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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4년 12월
평점 :
포스트 모더니즘이 팽배하던 대학시절, 오히려 동양 고전을 읽은 덕분에, 친구들에게 도사의 이미지를 얻게됐다. 지금이야 논어, 노자를 공중파 방송에서 강의할 정도로 어느 정도 대중화 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묵자가 처음으로 번역되어 나올 정도였으니, 그런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질만도 했을 것이다. 당시 번역된 붉은 표지의 묵자는 물론이고, 한비자 등 닥치는 대로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아직까지 뇌리에 깊숙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노자와 장자에 빠져 소요유하는 삶을 꿈꾸었다는 정도가 동양 고전을 읽으면서 나에게 남긴 흔적이라면 흔적일 터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그 시절 내가 고전을 읽었던 방식은, 그 고전 속에서 지향하는 유토피아를 먼저 찾아내고, 그것으로의 접근 방법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공부였던 것인듯 싶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대부분의 고전이 제왕학의 수단이었다는 것이고, 그 방법으로서 제도적 변혁 보다는 개인적 수양에 중심을 두었다는 것이었다. 즉 고전이 쓰여졌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막연한 추측만으로, 오직 텍스트 그 자체만에 치중했던것 같다. 그래서 신영복 교수가 쓴 강의는 당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시대 상황을 설명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고전의 의미를 재 복원한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무척 교훈적으로 다가온다.
일단 과거 내가 읽었던 유토피아적 관점에서 이 책을 살펴보면, 유가 묵가 도가의 경우는 농본적 질서를 모델로 삼는다는 점에서 복고적 경향을 띤다. 즉 이상향이 요임금이나 순임금 시절과 같은 과거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진시황으로부터 비롯된 제국이라는 개념의 등장이나, 철로된 쟁기 등으로 인한 생산력의 증가 등의 정치 경제적 급변과 맞물려, 법가의 경우 변화를 인정하고,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는 미래사관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고전의 사상이 어떤 뛰어난 한 천재적 개인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밑바탕에서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깨달음은 지금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사상적 기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며, 그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는데서 이 책의 큰 장점이 있다하겠다.
위에 말한 것은 과거 내가 읽었던 방식 자체에서 무엇이 빠져 있었는가에 대한 반성이라고 볼 수 있다. <강의>를 꿰뚫는 시점은 물론 이것 이외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관계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관계론은 단순히 인간이라고 말할때의 間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간이란 사이 존재며 사이 존재라는 것 또한 존재 중심의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존재 그 자체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중심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사회란 것 또한 이런 관계,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 대한 극한점이 바로 불교의 화엄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화엄은 무정부주의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양면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런 관계론으로 바라본 고전을 여기서 하나하나 언급할 수는 없겠다. (그것이 궁금하다면 직접 책을 읽어보셔야) 다만 이렇게 재해석된 고전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만 잠깐 이야기해보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과 정서가 분리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관계론이란 단순히 사람과 사람만의 관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나와의 관계도, 또한 내 몸과 감성과 감정, 이상 등과의 관계도 모두 포함되어져야 할 부분일 것이다. -상품 미학의 발달로, 가상 세계의 등장으로, 교환 가치가 최우선의 가치가 됨으로써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나의 삶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따로 돈다. 그것이 바로 소외이며, 행복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허전함을 가져온다. 따라서 허구적 관계로 말미암아 삶의 진정성을 잊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소비하는 인간이 행복한 인간이 된 세상, 나혼자 즐거우면 행복한 獨樂의 세상. 과연 이곳이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진정 행복한 삶이란, 공감을 통해, 與民樂으로 흥겨운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고전에 대한 이 <강의>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