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지음 / 해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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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천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40명이나 되는 인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2020년, 올 여름에도 용인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모두가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특히 12년전 사고로 배운 것이 없이 똑같은 사고로 똑같이 사람을 잃었다. 


화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 큰 원인중의 하나는 소위 샌드위치 패널이라는 단열재, 가연성의 우레탄 폼을 이용한 마감 자재다. 불에 잘 타는데다 유독성 연기를 내뿜어 치명적이다. 그런데 왜 물류창고에 이런 위험한(?) 단열재, 마감재를 쓰는 것일까. 비용때문이다. 물류창고를 짓는 비용을 낮추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2008년 이천 화재가 분명 이것을 알려주었다. 그럼에도 목숨보다는 비용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 악당이어서 비용을 중시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분명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따듯한, 인정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약탈적' 자본주의에 물들어져/길들어져 있기에 아무런 고뇌없이 비용만을 고려한 선택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생명보다 효율, 또는 돈이라는 것을 더 중시하게 됐을까. 


자신이 속해있는 일상 속에 묻혀살고 있을 때는 그 일상의 문제점을 잘 파악할 수가 없다. 일상은 당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럴 땐 외부의 시선으로, 또는 외부를 기준점으로 삼아 우리의 일상을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김누리 교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독일을 준거로 삼아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바라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당연한 일상이 왜 우리의 불행이 되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알게된다.


대한민국은 이번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세계에 내놓을만한 자랑스러운 것들을 많이 갖고 있다. 더군다나 5천만 이상의 인구를 갖춘 나라에서 3만 달러 이상의 GDP를 올리는 7개 국가 중의 하나이다. 또한 촛불혁명이 보여주듯 정치적 민주주의는 세계로부터 탄사를 받을만큼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일상의 민주주의로 스며들지 못했다. 즉 정치적 현장에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일상에서는 권위주의가 만연해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 문화 등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가 요원하다. 소위 꼰대라고 말하는 권위주의적 행태가 만연해 있다. 또한 경쟁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찬양할 정도다. 경쟁 없이는 모든게 도태될거라는 엄포와, 경쟁을 이겨냈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승자독식을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가치관이 우리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마음가짐을 체화했을까. 그 원인을 쫓아가보면 분단이라는 조건이 상식을 벗어난 가치관을 수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행을 당연시하지 않고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을 전쟁이 없는 평화적 상태, 나아가서는 통일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아도르노가 말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는 것을 잊지않은 강한 자아가 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김누리 교수의 책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읽게되면 우리의 고통이 우리의 불행이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땅에서의 행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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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무릎 꿇지 않은 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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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디에 서 있는냐에 따라 세상은 달리보인다. 코끼리가 들어가 있는 캄캄한 방에 들어가 코끼리를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있는 위치에 따라 설명은 제각각일수 밖에 없다. 그 설명은 분명 코끼리의 일부이지만 코끼리라고 할 수는 없다. 코끼리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선 이 설명들을 취합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목수정이 쓴 [아무도 무릎꿇지 않은 밤]은 파리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다. 혁명이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런던이 아닌 자유와 평등, 박애를 내걸고 혁명이 일어났던 파리에서의 삶이 작가의 시선을 새롭게 확장했다. 그리고 그 확장된 시선으로 파리는 물론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그 풍경을 전달하고 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코끼리 전체를 완성하기 위한 다른 시선으로 읽으면 좋을듯 싶다. 


[아무도 무릎꿇지 않은 밤]에서는 파리와 서울의 다른 일상의 모습들이 비교가 된다. 예를 들자면 책의 저자 소개란에 잔뜩 스펙과 수상을 채워넣는 한국의 도서와 달리 프랑스의 도서에는 거의 이름만 달랑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책 자체만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권위에 기대는 모습이,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명예나 권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실력쌓기보다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사회를 책의 저자 소개란을 통해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학교에 지각했을 때 대처하는 학부모의 모습이나 생일파티의 모습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문제는 다양한 일속속의 이 차이가 그냥 다름이 아니라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불평등과 차별, 혐오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일상 속 작은 것에서부터 실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목수정 저자가 유럽이나 프랑스가 최고라고 말하진 않는다. 최근 신자본주의의 덫에 걸린 모습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내세웠던 자유와 평등이 자본에 의해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도 그리고 있다. 다만 신자본주의라는 괴물에 무릎꿇지 않는 시민들의 저항정신이 꿋꿋하게 살아있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혁명의 땅 파리는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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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미래 - 헬레나와의 대화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최요한 옮김 / 남해의봄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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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과거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을 때 쓰는 말일텐데, 이것이 복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속에서 과거의 문화나 정신들을 새롭게 살려내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이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1992년에 발간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마을 라다크에 방언을 연구하기 위해 방문하였다가, 평화롭고 지혜롭던 그들의 삶이 인도 정부의 개방정책으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후 헬레나는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로서의 라다크 사회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와 대조되는 것은 세계화를 외치며 몸집을 키워가는 신자본주의로 사회가 분열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부작용에 신음하고 있다. 


헬레나는 라다크 복원운동을 통해 지금까지 계속해서 행복의 경제학을 전파하고, 로컬 경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책 <로컬의 미래>는 그의 주장을 대화 형식으로 싣고 있다. 그는 환경과 사회 파괴는 경제 규모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서만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지역화란


경제를 인간적인 규모로 되돌리자는 것


이다. 대도시 중심이 아닌 마을 단위 생활 형태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화든 대도시든 중요한 것은 <규모>다. '규모의 경제'는 단일화를 가져오고, 힘의 집중을 불러온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대규모 단일작물 농장과 소규모 다품종 유기농장의 생산성은 단위면적당으로 따지면 소규모 농장이 더 높다. 하지만 대규모 단일농장은 기계를 가지고 소수의 인원으로 움직일 수 있기에 1인당 생산량으로 따지면 훨씬 더 높게 된다. 즉 소수의 사람이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실제 유럽의 농장 3퍼센트가 유럽연합 전체농지의 50퍼센트 이상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소규모 다품종은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그만큼의 일자리 증가를 의미한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고 일자리도 증가하고, 여기에 더해 지역 중심의 유통이 이루어진다면 한쪽에선 배고파 죽는 곳이 생기고, 한쪽에선 남는 음식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은은 최소한 벌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 정치체계가 무엇이든 말이다. 


대규모의 농사로 지어진 농산물은 어떻게든 팔려나가야 한다. 필요(수요)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이것이 실패할 땐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채고 그것에 맞추어 생산할 수 있는 소규모의 경제 활동이 인간적인 규모의 경제이지 않을까. 화석연료를 펑펑 써가며 세상 반대편까지 농산물이 날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그 지역에서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들은 지역과 지역간의 나눔이 필요할 터. 그런 부분에서 지역화의 세계화는 필요하다. 대도시로 대도시로 몰려가는 사람들, 그로인해 치우쳐진 힘의 균형, 군중 속의 고독과 환경 파괴는 대규모가 가져다 준 상처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 <로컬의 미래>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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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군의 열두 달 - 그리고 이곳 지곳의 스케치, 대안신서 2
알도 레오폴드 지음, 송명규 옮김 / 따님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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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온 세계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바이러스 전파 확대를 막고, 진정시키기 위한 싸움이 격렬해지고 있는 모양새다.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러가지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의 민낯을 보고 있다는 관점도 등장했다. 일련의 사태를 개인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골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용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않다. 개인적 문제가 아닌 집단,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상호간의 믿음과 윤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생명체란 스스로 건강을 지키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만약 이런 방어체계가 없다면 생명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은 이런 스스로의 자기 회복 능력 체계를 넘어 의학과 방역 시스템 등을 통해 인류 전체의 자기 회복 능력을 키워왔다. 인간의 이런 능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해내는 것이 먼저이겠지만, 한편으로 어떻게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메르스와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등 각종 전염병의 창궐을 모른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전염병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것은 쉽지않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생명체가 갖고 있는 자기복제와 자기 회복 사이의 균형이 깨져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이 균형이 깨진 원인 중의 하나는 인간이 야생과 밀접한 접촉을 자주 갖게 된 것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발전이나 개발이란 이름으로 야생의 서식지가 줄어들었다는 직접적인 원인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서식지 변경으로 인한 간접적인 원인으로 살펴볼 수 있을듯하다. 즉 뭇생명이 살아갈 건강한 땅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알도 레오폴드는 '근대 환경 윤리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약 100년 전 토지윤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래 군의 열두달]이라는 책이 발간될 즈음 세상은 여성에게, 흑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인권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윤리의 확대가 인간을 넘어 뭇생명의 어머니인 토지에게로까지 이르리라고 내다봤다.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의 말마따나 땅이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슬퍼하지 않기 때문이다. 흙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거나 친밀하지 않은 대상의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지 못한다. 흙은 우리의 일상과 멀어지면서 슬픔의 대상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생명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흙이 전제되어져야만 한다. 건강한 흙이란 다양한 미생물이 살아있는 흙이며, 이 흙을 토대로 뭇생명들이 균형을 유지하며 온생명을 다할 수 있다. 레오폴드는 인류가 인권을 확대해 온 것처럼, 토지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고, 생태계의 모태인 흙의 건강함에 대한 인식을 확대시켜주었으면 좋겠다. 그동한 흙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흙의 소중함은 잊혀진지 오래이다. 지구온난화를 최대한 저지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위한 흙의 건강성을 되찾기 위한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알도 레오폴드의 [모래 군의 열두달]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과 함께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건강성을 유려한 필체로 이야기하고 있다. [월든]은 월든 호숫가 옆 숲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간 살아온 이야기이다. [모래 군의 열두달]은 위스콘신 강 주위 농장과 오두막을 사고 수년 간 주말농장 비슷하게 꾸려오며 생활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 중 레오폴드의 다음 주장을 귀담아 들어본다.

 

 

바람직한 토지 이용을 오직 경제적 문제로만 생각하지 말라. 낱낱의 물음을 경제적으로 무엇이 유리한가 하는 관점뿐만 아니라 윤리적, 심미적으로 무엇이 옳은가의 관점에서도 검토하라.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보전에 이바지한다면, 그것은 옳다. 그렇지 않다면 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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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이 온다 - 금융위기 후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라이프스타일 혁명
스콧 리킨스 지음, 박은지 옮김 / 지식노마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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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주말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무엇부터 할까?

당장 생계를 위해 해야만 했던 일을 집어치우고, 평소 하고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하고 싶다. 만약 이렇게 생각했다면 <파이어족이 온다>라는 이 책에 조금은 공감할 듯싶다. 하지만 좋은 세단에 명품옷, 값비싼 음식 등을 먹고싶다고 생각했다면 이책 <파이어족이 온다>가 커다란 자극제가 되거나, 반대로 멀리 던져버리게 될 책이 될 것이다.

 

파이어(FIRE)족이란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 만들어진 신조어다. 소위 금융위기 이후 밀레니얼 세대에게 새롭게 다가간 트렌드 중의 하나이다. 몇주 전 방영됐던 fvN시프트 김난도의 <트렌드 로드 뉴욕>에서도 언급되기도 했다.

 

앞에서 말했듯 로또 1등 당첨금이 있다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겠다는 이들에게 돈이란 수단이다. 파이어족이 뜻하는 경제적 자립에 방점을 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어족은 희박한 확률의 복권 대신 소비를 줄이고 열심히 일해서 복권당첨금과 같은 은퇴자금을 빨리 마련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리고 이 목돈이 마련되면 돈이 돈을 벌 수 있도록 굴려놓고 자신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하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활용해 돈을 모으지만, 삶의 방식은 소비를 줄이고 자신에게 행복이나 가치를 줄 행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소비 줃심의 자본주의와는 거리를 둔다는 점이 특이하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를 돈을 통해 구축해놓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즉 돈이란 자유를 위한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실에서 이 조기은퇴가 가능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소득, 고연봉자가 아닌 이상, 돈벌이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을 모아 일찍 은퇴한다는 것은 꿈속에서나 벌어질 일이다. 더군다나 임금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돈을 모으는 일조차 버거운 계층이 더 늘어나고 있다. 즉 파이어족의 취지에는 공감하더라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대상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먼나라 이야기이지 꿈같은 이야기라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아파트 한 채 사겠다고 목숨걸 것이 아니라, 파이어족이 지향하는 '행복의 최적화'를 위해 노력해볼 만한 의지를 불태우는 자극제는 될성싶다. 파이어족이 지향하는 것처럼 완벽한 소유물의 유혹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과 완벽한 삶을 위한 길을 모색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파이어족이 온다>는 다소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곱씹어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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