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의 우주 - 질병부터 성격까지 좌우하는 미생물의 힘 테드북스 TED Books 4
롭 나이트.브랜던 불러 지음, 강병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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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결정적 원인, 근거를 찾고자 하죠. 아마도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그 결정적 요소에 쓰고 싶어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이번엔 사람의 건강, 성격 등을 미생물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하네요. 과연 결정적으로? 그래도 우리가 미생물과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말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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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하트우드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김경미 옮김, 배그램 이바툴린 그림 / 비룡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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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는 것은 사랑받지 못해서겠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득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외로움을 느낄까요. 사랑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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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농장의 퇴비더미에 굼벵이가 나타났다. 굼벵이는 부엽토나 썩은 나무 등을 먹고 배설을 하는데 이것이 천연 비료가 된다. 음식물 찌꺼기를 지렁이에게 먹이고 얻을 수 있는 배변토가 비료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야말로 천연의 무공해 퇴비인 셈이다.

그런데 이 굼벵이들이 땅 속에서 자라면 그야말로 골칫거리 해충이 되어버린다. 나무나 농작물의 뿌리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똑같은 굼벵이 이지만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굼벵이는 그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적절한 곳에 쓰여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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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

 

드라마, 가족2015.12.17.128분  일본  12세 관람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세 자매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다른 곳에서 살고 있던 아버지의 부고가 날아왔다. 세 자매는 장례식에 참석해서 그들의 배다른 여동생을 만난다. 여동생은 아버지를 잃고 의붓어머니와 살게되는 처지에 놓였다. 세 자매는 여동생을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 네 자매가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소재로 나오는 것 중에 하나가 매화나무다. 자매들의 집 정원에서 자라는 매화를 보며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손길이 가야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말 정말 무척이나 손이 많이 간다. 작은 텃밭이라 하더라도 농사를 짓다보면 이래저래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것들과는 이렇게 손이 가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손을 타서는 안 된다. 손이 가는 것은 긍정의 힘이다. 손을 타는 것은 부정의 힘이다. 관심이 어리고 사랑이 넘치는 손이 가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넘치면 손을 타게 된다. 손이 가야 하는 대상이 스스로 해야 하는 몫이 있는 것이다. 이 몫을 빼앗을 정도로 손이 가면 손을 탄다. 아이도 작물도 손을 타면 시들시들해진다.

반대로 아예 손이 가지 않은 방치 상태는 상대를 제멋대로 만든다. 제멋에 사는 거야 괜찮지만 제멋대로 구는 것은 상대를 힘들게 만든다. 제멋이 참 멋이 되려면 제멋대로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는 멋스러움을 갖추어야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는 따듯한 손길을 가지고 각자 제멋을 가지면서도 멋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손을 타지도 제멋대로 굴지도 않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에서 만나는듯하다. 세상이 어찌 손을 타지 않고 제멋대로 굴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내가 손길을 뻗친 그 대상들이 이 네 자매처럼 절로 손이 가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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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다보면 움찔움찔할 때가 있다. 왕복 2차선 도로에서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반대편 차 때문이다. 인도가 없어 도로 가장자리를 걸어가는 어르신들을 피하기 위해서, 또는 자전거나 경운기,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가장자리가 패이거나 울퉁불퉁해 이걸 피하려 할 때도 중앙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아니라 무작정 중앙선을 넘어서 달려오는 차들도 있다. 중앙선을 넘었다 차선을 지켰다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차들이 다가오면 이쪽에선 도로 끝자락까지 피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차선을 지키겠다고, 내가 옳다고 고집하고 나아가다간 충돌할 게 뻔하다.

 

도로에서뿐만이 아니다.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가족 관계에서조차 나는 올바르게, 정당하게 내 차선을 지키며 끝까지 내 길을 고집하겠다고 주장하다가는 필시 사고가 난다.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오는 경우 피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잠시 피해간다고 내 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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