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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평점 :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일 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한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런 상황들을 반복해 겪으면서, 누군가를 향해 역사에는 팔 수 없는 가치, 팔아서는 안 되는 가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가공할 수 있는 역사는 없다고. 11쪽 ,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바로 이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이라는 공간은 그래서 더욱 값어치 있게 다가온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아픈 장면도 엿볼 수 있다.
명동성당이 경복궁을 겨눈 쇠뇌였다. 명동성당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이 경복궁 정문, 광화문을 향해 세워져 있다.
높은 언덕 위에 높이 솟은 건물은 한편으로 동양의 세속 전제 권력에 대해 서양의 신성 권력이 승리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서구적 공간관이 복수의 하나님을 매개로 한국적 공간관을 패퇴시키고 서울을 점령한 셈이다. 약현성당과 명동성당 건축의 종교적 후예들만이 아니라 세속의 후예들 역시 산자락을 파고들었다. 하늘이 만들어낸 자연의 선을 인간이 만든 건축물의 선이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오랜 금기는 여지없이 깨져나갔다. 물론 사람들이 서울 안의 야산들을 거리낌 없이 택지로 취급하기까지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이는 어쨌든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 거대한 주거용 건물군이 산자락을 장악함에 따라 그래도 경관만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서울 사람들의 시각적 유대도 붕괴되었다.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은 경관의 소비에도 관철되어, 소비할 수 있는 자와 소비할 수 없는 자를 나누었다. 이제 초고층 건물 초고층에 살지 않는 한,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조망할 수 있는 능선은 없다. 159쪽
서울은 과거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서울은 곳곳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권력에 의한 횡포, 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그 모습을 변모시키고 있다.
오늘날 권력이라는 단어는 여러 함의를 가진 말로 쓰이고 있지만, 도시 공간과 관련해서는 공간을 개조할 수 있는 힘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 당장 최근의 일만 보더라도 시장은 복개했던 개천의 복원을 결정할 수 있고, 대통령쯤 되면 아예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들거나 나라의 산수 체계를 바꾸려 할 수도 있다. 공간의 지배력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권력의 크기와 기하급수적 비례관계를 맺는다. 190쪽
건축물에 쓰이는 장식이나 소품이라는 것도 실은 시대적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즐겁고 경괘하게 학교종을 부르고 학교종 소리에 맞춰 등교하면서, 자연스럽게 평생동안 시간의 지배를 받을 몸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 나갔다. 근대를 변화가 일상화한 시대로 볼 때, 사람들의 시간관념과 시간을 분할하여 의식하는 정도는 근대적 변화의 속도와 대략 일치해왔다. 조선시대 아이들은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것이 먼저였지만 요즘 아이들은 시간을 알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법을 먼저 체득한다. 223쪽
13세기말 서유럽에서 기계식 시계가 발명된 이후 시계는 점차 그 정확도를 높여갔고, 그에 비례하여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나갔다. 루이스 멈퍼드는 증기엔진이 아니라 시계가 바로 현대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라고 했던바, 유럽 도시에서는 산업혁명에 앞서 시간혁명이 일어났다. 기계식 시계에 의존하여 철저히 시간을 지키는 우편마차는 증기기관차보다 먼저 등장했다. 229쪽
세부적 이미지든 중심적 이미지든, 도시의 분위기와 이미지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강렬하게 인식하는 공간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케빈 린치는 이를 길. 중심. 구역. 접경. 랜드마크의 다섯 요소로 정의함으로써 현대 도시계획학의 대가가 되었거니와 이야말로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도시의 가로와 광장이 동선과 행위, 집합을 통제하는 것이라면, 도시내 건조물은 시선과 상징에 대한 느낌을 통제한다. 특정공간에 길을 새로 내거나 어떤 구조물을 새로 짓거나 하는 일은 결국 그 안에 살고 그 안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사고와 태도를 지배하는 효과를 낳는다. 193쪽
그렇다면 지금 서울에서 논의되고 있는 초고층건물의 랜드마크는 과연 우리의 사고와 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불황에 만들어져 호황기에 빛을 발한다는 경제적 논리 이외에 우리의 정신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사고도 함께 해볼 문제다. 서울은 서울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보다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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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외계 충격은 학제간학회의 1997년 연차대회 주제였다. 이 대회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운석 강하, 공중 폭발 등 장기간의 외계 충격이 계속되어 인간이 하늘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하늘에 신이 있다는 보편적 관념이 등장했다는 이론이 제출되었다. ... 어느 때부터 하늘은 신의 공간이요 하늘나라로서 지표와 구분되는 또 하나의 세상을 구성하게 되었다. 이제 신이 인간을 징벌하는 도구는 번개. 비. 태풍 등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이전까지 신성을 담지했떤 맹수의 이빨, 풀의 독과 같은 것은 잡귀나 마귀의 수단으로 격하되었다. 209쪽
천체 운행의 법칙성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멀리 떨어진 여러 장소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들을 한 곳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고대 국가들의 거대한 수도는 물리적 구조물일 뿐 아니라 천문학을 중심으로 하는 지적 구조물이기도 했다. 더불어 집중할 수 있는 힘이 곧 권력이 되었으니 고대의 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 등지에서 천문학과 함께 신격화한 초월적 권력이 출현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천체의 운행에 관한 비밀의 열쇠를 손에 넣은 권력은 그것으로써 하늘과 자신 사이의 혈연적 관계를 입증하고자 했으며, 그런 시도는 예외 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225쪽
보통은 7일 1휴제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산물인 것으로 알고들 있으나, 사실은 바빌로니아 태음력의 소산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달의 변화하는 모습을 기준으로 구획한 7일 주기를 중요시했고, 각 주기의 마지막 날은 악의 날로 정하여 특별한 터부를 부과했었다. 유대인이 바빌로니아 유랑을 겪으면서 이 주기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7일에 한번씩의 안식일로 바뀐 것이다. 231쪽
병 걸린 자와 벌 받는 자를 같은 범주로 묶어 보는 관행은 의학 지식이 지배하는 오늘날까지도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고대에는 속죄의식과 치료 의식이 같았다. 심지어 현대에도 치유의 기적을 과시하는 신의 사도들이 적지 않은데 그들이 사용하는 기적의 치유법은 종종 처벌이나 고문과 구별되지 않는다. 의식이 같은 데 그 장소와 주재자가 다를 이유는 없었다.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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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수들이 수도회사 피고용자가 될 수는 없었고, 물장수 조합은 관행에 따라 물장수로부터 과중한 조합비를 징수하고는 그중 일부를 수도회사에 일괄 납부했다. 명색은 조합이나 실제로는 수돗물 판매기업이었던 셈인데, 요즈음 기업 경영의 합리화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는 아웃소싱은 이런 면에서는 첨단 경영기법 쪽보다는 중세의 잔재 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듯하다.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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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방탕한 유흥을 위해 대궐로 불러들인 미모의 젊은 여성을 흥청이라 불렀다. 흥청망청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조선 후기에는 사람을 셀 때에도 등급에 따라 다른 표현을 썼다. 관리는 員, 양반은 人, 평민은 名, 노비는 가축과 합쳐 口로 셌다. 인구란 인과 구를 합친 개념이다.
존비법은 다섯 단계, 확장하면 일곱단계였다. 친구간 평어는 하오, 같은 등급의 손윗사람에게 상대어는 하시오, 아랫사람에게 하대어는 하게. 윗급 사람에게 존대어는 하십시오, 아랫급 사람에게 비대어는 해라였다. 왕과 왕비, 대비 등에게만 사용하는 극존대 하시옵소서. 아이들 유예기간 동안 쓰는 반말은 어미를 생략하고 어간만 쓴다. .... 합쇼가 서울 특유의 방언으로 등장, 얼버무림형 존대로. 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