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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Every Thing Will Be Fine (에브리띵 윌 비 파인) (한글무자막)(Blu-ray)
Mpi Home Video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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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친구와 자동차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날 하마터면 목술을 잃을지도 모를 큰 교통사고가 났다. 그 사고 이후 친구는 인생의 행로를 바꿀 변화를 시도했고 뜻을 이뤘다. 반면 나는 사고 이후에도 변함없는 삶을 살았다. 큰 충격적 사건을 대하는 삶의 태도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 영화 속 주인공 토마스는 작가다. 추운 겨울 어느 날 꼬마아이를 죽게 만드는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정신적 방황을 하다 자살까지 시도한다. 정말 죽고자 할 정도의 치사량의 약물을 먹진 않았다. 토마스의 자기안위적 행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토마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작가로서의 역량이 커진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켠에는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죄책감이 남아있다. 그래서 사고 현장을 다시 찾는다. 이곳에서 의도치않게 아이의 엄마를 만나고, 아이의 엄마로부터 일종의 용서를 받는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달려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이 사건을 잊어간다. 그러던 중 사고를 당했던 아이의 동생이 자라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의 성장과정이 평탄치 않았으며 그를 만나 도움을 받기를 희망했던 것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더 이상 이 사건의 기억으로부터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쪼가리로 남아있는 의무감에 답장을 보내지만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사건의 충격 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부쩍 커버린 아이는 필사적으로 그를 만나고 싶어한다. 토마스는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된다.

<에브리띵 윌 비 파인>은 토마스의 성장기처럼 보인다.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기억. 그것에 대처하는 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진다. 방황, 안도, 무감각, 망각, 거리두기, 포옹의 순으로 말이다. 즉 벗어나려 하지 말고 끌어안을 것. 의무감이 아닌 자발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만이 자신이 스스로 가두어버린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끄트머리에서 토마스의 미소로 보여준다. 그랬을 떄 모든 것은 괜찮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까지 성장해 있는 것일까. 토마스의 비겁함에 분노보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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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소설 시리즈
신카이 마코토 지음, 박미정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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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 그럴지 모른다. 우린 그렇게 운명적 사랑을 기다린다.

<너의 이름은>의 소재는 특별하지 않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육체가 뒤바뀐다는 상상은 여러 드라마와 영화로 보아왔다.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 연결이 된 남녀의 이야기도 많다. 우리영화 <동감>이나 <시월애> 등등. <너의 이름은>은 이 두가지 소재가 합쳐져 있다. 3년이라는 간격을 뛰어넘어 남녀의 몸이 수시로 뒤바뛴다. 하지만 뒤바뀐 몸을 가지고 지낸 시간은 기억하지 못한다. 여기에 두 남녀의 사랑을 깊게 만들어주는 사건이 일어난다. 혜성의 조각이 떨어져 한 마을을 초토화시키는 사건. 이젠 시간을 거슬러 가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일이 추가된다. 최근의 우리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처럼 말이다.

어찌보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영화적 소재를 한데 뒤섞여 운명적 사랑에 대해 말을 하는 뻔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대를 찾는 안타까운 마음을 섬세히 담아낸 연출 덕분에 이야기는 흥미를 끈다. 시간과 인연, 운명은 끈처럼 이어져 결국 닿아야 할 곳에 닿는다. 우린 그 끈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살다보니 그 끈이 끊어져버리기도 하고 다른 끈과 뒤엉키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 끊어짐과 뒤엉킴 이전의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일종의 동화다. 사랑은 운명이라는. 녹슬어버린 마음에 운명이 빛을 발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러니 청춘은 뜨겁게 뛰는 심장을 가져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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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덕 감독, 조정석, 이미숙, 이하나 출연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가 조작되고, 누군가 잘못 올린 글이 진짜인 양 퍼 날라지는 세상에서 뉴스는 정말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일까? 의심해볼 만 하다. 흔히들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쓴다’라고 표현하듯 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의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고 대부분 묵묵히 수용한다. 그리고 그런 수동적 수용이 여론인 양 힘을 발휘할 때도 있다.

영화 <특종-량첸살인기>는 ‘사실여부를 떠나버린 뉴스’라는 생각을 블랙코미디로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 허무혁 기자는 광고주와 연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비판기사를 썼다가 해고 위기에 처한다. -사실 여부라는 주제보다 실은 이게 현실적으로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신문이나 방송이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이 없고 광고료가 대부분의 수입을 차지하는 경우 광고주 눈치보기는 극에 달한다.- 이때 연쇄살인범을 알고 있다는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온다. 허 기자는 이 제보를 믿고 특종을 터뜨린다. 그런데 이 제보는 사실이 아니었다. 허 기자는 거짓이 들통날까봐 다시 거짓으로 무마시키려 한다. 사건은 이제 일파만파로 커졌다. 그런데 웬걸. 연쇄살인범이 허 기자의 이야기대로 살인을 저질러버린다.

한편 허 기자는 사적으로는 이혼 위기에 처해 있다. 아내는 임신을 하고 있지만 헤어질 태세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합치려하는데 출산한 아이의 아빠가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는 허 기자의 아이라고 믿어달라 한다. 허 기자는 친자확인을 해보지만 그 결과를 끝내 보지않고 자신의 아이라 믿는다.

블랙코미디인 이 영화의 핵심 장면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친자확인 결과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뉴스 보도된 내용의 반론을 들어볼 것인가, 말 것인가. 허 기자는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자신의 삶에 하등 도움을 주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냥 믿고 살자. 그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겠나. 그러니 허 기자가 자신의 잘못을 실토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보도된 뉴스가 잘못됐다고 말할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백국장이 말하듯 그것을 믿는냐 믿지 않느냐가 중요할 뿐.

그래서 사실은 누군가 애써 드러내지 않으면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우리는 사실이 숨바꼭질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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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케이프

   

 

감독- 존 에릭 도들 

출연 - 오웬 윌슨, 피어스 브로스넌, 레이크 벨, 스털링 제린스

 

 

 

 

 

 

 

 

영화를 보고나니 할리우드가 참 약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만이 유일한 선 또는 영웅이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보같은 짓을 교묘하게 피하는 법을 알았다고 할까.

이스케이프는 미국의 물 관련 기업의 기술자가 가족과 함께 아시아의 어느 국가로 들어간 첫날, 혁명(폭동?)이 일어나면서 목숨을 위협받게 되자 그곳으로부터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죽음 앞에 내몰린 가족이 마냥 죽음을 기다리거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가거나의 기로에서 당연히(? 누군가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기도 한다) 도망을 선택하면서 펼쳐지는 긴박함이 숨을 가쁘게 만든다. 이제 죽겠구나 하는 순간 나타나는 영웅(피어스 브로스넌) 덕분에 고비도 넘기고, 새로운 출로도 모색한다. 그리고 그가 첩보원이라는 것을 알게되며, 그로부터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그는 작금의 상황이 다국적기업의 탐욕으로 발생된 것이며, 그 활동의 밑바탕엔 기업과 관련된 정부에서 일하는 첩보원들의 활동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절대 선도 악도 없으며, 당신이 가족을 위해 탈출하듯, 이들도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혁명가들은 폭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상관않는 무차별적 살인과 잔인한 폭력이 이들을 악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선도 악도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은 그저 귀로 흘러들어 빠져나가고, 악당의 이미지만 넘쳐난다. 그러하기에 주인공의 가족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때 우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말과 이미지의 어긋남. 숨가쁘게 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이미지에 사로잡힌 우리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는 고백을 허공에 날려버린다. 이로써 말로는 악한 서방세계가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선한 존재로 비쳐지고, 말로는 희생자인 약소국의 국민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이 된다. 할리우드의 잔꾀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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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폰(스포 있음)

감독 - 김봉주, 주연 - 손현주 엄지원

 

아내가 살해되었다. 1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분명히 아내다. 살아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영화는 태양풍에 의한 전자파 간섭으로 시간을 초월해 통화가 가능하다는 설정으로 사건을 진행한다.(영화적 상상력에 대해 토를 달지는 말자. 영화 <동감>에서는 개기월식 영향으로 시간을 초월한 무선통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무튼 1년 전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건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이다. 이 사건은 발생한지 1년이 지났지만 미제 사건으로 남겨져 있다. 남편이 알고 있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뿐이다. 그리고 번호판을 알 수 없는 자동차만이 단서이다. 자, 이제 주인공인 남편은 전화통화만으로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영화는 초반 시간을 초월한 통화 덕분에 원래 아내가 죽었던 시간과 장소를 피해 아내가 살아남지만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살인 용의자로 남편이 지목된다. 과거가 바뀌면서 현재도 바뀌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엮이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사뭇 흥미진진하다.

현재가 바뀐 상황에서 다시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어떻게든 아내의 죽음을 막아야만 한다. 물론 살인 용의자로 경찰에 쫓기면서 남편의 활동은 제약을 받는다. 하지만 초반 흥미진진하고 급박하게 돌아가던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다소 힘을 잃는다. 과거와 현재가 뒤얽히는 모습 대신 과거 속에서, 또 현재 속에서 각각 아내와 남편이 사건을 피하고 해결하려는 모습에 집중하면서 급박함이 다소 약해진 탓이다.

그럼에도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영화적 재미는 상당하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영화의 여운을 남겨주진 못한다. 아쉬운 부분이다. 실제 인생은 또 한번의 기회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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