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영화의 한계

영화 "원더랜드"는 코로나19로 개봉이 지연된 창고영화의 한계를 드러낸다. 3년 전 군 입대 전 모습의 박보검을 비롯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어색하다. 또 최근 AI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영화 속 미래가 보다 더 현실 가능해짐으로써 오히려 참신함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연결성 없는 두 인물의 이야기

영화는 두 주인공 '바이리'(탕웨이)와 '정인'(수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다룬다. 죽음을 숨기려는 바이리와 병원에 누워있는 남자친구를 복원한 정인을 중심으로 한 두 이야기 사이를 관통하는 전체적인 메시지가 부족하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느껴진다.


자각에 대한 고찰 (스포일러 주의)

복원된 바이리는 자신이 AI라는 것을 모른 채 딸과 소통한다. 딸이 공항에서 실종되고 그 딸을 찾기 위해 탐사일로 나와있던 사막에서 벗어나 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자신이 디지털 세상에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바이리는 이미 죽은 존재라는 것도 깨우친다. 과연 AI가 죽음을 이해하고 자각할 수 있을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너는 진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

정인은 복원된 태주와의 소통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실제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던 태주가 깨어나면서 혼란에 빠진다. 인공지능 태주는 과거의 태주와 같지만, 현실의 태주는 사고로 인해 변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태주가 과거의 기억으로 만들어졌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인은 과거와 현재의 태주 사이에서 갈등한다. 자신이 행복해던 시절의 태주를 떠올리며, 어딘가 생소한 현실의 태주에게 "넌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라며 슬픔을 느낀다. 


복원된 존재는 기억에 기반하지만, 현재의 나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되어 있지않고 끊임없이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복원된 존재는 기억의 테두리에 갖혀 움직일뿐이다. 과거와 다른 나, 어찌보면 그것이 현재의 나일지도 모른다. 정인이 직접 부딪치고 만지며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은 현재 변해버린 태주이다. 정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 



영화 <원더랜드>는 사람과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인공지능 사이에 이루어진 사랑과 정과 같은 감정들을 그려내며, 소통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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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조지 밀러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퓨리오사가 어렸을 적 바이크 폭군 디멘투스에게 붙잡혔다가, 다시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가고자 하는 녹색의 땅이 자신이 어렸을 적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았던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 <퓨리오사>는 임모탈이 지배하고 있는 시타델, 가스타운, 무기공장의 실체가 드러나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여기에 더해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액션 장면이다. 전편 <분노의 도로>처럼 계속해서 액션이 몰아치지는 않지만, 액션 장면이 한 번 터질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도로 액션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다. 조지 밀러라는 액션의 장인이 빚어낸 명품이다. 특히 연을 타고 공격하는 공중전과의 접목은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간혹 비춰지는 급작스런 수준 미달의 CG 장면이 있긴 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액션을 망칠 정도는 아니다. 정말 이런 액션이야말로 장인의 경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는 퓨리오사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그녀의 결의와 용기를 볼 수 있다. 강렬하고 스릴 넘치는 액션을 원한다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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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넷플릭스의 시청 순위를 믿지마라.

영화 <트리거 워닝>이 넷플릭스에 공개되고 거의 일주일 가량 세계 여러나라에서 영화 시청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제시카 알바를 오랜만에 본다는 것이 매력으로 작용했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실망감이 가득하다. 킬링타임용 액션영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간을 낭비해버린 느낌. 

시리아에서 특수부대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던 파커(제시카 알바)가 고향인 미국에서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죽음 뒤에 감추어진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다.이 줄거리 자체도 조금은 진부하고, 제시카 알바의 액션은 눈길을 끌만큼 압도적이지 못하다.


2. 제시카 알바의 커맨도 기술이 아쉽다

청춘시절 섹시미로 대표되는 제시카 알바가 액션을 들고 오랜만에 복귀했다. 우리나라의 특공무술을 연상시키는 커맨도 기술이 액션의 중요 부분처럼 보여진다. 주짓수의 관절기나 조르기와 같은 서브미션 기술과 접목시킨 단도를 활용한 액션은 짜여진 합을 맞춘 것처럼 정형적인 모습이다. 관객을 압도시킬 정도의 카리스마가 분출되지 못했다. 근육과 힘에서 남성에 비해 약하다는 핸디캡을 반영한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하다. 아무튼 시원한 액션을 원한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3. 여성 액션 스타의 계보를 이어받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배우들이 액션에 도전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여성 감독이나 스태프의 참여가 증가하고, 액션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를 얻기 위한 도전 덕이 아닐까 싶다. 또 많은 관객 수를 얻기 위한 장르로서 액션은 매력적인 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부족한 부분을 거의 완벽히 커버할 수 있는 그래픽 기술 덕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여성 액션 스타로는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 <터미네이터>의 린다 해밀턴, <툼 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 <킬 빌>의 우마 서먼, <원더우먼>의 갤 가돗, <블랙 위도우>의 스칼렛 요한슨, <매드맥스>의 샤를리즈 테론 등을 계보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엔 마블의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아무튼 각자의 개성이 도드라지지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강렬한 이미지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잊혀지지 않을 강렬함이 이들을 여성액션스타로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트리거 워닝>의 제시카 알바는 이런 강렬함이 거의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남아 있지 않는다. 영화를 찍기 위해 커맨도 기술을 습득하려고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라 짐작은 하지만, 그 노력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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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상으로 스며든 시대이다.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되고, 네비게이션 없이는 운전할 수 없을 정도의 세상이 되었다. 이미 AI는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었지만, 챗 GPT의 발표 이후 그 확장성에 놀라고 있는 중이다.


인공지능은 이제 범용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향하고, 이는 로봇과 합쳐져 소위 우리가 상상했던 사람과 닮은 로봇을 곁에 두고 살아갈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이런 AI의 발달은 영화 <터미네이터>류의 상상을 자극하며,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줄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인류를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지상낙원과 같은 두 극단적 미래를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인공지능을 조력자로 하며 공존하는 시대로 흐르지 않을까 싶은 것이 개인적 예상이지만, 그러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가장 먼저 생각해두어야 할 점은 개발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현재의 인공지능이 어떻게 그 결과물을 내놓는지,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되는데, 인공지능의 미래를 어둡게 바라보는 주 원인은 바로 이 산출 과정의 무지일 것이다. 그로 인해 인공지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 불가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데에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가 현재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하고, 전쟁과 전투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사용에 있어서 우리에게 치명적인 분야의 사용은 전 지구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인공지능이 작동하는 과정의 무지가 인공지능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물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으로 이어지면서 공포는 확산된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영화의 대부분은 범용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넘어 지구와 생명을 위한 선택으로 인간의 멸종을 선택한다고 상상한다. 인간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선택으로 인간을 죽이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아틀라스> 또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최초의 인공지능로봇 할리가 다른 로봇들을 프로그래밍하고 이들을 군대로 활용해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그린다. 그 과정에서 할리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틀라스(제니퍼 로페즈)라는 분석가가 할리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고, 그를 없애기 위해 성인이 되어서까지 외골수로 그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가 피신한 행성을 찾아 그를 없애기 위해 직접 출정하지만, 이내 다른 병력들은 전멸하고 혼자서 할리와 그의 군대를 상대하게 된다. 영화 <아틀라스>는 이 싸움을 (가끔씩 티가 나지만) 상상력 풍부한 CG로 꽤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퍼시픽림>이나 <아바타>와 같이 인간과 동조되는 로봇을 활용한 액션 장면이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아틀라스는 할리의 배신으로 인공지능을 믿지 않지만, 할리와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타고 있는 인공지능로봇과의 100% 동조를 허락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영화 <아틀라스>는 주인공 아틀라스가 과연 인공지능과의 동조를 허용할 것인지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와 할리와의 싸움이 큰 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틀은 예상 외로 흥미진진하다. 


과연 우리의 미래에 인공지능은 우리의 적이 될 것인가, 친구가 될 것인가. 주변 친구나 가족들보다도 더 우리의 취향을 잘 아는 알고리즘을 생각해보면, 영화 <그녀>(her) 처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상상만으로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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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사고들은 모두 우연히 발생한 것일까. 어떤 사고로 인해 누군가가 이득을 본다면, 그 사고는 의도되고 계획된 사고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많은 사고 속에 파묻혀 범죄라는 인식도 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다면 그야말로 완전범죄가 되지 않을까. 


<설계자>는 이런 음모론(?)적 사고(思考)로 세상의 사고(事故)를 바라보는 영화다. 사고로 위장된 조작된 범죄를 설계하는 팀의 대장으로 강동원이 주연을 맡고, 이미숙, 이현욱, 탕준상이 팀원으로 연기한다. 그런데 이전 팀원이었던 짝눈(이종석)이 1년 전 사고로 죽고, 지금 또다시 점만(탕준상)이 사고로 죽게 된다. 하지만 탕준상의 죽음은 자신을 타깃으로 했던 사고라는 것을 강동원은 안다. 자신들보다 더 거대한 사고의 설계팀, 즉 '청소부'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청소부는 강동원을 타깃으로 움직이고 있다.  


영화의 재미는 1. 어떻게 사람들을 속일 정도로 사고를 완벽하게 우연처럼 보이도록 설계할까 2. 강동원을 노리는 청소부의 정체는 누구일까 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설계자>는 첫번째 재미는 그럭저럭 달성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두번째 재미가 아리송하다. 강동원의 추리를 쫓아가면서 청소부의 정체가 드러날까 싶지만, 결국 정체를 보여주지 않고 끝을 맺는다. 물론 진짜 청소부에 대한 암시를 주지만, 확신을 하지는 못한다. 진짜 청소부를 찾기 위해 강동원이 경찰에 자수를 하지만, 오히려 그의 진술은 피해망상쯤으로 여겨진다. 이런 간극이 주는 재미가 돋보였다면 좋을 텐데, <설계자>에선 그 간극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는 듯하다. 


영화 <설계자>는 조작된 사고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선 타인의 죽음마저도 가벼이 여기는 세상 속, 마무도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가득한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느끼는 절망감이 더 큰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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