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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는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그래서 과감히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선언한다.
저자는 명품 중독증에 걸렸다. 어렸을 적 브랜드없는 신발과 옷 때문에 왕따 당한 경험이 그를 명품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프라다의 여주인공처럼 차츰 명품에 젖어든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날마다 몸에 걸치고 다니는 브랜드 로고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23쪽)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명품을 걸친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은 한낱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은 물론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적용하는 나의 가치 기준이 알맹이 없는 허망한 것들이라는 자각의 순간이 내게 닥쳐오고야 말았다....나는 누가 뭐래도 행복했어야 마땅하다... 이런 저런 친구도 많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직업도 있고, 유명 브랜드의 명품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허무함을 느낀다. 속았다는 생각이든다. 환상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41쪽)
그래서 그는 과감히 명품으로부터 벗어나기로 작정했다. 어떻게. 마치 담배를 끊듯, 술을 끊듯 한번에 확실하게.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브랜드제품을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걸 왜 태우냐? 차라리 기증하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쇼맨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자는 그래서 갈팡질팡한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하며 후회도 든다. 그러나 차츰 자신이 옳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광고의 목적은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광고 속 제품을 사면 그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부추긴다.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광고는 불안감이라는 것 때문에 먹혀들고 효과를 낸다... 광고는 자기들이 광고하는 그 물건을 가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불안감을 조장한다.(44쪽)
상품을 사람들의 정서나 느낌과 연결시키면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버네이즈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대해 파악하면 전혀 엉뚱한 물건을 갖고 싶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88쪽)
사람들이 브랜드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충족시키고자 하는 정서적 욕구 대신 해로운 정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탐욕, 대인기피증, 열등감, 질투심 등을 초래할 수 있다. (152쪽)
당신이 추구하는 행복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우리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절정의 행복을 맛보기도 하지만 슬픔의 나락으로 추락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그 양극단의 중간쯤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기대할 수 있고, 또한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는 결국 일종의 만족감입니다. (173쪽)
그 만족감을 위해 사람들은 브랜드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 만족의 순간을 찰나에 그치고 만다. 보다 새로운 보다 좋은 것을 찾도록 만드는 광고들에 휩싸여 불안감만 커지게 될 뿐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욕구에 의해서 소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욕구라는 것은 감성적인 브랜드 광고에 의해 교묘히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210쪽)
소비문화는 오늘날의 대량소비사회에서 강조되는 소유가 곧 존재라는 강박관념과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로 특징지어지는 소비의 사회문화적이고 경험적이며 상징적이고 이상화된 측면을 통해 가장 잘 조망해 볼 수 있다... 이상화된 이미지의 뉘앙스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들은 결국 물질적인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중심주제에서의 변형에 불과할 것이다.(248쪽)
명품중독증은 현대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비문화란 곧 환경문제와도 직결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불필요한 소비를 용인하면서 각 가정 내 불필요한 등 끄기 운동을 통해 환경파괴 문제에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은 정상이 아니다.(300쪽)
그러나 사람들의 이성이나 도덕, 윤리에 호소한다 하더라도 감성적 측면에서 이미 마케터들에 의해 점령당한 소비자들은 그 행동을 쉽사리 바꾸지 못한다.
비록 대중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우려를 갖는다 할지라도 이 우려는 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 애착마저 끊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304쪽) 그 무언가로 인해 소비자들은 원가의 수십 배가 넘는 과도한 가격이 책정된 제품을 계속해서 구입한다. 그것은 바로 브랜드에 대한 뿌리 깊은 감정적 애착이다. (308쪽)
그래서 저자의 행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명품 브랜드의 화형식. 이것은 그냥 쇼가 아니다.
소비를 위해 노동하고, 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소비해야하는 끝없는 악순환은 불합리하다. 노동의 강도가 클수록 우리는 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해야 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또 그만큼 더 노동해야만 하는 이와 같은 조건을 마르쿠제는 불행의 도취라고 불렀다.(315쪽)
마르쿠제에 있어 진정한 자유란 경제로부터의 자유, 일상의 생존경쟁으로부터의 자유, 그날그날의 생계유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삶이 불가능한 이유는 소비에 대한 감정적 의존 때문이다. (314쪽)
소비자로서의 자유를 행사한다는 것이 BMW나 벤츠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바람직한 소비 습관은 다름 아닌, 꼭 필요할 때만 소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박함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325쪽) 우리는 더 단순한 형태의 삶으로 하향 이동해야 한다. 소비를 줄이면 자연스레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도 감소할 것이다. 그렇게 획득된 시간적 여유를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제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로 들린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복잡한 삶을 사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3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