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성현이라는 학자기 쓴 <용재총화> 권3에는 '기우자 이행이란 사람이 물맛을 잘 구별할 줄 알았는데 그는 충주의 달천수를 제일로 삼고 한강의 우중수(牛重水)를 두번째로,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를 세번째로 꼽았다'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이 물을 잘 살펴보면 모두 같은 줄기라 할 수 있다. 속리산에서 시작된 물이 괴산을 거쳐 충주, 양평으로 흘러 서울로 가는 한강이 되기 때문이다. 속리산에서 시작할 땐 청천, 괴산을 지나갈 땐 괴강, 충주를 거칠땐 달천이 되었다 양평으로 가면서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갖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 마포나루에서 충청북도의 내륙 괴산의 목도까지 황포돛배로 소금을 내다 팔던 물줄기이기도 하다. 보통 6~7일이 걸렸다고 하는데, 현재 목도에서는 백중날이면 소금배 거래 모습을 재현하는 잔치를 연다. ]

 

괴강이 충주로 넘어가는 물줄기인 달천은 동강마냥 휘돌아가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팔봉마을이 있다. 400년이 넘는 팔봉서원이 위치한 곳으로, 달천 너머 두룽산의 봉우리가 여덟게 보여 팔봉이라고 한다. 이 달천의 물이 조선제일의 맛이라 했으니, 달천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으련만....

 

두룽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팔봉마을에서는 병풍같은 절벽과 정자, 전망대를 볼 수 있다. 또한 캠핑과 글램핑을 할 수 있는 곳도 갖춰져 있어, 자연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팔봉마을 반대편 쪽으로 수주팔봉과 두룽산을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풍경포인트라 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는 초입에서 불과 300미터 정도. 정자와 출렁다리를 건너 10분 정도만 걸으면 깔딱고개라 할 수 있는 계단이 나온다.

 

 

이곳에 오르면 왼쪽으로 전망대가, 오른쪽으로 두룽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

 

전망대에서 출렁다리쪽을 바라보자면 꼭 우리나라의 모습을 닮은 지형으로 둘러싸인 작은 못이 보인다. 또한 팔봉서원을 중심으로 해서 팔봉마을 전경과 휘돌아 흘러가는 달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459미터인 두룽산 정상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날도 더운데다 워낙 운동을 하지 않은터라 무리라 생각하고 하산했다. 주차장이 별도로 없다는 점이 흠이다. 차를 도로변에 세워두고 움직여야 하는데, 지자체에서 주차장과 같은 편의시설을 갖춰주면 좋을 듯하다. 물론 산을 오르는 길이 아닌 반대편의 캠핑장과 글램핑장이 있어 난개발이 우려가 되지만, 적절한 규모의 주차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다소 위험할 수 있겠다 싶다.   

 

아기자기한 규모의 수주팔봉은 마음을 한적하게 만들어준다. 압도하지 않는 풍경이 편안하다. 머리를 비우기에 좋을 정도의 여유로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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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연사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 각연사

 

 

초겨울 낙엽이 다 지고 매마른 가지가 드러날 때쯤엔 세상이 허허하다.

이때쯤 하얀 눈을 이마에서부터 지고 있는 겨울산에 자주 오르곤했다. 산 정상에서 찬 바람을 맞으면 허허한 기운도 사라졌다. 산을 오르며 흘린 땀방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종아리 근육도 찢어지고, 몸 상태도 좋지않아 산에 오르는 것은 어렵다.

대신 겨울 산사를 찾았다. 산에 오를 때면 거의 대부분 어김없이 들리는 곳 중 하나도 산사였다.

 

 

잠깐 짬을 내 들른 곳은 충북 괴산 칠성면에 위치한 각연사다. 신라 법흥왕 시절 지어졌다고 하니 1,500년은 거뜬한 천년고찰인 셈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보물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모셔져 있다.

 

실제 부처의 가르침은 기복에 있지 않을터인데, 연약한 인간은 항상 소망을 품는다. 욕망과 탐욕을 경계해야 할 곳에서, 그 타오르는 마음이 돌 하나에 동전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렇게 돌을 쌓고 동전을 놓아 오히려 그 마음을 두고 갈 수 있다면 다행일 일이다.

 

 

스님들의 일상이 묻어 있는 공간이 정갈하다. 장독대와 빨랫줄, 저장고가 사람의 흔적을 느끼게 만든다. 이 모두 수행의 공간일 터이다.

 

 

대웅전과 비로전 앞이 고즈넉하다. 겨울 오후 햇살이 산 정상에 걸려 겨우 넘어온다. 해는 스스로 뜨고 진다. 아무런 욕심도 없이.

 

 

각연사의 연은 연못을 말한다. 까마귀가 원래 절을 지으려했던 터에서 공사중 나온 톱밥을 물어다 연못에 떨어뜨렸는데, 그 속에 불상이 있어, 그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절을 지은 곳이 각연사라는 전설이 있다. 이 불상에 절을 하며 소원을 빌면 잘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실상 불교와는 상관없는 기복의 힘이 민초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전설때문일까.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앞 쪽엔 연못을 새로 만들어 풍취를 더했다. 각연사 비로자나불은 보물 제433호인데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있는 점이 높게 평가되는듯하다.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이후 현현한 모습이라고 한다. 사진처럼 엄지를 주먹 안에 넣고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왼손검지와 오른손 엄지가 맞닿은 형태를 하고 있는 불상은 모두 비로자나불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가 바로 부처이자 그 모습이 비로자나불이니, 비로자나불은 세상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니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비로전은 실제론 지금 여기 서 있는 나의 모습이 바로 비로자나불의 모습이 되도록 수행에 정진할 것임을 맹세하는 장소였지 않을까 싶다. 복을 비는 자리가 아니라....

 

어쨌든 불상은 꽤나 호화롭다. 특히 광배는 화려하기가 이를데 없다. 광배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불상을 조각한 조각가의 조심스러움과 정성이 느껴진다.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알아채는 길 속에 비로자나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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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맘때면 전국 어디를 가나 울긋불긋 단풍들로 반짝인다. 이불 밖이 위험하다고 집에 콕 박혀있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감성이 묻어나는 가을 여행, 딸내미와 함께 오랜만에 경기도 양평을 찾았다.

양평하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두물머리를 비롯해, 연꽃들이 가득한 세미원, 두물머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운길산의 수종사, 110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 여운형과 이항로 기념관 등등 가볼 곳이 많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을에 감성을 자극하며 첫사랑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드는 소나기 마을의 황순원문학관을 다녀왔다.

 

 

황순원 문학관 건물의 전체 모습은 소나기에 등장하는 수숫단 움집의 모형을 떠서 지었다고 한다.

 

황순원 작가의 고향은 평양에서 가까운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그런데, 황순원 문학관이 왜 양평에 있는걸까? 혹시 소설 속에서 양평을 배경으로 한 것이 있어서일까.

1953년 발표된 소설 <소나기> 중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라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양평에 황순원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이 생기게 되었다.

황순원 문학관에는 황순원 작가의 연혁과 서재, 훈장,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안에는 황순원 작가의 연혁과 유품, 훈장, 서재,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 눈길을 끈 것은 평생동안 썼다는 면도기. 그분의 청렴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잘 정돈된 서재는 글쓰는 공간이 갖는 매력을 뿜어낸다.

이외에도 문학관 안에서는 작품의 배경을 재현한 전시 공간과 '소나기'를 비롯해 황순원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 관람관, 소나기 체험을 위한 우산 만들기와 터널북 만들기나 소원편지 등등의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소나기 마을에서는 매시 정각마다 소나기를 맞아볼 수 있는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황순원 문학관을 둘러보는 것은 아이들에겐 조금 따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준비된 것이 바로 소나기 체험. 광장에서 매 시 정각마다 분수가 쏟아져 소나기를 맞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햇빛이 내리쪼일 때는 무지개도 볼 수 있다. 동그런 구에 달린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는 모두 4군데 인데 아이들이 이 분수를 찾아 쫓아다니는 모습은 마냥 신난다. 소나기의 아련한 첫사랑이야 어른들의 마음에 있고, 아이들에겐 소나기의 유쾌한 물장난이 좋을 뿐이다.

 

소나기 마을을 둘러싼 숲길을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엔 소나기 마을을 둘러싼 숲길을 걷는 것도 좋겠다. 10~15분 정도의 산책길에서 황순원 작가의 작품 속 글귀를 만나고, 또 소설 속 조형물도 마주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을 숲길이 주는 낭만적인 모습이 걸음을 느릿느릿하게 만든다.

소나기를 모티브로 한 조각같은데..어째 서양아이들 모습같아 낯설어 보인다 ㅜㅜ;

 

아이가 체험에 빠져 있는 동안 소설 '소나기' 속 아련하고 애틋한 첫사랑을 떠올리며 소나기 마을을 거닐어본다. 두근두근 대던 가슴, 죽을 때 꼭 함께 옷을 묻어달래던 잔망스럽던 아이의 그 마음을 언제부터 어디에다 혹여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가을 단풍은 이제 마음에도 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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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고 있는 핑크뮬리. 벼과식물로 억새를 닮았는데 핑크색이다보니 화려하다.

각 지자체마다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핑크뮬리 정원을 조성해놓은 곳이 많다.

 

오랜만에 휴일에 딸내미와 핑크뮬리를 찾아 김천으로 떠났다. 그런데 언론홍보는 많이 해 놓았으면서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어디로 가야할지 안내판 하나조차 마련해 놓지 않았다. 김천 시내를 관통하는 직지천. 자동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강변으로 무조건 고!고! 안내판도 없이 과감하게 들어갔는데 차들이 막혀 말이 아니다. 일단 초입에 주차해놓고 한참을 걸어가보니 강변공원 맞은편쪽에 핑크빛 물결이 출렁인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휴~

 

 

한창때가 살짝 지난모습이라 그런지 멀리서 보면 그다지 화려해보이지 않느다. 아마도 키가 크지 않다보니 원경에서 내뿜는 힘이 약해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핑크색 물결이 화려하게 다가온다. 눈으로 보기엔 그럭저럭. 그런데 카메라만 들이대면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요즘 여행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지는 컨셉. SNS에 자랑하기 딱 좋은 풍경을 제공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행지로서의 매력이 다소 떨어진다. 주위 체험공간이나 편의시설이 없어 사진 몇 장 찍고 끝! 핑크뮬리 정원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이 휴식삼아 둘러볼만하지만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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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의 산행은 트레킹으로 결정헀다. 한켤레 뿐인 등산화를 빨았는데 아직 덜 마른 탓에 운동화로 갈만한 코스를 선택했다. 제천 청풍호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자드락길. 그 중 괴곡성벽길을 걷기로 했다. 자드락이란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을 의미한다. 일종의 둘레길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또 날씨가 받쳐주질 않는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조금 나쁨'이란다. 아무래도 한국의 봄은 미세먼지와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질 모양이다. 쾌청한 날 산에 오른다면 가히 축복이라 할만하다.

 

괴곡성벽길의 출발점은 옥순대교에서부터다.

가은산 맞은편의 옥순봉 쉼터에 주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코스가 시작하는 길 맞은편에도 주차장이 있다. 옥순봉 쉼터에서 주차하면 옥순대교를 걸어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걷는걸 좋아한다면 일부러라도 다리를 건너는 것도 좋을 성 싶다. 옥순봉 쉼터 맞은편에 나 있는 가은산 등산로로 2분만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가히 수묵화라고 할 만하다.

 

동양의 그림이 왜 수묵화가 주가 됐는지는 그 풍경을 보면 이해가 갈법하다.

 

옥순대교를 건너면 바로 자드락길로 접어든다.

잠깐 길을 오르면 그때부터 청풍호를 오른쪽에 끼고 계속 걷게 된다. 방금 지나온 옥순대교도 눈앞에 펼쳐진다.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흙길이다. 봄에 풀어진 흙들이 부드럽다. 맨발로 걷는듯할 정도로 얇은 바닥의 신발을 신은 덕분에 흙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급경사는 거의 없고 완만한 길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그런데 잠깐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에 성벽이 있는걸까. 능선 중간쯤에 가보니 그 궁금증이 풀렸다. 실제로 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이 괴곡의 능선이 삼국시대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을 때 성벽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예전 전쟁터가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휴양지가 되다니, 역사도 삶도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렇게 흙길로만 50여분을 가면 '사진찍기 좋은 장소'라는 곳에 도달한다.  

솟대들이 환영하는 그곳에 서면 금수산과 청풍호, 가은산, 옥순대교가 한눈에 펼쳐져 있다. 아, 미세먼지만 없다면...

이곳에서 다시 2,3분만 걸으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높이 12미터. 군인들이 레펠훈련을 하는,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미터와 불과 1미터 차이가 나는 전망대는 조금도 무섭지 않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조금 전의 사진 찍기 좋은 장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반대편 모습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왔던 길을 10분 정도 다시 돌아가 앞으로 가야할 다불암으로 향하는 길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다불암으로 향하는 길은 아쉽게도 시멘트다. 이 길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농로로 이용하는 길이다. 간혹 찾는 사람들이야 흙길이 좋겠지만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겐 시멘트는 아마도 오랜 숙원이었을게다.

이길로 접어든지 10분이 채 되지않았을때 주막이 나타났다. 동동주와 파전 등을 파는 이 주막에서 한 잔 하고 싶지만 사람이 많아 지나친다.

주막 옆에선 아저씨가 장작을 팬다.

사진을 찍어서일까. 낯선 사람을 많이 봤을법한데 개가 요란하게도 짖어댄다. 주인의 호통에도 멈출줄 모른다. 이노~옴. 그만 짖어라.

주막을 뒤로하고 30여분쯤 걸으면 다불암 입구에 다다른다.

다불암엔 작은 불상들이 놓여있다. 그런데 이게 많다고 다불암이라고 한다면 좀 과장된 느낌이다. 역시나, 알고보니 이곳 두무산에 불상처럼 보이는 돌들이 많아서 붙여진 다불리에 암자가 뒤늦게 들어선 것이었다.

사람들의 염원, 소망도 이렇게 한가득일 것이다. 암자 위쪽으론 산신각이 있다. 그 안에 놓여진 공물이 대부분 술이다. 오다가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이 가져다 놓은 것들일 것이다. 바람없이 왔다가 수중에 있는 것을 내놓다보니 술이었을게다. 부처님도 곡주는 마다하지 않으실터다.

술병엔 바람없는 소망이 가득하다. 이런 소망들이 좋다.

 

산신각을 뒤로하고 오르면 이제서야 산에 오르는가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독수리봉과 형제봉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또한번 사진찍기 좋은 장소가 나타난다. 이곳은 월전 장우성이라는 동양화가와 얽힌 풍수이야기가 있다. 화필봉이 보이는 이 자리로 묘를 이전한 덕에 유명한 화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 때문일까. 두무산을 내려가는 길목에서 묘들을 본다. 우리의 자생 풍수는 음택이 아닌 양택을 중시했다는데... 아무리 좋은 묘자리라 해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은 이유다. 음택은 현세 후손의 위세를 뽐내는 모양새로 변모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길을 돌아내려오면 미륵부처를 만난다. 왼쪽과 정면, 오른쪽에서 보는 모양이 다르다고 하는데 별 차이를 못 느끼겠다.

두무산을 10분 정도 내려오면 아직 지어지지 않은 다불암의 대웅보전 현판을 마주친다. 하필 이 현판이 놓인 곳이 통신전파기다. 전파가 삼라만상이요, 세상을 주재하는 것이 전파이니 이것이 불상을 모셔놓은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곳에서 잠깐 망설인다.

지곡리 고수골로 내려가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 쉼터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왔던 길로 회귀할 것인지... 걷는걸 좋아하니 그냥 회귀하기로 했다. 똑같은 길을 걷더라도 가는 길과 오는 길의 풍경은 사뭇 다르지 않던가. 늘 한결같으면서도 항상 대하는 대상에게서 다른 걸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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