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연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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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농업인은 제 농산물을 가능한 한 비싼 값에 남이 사가도록 떼를 쓰는 속된 장사꾼이 되어 있다. 하락한 쌀값을 올릴 욕심으로 농자재나 포장장법을 달리해서 상표 또는 품질인증서로 자기만 팔아먹겠다고 안달들이고, 농약의 공포 때문인지 정말 안전한 농산물인가 의심하면서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대로 믿고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짓기의 모든 것은 자연에 담겨 있다. 그 자연 안에 흙이 있고 밥이 있고 온갖 목숨 가진 것들의 어울림이 있다. 선진문명이란 이름으로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흙을 뒤집고 온갖 비료와 농약으로 자연에 칼질을 해대는 지금, 결국 그 칼날은 우리 목숨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20쪽 

작물은 자연이라 인위적인 간섭함이 없을 때 본래의 모습대로 존속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의 자생력을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 흙과 씨앗이 만났을 때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은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남 따라 장에나 가고 본다. 모든 작물에는 무조건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야 한다고 주입시켜 온 교육의 힘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화학 약품을 투입하면 작물보다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자생초가 성행하고, 작물은 뿌리 힘이 약하고 웃자란 탓에 미미한 외부 자극에도 견딜 수가 없어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기 힘들다. 내가 먹지 않는 풀은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적당히 자생초가 있어야 작물도 잘 자랄 수 있다. 69쪽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두 손으로 받아들어야 할 만큼 컸던 꽃송이가 인위적인 교배로 크기도 작고 맛도 떨어지는 개량종으로 둔갑된다. 억지로 가꾸고 노력하지 않아도 불필요한 간섭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할 일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185쪽 

한국적 유기농법이 과학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또 다른 쪽으로 보면 유기물을 흙 속에 넣었을 때 발생되는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식물의 생장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되는 것이다. 그나마 외국에서 수입한 유기물이 우리 땅에 얼마나 이로울까.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식물의 먹이만큼은 널려 있다. 그런데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과정이 느려 처음에는 더디게 자라지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가 힘들다. 대신 우리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게다가 먹이인 무기물이 많은 곳이라면 그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게 틀림없다. 농사 역시 화학농법으로 농사짓던 땅에서 태평농법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화학성분이 물씬 배인 흑을 되살리려면 지켜보고 기다릴 수 있는 흙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보여주고 설명해 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여전히 농약을 손에 든 이들에게는 자연생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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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 An Inconvenient Trut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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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세상에 절대선은 없을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란 것도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환경보호는 이 시대의 명백한 선으로 보인다. 만약 누군가가 "환경보호는 선진자본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술수다"라고 말한다면 필시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 또한 그렇기에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쉽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뒤늦게 본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은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의 탄소줄이기 강연을 쫓아가며 그의 어릴적 풍요롭던 지구 모습과 환경재앙에 신음하는 지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앨 고어는 이 환경운동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가 핵심으로 내세우는 지구온난화의 근거는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기온상승의 상관관계다.

지구의 온도변화는 주기적으로 변해왔다. 가장 최근의 온난화는 중세시대로 불과 몇백년 전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기적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든다. 하지만 그 증가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은 그 한계치를 뛰어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현재 직면하고 있는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주기적 변화의 과정이 아니라 재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논문, 책들이 나오면서 당연시 여겨졌던 잿빛 미래와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서의 환경운동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모으기도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쿨잇> <기후커넥션> 등등의 책들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들은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순환의 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또는 인간이 끼치는 영향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느지의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유보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앨 고어가 내세운 이산화탄소와 기온상승과의 관계도 명백한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다양한 변수들을 내세운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석유사업체나 기업체들의 로비로 이루어진 연구들로 오해(?)받기도 한다. 또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선진국들의 탄소배출권, 녹색산업을 통한 이득의 선점을 위한 논거로 비쳐지기도 한다. 

지구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다르다. 이 사실을 접하고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방식도 차이를 보일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불편한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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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개인적으론 진실의 여부를 떠나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문명이 단지 지구온난화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농촌의 생존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소위 녹색혁명을 보더라도 이것은 기아를 물리치는데 다소 도움이 되긴 하지만, 농민의 수익보다도 종자와 비료, 농약을 파는 다국적 곡물 기업의 배를 살찌우는데 더 기여한다. 이것은 단지 이들의 수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료사업은 화학 사업으로 온난화의 주 원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즉 온난화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온난화와 상관없이도 화학연료를 쓰는 현대문명의 폐해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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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팅컬처 - 거짓과 편법을 부추기는 문화
데이비드 캘러헌 지음, 강미경 옮김 / 서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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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사회 전역에 만연해 있는 속임수 문화를 반영한다. 원래 속임수는 들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 때문에 그런 행동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미국인이 많은 분야에서 갈수록 속임수에 기대고 있을 뿐 아니라, 거기에 대해 점차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들 그렇게 할 때 또는 다들 그렇게 한다고 여겨질 때 속임수 문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유시장의 도덕률이 확산되면서 사기의 유혹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경쟁이 미덕이라면, 탐욕도 미덕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많은 극한 행동 또한 미덕이다. 원칙적으로 힘이 곧 정의다 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현재 우리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으며, 신종 사기 대부분이 소득과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성공하는 계층의 막강한 영향력은 레오나 험슬리가 하찮은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규는 자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한 생각을 낳았다. 이러한 오만은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도덕적으로도 우월하다고 여기는 문화가 만들어낸 그릇된 망상에 근거한다. 아울러 현실에 근거하기도 한다. 성공하는 계층은 항상은 아니더라도 속임수를 쓰고도 종종 피해간다. 첩멀을 ㅂ맏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 대한 여론을 유리하게 돌려놓은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다. 데이비드 사이먼이 엘리트의 일탈이라고 명명한 행동을 저지르고 나서 명예를 회복하는데 드는 수고는 최근 들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손익계산만을 문제 삼는 상업주의가 부자와 유명인사의 성취를 찬양하면서 언론의 임무를 비판 어리 ㄴ취재보다 선정 보도에 치중하게 만든 결과다.  

 

경제 사정이 넉넉지 않은 서민들에게 속임수를 써서라도 수익을 올리라는 압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싶은가? 답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안정 앞에서 정직성을 희생한다.  

사회과학자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의 원인을 둘러싸고 오래전부터 갑론을박해왔다. 이 문제와 관련해 과학기술의 변화와 세계화가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학자들은 기업을 인ㅅ핵하고 야비하게 만들고, 결국 형평법 폐지로까지 이어진 성과주의 사업 전략을 비난하기도 한다.  

 

승자와 패자 사이의 극심한 격차는 개인ㅇ츼 정직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승자가 그 어느 때본다 큰 몫을 책기고, 패자는 일자리를 잃거나 돈을 벌어보야 생활비에도 미칯지 못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대가를 치러햐 하는 사회에서 점점 많은 사람이 승자가 되기 ㅜ이해선 무슨 짓이든 기꺼이 하려고 든다. 이는 속임수 문화는 이해하는 데 매ㅔ우 중요한 요소다. 실패에 따르는 대가가 클수록, 시어스의 수리공이나 오늘날의 수많은 변호사처럼 심한 압력을 느낄 수록 속임수의 유혹은 강해진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뒫따르는 보상이 클수록, 속임수가 갑부로살아가느냐 그날 벌어 그날 살아가느냐의차이를 만들어낼수록 그 유혹은 강해진다. 상황 인식이 이런 식일 경우 사람들은 정직성 따위는 쉽게 내팽개칠 것이다.  

자유방임주의 이데올로기는 불평등은 원래 당연하지만 모두가 부자가 된다면 더욱더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큰 폭의 소독 격차는 자기가 버는 돈의 액수에 만족해야 마땅한 사람들의 정직성에 도 악영향을 미친다.  

돈, 사회적 지위, 행복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개념, 즉 사람들은 급료 액수보다 경제 서열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에 더 많이 신경쓴다는 개념을 뒷받침해준다. 생물학자와 건강 전문가의 연구 결과 역시 서열이 낮을 수록 자긍심에 피해를 입기 쉬우며, 스트르스에0 노출될 확률이 높아 건강을 해칠 염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장기간에 걸쳐 수천 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국의 한 유명한 연구는 음식을 주의하고 금연을 했는데도 지위가 낮을 수록 빨리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스트레스와 낮은 업무 권한이 수명을 단축시킨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불신의 증가에 대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어왖지만,학자들이 불신을 불평등과 연관시킥시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 둘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느 ㄴ견해는 어느 정도는 상식에 근거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고, 체계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경우 세상을 비관하면서 원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반대로 신뢰의 감정은 미래를 낙관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의를 품을 때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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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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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닐 부어맨은 한때 명품중독증에 걸렸다. 사람을 대할 때면 그 사람이 무슨 옷과 신발, 가방 등을 걸치고 있는지로 캐릭터를 판단했다. 자신 또한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 브랜드의 종류를 바꿔가며 스타일을 연출했다.

그러나 어느날 이런 자신이 허망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접하게 됐다. 행복해지기 위해 명품을 구입했지만 행복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자꾸 더 불안해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브랜드 제품을 다 불태워버리기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블로그로 옮기기로 했다. 그러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유명해지기 위해 별의별 짓거리를 꾸민다라거나 왜 태우느냐 그대신 기증해라 라거나... 비판을 넘어선 모욕적인 언사도 많았다. 물론 그의 행동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자 저자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이라도 다시 명품과의 이별을 철회하고 친하게 지내볼까.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한다. 나는 왜 허망함을 느꼈을까 하고.

그 과정에서 광고라는 것의 속성을 접하게 된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꽃이라 했으니 어찌보면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알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현재 처한 자신의 상황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이상적인 모델이니 이미지를 통해 상품을 구입했을 때 자신도 그들처럼, 또는 그 이미지처럼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광고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환상을 쫓아 소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소비는 행복의 그림자일뿐 행복 그 자체는 아니였다. 쫓아가면 다시 달아나고 또 쫓아가면 한발자국 멀어져가버린다.

그래서 저자는 명품 브랜드를 다 불태워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을 구입해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과정 또한 결코 만만치않다. 브랜드 없는 상품을 구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품을 사기 위해 벌어야 하고 벌기 위해선 일해야 하고, 그 스트레스는 명품으로 푸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보니 세상을 달라져 보였다. 덜 쓰고 덜 일하고 늘어난 시간은 가족과 보내거나 자기계발에 쓴다.

그런데 욕망을 자극하는 소비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을까. 소위 미래 산업의 하나인 디자인 시대를 거부하는듯한 인상을 풍기는 이 말은 미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간다. 디자인이라는 것 또한 인간의 필요인가 아니면 헛된 욕망인가. 그러나 책을 잘 읽어보면 이 질문은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 디자인 또한 우리가 살아가며 필요로 하는 소중한 것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것에 브랜드가 붙으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바로 그 과정에서 허영이 깃들고 욕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영과 욕망이 자본주의를 힘차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영양분이 된다. 누구나 갖고 싶은 펜트하우스, 또는 보트에의 욕망말이다. 희귀하면 희귀할 수록 더욱 더 갖고 싶은 욕망이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

과연 우리는 그 욕망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날려버릴 수 있을까. 저자의 퍼포먼스가 부싯돌의 작은 불꽃이라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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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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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그래서 과감히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선언한다.

저자는 명품 중독증에 걸렸다. 어렸을 적 브랜드없는 신발과 옷 때문에 왕따 당한 경험이 그를 명품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프라다의 여주인공처럼 차츰 명품에 젖어든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날마다 몸에 걸치고 다니는 브랜드 로고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23쪽)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명품을 걸친다고 해서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은 한낱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은 물론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적용하는 나의 가치 기준이 알맹이 없는 허망한 것들이라는 자각의 순간이 내게 닥쳐오고야 말았다....나는 누가 뭐래도 행복했어야 마땅하다... 이런 저런 친구도 많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직업도 있고, 유명 브랜드의 명품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허무함을 느낀다. 속았다는 생각이든다. 환상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41쪽)

그래서 그는 과감히 명품으로부터 벗어나기로 작정했다. 어떻게. 마치 담배를 끊듯, 술을 끊듯 한번에 확실하게.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브랜드제품을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블로그에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걸 왜 태우냐? 차라리 기증하라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쇼맨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자는 그래서 갈팡질팡한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하며 후회도 든다. 그러나 차츰 자신이 옳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광고의 목적은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광고 속 제품을 사면 그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부추긴다.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부추긴다. 광고는 불안감이라는 것 때문에 먹혀들고 효과를 낸다... 광고는 자기들이 광고하는 그 물건을 가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불안감을 조장한다.(44쪽) 

상품을 사람들의 정서나 느낌과 연결시키면 사람들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버네이즈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대해 파악하면 전혀 엉뚱한 물건을 갖고 싶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88쪽)

사람들이 브랜드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충족시키고자 하는 정서적 욕구 대신 해로운 정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탐욕, 대인기피증, 열등감, 질투심 등을 초래할 수 있다. (152쪽)

당신이 추구하는 행복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우리는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절정의 행복을 맛보기도 하지만 슬픔의 나락으로 추락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그 양극단의 중간쯤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기대할 수 있고, 또한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는 결국 일종의 만족감입니다. (173쪽)

그 만족감을 위해 사람들은 브랜드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 만족의 순간을 찰나에 그치고 만다. 보다 새로운 보다 좋은 것을 찾도록 만드는 광고들에 휩싸여 불안감만 커지게 될 뿐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욕구에 의해서 소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욕구라는 것은 감성적인 브랜드 광고에 의해 교묘히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210쪽)

소비문화는 오늘날의 대량소비사회에서 강조되는 소유가 곧 존재라는 강박관념과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로 특징지어지는 소비의 사회문화적이고 경험적이며 상징적이고 이상화된 측면을 통해 가장 잘 조망해 볼 수 있다... 이상화된 이미지의 뉘앙스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들은 결국 물질적인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중심주제에서의 변형에 불과할 것이다.(248쪽)

명품중독증은 현대사회의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비문화란 곧 환경문제와도 직결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불필요한 소비를 용인하면서 각 가정 내 불필요한 등 끄기 운동을 통해 환경파괴 문제에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은 정상이 아니다.(300쪽)

그러나 사람들의 이성이나 도덕, 윤리에 호소한다 하더라도 감성적 측면에서 이미 마케터들에 의해 점령당한 소비자들은 그 행동을 쉽사리 바꾸지 못한다.

비록 대중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우려를 갖는다 할지라도 이 우려는 그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 애착마저 끊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304쪽) 그 무언가로 인해 소비자들은 원가의 수십 배가 넘는 과도한 가격이 책정된 제품을 계속해서 구입한다. 그것은 바로 브랜드에 대한 뿌리 깊은 감정적 애착이다. (308쪽)

그래서 저자의 행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명품 브랜드의 화형식. 이것은 그냥 쇼가 아니다.

소비를 위해 노동하고, 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소비해야하는 끝없는 악순환은 불합리하다. 노동의 강도가 클수록 우리는 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해야 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또 그만큼 더 노동해야만 하는 이와 같은 조건을 마르쿠제는 불행의 도취라고 불렀다.(315쪽)

마르쿠제에 있어 진정한 자유란 경제로부터의 자유, 일상의 생존경쟁으로부터의 자유, 그날그날의 생계유지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러한 삶이 불가능한 이유는 소비에 대한 감정적 의존 때문이다. (314쪽)

소비자로서의 자유를 행사한다는 것이 BMW나 벤츠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바람직한 소비 습관은 다름 아닌, 꼭 필요할 때만 소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박함에 기반을 둔 생활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325쪽) 우리는 더 단순한 형태의 삶으로 하향 이동해야 한다. 소비를 줄이면 자연스레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도 감소할 것이다. 그렇게 획득된 시간적 여유를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제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이야기로 들린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우리가 복잡한 삶을 사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3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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