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나잇 - 아직 잠들지 못하는 당신에게
박근호 지음 / 히읏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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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어느새 생각 한 줌이 눈 덩어리처럼 불어나게 된다.

생각은 끊임없이 생각을 낳게 해 어느새 한 밤, 두 밤, 잠 못 이루는 밤으로 만들어 버린다.

잠 못 드는 밤, 수면제와도 같은 책이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져 주다 보면 잠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굿나잇하기를 바라며 책 한 권을 소개해 볼까 한다.


저자, 박근호는 새벽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쓰면서 살고 있다.

하지 못한 말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에 관해 쓴 책을 시작으로 이별, 행복, 상실과 깨달음에 관해 책을 펴냈다.

문득 나처럼 잘 못 자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이 책을 쓰게 됐다.





Ⅰ 나를 덮어주던 것들


그때가 한 번 더 확신하게 되는 날이었다. 진짜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줘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껴안고 누워있을 때면 아무런 걱정도 고민도 불안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껴안고 있을 때면 그렇게 잠이 잘 왔다. 어쩌면 최고의 불면증 치료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일지도 모른다.


흔히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것의 시작은 스스로를 칭찬하고 예뻐해 주는 거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내가 나를 믿어주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난 잘할 거야, 난 최고야라고 스스로를 쓰다듬는 게 아니라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부족하고 때로는 잘 못 할지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그렇게 사주를 봤던 게 아닐까. 결국 괜찮아진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서. 물론 굴곡이 없을 수는 없지만, 결국 네가 가고 있는 길의 끝에 가서는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Ⅱ 나를 지탱해주던 것들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자연 속에서 혼자 있는 게 더 편하게 느껴지는 날의 연속입니다. 지금 상태가 건강한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답을 할 수 없습니다. 과연 사람과 엮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를 믿어야 하는 순간이 또 찾아올 것이고 원하든 원치 않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된 건 너무 많은 사람을 믿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제가 소화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원인은 알 수 없겠지만 사람이 무서워질 때면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볼까 합니다. 한 번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테니까요.


새장 안에 갇혀 순수하게 살았던 것이 '독'이 될 때가 많다.

순수하다는 말은 어느새 세상물정 모르는 말로 변질되어 버린 지 오래니깐.

나 또한 그렇다. 전적으로 믿었지만, 악한 사람은 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처음에는 모른 척 하고 받아들여줬으나 뒤늦게 떨어뜨려 내기에는 이미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참 많다. 많지만,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인연들은 때때로 나를 무너뜨리곤 했다. 그것이 친구든, 가족이든.

사람에게 상처를 크게 받다 보면, 어떤 사람이 다가와도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가 점점 흐려진다.

결국 신뢰가 흐려지며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현재의 나와 소통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는 연락을 받지 않았었다. 일단 두려움이 생기니 통화 버튼을, 전송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경험에 의하자면, 한 번 사람이 무서워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중요한 것은 특정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야 하는데, 본의아니게 확장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그렇기에 사람이 무서워질 때면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을 꼭 떠올려야 한다.

편견에 갇히게 되는 그 순간, 정작 좋은 사람을 놓칠 수도 있을 테니깐.





Ⅲ 나를 밝혀주던 것들


6년도 더 되었다고 한다.

작업이 늦게 끝날 때면 포장마차에 가 떡볶이 한 접시를 먹곤 하는데 그 때마다 꼬마 김밥 한 줄을 올려주셨다고 한다.

벌써 13년 넘게 장사를 하셨다는 이모님은 사람을 잘 기억하신다고 한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찾아갔을 때도 단번에 저자를 알아봤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모님께서 저자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고 한다.

"느낀 거? 오늘은 왜 이런 걸 다 물어보는데? 힘들어? 장사 오래 하면서 느낀 건 하나야. 열심히 사는 사람들 많아. 새벽에 공부하다가 나오는 애들, 근처에서 밤일하는 사람들, 또 슬퍼서 술 먹고 집에 안 들어가고 방황하는 사람들까지 다들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청소하는 사람들도 경찰들도 다 열심히 해. 여기 근처에 잘 곳도 많잖아. 연인들도 얼마나 사랑을 열심히 하는지 아주 닭살 커플들이 깔렸어, 깔렸어. 사랑도 열심히 해. 일도 열심히 해. 열심히 사는 사람 진짜 많아. 새벽에 보면."


그렇다. 일도, 휴식도, 사랑도, 그게 무엇이든간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 기내식 땅콩을 간식으로 주던 언니가 있었다.

그 때 내 나이가 6살이었고 동생은 4살이었다. 그 때는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아도 될 정도로 모두가 아는 사이였고 흉흉한 세상은 아니었었다.

어느 날, 유니폼을 예쁘게 입은 한 언니가 길을 물었고 우리는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만 믿고 따라오라며 길을 안내해주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기억인데 훗날 커서 알게 되었지만 그 언니는 대한항공을 다니던 승무원이었던 것이다.

그 후 동생과 나는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저녁 먹을 때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언니집을 꼭 들렸다.

순수했던 건지, 철이 없던 건지, 똑똑똑 문을 두들기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오는 언니 손에는 기내식 땅콩 봉지 대 여섯개가 들려있었다.

기내식에서 나누어주는 예쁜 패키지에 들어있는 짭쪼롬한 땅콩을 그 때 처음 맛보았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었는데 항공사를 다니면서 독립을 하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했던 어린 아이들이 말동무가 되어주니 너무 좋다고 했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언니집에 들렸었는데 가끔은 언니집에 들어가 달달한 코코아와 함께 쿠키를 먹었었다.

그 때마다 똑같이 하는 얘기가 있어서 지금까지도 잊혀지질 않는다.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

"오늘은 유치원에서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하고 …… "

"우와, 너무 부럽다. 언니는 오늘 너무 힘들었는데..."

"일하는 거 많이 힘들구나. 우리 아빠도 맨날 힘들다고 해요."

"언니도 실컷 놀고 싶다."

"언니도 친구들이랑 같이 놀면 되잖아요."

"친구들이 멀리 있어서 자주 못 만나."

"그럼 우리랑 놀면 되죠."

"정말? 하나가 언니랑 놀아줄거야?"

그 때는 너무 어려 알지 못했었는데 훗날 커서 생각해보니 언니가 참 힘들어했었구나를 느꼈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승무원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정작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고향에 있으니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지, 그래서 우리가 올 때면 그렇게 반갑게 맞아줬구나 싶었다.

이후, 이사를 오게 되면서 언니와 연락이 아쉽게도 끊겼었다. 이사간다고 얘기하러 갔을 때,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언니에게 꼭 안겼었다.


나는 참 희한한 게 어른들과의 인연이 참 깊다.

유치원 때 만났던 승무원 언니 외에도 초등학교 때는 아빠 회사 옆 회사에 다니던 직장인이었던 한 언니와도 몇 년 동안 인연이 되어 점심도 먹고 선물도 많이 받았었었다.

선물 중 몇 개는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는데 이후 번호를 몰라 연락이 끊겨 참 아쉽기만 하다.

지금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님, 교수님과 같은 또래의 어른들과도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올곧게 지금까지 살아오셨던 좋은 어른들은 신뢰감이 높다고 내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매번 어른들이 내게 첫마디로 건네는 말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이 있다.

무엇인지 예상이 가는가?

"하나, 밥은 먹었니?"

"하나, 아픈데는 없니? 별 일 없니?"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마음을 이분들께서 많이 어루만져 주셔서, 그래서인지 진정한 어른들과의 대화가 나는 참 좋다.

이렇듯, 승무원 언니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었는데 바로 "열심히 살면 돼.", "후회없이, 최선을 다하면 돼."이다.

무엇이든간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게도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남들과 비교한다 한들, 지금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생각이 더해질 뿐이다.

저자의 말 따라 남들보다 더 가졌다고 우쭐대지 말고 남들보다 좀 없다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면 된다.

아, 밥은 꼭 먹고 다니면서.





불면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내가 불면증을 겪는다고 얘기하질 않는다.

그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어본 적이 있다.

불면증을 앓고 있다고 하니 요즘 얘들은 고생을 안 해봐서 잠 못 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오히려 너무 피곤하면 잠이 더 오질 않는데 말이다.


가장 몸이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 하면 역시 20대 초반이었다.

학교생활도 바쁜데 집안일도 하고 알바도 해야 했으니 과제나 PPT 발표라도 있는 날이면 날을 새 거나 두세 시간 자는 게 전부였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불면증을 앓았었고 대학교 때도 조금 심했었는데 이후 약의 도움을 받아 조금 완화되긴 했었었다.

학창 시절 이후로, 단 한 번도 꿈을 안 꿔본 적이 없다. 아주 잠깐 책상에 기대어 오분 정도 잔다 할지라도 그 짧은 시간에도 꿈을 꾸었다.

자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깜짝깜짝 놀라 일어난 적도 많다.

잠자기 좋은 최적의 조건을 맞춰놔도 잠을 못 자니 의사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선 희한한 일이 있었다.

분명히 깊게 자는 것도 아니고 자고 나면 개운함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계속 잠이 오는 것이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눈이 감겼다. 카페인도 소용없을 정도로 자도 또 자야 했고 또 자야 했다.

마침 병원 가는 날에 그간의 일을 얘기했다. 당시 정말 힘들었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는지 수면 장애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사실 불면증을 앓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결국 그 원인으로 인해 생각이 많아져 뇌가 깨어있으니 잠을 쉽사리 들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불면증을 해결할 수 있는 답 또한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이를 겪어봤기에 쉽사리 이렇다 할 답안을 내주지는 못하겠다.

정작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은 쉬운 것이라 들릴 수 있으니깐.

그런데 정말 노력한다면 "덜어낼" 수는 있다.

사람에 따라 또 다를 순 있겠지만 나는 잔잔한 에세이나 시집을 꼭 읽고 잔다.

잠시나마 책에 빠져들어 생각을 그곳에 놓고 온 뒤 잠들려고 한다.

이게 될까 하겠지만 계속하다 보면 되긴 한다.


깊은 밤, 고요함이 젖어든 밤하늘의 달이 희미해지고 태양은 또 어느새 위로 올라온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나 자신을 토닥여주는 것은 어떨까?

내일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모두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포근한 이불에서 좋은 꿈 꾸기를 바라며.

Good n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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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5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3-08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예쁜 사진 ~ 하나의 책장님 당선 축하드려요 ~

2022-06-2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22-06-2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3-08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2022-06-2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3-08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하나님 당선 축하드려요 ^^

2022-06-2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2-03-08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2022-06-27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2022-06-2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kang1001 2022-03-10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22-06-2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2-03-10 1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의책장님, 축하드립니다!

2022-06-27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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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도 인상깊게 읽었고 무엇보다 원본 그대로 편집했다는 것을 보고 북펀딩에 참여했다. (<-외국서적 구매할 때 중요한 요소 중 하나!)
와인잔까지 데려왔으니 이번 주말에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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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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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다 셀프 생일선물로 결국 지르게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소장 가치가 있을 뿐더러 한 권, 한 권 읽는 재미가 있다. 그나저나 무겁고 긴 이 세트를 어느 책장에 놔야할 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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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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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열다섯편의 단편소설, 단편소설의 정수이자 본보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글솜씨가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짤막하지만 이야기는 매우 깊은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책을 펼치는 순간 몰입도있게 빠져들 것이다.


저자, 데니스 존슨은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도쿄, 마닐라, 워싱턴 D.C.에서 자랐다. 아이오와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멘토인 레이먼드 카버를 만났다. 스무 살이던 1969년 첫 시집 『물개 사이에 선 남자The Man Among the Seals』를 출간하며 데뷔했다. 1983년 첫 소설 『천사Angel』를 발표해 평단의 찬사를 받은 존슨은 1992년 소설집 『예수의 아들Jesus’ Son』을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했다.

저자, 조이 윌리엄스는 1944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돌보기Taking Care」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다. 이 밖에도 장편소설 『은총의 상태State of Grace』, 단편소설 「도피Escapes」 등을 썼다. 삶에서 겪는 상실을 신비롭고 영적으로 다루는 글쓰기로 이름을 알렸다. 레아 단편소설상, 밀드레드 앤 해롤드 슈트라우스상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저자, 레이먼드 카버는 1938년 5월 25일 오리건 주 클래츠케이니에서 태어났으며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1980년대에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인물로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소설가'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 '체호프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리운다. 1979년에 구겐하임 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1983년 밀드레드 앤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또한 1988년에는 전미 예술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하트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Ⅰ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술을 나눠주고 내가 자는 동안 운전한 세일즈맨…… 버번으로 가득한 체로키족의 차…… 폴크스바겐은 대학생이 모는 대마초 연기 덩어리일 뿐이었고……

그리고 미주리주 베서니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온 한 남자를 들이받아 영원히 죽여버린 마셜타운 출신 어느 가족의 남자……


구성, 배경, 인물 설정, 작가의 설명을 최대한 생략하면서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암시하는 목소리를 찾아낸다. 조각난 목소리를 서사가 결핍된 이유이며, 그리하여 그 자체로 일종의 설명이 된다.



전반적인 이야기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사고 순간순간이 남자가 바라보는 그 느낌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제목 그대로 히치하이킹 도중 난 자동차 사고였다.

히치하이킹을 해 어떤 차를 타게 되었고 '나'라는 인물은 아기와 함께 뒷좌석에 앉아 가게 된다. 남편은 운전석, 부인은 조수석에 앉은 채로.

그렇게 가는 도중 폭풍우 속에서 사고가 나게 된다.

이야기는 굉장히 철저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끔찍함이 극으로 치닫다 이내 병원 장면으로 옮겨가는데 울컥울컥 피를 흘렸던 남자는 결국 죽게 된다.


몇 년이 흘러 시애틀 종합병원의 중독 치료센터에 들어갔을 때 한 번은 똑같은 방법을 택했다.

"이상한 소리나 목소리가 들리나요?" 의사가 물었다.

"도와주세요, 오, 제발, 아파요." 탈지면 상자가 소리를 질렀다.

……

"방이 왜 이렇게 하얗게 변했죠?" 내가 물었다.

아름다운 간호사가 내 피부를 만지고 있었다. "비타민 주사예요." 간호사가 말했고 바늘을 꽂았다.

비가 내렸다. 우리 위쪽으로 거대한 양치식물이 늘어졌다. 숲이 언덕 아래로 떠내려갔다. 개울물이 바위 사이로 세차게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당신, 어이없는 당신들, 당신은 내가 도와주길 바라지.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 남자가 약물로 인한 정신 이상에 빠져드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어떻게 그가 사건들을 그렇게 명확하게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당신, 어이없는 당신들, 당신은 내가 도와주길 바라지." '멍청한 놈'은 예수가 아니다. 그는 예수의 아들이고 이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는 천국의 통찰력이라는 은총을 입었지만, 여전히 지상의 지옥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첫 단편을 읽자마자 원서가 궁금해졌다. 아무래도 원서 그대로 읽어야만 더 이해가 빠르게 될 것만 같았다.

많지 않은 단어들로 내용들을 구성한 이 단편은 꽤나 심플하면서도 심오했다.



Ⅱ 하늘을 나는 양탄자


양탄자를 처음 본 건 다른 동네 뒤뜰에서였다. 위층 베란다에서 높다란 회색 장대까지 도르래 빨랫줄이 뻗어있는 2층 주택 모퉁이에 화사한 색깔이 나부꼈다. 그러더니 차고 뒤쪽에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양탄자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

그냥 밤색과 초록색이었다. 갈색에 가까운 밤색 바탕에 진한 녹색의 구불구불한 고리 무늬가 있었다. 양쪽 가장 자리에는 굵고 거친 술이 달렸다.

……

결국, 얼마나 능숙하게 무게중심을 바꾸는가의 문제였다. 양탄자 한가운데에서 조금 뒤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면 양탄자가 앞으로 갔고, 왼쪽으로 기울이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오른쪽으로 갔다. 손바닥을 아래로 오므린 채 팔을 양옆으로 들어 올리면 양탄자가 떠올랐고 팔을 아래로 살짝 내리면 양탄자도 내려갔다.



양탄자를 따라 과거로 회기하는 것만 같다. 그것도 아주 세밀하게 말이다.

소년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기억해본다.

예로서, 잃어버린 사랑을 느끼려면 아만다를 사랑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녀의 웃음,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 턱에 난 작은 흉터를 떠올려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억의 대상이 평범하고 진부해도 그 기억의 감정을 심오하게 하고 느껴지게 하고 사실이게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정밀함과 축적이다.


극 중 화자는 양탄자를 따라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보았는데, 나에게는 '음악'이 양탄자와 같은 존재이다.

특정 음악들이 과거의 한 부분, 한 부분을 그대로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열 다섯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쉽게 넘어갈 것이란 생각을 하면 오산이다. 흐름을 잘 타지 않으면 줄거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세계관의 독특함을 한껏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이 짧은 글에 잘 묻어나기 때문에 막상 읽다보면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흘러 넘친다.

아, 오랜만에 제대로 된 단편 하나 읽었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딸기우유빛의 바인더, 글쓰기 노트에 적어놨던 짤막한 소설들을 괜스레 꺼내보았다. 언젠가 나도 이 글을 책으로 낼 수 있을까.

아껴두었다가 읽고 싶은 그런 글이라, 소설을 한 번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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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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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책과 마주하다』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절망과 같은 웨하스 의자는 참 조그맣고 예쁘다.

절망을 문제 삼지 않는 강함과 사랑과 절망 사이에서 나오는 고독함까지, 『웨하스 의자』에 담겨 있다.


저자, 에쿠니 가오리는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에쿠니 가오리는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이다. 1989년 『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Ⅰ 웨하스 의자


중년에 접어든 '나'.

낡은 아파트 4층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는 결혼하진 않았지만 애인은 있었다.

스카프와 우산을 디자인하는 것을 주수입으로 삼는 '나'는 화가였다.


"언니는, 정말 어린애 같다니까."

동생은 멋대로 그런 말을 한다.

"언니, 참 별나다."

그리고 이런 말도.

"언니, 고독하네."

물론 나는 고독하다. 그날, 병원 앞에서 만난 개만큼이나. 하지만 나는 별나지도 않고, 어린아이는 더욱이 아니다.


'나'의 애인은 '나'의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 애인은 무척 자상하다. 무척 자상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나는 그가 내 머리에서 꼭 3밀리미터 밖을 쓰다듬는 것처럼 느낀다. 내 머리칼에서 바깥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 애인은 차가 없다. 나는 그 점도 마음에 든다. …… 우리는 자유롭다. 그리고 걸어서도 어디든 갈 수 있다.


목욕을 하고, 온몸에 샤워 코롱을 듬뿍 바르고, 허브차를 마시고 있는데 애인이 왔다.

"갑자기 보고 싶어서."

애인은 그렇게 말하고 미소 짓는다. 우리는 현관에서 키스를 나눈다. 그의 입술과 코 사이의 부드러운 피부에 땀이 엷게 배어 있어, 나는 올해도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안다.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절망과 같은 웨하스 의자는 참 조그맣고 예쁘다.

절망을 문제 삼지 않는 강함과 사랑과 절망 사이에서 나오는 고독함까지, 『웨하스 의자』에 담겨 있다.


저자의 책을 전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의 책을 꽤 많이 읽어본 것 같다.

그 중에는 그녀의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복잡하지도 않은, 간결한 문체 안에 담긴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세계관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거리감이 좀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번, 쓴 서평이 있어서 줄거리는 생략했는데) 책 속 주인공인 '나'의 애인은 바로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다.

'나'라는 인물의 감정을 보면, 사랑에 빠지면 빠질수록 절망 또한 동시에 느끼곤 하는데 여기서 딱 어울리는 단어가 이것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과연 '나'라는 인물에 대해 호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마냥 예뻐보이지 않는, 그저 그들 자신에게만 아름다울 법한 사랑 이야기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득 '무한도전'에서 봤던 한 장면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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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2-07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웨하스 의자, 전에 나온 것 같았는데, 하고 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책 개정판이었네요.
새로나온 책의 표지도 괜찮은 것 같아요.
하나의 책장님이 찍은 사진도 예쁩니다.
잘읽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하나의책장 2021-12-25 00:12   좋아요 1 | URL
개정판 표지, 예쁘더라고요.
딱 ‘밤‘ 느낌이에요^^

새파랑 2021-12-07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쿠니 가오리 책 좋아하는데 이 책은 안읽어봤네요 ㅜㅜ 한 열편정도 읽은거 같은데 안읽은 책은 그보다 휠씬 많은듯 합니다 ㅎㅎ 그녀도 다작인거 같아요 😅

하나의책장 2021-12-25 00:11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님이 저보다 더 많이 읽으신 거 아닌가요? >.<
맞아요! 많은 소설을 내셨던데 전 아마 작품들 중 반은 읽었을까요ㅎ

페크pek0501 2021-12-08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짝반짝 빛나는>의 작가죠? 이 책으로 작가를 알았어요.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그런 대로 괜찮은 소설로 읽었어요. 웨하스 의자, 는 처음 보는데 표지가 멋지군요. 별점을 만점 주신 걸로 보아 좋은 작품인가 봅니다. ^^

하나의책장 2021-12-25 00:0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그 작가님!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다 좋아하진 않아요^^;
좋아하는 작품도 있는 반면에 호불호 갈릴만한 작품들도 꽤 있거든요.
그런 작품들은 잘... 손이 안 가더라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