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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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난장이는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사라질 것 같았던 그들의 존재가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역설하는 듯하다. 거리마다 난장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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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 I Saw The Devi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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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란 영화는 잔인한 영상 때문에 개봉 전부터 시끄러웠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역시 잔인하다다. 하지만 최근 개봉했던 이끼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였다.(허준호를 감옥에서 린치하는 장면들) 그럼에도 악마를 보았다가 잔인함 때문에 홍역을 앓은 것은 잔인함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일터다. 만약 이 영화에서 잔인함을 덜어낸다면 영화는 힘을 잃고 말았을 테다. 악마를 보여 줄 화면을 잃어버릴 테니 말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연쇄살인범 최민식에게 약혼녀의 목숨을 빼앗긴 이병헌이 범인을 찾아내 반복해서 고통을 가하는 복수를 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을 왜 악마를 보았다라고 했을까. 살인범 최민식이 악마일까. 아니면 최민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악의 힘을 빌린 이병헌이 악마일까.  

악마란 사전적 의미론 사람의 마음을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고 불도 수행을 방해하여 악한 길로 유혹하는 나쁜 귀신을 말한다. 또는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전적 맥락으론 최민식이 그야말로 악마다. 이 악마의 특성은 고통과 두려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병헌의 복수가 먹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병헌의 품성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된다.      

한편으론 악의 힘을 빌려 악을 응징하는 이병헌이 악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약혼녀를 죽였다는 이유로 끈덕지게 그를 못살게 굴기 때문이다. 복수의 도를 넘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그의 행동은 멈춤이 없다. 오로지 앙갚음만이 남아 있는 그의 마음은 악마의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천사의 탈을 벗고 악마의 옷을 입을 수 있는지를 이병헌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말한 악마는 바로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헌이 복수를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보다 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국정원 출신의 뛰어난 무술 능력과 첨단기기가 없었다면,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히 잔인무도한 살인범에게 대적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보통 사람들은 국가라는, 또는 법이라는 공적인 힘을 통해 복수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힘은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용납이 된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대신 마음 속의 분노는 용서라는 이름으로 사그라들도록 강요(?) 당한다. 하지만 그 용서란 것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보여준 것은 바로 용서의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서할 수 없는 분노,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낼 수 있는 힘, 그게 바로 악마의 실체가 아닐까. 힘이란 언제든 그 악마적 속성을 드러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을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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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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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셉션은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킨다. 나비 꿈을 꾼 장자가 나비였던 것이 꿈인 것인지, 지금 사람으로 있는 것이 꿈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하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이런 호접몽 같은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남의 꿈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훔쳐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솔솔하다.(바로 이 부분에서 호접몽을 떠올릴 수 있겠다.) 꿈속의 꿈, 그리고 다시 그 꿈속의 꿈으로의 침입.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그냥 화면을 쫓아가다 보면 크게 혼돈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한 발 더 나아가 꿈 속에서 그 사람에게 생각을 심어준다. 그 생각은 작은 씨앗이 되어 점차 커지더니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정도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감독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지 아닐까 싶다.  

꿈과 무의식은 이성의 시대를 고하는 한 부류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누군가 어떤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성적 측면의 작용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속에 감추어진 것들이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또는 이성의 작용을 도움받아 행동으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은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그 사람의 감정적 측면을 건드린다. 가령 아버지와의 관계를 파악해 무의식 깊숙히 들어가 새로운 감정을 심어줌으로써 원하는 행동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생각을 교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추억.기억을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나의 감정선을 바꾸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동은 크게 변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 샐리의 법칙에 따를 것인지는 이성보다는 감성적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사고를 바꾸려 노력하기 보다는 감성적인 부분을 바꾸려는 노력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의지가 박약함을 한탄하기 보다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뒤바꿔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팽이를 보여준다. 호접몽과 같은 상태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주인공의 '토템'이 바로 팽이다. 팽이가 멈추면 현실이고, 계속 돌면 꿈이라는 설정.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엔딩장면에서 팽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공이 맞이한 해피엔딩은 꿈일까 현실일까.  

아, 팽이야, 그대로 쓰러져다오. 나도 모르게 애타게 소망해본다. 죄책감에 시달렸던 주인공의 평온한 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꿈인들 어쩌랴. 차라리 그 꿈속에서 깨지 말기를.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선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이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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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 - The Lovely Bon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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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살해 사건으로 항간이 떠들썩하다. 청소년 성폭력에 살인까지 벌어진지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피의자가 잡혔다. 하지만 피의자가 범죄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진짜 범인인지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성범죄의 90% 이상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딸 낳아 기르기 겁난다는 부모들의 한탄이 허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영화 '러블리 본즈'는 성범죄의 희생자인 한 소녀가 죽은 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을 담았다. 현실과 천국 사이에 놓인 경계선에서 천국으로 가기를 주저하는 소녀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를 둘러싼 주위 배경으로 표현됐다.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환상적인 모습은 때론 아름답고 때론 어두우며 또 가끔은 숨막히도록 겁난다. 범인이 잡히기를 바라는 증오심과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애달픔이 교차한다. 또한 막 사랑을 불태우고자 했던 남자친구와의 첫키스를 완성하고 싶은 들뜬 마음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영화는 죽은 소녀의 심리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들이 오히려 영화를 어둡게 만든다. 소녀가 자신의 사체가 숨겨진 곳에서 나와 천국으로 향한다는 해피엔딩 아닌 해피엔딩도 영화의 우울함을 지울 순 없다.  

영화는 청소년 성범죄의 가해자는 항상 이웃에 있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범죄자는 단 한번의 범죄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또한 피해자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슬픔에 처하는지도 보여준다. 딸의 죽음을 함께 극복하지 못하고 잠시 떠나 있어야만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그 슬픔의 크기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죽은 소녀가 처한 사후세계에 있다. 사후 세계라는 것을 결코 볼 수 없는 현실의 인간들은 항상 상상 속에서 그 세계를 만들고 싶어한다. 영화는 그 사후 세계를 만드는데 온힘을 쏟았다. 따라서 죽은 뒤의 모습은 관심사가 아니라는 공자의 말씀처럼 사후 세계를 알고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다지 흥미없는 영화가 될 듯 싶다. 다만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희생된 소녀의 천국으로 가기까지의 심리가 마음에 여운을 남길 것이라 여긴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범죄자들은 결국 영화처럼 파국으로 치닫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진정 그들의 마음 속에 그 어떤 뉘우침도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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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 카인드 - The Fourth Ki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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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lieve" 

마니아층을 만들었던 미국 드라마 X파일의 남자 주인공 멀더, 그의 사무실 벽엔 포스터가 붙여져 있고, 그 위엔 나는 믿기를 원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진실과 거짓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서, 다시 믿음과 불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에의 욕구를 드러내는 이 글귀는 X파일이라는 드라마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X파일은 여동생이 사라진 걸 목격하고, 그와 비슷한 사례들을 통해 외계인이 벌이는 납치행각을 증명해 보고자 했던 멀더와 논리적 사고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던 스컬리의 대립구도로 흥미를 끌었다. 영화 <포스카인드>는 마치 X파일의 프롤로그처럼 느껴진다. 포스카인드는 외계인에 의한 지구인의 납치를 말하는 것으로 외계인을 만나는 퍼스트 카인드로 시작해 점차 그 강도가 세진다. 

영화 속에서는 40년 동안 알래스카에서 일어난 실제 실종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FBI의 조사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던 실종사건들을 타일러 박사가 자신의 환자들의 최면치료를 통해 밝혀보고자 했던 것을 보여준다. 실제 환자들의 녹화장면처럼 보이는 화면과 배우들이 연기한 화면을 분할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그 사실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포스카인드의 장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외계인 납치는 믿음의 영역임을 암시했던 X파일과 달리 진실과 거짓의 영역일 수도 있음을 편집구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타일러 박사가 찍은 환자들의 녹화테이프에선 새벽이면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하얀 부엉이를 목격하게 됐다는 공통점과 환자들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오르거나 방에서 억지로 끌려나가는 장면이 스크래치 되어 보여진다. 심지어 우주선인듯한 모습의 발광체도 집 밖에서 비쳐진다. 이런 화면들을 계속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증거로 충분히 인정할 듯하다. 그런데 이 화면들은 정말 진짜인가. 페이크 다큐와 다큐의 경계선, 다큐와 픽션의 경계선 사이에서 영화는 관객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래서 멀더는 그토록 믿기를 원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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