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시청하다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인 다니엘이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았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반성과 치유의 상징으로 베를린 도심 한복판에 조성된 공간이다. 직접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느끼게 되는 공포감, 고립감, 불안감 등등을 통해 학살당한 유대인에 대한 공감과 위로, 반성과 치유를 체감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 말은 우리가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남긴다. "요즘 독일 젊은이들은 왜 자신들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하느지를 모르겠다고 한다. 자신들은 전혀 이 학살과 관련이 없는데" 대략 이런 뜻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사건이 세대를 거쳐가면서 그 기억을 갇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 갈 때, 그 사건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그리고 전달받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과거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런 사건들을 잊히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추모 공간일 것이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또한 이런 측면에서 조성된 공간이기도 할 터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어질 뿐, 자신의 할아버지조차 겪어보지 못한 일로 젊은이들이 죄책감을 가져야 할 것인지는 충분히 가져볼 수 있는 의문일 수도 있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은 바로 이 부분을 다룬다. <진격의 거인>은 과거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탄압과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복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되풀이 되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 복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다니엘이 말한 것처럼, 과거 역사 속의 탄압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이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선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탄압과 전쟁과 무관했던 일반인과 그들의 후손에게까지 우리가 분노의 화살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해 보인다. 가해자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국가와 정부의 사과와 과거의 일이 잊혀지지 않도록 추모하는 일은 마땅히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책무가 역사 속에 휩쓸려 갔던 일반인들의 후손에게까지 강요되어질 수 있을까. 


우리가 잘못된 과거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은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무리 과거와 무관한 젊은이들이라도 역사를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 역사를 잊게 만들지 않는 작업은 국가와 정부의 몫일 것이다. 다만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는 이 역사를 기억하되, 죄책감 대신 평화를 향한 도전의식이 싹트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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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시리즈 15부작. 25년 9월 12일 오픈. 김고은, 박지현 주연. 절친과의 절교. 그리고 죽음에의 동행을 통한 우정의 완성. 죽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 존엄사를 생각해보다. 


2. 은중과 상연은 초중고 시절 베프다. 가난했지만 따듯한 심성으로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은중. 집도 부자고 똑똑한데다 못하는 것이 없지만 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상연. 둘은 같은 반이던 학창 시절, 자습 시간에 떠든다는 이유로 선생님 대신 상연이 매를 들고 은중의 손바닥을 내리치는 사건을 맞는다. 친구를 때렸다고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은 상연이 은중에게 피리를 주고 앙갚음 하라고 하지만, 은중은 이게 회초리보다 더 아프다며 복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이 사건이 <은중과 상연>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은중의 상연에 대한 동경, 상연의 은중에 대한 질투는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이 둘의 관계를 뒤흔든다. 동경과 질투가 어떻게 다른지를 은중과 상연을 통해 배우게 된다. 


3. 은중과 상연을 맡은 아역배우는 물론 성인 배우인 김고은, 박지현 까지 모두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가 결국 남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에 빠져 있는 동안은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스며든다. 그런데 <은중과 상연>은 '그래,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수시로 자각을 하면서도, 두 주인공의 마음을 한시도 빠지지 않고 헤아리게 만든다. 극의 초반부인 1부에서 5,6부까지는 은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중반부에서는 오히려 상연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하지만 시리즈의 후반부로 가면 다시 은중의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든다. 이렇듯 두 주인공의 마음을 왔가갔다 하면서 시리즈의 종반부 울음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다. 


# 스포일러가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

4. 상연은 말기암으로 수명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는 존엄사를 택하고, 스위스로 떠날 결심을 한다. 절교했던 은중을 찾아 함께 떠나줄 것을 부탁한다. 은중은 처음엔 거부했지만, 상연과의 추억을 더듬다 결국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 2회는 존엄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5. 따지고 보면 결국 작가는 존엄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연의 입을 통해, 그리고 시리즈를 통해 죽음의 두 가지 기존 방식을 보여준다. 상연의 오빠와 상연의 어머니가 죽었던 극과 극의 방식. 하지만 상연은 이제 존엄사라는 새로운 방식의 죽음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새로운 죽음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만큼의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6. <은중과 상연>은 두 주인공의 삶의 과정을 큰 과장 없이 잔잔하게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삶의 나열과 함께 둘이 좋아했던 한 남자라는 상투적 삼각관계 등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상연의 오빠의 죽음이 왜 발생했는지를 추적한다거나, 상연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를 밝혀가는 추리적 과정이 삽입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점도 좋다.   


7. <은중과 상연>을 통해 우리가 마주친 함께 먹는 따듯한 밥 한 끼, 언제든 안길 수 있는 가슴 깊은 포옹이 우리가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게 만드는 따스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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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영화 <야당> 25년 4월 16일 개봉. 8월 6일 익스텐디드 컷 개봉. 330만 관객. 청불. 123분. 빠른 편집의 흐름에 자연스레 호흡을 맞추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식상하지도 않은. 인터넷 라이브 방송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는 세상. 


2. 마약을 하는 놈과 마약 하는 놈을 잡는 놈. 그리고 이 둘을 엮어주는 놈. 마약판의 세 부류 중 둘을 엮어주는 놈을 야당이라 부른다. 영화 속에서는 강하늘이 맡은 강수가 야당으로 나온다. 대리운전을 하다 억울하게 마약범으로 몰린 강수가 구관희(유해진 분) 검사를 만나 야당으로 활약한다. 구 검사의 힘을 배경으로 강수는 전국구 야당으로 떠오르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아들이 마약범으로 잡히면서 오히려 구 검사로부터 팽을 당한다. 구 검사는 유력 대선 후보 아들을 징검다리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이를 위해 대선 후보 아들의 마약 건과 관련되었던 야당, 형사, 배우를 패대기 친다. 구 검사에게 당한 이 3인은 복수로 똘똘 뭉쳐 구 검사와 대선 후보 아들, 마약범을 무너뜨릴 작전을 짠다. 


3. 마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이로, 실제 영화처럼 마약판이 돌아가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점점 마약이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마약을 억제하는 힘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약이 영화 속에 나오는 이미지처럼 힘을 과시하는 수단- 힘 있는 자들은 마약범으로 잡히지도 않고, 설령 잡히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는 식-이 된다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다 싶다. 힘 있는 자들만이 마약을 추구할 수 있다면 널리 퍼져나가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문제는 나도 모르게 마약에 휩쓸리는 경우다. 마약인지 모른채 신경안정제인 양 소비하는 것을 비롯해 현실을 잊고 싶은 이들을 위로하는 약이 되어버린다면 마약을 단속하고, 제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4. 영화 <야당>에서의 빌런은 구 검사다. 그리고 구 검사는 현실을 대변하듯 "검사가 대통령도 만들고, 대통령에서 내려오게도 할 수 있다"는 엄포를 뿜어낸다. 검사가 가지고 있는 기소와 수사라는 막강한 힘에 더해, 언론을 도구로 삼을 수 있는 덕분이다. 이제 검사청이 사라지면 이런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검사는 역사 속으로 남겨질까. 영화 속에서 조차도 이런 빌런 검사를 만나볼 수 없는 세상이 올까. 


5. 구 검사가 대선 후보와 그의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언론이다. 가짜뉴스와 거짓 증거를 통해 언론플레이를 해서 대중의 관심과 여론을 호도한다. 영화 <야당>에서는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선택했다. 이제 기존의 레거시 언론으로 고착되는 언론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언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다. 과연 영화 <야당>처럼 판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어느 정도나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6. 최근 네팔에서 26개의 SNS를 정부가 차단하자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190명의 젊은이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인터넷 매체를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어떠한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수 있겠다. 영화 속 <야당>에서는 거대 권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덤비게 만드는 힘은 복수심이었다. 현실 속에서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권력 앞에 목숨을 내놓고 대항하는 힘의 원동력이 되는 듯하다. 인간은 억눌리면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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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침 저녁으로 공기가 선선해지고 있다. 아직 한낮의 햇볕은 여전히 강렬하다 못해 따갑게 느껴질 정도이지만, 가을이 찾아오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한여름 내내 묘목에 해가 될까봐 씌워놓은 차광막을 거둘 때가 왔다. 무더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간 묘목들도 있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낸 것들이 대견스럽다.



이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을테니 뜨거운 햇볕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잘 하면 10그루 정도의 묘목이 건강하게 잘 살아남을 듯하다. 올해 죽은 나무가 이 정도이니 겨우 보식을 할 수 있을 정도인 셈이다. 뭐, 이렇게라도 블루베리 수가 줄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려나. ^^


올해 묘목을 구입해 심어놓았던 20그루는 절반 정도 살아남은 듯하다. 환경의 문제인지, 관리의 문제인지.... 더 세심한 관찰과 재배기법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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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범죄도시> 2,3,4편은 연속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트리플 천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범죄도시>는 마동석이 제작과 기획을 맡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기획력이 이후 계속될지 관심사다. 

그 와중에 영화가 아닌 TV로 복귀해 주연 및 각본, 제작에 뛰어든 드라마가 있다. 바로 <트웰브>다. 동양의 12지신을 모티브로 해서 인간을 지키기 위해 인간 세상에서 인간처럼 살아가는 12지신이 악마와 싸운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시청률은 처참하다. 그래도 괜찮겠지 하며 4회까지 지켜보다 5,6회는 설렁설렁 보게 됐다. 이제 고작 2회를 남겨뒀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생각은 나지 않는다. 

너무나 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에 캐릭터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마저도 식상하다. 게다가 가장 기대가 됐던 액션 장면은 돈을 들이지 않겠다는 티를 팍팍 내는 듯하다. 마동석의 주먹은 더 이상 통쾌함을 주지 못하고, 12지신의 액션은 드라마를 찍고 있다기 보다는 액션스쿨에서 합을 맞추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어설프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사마귀:살인자의 외출>은 2017년 프랑스 드라마 <사마귀>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잘 짜여진 원작에 변영주 감독과 고현정 주연은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2회를 보고 나서 이 드라마를 계속 보아야 할 지 갈등이 생긴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증을 증폭해야 하는데, 이야기의 전개와는 상관없이 배우들의 연기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것 같아 집중이 힘들다. 배우 각자는 열연과 호연을 펼치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이들의 연기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서로 각자 연기를 따로 하는 것처럼 느껴져 몰입이 어렵다. 그냥 원작이나 찾아볼까 하는 마음이 크다. 드라마의 요소로서 이야기 이외에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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