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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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산과 푸코를 통해 근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대란 우리가 디디고 서 있는 현대를 구성한 밑바탕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아무런 문제없이 또는 문제가 있더라도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근대를 살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현실이 불편하거나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도대체 왜 이런 것인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돌아봄은 말 그대로 돌아보는 것으로, 그 첫 자리는 근대가 될 수 있겠다.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기본 생각들은 근대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요약하건데 저자가 바라본 근대의 문제점은 직선과 곡선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곡선에 대한 폭력적 작용이 직선으로 드러난다고 보는는 것이다.

기차나 증기선을 위해 가차없이 오솔길과 실개천은 사라져야만 한다. 고속열차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겪어야 했던 과오-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 있다-와 머지않아 이루어질지 모를 대운하가 이런 직선의 폭력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

기차나 증기선이 공간적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시간적 측면에서는 진화론이 직선적 사고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겠다. 진화론이라는 것은 결국 직선이며, 직선은 그 목적성을 지니고, 그 목표를 향해 속도를 요구하게 된다.

공간적이든 시간적이든 직선은 접촉의 과정이 생략된다. 구불구불 흐르는 천이 우리에게 주는 것과 직선으로 흘러가는 물이 우리에게 주는 것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서로 뒤섞이는 사이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관계가 없어지고 자아의 독립만을 요구한다. 이 독립은 접속능력이 제로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단절과 고독으로 나타난다. 자의식의 과잉과 권태는 그 결과로 드러난다.

이러한 직선적 흐름은 근대에선 화폐와 성욕, 그리고 죽음이라는 욕망으로 표현된다. 그 욕망은 매혹이라기 보다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이 직선을 향한 맹목적 순정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그 방법의 탁월한 예가 바로 변이와 생성을 잘 보여주는 장금이다. 그녀의 열정과 사랑은 사람간의 막혀 있던 벽을 허물고 떨어져 있던 간격을 메운다.

만약, 현재 당신이 버티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나 고독하고 우울하다면, 또는 세상이 권태롭게 느껴진다면, 장금이를 떠올려 보자. 직선으로 내달리지 않고 구불구불 흘러가며 뭇생명(사람)과 조우하며 함께 웃음을 나누었던 장금이의 열정과 사랑을 배워보자. 그래서 각자의 몸에 변이가 일어나고 새로움이 생성되도록... 그 변이와 생성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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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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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익부 빈익빈의 극단 상황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굶어죽는 사람과 먹을 것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으로 표현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영화에선가 나왔던 맛을 음미하기 위해 나온 음식 중 한 입만을 먹고 물린다는 사람은 부의 표상일 것이며, 쓰레기 더미를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 입에 넣었다 식중독 등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사람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요지경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은 음식이 굶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이지만 실제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뭄과 홍수같은 자연재해, 빈민국의 후진적 정치형태, 턱없이 부족한 구호단체의 지원, 전쟁이나 테러 등의 직접적인 이유도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실제 지구가 생산하고 있는 식량의 절대량은 모든 지구인을 살리고도 남을 수준이라는 점에서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 부차적인 문제가 부차적인 문제에서 끝나지 않은 것은 시장 제일주의와 함께 그 시장을 통해 이윤을 챙기려는 다국적 기업과, 독재 지도자 등의 부패한 부유층 등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책은 이런 이야기들을 굉장히 쉽게 풀어쓰고 있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듯 써내려간 글 덕분이다. 그럼에도 설명이 부족한 것은 다국적 기업이 빈민국의 지도층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으며 1차적 식량에 대한 권한을 갖는지, 그리고 그 혜택이 어떻게 주어져 작동되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와 분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제의 근원을 세계 경제 질서로 밝히는 근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비약된 느낌이다. 이런 부족한 부분은 '굶주리는 세계'라는 책을 참고하면 좋을듯하다.

아무튼 책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이렇다.

어떤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144쪽)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그런데 이 사회정의는 한 국가내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국적성과 독점성에 대한 충동은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존재했다. (중략) 금융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등의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한 것이다. (159쪽)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161쪽)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정의를 논할 것인가? 이제 아무도 그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손, 세계시장밖에는...(163쪽)

그래서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손을 놓고 시장에게 놀림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169쪽)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171쪽)

그렇기에 우리의 희망은 새롭게 탄생할 전지구적인 민간단체에 있다고 책은 말한다.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만이 워싱턴 합의와 인권 사이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서 찾아오는 이 무력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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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가 하류로 전락한다 - 한 일본 지식인이 전하는 양극화의 미래
후지이 겐키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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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80의 사회를 넘어 점차 10대 90의 사회로 넘어갈 것 같은 조짐은 여러 곳에서 보여진다.

이 책은 이런 흐름은 세계화에 의해 피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10과 90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벽이 낮아서 누구나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런 가능성을 위해 정부나 사회가 기본적인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계층을 넘어 계급 사회가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계급이라면 환영할 만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런 열린 가능성이 자본주의를 끌어가는 힘이 되 왔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말하는 것은 이런 가능성이 점차 닫혀지면서 발생할지 모르는 변혁이나 혁명의 위험성이라는 위기의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하니 이 책을 보면서 계속되는 생산성의 발달이, 또는 경제발전이 지구환경은 물론 사회까지 무너뜨리므로 세계화를 거부한다거나 자본주의 이외의 모델을 생각해보자고 한다면 그 전제부터가 다르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전제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같은 전제하에서 자유로운 계급간의 교류가 가능한 사회라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제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듯 싶다.

저자도 이것을 인식하고

글로벌화는 최종적으론 세계 경제의 평준화를 초래한다. 즉 개발도상국에는 직장과 수익 증대를, 선진국에는 공동화와 수익 감소를 가져오고 종국에는 전세계의 물건이나 서비스가치가 같아진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요소가격 균등화라 부르는데, 여기에는 당연히 임금도 포함돼 있다. 임금 평준화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발전 지역의 노동자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얘기가 복잡해진다.(77쪽)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여러분이 생활 수준의 상승을 원한다면 결국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사회에서 승리하는 길이다.(78쪽)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계급간의 벽을 넘나들기 위해서는 실력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력 지연 혈연 국가 문화 인종 등등 여러가지 차이가 차별로 굳어지는 대신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된다면 불평등한 사회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누구나 똑같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미국과 같은 풍부한 장학금 제도나 복지국가의 제도적 장치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실력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지만 상류로의 진입이 가능한 사회, 그리고 그 진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생각.

저자가 제시하는 상류로 향하는 10가지 방법을 적어본다.

1. 해외명문대학에 유학하라. 2. 공무원은 절대 되지마라. 3. 기업에 취직하려거든 세계를 상대로 기업활동을 하는 곳을 선택하라. 4. 최소한 영어회화, 그리고 영어 이외의 외국어도 1개 정도는 해야 한다. 5. 전문직을 선택하고, 세계 공통의 자격을 취득하라. 샐러리맨이 아니라 비지니스맨이 되라. 6. 컴퓨터 지식과 기술을 익혀라. 7. 해외 뉴스를 주목하라. 8. 금융, 경제 지식을 익혀라. 9. 온리 원 따위의 가치관을 버려라. 10. 애국심을 가져라.

10번이 조금 뚱딴지 같은 소리처럼 들리지만 아무튼 이 방법을 읽고 정말 실용적인 사고라고 생각이 드는가. 지금까지 나태하게 살아온 나를 꾸짖게 만드는가. 아니면 이런 사회로의 방향을 거부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행동을 모색하고 싶은가.

(영국은) 계급이란 반드시 부의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인생을 보내는 방법의 문제라는 의식이 강하다.(176쪽)라는 말을 다시한번 되새겨봐야 할 듯싶다.

이 책은 쉽게 부정하지도, 또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는 중류의 소시민들의 약점을 잘 파고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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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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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게 되는 두가지 질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카메라가 대중에게 급속히 보급되면서 그림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한 장면을 그대로 정지시킨채 또는 머릿속에 담아두고서 붓을 휘두르는 대신, 그 순간 손가락만 까딱하면 파일의 형태로 눈앞에 재현되는 시대에 그림이 처하는 위치는 굉장히 불안할 듯싶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미술은 대중이 처하고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굽어다보고 있다. 수십억, 수백억이라는 몸값을 지닌채 거만한 몸짓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현대미술을 대하는 대중은 왠지 주눅이 들어있다. 무엇인가 위대한 것이 숨어있을것 같은데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혹시 알 수 없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애기하는 걸 보면... 그러니까 저 뒤에는 뭔가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 분명해...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중략) 아름다움은 오늘날의 예술에서 죽어버렸다. 아름다움은 백년, 혹은 그 이상 된 작품이나 예외적인 작품에서만 살아 있다. 현재라는 공간은 쓰레기 하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31쪽)

정말 속 시원하다. 현대의 추상화를 보면서 또는 설치미술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던가. 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눈에 이해가 되던가. 순전히 비평가나 작가의 구라(말솜씨)로 빚어낸 예술은 아닐까 의심도 간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문외한이라는 자격지심이 이런 비난을 함부로 뱉어낼 수 없게 만든다. 한마디로 "넌 그러니까 무식해"라는 소리가 두려워 그런가보다 라고 인정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저자인 에프라임 키숀은 과감히 속엣말을 꺼낸다. 간질간질하던 곳을 속시원하게 긁어준다.

실제로 지적인 속물근성은 한도 끝도 없다. 최근 나는 한 오페라 공연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지휘를 하는 15분 내내 아무런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 그리고 진보적인 관객들로부터는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71쪽)

지적 허영심은 꼭 미술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음악을 포함한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허영심을 이용해 비평가와 작가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현학적 어휘를 구사해 그림의 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다. 그림은 각 가정에서 소장할 수 있는 생활예술을 뒤로하고, 투자를 넘은 투기개념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림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림이 지니고 있는 금전적 가치가 현대미술을 지탱하는 힘이 된 것이다.

요셉 보이스가 전적으로 즐겨쓰던 "그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표현처럼 진정 예술적인 것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이해할 수 없는 허튼소리만을 지껄였다. (132쪽)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배려나 애정이 빠지게 되면 이기주의나 오만, 허영심, 아니면 효과만을 노리는 마음만이 중요하게 된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객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아름다움은 예술로부터 추방당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아직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교양을 지닌 식자층이다. 이 겁 많은 식자층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거만한 직업적 평론가들에게 변함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시종 난처한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168쪽)

예술을 끌어내리자. 이상하고 기이한, 그래서 폭등하는 몸값을 지니면서 전문가인체 하는 사람들만의 예술이 아니라, 내 옆에서 호흡하고,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에 눈뜨게 만들며,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도록, 예술을 말이 통하는 친구로 곁에 앉히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솔직한 고백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족
물론 그러면서도 혹시 아마추어의 눈에 프로의 실력이 비쳐보이겠는냐는 질문을 쉽게 떨쳐낼 수는 없었다. 당구 300의 실력자가 선보이는 3쿠션을 30의 초보의 눈에는 한번의 쿠션으로밖에는 비쳐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위의 우려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꼭 하고싶다. 30의 초보자도 3쿠션의 현란한 모습을 천천히, 차분하게 설명해주면 다 이해한다. 그런데 대중을 벗어난 예술은 도대체 난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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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밑의 경제학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지음, 유주현 옮김 / 이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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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00원만 들이면 캔이나 페트병에 든 녹차를 즐길 수 있다. 어디를 가도 똑같은 맛을 느낀다. 하지만 녹차잎을 얼마동안 우려내는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거나, 발효나 덖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 다양한 녹차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는 없다. 이 책은 후자의 풍요로움을 느끼자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끌고 온다. 음식이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고대엔 아시아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세계 경제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유럽과 북미로 권력이 이동하고, 다시 아시아로 그 중심이 옮겨지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 그것이 음식의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힌다. 즉 현재 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식이란 맥도널드와 콜라로 대변되듯 경제의 주도권을 쥔 쪽의 음식이 세계에서도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바라보면 현재 스시를 비롯해 일본 음식이 세계에서 점차 뻗쳐나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가 일본인임을 생각한다면 약간 수상스럽기는 해도 꼭 틀린 말은 아닌듯 싶다.

저자는 음식을 크게 산업적(자원) 측면 문화적 측면으로 나눈다. 이것은 다시말하면 효율, 생산성, 단일성을 최우선시 하는 영미적 조류와 비효율적이긴 해도 긴 안목으로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소중히 하는 아시아적 조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효율보다는 비효율을 통해 얻어지는 풍요로움을 위해 패스트푸드적 세계화에 반대하고 문화적인 음식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효율을 주장하는 음식으로 인해 광우병은 물론 당뇨와 비만 등 건강의 문제와 환경 훼손과 오염의 문제 등이 야기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진짜 원재료의 다양한 맛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그 이유이다.

그럼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

음식문화라는 것은 부가 집중되는 곳에서 발전한다. 유럽의 식문화 특히 프랑스의 식문화가 발전한 것은 절대왕정의 성립으로 부의 집중이 일어난 15세기 이후다. 프랑스의 경우 자체의 음식문화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공주들이 프랑스 왕과 결혼하면서 그들의 음식문화를 가져옴으로써 보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성립된다. 이런 절대왕정 속에서 왕족과 귀족이 독점하던 그림, 음악, 음식 등이 시민혁명을 거쳐 궁정 밖으로 나온다. 이때부터 레스토랑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반면 중국의 경우엔 한나라 때부터 음식점이 발달했다. 음식점이 있다는 것은 서민의 음식이 풍부했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 식문화의 특징은 의식동원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도교의 관점으로 식이라는 것이 동시에 약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엔 중국에서 수입된 불교의 영향으로 고기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다.

이렇듯 중세 유럽시절까지 가난했던 이곳이 부유한 아시아를 침략하는데 성공한 이유는 무얼까. 직접적으로는 무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무력을 뒷받침으로 해서 무역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세 유럽제국의 흥망을 결정한 것은 무역의 이익을 누가 획득하는가에 있었다. 영국은 1600년에, 영국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1602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아시아 무역과 식민지 경영에 나선다. 그 기본은 플랜테이션에 있는데, 이를 통해 식량 생산과 식량 무역을 독점해 간다.

십자군은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지배하기 위해 시작한 원정이었지만, 실제로는 문화 수준이 낮았던 나라들이 무력을 통해 이슬람제국을 공격하여 재화와 미술품을 수탈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 국내의 전쟁을 아시아로 가져간 것이 십자군이며, 이것이 후일의 식민지주의인 것이다. 후기 십자군 원정의 배후에는 이슬람에 지배당하고 있던 여러 도시국가들의 무역의 통로를 회복하고자 했던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 독립의 계기도 홍차다. 보스턴 차 사건이란 홍차에 매겨진 고액의 관세 때문이다. 미국의 대공황도 마찬가지다. 1차 세계대전후 농산물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 버블 상태가 된다. 1930년대가 되면서 유럽의 농산물 생산량이 안정을 되찾고 신대륙은 재고량이 늘어 가격이 폭락된다. 이로 중남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대공황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다.

신대륙발견, 플랜테이션 등에 의한 상품의 대량 생산과 그 교역의 지배는 근대 유럽의 기초가 된 것은 물론 아시아를 식민지화하여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기초가 된다. 그 후의 발전 방향은 프랑스의 문화형과 영미형의 자원형이다.

미국은 제조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구조의 과감한 전환을 꾀한다. 그들은 패권국으로서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규칙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하여 제조업에서는 열세가 되어도 금융의 힘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한 시스템적인 수법이 식의 분야에서 패스트푸드로 나타난다.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와 대중 지향의 인공음료인 코카콜라 등을 만들어내고 슈퍼마켓, 편의점이라는 대량판매의 소매 시스템을 구축하고 쇠고기와 브로일러 등을 얻기 위해 가축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만든 것도 미국이다. 가히 식의 공업화라 할 수 있다. 자동차 메이커가 부품회사를 지배하듯 상업자본이 농업과 농민을 지배하는 것이다.

1970년대 프랑스 요리는 누벨퀴진이라는 운동을 통해 크게 변화한다. 페르낭 푸앵, 폴 보퀴즈 등으로 대표되는 궁정요리의 전통을 계승하여 버터와 크림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손이 많이 가는 소스를 사용한 중후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누벨퀴진의 영향으로 음식을 소량씩 작은 접시에 아름답게 장식하며 재료의 맛을 살리려는 스타일로 변해가고 있다.

이외에 아시아와 서양의 식문화의 차이점 분석도 재미있다.

중국 한국 일본은 곡물을 발효시킨 곡장이 일반적인데 비해 동남아는 생선을 발효시킨 어장이 일반적이다. 특산 향신료나 고추, 어장과 같은 조미료를 사용하여 독자적 식문화를 전개시켜나간 곳이 베트남, 태국, 미얀마다. 더욱 남쪽으로 내려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쌀문화이긴 하지만 식사에 코코넛이 반드시 들어간다. 양념의 중심은 고추와 코코넛, 그리고 설탕으로 약간 달며 간장을 별로 쓰지 않는다.

서양의 식문화가 서양요리의 모습을 띤 것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부터다. 4대 향신료라 불리는 인도의 후추, 동남아의 계피, 정향, 육두구, 이것들은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건너가 매우 고가에 거래됐다. 향신료가 귀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고기의 방부제로서의 효과 때문이다. 또 흑사병 등 역병에 대한 약이라는 믿음에서 귀하게 여겨졌다는 설도 있다. 이탈리아 식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교역에 의한 부의 집중과 동양으로부터의 영향 이외에도 상업국가적인 면이 강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부유한 시민계급의 발달로 풍부한 요리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신선한 고기와 생선을 좀처럼 먹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향신료를 필요로 했다. 아시아로의 침략은 이 향신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농업의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면 공업화를 위한 노동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농업의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나라는 근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시아가 쉽게 유럽에 침락당한 것은 식이 풍부했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엔 오히려 식의 생산력을 키워놓았기 때문에 침략을 막을 수 있었다. 공업화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항할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정리가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많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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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1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국부론 이야기군요.
현대의 식량전쟁도 거의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약육강식의 대표가 바로 밥상 쟁탈전인데, 모든 인류의 전쟁이 먹는문제로 귀결되지요.
유럽의 척박한 토지와 기후 조건하에서는 식민지 개척이 당연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책과 더불어 환경적 관점의 식민지 건설이나, 전쟁 관련서적을 읽어두면
좋은 한 세트가 될 듯^^

하루살이 2007-06-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도 도움이 되겠죠? 음식의 관점이라는 전제하에서 바라본 이야기지만 꽤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슬로푸드와 같은 것도 단순히 음식 문화운동뿐만이 아니라 경제와도 큰 관련성을 띠겠죠. 우리도 이런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근본적 운동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공장식 된장이 아니라 시골 된장 살리기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