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에 이어 [범죄도시3]도 천만 관객을 넘었다. 요즘 같은 OTT 홍수 속에서 영화관에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범죄도시] 시리즈는 연속해서 천만 관객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나름 [범죄도시]의 성공을 분석해보면 시리즈 1의 성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700만 관객 조금 못 미치는 스코어였지만, 장첸과 위성락이라는 빌런 만큼은 확실히 각인된 영화였다. 2와 3편의 빌런은 안타깝게도 1편의 빌런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객몰이에 성공한 것은 마 형사의 주먹 한 방이 주는 통쾌함과 불쑥 불쑥 터지는 웃음 덕분이라 보여진다. 


그런데 이 통쾌함과 웃음이 4편 이후에도 천만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솔직히 3편을 보면서 4편 이후의 행보에 의문이 든다. 3편에서 보여지는 마 형사의 주먹 액션은 이제 카메라 위치를 통한 트릭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 형사에게 맞고 쓰러지는 빌런은 스턴트맨이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채게 된다. 액션이 주는 통쾌함에 집중하지 못하고 트릭에 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뭐,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그나마 불쑥 터지는 웃음은 여전히 마 형사의 매력으로 남지만, 과연 이것 만으로 관객을 붙잡을 수 있을지는 의심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어떨까. 1편에서는 조선족 조직폭력배들이 두목 장첸을 중심으로 부산, 창원을 거쳐 서울까지 점령하고, 각종 지저분한 짓을 다 저지른다. 악랄하기가 그지없어 관객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인다. 2편에서는 무대를 베트남으로 옮긴다. 강해상(손석구)이라는 빌런이 등장하는데, 납치와 살인을 밥 먹듯이 한다. 아마도 장첸보다 더 악랄한 빌런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도였을테지만, 그 행위의 잔혹성에 비해 강렬함은 다소 떨어진다. 3편은 신종 마약사건을 소재로 나쁜 경찰 주성철(이준혁)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기존의 빌런에 약아빠진 머리까지 첨가한 막강 빌런으로 보이지만, 마 형사와의 싸움에서 보여지듯 다소 맥이 빠지기도 한다. 다만 일본 야쿠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얼개가 살~짝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범죄도시]의 매력은 유쾌, 상쾌, 통쾌함에 있다. 중간 중간 터지는 유머의 유쾌함과 상쾌함, 빌런을 주먹 한 방으로 잠재우는 통쾌함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영화를 매력적이게 만든다. 복잡한 플롯이 숨어 있거나, 반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 명쾌하다. 그런데 이 단순 명쾌함이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계속 매력적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마 형사는 과연 단순 명쾌함으로 계속 승부를 걸 것인지, 아니면 진화를 할 것인지, 4편이 꽤 궁금해진다. 제작자이기도 한 마동석은 8편까지 계획하고 있다는데, [범죄도시4]가 이 긴 행보의 갈림길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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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나 귀신, 좀비를 소재로 하는 영화를 찾아 볼 정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때론 악마나 좀비를 바라보는 시선의 신선함, 해석의 재미가 있는 영화들은 꽤 즐기는 편이다. 


영화 <엑소시스트;더 바티칸>은 실제 유명 구마사제인 가브리엘 아모르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상상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게다가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러셀 크로우라고 하니 관심이 갈 수밖에. 그리고 영화는 그 관심만큼 꽤 재미있다. 


** 스포일러 주의

구마사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악마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가 있다는 것은 세계 역사 속에서 악마가 저지른 사건들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영화 <엑소시스트;더 바티칸>은 이런 관점에서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해석한다. 또한 바티칸에서 벌어졌던 성추행과 같은 추악한 사건들도 살짝 다루고 지나간다. 


우리가 빙의라고 부르는 현상은 일종의 정신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우리의 세계를 100%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고,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대부분은 아직도 (서양)의학으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설명되어지지 않는 어둠의 부분을 우리는 악마나 외계 생명체 등등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로 풀어내곤 한다. 아직 해명 되어지지 않는 부분이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다만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에 대한 나름의 대처법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어떻게든 현상을 해석해내고,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니까 말이다. 


구마사제 가브리엘 또한 빙의라 의심되는 사람들을 만나 진단을 내리는데, 98% 정도는 의술이나 심리적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나머지 2% 정도를 구마사제가 필요한 일이라 여기며 활동해 왔다. 이런 부분이 꽤 합리적이라 여겨진다. 과학과 의술이 담당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도대체 악마는 왜 사람에 빙의를 하는 걸까. 영화는 구마사제의 활약상과 함께 악마의 존재 이유에 대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악마는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즐긴다"(?)는 구절이, 영화적 상상력과 더해져 꽤 힘을 얻는 듯하다. 인간의 죄책감과 악마의 유혹 등, 생각보다 영화적 재미가 쏠쏠하다.   

사족

영화적 재미와 별개로, 악마나 귀신의 존재 유무를 증명하는데 힘을 쏟기 보다는 공자님 말씀 "사람을 섬기는 것도 다하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는 것을 논하는가?"처럼 살아있는 생명을 섬기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구마의식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고통받는 생명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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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6부작 <택배기사>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가 불모지가 되고 한반도에도 소수만이 살아남았다. 물과 공기가 부족해진 곳에서, 코어지역, 특별구역, 일반구역, 난민구역으로 사람들이 나뉘어 거주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기계를 통해 지역별로 산소의 공급이 차등을 이룬다. 한 번 나뉘어진 구역별 거주자 계층은 세습된다. 택배기사는 국민들에게 물과 산소 등의 생필품을 건네주는 역할을 한다. 택배물류와 산소 공급을 담당하는 것은 대기업 천명이다. 천명의 회장 아들인 류석(송승헌)은 난민들을 제거하고, 한정적 자원을 소수의 계층이 나눠쓰도록 세상을 재편하고, 그 재편된 세상의 중심에 천명이 있게 하기 위해 권력과 폭력을 사용한다. 택배기사 5-8(김우빈)은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한 혁명을 꿈꾼다. 


드라마의 설정과 전개에서의 과학적 진실과 오류는 따지지 말자. SF의 말뜻 그대로의 과학적 상상력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적 상상력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즐겨보자. 


영화 <기생충>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콘텐츠의 주제는 '빈부격차'다. 자유경쟁시장의 결과는 이 격차를 자꾸만 키워가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경쟁은 '나도 저 위에 서겠다'는 욕망을 부추기며 동력을 얻고,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격차의 간격이 커지면 커질 수록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해 '저 위에 서겠다'는 욕망이 불가능해지고, 모든 것을 갈아엎겠다는 분노가 폭발할 지 모른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는 이런 임계점에 대한 예리한 예측 또는 생활 곳곳에 알아채지도 못할만큼 자연스레 스며있는 차별의 흔적을 찾아낸다.   


[택배기사]는 빈부격차의 대상을 산소로 만들어 바로 생명과 직결되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우리가 가장 기다리는 사람' 1위로 꼽는 택배기사가 정말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구성했다. 거기에 더해 [헝거게임]류의 택배기사 선발전을 집어넣는 영리함까지. 그야말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성할 모든 요소를 갖춘 것이다. 그럼에도 [택배기사]를 보는 내내 다음화가 기다려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티를 팍팍 내는 CG나 다소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액션의 스케일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가 설정하고 있는 구역의 차별과 새로운 이주계획에 대한 설득력의 부족이라 여겨진다. 드라마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류석의 매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냥 나쁜 놈, 악당이 아니라, 악당일 수밖에 없는 이유나, 다른 시선으로 봤을 때는 악당이 아닐 수도 있는 다층적 얼굴을 가졌다면 훨씬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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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117분 넷플릭스 감독 김태준 출연 천우희 임시완 김희원


스마트폰을 주운 자가 스파이웨어를 설치한 후 주인에게 되돌려 준 후 주인의 일상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주인공인 나미(천우희)도 스마트폰을 되돌려받고 나서 일상을 잃어버리고 목숨마저 위협받는다.


1. 나는 정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 이후, 나를 규정하는 일은 꽤나 철학스러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나는 철학으로 정의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로 구성되어진다. 그리고 그 정보는 스마트폰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즉 '스마트폰이 나'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인트로에서 스마트폰으로 현대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현란한 화면과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매개된 생활은 스마트폰이 사라지면 위기를 맞게 된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나미는 스마트폰을 주운 준영(임시완)으로부터 스마트폰을 되돌려 받지만, 그 안에는 스파이웨어가 깔려 있다. 나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게 된 준영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나미의 주변 사람들을 나미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원격 조정을 통해 나미가 잠든 사이 나미인 척 타인을 헐뜯는 말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오해를 받게 만든 것이다. 이 오해의 파장을 꽤나 거세다.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모두 뭉개버릴만큼.


2. 나는 믿는다

사람들은 사람의 말보다 미디어 속 말을 쉽게 믿는다. 미디어 속에서 가치 판단 없이 퍼 날라지는 정보는 사람의 주목을 끌고 믿음을 준다. 사람은 거짓말 하지만 기계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착각도 한 몫 한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은 생각만큼 견고하지 않다. 준영의 이간질에 나미는 베프마저 잃는다. 스마트폰의 분실과 그 주인의 연쇄적인 죽음을 수사하던 형사 지만(김희원)은 지금까지 획득한 정보로 범인이 가출한 아들이지 않을까 의심한다. 그리고 이 의심은 파고 없이 잔잔하게 범인의 행각을 뒤따르던 영화의 흐름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 재미(?)를 가져온다.  


3. 도대체 왜?

그나저나 준영은 왜 연쇄살인이라는 행각을 벌인 것일까. 나미의 물음에 준영은 "스마트폰을 주었으니까"라는 답을 한다. 이 말은 "지금 너는 너 자신을 잃어버린거야, 아니 너를 버린거야."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당연히 너는 없어져도 무방한 것이라는 의미일지도. 


나의 정보를 가득 담고 있는 스마트폰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보고 스마트폰을 절대 잃어버리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스마트폰이 나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소셜미디어 속 나를 가꾸고 만들어가는데 너무 많은 애를 써서도 안되겠다. 나는 미디어 속 정보로만 구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 더 많은 행동으로 구성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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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0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며칠 전에 봤어요
책보다 더 무서웠던..ㅠ
후덜덜하더군요
그걸 보고도 현실은 폰으로 웬만한 일은 다 해결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네요

하루살이 2023-03-07 16:55   좋아요 0 | URL
은하수 님, 정말 무서운 설정이었죠?
아무래도 편리함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보니....
그것이 가져올 부작용을 무시할 정도로 우린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으니까요.
 


드라마, 뮤지컬, 120분, 감독 윤제균 출연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안중근 의사가 단지동맹을 맺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재판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뮤지컬 영화. 


1. 안중근의 노래

익히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의 활약상. 왼손 네번째 손가락을 자르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시간이 흘러 이윽고 하얼빈 역에서 방아쇠를 당기고, 범죄자가 아닌 전쟁포로임을 주장하며 당당하게 재판을 받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내용을 어떻게 담아낼지가 영화의 관건이었을 터다. <국제시장>으로 잘 알려진 윤제균 감독답게 안중근의 모습을 근엄하고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풀어서 담아내고 있다. 초기 <두사부일체>와 <색즉시공>을 연출한 감독답게 드라마 중간에 코믹적 요소도 감칠맛 나게 사용한다. 또한 뮤지컬 영화답게 노래를 통해 감정의 파고를 치솟게 만든다. 장면 전환도 세련됐다. 다만 이야기나 관점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  


2. 설희의 노래

영화 [영웅]은 완벽한 논픽션이 아니다. 가상의 인물들도 등장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김고은이 연기한 설희라는 역이다. 명성황후를 모시던 궁녀로 시해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며 복수를 다짐한다. 이윽고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를 살해하기 위한 게이샤가 된다. 하지만 직접적인 복수에는 실패하고, 이토가 하얼빈에 간다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명성황후>와 <안중근>을 잇는 가교가 되는 인물이지만, 홀로 일본에 있다보니 다른 인물들과 섞이지 못하는 모양새. 그럼에도 김고은의 노래 실력에는 새삼 감탄하게 된다. [영웅]속 넘버 중 극이 끝나고 나서도 맴돌 정도의 중독성 있는 넘버는 개인적으론 없다고 보여지지만, 영화 속에서 꽤나 몰입하게 되는 넘버들은 대부분 김고은이 부르는 곡이다. 


3. 만인의 노래

영화 [영웅]은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이 한 사람의 거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염원과 노력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도 상기시킨다. [영웅]은 한 개인의 영웅적 활약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뜻을 함께 한 동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안중근의 고뇌와 용기는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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