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하기 위해 태어났다 - 텔레토비에서 해피밀까지, 키즈 산업은 어떻게 아이들을 지배하게 되었나
줄리엣 B. 쇼어 지음, 정준희 옮김 / 해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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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스트레스를 간혹 대형할인마트에서 먹을것 사들이는 재미로 푸는 나 자신에 대해 한심해하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은 표지의 사진이 보여주듯 키즈마케팅을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하지만 쇼핑중독의 문제가 꼭 어린이들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이 책이 전체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어린이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이유는 아마도 <유년기의 자연화>라는 측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인듯 싶다. 발달이론 중 하나인 <토들러 단계>에서 자연화란 사회적으로 습득된 특징이 인간의 본성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아이들의 소비욕은 타고난 본성으로 간주되고 있다.(65쪽)

그러나 사실 소비라는 것은 본성이 아니다. 하지만 본성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으면서도, 자본주의에 편입되어 어렸을적부터 훈련되어져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것은 사회적 문화적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소비는 특히 영상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마케팅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욕구가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텔레비전을 장시간 시청한 사람들일수록 지출이 높고 저축이 낮다는 통계(95쪽)를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다. 텔레비전속에 비처지는 간접광고와 직접광고는 영아들이 광고와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트윈세대에게는 끝없이 그 욕구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단순히 어른들의 솔선수범으로 낭비를 줄인다거나, 불량식품이나 장난감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에 현실의 문제점이 있다. 즉 아이들은 <조르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고, 어른들은 그 조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항복하기 마련인 것이다.

소비욕구가 증대하는 것, 즉 소비문화 심취가 위험한 것은 우울증, 불안증, 자부심 저하, 심신증의 중대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과 텔레비전 시청 시간, 소비문화와 부모 자식간의 관계, 심리적 복지의 문제는 단순한 연관관계가 아니라, 인과관계라는 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한다. 즉 소비문화 심취는 우울하고 불안하고 자부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비문화에 심취함으로써 우울하고 불안하고 자부심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가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푼다는 나의 생각은 어찌보면 그 인과관계가 거꾸로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듯싶다. 쇼핑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오히려 점차 그 심리적 불만족의 정도가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해두어야만 할지도...

이런 심리적 복지 측면에서 만족과 행복의 열쇠는 보다 많이 획득하는 것보다 보다 적게 바라는 데 있다.(242쪽) 문제는 마케터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다 많이 획득하라고 부추긴다는데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강력히 찬성하게 되고, 그 정도가 강할 수록 삶의 질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243쪽) 또한 이런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청소년들이 음주와 흡연, 마약 복용에 보다 쉽게 빠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들 또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것이 더욱 큰 문제점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물질주의와 무능력이 서로 악순환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244쪽)

이런 문제점들은 직접 상품 마케팅을 담당하는 전문가들 또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업계의 도덕적 무책임에 있다.(261쪽) 광고대행사들은 기업고객들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기업들도 도덕적 책임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중압감은 어린이들의 이익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항상 압도하고 있다.(262쪽)

즉,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필요없는, 또는 해가 되는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와, 또한 그것들의 불필요성을 잘 알지만 아이들에게 팔려나가도록 아이들을 이용하는 마케터들을 양산하는 현실에서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 아이들로 자라도록 돕고 싶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텔레비전을 꺼야만 한다. 특히 텔레비전이 위험한 것은 광고를 할 수 있는 독점적 대기업들만이 조작된 이미지로 아이들을 유혹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정보의 홍수 속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고의 물결을 거부하고, 아이들의 일상속에 파고 들어가는 마케팅의 접근을 금지시켜야 한다. 현재 미국처럼 심각하진 않다 하더라도 학교내의 자판기나 학원 등에서 쏟아지는 홍보물로부터 자유롭도록 정책을 만들어가야 하며, 음식이나 장난감 등 잘못된 광고에 대한 제재를 가하도록 압력을 줘야한다. 그리고 제품에 대한 비밀이 없는 공개된 정보를 요구해야 한다. EBS 기획으로 꾸며진 텔레비전과 인간에 대한 기록에서 일주일간 텔레비전을 끄고 살았던 5개국 50가정들이 모두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가족들간의 시간이 많아져 즐거웠다고 말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험을 위해 텔레비전을 끄고 살았지만 앞으로도 텔레비전 없이 살고 싶다는 그네들의 소망을 우리도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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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05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루살이 님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 것을 사들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는 부분에서 많이 놀랐다는 ^^

지난 주 다큐멘타리페스티벌 프로 중에서 텔레비전 혁명인가 뭐 그런 게 있었는데요... 보셨어요... 그 중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오지마을에 텔레비전을 설치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변화를 보는 것이었어요. 주로...그 날은 텔레비전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서 보여 주더군요...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드라마는 너무 재밌고 이런 식으로 포커를 맞추던데... 사실...그들이 텔레비전 보면서 그런 생각은 왜 안 들겠어요... 저렇게 멋지게 옷을 입고 근사한 도심지에서 살고 싶다. 이뻐지고 싶고 멋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이요...

하루살이 2005-09-05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를 잘 모르는데... 흐흑, 저도 가끔 스트레스 풀려고 먹고 있는 제모습에 놀랍니다.
아~그리고 텔레비전이 가져오는 동경이라는 측면에서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떠오르네요. 라다르크 사람들이 서구 여행객들과 텔레비전 속에 비쳐진 문명을 보게됨으로써 겪게되는 변화의 모습이 그려져 있죠. 이 책은 그 변화의 과정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답니다.(읽으셨는지도 모를텐데 괜히 아는척 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
주강현 / 한겨레출판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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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책장을 다 덮고나서 한참을 아쉬워했다. 원래 생각했던 무엇인가를 만족할만큼 얻지 못한 탓이리라. 그런데 도대체 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이었을까?

금줄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해 쓰여졌다는 부제가 해답의 실마리를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비록 금줄없이 태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금줄이란 것을 주위에서 간혹 보면서 자란 세대다. 그래서 어떤 숨겨진, 즉 책 제목의 수수께끼가 말하고 있는 어떤 비의나 감추어진 문화양식들을 책에서 찾아내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자라고 조금 더 젊은 세대였다면 책의 내용들이 보다 더 새삼스럽게 다가왔을련지도.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너무 생소해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괜한 걱정을 해보기도 한다.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굿, 남근과 여근의 풍속, 금줄, 미륵, 흰 옷, 개고기, 숫자 3, 돌하르방, 솟대, 서낭당, 광대, 구멍, 똥돼지 등은 주위에서 어느 정도 보아왔고, 관련된 이야기들도 그럭저럭 들어오던 터라 낯익다. 실은 우리의 문화가 낯익는게 타당한데, 이러한 것들이 점차 사라진다는 점에서 이 책이 쓰여진 이유가 될 터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와 복원을 주장할 수는 없다. 세월의 부대낌 속에서 부침은 있게 마련이지 않던가? 따라서 책에서 펼쳐지는 내용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문화가 일상에서 뜻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왜 그토록 안타까운지에 대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익숙한 사람이기 ‹š문이었을까? 일상에서 뜻한바는 알겠지만 안타까워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크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화들이 사라지는 과정이 안타깝고 분명 지켜내야 할 유산이 있다는 것도 확신하지만 말이다. 즉 바로 이 부분이 책을 덮고 나서 느꼈던 막연한 실망감을 불러온 것 같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머릿속에 남겨져 있는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침향이다. 수백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바다에서 떠오르는 나무들. 그 나무가 떠오를 때 세상은 변해있으리라는 기대. 미륵과 함께 현실을 견뎌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자 했던 민초들의 소원이 담긴 그 침향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도 찾지 못한 침향터를 알려주는 비목들이 한반도 곳곳에 감추어져 있을 것을 생각하면 흥분이 된다. 그리고 머지않은 어느 순간 그 침향이 바다 위로 떠오를 것을 상상해본다. 아직도 세상은 침향을 묻어야 하고, 그 침향이 떠오르기를 기대해야 할만큼 나아갈 길이 멀다. 다만 남몰래 마음 속으로만 간직하던 변혁의 꿈을 이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침향의 꿈도 조금은 퇴색되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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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0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삭혀진 글맛이 나네요~

주강현 하면..
왼손과 오른손이라는 책 생각만... 제가 왼손잡이라..뭐 특별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서... 그렇지만...흠..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나는 걸로 보아선.. 읽기에 실패했던듯 합니다.

하루살이 2005-09-0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내용이 잘 기억안나는게 주강현 씨 글의 특징일지도...(농담? 혹은 진실?)^^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일요스페셜 팀 취재, 정혜원 글 / 거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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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있다. 평생직업이라는 말이 그 사라진 곳을 채우고 있다. 그나마 자신의 직업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는 것도 행복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이직은 거의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떠밀려 선택되어지게 마련이다. 즉 직장이 자아실현의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위한 생산공장 그 이상의 것이 아니게 되 버린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그런 모양새로 다가오기 시작할때 과연 나는 얼마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야망을 지니고 있지 않은 대다수의 소시민들에게 그곳은 그저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내고 훌훌 털어내버리고 싶은, 그래서 결코 오랜 시간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감옥보다 못한 어떤 곳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내 모습도 찾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과연 회사는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 회사가 사람을 자산의 중심에 놓지 않고, 그저 비용의 일단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회사도 사람도 모두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 그런 세상의 변모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희망을 말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유한킴벌리. 4일 일하고, 4일을 휴식하며, 수많은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는 회사. 평생고용을 보장하고, 사람들 또한 평생직장으로 삼고싶어하는 곳. 자아실현이라는 이상이 실현되어지고 있으며, 회사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곳. 그저 부럽다라고만 하기에는 부족한 정말 부러운 곳이 대한민국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런 회사는 저절로 생겨났을까?

회사는 경영진만으로 또는 회사원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하는 갈등의 노사관계. 노사는 회사를 구성하는 중요요소이면서도 항상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태생이 그렇다고 할수도 없을텐데 왜... 유한킴벌리의 노사관계는 정말 모범적이다. 노조원들이 노조 집행부를 믿기보다는 경영진을 더 믿을수 있을정도로 신뢰관계가 돈독하다. 이런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유한킴벌리 또한 다른 회사들처럼 극한의 노사관계 대립을 거쳐왔다. 우리가 지금은 부러워하는 4일 교대를 위한 4개조 2교대의 시스템을 정착시키는데도 큰 어려움이 따랐다. 맨처음 이것을 도입하고자 했을 때는 노사가 서로 신뢰할 수 없는 사이였기에, 조 개편으로 인한 남은 인력에 대한 처우, 그리고 인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등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IMF가 터지면서 오히려 기회가 찾아왔다. 타회사들이 사람을 자르기 시작할 때 유한킴벌리는 일이 없어서 놀아야 하는 절반의 인력에 대한 고민에 처하게 됐고, 노조는 할 수 없이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피하기 위해 4교대를 택하게 된다. 그리고 경영진은 여타 다른 경영진처럼 뒤에 칼날을 숨기는 비열한 형태를 보이지 않고 정직하게 노조와 상의해 인력을 재편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정착되어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회사를 전적으로 믿게 되고, 그런 믿음 속에서 생산력은 극도로 올라가게 된다. 흔히 생각하듯 인력으로 인한 비용의 증가가 회사의 경영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의 극대화를 통해 오히려 이익을 더욱 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영진은 매달  회사의 재무구조를 노조집행부에 설명하고, 평노조원들은 2,3개월에 한번씩 사내 랜을 통해 언제든지 자유롭게 회사의 경영실적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노사갈등의 큰 원인중의 하나인 임금 문제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발생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투명경영과 도덕경영을 통한 노사의 신뢰가 바탕이 됐을때 지긋지긋한 봉급쟁이가 아닌, 일하고 즐길줄 아는 빵과 장미를 모두 지닐 수 있는 참자아를 만들어가고, 그 참자아를 통해 회사 또한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유한킴벌리는 바로 우리 노동자들의 마음을 푸르게 푸르게 만들어주는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 씨앗이 어서 빨리 자라 대한민국 모든 회사들 속으로 뿌리를 내려 행복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희망이 나 혼자 마음을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하게 느낄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중심부에 서 있기에는 노동자 개개인의 힘은 너무나 미약하다.  경영진과 정부가 깨우치지 않는한 아무리 노동자가 목소리를 드높이더라도 그것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지도 모른다. 유한킴벌리 또한 그 첫발은 경영진이 내디뎠다. 물론 희망을 이루어낸 것은 노사가 함께였지만 말이다. 다른 회사들이 그런 희망을 실현하려면 실제로 그 첫발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현실의 비극 또한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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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
다니엘 코엔 지음, 주명철 옮김 / 시유시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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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5월 30일) 프랑스에서는 유로 헌법이 국민투표에 의해 부결됐다. 프랑스 국민들은 유로헌법이 통과함으로써 유럽이 하나가 되면, 값싼 노동력의 동구권 노동자가 대거 유입됨으로써 그나 저나 높은 실업률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것 같다. 즉 세계화로 인한 직격탄이 노동자들에게 쏟아짐으로써 선혈이 낭자할듯 하니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화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다수를 지배하고 있는듯한 모습이다. (세계화라는 용어의 정의가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저자가 말하는 세계화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세계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듯하다.)

저자는 이 책이 쓰여질 당시인 10여년 전부터 이런 생각은 세계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주장해 왔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세계화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당혹감을 안겨준다. 저자의 주장이 프랑스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이해되어지고, 설득력을 지녔다면, 아마도 이 투표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대중이라는 것이 과연 정보를 획득하고, 분석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감성적 판단을 하는 것인지는 논외로 하고, 앞으로 계속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국민투표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사뭇 궁금하다. 

아무튼 저자가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주장과는 정반대로 세상이 향해가고 있긴 하지만, 일단 저자의 주장을 한 번 들어볼만한 값어치는 있을듯하여 계속 읽어나가 보기로 하겠다.

책의 제목 <부유해진 세계, 가난해진 사람들>은 마치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세계화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화가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세계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인과 결과가, 실제로는 결과가 원인이고, 원인이 결과인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며, 불평등 또한 인과관계의 잘못된 추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예로는 신석기 인류가 정착을 하게 된 것이 식량부족으로 인한 농경사회로의 진입때문이 아니라, 정착후 종교정신과 맞물려 농경사회로 진입했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다. 정착촌과 곡식의 흔적중 어는 것이 더 오래되었는가 하는 과학적 증거물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먼저 전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아프리카를 예로 들며, 그곳은 여성에 대한 착취, 농촌에 대한 착취, 엘리트 집단의 부정부패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아시아 4용이 성장한 배경에는 절약의 정신, 투자와 노동을 통한 무역 수출정책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세계가 아닌 한 국가를 바라보았을 때 10,20년 전 보다 계층간 수입차가 훨씬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생각을 내비치고 있다. 세계화와 3차산업의 발달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값싼 노동력이 들어오게 됨으러써 선진국의 경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선진국, 여기에서는 프랑스가, 후진국들과의 무역이 전체 무역량의 3%를 겨우 차지할뿐이며, 노동력의 유입또한 그 수준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의 유입이 일자리를 줄어들게 만들다거나, 빈부격차를 크게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 일자리수도 없어지는것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기 때문에(물론 조금 못 미치기는 하지만) 실업률이 높아질수밖에 없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빈부격차와 일자리 부족은 <선별적 짝짓기> 때문에 이루어진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선별적 짝짓기란 예를 들자면, 조용필이 공연을 할 때 최고의 세션과, 최고의 음향, 최고의 무대팀을 이용해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내어,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최고는 최고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일을 만들어가고, 나머지는 나머지대로 짝을 지어 일을 해 나간다는 것이다. 최고의 짝들은 나머지 그룹이 자신들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들며, 점차 그 수익의 차이를 벌려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예전처럼 하나의 큰 조직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부분 쪼개진 것들이 하나로 모여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생산조건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근거로는 마이클 크레머의 오-링 이론을 들고 있다. 원과 같은 연결고리들로 이루어져서 하나의 커다란 생산품을 만드는, 따라서 포드주의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화석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선별적 짝짓기는 단순히 국가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향하며 이것이 바로 세계화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불평등이 공고화 되고, 이것이 세계로 확대되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선 대중들이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정치적 지도자들 또한 정치적 도덕성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견해를 가진 대중들이 정치적 행동을 행하지 않는한, 언젠가는 이런 불평등의 확대가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듯 싶다.

저자의 생각들과 근거가 기존의 관념들을 깨뜨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띠워준다는 점에서 책을 상당히 흥미롭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저자가 성장률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이 실제적인 생산증대로 인한 부의 창출이 아니라, 세계적 투기 집단의 투기를 통한 단순한 화폐의 창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또한 불평등의 완화라는 생각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인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체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없어 보인다. 인간적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없이 일단 커져가는 불평등과 불신의 추세만을 늦춰보자는 미봉책이 아닐까 염려스럽다. 물론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미봉책일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적 삶을 향한 단계적 실천행위로서, 초입에서 이루어져야 할 행동양식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무리없이 받아들을수도 있을듯하다.

(세계화나 경제 체제에 대한 깊은 이해없이, 현실에 대한 구체적 돋보기도 들이대지 않은채 오직 꿈만 거창한 망상가의 지껄임이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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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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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는 언어학자로서도 유명하지만 비판적 지식인, 특히 자국인 미국에 대한 끊임없는 비평으로도 필명을 날리고 있다. 단순히 글로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지식인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시대가 원하는 진정한 교양인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촘스키의 이런 겉모습만 알고 있을뿐 아직까지 그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이 책 또한 그의 세상에 대한 심층분석이라기 보다는 인터뷰를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그의 주된 생각의 요약본 정도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나와 같이 아직 그의 견해에 대해서 알고싶지만 섣불리 읽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짧은 시간의 인터뷰로 인해 그의 주장에 대한 충분한 논거를 들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일단 그의 주된 생각을 읽는 재미도 만만치않다.

이 책의 저자가 쓴 프롤로그에서는 촘스키가 전해준 교훈 한가지를 전해주고 있다.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기지의 사실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 (중략) 자기만의 생각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도전의식을 키우면서 스스로 알아내려 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내 목적을 어느 정도 성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12쪽)

이것은 세상에 당연시여기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해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이런 의심은 분명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줄 것임을 믿는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들과 기존의 가치관들, 그리고 의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의심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때론 삶의 한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진짜 인간답다고 생각되어지는 것들을 놓치고, 꼭두각시 마냥, 또는 줄로 조정당하는 마리오네트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마리오네트임을 잊고 운명의 주인처럼 줄을 잡아당기고 있다고 여기는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운을 자신은 가질 수 있다고 여기는지도.

개인의 이익을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가치로 찬양하는 이데올로기, 특권층과 권력층을 위한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감정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12쪽)

즉 감정의 상실 대신에 소유로 대체되는 현재의 사회에서, 소유만을 확대해 나가려는 삶의 태도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마리오네트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진다.

홍보와 광고, 그래픽 아트, 영화, 텔레비젼 등을 운영하는 거대기업의 주된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의 경영자들은 아주 실리적으로 접근합니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29쪽)

물론 촘스키의 이런 말이 과장되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의 행복감을 어디서 느끼는지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보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아챌 것이다. 무엇인가를 품에 안는 것, 그것을 위해 무엇을 지불하든 자신의 손에 쥐어질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로 변해가지 않았는가?

교육제도가 선별 작업을 합니다. 교육제도가 순종과 복종을 조장합니다. 이런 제도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배제됩니다.(71쪽)

사회에서 원하는 생산력의 일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 댓가로 돈을 쥐면서, 그것을 다시 소비할 때 행복감에 젖어든다는 것. 그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감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가 그 행복이 전부라고 배워오지 않았는가 의심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수많은 언론매체들을 통해 공고해져 간다.

지난 20여년 동안 국가 정책은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다국적 기업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59쪽)

우리가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소비의 과정 속에서는 수많은 소외가 발생합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의 제 3세계에 대한 횡포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채 그들의 선전된 이미지들만을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떤 기업체들의 문화에 대한 원조나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한 구원의 손길에 감명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누군가를 위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손길이 실은 다른 누군가에게서 훔쳐낸 것임을 어찌 알겠습니까?

우리는 매일 신문에서 시장경제의 기적과 기업정신을 극찬하는 기사를 읽습니다.(80쪽)

더더군다나 최근의 자본주의는 오직 금융자본주의로 치닫아, 소위 말하는 돈을 가진 자가 돈을 벌 수 있는 제도로 굳혀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매일 약 20억 달러가 컴퓨터를 통해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이 새로운 자산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주인이 바뀔 뿐이빈다. 이런 자본의 압도적 다수가 투기성을 띱니다.(중략)외국에 투자되는 자본은 대부분이 경영 지배권의 확보를 위한 돈입니다.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기려는 속임수일 뿐입니다.(109쪽)

최근 이런 경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론스타라거나 브리즈 증권 등등 뉴스 속에 등장하는 외국계 자본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면 촘스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신자유주의의 허울을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은 여전히 그 변화의 흐름이 바뀌지 않는 것일까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중략)요켠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169쪽)

즉 내가 앞장선다면 분명 난 무지막지한 탄압을 받을 것임을 다들 알고 있다는 것이죠. 앞장 선 사람들의 희생이 뒤따른뒤에서야 비로소 그 열매를 사람들은 따먹을 수 있다는 것을. 따라서 이런 횡포를 막겠다는 실천적 의지만으론 좀체로 변화의 흐름을 꺾을 순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조직화입니다.

이런 곤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직화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조합으로 조직화된다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을 수월하게 넘길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다각도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선전보다 이런 파괴공작 때문에 국민이 혁명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171쪽)

촘스키의 이 말을 듣다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언론에서 다루는 노조에 대한 보도가운데 노조 입장을 보여준 적이 얼마나 될까요? 교통 혼잡을 가져온다거나, 한국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한다거나, 생산력 손실이 몇백억이라던가, 아니면 노조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들로 가득합니다. 도대체 왜 파업을 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들춰보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노조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노조라는 조직도 그것이 조직의 양태를 띠는 한 어떤 부조리가 개입할 여지가 곳곳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조의 잘못된 한가지를 마치 노조자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식 보도로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쏟아지는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흡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 진정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의 본모습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세상이 어떻게 나를 현혹시키려 하는지 간파할 수 있도록 철저히 의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꿈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어서도 안됩니다. 즉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의지와 마주잡은 손이 필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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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5-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님의 리뷰를 읽으니... 전에 이 책을 읽을 때... 정수리로 뭔가 차가운 게 쏟아져 내리는 듯한 느낌....살아나네요~
요호...참 기네요... 하지만...구구절절...옳습니다... 촘스키... 그리고 님의 리뷰가말이지요...

하루살이 2005-05-12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모르면 잔소리가 많은 법이죠. 제대로 안다면 한마디로 딱 . 마치 요술지팡이처럼. 언제쯤 그런 지팡이 하나 가질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