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천 옆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연둣빛 잎을 내놓기 시작하고 있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산수유와 매실나무도 꽃을 활짝 폈다. 산수유는 3그루 모두 비슷한 시기에 꽃을 피웠는데, 매실나무 두 그루는 피는 시기가 꽤나 차이가 난다. 꽃이 아직 피지 않은 매실나무는 이제서야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같은 나무라 하더라도 품종별로, 그리고 키우는 장소에 따라 성장 시기가 다른 모양새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미선나무도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1속 1종의 천연기념물인 미선나무는 흰 개나리꽃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꽃망울은 온통 흰색이 아니라 절반쯤 파스텔톤의 분홍색이 자리를 잡고 있어 화사한 느낌을 준다. 



꽃이 활짝 피면 이 분홍빛이 약해져 전체적으로 흰 느낌이 물씬 풍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멸종 위기는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쉽게 마주치지는 못하는게 실정이다. 하지만 미선나무는 가지치기한 가지를 땅에 꽂으면 뿌리를 새롭게 내릴 정도로 번식력이 강하다. 그럼에도 전국 산천에서 쉽게 보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추측해보면 노란 개나리와의 경쟁력에서 뒤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개나리는 울타리 개념으로 온 산하 뿐만 아니라 동네 어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선나무 또한 이 못지 않은 번식력을 지녔지만,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에,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싶다. 자라는 모습이나 꽃모양이 모두 비슷하지만 꽃 색깔에서 화려하지 못했기에 내처진 느낌이랄까. 

실제 사정, 즉 진실을 알진 못하지만, 미선나무 꽃의 저 분홍빛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몸부림의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선택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것들의 몸부림이 애달프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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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특집영화로 [광대들;풍문조작단]을 딸내미와 함께 봤다. 이 영화는 세조 때 발생한 것으로 기록된 국토 이곳저곳에서의 신비스러운 사건이 실은 광대들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영화 말미에는 이런 이야기와 연관된 실제 모습, 즉 정이품송, 고양이상, 문수동자좌상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방학기간 동안 전자기기에 파묻혀 살고 있는 딸내미에게 콧바람이라도 쐬어줄 겸 영화에서 등장했던 곳을 가보는 것도 좋을듯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다. 



먼저 월정사 전나무숲길부터 찾았다. 봄날씨같은 따듯한 기후 속에서도 오대산 속이라 그런지 아직은 숲길 옆 계곡물은 곳곳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월정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서 금강교 쪽이 아닌 주차장 바로 옆으로 난 순환로를 걸었다. 



전나무숲길과 이어지는 1.9키로미터의 길이다. 이쪽부터 시작하면 절반정도에서 일주문을 마주치고 숲길을 지나 월정사로 들어갈 수 있다.



월정사의 일주문은 웅장했다. 기둥이 하나라서 붙여진 일주문인데 그 기둥옆으로 기교를 부린 장식물이 덧붙여져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전나무 숲길 초입에선 쓰러진 잣나무를 소재로 한 조각품도 보인다. 



이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한 손 한 손 쌓아올렸을 조그마한 돌탑도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욕망을 덜어내는 길일진데, 오히려 민초들의 소망을 고스란히 품은 돌탑들이 놓여있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니, 그렇게 소망의 무거운 마음을 이곳 돌탑에 놓아두고 절로 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대산 전나무숲길은 전북 부안의 내소사와 경기 포천의 광릉 전나무숲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드라마 [도깨비]가 촬영되기도 했다. 딸내미는 도깨비의 어느 장면이 촬영됐느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도깨비가 촬영됐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며, 산책의 재미를 더한다. 마침 다행히 소나무와 전나무, 잣나무를 비교해주는 안내판도 있어서 잠깐의 공부도 한다.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나무 그림을 주로 그리는 딸내미인지라 3 종의 나무 비교 안내판도 유심히 쳐다본다. 



전나무숲길을 지나 월정사로 들어서면 팔각구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 풍파를 이겨낸 석탑 속에서 고뇌를 털어내고자 석탑 주위를 돌았을지도 모를 선조들을 떠올려본다. 



월정사를 나와 비포장도로로 9키로 가까이 산쪽으로 올라가면 상원사가 나온다. 도로가 아닌 스님들이 실제 걸었던 선재길이 있는데, 지난 태풍과 장마로 유실된 곳이 있어서 현재는 폐쇄되어 있다. 이십여년 전쯤, 그리고 십여년 전쯤 오대산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면서 들렸던 상원사에 대한 기억이 얼핏 떠오른다. 딸내미는 경사가 급한 길을 오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이다. 



영화 속에 등장했던 고양이 석상을 보아도



우리나라 종의 원형이라 할 통일신라시대 동종을 보아도 시큰둥하다. 다만 원형은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고, 복제된 종은 다행히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에 흥미를 보인다. 



마음이 머무르냐가 좋고 싫음을 결정할 것이다. 좋고 싫음의 구분은 결국 좋음을 탐하고 싫음을 거부하는 욕망을 일으켜, 우리를 고뇌에 빠뜨린다. 그러하니 결국 마음자리가 없어야 고뇌도 일어나지 않을 터이다. 


“집에 언제 가?” 하는 딸의 물음에서 아비와 딸의 마음자리가 다름을 깨우친다. 나의 마음자리를 고집하지 않는 것에서 행복은 시작할 터이니, 이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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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산하가 단풍으로 물든 이맘때는 자전거 타기에도 제철이다. 최근 자전거에 재미를 붙인 딸내미와 함께 오늘은 국토종주 오천자전거길의 괴강교 인근을 찾았다. 



괴강교 근처의 휴게소(인증센터가 이 부근에 있다고 하는데 솔직히 인증에 관심이 없어서 인증센터가 있는지 여부는 살피진 않았다)에서 출발했다. 단풍나무의 강렬한 빨간색과 초록빛을 띠는 달천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전거길은 파란색 줄이 표시되어 있다. 이 줄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면된다. 인증센터를 100미터 지나면 이정표가 나오고 곧이어 괴강관광농원 캠핑장을 지나게 된다. 글램핑과 캠핑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인데 가족 단위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보니 여기까지는 꽤나 아기자기하게 길을 잘 꾸며놓은 느낌을 받는다.



캠핑장을 지나고 나면 여느 시골풍경과 다르지 않는 모습들과 마주친다. 왼쪽으론 한창 결구되어가고 있는 배추와 타작을 하고 있는 깨 등 밭을 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달천이 흐른다. 천변으로는 갈대가 군데 군데 무리를 지어 하얀 손짓을 한다. 



2키로미터 정도를 달리면 두천교에 다다른다. 두천교 바로 앞은 쉬어갈 수 있는 넓은 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괴산의 산막이옛길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자전거길을 안내하던 파란색줄이 보이질 않는다. 보천교를 건너가야 하는 것인지, 건너지않고 도로를 따라 가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파란줄이 끊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안내표지판이라도 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나중에 보니 보천교를 건너지 않고 도로를 따라 쭈~욱 200여 미터를 가면 다시 파란 줄이 나타난다).



딸내미와 함께 가는 길이다보니 이 종주길을 계속 갈 수는 없었다. 벌써 다리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 그래서 종주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보천교를 건너보았다. 보천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꽤나 멋지다. 



보천교에서 바라본 은행나무길이 멋져보여 자전거길 대신 달천을 따라 난 둑방길을 선택했다. 배추의 초록색과 은행나무의 노란잎, 그리고 달천이 어우러져 마음이 밝아온다. 



이 길을 따라 500여 미터쯤 가다보면 달천에 놓여진 징검다리가 보인다. 물이 얕게 흐르고 있어 재미삼아 징검다리도 건너본다. 


집순이 딸내미도 방에서 뒹굴뒹굴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자전거를 타며 바람쐬는 것을 즐길줄 알게됐다. 물론 2시간 이상은 지루해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젠 제법 풍경이 주는 맛을 아는 듯하다. 아무리 멋진 풍경도, 경이로운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주위를 둘러싼 자연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어가면서 풍경이 주는 맛과 멋을 알게되는 듯하다. 무엇이 풍경을 대하는 마음에 변화를 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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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놀이의 계절이 다가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마음 편히 움직일만한 곳을 찾는 건 쉽지가 않다. 이럴땐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기에 더욱 좋은 아기자기한 주위의 작은 명소를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충북 괴산의 문광저수지와 소금랜드 사이에는 은행나무길이 있다. 10월 초부터 11월 초까지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시골의 한적한 곳이지만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교통을 통제하는 사람도 있고, 주차장도 크게 갖춰놓아 큰 불편은 없다. 은행나무길 한쪽은 차가 다니지 않아 여유롭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한 아스팔트길 뿐만 아니라 문광저수지를 한바퀴 돌 수 있는 산책로도 갖추어져 있다. 물가에 데크로 만들어놓은 길은 물 위를 걷는 기분이 들어 좋다. 



산책로를 주욱 따라 걷다보면 은행나무길 맞은편 쪽 저수지둑길에서 벼그림을 볼 수 있다. 이삭의 색깔이 다른 벼 품종을 논에 심어서 벼가 익을 때쯤 그림이 나타나도록 만든 곳이다. 올해에는 편의점의 한 브랜드와 협약을 맺고 그 캐릭터를 그림으로 표현해놓았다. 



벼그림을 볼 수 있는 둑방에서 맞은편 은행나무길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산책로에서 잠깐 마주치는 숲길은 꿀풀 종류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어서 화려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문광저수지는 주왕산 주산지처럼 물 속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몇 그루 보인다. 일부 죽은 나뭇가지에는 새들이 자리를 잡고 쉬어가기도 한다. 느긋하게 가을을 느끼기에 제법인 풍경이다. 


한편 문광저수지 옆으로 소금랜드가 있다. 내륙 중심에 소금이라니? 괴산 지역은 절임배추로 유명한 곳이다. 김장철이면 절임배추 주문이 밀려들어 이곳저곳에서 절임배추를 만들어 판매한다. 이때 발생하게 되는 절임물은 소금기가 있어서 그냥 버리면 인근 땅이나 물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군에서 이 절임물을 수거해서 이곳 소금랜드에서 염전마냥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한다. 이 소금은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기에 겨울철 눈이 내릴 때 제설용으로 사용한다. 그야말로 자원순환적 환경을 살리는 좋은 아이디어로 보여진다. 다만 제설용 소금이 끼치는 환경에 대한 영향도 점차 고려해야할 부분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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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집콕생활을 한지도 벌써 얼마인가.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 한가한 시간에 전북 김제에 위치한 금산사에 다녀왔다. 



금산사는 백제시대 창건된 절로 미륵전(국보 제62호)이 유명하다. 옥내 입불로는 국내 최고 크기(11.82미터)인 미륵불을 모시고 있는 3층 건물로 속리산 법주사의 팔상전 마냥 속이 텅 비어있다. 3층까지 뻥 뚫린 이 공간에 미륵불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속리산 법주사의 금동미륵입상(33미터)도 미륵불이다(불상의 크기로만 따지면 충북 음성의 미타사 지장보살이 41미터에 이른다).


미륵불이 이렇게 큰 이유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렇게 큰 불상을 개인이 혼자 가질 수 없을뿐더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누구나 바라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반대로 그 크기에 압도당할 수도 있다. 부처란 중생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해탈의 경지로 이끄는 자애로운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고 여겨진다. 


아무튼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다. 미륵은 미래불로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구세주'다. 이런 해방의 성격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혁명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실제 미륵을 모시며 혁명을 꿈꾸던 선인들도 많았다. 이런 해방의 성격때문일까. 갑갑했던 마음도 확 풀리는 기분이다. 



금산사의 또다른 볼거리는 부처의 진신사리탑과 적멸보궁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불상의 자리에 바깥에 창을 내어 진신사리탑을 볼 수 있는 구조가 눈길을 끈다. 



대적광전은 본래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지만 1986년 화재로 전소되면서 재건한 바람에 보물 지정에서 해제되었다. 보통 사찰의 대웅전에는 중앙에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이 있고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그런데 이곳 대적광전에는 특이하게도 5여개, 6보살이 한 자리에 봉안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대적광전 오른쪽 앞마당에 위치한 보물 제27호 육각다층석탑이 이색적이다. 규모는 큰 편이 아니지만 흑색의 점판암으로 된 덕분에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이맘때 금산사에 가면 꽃무릇도 볼 수 있다. 영광의 불갑사와 고창 선운사의 꽃무릇에 비견할 바는 못되지만, 금산사 사찰에 들어가기까지 정성스레 가꾼 길과 정원이 걸음을 평온하게 만든다. 


금산사를 나서며 생각해보니 세상은 언제나 미륵불을 기다려온 듯하다. 미륵은 세상에 올 것인가. 상투적인 말이지만 미륵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서 언제든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고통없는 세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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