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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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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 고 외쳤다. 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성 말살에 대해 저항하며 인간본성, 즉 자연의 회복을 주창했던 것이다. 19세기 후반 소로우는 <월든>이라는 책을 통해서 직접 자연속으로 들어가 실험적 삶을 꾸렸다. 이제 다시 20세기 자연주의자 니어링 부부를 이 책 <조화로운 삶>에서 만나게 된다. 왜 이들은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삶을 택한 것일까?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을 지라도, 버몬트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다시 한번 실천할 생각이 있다. 그때는 단순히 우리 두사람이 먹고 사는 일뿐 아니라 사회가 두루 함께 잘 사는 길을 찾으려고 애써 보리라. (P.214)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제도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착취와 억압의 삶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과정에서 그리고 욕구의 대상인 물건들을 사는 과정에서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그 속엔 이미 모순이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달콤한 모순을 쉽게 벗어날 순 없다.

그 사람들은 문명이 주는 흥분, 분주함. 매혹, 편의 시설, 마취제 없이는 살 수 없었다. (P.208)

끊임없는 욕구에 대한 자극에 우리는 이미 포로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당장 탈옥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당장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현실에 얽매이게 만든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이 순간에 있다.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실용서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기에 과감히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북돋워 준다. 다만 이 책이 미국의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조금은 다르다는 점에서 아쉽긴 하다. 또한 앞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듯 이러한 모험이 공동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개인적 실험에 그치고 있는 안타까움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월든>을 읽었을 때보다 더 자신감을 가지게 되긴 하지만 여전히 도시의 삶에 길들여진 나의 육체를 자연으로 돌리기엔 용기가 부족함을 느끼며 자기 변명을 끊임없이 늘여놓는다. 하지만 머리로 알되 몸으로 알지 못하는 나를 한탄하면서도 아직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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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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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리교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이자 모리교수인 제자 미츠. 미츠는 어느 날 TV를 통해 모리교수의 소식을 듣고 찾아가 뵙는다. 이 책은 이 둘의 만남과 강의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지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한번쯤 뒤돌아보게 만드는 이책은 한마디로 마음의 문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그런 그의 삶의 아포리즘은 다음과 같은 옛 강의 내용에서 강렬하게 전달된다.

눈을 감고 자신의 짝을 믿으며 뒤로 넘어지는 행위. 대부분의 학생은 쉽게 뒤로 넘어가지 못한다. 눈을 뜨고 주춤거리며 뒤로 넘어가려다 돌아서버리거나 엉거주춤 발로 버틴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지긋이 눈은 감은 상태에서 그대로 뒤로 넘어지고 그녀의 짝은 그녀가 땅에 부딪히기 전에 머리를 잡아 일으켜 준다. 모리 교수는 바로 이 순간이 삶의 진실된 순간임을 강의한다. 남을 온전히 믿고 그에게 의존할 수 있는 삶. 서로가 서로에게 믿음이 되고 사랑이 될 수 있는 삶. 돈과 명예, 권력을 쫓는 행위에선 절대 만족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리 교수의 가르침 또한 헛된 메아리가 될 공산이 크다. 절대적 자아만을 가르쳐 온 현대의 교육. 즉 자아의 정체성이란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지 관계속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세뇌되어 버린 현대인들에게 남을 온전히 믿는 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미 현대인들은 관계라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리고 독립된 개체의 땅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땅으로부터의 탈출은 사랑에 의해서 가능하겠지만 어디 그런 사랑도 쉬운 세상이던가?

타인의 존재, 그리고 나의 존재라는 것이 아니 모든 만물이 서로 관계의 그물망속에 얽혀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그리고 사랑만이 그들을 온전히 하나되게 할 수 있다고 말해줘도 그것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 세상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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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파괴 - 깨달음과 사유의 인도 이상의 도서관 50
이거룡 지음 / 거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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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철학,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그 많은 인도의 사유들을 깊이 파헤칠려면 어디 한권의 책으로 가능하겠는가?

쉽게 읽힐 수 있는 다이제스트를 원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인도철학사라는 4권의 두꺼운 책을 감히 들춰보지 못하고 그저 수박 겉핥기에 만족하려는 나의 마음가짐에 어찌보면 이 책은 적합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책은 인도의 종교중 힌두교에 대해서 불교와 비교하며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업과 윤회, 그리고 속세에 대한 생각등에서 어떻게 불교와 다른지 비교하다보면 어느새 힌두교란 이런 것이었구나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욕망의 긍정, 그리고 그에 따른 속세간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욕망과 속세를 벗어나 해탈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 따라서 몸을 근본적으로 부정적,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그들의 생각은 삼매의 경지가 하늘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곳에 있구나 하고 깨닫게 만든다.

모든 것은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과연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인지 야금야금 깨물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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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법정 지음 / 이레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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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행에 돌입해 삼매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개인적 문제이지 사회적 문제일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식물의 생명을 빌어 몸을 지키고 부처의 설법을 빌어 마음을 지키니 어찌 깨달음이 혼자만의 것이겠는가? 다만 번잡한 인간사에서 벗어나 수행을 하는 이유는 욕정으로부터 벗어남이요, 갈등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나도 그러한 삶을 꿈꾼 것이 몇번이었던가? 세상사가 힘들고 괴로울 때 훌쩍 산으로 들어가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 것이 어디 하루이틀이었던가 그런 꿈을 꾼 것은 산사의 삶이 어찌보면 순박하고 단조로워 삶을 꾸려가는 게 쉬울 것이라는 짐작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오두막 편지>를 읽다보니 산사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됐다. 다만 자신과의 철저한 대면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 괴롭지만 위안거리가 될 수도 있을 터... 아마도 난 산사의 삶을 쉽고 가볍게 생각하고 그것을 꿈꿔 왔던 모양이다.

자신을 찾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의 욕망에 이끌려 자연을 벗하려 했던 것은 아니였는지 반성하게 된다. 진정 자신을 찾는 깨달음은 산사에서든 속세에서든 마음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제야 다시 절감하게 된다.

산 속 깊은 곳 오두막에서 보낸 편지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싼 회색도시속의 현대인에게 따뜻한 온정을 전해주고 있어 책을 덮는 순간 온몸이 푸근해짐을 느낀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다정한 친구와 껴안고 말없이 그간의 사정을 주고 받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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