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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매듭일까?

스필버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절대 감추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이런 관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뮌헨>이라는 이번 영화 역시, 그런 관점이 저변에 깔려있다. 이 영화는 1972년 뮌헨 올림픽 기간 중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이 죽음을 당하고 배후는 아랍의 '검은 9월단'임이 드러난다. 이스라엘은 공적인 보복을 감행하지 못하지만(아니 실제로 감행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특수 공작원을 보낸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 특별한 임무를 맡은 인물이 11명의 제거 대상을 찾아 하나하나씩 없애가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그 과정 속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팀들이 맨 처음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다. 대화는 들리지 않고 장중한 음악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크게 웃는 그네들의 장면은 무엇인가 언발란스하게 느껴진다. 자신들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 그리고 그 임무라는 것이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과연 정의인지 살인인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을 그 장면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갈등들은 영화 중간중간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아이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오직 타겟만을 죽여야 한다는 휴머니즘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테러집단과 다르다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이들은 테러 대상과 별도로 자신들의 동료를 죽인 킬러에 대한 복수를 행하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진다. 자신들이 행한 임무가 또다른 폭력을 불러온다는 사실에 과연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회의하게 되고, 자기 자신이 살해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신이 행한 살인방법을 떠올리며 침대, 전화기, 텔레비젼을 뜯어보고도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스필버그가 나름대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려 애쓴 흔적은 중간중간 삽입되는 뮌헨 올림픽 당시의 상황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인질들을 잔인하게 죽인 테러리스트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묘사된 장면은 격앙된 음악만큼이나 애절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짠하게 느껴진다. 물론 영화 속 주인공에게 보다 많은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은 가족이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 또한 가족이다. 이들과 그들에게 있어 국가란 가족의 확장이다. 무력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려 했던 두 집단은 결국 이것이 해결책을 찾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무력은 보다 더 큰 무력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스필버그는 평화와 화해의 손을 잡지 않는 이스라엘 정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요르단 장벽 앞에서 팔레스타인 남자들 옷을 다 벗기며 검색을 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떠올린다. 탁 트인 마을 앞에서, 앞에 여자가 있든, 아이들이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 수모를 이들은 어떻게 해결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영화는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걸까? 그래서 영화는 따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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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거기서도 가족이 튀어나오는 군요. 맘이 확 바뀝니다.
미국인들의 그 '가족'타령이 넘 질리는지라....

하루살이 2006-02-13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필버그에겐 가족은 떼어낼 수 없는 분신처럼 여겨집니다.
 

 절에서 마음을 닦는다고 얘기하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표현은 마음을 쓴다, 즉 용심(用心)입니다. 용심이 곧 수행입니다.

 

전 길상사 회주 법정 스님이 12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마음 씀씀이의 중요성을 화두로 삼아 동안거 해제 법문을 했다.

안거는 일년 중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스님들이 선원에 한데 모여 수행하는 한국 불교의 전통으로, 이날은 석달 간의 겨울 안거를 마친 스님들이 산문 밖으로 나서는 날이었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15년 가까이 생활하고 있는 스님은 자신의 오두막 생활을 소개하는 것으로 법문을 시작했다.

이번 겨울에는 어느 때보다도 추워 온 개울과 폭포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도끼로 얼음을 깨도 물을 얻을 수 없어서 얼음을 녹여야 겨우 식수를 얻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우리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모진 마음을 먹게 되면 누가 무슨 얘기를 해도 듣지 않게 된다면서 마음은 물과 같아서 흘러야 자신도 살고 만나는 대상도 살리게 되지, 고여있게 되면 생명을 잃고 썩고 만다고 설했다.

스님은 나아가 내가 한 생각 일으켜서 마음을 옹졸하게 쓸 수도 있고 너그럽고 훈훈하게 쓸 수도 있다면서 내 마음이 천국을 이룰 수도 지옥을 이룰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마음을 쓰는 일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인관계를 통해서 현재의 자신을 헤아릴 수 있으며, 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가 살펴보라고 법회에 모인 대중에게 충고의 말을 던졌다.

스님은 마음이 굳어져 닫혀 있다면 오늘부터라도 다 풀어버려라. 그래야 내 인생에 새 봄을 맞이할 수 있다면서 법문을 마무리했다.                                                         (연합뉴스)

 

겨울 산행을 하면서 계곡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을 보곤 한다. 그런데 정말로 올핸 유독 그 졸졸졸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물도 흐르지 못할 때가 있구나 라고 생각해봤다. 스님은 그 멈추어진 물을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을 확장시켰다. 봄이 마음으로부터 찾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누군가 내 마음을 녹여줄 것을 기대하기 보다 스스로 녹여야 될 일임을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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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5-0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법정 스님을 참 좋아합니다.
귀한 글 잘 읽었어요.

하루살이 2006-05-2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자림 님 덕분에 마음 공부 다시 하네요. ^^
 
세계는 평평하다 - 21세기 세계 흐름에 대한 통찰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 외 옮김 / 창해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강물이 흘러흘러 폭포를 맞이한다. 그 강물에 배를 띄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폭포로 떨어지거나, 첨단 장비를 동원해 하늘 위로 솟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평평한 세계에선 모두가 하늘 위로 솟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강물은 자본주의라는 강물이요,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은 무선 통신 등의 신기술이 이루어놓은 세계화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무한 경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제하에 쓰여진 이 책은 그래서 다분히 미국적이다.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세상이 평평해질 수 있는 희망을 보고, 9월 11일 테러를 지켜보면서 또한 벽이 쌓일까 두려워 하는 저자는 강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보호주의를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를 애써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자유 경쟁에 앞서 왔고, 또 앞장 설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 거스를수 없을 것 같은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폭포가 아닌 평원으로 길을 내고 싶은 심정이다. 하늘로 나는 꿈이 아니라, 다른 물길을 터, 평원에 물을 적시겠다. 즉,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말고도, 그것의 여러가지 변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만한다면, 폭포를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서 하기로 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은 저자가 순진한 건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순진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전부 허구라면 모를까, 미국의 유명 언론인이 세계화가 가져온 부정적 통계치나 사실 관계를 무시한채, 또는 그것에 대해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폐쇄적 국가 체제나 문명의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체제만을 유일한 삶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잡설은 일단 그만두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세계가 평팡하다는 것은 다국적 기업을 통해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델 노트북을 구입할 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구매자의 손으로 들어오는지를 살펴본다면 가히 세계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동남아 공장에 주문장이 떨어지고, 주변 부품 공장서 2시간마다 필요한 부품이 공급된다. 그 부품이라는 것은 중국에 공장을 둔 인텔, 한국을 기반으로 하는 메모리칩과 보드, 대만에 공장을 갖추고 있는 모니터(?) 등등 국경을 초월한다. 완제품은 전용 항공기로 미국에 실려오고, 포장이 끝나면 UPS와 같은 택배회사가 소비자 집 앞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이 기간은 부품의 공급이 수월하면 1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평평해진 세계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10가지 동력 때문이다.

1.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의 탄생 2. 넷스케이프의 출현 3.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4. 오픈 소싱(공개된 정보들) 5. 아웃 소싱 6. 오프 쇼어링(공장의 해외 이전) 7. 공급 사슬(예, 월마트) 8. 인소싱(예, UPS의 재고관리 서비스) 9. 인포밍(개인이 공급 사슬을 구축할 수 있게 된것) 10. 스테로이드(무선 통신 신기술) 

위의 동력이 작동한 세계는 평평해졌고, 보다 평등하게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게됐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저자의 생각은 크게 두 단어로 요약되어질 수 있는데(단순화라는 함정에 빠질지라도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바로 아웃소싱과 업무의 세분화다. 일을 쪼갤수 있는데까지 쪼개고 쪼개서, 아웃 소싱 할 수 있는 것은 아웃 소싱하고,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자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분할은 소비자에게는 값싼 제품을, 노동자들은 많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창의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일을 미국인이 했으면 하고, 그 일은 이제 모두에게 열려져 있으므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희망과 용기다. 누군가가 언덕 위에 거대한 집을 짓고 살고 있다면, 나도 그 집에서 살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먹고 살아야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는 증오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증오는 바로 중동의 이슬람 문명권이 과거의 영화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으며, 현실 속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느끼는 좌절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이것이 바로 9.11의 속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평평한 세계 속으로 발을 딛지 못하는 나라들은 석유자본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며, 그들의 정치제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개발 국가들이 식랑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기반만 갖추어진다면 잉여 인력으로 교육을 통해 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먼저, 언덕 위 거대한 집부터 이야기해보자. 내가 그 곳에서 살거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 방법밖에 없는가? 다같이 그 언덕에서 살면 안된는가? 저자는 차별을 줄이는 방법 또한 평평화된 세계 속에서 논의를 통해 보다 더 빨리, 현실화된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저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것은 공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면 일리가 있다. 칼을 가지고, 도둑이 될지, 의사가 될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칼과 병자 앞에 놓인 사람에게 주어진 칼이 어떻게 쓰일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개인의 의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처한 환경 또한 무시못할 요소다. 저자는 평평한 세계가 배고픔을 면하게 해줄 것이므로, 도둑은 사라질거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이 어디 국민 1인당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어지던가?  

저자가 말한 선순환을 한번 생각해보자. 배고파 굶어 죽는 나라와 1차 농수산품 수출국의 이름이 대부분 같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수출로 이루어진 수익이 미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 다국적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일의 세분화를 통한 아웃소싱의 자유로운경쟁은 또 어떤가? 1차 2차 3차 산업으로의 변경을 한번 보자. 미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1차 산업에 보조금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보조금 덕분에 세계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농산물과 곡물 메이저는 저개발국가의 1차 산업을 유린한다. 도대체가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상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조금을 그들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서 마치 자유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이 진짜 평등하게 열려진 환경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경쟁일까?

저자가 우려한 석유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도 그렇다.  세계 에너지 소비의 40%를 쓰고 있는 미국은 선진국의 환경 기술에 유리하다는 그 교토의정서마저도 체택하고 있지 않다. 석유로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메이저 오일 컴퍼니가 어느 나라에서 돈을 벌어먹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웃 소싱으로 나뉘어진 일자리에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발상 또한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아웃 소싱의 단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다 높은 단계를 차지하기 위해 아마도 미국은 엄청난 보조금을 투입할 것이다. 또는 경제적 압박으로 표준화를 이끌지도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 본것인데, 비디오가 맨 처음 나온 시절, VHS 형식과 베타 캠 형식에서 그 질적 측면에서 베타 캠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의 기술이라는 것 때문에, 세계 표준화로 VHS를 택한 것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지상파 DMB에 목숨을 걸고 전략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세계 표준화에 한발 앞서겠다는 생각일터인데, 그것 또한 미국과 호흡을 딱딱 맞추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HD표준 방식을 미국식으로 채택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진짜로 열린 세계, 평평한 세계에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일자리들이 플러스적 생산을 가져온다면 모를까 대부분 제로섬의 결과임을 생각해보면, 아웃소싱 덕분에 웃는 사람들 한편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쪽이 생길 것이다. 바로 1차 산업이 곡물 메이저의 볼모로 잡혀있는 나라들처럼 말이다. 아웃 소싱의 마지막 단계가 누구의 볼모로 잡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나마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좋은 것이라 여겨질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라다르크라는 마을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보면 알 수있다. )

일단 갖추어진 막강한 힘을 순순히 포기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9.11은 이슬람 문명권의 자격지심보다도 오히려 미국의 끝없는 욕망때문이다. 열려진 세계에선, 누구나 다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가능하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라이트 급이 헤비급을 싸워 이긴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하늘의 별이야 운 좋으면 딸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헤비급이 핸디캡 없이 라이트급과 싸운다는 것은 폭력이다. 자유 경쟁은 실은 폭력의 권장이다.

그 논조나, 전제가 어찌 돼었든, 세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음이 있다면, 그리고 그나마 평평화된 세계가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전쟁의 억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세계가 서로 평평해 얽히고 설켜 있을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한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게 평평한 세계는 평평한 세계를 돌리는 태엽의 일부도 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부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기엔,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미 달콤한 돈에 취해 있으므로.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전쟁이 경제와 연관되기는 하나, 그것이 꼭 필수인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평평화된 세계를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얼르고 있는 무한경쟁 속에 감추어진 힘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될듯 싶다. 그리고 꼭 무한 경쟁만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평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만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토대 또한 탄탄히 다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세계가 진정 평평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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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일지 짐작은 했는데 역시나 이런 책이었군요.
리뷰를 보면서 열이 슬슬 오르고...이거 베스트셀러라는데 이 책보고 다들 감동하시면 어쩌나...

하루살이 2006-02-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편에서 보니까 이렇게 생각한거고, 나름대로 세계의 흐름이나, 깨우침을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무 분개하진 마세요^^.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테니까요...
 

오대산 비로봉 정상에서

2주전 태백산 눈꽃을 보러 갔다가 맑은 하늘만 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번주 화, 수요일쯤 영동지방에 눈이 많이 내렸다는 소식에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다.

11년전 나무바닥에 침낭으로 몸을 감싼채 차디찬 겨울밤을 보냈던 오대산 산장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았다.

산은 그대로인듯 한데 역시 사람의 손길이 머무는 곳은 세월의 흐름을 비껴가지 않는다.

산장은 현대식 건물로 바뀌었고, 대신 방은 뜨끈뜨끈했다.

산장지기 할아버지는 요금도 대답하지 않고, 냅다 방으로 안내했다.

오호, 이런. 아무래도 불안한걸. 민박을 할까 생각하다 추억을 떠올리며 오긴 했는데...

같이 간 동료와 술한잔 먹을 생각으로 막걸리 한통과 감자칩을 사들었다.

아저씨(혹은 할아버지) 왈 그럼 방값까지 한꺼번에 계산하지, 그래.

얼큰히 취해있던 산장지기를 상대로 흥정에 들어갔다.

음, 조그만 방 한칸에 3만 5천원이라~~

아무래도 조금 비싸다. 막걸리 덕에 그냥 합쳐서 3만원을 불렀다.

아저씨, 그래 그럼 그거 먹고 다시 올라오지마. 귀찮으니까.

음, 그렇다고 안 올라오겠는가?

한통은 허전하다. 다시 한통을 사러 올라갔는데 어허, 아저씨 완전히 취해 드러누워 계신다.

계산은 뭐, 내일 아침에 하지.

아침, 역시 아직 깨어나지 않으신 관계로 돈만 테이블에 올려놓고 산을 올랐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데, 온도계를 보니 영하 20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오히려 산속은 덜 춥다. 바람만 불지 않는다면.

체온이 얼마나 따뜻한지를,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발생시키는지를

온 몸으로 깨닫는다.  


 

비로봉과 장군봉 사이 뒤로

                                                                                      눈에 싸인 산맥이 탄성을 자아냈다. 

 

비로봉까지 올라가는 길, 25센티 쌓였다는 눈은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길은 눈으로 쌓였지만 눈꽃은 보기 힘들다.

단지 겨울산임을 비로봉의 칼바람이 말해줄 뿐이다.

잠깐의 실망, 그러나 장군봉으로 향하는 길,

칼바람이 계속 불어대는 속에서 눈꽃은 하얗게 피어 있었다.

세찬 바람 속에서 피어난 하얀 꽃들.

바람이 낳은 꽃을 보며 기분마저 새하애진다.


비로봉과 장군봉 사이 주목 군락지

 

한발 한발 능선을 따라 장군봉을 올랐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지 않았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상하기도 힘들다.

누군가 남겨놓은 그 발자국위로 발길을 옮긴다.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어'라는 싯구가 생각난다.

발자국이 나지 않는 곳에 한번 발을 옮겨본다.

정강이까지 쑥 빠진다.

음~ 눈이 쌓인 후 첫 발을 내딛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게 이 길을 갔을꼬.

 

하산길, 임도인듯한 길이라 다소 심심했다.

                                                       하지만 트래킹의 재미 또한 솔솔하다.

 

 

내려오는 길, 임도로만 5킬로미터.

다소 지루할 거라 생각했지만 고요한 산 속에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훌쩍이다.

중간에 만난 스님들은 온통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밀짚모자를 쓰신 스님은 거의 날아다니신다.

바로 이게 축지법?

 

산채 정식. 우와 배 터진다

 

상원사로 내려와 잠시 절을 둘러본다.

사람들로 조금 북적였지만 그래도 고즈넉한 기운이 감돈다.

산사는 평온하다.

매표소 쪽으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산채정식을 시켰더니, 오우, 이건 상다리 부러지겠다.

싸이를 닮은 아저씨가 싱글싱글 음식을 가져다주신다.

저걸 어떻게 다 먹지. 거기에다 동동주까지 시켰으니.

결국 다 먹는건 포기했다.

음, 이건 나의 뼈아픈 실패?다.

고소한 나물향에 취해, 차가운 바람에 날려, 세상을 다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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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분류하자면 사회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연금제도나 보험제도의 허점을 노린 범죄와, 소위 피라미드(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다른 이미지의 비슷한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궂이 이 용어를 쓴다 )라고 불리는 강압적인 판매방식, 마약과 관련된 사건 등등이 소설의 주된 소재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독자의 선입견을 깨뜨리는 반전때문에 이 소설을 기억해야 할 듯 싶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리뷰를 쓰는 것이 무척 어렵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다시 앞장을 들춰보는 경험을 하게되지 않을까 싶다. 속았다, 라는 생각보다는 무슨 이런 엉터리가 있어, 라는 생각으로 기어코 그 증거를 찾아보겠다고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완벽하게 독자를 속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간 중간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고, 한두장면 정도 번역이 이상하다 싶게 느껴지는 어색한 부분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번역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후, 비로소 왜 그부분이 어색하게 느껴졌는지를 깨닫게 된다.

책이 이렇게 거의 완벽한 반전을 이루어낸 것은 독자의 선입견 덕분이다. 책은 구체적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책에 나타난 조그만 단서를 가지고 스스로 이미지를 구상한다. 그 구상은 순전히 선입견 때문으로, 그 선입견이 얼마나 확고부동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당혹감이 삶의 깨우침으로 다가선다.

아, 나이 들어감이 이렇게 설렐수가 있다니...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노년기라는 금언이 이처럼 다가온 경우도 없다. 젊음이 최고였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삶은 보다 풍족해진다. 미래는 현재를 담보로 아름다워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미래만큼이라도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소설은 노년을 예찬하고, 나는 담보된 현재로부터 해방을 꿈꾼다. 예찬된 노년은 오히려 얼마나 우리가 현재를 잃고 살아가는지를 일깨워주기도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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