들을 떠올리는데,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고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이 곧 영감이 될 수 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이 또한 인생이란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So long as you write what you wish to write, that is all that matters. 당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한, 그것이 전부입니다.


드물긴 해도 간혹 독서나 공부를 하지 않거나 필사를 하지 않는 때도 있다.

그러나 7살 때부터 지금까지 365일 빼먹지 않고 해왔던 것은 바로 일기 쓰는 것이다.

꼬박 써 온 일기이다 보니 그 양이 엄청나다.

그 날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깊은 인상을 준 무언가에 대해 쓰기도 해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 간 글들이 가득하다.


나름 내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지만 확언할 순 없는 것 같다.

대학교 때, 한창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 빠져 있었다.

그리곤 울프의 작품을 통해 나 자신을 투영시켜 바라보기도 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진정한 자립은 결국 나 자신을 완벽하게 알고 파악하는 것이 첫 걸음이다.

울프도 이를 알았기에 글을 통해 진정한 자립의 의미를 전하고자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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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25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여성비하 발언을 날리는 일부 사이비 정치인들은 책과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부류인 듯, ㅠㅠ
 
노량 : 최후의 바다
박은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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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만일 원수들을 없앨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나이다."

임진왜란, 7년간의 전쟁을 심판하는 마지막 전투가 펼쳐진다!


저자, 박은우는 역사팩션 작가이자 스릴러 작가로, 『전쟁의 늪』, 『명량』, 『청계산장의 재판』 등을 출간했다.

암살의 위기에 빠진 이순신이라는 기발한 소재를 스릴러 장르에 담은 『전쟁의 늪』을 펴내면서 본격적인 이순신 소설을 집필했다.

이어서 출간된 『명량』은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라 작가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이번에 집필한 『노량』은 그의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 해당된다. 이 작품은 노량해전의 전말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열한 격전의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가는 스릴러 소설 『청계산장의 재판』으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와 계약되어 현지에서 드라마로 제작 중이다.





이순신 장군의 최대, 최후 해전인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전쟁을 끝냈으며 왜군, 명군 모두 피하고 싶을 만큼의 큰 전투였다.

1597년 10월 17일 직산 전투, 1597년 10월 26일 명량 해전으로 인해 일본군의 가세가 기울여졌고 가망 없는 전쟁에 철수하려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본국으로의 철수를 금지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 다이묘들은 남해안에 왜성들을 짓고 수비하기에 이르렀다.

조명연합군이 일본군의 퇴각로를 차단하려는 공세를 가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 했다.

그러다 1598년 9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게 된다.


정권을 위임받은 고다이로와 고부교들은 다이묘들에게 공식 철수하라고 명했는데, 적의 전력을 온전히 보내줬다간 재침략을 당할 수도 있거니와 7년 동안 조선 곳곳을 잔악무도하게 유린한 대가를 돌려줘야 했다.

조명연합군이 이 소식에 사로병진책을 세워 공세를 가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598년 12월 초, 고니시는 진린과 이순신에게 연락선만이라도 다닐 수 있게 해달라며 뇌물을 보냈는데 이에 이순신은 사신을 죽이려다 참았지만 진린은 일본군 4명이 탄 고니시의 연락선 1척을 허용하며 포위망을 통과하게 했다.

이에 격노한 이순신이 추격을 명해 한산도까지 추격했지만 결국 연락선을 놓쳤다.

한편 연락을 받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성의 타치바나 무네시게, 남해의 소 요시토시(고니시의 사위), 부산의 테라자와 히로타카에게 남해 창선도로 소집령을 내린다.

이로 인해 순천의 일본군, 창선도의 일본군 사이에 조명연합군이 도리어 포위된 처지에 놓이게 된다.


1598년 12월 15일 늦은 오후, 이순신은 진린과 함께 출전하게 된다.

진린과 등자룡은 이순신이 선물한 판옥선 2척에 나눠 타고 출전했으며 그 뒤를 사선, 호선들이 뒤따랐다.

당시 함대를 서쪽의 순천왜성을 위장공격하려는 극소수의 위장함대, 동쪽의 노량해협을 포위하려는 본함대와 복병함대로 나누었다.


1598년 12월 15일 늦은 밤, 이순신의 위장함대가 서쪽의 순천왜성을 무너뜨릴듯 포격하며 상륙할 것처럼 위장했다.

이에 순천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이 연락선이 나간 것을 알아 구원군이 오기 전에 순천왜성을 끝장내려는 것으로 해석해 봉화 수준이 아닌 산을 불태우며 당시의 긴급함을 알렸다.

창선도의 시마즈 요시히로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조선 수군이 노량 쪽을 막지 않고 순천 쪽으로 갔다고 해석하며 노량해협을 신속히 통과하기로 결정한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0~2시

일본 함대가 창선도를 출발해 노량해협을 통과하자 조선 복병 함대가 기습 포격하며 해전이 시작되었다. 조선 수군이 순천 쪽에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일본 수군은 당황하였다. 수 척의 일본 함선이 격침될 쯤 시마즈는 복병 함대의 수가 적음을 파악하고 이들을 포위하려 했다.

그러자 죽도 부근에 매복하던 명나라 함대가 합류했다.

진린의 판옥선은 도독기를 높이 올리고 북을 치며 진격했으며 등자룡의 판옥선은 불랑기포와 호준포를 쏘며 돌격했다.

조선 복병 함대는 기습 외에도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명나라 수군을 호위하는 임무 또한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 함대의 움직임에 맞추어 공격하였다.

전면전도, 다시 되돌아가기도 불가했기에 시마즈는 빨리 전진하기를 선택한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2~4시

일본 함대가 관음포까지 전진했을 때, 이순신의 조선 수군 본 함대가 등장하며 일본 함대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조선 본 함대는 첨자찰진(삼각형의 돌격형)으로 경상우수사 이순신(무의공)을 선봉장으로 어린진(전방이 두터운 방어형)으로 전진하던 일본 수군의 옆면에 등장해 파고 들어 지휘부 쪽을 위협하자, 지휘부의 수호를 최우선하는 일본 함대가 큰 혼란에 빠졌다.

때마침 부는 북서풍을 이용해, 조명연합군이 화공(불화살, 신기전, 불 붙은 짚섬)까지 가했다.

순천왜성 쪽의 고니시 유키나가도 위장함대에 속은 것을 알고 군영을 철수해 배를 출발시켰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4~6시

일본의 선봉대가 불능에 빠졌을 무렵, 시마즈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명나라 수군 방향으로 포위망을 벗어나자고 총공세를 명령한다. 이에 아직 전력이 보존 된 중위-후위 병력들이 빠르게 돌진했다.

때마침 등자룡의 판옥선이 명나라 아군이 잘못 쏜 포에 의해 불이 났다. 일본 함대가 여기로 공격을 집중하자 결국 등자룡이 전사하고 판옥선은 불타버린다.

명군 파총 심리가 등자룡의 배를 구하러 달려들었으나 이미 늦은 지 오래였다.

이 여세를 몰아 일본군은 진린의 판옥선에도 달려들었으나, 이순신의 본 함대가 또 다시 진린을 구원하였다.

명나라 수군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이순신의 본 함대는 일본 수군 중앙을 파고들던 첨자찰진에서 점차 포위진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근접한 일본 함대에 포격을 가하며 포위망을 조이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야간이었기에 전함식별 및 조준이 어려워 평소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 화포발사를 해야 했고, 근접전/백병전도 자주 발생했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6~8시

명나라 수군 방향으로 돌파가 무산된 상황에서, 바닷물의 방향이 바뀌었다. 야간이라 방향을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 수군은 바뀐 물의 방향을 따르면 다시 노량해협을 지나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으나, 관음포 앞바다의 파도는 관음포 만으로 향하는 것이었고, 일본 수군은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조명연합군은 관음포 입구에 정렬해 입구를 철저히 봉쇄하고 포위섬멸하려 하고, 일본 수군 역시 죽기살기로 관음포를 다시 나가기 위해 최후의 발악으로 달려든다.

순천왜성의 고니시는 해가 밝은 뒤 시마즈의 구원함대가 대패하는 것이 보이자 먼 바다로 도망쳤다.


1598년 12월 16일 오전 8~10시

일본 수군은 이순신의 대장선 방향으로 탈출하려 하는데 이순신을 비롯해 전라좌수군이 직접 돌파를 시도하는 선박들을 추격해 포위한다.

일본군 선두의 시마즈 요시히로의 대장선이 결국 반파되자 일본군 후방의 타치바나 무네시게 군이 관음포를 또 빠져나와 난전이 발생하였고 덕분에 시마즈 요시히로도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이 난전으로 인해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많은 장수들이 전사하였다.


무술년 9월에서 11월까지의 기록으로,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다.

기적과도 같은 승전이나 다름없었던 명량 대첩 이후, 군사와 물자가 부족했던 실정이었다.

당시 이순신은 백성들이 안심하고 바다를 통행하며 생산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결과적으로 군량이 충족되니 부족한 군사를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이는 오롯이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지만 왕과 조정 대신들에게는 눈엣가시였으리라.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했다 할지라도 그 이후에는 쓸모없는 존재 혹은 두려움의 존재로 기피되기 때문에 숙청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던 시대였다.

다행히 명의 황제 신종이 이순신에게 면사첩을 내리는 동시에 중국에서 파병한 수군총사령관인 도독 진린과 같은 계급인 대명수군도독으로 임명했으니 아니꼽더라도 왕과 조정 대신들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전란의 원흉인 풍신수길 사망하자 본국으로 귀환을 준비하는 왜군.

구원병으로 왔지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명군.

승리를 바라지만 그만큼 자신보다 그 위치가 높아질까 경계의 날을 세우는 조선의 왕.

오롯이 나라와 백성만을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에게 있어서 모든 이들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 적이라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송군관이 총에 맞았다!"

이순신이 송희립을 찾아보려는 순간 총탄 한 발이 그의 왼쪽 가슴을 뚫었다.

감았던 눈을 뜨니 흐릿한 시야 속에 여러 얼굴들이 나타났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자 병사들이 귀를 가져다 댔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말하지 말아라."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었기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었다.


으레 버릇이 되어 픽션이 가미된 역사소설을 보게 될 때면 꼭 역사를 다시 되짚어 본 후 책을 펼친다.

결말을 알기에 영화 「명량」은 봤지만 「노량」이 작년에 개봉했어도 보질 못했었다.

작년에 여행을 다녀오며 사진으로 남겨두었던 거북선과 푸르르게 펼쳐진 바다를 다시 보고 나니 감사한 마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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