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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평점 :
아프리카에서 원숭이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돌아와 갑자기 자살을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평소 그토록 무서워하던 것들을 스스로 죽음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어 기묘하다. 게다가 일반인들 중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더욱 커진다.
<천사의 속삭임>은 무엇인가에 의해 개인적 두려움이 쾌락으로 변해가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두려움과 쾌락이라는 것의 작동원리는 뇌과학으로 풀어지며, 그 심리적 기제는 그리스 신화 속의 복수의 여신과 천사를 통해 드러낸다.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토대로 한 유전학과 생물학 등 곳곳에서 마주치는 과학적 지식 등은 소설의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로도 작용한다. 신화에서 뇌과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이론과 지식들이 사건 속에 잘 버무려져 있다.
이 소설을 끌어가는 핵심단어로는 불안과 공포를 꼽을 수 있다.
불안과 공포는 정글 속에서는 필요한 기능이었습니다만, 문명 사회에서는 반대로 큰 부담이 됩니다. 현대인은 가혹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 패닉 장애 등에 짓눌려 살고 있지요. 여기에 강한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인간의 신경세포는 물리적인 손상을 입습니다. 우리들의 시냅스는 거의 닳아 없어지기 직전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우아카리 선충은 우리를 과도한 스트레스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며, 천사의 속삭임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복음입니다. 485쪽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반드시 없어져야만 할 감정인 것만은 아니다. 불에 덴 경험을 한 이후 불을 두려워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자신의 몸이 탈 위험을 예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쾌락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은 당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니나가와 교수의 문명사관은 간단히 말하면 생존과 행복이라는 두 가지 욕구의 상극에 의해 인류문명애 발달해왔다는 것입니다. 뇌는 항상 지나칠 정도로 쾌감과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하는데,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버리면 생존을 위해서는 부적합한 행동을 취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도태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인류는 이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양쪽 다 같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외적과 재해, 기아, 전염병 등에 대비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말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듯이 가장 손쉬운 전략은 먼저 생존을 위해 필요 충분한 자원을 확보해두고, 행복 쪽은 가능한 한 돈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처리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뇌는 그 정도로는 좀처럼 만족하질 않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문명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요가나 명상 같은 손쉬운 방법으로 내적 세계의 탐구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그 일조로서 약품을 사용하는, 이른바 드러그 컬처라는 것도 수없이 존재했습니다. 29쪽
두려움에서 벗어나 쾌락만이 가득한 곳은 과연 천국일까. 쾌락의 향연은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고통마저 감수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뭔가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598쪽
이점이 바로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동력이 되며 사건이 퍼져가는 힘이 된다. 두려움으로 인해 무엇인가에 기대게 만들고, 그 기댐은 대부분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곤 한다. 단 사람과 사람사이의 기댐만은 제외다.
오늘도 불안과 공포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도시인의 삶 속에서 망각의 힘을 가져다주는 쾌락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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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의 네트워크라는 것은 말이야, 정보망 같은 게 아니라 트램펄린(금속 사각형 틀에 그물처럼 짜인 스프링으로 캔버스 천을 연결하여 만든 기구) 네트야.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무너질 테니까. 그럴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충격을 분담시켜서 네트 전체가 흡수하게 만들면 되는 거야. 59쪽
생각해보면 다카나시에게는 죽음 공포증에 빠질 조건이 너무 충분할 정도로 갖춰져 있었다. 먼저 경제적으로 넉넉하여 날마다 생계를 위해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죽음 공포증은 옛날부터 왕후귀족들의 마음의 병으로 알려져 왔다. 매일 생활을 위해 수많은 문제와 격투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불확실하고 먼 장래에 일어날 죽음에의 공포따위를 느깔 여유가 없다.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고 난 인간의 허탈감, 마음의 공허야말로 위험한 것이다. 다음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응시하는 것이다. 작가나 철학자 같은 사람들도 역시 죽음 공포증과 관계가 깊다. 그들은 무슨 일에나 응시를 한다는 가장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에 의미 따위가 존재할 리도 없고, 바로 정면에서 응시하면 어떤 것이라도 의미를 잃은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번째는 과학에 대해 너무 순진할 정도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원래 세계를 정확히 기술하는 것과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무관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그 차이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유전자의 운반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은,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를 혹한의 우주에 발가벗긴 채 내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공포의 양이라는 것은 늘 일정할지도 모른다. 81쪽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리 싫어도 타인과 교섭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깊이 상처받지 않도록 방어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긴장되어 있던 마음의 방어막이 마치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근 것처럼 녹녹해지는 것이다. 162쪽
그리스 신화 에우메니데스. 복수의 여신. 그리스어로 친절한 자라는 뜻의 역설적 표현. 206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퓨리즈라고 할까, 복수의 여신들, 에리뉘에스의 다른 이름이야. 왜 친절한 신이라 불리는 거지. 반 빈정거림, 반 두려움에서 그러는 거야. 퓨리즈(악마)라고 불러 화를 돋우고 싶지 않은 거지. 선량한 그리스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여신을 아주 무서워했던 것 같아.
천사는 완벽하게 착한 심성의 체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인간의 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몇번이나 인류에 가혹하기 그지없는 징벌을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신의 뜻을 거슬렀다고 해서 아시리아 병사 18만 5천명이 하룻밤에 천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또 인간과 가축을 불문하고 이집트 전 지역의 부자들이 천사에 의해 말살되었다는 예 등도...
메데이아-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녀- 콤플렉스.
정보는 반복되고 과장되고 윤색되고 왜곡되면서, 보도되는 동안 점점 형태를 바꾸어간다. 그 속도는 에이즈 바이러스 이상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바이러스와 똑같이 살아남기 쉬운 형질을 갖춘 것이다. 요컨대 좀더 사람들의 의식에 새겨지기 쉬운, 선정적이고 공포라는 근원적인 감정에 직결하기 쉬운 이야기이다. 319쪽
그런 성격의 유형은 사나에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긴장을 잘해서 이내 중심을 잃고 앞뒤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다. 지나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패배를 선택해버린다. 불필요하게 비관적이 되어 나쁜 예상만 머릿속에 떠올리다 마이너스의 자기암시를 걸어버린다.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를 범하기만 해도 짜증을 낸다. 이런 성격을 특히 일본인에게 많은데, 한편으로는 우울증과 거식증이 되기 쉬운 특징이 있다. 4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