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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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영화에선 갱단원들의 폭력을 묘사하거나, 그들의 흔들리는 심리에 초점을 맞추거나, 어떻게 갱 생활을 시작해 몰락해 가는지의 인생사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갱이 움직이는 지하경제에 대한 모습을 얼핏 살펴볼 수 있는 영화들도 있다. 특히 이들이 지하경제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와 떳떳하게 사업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그리는 작품들도 꽤 있다. 그 와중에 갱들이 정치인들과 어떻게 부패된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지, 또 천적이라 할 수 있는 경찰과도 상부상조하는지, 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통제하는지가 보여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괴짜 경제학>이라는 책은 갱들이 어떻게 지역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지역 경제를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갱들의 묘사가 결코 허황된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변하듯이 말이다. 대학원생인 저자는 캠퍼스 안에서의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갱들의 생활상을 통해 사회학이 다루려고 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찾아간 빈민가에서 갱 두목과 친구가 되고, 아파트 주민들과 친분을 맺고, 직접 갱 두목으로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이런 그의 경험은 살아있는 사회학을 만들어낸다. 다만 조금은 어두운...

이 대화를 통해 나는 시카고에서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선 드는 소감은, 이 도시가 작동하는 기존 방식에 따른다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진보의 기회는 거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런 운명론은 나에게 생소했다. 풍요로운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한 사람이라면, 게다가 나처럼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에게도 서로의 차이, 인종적 차이까지 해소하는 길을 찾을 수있으리라는 기본적인 믿음과 미국의 제도가 그것을 위해 작동하리라는 확고한 신뢰가 있었다. 나는 협소한 내 경험치의 한계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25쪽 

이들 많은 여성이 1960년대에 시민권을 주장했고, 1970년대에 흑인의 피선거권을 위한 운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아주 진지하게 공동체를 위해 싸우고자 했다. 하지만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는 동안 갱단, 마약, 빈곤으로 인해 처지가 한층 악화되면서 가족을 건사하기도 힘들어졌다. 그 무렵, 주택공사는 부패하다시피 해서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경찰은 대체로 반응이 느렸으며, 힘 있는 강한 여성들은 철저히 주류에서 밀려났다. 267쪽 

저자의 현실 통찰은 과연 문제로 가득찬 빈민가의 생활을 바꾸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갱과의 협력 아닌 협력 속에서 나름대로의 경제 생활을 유지하던 빈민가 사람들에게 변화는 꼭 좋은 것만을 의미하는 걸까.(매춘과 마약, 폭력 속에서 어떻게 시스템이 유지되어 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듯 재미있다) 저자의 사회학 논문이 절망으로 가득찬 빈민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넬 방법을 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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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
빈스 에버르트 지음, 조경수 옮김 / 이순(웅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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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연달아 번개에 맞을 확률과 거의 같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로또에 당첨된 사람은 주위에 많은데 번개를 두 번 맞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확률이 잘못된 것일까. 이것은 사람들이 로또는 당첨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번개는 맞지 않기 위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 때문이다. 번개가 내리칠 때 마치 로또에 당첨되고자 하듯이 모든 사람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면 우리는 주위에서 번개를 두번 연달아 맞은 사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책 '네 이웃의 지식을 탐하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것의 진짜 의미를 파헤쳐보고자 하는 책이다. 과학적으로 진지하게 라기 보다는 논리적이면서도 다소 엉뚱한 그래서 재기발랄한 유머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다. 자, 그 재미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자.

착시가 일어나는중요한 이유 가운데하나는 외부 신호의 처리다. 사람의 망막에는 약 1억 3000만 개의 수용기가 있지만, 시신경이 전달할 수 있는 정보는 100만개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시각적 현실의 99퍼센트는 뇌가 스스로 대충 만들어내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능력이지만 이것은 우리 뇌의 큰 단점이기도 하다. 뇌는 구조와 질서가 전무한 경우에조차 구조와 질서를 인지하고 그로부터 법칙성을 유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판적이 되고 뭐든지 다 믿지는 마라. 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어느 정도 자의적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다. ..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뇌는 현실을 그럴싸하게 속여 믿게 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이런 속임수를 알아차리는 능력도 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에서 다루려는 주제다.라고 책은 목적을 밝히고 있다. 

사고의 오류는 대부분 논리의 오류가 아니라 편파적 지각에서 기인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알아내려면 현실과 대조해봐야 한다. 바로 이것이 과학의 기본 사유이다. 과학적 사고는, 진부하게 말하자면, 추측을 검토하는 방법이다. 내가 냉장고에 아직 맥주가 있을지도 몰라 라고 추측한 뒤에 사실인지 확인해본다면 나는 사실상 이미 초기 형태의 과학을 행하는 것이다. 반면에 신학에서는 대개 추측이 검토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냉장고에 맥주가 있어 라고 주장하기만 한다면 나는 신학자다. 만약 확인해본다면 과학자다. 확인하고 맥주를 발견하지 못했는데도 맥주가 안에 있어 라고 주장한다면 비교도이다. ... 그러나 설령 가능한 실험을 모조리 다 했다고 하더라도 빌어먹을 냉장고 안에 실제로 맥주가 있는지 결코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 일말의 의심이 늘 남아 있다. 어떤 실험을 하건 실제의 작은 일부밖에 볼 수 없기 떄문이다. 그래서 과학에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90쪽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은 공식과 숫자에 대해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식의 한계가 어디인지 배운다. 무엇보다도 과학이 의미를 배운다. 회의하고 비판적 질문을 던지고 권위자를 맹신하지 않는 것을. 그런 까닭에 과학과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에서 동시에 발생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96쪽

미신이 논리보다 매혹적인 건 확실하다. 이와 관련해 1970년대 동물행동학자들이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학자들은 3미터 길이의 우리를 만들어 그 끝에 먹이 그릇을 두고 실험용 쥐를 집어넣었다. 실험 방식은, 우리 문을 열고 10초 후에야 쥐가 그릇에 도착한다는 가정하게 10초 후에 그릇에 먹이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릇까지 가는 데 10초보다 시간이 덜 걸리면 그릇은 비어 있다. 몇번의 시험 끝에 쥐는 먹이의 등장과 경과시간 사이의 명백한 상관관계를 파악했다. 대개 그릇까지 가는 데는 2초 정도가 소요되었으므로 나머지 8초를 어떻게든 허비해야 했다. 그래서 가령, 괜히 세 바퀴를 회전했다. 그러고는 회전을 해야 먹이가 생긴다고 착각했다. 그 결과 쥐는 먹이 그릇으로 달려갈 때마다 번번이 똑같은 의식을 면밀하게 실행하게 되었다. .... 모든 일의 배후에는 보다 고귀한 이유가 있으리라고 넘겨짚고 싶어하는 우리의 뿌리깊은 욕구가 저절로 믿음을 낳는다. 나쁜 일이 닥치면 많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그 의미를 궁금해한다. 놀랍게도 잘 지내거나 나쁜 일이 전혀 없을 때는 의미를 묻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신비주의에 몰두함으로써 깊은 갈망이 충족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통제한다는 망상도 하게 된다. ... 어떤 말이나 방법이 믿을 만한지 혹은 수상한지, 어떻게 확실히 알아낼 수 있을까? 나의 충고는 이렇다. 비판적이 되고 증거를 요구하라. 109쪽

통계의 가장 흔한 오류는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혼동이다. 예를 들어보자. 치열교정이 사춘기의 원인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치열교정과 사춘기는 상관이 있다. 두 사건은 같은 시기에 발생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당한 위험이 잠재되어 있다.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고 해서 꼭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의 원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디오 게임과 폭력 행위, 황새 개체군과 출생률, 쓰레기 분리율과 이혼율을 보라. 약간만 술수를 쓰면 거의 모든 것들 사이에 상관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통계는 그릇된 해석의 온상이다. 118쪽

신경생물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염가 구매에 대한 기대가 대뇌지피질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전기 충격을 받으면 팔을 들어올리게 하는 대뇌 운동영역에 전극장을 갖다댔다. 그러고 나서 피험자들에게 팔을 든 이유를 묻자 그들은 들고 싶었으니까요라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우리도 어지간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에게 믿게 하기 위한 뇌의 영리한 피알용 개그이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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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100년도 전에 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이런 농담을 했다. 지성인이란 섹스보다 재미있는 일을 발견한 사람이다.... 원인은 인간의 강한 이해 욕구다. 우리가 뭔가를 이해할 때마다 뇌는 행복 호르몬 도파민 분비로 보상한다. 나 어땟어 란 질문에 뇌의 보상체계는 신체 자생의 마약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인류의 아득한 선사시대에 발생했고 성중추도 자리하고 있는 바로 그 뇌영역에서 일어난다고 추측된다. ...아이작 뉴턴은 금욕에 이르는 길은 무절제한 생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을 독서나 다른 사물에 대한 명상을 통해 딴 쪽으로 돌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했기에 결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231쪽

흥미롭게도 섹스는 우리가 재미를 보거나 해파리의 지적 결함을 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생충을 막기 위해 발달했다. 살아남기 위해 생명체는 빨리 변해야 한다. 박테리아, 바이러스,벌레 군단이 모든 생명체를 끊임없이 공격한다. 이 병원체들은 전부 똑같은 약점을 가진 자가수정하는 생물들을 만나면 질풍같이 전체 개체군을 파멸시킨다. 반면에 유성생식을 하면 남성과 여성의 유전자가 혼합되고 면역체계가 변한다. 따라서 기생충은 번번이 다른 조건에 직면하게 된다. 달팽이처럼 자가수정하는 몇몇 생물은 기생충의 습격을 받으면 순식간에 섹스로 전환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238쪽 
 

피를 나눠먹는 흡혈박쥐들의 예에서 보듯 진화생물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생물들이 상호의존하는 긴밀한 사회 구조에서 살 때 아주 저절로 도덕적 행동이 발생한다. 반면에 그런 구조가 없으면 서로 특별히 공평하게 대할 이유도 없다. 공평함과 도덕은 명백히 생물학적이며, 전혀 종교적으로 생겨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 엄격한 성도덕을 뒷받침하는 일반적인 종교적 근원들은 진짜 휴머니즘적 가치들과는 별 상관이 없고 오로지 권력 문제와 관련이 있다.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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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물리쳐라.행동요법에 따르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한 평가이다. 137쪽
 

모든 것이 넘쳐나고 누구도 자기 행동에 제대로 책임질 필요가 없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욕심을 부린다. ... 우리는저임금, 고용 축소, 환경 파괴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지만, 그런 짓을 몸소 실천하는 기업들의 제품을 구매한다. 174쪽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했다. 확신을 갖고 시작한다면 의문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기꺼이 의문을 갖고 시작한다면 확신으로 끝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과학의 광팬이다. 이데올로기나 종교, 세계관과는 반대로, 과학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차라리 스스로 생각하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남들이 하는 말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53쪽 

우리는 타인의 의지나 생각대로 생각하면서 마치 전기 충격이 아닌 자기의 의지대로 손을 들었다고 주장하듯 자신의 생각이라고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바삐 돌아가는 세상이긴 하지만, 잠깐만 멈추어 자기만의 생각을 해보자. (그런데 도대체 왜 세상은 이리도 바쁘게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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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연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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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기적의 사과'는 농약 한번 치지 않고 키워낸 사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풀들을 함께 '놔 둠'으로써 흙을 살려서 사과를 살리는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한다. 기적의 사과가 더욱 놀라운 것은 수확된 사과가 쉽게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적의 사과같은 이야기들이 우리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 농부가 키워낸 오이는 썩지않고 그대로 마른다. 농약 한번 거름 한번 주지 않았다. 오이가 자라난 곳의 흙을 검사해봤다. 연구원은 흙의 성분을 보고 도저히 작물이 자랄 수 없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이는 먹음직하게 자랐고, 게다가 썩지도 않는다.  

흔히 농약을 친 작물들은 잘 썩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다. 방부제에 목욕을 시키지 않는 한 농약의 도움을 받고 자란 작물들은 쉽게 썩고, 유기작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자연 속에 '방치'된 채로 자란 작물들은 한참동안 제 모습을 지켜낸다.  

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는 한마디로 자연에 맡기는 농사법이다.  

작물은 자연이라 인위적인 간섭함이 없을 때 본래의 모습대로 존속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의 자생력을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 

겨울에 볏짚을 깔아주는 정도가 인위적인 일이다. 애써 해충을 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의 자연농엔 해충이란 이름도 없다. 익충과 해충이란 인간적 관점에서 바라본 분류일 뿐 자연에서 결코 해충도 익충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물은 익충과 해충을 가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도움'으로 더욱 씩씩하게 자란다. 벼와 함께 피도 자라고 그 위엔 온통 거미줄 투성이인지라 남들이 보기엔 게으른 농부의 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란 벼는 강한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농사 역시 화학농법으로 농사짓던 땅에서 태평농법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화학성분이 물씬 배인 흙을 되살리려면 지켜보고 기다릴 수 있는 흙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언제부터 우리는 자연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것일까. 땅에 거름을 주고 비료를 주고 보살펴주어야지만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우리 머리속을 지배한 것일까. 

잘 썩지않는 과채가 신기하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 그 생각의 근원부터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태평농이라는 이름으로 작물을 재배해 온 저자는 우리 종자와 우리 흙에 대한 생명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 생명력에 대한 믿음을 과연 지켜내고 키워낼 수 있을까. 그의 성공적인 작물 재배법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농약과 거름이 판을 치는 세상이 하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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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이영문 지음 / 연화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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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농업인은 제 농산물을 가능한 한 비싼 값에 남이 사가도록 떼를 쓰는 속된 장사꾼이 되어 있다. 하락한 쌀값을 올릴 욕심으로 농자재나 포장장법을 달리해서 상표 또는 품질인증서로 자기만 팔아먹겠다고 안달들이고, 농약의 공포 때문인지 정말 안전한 농산물인가 의심하면서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대로 믿고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다... 농사짓기의 모든 것은 자연에 담겨 있다. 그 자연 안에 흙이 있고 밥이 있고 온갖 목숨 가진 것들의 어울림이 있다. 선진문명이란 이름으로 오직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흙을 뒤집고 온갖 비료와 농약으로 자연에 칼질을 해대는 지금, 결국 그 칼날은 우리 목숨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20쪽 

작물은 자연이라 인위적인 간섭함이 없을 때 본래의 모습대로 존속할 수 있건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의 자생력을 쉬 믿으려 하지 않는다. 흙과 씨앗이 만났을 때 그 안에 담긴 생명력은 감지하지 못하고 그저 남 따라 장에나 가고 본다. 모든 작물에는 무조건 비료를 주고 농약을 쳐야 한다고 주입시켜 온 교육의 힘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화학 약품을 투입하면 작물보다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자생초가 성행하고, 작물은 뿌리 힘이 약하고 웃자란 탓에 미미한 외부 자극에도 견딜 수가 없어 한번 쓰러지면 일어서기 힘들다. 내가 먹지 않는 풀은 무조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적당히 자생초가 있어야 작물도 잘 자랄 수 있다. 69쪽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두 손으로 받아들어야 할 만큼 컸던 꽃송이가 인위적인 교배로 크기도 작고 맛도 떨어지는 개량종으로 둔갑된다. 억지로 가꾸고 노력하지 않아도 불필요한 간섭만 하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존속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할 일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185쪽 

한국적 유기농법이 과학농법보다는 그래도 자연을 덜 괴롭히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또 다른 쪽으로 보면 유기물을 흙 속에 넣었을 때 발생되는 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식물의 생장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간섭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그리 내세울 만한 농법이 못되는 것이다. 그나마 외국에서 수입한 유기물이 우리 땅에 얼마나 이로울까.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미생물의 분비물이나 시체가 바로 무기물이다. 그렇다면 산불이 난 곳에는 무기물이 풍부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식물의 먹이만큼은 널려 있다. 그런데 산에 자생하는 나무나 식물은 초기 생육과정이 느려 처음에는 더디게 자라지만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공조림으로는 그다지 빠른 효과를 기대하가 힘들다. 대신 우리 농산물은 초기 생육이 매우 빠른 식물이다. 게다가 먹이인 무기물이 많은 곳이라면 그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게 틀림없다. 농사 역시 화학농법으로 농사짓던 땅에서 태평농법으로 전환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화학성분이 물씬 배인 흑을 되살리려면 지켜보고 기다릴 수 있는 흙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보여주고 설명해 주어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여전히 농약을 손에 든 이들에게는 자연생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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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 An Inconvenient Trut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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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세상에 절대선은 없을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란 것도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상대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환경보호는 이 시대의 명백한 선으로 보인다. 만약 누군가가 "환경보호는 선진자본국가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술수다"라고 말한다면 필시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 또한 그렇기에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쉽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뒤늦게 본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은 미국의 전 부통령 앨 고어의 탄소줄이기 강연을 쫓아가며 그의 어릴적 풍요롭던 지구 모습과 환경재앙에 신음하는 지구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앨 고어는 이 환경운동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그가 핵심으로 내세우는 지구온난화의 근거는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기온상승의 상관관계다.

지구의 온도변화는 주기적으로 변해왔다. 가장 최근의 온난화는 중세시대로 불과 몇백년 전에 불과하다. 이러한 주기적 변화를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으로 이산화탄소의 증가를 든다. 하지만 그 증가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은 그 한계치를 뛰어넘도록 만들었다. 그렇기에 현재 직면하고 있는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주기적 변화의 과정이 아니라 재앙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지구온난화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논문, 책들이 나오면서 당연시 여겨졌던 잿빛 미래와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서의 환경운동이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모으기도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쿨잇> <기후커넥션> 등등의 책들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들은 지구온난화가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순환의 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또는 인간이 끼치는 영향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느지의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유보적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앨 고어가 내세운 이산화탄소와 기온상승과의 관계도 명백한 상관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주장과 함께 다양한 변수들을 내세운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석유사업체나 기업체들의 로비로 이루어진 연구들로 오해(?)받기도 한다. 또는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은 선진국들의 탄소배출권, 녹색산업을 통한 이득의 선점을 위한 논거로 비쳐지기도 한다. 

지구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서로 다르다. 이 사실을 접하고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방식도 차이를 보일 것이다. 과연 어느 것이 불편한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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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개인적으론 진실의 여부를 떠나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문명이 단지 지구온난화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농촌의 생존 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소위 녹색혁명을 보더라도 이것은 기아를 물리치는데 다소 도움이 되긴 하지만, 농민의 수익보다도 종자와 비료, 농약을 파는 다국적 곡물 기업의 배를 살찌우는데 더 기여한다. 이것은 단지 이들의 수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먹는 사람들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료사업은 화학 사업으로 온난화의 주 원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즉 온난화의 진실도 중요하지만 온난화와 상관없이도 화학연료를 쓰는 현대문명의 폐해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곳곳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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