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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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게 되는 두가지 질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카메라가 대중에게 급속히 보급되면서 그림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한 장면을 그대로 정지시킨채 또는 머릿속에 담아두고서 붓을 휘두르는 대신, 그 순간 손가락만 까딱하면 파일의 형태로 눈앞에 재현되는 시대에 그림이 처하는 위치는 굉장히 불안할 듯싶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미술은 대중이 처하고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굽어다보고 있다. 수십억, 수백억이라는 몸값을 지닌채 거만한 몸짓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현대미술을 대하는 대중은 왠지 주눅이 들어있다. 무엇인가 위대한 것이 숨어있을것 같은데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이를 어쩐단 말인가.

혹시 알 수 없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애기하는 걸 보면... 그러니까 저 뒤에는 뭔가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 분명해...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중략) 아름다움은 오늘날의 예술에서 죽어버렸다. 아름다움은 백년, 혹은 그 이상 된 작품이나 예외적인 작품에서만 살아 있다. 현재라는 공간은 쓰레기 하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31쪽)

정말 속 시원하다. 현대의 추상화를 보면서 또는 설치미술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던가. 또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눈에 이해가 되던가. 순전히 비평가나 작가의 구라(말솜씨)로 빚어낸 예술은 아닐까 의심도 간다. 하지만 미술에 대한 문외한이라는 자격지심이 이런 비난을 함부로 뱉어낼 수 없게 만든다. 한마디로 "넌 그러니까 무식해"라는 소리가 두려워 그런가보다 라고 인정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저자인 에프라임 키숀은 과감히 속엣말을 꺼낸다. 간질간질하던 곳을 속시원하게 긁어준다.

실제로 지적인 속물근성은 한도 끝도 없다. 최근 나는 한 오페라 공연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지휘를 하는 15분 내내 아무런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 그리고 진보적인 관객들로부터는 열렬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71쪽)

지적 허영심은 꼭 미술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음악을 포함한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허영심을 이용해 비평가와 작가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현학적 어휘를 구사해 그림의 값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다. 그림은 각 가정에서 소장할 수 있는 생활예술을 뒤로하고, 투자를 넘은 투기개념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림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림이 지니고 있는 금전적 가치가 현대미술을 지탱하는 힘이 된 것이다.

요셉 보이스가 전적으로 즐겨쓰던 "그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는 표현처럼 진정 예술적인 것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이해할 수 없는 허튼소리만을 지껄였다. (132쪽)

자신의 작품이나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에 대한 사랑없이 진정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을 위하는 배려나 애정이 빠지게 되면 이기주의나 오만, 허영심, 아니면 효과만을 노리는 마음만이 중요하게 된다. 예술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에 호소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예술은 그림을 보는 관객에 의해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객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아름다움은 예술로부터 추방당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아직도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교양을 지닌 식자층이다. 이 겁 많은 식자층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거만한 직업적 평론가들에게 변함없이 고개를 숙이고는 시종 난처한 침묵을 계속하고 있다.(168쪽)

예술을 끌어내리자. 이상하고 기이한, 그래서 폭등하는 몸값을 지니면서 전문가인체 하는 사람들만의 예술이 아니라, 내 옆에서 호흡하고, 세상에 대한 아름다움에 눈뜨게 만들며,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도록, 예술을 말이 통하는 친구로 곁에 앉히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선 솔직한 고백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족
물론 그러면서도 혹시 아마추어의 눈에 프로의 실력이 비쳐보이겠는냐는 질문을 쉽게 떨쳐낼 수는 없었다. 당구 300의 실력자가 선보이는 3쿠션을 30의 초보의 눈에는 한번의 쿠션으로밖에는 비쳐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위의 우려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꼭 하고싶다. 30의 초보자도 3쿠션의 현란한 모습을 천천히, 차분하게 설명해주면 다 이해한다. 그런데 대중을 벗어난 예술은 도대체 난감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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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밑의 경제학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지음, 유주현 옮김 / 이콘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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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00원만 들이면 캔이나 페트병에 든 녹차를 즐길 수 있다. 어디를 가도 똑같은 맛을 느낀다. 하지만 녹차잎을 얼마동안 우려내는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거나, 발효나 덖는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 다양한 녹차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는 없다. 이 책은 후자의 풍요로움을 느끼자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세계 경제의 흐름을 끌고 온다. 음식이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고대엔 아시아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세계 경제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유럽과 북미로 권력이 이동하고, 다시 아시아로 그 중심이 옮겨지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 그것이 음식의 유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힌다. 즉 현재 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식이란 맥도널드와 콜라로 대변되듯 경제의 주도권을 쥔 쪽의 음식이 세계에서도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바라보면 현재 스시를 비롯해 일본 음식이 세계에서 점차 뻗쳐나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가 일본인임을 생각한다면 약간 수상스럽기는 해도 꼭 틀린 말은 아닌듯 싶다.

저자는 음식을 크게 산업적(자원) 측면 문화적 측면으로 나눈다. 이것은 다시말하면 효율, 생산성, 단일성을 최우선시 하는 영미적 조류와 비효율적이긴 해도 긴 안목으로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소중히 하는 아시아적 조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효율보다는 비효율을 통해 얻어지는 풍요로움을 위해 패스트푸드적 세계화에 반대하고 문화적인 음식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효율을 주장하는 음식으로 인해 광우병은 물론 당뇨와 비만 등 건강의 문제와 환경 훼손과 오염의 문제 등이 야기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진짜 원재료의 다양한 맛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그 이유이다.

그럼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

음식문화라는 것은 부가 집중되는 곳에서 발전한다. 유럽의 식문화 특히 프랑스의 식문화가 발전한 것은 절대왕정의 성립으로 부의 집중이 일어난 15세기 이후다. 프랑스의 경우 자체의 음식문화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공주들이 프랑스 왕과 결혼하면서 그들의 음식문화를 가져옴으로써 보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성립된다. 이런 절대왕정 속에서 왕족과 귀족이 독점하던 그림, 음악, 음식 등이 시민혁명을 거쳐 궁정 밖으로 나온다. 이때부터 레스토랑이 발전하기 시작한다.

반면 중국의 경우엔 한나라 때부터 음식점이 발달했다. 음식점이 있다는 것은 서민의 음식이 풍부했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 식문화의 특징은 의식동원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도교의 관점으로 식이라는 것이 동시에 약이기도 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엔 중국에서 수입된 불교의 영향으로 고기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다.

이렇듯 중세 유럽시절까지 가난했던 이곳이 부유한 아시아를 침략하는데 성공한 이유는 무얼까. 직접적으로는 무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무력을 뒷받침으로 해서 무역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세 유럽제국의 흥망을 결정한 것은 무역의 이익을 누가 획득하는가에 있었다. 영국은 1600년에, 영국에서 독립한 네덜란드는 1602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아시아 무역과 식민지 경영에 나선다. 그 기본은 플랜테이션에 있는데, 이를 통해 식량 생산과 식량 무역을 독점해 간다.

십자군은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지배하기 위해 시작한 원정이었지만, 실제로는 문화 수준이 낮았던 나라들이 무력을 통해 이슬람제국을 공격하여 재화와 미술품을 수탈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 국내의 전쟁을 아시아로 가져간 것이 십자군이며, 이것이 후일의 식민지주의인 것이다. 후기 십자군 원정의 배후에는 이슬람에 지배당하고 있던 여러 도시국가들의 무역의 통로를 회복하고자 했던 움직임이 있었다.

미국 독립의 계기도 홍차다. 보스턴 차 사건이란 홍차에 매겨진 고액의 관세 때문이다. 미국의 대공황도 마찬가지다. 1차 세계대전후 농산물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농산물 가격이 올라가 버블 상태가 된다. 1930년대가 되면서 유럽의 농산물 생산량이 안정을 되찾고 신대륙은 재고량이 늘어 가격이 폭락된다. 이로 중남미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대공황이 일어난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다.

신대륙발견, 플랜테이션 등에 의한 상품의 대량 생산과 그 교역의 지배는 근대 유럽의 기초가 된 것은 물론 아시아를 식민지화하여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기초가 된다. 그 후의 발전 방향은 프랑스의 문화형과 영미형의 자원형이다.

미국은 제조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구조의 과감한 전환을 꾀한다. 그들은 패권국으로서 자본주의의 시스템과 규칙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하여 제조업에서는 열세가 되어도 금융의 힘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한 시스템적인 수법이 식의 분야에서 패스트푸드로 나타난다.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와 대중 지향의 인공음료인 코카콜라 등을 만들어내고 슈퍼마켓, 편의점이라는 대량판매의 소매 시스템을 구축하고 쇠고기와 브로일러 등을 얻기 위해 가축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만든 것도 미국이다. 가히 식의 공업화라 할 수 있다. 자동차 메이커가 부품회사를 지배하듯 상업자본이 농업과 농민을 지배하는 것이다.

1970년대 프랑스 요리는 누벨퀴진이라는 운동을 통해 크게 변화한다. 페르낭 푸앵, 폴 보퀴즈 등으로 대표되는 궁정요리의 전통을 계승하여 버터와 크림을 풍부하게 사용하고 손이 많이 가는 소스를 사용한 중후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누벨퀴진의 영향으로 음식을 소량씩 작은 접시에 아름답게 장식하며 재료의 맛을 살리려는 스타일로 변해가고 있다.

이외에 아시아와 서양의 식문화의 차이점 분석도 재미있다.

중국 한국 일본은 곡물을 발효시킨 곡장이 일반적인데 비해 동남아는 생선을 발효시킨 어장이 일반적이다. 특산 향신료나 고추, 어장과 같은 조미료를 사용하여 독자적 식문화를 전개시켜나간 곳이 베트남, 태국, 미얀마다. 더욱 남쪽으로 내려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쌀문화이긴 하지만 식사에 코코넛이 반드시 들어간다. 양념의 중심은 고추와 코코넛, 그리고 설탕으로 약간 달며 간장을 별로 쓰지 않는다.

서양의 식문화가 서양요리의 모습을 띤 것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부터다. 4대 향신료라 불리는 인도의 후추, 동남아의 계피, 정향, 육두구, 이것들은 아시아로부터 유럽으로 건너가 매우 고가에 거래됐다. 향신료가 귀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고기의 방부제로서의 효과 때문이다. 또 흑사병 등 역병에 대한 약이라는 믿음에서 귀하게 여겨졌다는 설도 있다. 이탈리아 식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교역에 의한 부의 집중과 동양으로부터의 영향 이외에도 상업국가적인 면이 강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부유한 시민계급의 발달로 풍부한 요리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신선한 고기와 생선을 좀처럼 먹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향신료를 필요로 했다. 아시아로의 침략은 이 향신료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농업의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면 공업화를 위한 노동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농업의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나라는 근대화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시아가 쉽게 유럽에 침락당한 것은 식이 풍부했다는 것이 큰 원인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엔 오히려 식의 생산력을 키워놓았기 때문에 침략을 막을 수 있었다. 공업화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항할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정리가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많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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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6-1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식국부론 이야기군요.
현대의 식량전쟁도 거의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약육강식의 대표가 바로 밥상 쟁탈전인데, 모든 인류의 전쟁이 먹는문제로 귀결되지요.
유럽의 척박한 토지와 기후 조건하에서는 식민지 개척이 당연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책과 더불어 환경적 관점의 식민지 건설이나, 전쟁 관련서적을 읽어두면
좋은 한 세트가 될 듯^^

하루살이 2007-06-12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도 도움이 되겠죠? 음식의 관점이라는 전제하에서 바라본 이야기지만 꽤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슬로푸드와 같은 것도 단순히 음식 문화운동뿐만이 아니라 경제와도 큰 관련성을 띠겠죠. 우리도 이런 총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근본적 운동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공장식 된장이 아니라 시골 된장 살리기 같은...
 
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지음, 김현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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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자본주의를 동력으로 해서 움직이는 세계경제를 타이타닉으로 비유하곤 한다. 즉 지금과 같은 세계화 추세로 나아가다가는 침몰하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오직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있다. 일단, 이 책은 타이타닉에 승선한 채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약간의 방향수정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그리고 토머스 프리드먼의 책 <세계는 평평하다>는 타이타닉이 올바로 나아가고 있으니 오히려 그 선상 위에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시한다고 여겨진다. 반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등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책은 당장 타이타닉호를 멈추고 배를 갈아타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보면 될것 같다. 아무튼 이 책 <빈곤의 종말>은 타이타닉이 침몰하지 않으면서 행복의 나라라는 목표를 향해 어떻게 항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바라보면 재미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빈곤의 종말>은 남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절대적 빈곤이라는 것은 상대적 빈곤과는 달리 생존 자체마저 위협받는 심각한 상태를 말한다. 절대적 빈곤 상태의 나라들에서 벗어나 개발 상태로 진입한 나라들을 분석하면서 이들이 어떻게 빈곤에서 탈출했는지를 참고로 한다. 러시아, 중국, 인도의 경우가 그러하다.(만약 이 책이 2005년 출간됐을 때 읽었더라면 해외펀드에 투자해 한몫 잡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세계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흔히 절대적 빈곤에 처한 국가들은 그 국민들이 게으르기 때문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동냥이나 바라는 사람들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들 쉽게 오해하는 많은 자식들에 대한 문제도 그 방법만이 가난을 탈출할 수 있는 로또의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질병에 노출돼 유아 사망률이 엄청 큰 상태에서 한두명의 자식만이 있다면 그들의 노후를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식들이라는 생각이 아이를 자꾸 낳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절대적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안된다. 누군가 살짝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빵 한조각을 주거나 환자들에게 주사 한방 놓아주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그들이 스스로 땅을 경작해서 살아갈 수 있을동안, 그리고 유아 사망률을 줄여 경제적 활동이 가능할 동안 까지만 꾸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빈국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여건만 갖추어지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여건이란 식량과 교육, 의료 분야에서의 기본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식량이란 녹색혁명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녹색혁명을 통해 자본이 축적되면 비로소 발전할 수 있는 바탕을 이루게 된다. 녹색혁명은 땅을 기름지도록 만들어주는 비료와 함께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는 개량된 종자가 보급되어져야 한다. 의료분야는 선진국 중심의 치유연구와 별도로 지원을 통해 빈국들이 가지고 있는 풍토병과 에이즈, 말라리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져야 한다. (이런 식량, 교육, 의료에 대한 기본 조건에 대한 생각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이라는 책을 통해 깨우칠 수 있다)

이런 여건들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이런 자본은 부국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기부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빈국들이 경제체제 속으로 들어오면 자신들의 무역상대국이 늘어나고, 또한 가난에서 벗어나면 테러의 온상이었던 환경이 사라지면서 평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G8 등 소위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이 유엔등을 통해 약속했던 GDP의 0.7% 원조를 지켜야만 한다. 현재 미국의 경우 겨우 0.2%를 넘길 뿐이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라 명명된 이 계획을 위해 엉거주춤 발빼려고 하는 미국을 비롯해 부국들은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도 원조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진정 행복의 길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 善撻퓸沮야 한다. 경제성장률에 사로잡혀, 물질적 풍요에 빠져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않았으면 한다. 그 길은 타이타닉의 방향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멈춰설 필요가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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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3-1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글러스 스미스의 타이타닉과는 다르게 배를 타고 잘! 가야 한다는 얘기군요.
오랫동안 보관함에 두고, 좋다는 리뷰만 다 훔쳐보느라고 정작 책은 안샀어요.
모처럼 시간의 여유가 생기신 듯하여 반갑습니다^^
봄에요.

하루살이 2007-03-13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유가 불안하게 여겨지더군요. ㅠㅠ
저 잘살고 있는 건가요? ^^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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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이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아니고 <공부>냐는 것이다.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인문학과 관련된 책들만을 선별해서, 사회현상과 빗대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 때문이지 않을까였다. 그래도 <공부>라는 제목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면 한마디로 "독자 여러분, 공부하세요"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된다.

책을 읽다보면 관련서적을 서너권 읽었는데 독후감을 쓰다보니 한권밖에 언급못했으니 관심있는 독자 여러분 책을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라거나 책 중 한 챕터만을 소개하니 나머지 부분이 궁금하시면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투랄까.

어쨋든 이것은 사족에 불과하고, 책의 중심테마는 아무래도 전체주의 또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단상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박정희와 히틀러, 반공주의, 레드콤플렉스, 바그너, 군사문화, 애국주의 등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대부분 전체주의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 것들이다.

한때 무정부주의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무정부주의가 무엇인지 눈꼽만큼도 알지 못했던 사람으로서, 태생적으로 군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집단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아무 문제없이가 결코 아니라) 살아왔다는 것은 나름대로 잘 적응해 왔다고 자부해야 할련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 같으면서도 집단적 사유를 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것이 나의 특성이 아니라 내가 지금껏 받아온 교육의 결과임을 알면서도 쉽사리 일상생활 속에서 깨우치지 못하고 지나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본 글 사이에 날카롭게 비집고 나온 글귀가 있으니, 권력에 대한 저항은 개인주의자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질적으로 대결하는 것은 집단적 성격을 띤 사람들이 해왔다는 것이다. 반골정신으로 뭉친 개인주의가 실제로 권력에 대한 싸움에서는 저만치 한발 물러서있다는 고백 아니 비판은 그대로 개인주의자들의 가슴을 후벼판다.

개인주의나 집단주의와 상관없이 어쨋든 나의 생각이 나만의 생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내 생각의 틀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아는 것이 바로 공부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장정일의 <공부>에서는 박노자의 책들이 가장 지금의 한국인을 철저하게 해부한 글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책을 접고나서 다시 한번 이 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아니라는 것에 당혹스럽다. 그리고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공부하고픈 마음을 갖도록 유혹하는 책은 별로 없었다. 다만 현재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적 흐름과 한국의 정세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반성을 불러왔다. 지금까지 너무나 무뇌적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결국 먹고살자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정말로 중요한 공부는 먹고사는 방법이 나를 어떻게 형성하는가에 있어, 제대로 먹고 사는 방법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완이다. 그리고 그 미완을 독자들의 공부로 해결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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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2-1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말이 그겁니다.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다른 책에서 반복적으로 만난 것이라는.
리뷰를 너무 솔직하게 썼던 저로서는 지금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저 <공부>라는 말이 독자들로 하여금 인식의 발상을 유도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감히 해 봅니다. 다만, 부제와 책 띠지의 출판사 광고문구는
이제까지 만나온 장정일에서 정말 낯설었어요.
연말인데 출장 릴레이는 끝나신건가요?^^

하루살이 2006-12-1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장 릴레이는 끝났는데, 일의 릴레이는 끝이 없으니...^^; 머리가 너무 아파요. 가끔 가슴도 아프답니다. 왜 아플까 고민합니다. 흑흑. 아픈데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마음의 병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어려움도 즐길 수 있는 경지를 터득하지 못하는 한 아픔은 계속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정말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을 안다면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곧, 머지않아 결판이 나겠지요. (그런데 그 머지않아가 꼭 멀게만 느껴지니...)
 
세계는 평평하다 - 21세기 세계 흐름에 대한 통찰
토머스 L. 프리드만 지음, 이윤섭 외 옮김 / 창해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강물이 흘러흘러 폭포를 맞이한다. 그 강물에 배를 띄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은 폭포로 떨어지거나, 첨단 장비를 동원해 하늘 위로 솟을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는 평평한 세계에선 모두가 하늘 위로 솟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또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강물은 자본주의라는 강물이요, 하늘 위로 떠오른 것은 무선 통신 등의 신기술이 이루어놓은 세계화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무한 경쟁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전제하에 쓰여진 이 책은 그래서 다분히 미국적이다.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세상이 평평해질 수 있는 희망을 보고, 9월 11일 테러를 지켜보면서 또한 벽이 쌓일까 두려워 하는 저자는 강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보호주의를 통해 성장했다는 사실 자체를 애써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세계 자본주의의 자유 경쟁에 앞서 왔고, 또 앞장 설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 거스를수 없을 것 같은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 폭포가 아닌 평원으로 길을 내고 싶은 심정이다. 하늘로 나는 꿈이 아니라, 다른 물길을 터, 평원에 물을 적시겠다. 즉,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라는 체제 말고도, 그것의 여러가지 변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만한다면, 폭포를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생각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서 하기로 하자. 이 책을 읽으면서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은 저자가 순진한 건지,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가 순진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전부 허구라면 모를까, 미국의 유명 언론인이 세계화가 가져온 부정적 통계치나 사실 관계를 무시한채, 또는 그것에 대해 자본주의의 문제가 아닌, 폐쇄적 국가 체제나 문명의 문제로 바라봄으로써, 현재의 체제만을 유일한 삶의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잡설은 일단 그만두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세계가 평팡하다는 것은 다국적 기업을 통해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델 노트북을 구입할 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구매자의 손으로 들어오는지를 살펴본다면 가히 세계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제품을 주문하면, 동남아 공장에 주문장이 떨어지고, 주변 부품 공장서 2시간마다 필요한 부품이 공급된다. 그 부품이라는 것은 중국에 공장을 둔 인텔, 한국을 기반으로 하는 메모리칩과 보드, 대만에 공장을 갖추고 있는 모니터(?) 등등 국경을 초월한다. 완제품은 전용 항공기로 미국에 실려오고, 포장이 끝나면 UPS와 같은 택배회사가 소비자 집 앞으로 배달까지 해준다. 이 기간은 부품의 공급이 수월하면 1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렇게 평평해진 세계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10가지 동력 때문이다.

1.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의 탄생 2. 넷스케이프의 출현 3.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4. 오픈 소싱(공개된 정보들) 5. 아웃 소싱 6. 오프 쇼어링(공장의 해외 이전) 7. 공급 사슬(예, 월마트) 8. 인소싱(예, UPS의 재고관리 서비스) 9. 인포밍(개인이 공급 사슬을 구축할 수 있게 된것) 10. 스테로이드(무선 통신 신기술) 

위의 동력이 작동한 세계는 평평해졌고, 보다 평등하게 자유로운 경쟁을 할 수 있게됐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저자의 생각은 크게 두 단어로 요약되어질 수 있는데(단순화라는 함정에 빠질지라도 빠른 이해를 돕기 위해), 바로 아웃소싱과 업무의 세분화다. 일을 쪼갤수 있는데까지 쪼개고 쪼개서, 아웃 소싱 할 수 있는 것은 아웃 소싱하고, 창의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자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분할은 소비자에게는 값싼 제품을, 노동자들은 많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창의적이고 부가가치 높은 일을 미국인이 했으면 하고, 그 일은 이제 모두에게 열려져 있으므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하므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희망과 용기다. 누군가가 언덕 위에 거대한 집을 짓고 살고 있다면, 나도 그 집에서 살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을 먹고 살아야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는 증오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증오는 바로 중동의 이슬람 문명권이 과거의 영화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으며, 현실 속에서 차별을 받으면서 느끼는 좌절감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이것이 바로 9.11의 속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평평한 세계 속으로 발을 딛지 못하는 나라들은 석유자본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며, 그들의 정치제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저개발 국가들이 식랑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기반만 갖추어진다면 잉여 인력으로 교육을 통해 산업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먼저, 언덕 위 거대한 집부터 이야기해보자. 내가 그 곳에서 살거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 방법밖에 없는가? 다같이 그 언덕에서 살면 안된는가? 저자는 차별을 줄이는 방법 또한 평평화된 세계 속에서 논의를 통해 보다 더 빨리, 현실화된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그저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것은 공론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면 일리가 있다. 칼을 가지고, 도둑이 될지, 의사가 될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러나 배고픈 사람에게 주어진 칼과 병자 앞에 놓인 사람에게 주어진 칼이 어떻게 쓰일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개인의 의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처한 환경 또한 무시못할 요소다. 저자는 평평한 세계가 배고픔을 면하게 해줄 것이므로, 도둑은 사라질거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이 어디 국민 1인당 수입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어지던가?  

저자가 말한 선순환을 한번 생각해보자. 배고파 굶어 죽는 나라와 1차 농수산품 수출국의 이름이 대부분 같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그 수출로 이루어진 수익이 미국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곡물 메이저 다국적 회사가 대부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을 말이다. 일의 세분화를 통한 아웃소싱의 자유로운경쟁은 또 어떤가? 1차 2차 3차 산업으로의 변경을 한번 보자. 미국은 어마어마한 돈을 1차 산업에 보조금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보조금 덕분에 세계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농산물과 곡물 메이저는 저개발국가의 1차 산업을 유린한다. 도대체가 그들의 값싼 노동력을 상충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조금을 그들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서 마치 자유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것이 진짜 평등하게 열려진 환경속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경쟁일까?

저자가 우려한 석유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도 그렇다.  세계 에너지 소비의 40%를 쓰고 있는 미국은 선진국의 환경 기술에 유리하다는 그 교토의정서마저도 체택하고 있지 않다. 석유로 곤란을 겪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메이저 오일 컴퍼니가 어느 나라에서 돈을 벌어먹고 있는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아웃 소싱으로 나뉘어진 일자리에서 보다 나은 일자리를 차지한다는 발상 또한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나아가는 방향이 아웃 소싱의 단계로 바뀌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보다 높은 단계를 차지하기 위해 아마도 미국은 엄청난 보조금을 투입할 것이다. 또는 경제적 압박으로 표준화를 이끌지도 모른다. (이것은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해 생각해 본것인데, 비디오가 맨 처음 나온 시절, VHS 형식과 베타 캠 형식에서 그 질적 측면에서 베타 캠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의 기술이라는 것 때문에, 세계 표준화로 VHS를 택한 것을 보면 알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나라가 지상파 DMB에 목숨을 걸고 전략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세계 표준화에 한발 앞서겠다는 생각일터인데, 그것 또한 미국과 호흡을 딱딱 맞추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아마도 HD표준 방식을 미국식으로 채택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진짜로 열린 세계, 평평한 세계에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일자리들이 플러스적 생산을 가져온다면 모를까 대부분 제로섬의 결과임을 생각해보면, 아웃소싱 덕분에 웃는 사람들 한편으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쪽이 생길 것이다. 바로 1차 산업이 곡물 메이저의 볼모로 잡혀있는 나라들처럼 말이다. 아웃 소싱의 마지막 단계가 누구의 볼모로 잡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나마 일자리를 창출했으니 좋은 것이라 여겨질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라다르크라는 마을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보면 알 수있다. )

일단 갖추어진 막강한 힘을 순순히 포기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9.11은 이슬람 문명권의 자격지심보다도 오히려 미국의 끝없는 욕망때문이다. 열려진 세계에선, 누구나 다 꼭대기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가능하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라이트 급이 헤비급을 싸워 이긴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하늘의 별이야 운 좋으면 딸련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헤비급이 핸디캡 없이 라이트급과 싸운다는 것은 폭력이다. 자유 경쟁은 실은 폭력의 권장이다.

그 논조나, 전제가 어찌 돼었든, 세계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 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을 통해 한가지 깨달음이 있다면, 그리고 그나마 평평화된 세계가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전쟁의 억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세계가 서로 평평해 얽히고 설켜 있을때,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한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게 평평한 세계는 평평한 세계를 돌리는 태엽의 일부도 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부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기엔,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미 달콤한 돈에 취해 있으므로.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다. 전쟁이 경제와 연관되기는 하나, 그것이 꼭 필수인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평평화된 세계를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얼르고 있는 무한경쟁 속에 감추어진 힘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될듯 싶다. 그리고 꼭 무한 경쟁만이 세계를 평평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평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만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철학적 토대 또한 탄탄히 다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세계가 진정 평평해지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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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개 2006-02-1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내용일지 짐작은 했는데 역시나 이런 책이었군요.
리뷰를 보면서 열이 슬슬 오르고...이거 베스트셀러라는데 이 책보고 다들 감동하시면 어쩌나...

하루살이 2006-02-15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편에서 보니까 이렇게 생각한거고, 나름대로 세계의 흐름이나, 깨우침을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너무 분개하진 마세요^^. 알아야 대처할 수 있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