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노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현실에 울분을 토하고 있을즈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대학 동창생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군요. 오늘 야근이지만 두말않고 조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밤차를 타고 포항이라는 먼 곳으로 말이죠.
동창생인 그녀는 저에게 절실한 친구는 아닙니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아이로 그녀의 형편을 조금 알고 있을뿐입니다. 그 조금 아는 사실이 저의 몸뚱아리를 그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혼을 한 상태이지요. 아버지는 일본에 가 계시고, 어머니는 경상도 상주에서도 산골 깊숙한 곳에서 혼자 목축을 하고 계셨죠. 10년전쯤 얘들끼리 모여 MT 비슷하게 그곳으로 놀러 간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비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달려가시는 아주머니의 운전솜씨에 흠뻑 반하기도 했었습니다. 여장부 같았죠.
그녀에겐 오빠가 한명 있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인 오빠는 97년도에 돌아가셨죠. 아마 그녀의 어머니는 이때부터 조금씩 무너지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2001년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위암이라는 것이 그래도 생존률이 높은 편입니다. 저의 사무실에서도 위를 절개하고 살아계시는 분이 두분이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주머니는 수술을 거부하셨습니다. 내가 수술을 하지않고 담배를 자유롭게 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고집으로 인해 병원에서 쫓겨나시고 나서 수술이 아닌 호스피스 개념의 치료를 행하시는 의사를 찾게 됐습니다. 환자의 편안함을 중시하는 그 의사를 신뢰하고 자신의 몸을 모두 맡기신거죠. 하지만 그런 의사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의 병원에서 좌천당해 포항으로 내려가게 됐지요. 아주머니는 그 의사를 따라 포항으로 내려오셨답니다. 당신과 의사는 단순히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 그 이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주머니는 어느날 딸에게 이런 말을 하더랩니다.
"얘야, 삶이 지겹다"
그 말을 내뱉은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딸의 심정은요?
몸이 저릿해옵니다. 발인을 꼭 보고 화장한 아주머니의 유골이 상주집에 앉히는 것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일요일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또 밤차를 타고 이렇게 서울로 올라와서 글을 써봅니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져 는군요) 저는 밤차 속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라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펐지만 제 머릿속에는 '지겹다'라는 말이 계속 맴돌더군요. 그리고 갑자기 저의 20년 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삶을 지겨워할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신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숙연해집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살고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삶은 그렇게 애착이 가는 그 무엇일겝니다. 그런데 그 애착을 아무런 미련없이 끊어버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죽음 앞에서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녀는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피가 그녀에게 흐르는 모양입니다.
집착하진 않더라도 지겨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용기있더라도 친구처럼 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 힘을 갖고 있으면 절대 비굴하게 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편안히 가소서. 그리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평화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