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 구경은 됐다, 신나는 나만의 예술하기!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4
채운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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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재 예찬이란 게으른 자들이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거나 감추기 위해 지어낸 픽션인 셈이다. (25쪽)

천재라고 불리는 자들은 예찬되어야 할 신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성을 사유하게 하는 자들이고, 어떤 목적을 향해 달리는 자들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자들이며, 타고난 자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자들이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

인간의 능력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태도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시기하고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는 대신, 바로 그 무능력 때문에 능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할 줄 아는 용기. 한 번 해서 안 되는 일이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해서라도 되게 하려는 끈기. 정말 커다란 능력은 바로 이런 용기와 끈기가 아닐까.(33쪽)

깨달음을 이러저러한 것으로 규정되는 순간 경계가 생기고, 경계를 갖는 순간 경계를 벗어나는 것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컨대, 인간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동물이라고 규정하면,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인간이나 인간보다 더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이보그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무언가를 실체로서 사고한다는 것은, 이처럼 사고의 경계를 만드는 명사적이고 점적인 사유다. 그게 바로 선승이 깨달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제자들에게 대답 대신 몽둥이로 화답했던 이유다. 깨달음이 뭔지 알고 싶으면 그저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할 뿐, 깨달음을 얻는 비밀 같은게 따로 있을리 없다는 것. (68쪽)

우리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건 많은 경우 습관에 따른 것이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 저장된 미적 기준에 비추어 해석하려고 하다보니, 익숙하고 습관적인 감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 앞에서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익숙하지 않으므로 아름답지 않으며, 아름답지 않으므로 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은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충격적인게 아닐까. 예술의 반대는 비예술이 아니고, 아름다움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상식 자체를 의심하는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를 넘어 작품 속에서 각자가 질문을 구성하는 것이다.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시각으로 질문하기. 즐거운 예술은 질물을 통해 기존의 가치를 전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다. 의삼하라, 거침없이.(103쪽)

예술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그 순간부터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건 누굴 속이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짓말이기 때문이다.(106쪽)

인물에 대한 시각이든 공간에 대한 시각이든 역사에 대한 시각이든 하나의 절대적 시각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실 역시 하나가 아니다. 내가 보는 세계와 다른 사람이 보는 세계의 다름과 그 다름의 공존을 인정하자. 그러면 다른 세계로의 넘나듦이 가능해질 테고, 진실은 그런 넘나듦의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법칙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113쪽)

대상의 외형을 닮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힘을 포착하는 것. .... 11월의 나무나 2월의 나무나 겉으로 보기엔 같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채 앙상한 가지만 있을 뿐이니까. 하지만 11월의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인 반면, 2월의 나무는 봄을 준비하는 나무다. 즉, 11월의 나무는 몸을 바짝 움츠리고 겨울을 견뎌야 하지만 2월의 나무는 기지개를 켜고 봄을 호흡해야 하는 것. 예술은 그 차이를 볼 수 있는 능력이다. (122쪽) 

위대한 배우와 삼류 배우의 차이는 이 세계와 얼마나 더 공감하느냐에 달린 것. 예술적 능력이란 더 많은 것들과 공감하고 변신할 수 있는 능력 외에 무엇이랴. 그러므로 언제든 만남을 준비하고, 변신 태세를 갖출 것.(127쪽)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는 사랑을 매우 흥미롭게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사랑이란 상대방이 방출하는 모든 기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 관심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든 얼굴을 감싸든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걸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저 삶이 피곤한가, 일이 잘 안 됐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건가 등등 사랑하는 사람의 몸짓 하나가 우리의 해석 의지를 마구 자극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마치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문헌학자들처럼 사랑하는 이의 몸짓 하나, 말 한마디도 심혈을 기울여 해석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언제나 부지런하다. 예술이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세상과 사랑에 빠진 예술가는 세상이 뿜어내는 기호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다. 예술은 거창한 어딘가가 아니라 자신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건강한 예술은 그러헥 삶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예술을 사랑하는 방법은 삶을 사랑하는 방법만큼 많다. 삶과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랴.(134쪽)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욕망하는 것이다. 무엇을. 살아 있음을..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면, 또 슬픔과 분노를 준다면, 그건 우리가 이러저러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141쪽)

구경은 보는 것을 대상화하는 행위다. 친한 친구가 겪는 기쁨이나 아픔을 구경하지 않듯이, 코끼리의 생태를 알고 코끼리와 친구가 된 사람이라면 코끼리를 구경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거다. ...때문에 자연이든 동물이든 누군가의 삶이든, 무언가를 구경하는 입장에 선다는 건 아주 시시한 일이다. 구경당하는 입장에선 아주 불쾌하고 끔찍한 일일테고.

행동하는 자들만이 질문한다. 행동할 때만 장애물을 만나고, 장애물을 넘으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질문이 샘솟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질문이 많은 것도 그들이 쉼 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예술 전체를 물음표로 만드는 의심이고 질문이며, 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일종의 분열증이다. 즐겁고 건강한 분열증.(169쪽)

관습과 명령에 무기력하게 길들여진 나약한 신체가 아니라 다른 이의 욕망과 접속하면서 나날이 건강해지는 신체,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대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변모시키고 확장하는 신체. 그런 신체는 한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고, 끊임없이 발산하고, 끊임없이 달리기 때문이다. 또 그런 신체는 고립되어 있는 법이 없다. 두리번거리고 달리면서 친구들을 만들기 떄문이다. (187쪽)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만큼이 자신의 세계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공명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계는 넓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아 보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밭을 가는 말은 광야를 달리는 말보다는 밭을 가는 소에 가깝고, 들판을 달리는 소는 밭을 가는 소보다는 광야를 달리는 말에 더 가깝다. 그럴진대 소나 말이라는 규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모두는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들이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인가보다 중요한건, 내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에 무덤덤한지, 또 무엇을 만나면 기쁘고 무엇을 만나면 슬픈지, 어떤 일을 하면 능력이 커지고 어떤 일을 하면 작아지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지를 아는 일이다. 거미처럼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미세한 떨림들을 번개처럼 포착하는 일이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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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한 세계를 탐구한다 - 물질과 생명을 잇는 물리학의 세계
다치바나 다카시.요네자와 후미코 지음, 배우철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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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양이 빌딩의 주인인 다치바나 다카시와 일본의 대표적 물리학자인 요네자와 후미코의 대담을 글로 엮은 책이다.

물리학에서 물질을 거쳐 생명현상으로 이어지는 그 연결고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한다면 그 조그마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네자와는 아몰퍼스로 유명한 학자로, 아몰퍼스는 물질 내의 원자의 배열방식에 주기성이 없는 고체를 총칭한다. 나처럼 인문계열에서 공부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실은 이 말조차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용어들이 조금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특히 생명이 지구상에 탄생한 것은 요동 때문이었다고들 하지요. 전체로서는 자유에너지가 최소가 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국소적으로는 요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199쪽) 

라는 대목은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또한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을 넓혀준다. 현재의 쇠고기 파동과 촛불시위,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바로 우리 사회가 살아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감케하기도 한다. 자유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공권력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촛불시위라는 요동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전인수격 해석을 해본다.

반면 이 격렬한 움직임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또한 랜덤한 세계 속에서의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물성물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에너지 최저 혹은 부분적인 에너지 극소의 상태가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해도 됩니까... 다만 그 주장이 모든 경우에 옳다고 할 수 있을지, 생물에 대해서도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듯해요.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까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왔고 아마 그런 생각은 당분간 하나의 지침으로서 유지될 테지요.(135쪽)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 그것마저도 우린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요동이야말로 참 생명의 탄생을 알린다. 그러나 섣불리 모든 것을 단정지으려 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물리는 흑백을 확실히 가리는 것이었어요. 모두들 그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흑도 백도 아니라는 답이 나오면 그걸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개념적으로 적잖이 당황하는 면이 있지 않나 해요. ...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은 결코 전체로서 최적화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예를 들어 어떤 부분을 최적화하면 다른 부분은 최적화되지 않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최적화된 상태에 있을 턱이 없지요. 그렇지만 전체로서 가장 나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록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할까요. 모든 부분의 최적이고 나아가 전체로서도 최적인 답이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 답은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하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아까 단백질 이야기에서도, 전체로서 최적인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 발생 당시의 조건 가운데 최적일지도 모르는 것을 찾는 거지요.(132~134쪽)

2008년 6월이 다가는 이날, 대한민국의 최적인 상태는 무엇일까. 그들만의 최적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은 촛불을 킨 것은 아닐까.

사족: 세상도 사물도 한가지 목적 또는 방향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칼이 수술도구나 요리도구로도 쓰이지만 강도의 도구로도 쓰이듯. 그 양면성의 길에서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바로 생명으로서의 사명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 사명에의 길이 항상 옳은 길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언제나 동전은 양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운명은 우리에게 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동전의 양면을 잘 알고 선택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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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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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의 책을 읽다보면 지식에 대한 욕망에 불타오르게 된다. 세상엔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알아야하며, 그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도 함께 깨우쳐준다.

이 책은 도쿄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보다 충실하게 고쳐 쓴 강의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대상이 대학생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이 시기가 사고의 감수성기 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생리 기능의 감수성기는 어린이 시절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물을 보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사고방식의 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의 감수성기는 소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에 걸쳐서 존재(87쪽)

기러기나 오리 새끼의 각인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알에서 갓 깨어나 처음 보는 것을 자신의 어미로 알아보는 것. 인간에게도 이런 시기가 있다. 각인처럼 불변의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시기에 어떤 부분을 스펀지처럼 흡수함으로써 잘 바뀌지 않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는 전후의 시기는 지성의 감수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선악이나 진리, 또는 종교 등을 포함해 인생관, 사회관, 세계관과 관련된 문제에 부딪히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갖가지 정보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의견들을 접하는 것이다. 스펙트럼을 최대한 넓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확고부동한 진리가 있다는 생각에 그것에 집착하다보면 옴 진리교와 같은 맹목성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예로써 우리가 강력하게 믿고 있었던 진리라고 하는 것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깨져나가는 것을 든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상대성 이론과 패리티 비보전설(대칭성의 파괴) 등 진리라 여겨졌던 것들은 다른 진리로 대체될 가능성에 항상 놓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시기엔 이것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함몰되지 않고 다양함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대학이라는 감수성기를 지나고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굳어진 머리를 가지고서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뇌과학적으로 훨씬 힘든 시기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질문을 올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만 올바르면 답은 저절로 이끌려 나옵니다. 질문은 그에 대한 답을 정말로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원칙만 지킨다면 이른바 철학적 난문은 전부 풀립니다. 사라지게 됩니다. 이른바 철학상의 난문은 잘못된 질문 방식이 낳은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169쪽)

 질문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다치바나처럼 철저한 자료조사 풍부한 논거, 예시를 갖추었을 때 질문도 대답도 올바르게 될 것이다.

어쨋든 이 책을 읽고나면 한가지 빨리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눈에 보인다. 다치바나는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것은 자연과학에 있다고 본다. 실제로 자연과학없이 미래를 생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식이라고 하면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 머무른다.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자연과학에 대한 접근과 공부가 필요한 시기일 듯하다. 이것은 다치바나의 책을 읽으면 확실히 설득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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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세트
존 나이스비트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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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발이 아니라 마음이다"라는 서문이 책의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그렇다고 일체유심조와 같은 철학적 형이상학적 사유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어떻게 마음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음이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가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가 있다.

망치를 손에 쥔 어린 소년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마련이다.(20쪽)

이와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자의 경우라면 군대 제대 후 길거리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띌 수 있고, 여자의 경우 결혼 이후 임신한 여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우치게 된다는 등등.

즉 그 사람이 어떤 마음상태에 있는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결정되고, 그것에 맞추어 행동도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세상을 좀더 제대로 보기 위한 방법으로 11가지를 제안한다.

1. 아무리 많은 것들이 변한다 해도 대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2. 미래는 현재에 있다

3. 게임 스코어에 집중하라

4. 언제나 옳을 필요는 없다

5. 그림 퍼즐처럼 미래를 분석하라

6. 너무 앞서서 행진하지 말라

7. 변화에 대한 저항은 현실의 이익 앞에 굴복한다

8. 기대했던 일은 언제나 더디게 일어난다

9. 성과를 얻으려면 기회를 활용하라

10. 덜어낼 수 없다면 더하지 말라

11. 기술의 생태학을 명심하라

게임 스코어에 집중하라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자신이 바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 정보를 왜곡시키기 때문에 사실적 기록에만 집중하라라는 것을 말한다. 즉 꿈이나 회고, 계획, 포부 등에 현혹되지 말고 기록에만 충실하라라는 것이다.

언제나 옳을 필요는 없다라는 것은 누가 옳을까 보다는 무엇이 옳을까가 중요하다라는 의미이다. 즉 누가 옳을까에 집착한다는 것은 내가 항상 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올 수 있기에 무엇이 옳은 가에 집중한다면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퍼즐처럼 미래를 분석하는 것은 순열처럼 나열된 연관성이 아니라 조각 조각의 귀퉁이를 맞추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성과를 얻으려면 기회를 활용하라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환경을 찾고 또는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의 생택학이란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인가의 선택으로 해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무엇이 개선되고 무엇이 사라지며 어떤 것들이 변화로 인해 대체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보편화되어 갈수록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문화적 정체성에 집착한다. 경제를 바라보는 것도 국가적 경계이기 보다는 휴대폰, 자동차 와 같은 일정 품목을 도메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운명이나 점 등에 시선을 돌리고 미래학에 관심을 쏟는다. 어떻게해서라도 미래를 엿볼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마인드세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도움을 줘 미래를 가늠할 수 있음으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그런데 이 11가지 방식 결코 만만치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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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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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란 더 이상의 부를 원하지 않는 상태라고 깔끔하게 정의하고 있는 이 책은 재테크는 돈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것임을 강조한다. 돈에서 자신으로 시선을 바꾸기 위해 300페이지가 넘는 경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란 생존으로부터의 자유를 확립하는 1단계와 생존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돈을 가지고 놀 수 있는 2단계, 돈을 주체 못하고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3단계로 나뉠 수 있는데 우리 같은 범인은 1단계 또는 2단계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3단계란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변화의 시점에서 변화를 앞서 갈 때만이 가능한 것이기에 범인의 능력 밖이 된다.

어쨌든 이 책은 부자가 왜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가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부자는 리스크를 관리하며 돈을 투자하고, 빈자는 리스크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위치이기에 부란 구심력을 갖는 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재테크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이 10년 후 하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인구론적으로 살펴보고, 주식의 향후 전망을 공적 자금과 연계해서 바라보며, 주식과 채권, 금과 같은 현물 자산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은연중 가르쳐주고 있다. 물론 정답이 아니라 해답이기에 그것이 정답이 되기 위해서는 독자들의 공부가 필요한 셈이다.

재테크의 기본은 금리에 있다는 것, 특히 수익률에 신경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20년간의 수익률 중 최고는 복리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는데 이것은 리스크 없이 일정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투자는 높은 수익을 얻다가도 한두번 실패하면 결국 평균치로 수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돈은 은행 금리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익률이 큰 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익률을 좇는 것이 아니라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런 모든 재테크에 대한 상식을 모두 무시해도 된다. 저자는 진짜 재테크는 자신의 몸값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불리는 재테크에 쏟을 시간에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면 조기 은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설령 회사를 나온다 해도 생존의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엔 고통이 따른다. 절차탁마의 과정이 없이는 절대 능력을 향상시킬 수도 없다. 일신우일신의 자세. 그것은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 책은 재테크란 바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임을 철학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유용하게 설득하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으면 하루에도 수십장의 그림을 그려야 하고, 음악을 잘 하고 싶으면 하루에도 수십곡을 작곡해야 한다는 것. 진리한 단순한 것이다. 더군다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자기 자신의 성장에 기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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