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뇌 - 뇌의 새로운 이해 그리고 인류와 기계 지능의 미래
제프 호킨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이데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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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다른 동물 또는 생명체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와 주장은 숱하다.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주장에서부터 신의 영역에 근접한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까지 그 스펙트럼도 크다. 

이 책 <천 개의 뇌>는 인간의 특징을 뇌의 신피질로 보았다. 인간만이 유독 신피질이 발달되었으며, 이로 인해 지금과 같은 문명과 과학, 지식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생명의 기원을 찾고, 지구의 크기를 알며, 우주의 원리를 탐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두 가지 선택의 길에 처했다고 주장한다. 적자생존과 경쟁, 유전자의 전달이라는 오래된 뇌의 길과, 지능과 창조성의 확산이라는 신피질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갈등과 문제는 대부분 오래된 뇌의 영향 때문으로 본다. 눈앞에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치자. 건강을 위해서는 한 두 스푼 먹고 멈추어야 하지만, 대부분 허겁지겁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 오래된 뇌의 생존 전략 때문이다. 새로운 뇌의 이성은 가끔 오래된 뇌의 본능에 잠식된다. 이 위험성은 인류 전체를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다. 핵무기 버튼을 누른다거나, 기후 위기를 앞에 두고도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줄이지 않는 생활양식을 계속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명의 발달이 자칫 소수의 누군가의 잘못된(본능적) 판단으로 인류 전체 또는 지구 전체를 궤멸시킬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류가 오래된 뇌에 휘둘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뇌(신피질)는 계속해서 인류 또는 지구, 생명의 공존과 행복을 합리적으로 지향한다. 오래된 뇌가 생존할 수 있었던 진화의 길은 방향과 목표가 없다. 그저 살아남은 것들이 살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피질은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고, 그 방법을 찾아 실현시킬 수 있다. 




저자인 제프 호킨스는 인류가 미래에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존지를 찾고-지구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를 대비해 화성과 같은 행성 등-, 그곳에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기계(로봇)를 활용해 척박한 환경을 최적의 환경으로 바꾸고, 그 변화가 완전하지 못할 때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통해 인류를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종으로 변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가히 자연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급진적 주장으로 느껴질 정도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도 그럴 것이 제프 호킨스가 생각하는 자연이란 것은 맹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이상으로 삼는 사람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대신 진화의 결과로 지금의 인류가 갖게 된 새로운 뇌의 합리성을 극대화 해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방향과 목표를 정해 가자는 것이 그의 주장으로 보여진다. 


제프 호킨스가 <천 개의 뇌>에서 말하는 이야기는 자연과 순리를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이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반면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이성을 옹호하는 이들에겐 환호할 만한 미래 예측이라 할 만하다. 찬반을 떠나 그의 주장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주고, 창의적인 생각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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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레이]는 [프레데터]의 프리퀼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의외로 디즈니+에서 만나볼 수 있다.

 

디즈니에서도 19금 액션영화를 만드는 구나. 첫번째 놀라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액션 연출에 두 번 놀라고

그럼에도 여전사의 성장기라는 디즈니적 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번 놀란다. 


[프레이]는 우주선에서 외계 생명체(프레데터) 1명이 스텔스 기능으로 아메리카에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지막 결투에선 함정을 만들고 늪을 활용하며, 재래식 무기로 상대와 겨룬다. 마치 1987년 첫 [프레데터] 영화를 오마주하는 듯 여겨진다. 



다만 달라진 것은 1987년 첫 [프레데터] 영화는 중남미를 배경으로 근육 투성이의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주인공이라면 [프레이는] 아메리카를 배경으로 300년 전 코만치 부족의 소녀전사가 주인공이라는 것이다.즉 외계 생명체 사냥꾼 프레데터를 대적하는 주인공이 근육의 성인 남자에서 원주민 부족의 소녀로 바뀐 것이다. 다분히 디즈니적인 설정이다. 그리고 부족으로부터 아직 어린 여전사이기에 인정받지 못하던 주인공 나루가 주위의 냉대와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치 [뮬란]과 [모아나]처럼 말이다. 


이런 디즈니적 설정을 이해하고 영화의 액션을 즐긴다면 꽤나 즐겁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초반 토끼도 사냥하지 못하던 나루가 어떻게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외계 사냥꾼 프레데터를 대적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  이런 전제하에 영화를 본다면 곰과의 싸움을 포함해 몇몇 액션 장면이 기억에 남을만큼 잘 연출된 것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다. 게다가 중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소중한 사냥감이던 버팔로를 무자비하게 대량학살한 백인들의 모습 등을 통해 나루가 코만치 부족에게 이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한다는 말의 무게가 육중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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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 [6번 칸]은 핀란드, 러시아, 독일, 에스토니아 등의 합작 영화다. 감독 유호 쿠오스마넨은 마치 박찬욱 감독처럼 칸이 사랑하는 감독인 듯하다. 2016년 데뷔작인 <올리 마키 생애 가장 행복한 날>로 주목할 만한 시선 상을 수상한 이후 두번째 작품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으니 말이다. 영화 [6번 칸]은 핀란드의 여류작가 Rosa Liksom이 2011년에 발표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6번 칸]은 마치 <비포 선라이즈>의 북유럽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비포 선라이즈>가 사랑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화사한 반면, <6번 칸>은 사랑일지 알 수 없는 따스한 감정과 한겨울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차가움이 교차하고 있어 닮은 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기차가 가지고 있는 낭만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 [6번 칸]은 러시아에서 학업을 마치게 된 핀란드 유학생 라우라가 자신의 동성 연인이자 룸메이트가 꿈꾸었던 무르만스크의 고대 암각화를 보러 떠나는 여행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원래 룸메이트와 함께 하려던 여행은 룸메이트가 갑자기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면서 라우라 혼자서 무르만스크행 기차를 타게 된다. 라우라는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기에 그 주위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싶어 하지만, 어쩐지 잘 섞이질 못한다. 실제 이번 여행은 암각화를 본다는 목적보다는 그의 연인과 함께라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암각화를 보는 게 목적이었던 연인은 여행을 취소하고, 라우라만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무르만스크행 기차의 6번 칸에 동행을 하게 된 러시아 노동자 료하가 그녀와의 첫 대면에서 매춘녀 취급하자, 당장 여행을 취소하려 했다. 하지만 연인과의 통화에서 연인은 라우라에게 무심하고, 오직 암각화 여행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만을 말한다. 연인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라우라. 연인과의 인연은 이미 끊어져가고 있는 것 같지만 라우라는 그 사실을 일부러 직시하지 않는 것 같다. 라우라는 료하와의 만남이 싫어 좌석을 바꿔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결국 료하와 무르만스키까지 동행하여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점차 라우라와 료하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순수한 끌림으로 다가간다. 라우라는 여행이 끝나갈 무렵 료하에게 키스를 하고, 주소를 교환하고 싶어하지만, 료하는 어쩐 일인지 키스도 주소 교환도 거부한 채 떠나버린다. 하지만 라우라가 날씨로 인해 암각화를 볼 수 없게 되자, 료하는 헌신적으로 암각화를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암각화 여행을 함께 한다. 암각화는 실제 보잘것 없었지만, 그 둘의 인연은 암각화보다 더 오래 지속될 듯하다. 암각화를 보고 난 후 거센 눈보라 속에서 둘이 함께 눈 속을 뒹구는 모습은 마치 영화 [러브 스토리]를 연상시킨다.

  

이 둘의 감정이 [비포 선라이즈]나 [러브 스토리]처럼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차칸이 주는 좁은 공간에서 낯선 이와의 만남이 불편함에서 끌림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흥미롭다. 어찌보면 지적 허영심과 외로움에 갇혀 있던 라우라가 거칠지만 순박한 료하를 만나며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기분을 묘하게 푸근하게 만든다. 특히 료하의 헌신적인 순박함은 우리가 무엇에 끌리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도록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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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의 단편을 잘 보여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가 끝났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과 밀착해 그림으로써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준 감동의 드라마였다. 


새롭게 시작된 드라마들은 대부분 현실 속 일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물론 그런 배경과 사건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상의 감동에 취했던 시기가 지나자 이번엔 극적 재미가 그리웠나 보다. 최근 시작한 드라마 중 [인사이더]와 [환혼]이 눈길을 끈다. 이 두 드라마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던 플롯을 가져왔다. 



[인사이더]는 사법연수원생이 교도소로 잠입해 수사하던 중 일이 어긋나면서 할머니를 잃고 신분이 잊혀지는 신세가 된 후, 이 난관을 극복하면서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액션 서스펜스극이다. 이 이야기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떠올리게 한다. 억울한 감옥살이, 감옥 안에서 만나게 된 스승, 탈출 후 복수라는 플롯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환혼]은 영혼을 바꾸는 환혼술로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린 살수와 기문이 막혀 무술을 익힐 수 없었던 주인공이 사제가 되면서 벌어지는 판타지 로맨스 활극이다. 20세기 무협소설의 대명사인 김용 작가의 플롯을 연상시킨다. [사조영웅전]을 비롯한 김용의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에 만나는 정통(?) 무협 드라마에 반할 듯하다.  


장마와 이후 이어질 무더위를 두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로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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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엔 두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jtbc에서는 <나의 해방일지>가 tvN에서는 <우리들의 블루스>가 기다려진다. 



<나의 해방일지>는 단어가 머리 속에서 맴돈다. 

도대체 평상시에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정말 단 한 번이라도 써봤을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글로 표현됐을 때는 자연스럽지만 말로 드러날 때는 어색해지는 단어들이다. 소위 입말로 쓰지 않는 단어가 입말로 쓰이면서 뇌리에 박히며,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 첫 번째 단어는 '추앙'이다. 맨 처음 이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는 정말 검색사이트를 찾아서 추앙이라는 단어를 치고 그 뜻을 되새김질했을 정도였다. 사랑이 아니라 추앙! 이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추앙받고 싶어진다.

두 번째 단어는 '해방'이다. 일본 치하에서 해방됐을 때의 그 해방 말고 일상적인 말로써 해방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낸 적이 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어딘가에 묶여져 있다는 것을. 그래서 해방을 꿈꾼다는 것을.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래가 입 안에서 흥얼거린다.

한수와 은희의 첫사랑과 돈에 얽힌 줄타기는 다소 힘이 약해 보였지만, 영주와 현의 임신으로 인한 인권과 호식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강렬하다. 사건으로 기억되는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야기는 이 사건들 사이로 흐르는 노래가 감정을 출렁이게 만든다. 김연지의  '위스키 온 더 락' 부터 시작해 10센티의 '포 러브'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타고 흐르는 OST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는 슬로건이 노래를 통해 우리의 마음 속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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