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결괴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영화 살인의 추억 10주년을 기념으로 봉준호 감독과 출연배우들, 그리고 관객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살인의 추억은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끝까지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다시 봐도, 또 봐도 지루함이 없으면서 소름끼치는 그런 영화다. 아직까지 잡히지 않고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영화를 제작했다고 하는데, 특히 마지막에 마치 관객석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배우 송강호의 시선을 담은 장면이 바로 "너 지금 이 영화 보고있지?"라는 경고성 메시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은, 비난의 화살이 범인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아가는 여정이고, 마지막에는 가장 유력한 범인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범인이 저지른 그 흉악한 범죄보다도 '무능력한' 경찰의 뻘짓과 헛짓에 더 주목이 되는 듯했다. 진범을 잡아내려는 노력보다는 누구든 붙잡아서 무조건 자백하게 만드려는 경찰의 태도, 유일한 목격자를 늘 곁에 두고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결국 경찰들의 무능력과 무관심으로 인해 유일한 목격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기까지, 게다가 유력한 범인이 드러난 상태, 범죄가 일어날 확률이 99%인 상황에서 경찰병력은 모두 시위대 진압으로 빠져나가 결국 또 하나의 범죄를 막지 못함으로써 경찰이 정권의 허수아비일 뿐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듯 보였다. 유력한 용의자 역할에 잘생긴 훈남배우 박해일을 캐스팅한 것도 왠지 범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집중되지 않게 하려는 감독의 술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결괴』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살인의 추억과 공통점을 지녔다. 결괴 역시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그 범인보다는 범인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비난하고 있다. 경찰은 단순히 피해자 료스케의 아내인 요시에의 진술만 듣고 료스케의 형인 다카시를 처음부터 유력 용의자로 점찍고 수사를 벌인다. 살인의 추억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결괴에서는 경찰뿐 아니라 매스컴을 향해서도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는 점이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매스컴과 더불어 매스컴에 쉽게 휘둘리는 인간의 심리까지 치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악마'는 이 매스컴과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었고 이를 이용하여 자신이 목적한 바를 결국 성취할 수 있었다.





 사람은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가. 이 질문에는 어떤 대답이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이 지구상에 생명이 출현한 이후로 언제부터 사람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일까.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딘가에서는 '불행'이 반드시 있었기에 이 행복이라는 단어도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불행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인간은 행복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언제나 뜨거운 감자인 것이 바로 사형제도인데, 사형제도 반대론자들이 쉽게 공격당하는 부분이 '만약 너의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했다고 해도, 너는 그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다. 내 가족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한다..그건 무슨 짓을 해도 어떤 노력을 해도 절대로 쉽지 않은 결정이고 결단일 것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자신의 딸을 죽여 사형수로 살아가고 있는 강동원에게 먹을 것을 장만해 온 노부인이 보자기를 풀면서 손을 바들바들 떠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떨리는 손동작 하나로, 그 노부인이 강동원에 대한 분노를 삭이기까지의 긴 시간, 강동원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만들 때 가졌을 노부인의 생각, 강동원을 만나러 교도소로 오기까지의 심리상태가 모두 표현될 수 있었다. 그렇게 삭이고 삭이면서 마음을 다잡고 왔지만 결국 그 노부인은 강동원을 향해 절규했고, 강동원 역시 그 노부인의 따뜻함을 가장한 태도에 두려움을 느꼈다.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는 동정심을 품을 수도 있다. 그 살인자의 환경이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들었다면 더욱 그 마음을 갖는 것이 쉬워진다. 하지만 내 가족이라면, 용서는 타오르고 있는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다.


 다카시는 범인으로 오해받고 경찰과 매스컴의 집중공격을 받는다. 다카시의 아버지 하루오는 자살했고 어머니 가즈코도 다카시를 향한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반쯤 미쳤으며 료스케의 아내 요시에도 다카시를 멀리했다. 세상의 눈은 모두 다카시를 향해 있었다. 그것은 '진짜 악마'가 누구였는지 밝혀지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웃기는 건, 독자 역시 다카시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남겨놓고서도 다카시에게 분명 어떤 '비밀'이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못했다. 그건 어떤 기대감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쯤에서 다카시가 본모습을 드러내겠지, 실은 료스케의 죽음에 관여했겠지, 라는 그런 무서운 기대감. 그런데 그게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들었던 그 실망감은 대체 뭐였을까. 이것이 2013년 현재의 실제 상황이었다고 생각해보면, 매스컴에서는 연일 다카시를 범인으로 몰고 있고, 인터넷과 SNS에서도 다카시가 범인이다 아니다를 놓고 갑론을박에 있으며, 몇몇 네티즌들은 다카시 얼굴을 이용해서 합성사진을 만들어 유포한다.. 다카시는 이 세상을 마주하면서 또 하나의 악마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료스케를 죽이고 폭탄테러를 일으킨 진범 시노하라 유지는 언뜻 미친 사이코패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시노하라 유지는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또 다른 자아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인간 안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또 다른 자아인 악마를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사회의 규율, 규범때문이다. 타인의 물건을 훔치면 안된다,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라고 딱 정해놓은 그 규범때문에. 이렇게보면 악마는 곧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세상이 만약 죽음을 허용하고 있다면 사람을 죽이는 자를 악마라고 칭할 수 있었을까? 책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아직 초록불이 켜지지 않은 횡단보도에서 한 사람이 무단횡단을 하기 시작하면 '눈치만 보고 있던'사람들이 줄줄이 따라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그냥 건너고 싶다는 욕구가 분명히 끓어오르고 있지만 사회가 정해놓은 법때문에 그 욕구를 억누르고 있다가 한 명이, 그리고 두 명 세 명이 그 법을 파괴하기 시작하면 법을 지키고자 고집부리는 사람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되기도 한다. 그렇듯 모두의 마음 속에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어차있다. 모두의 마음 속에 시노하라 유지, 즉, 악마가 살고 있는 것이다. 시노하라 유지는 숨어있는 그 악마들을 그저 '깨우는'역할만 한 것이다. 시노하라 유지가 료스케를 납치해 살해하기 직전, 료스케에게 소리치는 대목이 있다. 그때 시노하라 유지가 료스케에게 소리치던 그 말은, 바로 료스케의 속에서 억눌려있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일기장으로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끄적이던 그 말, 시노하라 유지는 료스케의 그 일기를 보고 료스케를 악마의 후보자로 점찍었다. 도모야의 일기장을 보고 도모야 안에서 자라나고 있던 악마를 시노하라 유지가 발견하고 깨워준 것도 마찬가지었다.


시노하라 유지는 언론의 특성을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전세계의 악마들을 깨웠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꼭 그것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요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조금만 인터넷을 검색하면 찾지 못할 정보가 없다. SNS라는 것이 생겨 정보의 이동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는 세상이다. 지금같은 세상에서 시노하라 유지가 출현한다고 상상해보자.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시노하라 유지의 말대로 내가 내 손으로 피를 묻히지 않아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할 수 있는, 마치 도미노처럼, 둑이 무너져내리듯, 살인이 이루어지는 그런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하나의 균열이, 그 작은 균열의 시작이 그토록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소설 결괴는 그런 인간의 위험성을 아주 치밀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정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번역이다. 사실 1권과 2권의 번역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닐까도 의심되는데 특히 1권의 번역이 많이 심각하다. 이게 대체 무슨말이야 할 정도로, 한글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마치 번역기로 대충 돌린듯한 어색한 문장들이 꽤 많았는데 그것 때문에 여러번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다. 도저히 집중이 안됐고 과연 이게 최고의 번역은 아닐지라도 최선의 번역이었을까 하는 번역가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물론 번역의 어려움이 꽤 커서 이것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1권은 번역을 새로 수정해서 재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2권의 번역은 또 자연스러웠다. 내가 이 번역가의 서술에 익숙해져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1권과 2권의 번역자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1권이 2권정도만 되었어도 더 완벽한 작품이 될 수 있었을텐데, 그 부분이 아쉽다.


 만약, 혹시나 1권을 읽다가 번역에 지치고 질려서 이 책을 포기해버리려고 했던 독자들이 있다면 조금만 참고 계속 읽어나가길 말해주고 싶다. 2권까지 다 읽은 독자로서 이 결괴라는 소설은 정말 좋은,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번역이 아쉽지만 2권은 번역때문에 독서에 방해받는 일은 거의 없었으며 재미와 핵심도 모두 2권에 몰려있는 듯했다. 그러니 1권을 무사히(?) 완독하고 2권까지 모두 읽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