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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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은 대학시절 공화당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대학수업을 받는 과정에서 민주당으로 입장을 바꾼다. 반면 자신의 룸메이트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공화당으로 입장을 선회했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뒤바뀜은 미국 대학의 철저한 토론식 수업 과정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학시절 운동권을 대표하던 사람이 보수당원이 되었다고 실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마땅한 곳이다. 반대로 보수적이었던 사람이 진보적 입장을 취하면 죽일듯이 욕을 해댄다. 입장 선회는 다름아닌 변절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변화를 변절로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토론 문화의 부재가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본다. 우리는 일제시대를 거쳐 6.25와 독재 정권을 지나면서 지조와 절개를 중시해 왔다. 물론 이런 경향은 유교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강화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적으로 지조나 절개를 중시하면서도 실제론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였지만 말이다. 어쨌든 자신이 한번 정한 입장은 죽음 앞에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와 적이라는 분명한 구분이 가능할 때의 일이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물론 절대 퇴보할 것 같지 않은 민주주의의 발길이 때론 뒷걸음 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군과 적군의 개념은 사라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대화와 토론은 통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서로 설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이책 <헌법의 풍경>이 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연법과 함께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해줄 사제가 사라진 시대에는 정의를 찾기 위한 새로운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화 또는 절차라고 하는 기준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대화는 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정답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잠정적으로 정답이라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에 의해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늘어나다 보면 분명히 어느 지점에선가 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대화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재미있는 작업입니다. ..... 이런 대화의 장에서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대화의 규칙 또는 절차를 보장해주는 것이며 이와 같은 절차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개방성과 민주성입니다. 101쪽

 

그러나 이런 개방성과 민주성이라는 소양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나만 해도 그렇다. 한번 주장한 내용은 중간에 석연찮은 부분이 있거나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도 쉽사리 고치지 못한다. 아니, 틀렸다는 생각을 애시당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것은 나 개인만의 성향은 아닐듯 싶다.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패널들이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주장만 있을뿐 토론은 없다. 개방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을 뿐이다. 이번 임수경씨의 '변절자'란 논란도 이런 개방성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아무튼 변화가 인정되지 못하고 변절로 낙인찍는 사회는 위험하다.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의 각을 서로 좁히기 위한 대화가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은 바로 그 길을 닦는 불도저다. 이 책은 그 불도저가 고장나지 않도록 우리가 항상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해야한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또한 불도저가 엉뚱한 방향으로 운전되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랬을 때 우리는 더불어 평온한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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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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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카피로도 쓰인 "YES WE CAN"은 이제 너무 자주 들어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난관에 부딪히거나 힘겨울때면 주먹을 쥐고 외친다. "난 할 수 있어." 일종의 자기 최면인 셈이다. 때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기도 한다. "그래 잘 했어. 거봐, 넌 할 수 있다니까"라면서. 그러다 보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과연 그 고래는 진심으로 춤추고 싶었을까.

 

<피로 사회> 저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후기근대사회로 보며 성과사회라고 명명한다. 규율이나 지시, 명령을 통해 이루어지던 생산성 향상이라는 자본주의적 목표가 스스로의 성과를 목표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타율에 의한 강제보다는 스스로  일에 임했을 때 생산성 향상은 배가 된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더욱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자유를 느끼지만 또한 그 자유로 인해 강제가 발생한다. 바로 성과라는 수갑이 두 손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대 사회에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과 같은 '질병'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것으로 방증된다.

 

즉 자유로운 개인들은 스스로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실패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며, 자신이 열등하다는 느낌을 갖는 자책과 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소진시킨다. 때론 그 목표를 위해 약물을 이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주인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노예가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얻는 성공이란 자기 착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뭐, 그 정도까지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생존을 위해 야근을 밥먹듯 해야하는, 또는 승진을 위해 가족을 잊고 사는 피곤한 모습을 한번 떠올려보라. 물론 아직도 야근을 강제로 해야만 하거나 굶지 않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성과사회라고 명명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성공을 위해 스스로 택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피곤한, 피로 인생이다.

 

그런데 이맇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며 살아가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일까라고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좋은 삶이란 혼자서만 목표에 도달한다고 해서 누릴 수 있는 것일까. 행복은 모두가 함께 해야 그 기쁨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생존을 위해 또는 성공을 위해 혼자서만 줄기차게 달려가고 있진 않은가.

 

그러니 제발 앞만 보고 달리기를 멈추고 뒤돌아보고 둘러볼 필요가 있다. 명상과 같은 깊은 심심함에 빠져 보아야 한다. 모든 일에 즉각 즉각 대응하기를 멈춰야 한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무언가 마땅치 않다면 새로운 상황을 가져올 수 있도록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천천히 가더라도 어깨동무의 즐거움을 누려보아야 한다. 더이상 피곤하고 피로한 삶이 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스스로 정한(또는 스스로 정했다고 생각하는) 그 목표가 과연 나의 행복을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한 종착지인지 이젠 나에게 소리내어 물어보아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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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는 잠시 멈출 줄을 모른다. 컴퓨터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머뭇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49쪽

 

자신이 부족하다든가 열등하다는 느낌, 실패에 대한 불안은 바틀비의 감정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끝없는 자책과 자학은 그에게 낯선 것이다. 그저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후기 근대적 성과사회의 특유한 명령에 부딪힌 적이 없다.  57쪽

 

후기근대의 성과 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그런데 이러한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86쪽

 

탈진과 우울상태에 빠진 성과주체는 말하자면 자기 자신에 의해 소모되어버리는 셈이다. 그는 자기자신으로 인해, 자신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치고 탈진해버린다. 그는 자신에게서 걸어 나와 바깥에 머물며 타자와 세계에 자신을 맡길 줄은 전혀 모른 채 그저 자기 속으로 이를 악물 따름이다. 95쪽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된 상품이다. 사람들이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 수록 생산은 더욱 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업적 규율사회가 변함없는 정체성에 의존했다면, 성과주의적 후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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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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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양을 잡아먹고 배를 채우지만, 나중을 위해 따로 저장해 두지는 않는다. 인간 약탈자들은 도가 넘칠 정도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양식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한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에게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감사하는 마음이 곧 신에게 보답하는 일입니다.  15쪽 

나는 시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시간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을 과거나 미래 속으로 내던집니다. 거기에서 고통이 오며, 그 고통은 우리가 현재 속에 살 때에만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영원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세계화의 가장 나쁜 점은 교환한다는것이 아닙니다. 세계화의 단점은 행성 전체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힘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빠른 정보 전달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낳고, 젊었을 대는 그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가 힘듭니다... 덫에 걸린 세계가 의식을 갖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44쪽

수익성이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처럼 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지 생산을 위해서만 일을 하지 않습니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의 기술을 가꾸는 것이고, 우리 자신이 밭과 자연, 그리고 계절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56쪽

지금의 농업은 흙을 떠난 농업이 되었습니다. 대지는 이제 무기물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흙 밖에서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최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본질을 비껴가고 있습니다.71쪽 

오늘의 어린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불안해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이제 점점 더 어린 나이에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자신들을 혼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겨야 하고,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이 불안해하는 것이 걱정스럽습니까?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잘 왔다고, 각자는 서로를 보완해주는 존재들이며, 경쟁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십시오. 만일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계속해서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아이들은 먹고 먹히는 지배의 과정 속으로 무참히 내던져지고 맙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더 이상 겁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77쪽 

종자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다국적 대기업을 소유한 제조업체들이 선별해 내놓은 종자들의 침략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추악한 일입니다. 아득한 옛날부터 농부들은 스스로 씨앗들을 생산해 왔습니다. 그 씨앗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땅과 기후에 완전히 적응했습니다. 오늘날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많은 광고 문구들은 농부들에게 종자는 제조업체들에게서 사야 한다고 강조해 말합니다. 하지만 업체에서 판해하는 교배시켜 만든 종자들은 해마다 새로 사서 심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씨앗들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들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 인류를 파국으로 이끄는 범죄 행위입니다. 이런 범죄 행위가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서까지 번듯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124쪽

전문가들은 국민 총생산량에 따라 국가의 발전 등수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발전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발전 외에도 인간과 문화의 다양한 면들을 중요시해야 했습니다. 인간은 단지 위만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30쪽

나는 사람들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거리를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말합니다. 내가 대지에 입문하는 수업들을 계속해서 기획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추상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어디서 왓으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159쪽

우리는 생명 속에 깃든 영성과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부분에서만이라도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변하게 만드는 열쇠가 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영성이 행동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몸과 손은 내 영혼이 하고자 하는 일에 쓸모가 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바로 나의 몸과 손을 이끌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은, 나는 재산을 모으겠다는 단순한 목적 외에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냥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허약한 존재입니다. 172쪽


일과 재산에 대한 숭배의식을 심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177쪽

신성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정하고 멋대로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그런 만큼 길을 잃기가 더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어린아이들에게 자연을 신성한 것으로 보는 시각을 일깨우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200쪽

교육은 이제 봉사와 타인에 대한 사랑, 공동체 의식 등 본질적인 가치들을 말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규격화된 사회인을 만드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오늘늘의 교육은 생산성과 경쟁력이라는 두 가지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험을 보는 것도 사회 안에서 우수한 자들을 가려내기 위한 것일 뿐이다.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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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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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양을 잡아먹고 배를 채우지만, 나중을 위해 따로 저장해 두지는 않는다. 인간 약탈자들은 도가 넘칠 정도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합니다. 15쪽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은 피에르 라비를 가장 화나게 하는 슬로건이다. 그는 이런 슬로건들이 세계를 파멸로 몰고 간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지구의 자원은 무궁무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가 조화로운 곳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184쪽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 국적을 지닌 농부 피에르 라비는 자연 농법을 통해 현대의 문제점을 정면 돌파하고자 한 사람이다. 다국적 기업에 의해 죽어간 흙(농부들에게 종자는 제조업체들에게서 사야 한다고 강조해 말하지만 업체에서 판매하는 교배시켜 만든 종자들은 해마다 새로 사서 심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씨앗들이다) 대신 자연농법을 통해 종자를 보존하고 빚 투성이 농촌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직접 실천을 통해 보여줬다. 또한 5명의 아이를 시골에서 키워내 사회를 위한 재목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삶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제3세계 국가들이 그를 초청하기 시작했다. 대량생산을 통해 기아를 극복하겠다는 그들의 전략은 오히려 국민들을 더 배고프게 만들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배를 불리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그는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의 기업들이 플랜테이션을 통해 부를 챙겨가는 것을 막고, 제3세계 국민들이 자급자족 할 수 있도록 자신의 농업 기술을 전수한다. 그 기술은 자연의 순환을 가로막지 않는 퇴비와 흙의 되살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되살림의 철학을 영성으로 이야기한다. 피에르 라비의 국제적 활동이 가져온 변화는 그의 철학이 결코 몽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에 발을 내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으로서 나는 나에게 세계파괴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방법은, 또다시 말하건대, 신성으로 되돌아가는 일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는 이 말을 반복해 강조합니다. 이것은 시각의 문제입니다. 천지 만물에 속하는 것들은 아무리 보잘것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모두 신성합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그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성스러움은 우리의 심금을 울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행복입니다. 76쪽 
 

지금 당신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혹시 돈을 얻는 대신 영혼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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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폴란의 행복한 밥상 - 잡식동물의 권리찾기
마이클 폴란 지음, 조윤정 옮김 / 다른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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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구식 식사가 가져온 병폐로 인해 지금의 세상은 건강도 잃고 음식문화도 잃고 맛의 즐거움도 잃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일곱 개의 어절과 세 가지 규칙으로 시작된다. 음식을 먹되, 과식하지 말고, 주로 채식을 하라. 181쪽  

 병폐를 고칠 수 있는 해결책은 정말 간단명료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듯 보이는 세 가지 규칙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렇게 녹록치 않다.

음식을 먹으라는 첫번째 규칙은 영양주의와 관련되어 있다. 요즘 흔히 접하는 비타민 첨가, DHA 첨가와 같은 영양소를 넣은 제품(음식이 아니다)들이 건강한 듯 보이며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오히려 이것들이 소비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연적 음식이 아닌 인위적인 화학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들은 일종의 산업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건강에 좋은 영양소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게 됐을까.  

1977년 1월, 맥거번의 위원회는 꽤 직설적인 일련의 식사 지침을 발표하여, 미국인들에게 붉은 고기와 유제품의 소비를 줄이라고 권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육류와 유제품 업계에서 쏟아진 격렬한 비난의 폭풍이 위원회를 집어삼켰다. 위원회는 권장사항을 급히 수정했다. 원래는 미국인들에게 고기의 소비를 줄이라고 충고했었던 위원회는 실제 음식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대신 교묘한 말재주로 타협을 구했다. 포화지방 섭취량을 줄여줄 고기, 가금류, 생선을 선택하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 이제 범인은 불분명하고 보이지 않으며 아무런 맛도 없는, 그리고 정치적 관련이 없는 물질이 되었다. 음식에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이 물질은 포화지방이라고 불렸다....33쪽 .. 맥거번의 실패가 보여 준 교훈은 식사에 관해 말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재빨리 흡수되었다. 몇 년 뒤 과학한림원은 식사와 암의 문제를 조사하면서 영향력 있는 특정한 이익 세력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권장 사항에서 음식 대신에 영양소에 대해 말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34쪽 
  

영양주의는 우리에게 세 가지 해로운 신화를 믿게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음식아 아니라 영양이라는 것, 영양은 과학자들 말고는 누구도 볼 수도 알 수도 없기에 무엇을 먹을 지 결정하는 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식사는 육체적 건강이라는 협소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세가지 생각이 그것이다. ㅡㅡㅡ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생물학적 필요성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이유로 식사를 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음식은 또한 즐거움에 관한 것이고, 공동체에 관한 것이고, 가족과 영성에 관한 것이고, 우리와 자연 세계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정체성 표현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뒤 부터 식사는 생물학 못지않게 문화와 관련된 행위가 되었다. 식사를 할 대 가장 먼저 육체적 건강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는데, 이는 매우 파괴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식사의 즐거움을 파괴할 뿐 아니라 역설적으로 우리의 건강까지 파괴한다. .. 정말로 우리는 모두 건강음식강박증환자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16쪽 

현대 영양주의의 역사는 다량 영양소 간에 일어난 전쟁의 역사였다. 단백질이 탄수화물을 공격하고, 탄수화물이 단백질을 공격했다. 그 다음에는 지방이 등장해 탄수화물을 공격했다. .. 영양주의는 수많은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언제든 추종자들이 저주를 퍼부을 악한 영양소와 반대로 신성시 여길 구원의 영양소가 함께 존재해야 한다. 현재는 트랜스지방이 악한 영양소 역할울 훌륭하게 하고 있고, 오메가 3 지방산이 구원의 영양소 역할을 하고 있다. 41쪽 

영양소별로 접근하는 영양학의 문제는 영양소에서 전체 음식의 맥락을 제거하고, 음식에서 전체 식사의 맥락을 제거하고, 식사에서 전체 생활을 제거한다는 점이다. ... 왜 영양학자들은 그런 일을 하는가. 왜냐하면 영양학을 비롯한 과학이 그런 식으로연구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분리할 수 있는 변수들을 연구한다. 변수를 분리하지 못하면, 그 변수의 존재나 부재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다. ... 사물을 각 구성요소로 쪼개어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조사해야 한다. 미묘한 상호작용이나 전체적 관계를 무시해야 하고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거나 그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해야 한다. 이것이 환원주의 과학의 모습이다. 79쪽 
 

 자, 그렇다면 두번째 규칙 과식을 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보통 수력에 의존했던 거대한 돌 바퀴 분쇄법은 강이 흐르는 곳이나 적기에만 가동할 수 있었던 반면, 새로운 롤러는 증기기관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서양인이 주식으로 먹던 곡물 하나가 시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영양적 가치가 아닌 이미지에 근거하여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런 점에서 흰 밀가루는 현대의 산업식품이며, 최초의 산업식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35쪽 

토양에서 식탁까지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일어난 음식사슬의 산업화는 화학적 생물학적 단순화 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우선 토양의 생화학을 형편없이 단순화시킨 화학비료가 있다. 리비히가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세가지 다량 영양소- 질소 인산 칼룸을 발견하고, 프리츠 하버가 화석연료에서 질소비료를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한 이래, 농경지의 토양은 갑자기 다량 투입된 이 세가지 성분 외에 다른 성분을 거의 공급받지 못했다. ... 식물들은 매일 이 화학적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살 수 있지만, 병충해에 취약해지고 영양학적 질도 떨어지게 되었다. 142쪽 

질이 낮은 음식을 먹으면 먹을수록, 결핍된 영양소를 찾아 더 많이 먹게 된다. 그 노력은 헛될 테지만, 어쨋든 식품업계에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준다. 153쪽 

음식사슬의 토대가 녹색 식물에서 씨로 옮겨간 것은 서구식 식사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음식 시스템에 일어난 모든 변화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로 보인다. ...잎에서 씨로 옮겨간 변화가 우리 몸 안에 있는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수치보다 훨씬 큰 양향을 미쳤다. 이 사실은 현대 식사에 정제탄수화물이 범람하게된 이유와 많은 미량 영양소가 부족하게 된 사연 그리고 총칼로리가 크게 증가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잎에서 씨로. 이것이 완전하지는않다고 해도 거의 만물 이론에 가깝다고 하겠다. 164쪽 

자연이 주는 음식이 아닌 화학성분으로 가득찬 영양소만을 먹기에 항상 허기진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두번째 규칙은 다시 첫번째 규칙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세번째 규칙 채식을 하라는 것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말이다. 특히 풀이 아닌 곡물과 사료를 먹고 자란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다시한번 영양주의의 함정에 빠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 그럼 이 세가지 규칙을 가지고 식사를 해볼까. 첫번째 규칙 음식을 먹기 위해선 우린 요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리는 지역 농부로부터 음식을 사면서 생기는 건강을 위한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다. 198쪽 

요리는 순수하게 문화적으로 기능하여, 사회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다른 사회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런 문화적 목적은 왜 요리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나타나는지 설명해준다. 이민자의 가정에서 동화의 마지막 증거를 찾을 수 잇는 곳이 찬장이라는 말도 있다. 음식 심리학자 폴 로진이 지적했듯이, 변하지 않는 향신료들 지중해의 레몬과 올리브기름, 아시아의 간장과 생강, 심지어 미국의 케첩까지도 이질적인 맛으로 인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지 모를 타문화의 새로운 음식으 흡수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다만 식사는 다른 많은 문화적 관행들보다 자연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한쪽에는 인간의 생리 기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자연 세계가 있는 것이다. 요리에서 음식을 조합하는 특정한 방식과 음식을 준비하는 특정한 방식은 식사와 건강과 장소에 관한 축적된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전통적 요리법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인데, 그 독창성은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와서야 현대 과학에 의해 종종 밝혀지고 있다. 217쪽 

식사법은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보존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 따라서 미국화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각기 다른 식사법이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음식 선택을 과학적인 방식에 맡긴다는 것은 음식에 민족적 색채와 역사적 내용을 없앤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 이런 점에서 보자면, 과학적 식사법은 미국인들의 집 앞에 깔려 있는 잔디 같은 것이다. 알다시피, 미국의 단조로운 집 앞 잔디밭은 차이를 덮고 풍경을 미국화 하기에 이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 모두 미적 다양성과 감각적 쾌락의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사실 그런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74쪽 

장황한 설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한번 요약하면 음식을 먹자는 것 단 한가지인 셈이다. 자, 그럼 우린 이제부터 행복한 밥상을 차릴 준비를 해보자. 우리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나아가 지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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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아스 매듭 -  제우스 신의 도움으로 프리지아의 왕이 된 고르디아스가 이를 기념하여 자신의 이륜마차를 견고한 매듭으로 제우스 신전에 묶어 두었는데, 이것을 푸는 사람은 온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신탁이 있어, 많은 왕들이 매듭을 풀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몇 백 년 후, 그 이야기를 들은 젊은 왕은 신전으로 가서 자신의 칼로 단번에 매듭을 내려쳐 끊어 버렸다. 그렇게 몇 백 년간 아무도 풀지 못했던 매듭이 풀리게 되었다. 그가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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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10-09-0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제 4킬로그램 막 넘어서려 해요 ^^ 엄마, 아빠 잠을 못자게 칭얼대는 것만 빼면 참~ 귀엽겠는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