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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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중에 읽게 될 때 처음의 머리말 부분은 일단 건너 뛰고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머리말에서 작가가 이 소설의 결말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기 때문에 스포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머리말은 절대로 읽지 말길 바란다. 이 결말 내용을 미리 안다고 해서 소설의 재미를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먼저 읽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작가가 <멋진 신세계>를 발표한 후 한참 뒤에 '덧붙이는 느낌'으로 쓴 것으로,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읽는 것이 오히려 더 유익하고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독자라면, 미리 읽어도 상관없다.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아 있고 싶어요.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멋진 신세계>는 많은 작가들이 인생 소설로 꼽는 작품이다. 언젠가 작가들이 뽑은 인생소설 랭킹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 <멋진 신세계>가 상위권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독자들을 상대로 한 다양한 앙케이트 조사에서도 멋진 신세계는 항상 빠짐 없이 상위권 랭킹에 그 이름을 올리고는 하는 만큼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꾸준히 읽히고 있는 작품이다. 얼마 전 서점을 다녀왔는데 방송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넓은 코너를 이 <멋진 신세계>로만 비치해둔 것을 보고 놀랐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홀린듯 그쪽으로 발길을 향하고 있었고, 새하얀 표지에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고 몽환적인 이미지는 더욱 사람들의 시선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출판사별로 나란히 모아두어서 번역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내가 읽은 것은 안정효 번역가가 번역한 소담출판사의 <멋진 신세계>인데, 다른 출판사의 것과 처음 몇 장 부분만 비교해서 읽어본 결과 용어선택이 꽤 다른 것을 발견했다. 일단 표어부분만 놓고 보자면, 안정효의 번역은 '공동체,동일성,안정성'이고, 다른 출판사는 '공유,균등,안정'이다. 뒤의 두 단어는 유사하지만 공동체와 공유는 살짝 다른 느낌을 준다. 둘 다 '세계국'을 상징하는 용어인 것은 맞지만 공동체라는 용어에서는 개성과 자아를 몰살시키고 자는 것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하는 모든 행위를 금하는 세계국의 모습을, 공유라는 용어에서는 원하는 이성과는 누구와도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세계국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원문을 알지 못 하는 나로서는 어느 것이 더 원문에 가깝고 충실한 번역인 지 판단할 수 없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 출판사별로 몇 장씩 비교해가며 읽어보고 본인 마음에 드는 번역본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번역에 꽤나 민감한 편인데, 안정효의 번역은 막힘 없이 술술 읽혔다. 특히 초반에 체외생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전문용어도 많이 나오는 만큼 이 부분은 자칫 번역이 서툴면 굉장히 이해하기거 버거웠을 듯한데 어렵지 않게 굉장히 잘 번역해주었다.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필요성이기 때문이다. 안정. 이 모두가 다 그것 때문에 필요하다."



 <멋진 신세계>는 처음부터 우리를 '다른' 세계로 끌어들이며 강렬하게 시작한다. 이 작품의 놀라운 점은 굉장히 자세한 묘사를 곁들이고 있다는 것인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허구가 아니라 마치 진짜로 현재 존재하고 있는 기술처럼 여겨질 정도로 그 설명과 묘사가 정교하고 치밀하다. 작가가 상상하고 만들어 낸 이 멋진 신세계가, 즉 '세계국'이 어떤 세계인지를 작가는 본인의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작품 속 인물의 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소설은 부화-습성 훈련국장이 신입생들을 데리고 런던 총본부의 각 부처를 견학시키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 '생산'되고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시작하고 있는데, 독자인 우리들도 신입생이 되어서 함께 귀를 기울이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품을 수 있을 의문도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대신 질문하고 답해주고 있다. 그런데 작가도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의 핵심,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이렇듯 고도로 발전한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멋진 신세계는 그 제목만큼이나 언뜻 보면 정말로, 멋진 세계다(나는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이 작가가 직접 만들어 낸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온 것이었다. 멋진 신세계를 읽게 되는 독자들은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많은 극작품들까지도 함께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불안도 없고, 전쟁과 노사갈등으로 인한 경쟁이나 폭력도 존재하지 않으며, 원하면 언제든지 누구와도 섹스를 즐길 수 있고 마약도 허용이 된다. 인구과잉이나 저출산이라는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오락거리들도 구비가 되어 있다. 모두가 행복하며, 모든 것이 안정적인 세계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한 감정을 피할 수가 없다. 만약 지금 이러한 기술과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면 인권단체만의 항의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명 세계에 거북함을 느끼는 사람은 놀랍게도 세계국 안에서도 존재한다. 단연코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라 할 수 있을 버나드 마르크스. 유리병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자의식'을 갖고 있고 또 지켜내고자 하는 인물이다. 버나드는 레니나와의 대화에서 이 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는데, 그의 대사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결국 버나드도 소마(마약)를 복용하게 되고 '가정'과 '부모'는 불결한 것이라는 문명 세계의 의식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비판의식'만큼은 버리지 않겠다고 명심하기도 한다. 레니나는 세계국에서 개인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 가를 보여주며, 이 소설의 주요인물인 존을 통해서 세계국을 향한 비판과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는 절정에 달한다. <멋진 신세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존과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는 아주 일품이다. tvn방송 책읽어드립니다에서 설민석이 언급한 존의 그 유명한 대사는 모두 무스타파 몬드와의 대화에서 나온 것이다. 이 인물들의 인상적인 행동과 대사들을 모두 이 서평에 인용하여 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소설이 던져주는 충격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는 '직접' 읽으며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이 묘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글이 길어질 것이다. 이 서평에는 담지 못한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멋진 신세계>에서 기다리고 있다.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그 불안의 요소들을 모두 제거하면 진정으로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세계국의 알파라면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내가 엡실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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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신해철! - 그에 대한 소박한 앤솔러지
지승호 지음 / 목선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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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마음으로 기타를 손에 잡을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거죠.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행복해야지 결과의 성과라든가, 남들의 칭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에서부터 즐거운 음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나 자신이 즐겁지 않은 과정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음악은 공부할 때나 하는 거지, 그것 가지고 음악 발전이 안 된다는 거거든요.


 지금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 이 책을 읽으면서 신해철이라는 사람이 간절해졌다. 그가 쓰고 부른 노래들을 들으며, 그 어떤 시보다도 울림을 주는 노랫말을 음미하며 남몰래 울던 날도 많았지만 정작 신해철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왜 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아, 신해철!>은 신해철의 전 생애를 되돌아보는 평전까지는 아니지만, 신해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데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애, 그의 노래들을 분석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그 스스로가 이 세상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려고 했으며, 신해철이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신해철이 아주 좋아하고 신뢰하던 '인터뷰어'였다고 한다. 기자들에게 다소 냉소적인 자세를 취했다던 신해철이 마을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인터뷰어였다고 하니, 이 책의 저자 지승호 씨가 신해철에 대한 책을 써야 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그만큼 책 곳곳에서 저자의 신해철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전해졌다. 저자는 이 책이 신해철에게 보내는 손편지 같은 것이면 좋겠고 이 편지를 받고 그가 잠시라도 웃어준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는데, 신해철이라면 분명 이 책을 읽으며 흐뭇하게 웃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그에게 아주 값진,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신해철에게도 소중한 선물이 되겠지만 이 책은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선물 같은 존재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주제로 한 책이 나온다는 것 자체도 설레고 기쁠 텐데, 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만이 아닌 색다르고 다양한 콘텐츠가 담긴 책이라면 더더욱 감사하지 않을까.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책. <아, 신해철!>은 저자가 하늘로 올라가 신해철과 가상 인터뷰를 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런 것은 잘못하면 고인께 실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전부 저자 자신이 각색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신해철이 해왔던 말들을 토대로 재밌게 꾸며본 것이라는 것을 책을 읽어나가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신해철이 살아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인데, 마치 신해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인터뷰어의 책이라 신해철의 육성을 다른 책보다 많이 담아냈을 것이고 비속어까지 그대로 옮겨 놓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날것' 그대로의 신해철을 만나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신해철의 노래 몇 곡 정도만 알고 있었고, 예전에 라디오 DJ를 한 적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던 터라, 이 책의 모든 내용이 새로웠다. 그의 노래에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의 말투, 억양까지 그대로 살려낸 이 책이 굉장히 재밌고 고마웠다.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가 얼마나 멋있고 착하고 '좋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의 비속어의 사용도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립싱크가 싫다면 라이브로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박수를 쳐줘야 없어지는 것이지, 


립싱크하는 사람들을 욕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하고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그는 자신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최근에 우연히 본 <Here I stand for you> 뮤직비디오에서 노래를 열창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연예인으로서는 피하는 것이 당연했던 사회적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피력했고, 그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이 아닌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함이었다고 말한 만큼 음악 외적인 곳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그는 음악인으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대중을 향해서도 냉철한 비판을 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입발림으로 가득한 지금의 연예계에서 신해철과 같은 사람을 찾아볼 수 있을까. 무명일 때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다가도 인기를 얻고부터는 대중의 눈치를 보기 바쁜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티스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신해철은 많은 인기를 얻고 나서도 줄곧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준 유일한 사람이지 않을까. 사회의 현상을,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투정하기에 앞서 먼저 밴드인 우리가 '잘'해서 대중들이 락에 열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던 그였기에 그는 음악에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의료과실이라는 어이없는 사고로 그를 잃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신해철의 '새로운' 음악들을 들어볼 수 있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불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그라는 사람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을 빼앗기고 말았다.


제가 그렇게 사는 이유는 우리 어머니나 내 누이나 내 딸이 그런 대우를 받고 살기를 원해서죠. 


그러려면 내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거거든요.


나부터 변하고, 다음에 온 세상이 변해야 편해지는 것 아니겠어요.


 마왕, 독설가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려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마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던 지인들이나 팬들은 그의 '선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테지만 아마 나처럼 그를 무섭고, 어두침침하고,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이러한 오해, 잘못된 선입견을 해소시켜주기도 한다. 그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아무런 수입도 기대할 수 없는 선배의 음반 작업에 몇 개월을 붙들려있던 적도 있었고, 아무 인연도 없던 사람(허지웅)의 결혼식 축가를 지인(이 책의 저자)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수락하기도 했으며, 결혼식장에 대기실도 없이 뻘쭘하게 방치되어 있었지만 삑사리가 났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던 일화들이 그의 좋은 성품을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실력 있는 후배들의 음반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위축되어 있을 후배 음악인들을 응원하고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그였기에 그의 죽음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으리라. 책의 마지막은 신해철의 인터뷰 두 편을 통째로 실어 놓았는데, 여기서는 그의 정치적인 신념까지도 엿볼 수가 있다. 그는 어느 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기보다는 더 나은 세상,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꾼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지지했던 후보의 정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신해철 다운, 정말 그 다운 행보였다. 거짓 없고 가식 없는 맑고 순수한 사람. 노무현은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대통령의 모습을, 신해철은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던 연예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의 이상을 현실로 보여준 이 두 사람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과거형의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참 씁쓸하고 안타깝다. 이 책에는 그의 라이브는 형편없었다라든가, 그의 노래는 들어본 적도 없다, 좋아하는 노래도 특별히 없다는 등의 아주 다양하고 솔직한 목소리들도 담겨 있다. 제3부가 그러하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기억 속에 있는 신해철을 꺼내면서 아주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도 서슴없이 들려주고 있다. 특히 이 제 3부가 신해철에게 큰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자신의 새로운 이야기들이니까.



 신해철은 모두의 본보기다.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인으로서의 마음가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 서두에서 언젠가 '신해철 평전'을 쓰겠다며 약속하고 있다. 반드시 그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며, 신해철이라는 좋은 '사람' 한 명을 알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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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운동능력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사이먼 레일보 지음, 김지원 옮김, 이정모 감수 / 이케이북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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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상에는 아직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종을 포함하여 정말 다양한 생명들이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거치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 많은 생명체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발현되어 각자 다른 환경에서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적응하는 등의 수없는 선택의 반복을 통해 각기 다른 개성 있는 생김새와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놀랍고 신비로우며 우리를 설레게 한다.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여전히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 중이며, 그 말은 지금도 우리가 진화의 과정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진화라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과 6개월 만에도 진화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동물의 운동능력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제2장의 '잡아먹기와 먹히지 않기'에 바로 이 6개월 만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평화로운 섬에 인위적으로 포식자를 풀어놓는 연구라든가, 야생동물을 러닝머신 위에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뛰게 하는 실험이 매우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이 책은 동물의 윤리를 다루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의견은 잠시 접어두고 이러한 실험들의 결과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포식자가 거의 없어 '갈색아놀도마뱀'의 천국이라 불리던 카리브해에 한 연구팀이 육식성 도마뱀인 '말린꼬리도마뱀'을 풀어놓는 실험을 했다. 그리고 6개월 후 다시 섬을 찾아 갈색아놀도마뱀을 관찰한 결과, 그들의 다리 길이가 길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말린꼬리도마뱀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는 다리가 긴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다리가 긴 갈색아놀도마뱀들이 다리가 짧은 갈색아놀도마뱀들보다 더 많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연구팀이 6개월 후 다시 찾은 섬에서 또 한 번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다리가 짧은 갈색아놀도마뱀의 개체 수가 더 많아진 것이다. 이는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포식자로부터 달려서 도망치기보다는 나무 위로 피신하는 것이 더 안전함을 깨달았고, 좁은 나뭇가지를 기어 다니기 위해서는 긴 다리가 부적합했기 때문에 다시 짧은 다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6개월이라는 짧은 간격으로 두 번의 '선택'을 거친 갈색아놀도마뱀의 이 놀라운 사례는 자연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해준다. 


​ 제4장의 '여자와 남자'에서는 암컷을 마비 키시는 화학물질을 뿜어내 데이트 강간을 하는 수컷 사막거미, 교미를 끝낸 후 정확하게 암컷의 송곳니에 떨어져 기꺼이 암컷의 먹이가 되는 수컷 검은과부거미의 이야기 등,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제5장의 '뜨겁고 차갑고'에서도 동물들의 놀라운 운동능력에 대한 이야기들로 넘쳐 났다. 꿀벌은 자신들의 벌집에 장수말벌이 침입하면, 침입자 주위에 단체로 모여서 비행 근육을 빠르게 떨어 열기 구슬을 만든 다음 목표물인 말벌이 과열되어 죽게 만들고, 나비들은 비행 전 몸을 데우기 위해 몸을 떠는데 6분 사이에 무려 23도나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덥거나 추우면 찬물에 샤워를 하거나 뜨거운 물에 반신욕을 하듯, 동물들 역시 일광욕과 온천을 번갈아 하면서 주변 환경과 신체 온도의 변화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처한다. 이 장에서는 공룡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역시 공룡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무엇이든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공룡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선입견을 지적해주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 공룡은 2억 3000만 년 이상 존재했고, 그중 1억 3500만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다. 이런 엄청난 기간은 우리가 상상조차 하기 힘들고, 실제로 사람들은 흔히 유명한 공룡 대다수가 동시대에 살았을 거라고 추정한다. 사실 티라노사우루스와 스테고사우루스 사이에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우리 사이보다 더 긴 시간차가 존재하고, 이 말은 우리 다수가 어릴 때 상상했던 스테고사우루스와 T.렉스의 거대 공룡 간의 멋진 싸움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195p)


영화 쥐라기 공원의 영향 때문인지 당연히 그 모든 공룡들이 동시대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이 대목을 읽으면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으며, 희미하게 남아있는 화석으로만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생김새와 삶, 그리고 그들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졌다. 제6장 '모양과 형태'에서도 놀라운 동물들의 운동 능력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자기 체중의 1200배나 나가는 죽은 새를 들어 올린 아프리카베짜기개미, 초당 무려 800번 이상이나 날갯짓을 하는 모기, 토네이도의 풍속과 거의 같은 속도로 다이빙을 해서 먹이를 공격하는 치타보다 더 빠른 송골매, 에베레스트산보다 2500미터는 더 높은 고도에서 날고 있던 루펠독수리,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진화해 온 그들의 신체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놀랍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그 외 다른 모든 장에서도 동물의 이러한 놀라운 운동능력에 관한 사례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으며 동물의 운동능력과 인간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틈틈이 이야기해주고 있다. 저자는 동물의 운동능력을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체 유기체 운동력 연구는 자연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부터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술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한 사회적 이득을 준다(38p).


​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운동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유일한 강점으로는 장거리 달리기가 가능하다는 정도다. 그런데도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서서 누군가에 잡아먹힐 위험 따위 전혀 느끼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매 순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늘 주위를 견제해야만 하는 삶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 도구를 발명하고 사용하는 행위를 처음으로 시작했을 인류 조상의 누군가에게 매일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 할까. 그러나 언제 어느 순간 우리 인류를 위협하는 포식자가 이 지구상에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잠깐 봤는데 마치 미래를 예언하는 듯해서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만든 무기로도 죽일 수 없는 거대한 포식자가 나타난다면, 카리브해의 갈색아놀도마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의 신체에도 지금과는 다른 뚜렷한 변화가 일어날까. 이 책이 말해주는 것처럼 아마 분명 변화는 일어날 것이다. 어떤 식의 선택을 거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는 포식자의 유형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솔직히 이러한 상상은 하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 과학 책인 만큼 어려운 전문용어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내용 이해에 방해가 되는 수준은 아니며 책을 읽다 보면 알겠지만 저자가 유머러스한 문체를 쓰고 있어서 절대로 딱딱하기만 한 책은 아니다.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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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 동물에게서 인간 사회를 읽다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서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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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만큼 충분히 똑똑한가?" 프란스 드 발의 저서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의 부제로, 촌철살인과도 같은 이 문장을 좋아하여 자주 되새겨보고는 한다. 우리는 동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우리가 이 동물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은 하루에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동물이란 어떤 존재일까. 우리가 입고, 쓰고, 먹는 것들이 원래는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심장이 뛰었고 눈과 귀가 있었으며 우리와 똑같이 사회생활을 하고, 우정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그렇지만 대부분이 인간에 의해서 본연의 삶을 살다 가지 못하는) '살아 움직이던 생명'이었음을 자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우리가 동물에 대해 무지하다기보다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입는 옷이나 신발과 가방이, 우리가 바르는 화장품이, 우리가 먹는 맛있는 음식들이 무언가의 고통과 희생에서 왔음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죄책감은 갖고 싶지 않은, 굳이 불편한 진실들은 알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 이렇듯 불편한 진실에는 의도적인 무지를 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 지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지도 모른다. 야생 여정이라는 다큐멘터리 '문어'편에서는 문어가 얼마나 지능이 뛰어나고 모성애가 강한 동물인지 소개하는데, 흉내문어의 경우 무려 40종류의 분신술을 구사하며 조개껍데기나 사람의 신발, 커다란 돌 등과 같은 '도구'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미 문어는 알을 낳은 후 10주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포식자로부터 알을 지키는 데 사력을 다하다 마지막 새끼까지 알에서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난 후 기력이 다한 채 다른 물고기들에게 살을 뜯기며 생을 마감한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문어를 '바다의 유인원'이라 표현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는데, 우리 인간과 같이 도구를 사용하고, 우리 인간보다도 어쩌면 더 뜨거운 모성애를 자랑하는 이 문어에게 바다의 유인원이라는 칭호를 붙여준 작가의 기발한 발상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는 '고기'로 아주 친숙한 돼지의 경우 덧셈과 뺄셈을 할 줄 알고, 그림 퍼즐을 맞출 줄도 아는 등 동물들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돼지는 매우 깨끗하고 영리하여 배변 장소와 취침 장소를 정확하게 구별하며 프란스 드 발의 저서에서도 나오지만, 잠잘 때 덮을 짚을 '미리' 모아두는 등 미래를 인식하고 대비할 줄도 아는 동물이다.


 우리와 외모적으로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동물들이 이렇듯 우리 인간과 비슷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것에 아마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는 영장류뿐 아니라 돌고래, 쥐, 앵무새와 갈까마귀 등이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얼마나 지능이 뛰어난 지에 대한 연구 일화를 다양하게 소개해준다. 기억력 테스트에서 인간이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침팬지, 기절한 동료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본인들은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기절한 동료를 계속 물 위에 뜨게 했던 돌고래들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동물들의 면면들에 여러 번 놀랐고 여러 번 감동했다. 프란스 드 발이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은 동물이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나 동물이 인간과 매우 유사하며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실을 매우 두려워하며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는 동물실험연구가 실패로 끝이 나는 이유, 즉 동물은 자아인식이나 얼굴인식과 같은 능력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식으로 끝이 나는 이유는 과학자가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 중심적인 가설을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나도 이 주장에 동의한다. 인간이 동물을 '잘 알지 못한 데'에서 온 당연한 실패다. 저자가 동물의 입장으로 가설을 설정한 연구에서는 동물들이 모두 자아인식과 얼굴인식을 완벽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나는 동물쇼나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터라, 동물을 이토록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가 동물실험은 긍정하고 돌고래쇼의 돌고래들이 점프를 잘하는 이유가 본성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그의 발언에는 돌고래쇼의 돌고래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쇼에 서게 되는지를 아는 나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의문을 내비친 독자가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 걸까. 프란스 드 발의 두 번째 시리즈인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서는 동물원과 동물실험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이야기하며, 공장식 축산업이 가축 동물들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수많은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물고기와 게도 우울증과 통증을 분명히 느끼기 때문에 산 채로 끓는 물에 넣는 요리 방식에 대한 제고가 필요할 수 있다는 식의 의견을 내비치는 등 영장류학자로서는 의외이고 놀라운 행보도 보여준다. 나 역시 저자가 말하는 종보호 목적의 쾌적한 동물원과 고통 없이 즐겁게 할 수 있는 동물실험에는 부분적으로 찬성한다. 인간의 무자비한 밀렵과 사냥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영장류들(인간은 새끼를 잡기 위해 부모와 가족 모두를 죽이는 등의 잔인한 몰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킹콩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고릴라를 매우 잔혹한 동물로 묘사했지만 실제로는 아주 온화하다)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간의 무분별한 열대림 파괴로 인해 삶의 터전을 모조리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저자가 말하는 '야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환경의 동물원이 꼭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행하는 것과 같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식의 동물연구라면, 동물이 얼마나 '똑똑한 지', 동물이 얼마나 우리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지녔는지에 대해서 학계와 일반 독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줄 것이며 이것이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 변화를 가져와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이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동물이 감각성이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동물의 상황과 고통을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행동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라며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와 의무를 표명한다. 우리 역시 불편하다는 이유로 동물이 받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며, 조금씩 점진적으로라도 동물을 대하는 자세와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은 암컷 침팬지 마마의 일화에서부터 시작한다. 침팬지 무리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마마가 임종 직전,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인간학자와 포옹을 나눈 일화인데, 마치 친구를 위로하듯 학자의 목을 끌어안으며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마마의 행동은 뜨거운 감동과 눈물을 자아낸다. 마마는 저자와도 인연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지 수 년이 흘러서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저자의 얼굴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달려올 정도로 침팬지의 얼굴 인식능력과 장기기억능력이 뛰어남을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는 마마의 이러한 능력은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침팬지의 '당연한' 능력이며 이에 우리가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동물의 감정적, 정신적 능력을 얕잡아본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침팬지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뛰어나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억력 테스트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입증했으며, 여자로 변장한 남자를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성별 구별에도 뛰어나고, 인간과 동료들의 표정도 구별할 수 있다. 침팬지를 포함하여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동물들이 남의 고통을 인식하고 위로하는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이 정말 하찮게 생각하는 조그마한 쥐는 눈앞에 있는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칩을 먹는 대신 통에 갇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동료 쥐를 구출해주려고 노력했으며, 권력싸움에서 진 침팬지를 동료 침팬지들이 등을 두드려주면서 위로해주기도 하고,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보노보의 경우에는 유인원 중에서는 '유일하게' 지위가 높은 보노보가 지위가 낮은 보노보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싸움 도중 상처를 입힌 보노보가 상처를 입은 보노보를 찾아가 오랜 시간 동안 그 상처를 핥아준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가가 깜빡하고 우리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밖에서 비를 맞고 서있던 보노보들이 뒤늦게 알아차린 심리학자가 문을 열어주자 잽싸게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심리학자에게 달려와 고마움의 표시로 끌어안아주었다고 한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신체조건을 갖고 있으며 아주 유순하고 온화한 이 아름다운 생물인 보노보 역시 인간에 의해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다.


 동물에 대한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연구 일화를 들려주기 때문에 꽤 두꺼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술술 읽히는 터라 순식간에 읽게 된다. 우리는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잘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우리 인간이 듣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할 뿐, 인간 외의 모든 생물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주고받는다. 카푸친의 경우 끊임없이 동료들과 말을 주고받으며, 수컷 침팬지는 가족들이 들을 수 있도록 '다음날' 이동할 경로를 향해 우우 소리를 내는데 이는 미래를 인식하고 대비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까지 보여준다(침팬지의 미래인식과 도구사용능력은 저자의 두 저서 즉,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과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에서 여러 번 소개된다). 동료는 맛있는 포도를 보상받는데 자신은 계속 오이만 보상받고 있음을 눈치챈 원숭이가 실험을 거부하고 오이를 던져버리는 등의 투쟁을 보여주는 실험을 통해 동물들도 공정성의 개념을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보상을 자신만 독차지하는 것도 꺼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동물은 인간과 '다르게' 이기적이고 잔혹하다는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동물을 인간과 구별하는 잣대로 '자제력'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는데 이 역시 많은 실험들을 통해 동물들이 얼마나 자제력이 대단한 지가 입증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동물은 인간과 달리 자제력이 없다'라는 입장에도 더 이상 설 수 없게 되었다.


 어느 토크쇼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침팬지가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자 관객의 폭소가 터지는 장면이 나온다. 시청자들 역시 침팬지가 웃는 얼굴을 보며 함께 웃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침팬지가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은 즐거움이 아닌 '두려움'과 복종을 뜻한다고 말한다. 분명 무대 뒤에서는 침팬지의 이빨을 드러내기 위해 전류가 흐르는 막대기로 학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듯 동물쇼의 어두운 이면을 모르고 있다. 돌고래쇼의 돌고래들의 온갖 묘기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지만 그 이면에는 학살과 학대가 자행되고 있으며 이는 다른 동물들을 이용한 관광 서비스나 쇼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말하는 쾌적한 동물원이란, 사실상 거의 전무에 가까우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도축되는 날까지 오로지 고통 속에서만 살아가는 전 세계의 수많은 가축 동물들에게서 우리는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 인간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아니 오히려 우리 인간들보다 더 선한 마음씨를 보여주는 동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인간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인간은 동물을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이라며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 선을 그으려 하지만, 동물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 낸 그 잣대가 오히려 우리 인간을 향해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과《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들을 읽고 동물에 대한 생각과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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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 해학 - 본성에서 우러나는 유쾌한 웃음 미술로 보는 한국의 미의식 2
최광진 지음 / 미술문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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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학은 희극처럼 상대적 우월감에서 나오는 비웃음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서 우러나온 참다운 웃음이다. 해학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며 열린 마음으로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풍부하게 한다.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해학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해학의 정신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서장에서 해학의 의미, 그리고 해학과 똑같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풍자와 희극이 해학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 어렴풋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던 해학의 개념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동시에 해학에 대해 갖고 있었던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1장의 민속신앙, 2장의 풍속화, 3장의 민화, 그리고 마지막 4장의 현대미술까지, 여러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계속적으로 해학의 의미와 정신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외우고자 하지 않아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에는 해학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것인지를 피부에 스며들듯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미술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특징으로 여기에는 선악을 이원적 대립으로 보지 않고, 악을 포용하여 공동체적 이상을 구현하려는 한국인의 선한 마음과 해학이 담겨 있다.


 내가 이 해학이라는 것을 보다 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다른 나라 작품들과의 비교'덕분이었다. 이 책의 장점으로는 일단 올 컬러에다가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림 자료가 삽입되어 있을 정도로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일 것이고, 우리나라 작품뿐만 아니라 똑같은 주제의 다른 나라 작품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만의 해학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보다 더 정확하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작품들만 소개했다면 내가 이 정도로 완벽하게 해학을 이해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나라 작품들과의 비교가 가장 빛을 발한 곳은 역시 1장의 민속 신앙 파트다. 다른 나라의 귀면 기와나 사천왕상은 악귀를 물리친다는 그 목적에 걸맞게 아주 무시무시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그것들은 우스꽝스러운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짓고 있어 무섭기보다는 오히려 보자마자 피식하게 되고 귀엽기까지 하다. 여기서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는데 굳이 해학의 정신이 무엇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해학을 마주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감상이 그것이 곧 해학임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우리나라 예술의 해학이 지닌 위대함일 것이다. 다른 나라 작품들과의 비교는 저자가 택한 주된 전개 방식이기 때문에 1장에서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며 다른 나라 작품들과의 뚜렷한 차이를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독자들은 당연히,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나라만의 해학의 정신, 우리 민중 고유의 특성을 터득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을 민화로 볼 수 없는 것은 궁중 화가가 그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본성에 의하지 않고 권위적인 상징성과 틀에 박힌 형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학적 관점에서 민화를 규정하는 기준은 그리는 사람의 신분이 아니라 민성의 여부다. 궁중화가가 그렸더라도 민성의 자유로운 유희본능이 있으면 민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화가들과 작품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도 아주 좋았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옛 그림을 보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진짜 눈이 즐겁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민화가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지 몰랐는데, 그전에 민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지금까지 민화라는 것이 신분이 낮은 민중이 그렸다 해서 민화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가 그렸든 "자신의 본성에서 나오는 자유가 없다면 민화로 보기 어렵다"라는 점에서 또 한 번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해학의 정신이 민화 속에도 담겨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이 민속신앙으로 시작해서 현대 미술로 끝맺음을 한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사실 나처럼 미술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고 관심도 비교적 적은 사람의 경우 최근 활동 중인 작가로는 누가 있는지 알기 힘들다. 그런데 이렇듯 개성 넘치고 참신한 작가들이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웠고 반가웠으며 자랑스러웠다.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의 예술에 담고 있는 '정신'이 너무 아름다웠고 존경스러웠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 정신이 담긴 예술 작품들로 우리나라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나가주었으면 좋겠다.


 저자는 해학이 우울한 현대사회를 치유하는 백신이라 말한다. 해학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 꼭 필요한 정신이자 우리 민중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해학으로써 이미 우리가 말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실천하고 있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본받아 우리 역시 해학의 정신으로 불행을 이겨내고, 포용하며 나아가 화합에 이를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오듯, 불행이 행복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해학은 자신의 존귀함과 만물의 평등성을 자각하고 자기 본성대로 살며 불행마저도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낙천적인 미의식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자아실현과 제 빛깔을 통해 평등한 공동체 사회를 이룩하려는 한국인의 꿈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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