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바위 - 영험한 오하쓰의 사건기록부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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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어버린 실화에는 감추어진 것들이 많다. 필사의 과정에서도 수많은 오탈자로 뜻의 변화가 발생하는데 구전의 과정에선 오죽하겠는가. 특히 시대의 영웅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 덧붙여지는 것과 제외되는 것들로 인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일본 에도 시대 아코 무사 47명의 충혼에 대한 이야기는 <가나데혼 주신구라>라는 이름으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랑받는 작품이다. 자신들이 모시던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충성심은 회자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의 발단이 된 사건에 대해선 정확하게 전해진 것이 없다. 오직 연극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추측들은 충성심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재료로 쓰일 수밖에 없다.  

소설 <흔들리는 바위>는 아코 무사들이 죽은 후 100년이 지난 시대를 배경으로 갑작스레 유아살해라는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아살해와 아코 무사와의 관계가 도대체 이어질 것 같지 않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뜻밖의 연관성을 지니게 된다.  

유아살해라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인물은 오하쓰라는 처녀와 우쿄노스케라는 젊은이다. 오하쓰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마음이 남아있는 곳에서 과거를 볼 수 있고, 사령 즉 유령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쿄노스케는 지금으로 말하면 수학에 재능을 가진 심약한 젊은이로 논리적 사고를 지니고 있다. 이 둘은 유령이 씌운 사람이 유아살해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게되고 그 유령의 억울함이 아코 무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책은 판타지와 추리, 활극이 잘 버무려져 읽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진중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예외없는 절대명령으로 인한 희생, 집단에 따라야만 하는 개인의 희생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미야베 미유키는 아코 무사의 이야기의 발단이 한 무사의 정신착란으로 인해 벌어졌을 때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끌고 간다.  

영토 안에서 칼부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명령이 정신착란 무사로 인해 어겨졌다. 무사는 할복을 명령받고, 칼부림의 대상이 됐던 무사 또한 피해를 입는다. 칼부림을 했던 무사가 정신착란이었음을 번주가 인정만 했더라도 상관 없지만, 그것을 묻어둠으로 인해 무사의 부하들은 할복한 주인을 위해 상대를 베어야만 한다. 그 시대는 그랬다. 이 부조리를 모른 사람이야 충절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겠지만 전후사정을 알고 난 무사들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영지 내에서 생명을 죽이는 일을 절대 금한 곳이 있었다. 명령 자체는 훌륭해 보인다. 그런데 들개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촌민을 구하기 위해 칼을 쓴 무사는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분과 직장을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게 정당한 대우일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무사의 노력은 결국 억울함으로 인해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던 중세 시대에만 벌어지고 있는 일일까. 혹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법이나 명령으로 인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까. 공중파 방송에서 보여주는 시청자 칼럼이나 여러가지 고발 시사 프로그램들 속에서 우린 중세 못지않은 억울함을 마주치게 된다.  

그 영혼들을 어찌 위로할 수 있을까. 절대라는 단어의 척박함과 견고함이 망령이 되어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섬뜩해지는 세상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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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인간
심포 유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들녘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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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서로가 그립고 반가워야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철없고, 상처 입기 쉽고, 자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괴로워했던 과거의 모습을 서로 확인할 수 있어야 지금과 이어진다. 필요한 것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에만 사는 인간은 없다. 갓 태어난 아기는 우는 것밖에 모른다. 경험을 쌓아가면서 사람이 된다. 내게는 과거가 없다.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다. 함께 과거를 그리워할 친구가 없다.  325쪽 
 

소설의 주인공 나쓰미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목숨마저 위태로울 정도로 큰 사고였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식물인간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속에선 과거의 그가 없다.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나쓰미는 나쓰미라는 이름을 가진 예전의 그일까.(이런 소재는 소설이나 SF영화의 단골로 등장한다) 과거의 기억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 또한 예전의 그가 아닐 수도 있다.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이국의 땅에 건너갔을 때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게 쉬울 수 있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소설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음을 나쓰미의 치료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나쓰미는 마치 아이가 말을 배우고 인생을 알아가듯 천천히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간다. 하지만 서른을 갓 넘긴 그가 열살짜리 아이일 수는 없다. 8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나쓰미는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고 과거의 자신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마주치는 사건의 전말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애인이었던 여자가 왜 자신을 피하려 하는지, 과거의 친구들이 머뭇거리며 왜 자신의 애인에 대해 질문하지 않은지, 그리고 조금은 몰상식해 보이는 친구들을 왜 사귀었는지 의심가는 과거의 자신... 그리고 어머니와 의사는 왜 그토록 자신이 과거를 잊고 현재로부터 새로 출발하도록 하려 애썼는지 등이 소설이 결말을 향해 가면서 숨가쁘게 드러난다.  

그리고 마지막에 벌어지는 대형사고는 과거를 알게 된 그가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인지, 현재의 나라는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할 것인지를 시험하게 만든다. 자아라는 정체성이 갖는 끈적끈적한 한계. 즉 자아를 규정하는 순간 생겨버리는 경계선은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자아를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을 일으킨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경계선 안에 머물고 싶어한다. 그러나 때론 불굴의 의지로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도 발생한다. 바로 그 순간이 기적의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이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안도의 순간일 수도 있다.  

즉 '나라는 인간' 이라고 규정해버린 '나'의 틀을 깰 수 있는 그 순간이 바로 기적의 순간이 되며, 그것이 새로움을 향한 변화의 기폭제가 되는 것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기적의 인간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생명의 기적이라기 보다는 나라는 틀을 깨는 바로 그 순간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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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의 러시아워는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옆 사람과 몸을 꼭 붙이고 말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 온 일본을 혈관처럼 달리고 있다. 마침내 오염돼 쓸모가 없어진 혈액은 신장에서 걸러 몸 밖으로 버린다고 들었다. 사람도 그렇게 되는 걸까. 러시아워에 시달리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2쪽 

아는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면 누구든 한번 찾아가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그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사실에 길들어져 병원으로 가는 횟수가 줄어든다. 환자도 아무도 찾아주지 앟는 것에 끝내는 길든다. 길들 뿐이다. 쓸쓸한 마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 쓸쓸함에도 결국은 길든다. 병과 상처에 고통받는 일에도 길든다. 길들어, 그에 맞설 기력을 잃어간다. 110쪽 

사람에게는 각기 삶의 방식이라는 게 있지.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그건 하나의 삶의 방식이야. 아픔을 참고 무리를 하는 삶은, 남들에게는 몸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어리석은 삶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지. 하지만 말이야, 그때의 생활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럴수록 사람은 그 생활을 소중히 여기고 무리를 거듭하게 되는 법이야. 176쪽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입원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사람에게 죄를 묻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심을 베풀어 자유의 몸으로 풀어줄 수도 없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으니 입원이라도 시켜두자. 주위 사람들이 자기 만족을 위해 취한 조치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 사람에게 죄를 인식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자유를 강탈한 의미가 없지 않은가.  3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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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9-02-16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발자국 남겨주세요. 가끔은 흔적이 그립답니다. *^^*
 
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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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원숭이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일본으로 돌아와 갑자기 자살을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평소 그토록 무서워하던 것들을 스스로 죽음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있어 기묘하다. 게다가 일반인들 중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더욱 커진다.  

<천사의 속삭임>은 무엇인가에 의해 개인적 두려움이 쾌락으로 변해가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두려움과 쾌락이라는 것의 작동원리는 뇌과학으로 풀어지며, 그 심리적 기제는 그리스 신화 속의 복수의 여신과 천사를 통해 드러낸다.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토대로 한 유전학과 생물학 등 곳곳에서 마주치는 과학적 지식 등은 소설의 재미를 더할 뿐만 아니라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로도 작용한다. 신화에서 뇌과학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이론과 지식들이 사건 속에 잘 버무려져 있다.   

이 소설을 끌어가는 핵심단어로는 불안과 공포를 꼽을 수 있다.

불안과 공포는 정글 속에서는 필요한 기능이었습니다만, 문명 사회에서는 반대로 큰 부담이 됩니다. 현대인은 가혹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 패닉 장애 등에 짓눌려 살고 있지요. 여기에 강한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인간의 신경세포는 물리적인 손상을 입습니다. 우리들의 시냅스는 거의 닳아 없어지기 직전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우아카리 선충은 우리를 과도한 스트레스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천사이며, 천사의 속삭임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복음입니다. 485쪽 
 

인간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반드시 없어져야만 할 감정인 것만은 아니다. 불에 덴 경험을 한 이후 불을 두려워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감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려움이 없다면 자신의 몸이 탈 위험을 예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쾌락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은 당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  

니나가와 교수의 문명사관은 간단히 말하면 생존과 행복이라는 두 가지 욕구의 상극에 의해 인류문명애 발달해왔다는 것입니다. 뇌는 항상 지나칠 정도로 쾌감과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하는데,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버리면 생존을 위해서는 부적합한 행동을 취하게 될지도 모르고, 또 도태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인류는 이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양쪽 다 같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한편으로는 생존을 추구하기 위해 외적과 재해, 기아, 전염병 등에 대비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문화를 만들어내면서 말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듯이 가장 손쉬운 전략은 먼저 생존을 위해 필요 충분한 자원을 확보해두고, 행복 쪽은 가능한 한 돈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처리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뇌는 그 정도로는 좀처럼 만족하질 않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문명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요가나 명상 같은 손쉬운 방법으로 내적 세계의 탐구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그 일조로서 약품을 사용하는, 이른바 드러그 컬처라는 것도 수없이 존재했습니다. 29쪽 

두려움에서 벗어나 쾌락만이 가득한 곳은 과연 천국일까. 쾌락의 향연은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고통마저 감수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뭔가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나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598쪽
   

이점이 바로 소설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동력이 되며 사건이 퍼져가는 힘이 된다. 두려움으로 인해 무엇인가에 기대게 만들고, 그 기댐은 대부분 인간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곤 한다. 단 사람과 사람사이의 기댐만은 제외다.  

오늘도 불안과 공포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도시인의 삶 속에서 망각의 힘을 가져다주는 쾌락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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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의 네트워크라는 것은 말이야, 정보망 같은 게 아니라 트램펄린(금속 사각형 틀에 그물처럼 짜인 스프링으로 캔버스 천을 연결하여 만든 기구) 네트야.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무너질 테니까. 그럴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씩 충격을 분담시켜서 네트 전체가 흡수하게 만들면 되는 거야. 59쪽 

생각해보면 다카나시에게는 죽음 공포증에 빠질 조건이 너무 충분할 정도로 갖춰져 있었다. 먼저 경제적으로 넉넉하여 날마다 생계를 위해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죽음 공포증은 옛날부터 왕후귀족들의 마음의 병으로 알려져 왔다. 매일 생활을 위해 수많은 문제와 격투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불확실하고 먼 장래에 일어날 죽음에의 공포따위를 느깔 여유가 없다. 원하는 것을 모두 손에 넣고 난 인간의 허탈감, 마음의 공허야말로 위험한 것이다. 다음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응시하는 것이다. 작가나 철학자 같은 사람들도 역시 죽음 공포증과 관계가 깊다. 그들은 무슨 일에나 응시를 한다는 가장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에 의미 따위가 존재할 리도 없고, 바로 정면에서 응시하면 어떤 것이라도 의미를 잃은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세번째는 과학에 대해 너무 순진할 정도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원래 세계를 정확히 기술하는 것과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무관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그 차이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유전자의 운반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생각은, 비록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를 혹한의 우주에 발가벗긴 채 내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인간이 가진 공포의 양이라는 것은 늘 일정할지도 모른다. 81쪽 

현실세계에서는 아무리 싫어도 타인과 교섭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깊이 상처받지 않도록 방어 자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으면 긴장되어 있던 마음의 방어막이 마치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근 것처럼 녹녹해지는 것이다. 162쪽 

그리스 신화 에우메니데스. 복수의 여신. 그리스어로 친절한 자라는 뜻의 역설적 표현. 206쪽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퓨리즈라고 할까, 복수의 여신들, 에리뉘에스의 다른 이름이야. 왜 친절한 신이라 불리는 거지. 반 빈정거림, 반 두려움에서 그러는 거야. 퓨리즈(악마)라고 불러 화를 돋우고 싶지 않은 거지. 선량한 그리스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 여신을 아주 무서워했던 것 같아.  

천사는 완벽하게 착한 심성의 체현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인간의 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천사는 신의 명령에 따라 몇번이나 인류에 가혹하기 그지없는 징벌을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신의 뜻을 거슬렀다고 해서 아시리아 병사 18만 5천명이 하룻밤에 천사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술이 있습니다. 또 인간과 가축을 불문하고 이집트 전 지역의 부자들이 천사에 의해 말살되었다는 예 등도... 

메데이아-자신을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왕녀- 콤플렉스

정보는 반복되고 과장되고 윤색되고 왜곡되면서, 보도되는 동안 점점 형태를 바꾸어간다. 그 속도는 에이즈 바이러스 이상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바이러스와 똑같이 살아남기 쉬운 형질을 갖춘 것이다. 요컨대 좀더 사람들의 의식에 새겨지기 쉬운, 선정적이고 공포라는 근원적인 감정에 직결하기 쉬운 이야기이다. 319쪽 

그런 성격의 유형은 사나에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긴장을 잘해서 이내 중심을 잃고 앞뒤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버린다. 지나친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패배를 선택해버린다. 불필요하게 비관적이 되어 나쁜 예상만 머릿속에 떠올리다 마이너스의 자기암시를 걸어버린다.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를 범하기만 해도 짜증을 낸다. 이런 성격을 특히 일본인에게 많은데, 한편으로는 우울증과 거식증이 되기 쉬운 특징이 있다. 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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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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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는 밀실범죄를 다루고 있다. 롯폰기 빌딩 12층 사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트릭을 밝히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단 소설의 전반부는 방범 컨설턴트-다른 소설 이라면 탐정에 해당하는-의 입장에서, 후반부는 범인의 입장에서 전개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것은 범죄가 일어난 수단과 방법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게 된 범인의 인생역정을 통한 심리적 접근까지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하다. 또한 절대 안전하게 설계된 또는 만들어진 로봇이 어떻게 범죄에 이용될 수 있는지를 통해 의도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소설의 제목 <유리망치>는 범죄의 도구를 암시할 뿐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정신상태도 보여준다. 흔히 질풍노도라고 부르는 청소년기에 가해지는 압력은 어른이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것에도 청소년의 정신상태를 산산조각 낼 수도 있다. 마치 어느 정도 버텨내던 유리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순간 깨져버리듯 말이다. 범인의 범죄동기는 이렇게 깨져버린 정신 속에서 만들어져 죄의식을 지우고 범죄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어른들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했던 범인은 돈이 주는 힘을 통해 그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그 힘을 얻기 위해 그는 또다른 폭력을 사용한다. 그가 힘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일그러져 있는 셈이다. 힘에 대한 관념은 범인이 어렸을 적 경험한 극한에 가까운 체험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계속 유지하도록 만들어준 사회 탓이기도 하다. 밀실범죄를 다룬 재미있는 추리소설 뒤편엔 일그러진 힘에 대한 자화상도 살펴볼 수 있다.  

사족 :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우리는 어떻게 배울까. 지금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그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그 방법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나중 문제다. 소설 속에선 얼핏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단상도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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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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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으로 말하곤 하지만, 정말 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하더라도 60억에 육박하는 인간사를 모두 관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어디 우주가 지구뿐이던가. 그렇다면 신도 한 명이 아니라 각자 관장하는 영역이 존재하는 다수이진 않을까 의심해 볼 일이다. 물론 이 신에도 위계질서는 있어서 신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통과했을 때만이 자격이 주어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두를 관장하는 대표신이 따로 있을지도.

베르나르의 이번 소설 <신>은 바로 이런 신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선 지구와 같은 행성을 창조.파괴해 가면서 인간의 문명발전을 지켜보는 교육도 포함된다. 이 교육은 실습교재인 인간을 생명으로 바라보는냐, 아니냐에 따라 신으로의 승격과 도태가 갈리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신의 길로 가는 과정에서 실패한 실습은 행성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끔찍한 일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바로 이 부분에서 갈등의 골이 심화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고 신 연수생들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마치 인간이 전쟁과 폭력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처럼 말이다.  

신이 되는 과정은 마치 인간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신에 의해 조종되어지는 인간들 또한 우리 사회를 떠오르게 만든다. 즉 지구인의 모습과 신의 모습 모두를 통해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쥐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영역과 위계에 집착하는 동물입니다. 영역과 위계, 이는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예요. 모든 인간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죠... 인간은 노예상태를 좋아하고 우두머리를 숭배합니다. 그리고 우두머리가 공포감을 많이 주면 줄수록 자기들이 더욱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죠. 312쪽 
 

쥐 실험에서 드러나는 위계란 착취자, 피착취자,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자,천덕꾸러기를 말한다. 어느 집단에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이 위계질서는 인간사회에서도 통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다시 신 연수생들에게도 적용된다.  

공포감을 직시하고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불가능할까. 벼룩이 자신의 점프 능력보다 낮은 유리천장에 부딪히면서 점프를 낮추어 자신의 능력이 본래 낮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 개개인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유리천장을 볼 수 있는 눈, 그것이 진정 신으로부터 독립되는 길이며, 그것이 바로 내 자신이 신이 되는 길은 아닐까. 위계질서로부터 자유롭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능력은 내가 자꾸만 부딪히는 그 한계점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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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행복을 건설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불행을 줄이기 위해 애쓴다. 43쪽 

우리의 불안은 미래를 상상하는 우리의 능력에 기인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능력이 있기에 우리는 위험을 예감하게 되고, 언젠가는 죽으리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에가스 모니스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그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이는 길이다. 222쪽 

피터의 원리-
한 위계 조직에서 각 종업원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단계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원리는 1969년 미국의 교육학자 로렌스 J.피터가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기업이나 공공조직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무능화 현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위계 조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창시하고자 했다. ...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기들이 전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지위까지 올라가려고 애쓴다. 262쪽 

협력. 지배, 중립- 

여러분의 씨족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다른 씨족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다음의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남과 함께 남과 맞서서 남과 무관하게 305쪽 

먼저 힘을 키워야해요. 관대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다음이에요. 327쪽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사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자식의 출생이나 자기 자신의 노화를 미리 내다보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죠. 앞으로 게임을 하면서 확인하게 되겠지만, 인간은 농사를 짓게 됨으로써 미래를 내다보며 살게 되고, 나아가서는 사후의 삶을 상상하기 시작합니다. 농업과 더불어 종교가 탄생하는 셈이죠. 366쪽 

원숭이 실험-바나나 매달린 천장. 사다리 올라가면 찬물. 다섯마리 원숭이 경험 통해 못올라가도록 막음. 새로운 원숭이 들어오면 폭력행사로 저지. 이후부턴 바나나와 찬물세례라는 원래 작동계기를 잊고 폭력이 기정사실화 됨. -기업의 집단행동 연구 위한 실험 401쪽 

실패하는 자는 핑계를 찾고 성공하는 자는 방법을 찾는다.409쪽 

일리히 법칙-수확체감의 법칙이 인간의 행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최초의 학자. 인간의 활동은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효율이 감소하며 나아가서는 역효과를 낸다. 농업노동의 양을 배로 늘린다고 해서 밀의 생산량이 배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노동의 양을 늘리는 만큼 생산량이 증가하지만,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노동의 양을 늘려도 생산량이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추가적인 스트레스가 역효과나 파괴적인 효과를 낸다. 458쪽 

벼룩은 자신의 점프능력보다 낮춘 유리천장에 부딪히면 점프를 낮추다 그 낮춘 정도가 자신의 원래 능력이라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관찰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만 하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게 되고 남들이 주입하는 의견에서 벗어나게 되죠.488쪽 

한 쌍의 남녀가 있다면 어느 한쪽은 고통을 받고 다른쪽은 권태를 느끼기 마련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쪽이야. 5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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