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신 1
마츠모리 타다시.코이케 카즈오 지음 / 세주문화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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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케이블 투니버스에서 방영하고 있는 '더 파이팅'이라는 재패니메이션에 흠뻑 빠져있다. 페더급 신인왕에서 챔피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과 그 라이벌의 실력쌓기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시합 전 벌벌 떨고, 강한 상대를 만나 겁에 질리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기어코 이겨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로 하여금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카운터 펀치는 타이밍과 (가슴을 두드리며)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대로 우리네 인생살이의 가르침으로 바뀐다.

만화 <권신>은 여기에 정의에 대한 참뜻을 가르친다. 주인공은 항상 초인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급성장하지만 그 변화의 과정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심성이다. 강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또는 살기 위해 누군가를 해쳐야 한다면 그런 강함과 그런 삶은 도대체 나의 생명을 지탱해 줄 수가 없다. 만화 속에선 실존인물의 이름이 거명되면서 흥미진진함을 더하는데 그 진위는 잘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참이든 거짓이든 중요한 것은 그가 강하기 때문에 정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과정 속에서 강함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간혹 착각을 일으키고 산다. 그 순서를 말이다. 착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동화가 수도 없이 많지만 우리네 속담은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법이라고 가르친다. 우린 이 순서를 잘 파악해야 한다. 강하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정의를 지키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부자가 되고 싶어한 것이었는지 마지막 목표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는 그 앞의 순서를 실행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정의를 지키고 강하게 산다는 것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된다면 우리는 오늘도 땀을 흘려야 한다. 그것은 그냥 그대로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만화를 보고 오늘도 허공에 주먹을 한번 질러본다. 쉐도우 복싱. 내가 쓰러뜨려야 할 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허공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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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쫓는 자 1
이케가미 료이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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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을 굶는다고 하자. 누구나가 다 배고픔에 괴로움을 느낄까? 자신의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는 사람에겐 이 사흘간의 기간이 고통보단 행복으로의 초대일 것이다. 어떤 행위의 고통과 행복을 가르는 것은 그것의 목적성의 유무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스포츠 스타로서 잘 나가다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해 사랑도 명예도 모두 잃어버리고 겨우 목숨만을 부지한채 브라질로 도망을 간다. 그리고 오직 한가지 그 집단에 대한 복수를 목표로 삶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다소 과장되고 폭력적이며 음란하기까지한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마초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리라 본다. 물론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남자에 대한 사랑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여자들의 모습이 바보같이 느껴질테지만, 분명 종속적 존재로 비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만화가 환상을 품는다고 생각해볼 때 이것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수퍼맨을 꿈꾸지만 망토를 두를 수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 이 만화는 상상적 빨간 망토인 것이다. 자신이 이루고자 한 목적을 향해 아무런 두려움 없이 불도저처럼 밀고나가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짜 사나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속엔 헤라클레스가 되고픈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폭력과 선정성을 필터로 걸러내고 남녀평등적 사고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이 만화는 분명 본능적 쾌감을 만족시켜주는 지극한 오락임을 자랑으로 삼다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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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프리카 1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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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난 만화를 글 중심으로 본다. 그냥 쓱쓱 그어버린 듯한 그림일지라도 그 속에 잘 짜여진 이야기가 있다면 만족해버린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근사하게 한마디 해 줄 수 있는 대사라도 발견할라치면 그 한줄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만화읽는 습관을 호텔 아프리카를 통해 통째로 바꿀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게됐다. 그림 하나하나를 쳐다보는라 만화읽는 속도가 뚝 떨어져버린 것이다. 만화란 글과 그림이 함께 공존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맑은 눈, 선한 눈, 슬픔에 가득 찬 눈, 사악한 눈, 지혜로 반짝이는 눈, 개구쟁이 눈...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정도의 아름다운 캐릭터들이 어느 순간 머리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고,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 공간들. 때론 그림이 글 이상의 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감추고, 진실이 가져올 변화를 감내할 수 없을 것 같아 숨기는 것들로 인해 우린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할 것인지, 주인공들의 깊은 눈을 통해 보여주는 호텔 아프리카는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기댈 수 있는 사랑의 공간으로 자리잡는다. 자신의 모습을 진실되게 소박하게 드러내며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호텔 아프리카는 그래서 우리의 집이 됐으면 한다. 아니 우리가 만들어가는 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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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전 가이 1
후쿠모토 노부유키 지음, 서현영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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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은 첫장과 끝장에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뿔뿔이 흩어져서... 고립하라!고립하라는 뜻은 고립되어 살다라는 뜻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번역상의 까다로운 문제로 보이는데 아마도 가장 가까운 뜻은 자수성가 정도가 아닐지 싶다. 노부유키의 만화가 그렇듯이 인간의 내면에 감추어진 추악함과 세상의 벽에 부딪혀 한없이 나약함을 드러내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 그는 세상은 혼자 살아나가야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삶. 최근 우리는 더불어 숲을 이루는 화해와 협동을 강조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우리는 가슴이 따뜻해져옴을 느낀다. 하지만 숲은 나무들의 어깨동무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 서 있음으로 해서 숲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 서 있는 나무가 되기를 원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러한 삶들이 모였을 때 숲은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숦을 이루기 위한 어떤 희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노부유키는 인간이 나약하고 누구에게 기대고 싶은 정신 때문에 협동, 희생, 공공의 선을 말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느끼는 것인지만 우리는 혼자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고립해야 한다.

ps 그러나 이런 고립도 사랑앞에선 힘없이 무너진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언제나 서로에게 기댔을 때만이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실은 사랑도 독립된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고립을 위한 무대로서 이 작품에선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녀간의 사랑도 없다. 이것은 고립을 위한 최소의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남녀가 모두 존재하는 세상은 고립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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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1
윤인완 글, 양경일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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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전설 민담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금발에 길쭉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짜리몽땅하고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도깨비나 귀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기야 밥 보다는 햄버거와 피자를 주로 먹는 아이들에게, 다리도 길어져 팔등신이 대부분인 젊은이들에게 금발의 영웅이 보다 더 친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의 산하가 아직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한 그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던 귀신들과 정령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는 바로 우리의 정령들을 만화속에 살려놓고 있다. 우리의 땅이지만 이국적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정염귀 등을 비롯해 고유의 정령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 무척 특이하다. 하지만 이상스럽게도 그들을 다스리는 술법은 밀법과 기독교의 엑소시즘이다. 우리의 정령을 다스리는데 왜 이방의 것들을 들여온 것일까? 다소 엉뚱하다. 무척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만화의 장점은 또하나의 고향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보여주고 있는 현실사건을 바탕으로한 추리형식에 있다. 일본 신주쿠에서 발견된 해골의 정체를 찾는 과정은 스릴넘친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상상력은 결코 그것이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않음으로써 설득력을 지닌다. 더더군다나 요괴들과 인간들간의 차이점을 분노와 용서로 구분한 부분은 매력적이다. 실상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들은 한의 정념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도깨비는 그런 한의 개념보다는 신명의 개념이 더 어울리기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보아왔던 전설의 고향을 떠올리면 쉽게 와 닿을듯 하다) 그 한을 분노로 다스리는냐 용서로 다스리느냐에 따라서 괴와 인은 확실한 구분점을 갖을 수도 있겠다.역시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분노를 억누르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 그 마음을 지녔을때 아일랜드 제주도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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