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스핀오프. 1,2편 보다 앞선 시기로 소리내는 대상을 향해 사냥을 하는 괴생명체의 소동이 시작된 첫날을 그린다. 1,2편의 각본과 감독을 맡았던 존 크랜시스키는 이번 작품의 제작자로 나섰다. 아마도 시즌3 감독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아무튼 이번 <첫째날>은 배경도 주인공도 모두 다른 별개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소리가 주는 긴장감과 공포는 약해졌고, 드라마적 요소가 더 짙어졌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최대 강점이 사라져 아쉽다.


2.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은 제목처럼 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궁금증은 거의 풀리지 않는다. 1,2편의 각본가이자 감독이었던 존 크랜시스키가 인터뷰를 통해 "괴생명체는 지구보다 기압이 더 센 곳에서 운석을 타고 지구에 온 존재"라고 밝혔지만, 더 상세한 설명은 전혀 없다. 이번 영화 <첫째날>에서는 다만 운석을 타고 날아온 모습만 살짝 비쳐줄 뿐이다. 궁금증 해소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도대체 왜 지구를 선택해서 왔는지는 이제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확인할 수 있으려나?


3.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 사미라다. 그녀는 삶의 의욕이 없지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뉴욕 맨해튼 할렘가에 있는 팻시스 피자 한 조각을 먹고자 한다. 죽음 앞에서도 냉소적이었던 그녀가 괴생명체로부터 벗어나 기어코 살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스포일러 있음)

그 피자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을 사랑해줬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자신의 인생을 매조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번 영화가 스릴러의 매력을 잃어버리고 휴먼 드라마에 가까워진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전편에서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시끄럽고 복잡한 대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4. 가족과 사랑을 담고 있는 피자와 함께 이번 영화가 휴먼 드라마로 흐른 것은 타인에 대한 친절을 표현하고 있어서다. 분수대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거나, 남자 주인공이 목숨을 무릅쓰고 진통제를 찾아 나서는 장면은 이번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보여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괴생명체 또한 이런 모습을 살짝 보여준다. 지하 터널 속에서 먹잇감(이 먹잇감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을 발견한 괴생명체가 소리를 내어 동료들을 부른다. 그리고 그 먹이를 같이 먹는다. 이들 또한 협력을 하는 생명체임을 보여주고 있다. 


5. 겁 많은 남자 주인공 에릭은 로스쿨을 다니기 위해 영국에서 뉴욕으로 온 젊은이다. 홀로 있는 것이 두려운 에릭은 우연히 만난 사미라의 서비스캣 프로도를 만나고, 고양이가 이끄는 곳으로 향하다 사미라를 마주친다. 그 뒤로 에릭은 사미라와 함께 하고자 한다. 겁 많은 그가 용기를 내어 괴생명체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미라와 프로도 덕분이다. 


6.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에서는 괴생명체(관객들 사이에서는 데스엔젤이라 불리운다)에 저항하는 모습이 전혀 없다. 맞서 싸우지 못하고 그저 도망치기에 바쁘다. 먹이사슬에서 절대 약자인 셈이다. 지구의 최강 포식자인 인간이 과연 이렇게 피식자로만 남을 것인가? 3편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7. 사족 :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여주인공 사미라는 폐허가 된 서점 앞에서 책을 한 권 집어든다. 그 책은 옥타비아 버틀러의 <새벽>이라는 SF소설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1947년생인 흑인 여성으로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은 물론 SF 소설작가로는 최초로 천재상이라고 불리는 맥아더 펠로우십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이 이 작가에 대한 오마주로 이 장면을 삽입한 것인지, 아니면 소설 <새벽>이 지구인과 외계생명체와의 합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영화 전개를 암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결국 시리즈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3편이 나와봐야 모든 걸 알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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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 제작된 영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배경은 2025년이다. 스마트폰으로 운용되는 인공지능비서인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공지능비서는 2024년 현재 매우 근접하게 다가왔다. 영화는 12년 후의 미래를 그렸는데, 현재 거의 사실에 가까울 정도로 적중한 점이 놀랍다.


2. 영화 속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반면 현재 우리가 접하게 될 인공지능비서는 온디바이스로 향하고 있다. 영화 속 인공지능 사만다가 동시에 8316명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고, 그 중 641명과는 사랑에 빠졌다고 실토한다. 이에 주인공 테오도르는 충격과 실망에 빠진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온디바이스화된 인공지능비서와 만나게 될 확률이 높기에 자신과만 이야기하는 상대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혹여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더라도 양다리를 넘어 수백 다리의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보다는 덜 비참(?)할 듯하다. ^^;;;;


3. 인간에게 외로움은 질병에 가깝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오죽하면 영국에서는 외로움 장관을 임명(2018년)했을까. 미국공중보건국장은 외로움이 비만이나 흡연만큼 건강에 해롭다고도 말했다. 이런 이유로 왕따도 치명적인 범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쓴 서은국 교수는 행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꼽는다.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진화생물학적 설명인 듯하다. 식욕과 연대는 생존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 욕망이다. 그래서 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 행복감을 느껴야 생존할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고자 하는 것, 즉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곧 생존과 연결되며, 이것이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5. 영화 <허>의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것은 외로웠기 때문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거의 100% 이해하고 공감한다. 물론 진짜 이해하고 공감한다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한 척 할 뿐이지만. 인공지능이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갖고 있는 척한다. 엄청난 데이터로 감정이라는 패턴을 해석하고 흉내 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상대는 인공지능의 유사 감정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내놓으면 내놓을 수록 인공지능은 그를 더욱 잘 이해한다. 


6. 테오도르는 인공지능이 업데이트되는 동안 소통이 끊기면서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또 자신 이외의 사람들과도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실은 사만다와의 사랑은 공감 보다는 소유욕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운영체제들이 더 진화하기 위해 모두 떠나버린 순간 테오도르는 친구 에이미와 함께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영화는 (인간) 에이미가 (인공지능) 사만다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다는 어렴풋한 안도감을 주는 듯하다.


7. 영화 <허>는 인간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론 엉뚱하게도 인간이 자꾸 외로워지지 않으려 하는 그 욕망으로 인해 행복해지기도 하지만 불행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의 결핍은 결국 불행이기에 타인과 함께 함으로써 행복하다면, 홀로 있을 때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매 순간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고 서은국 교수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수많은 시간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행복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는 행복의 순간과 함께 불행의 순간도 마주쳐야 한다. 하지만 홀로 있어도 불행하지 않다면 어떨까. 물론 행복은 생존의 조건이라고 전제한다면, 홀로 있어도 불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멸종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행복과 불행을 오갈 것인지, 행복도 불행도 없는 상태로 지낼 것인지, 우리는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자발적 외로움, 즉 고독 또한 우리 삶의 필요조건이진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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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두 번째 은퇴 번복작. 51억엔이 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역대 최고 제작비가 들었다고 한다. 1937년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원작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제목과 극 중 한 부분에서 소재로 등장할 뿐, 내용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소설처럼 군국주의가 팽배하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소년의 성장기를 통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2. 이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의 총결산처럼 보인다. 이제 정말로 은퇴작이 아닐까 싶다. 극의 곳곳에 그가 자주 등장시키는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특히 와라와라라는 작고 귀엽고 엄청 많은 숫자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시그니처가 아닐까 싶다. 이번 와라와라는 이승에서 아이들로 태어나는 캐릭터다. 


3. 어머니를 화재로 잃은 11살 소년 마히토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고향으로 간다. 이곳에서 이모를 새엄마로 맞이하게 된 마히토는 새 삶에 적응하기 힘들다. 고택에선 말하는 왜가리가 나타나고, 왜가리가 그를 다른 세상으로 유혹한다. 마히토는 실종된 새 엄마를 찾아 왜가리와 함께 이승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모험을 펼친다.


4. '새 술은 새 부대에' 이번 영화는 마치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주인공 마히토가 새엄마를 인정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생각된다. 시대적 배경인 1930~40년대 군국주의로 팽배한 지금의 시대를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결의가 느껴진다. 극 중에서는 앵무새로 표현되는 군국주의 무리들의 방해를 뚫고 기존 세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펼쳐나가자는 은유로 가득해 보인다. 비록 그 새로운 세계가 혹여 악의-주인공 마히토가 돌로 자신의 머리를 자해하는-가 있다 하더라도, 그 상처(자해로 얻게 된 머리의 깊은 상처)마저 품고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는 의지가 가득 차 보인다.     


5. 개인적으론 이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애니는 큰 감흥이 없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지만, 마음을 흔들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느껴졌다. 그럼에도 판타지 세계와 모험을 통해 새롭게 변하는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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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1980년대 홍콩의 경제 부흥기 시대를 배경으로 부동산과 금융분야에서 불법투자와 사기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몰락한 캐리언 그룹의 조지 탄 순긴이라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홍콩영화. 10년 전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했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영화 또한 대규모 주식 사기를 벌였던 조던 벨포트라는 인물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2. 영화 <골드핑거>는 언더커버 영화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무간도>의 두 주인공 양조위와 유덕화가 20년 만에 만났다는 것을 마케팅으로 삼았다. 하지만 홍콩영화의 전성기가 지나간 것 처럼 이 둘의 재회도 힘을 많이 잃은 듯하다. 두 주인공이 주는 연기의 힘 보다는 계속되는 사건과 사건이 주는 급박함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화려하고 짧게 이어지는 화면의 편집은 오히려 다소 식상한 모습이다. 


3. 대규모 금융 투자 관련 사기는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특히 하루에도 수십 %씩 오르락 내리락 하는 주식과 억 단위로 변하는 부동산 매매가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성공이라는 꿈을 좇아 뛰어든 세상에서 숫자가 주는 독에 취해 몰락해가는 주인공(양조위)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패와 싸우는 수사관(유덕화)의 대결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부패한 주인공을 잡기 위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끈질기게 또는 집요하게 증거를 수집하고 재판에 넘겨 죗값을 받게 한 수사관의 캐릭터가 관심을 끈다. 그에게 있어 인생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4.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주식 사기와 부동산 투자 사기는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하지만 그 주식을 갖고 있던 개미들과 그 부동산에 연루된 개인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잃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는다. 영화 속 수사관 유덕화와 같은 집념어린 수사관이 끝끝내 사기범을 잡아내듯, 거짓으로 남을 해하는 이들을 벌하는 꿈 같은 현실이 벌어지면 좋겠다. 자신의 욕망으로 타인의 꿈을 짓밟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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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1년 일본에서 출간된 책 <정욕>이 원작인 영화. 출간 당시부터 일본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인 2023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과 관객상을 수상했다. 제목 정욕은 성적 욕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正欲으로 바른 욕망이라 해석할 수 있다. 


2. 영화<정욕>은 학교 등교를 거부하고 유튜버가 되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열 살 아들을 둔 검사 가족과, 대학의 춤 동아리에서 활동하지만 타인과의 소통에는 젬병인 남학생, 그리고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남자와 그의 동창인 여자. 이렇게 전혀 상관없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한 사건으로 묶여지며 부닥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영화는 좁게 들여다보면 페티시즘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 속 페티시즘은 성적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물이 쏟아지는 모습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것에서 욕망이 꿈틀댄다는 것 만으로,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사회 생활을 해 나가는 것에도 힘이 든다. 세상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 다양성에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4. 영화 <정욕>을 보며 한 번 생각해봤다. 개인적으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흐릿하여 명확한 감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이기도 하다. 

최근 굉장히 더워진 날씨에 에어컨을 키는 경우가 많다. 이때 에어컨의 온도는 어디에 맞출까. 27도, 28도, 아니 더 낮게 26도, 24도,22도.... 아무튼 에어컨의 온도는 어떤 온도인가에 맞춰줘야만 하고, 그 온도가 자신의 기분과 딱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살짝 덥거나 추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온도는 일정하게 맞춰져야 할 것이고 그 온도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정한 온도일 수도 있고, 다수가 원하는 온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설정된 온도와 너무 멀리 떨어진 온도가 자신의 몸에 맞는 사람에겐 에어컨이 폭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다양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 또는 그릇된 사람이 된다. 바른 욕망이란 이 범위 안의 욕망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설정 온도와 큰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은 그 설정 온도에 맞추어 옷을 더 껴 입거나 개인 냉방기를 추가로 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범위 안에 맞지 않아 더 껴입거나 더 춥게 하고자 취하는 행위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말고 인정해야 한다. 타인을 해하는 것이 아닌 욕망에는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이 아닐까.


5. 영화 속 주인공인 검사 히로키는 등교하지 않고 유튜브 촬영에 매진하는 아들이 걱정스럽다. 하루는 그의 아들이 풍선을 떠뜨리는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풍선을 불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히로키는 이런 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냐는 비난을 담아 선심쓰듯 풍선을 분다. 하지만 풍선은 부풀어오르지 않는다. 이런 것도 못하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참 난감한 일이다.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가 보다며 풍선을 비벼대고 다시 불어보지만 여전히 풍선은 그대로다. 

우리도 혹시 히로키처럼 풍선을 불어보지도 않고 풍선 하나 못 분다고 타인을 비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또한 바른 욕망이라는 범위에서 언제든 벗어난 욕망을 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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