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시리즈 15부작. 25년 9월 12일 오픈. 김고은, 박지현 주연. 절친과의 절교. 그리고 죽음에의 동행을 통한 우정의 완성. 죽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 존엄사를 생각해보다.
2. 은중과 상연은 초중고 시절 베프다. 가난했지만 따듯한 심성으로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은중. 집도 부자고 똑똑한데다 못하는 것이 없지만 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상연. 둘은 같은 반이던 학창 시절, 자습 시간에 떠든다는 이유로 선생님 대신 상연이 매를 들고 은중의 손바닥을 내리치는 사건을 맞는다. 친구를 때렸다고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은 상연이 은중에게 피리를 주고 앙갚음 하라고 하지만, 은중은 이게 회초리보다 더 아프다며 복수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이 사건이 <은중과 상연>을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은중의 상연에 대한 동경, 상연의 은중에 대한 질투는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될 때까지 이 둘의 관계를 뒤흔든다. 동경과 질투가 어떻게 다른지를 은중과 상연을 통해 배우게 된다.
3. 은중과 상연을 맡은 아역배우는 물론 성인 배우인 김고은, 박지현 까지 모두 완벽에 가까운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가 결국 남의 이야기이지만, 그것에 빠져 있는 동안은 남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스며든다. 그런데 <은중과 상연>은 '그래,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수시로 자각을 하면서도, 두 주인공의 마음을 한시도 빠지지 않고 헤아리게 만든다. 극의 초반부인 1부에서 5,6부까지는 은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중반부에서는 오히려 상연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하지만 시리즈의 후반부로 가면 다시 은중의 마음 속에 깊이 스며든다. 이렇듯 두 주인공의 마음을 왔가갔다 하면서 시리즈의 종반부 울음을 터뜨릴 준비를 마친다.
# 스포일러가 아니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
4. 상연은 말기암으로 수명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는 존엄사를 택하고, 스위스로 떠날 결심을 한다. 절교했던 은중을 찾아 함께 떠나줄 것을 부탁한다. 은중은 처음엔 거부했지만, 상연과의 추억을 더듬다 결국 동행하기로 결심한다. 마지막 2회는 존엄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5. 따지고 보면 결국 작가는 존엄사를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상연의 입을 통해, 그리고 시리즈를 통해 죽음의 두 가지 기존 방식을 보여준다. 상연의 오빠와 상연의 어머니가 죽었던 극과 극의 방식. 하지만 상연은 이제 존엄사라는 새로운 방식의 죽음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새로운 죽음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만큼의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음을 보여준다.
6. <은중과 상연>은 두 주인공의 삶의 과정을 큰 과장 없이 잔잔하게 보여준다. 두 주인공의 삶의 나열과 함께 둘이 좋아했던 한 남자라는 상투적 삼각관계 등이 지루할 법도 하지만, 상연의 오빠의 죽음이 왜 발생했는지를 추적한다거나, 상연의 첫사랑이 누구였는지를 밝혀가는 추리적 과정이 삽입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점도 좋다.
7. <은중과 상연>을 통해 우리가 마주친 함께 먹는 따듯한 밥 한 끼, 언제든 안길 수 있는 가슴 깊은 포옹이 우리가 이 세상을 버티고 살아가게 만드는 따스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