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진정한 자아는 누구와 같이 있든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46쪽

우리는 계획보다는 우연에 의해 목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62쪽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가장 위대한 결실과 가장 위해한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태롭게 사는 것이다.-니체-70쪽

우리 사회는 처음으로 정신이 멀쩡한 인간이 경제적 압박을 받지않아도 일을 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또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받는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71쪽

노동을 바라보는 근대적이느 그러니까 전보다 한결 명랑해진 태도가 처음 드러나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특히 그 시대 화가들의 전기에서다....

하인한테 노동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의 경영 이론을 기다려야 한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예술적 영역을 넘어 다른 영역으로까지 폭넓게 확대된다. 벤저민 프랭클린, 디드로, 루소 등과 같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글에서 일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으로 다시 규정되는 것을 볼 수 있다.-72~73쪽

일의 선택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일자리에 새로운 특질, 마치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는 특질을 부여했다. 이제 존경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받고 보수가 좋은 자리는 지능과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미국의 신교 교파들은 신이 신자들에게 세속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74~75쪽

주어진 일의 성취에 자존심과 가치를 투자했을 때에만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 수치감을 느낀다. 우리가 무엇을 승리로 해석하고 무엇을 실패로 여기는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77쪽

모든 기업은 원료, 노동, 기계를 가장 싼 값에 모은 다음, 그것을 결합하여 제품을 만들어 가능한 가장 높은 값으로 팔려고 한다.

그러나 곤혹스럽게도 노동과 다른 요소들 사이에는 한가지 차이가 있다. ... 즉 노동자는 고통과 쾌락을 느낀다는 것이다. 생산 라인은 가동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지면 가동이 중단되기도 하는데, 이때 기계는 자신이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지 않는다.-80쪽

인생은 고통일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믿음은 수백 년 동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의 하나였다. 이것은 마음이 독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보루가 되기도 했고, 좌절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희망의 길로 가는 발걸음을 막아주는 보호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적 세계관이 배양한 기대가 이 보루와 보호벽을 잔인하게 제거해보리고 말았다. 이제 휴가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면, 일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ㅏ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 -82쪽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파스칼-104쪽

'남들처럼' 되는 것만큼 창피한 운명은 없다.

보통이라는 것이 존엄과 안락에 대한 중간적인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일 때는 높은 지위를 향한 욕망이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111쪽

삶을 붙잡아두는 데에는 감각 경험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보는 것을 나열한 자료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오직 선별을 할 때에만, 선택과 생각이 적용될 때에만 사물들이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다. -124쪽

농담은 비판의 한 방법이다. 오만, 잔혹, 허세 등 미덕과 양식으로부터 벗어난 것들을 비판하는 방법인 것이다.-135쪽

우리는 지나치고 어울리지 않는 것을 비웃는다. ...
우리는 비웃고, 비웃음을 통하여 불의와 과잉을 비판한다. -137쪽

우리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어색한 측면들을 드러낸다. 걱정이 은밀하고 강렬할수록 웃음의 가능성도 커지며, 이때 웃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꼬챙이에 꿰어내는 솜씨에 바치는 찬사가 된다.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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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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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 9편을 모은 책이다. 알짜만을 모았으니 주옥같은 책이라 하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겠다. 물론 일상적인 것에 대한 그의 독창적 시선과 철학적 사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뒤통수를 후려치는 맛이나, 가슴 속을 울려대는 감성으로 인한 책읽기의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가 제시한 예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한국의 거리와 조금은 다르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그가 이야기하는 예술 작품들을 모른다고 해서 큰 불편은 없지만 그래도 가슴 깊숙히 와 닿는데는 장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움직이는 기차안에서 혼자 타고 있거나, 도로변의 주유소나 카페등이 내뿜는 풍경 속에서, 즉 외로움이 묻어나는 환경이 자신을 바라보는, 또는 자아를 찾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엔 충분히 공감한다. 일상적인 공간은 물론 동물원과 같은 곳에서, 또는 공항에서 뜨고 앉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그것의 삶의 경로(진화)나 여행경로를 통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것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는 생각은 무척 재미있다. 한번쯤 나도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과연 외로움이라는 감성이 어떤 식으로 변신을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따분함과 외로움 속에서 무난히 유영하던 삶이 점차 그 속에 가라앉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에 대한 낯선 주파수 들이대기가 유효할지, 혼자놀기의 진수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의 기본적인 생각에 동의한다. 특히 일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통렬하다. 행복하기 위한, 또는 가치를 지닌 일이라는게 진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 돈이 있어도 일을 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상식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그리고 과연 일이란 진정 자아완성의 도구인가? 실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할 수도 있다. 정말 당신이 로또라도 당첨되면 일을 할 것인가? 물론 지금 하고있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하는 그 일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지 않을까? 내가 평상시에 또는 평생의 소원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일이라는 것도 실은 경제적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는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닐까? 난, 강렬하게 원한다. 일로부터의 자유를... 하지만 꿈꾸는 일은 있다. 그것이 남들 보기에는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이 일은 일이 아니기에 나를 찾는 방편이 될 수 있다. 정말 자아완성의 일이란 남들 눈엔 일처럼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들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냥 지나치는 일상적인 것들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그것으로부터 가치의 변환을 시도하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자유롭다.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자아를 향한 진정성은 주위의 작은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으로부터 이루어짐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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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8-2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씨의 열렬팬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통씨를 버리지 못하고 있지요
다만, 예전처럼 열렬한 마음이 좀 가라앉아서^^
신간인가보군요. 근데 일시품절이라는 거참 알라딘은....
우야튼, 보관함에 두고 구입할 때 땡스투 누릅니다.
나를 바라보는 자세. 아, 혼자서도 잘 노는 저는 혼자놀기의 달인입니다.
썩 나쁘진 않던걸요^^

하루살이 2006-08-21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놀기를 십년이 넘게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져서...ㅠㅠ
 
울지마라 너만 슬프냐
안효숙 지음 / 책이있는풍경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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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터만을 돌아다니며 화장품을 파는 아주머니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장터를 지키는 장사꾼과 이들을 찾는 단골들, 비워진 자리는 어김없이 채워지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서 울고 웃는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꿈을 잃지않고 생계를 꾸려가며 살아가는 가장의 어깨가 웃음으로 때로는 울음으로 들썩인다. 못된 사람들에게 분노하다가도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는 천사같은 사람들을 통해 희망을 찾고,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시장 사람들로 말미암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남의 슬픔보다 내 아픔에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있나 보다(184쪽)

며 맨 처음 장에 나섰을 때의 막막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금 조금은 자신이 모질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책을 조금만 읽어도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구질구질하다고 생각도 했다. 소위 밑바닥이라고 하는 인생살이가 얼마나 화려하며, 즐거울 수 있겠는가? 햇빛나는 삶이 아니라 먹구름 속에서 살아가며 언젠가 볕들날 있기를 바라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실은 고개를 돌리고픈 광경일지 모른다. 솔직히 책을 덮어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저잣거리의 사람들 속에서 이들이 바로 천사임을 깨달으며 끝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장터에 자리잡기 까지의 어려움, 또 자리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 물건을 조금이라도 많이 팔면 나타나는 함박웃음과 아무것도 팔지 못했을 때의 절망감. 날씨에 따라 희노애락이 교차하고, 꽃이 피면 나들이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마음, 떠나고픈 심정을 꽉 붙들어매고 장터를 지키고 앉아야 하지만 그래도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행복해하는 소탈함. 자신의 처지도 어려운데 옆에 자리를 펴고 앉은 아이나 아낙들을 위해 물건을 팔아주기도 하는 심정, 비와 눈이 쏟아지는 날 집에 있는 것이 나은 줄 알면서도 나섰다가 몰골만 추레해지기도 하는 주인공의 현실과 감추어진 속내를 보고 있노라면 솔직히 지금 나의 처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인간이라는 것이 우스워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꼭 잣대를 들이대며 혼자서 판단해버린다. 고백하건대 내가 겪었던 무엇인가 조금은 억울하고 불편하고 괴로웠던 경험들을 과대포장해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로 채색해,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안도하는 것이다. 우습게도 말이다. 그러자고 책을 읽은 것이 아닌데도. 그 따뜻한 마음을 종이를 통해 가슴으로 전달받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엉뚱한 심정이 드는 것이다.

울지마라, 너만 슬프냐.를 통해 울일 조차 없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꼴이니, 나는 정말 "남의 슬픔보다 내 아픔에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있나 보다"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여, 한번쯤 책장을 펼쳐 볼 일이다. 세상이 꽃밭일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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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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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가 한비야가 월드비젼이라는 구호단체로 들어가 긴급구호활동가로 변신하게 된 사연과 5년 간의 활동을 담고 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에세이로서뿐만 아니라 긴급구호활동에 대해 톡톡하게 홍보역할을 해내고 있다. 책을 읽은 나 자신도, 감명을 받고, 한편으론 지금까지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당장 후원가입을 신청했으니 말이다.

소년병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이겨내고 삶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아이들, 전쟁과 가난으로 고생받는 사람들에겐 한방울의 물, 한톨의 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은 거창한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돈 단돈 2만원이면 굶주리는 아이의 한달 생계가 해결된다. 책 한두권, 영화 한두편, 또는 술자리 한번 꾹 참으면 아이의 생명이 한달간 보장되는 것이다. (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다. 도대체 환율의 마력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 똑같은 쌀을 생산하면서 왜 한쪽에선 금값이 되고 한쪽에선 똥값이 되는지... 그 차이의 극복부터가 필요하지 않을까? 경제에 문외한인 나의 오래된 의문이다)

가난과 질병이 이들이 게으른 탓이 아니라, 재해나 환경, 또는 정부의 탄압 등등 외부 조건때문임을 안 이상, 그리고 자력으로는 그 죽음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이상,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잠깐만 손을 뻗쳐주면 스스로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 한비야는 이들이 삶의 끈을 놓치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책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부터 시작해 말라위, 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네팔, 팔레스타인, 남아시아, 북한 등에서 펼치는 구호활동이 주는 현실적 생동감은 물론, 현지 직원들간의 만남을 통해 보여주는 우정과 사랑, 충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의 갈등 등등이 웃음과 눈물로 범벅되어 마음을 관통한다.

그렇다고 긴급구호활동이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힘든 일임을 자신의 세계여행 첫발을 내디뎠던 일화를 통해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견딜만큼 견뎠으니 누구도 욕하지 못하리라는 생각 한편으로 몸은 편해도 자신이 꿈꾸어 왔던 것을 쉽게 포기했다는 것 때문에 쉽게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의 불편함으로 끝내 목표를 향해 뛰어갔던 모습 속에서, 의지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또 한편 시에라리온의 아이들이 다이아몬드 광장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준비나 노력없이 하루아침에 무엇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지 모른다는 헛된 꿈이 어떻게 아이들의 발목을 잡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로또와 같은 복권이나 주식, 집값 폭등 등에 목말라하는 한국이라는 곳의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져 씁쓸함을 건네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책이 주는 감명은 한비야라는 인물 그 자체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두 번째 삶에 온통 마음이 끌려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고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현실은 다르지 않는냐고.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난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오늘도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진하고 소진했을지라도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14쪽) 

나는 사람은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과 감동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걸림돌로 만든 것인가, 디딤돌로 만들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과 활용 방법에 달려 있는 것이다.(302쪽)

나의 피를 들끓게 하는 무엇을 찾아 새장 밖으로 떠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또한 무엇이 나를 불꽃처럼 태우게 만드는지 곰곰히 더듬어보아야겠다. 지도 밖으로행군하는 한비야 이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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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의 약속 - 2005 한국 초모랑마 휴먼원정대
심산 지음 / 이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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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에베레스트 죽음의 지대에서 과연 조난자를 구하지 않는 것이 비난받을 짓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의족을 한 뉴질랜드인 마크 잉글리스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나서 내려오는 길에 조난자를 발견했지만 그냥 내려왔다는 인터뷰 이후, 많은 산악인들 또한 비슷한 경우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반대로 25일 호주 산악인 홀이 탈진상태로 쓰러져 있는 것을 미국인 댄 마지르가 등정을 포기하고 구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훈훈한 인간애를 전해왔다. 그렇다고해서 조난자를 구조하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악조건 속에서 남을 구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섣불리 덤볐다가는 또다른 조난이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작년 초모랑마 휴먼원정대를 꾸렸던 엄홍길의 산행은 특별하다. 죽어버린 산친구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 험난한 산행을 계획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진한 감동이다. 이 책은 휴먼원정대가 꾸려진 사연부터 시작해 시신수습의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등산전문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정대원들 하나하나의 감정들을 그대로 실어내고 있다.

초모랑마에서 목숨을 잃은 3명의 이야기와 남겨진 가족들의 사연을 읽다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특히 죽음을 알면서도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섰던 미련곰탱이 백준호의 모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끔 만든다. 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과감히 저버릴 수 있는 그 힘이 바로 사람다움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엄홍길을 비롯한 휴먼 원정대의 사투 또한 울음샘을 자극한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쫓아온 사람들부터 시작해 이들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많은 사람들의 사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한줄 알면서도 떠나는 사람들,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 아들을 집어삼킨 산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분노보다는 오히려 미안함과 격려, 애정을 쏟는 유가족들. 세상이 너무 따뜻하게 보인다. 그 추운 에베레스트의 심술을 녹일 정도로 말이다.

휴먼원정대의 결과가 성공이라고 해야할지 실패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산에서 목숨을 잃은 3명중 박무택의 시신만을 데리고 내려와 돌무덤을 만들어주었지만 이들의 소원은 분명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리고 먼저간 3명은 아마도 이들의 사랑을 알고서 초모랑마를 더이상 배회하지 않고 영혼의 안식처로 떠났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약속. 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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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5-3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른다.. 꾸욱~

하루살이 2006-05-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나서도 미련곰탱이 백준호가 계속 떠오르는 거 있죠!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
죽음이 눈 앞에 보이는데 걸어들어갈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