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난 첫 느낌은 어렵다는 것이다. 동화적 양식을 띠고 있고,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이야기 덕분에 감탄하면서도,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언뜻 감이 잡히지 않아 난감하게 만든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세상은 하나의 공간과 하나의 시간에 따라 구성되어진 곳이 아닐수 있다는 것. 즉 사람마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음, 그렇게 말하면 안되겠다. 세상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사람의 수만큼 많은 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무한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단편<조금 작지만 괜찮아>와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교외의 집>에서 살펴볼 수 있을듯 싶다. 자동차 속에 그 자동차가 정차할 차고가 있다는 발상이나, 보이는 무한의 점을 향해 자신도 무한의 시간을 여행해야 한다는 것, 집안은 아무 것도 없이 바로 문과 문이 통하는 공간 등은 그야말로 상상력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이런 무한의 공간을 통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다른 단편 <미스라임의 동굴> 이나 <자유의 감옥>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길잡이의 전설>등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로 비쳐진다. 자유의 감옥이라는 표제 그대로 이야기의 촛점을 맞추어 읽다보면 마치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는듯한 착각에 빠져드는듯 싶다. 선택의 순간에 주어지는 무한한 자유가 주는 두려움과 불확실로 인한 공포로 인해 차라리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또는 누군가의 명령에만 그대로 따라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면 말이다.

현실이 괴로워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 탈출의 경로를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는 상황이 그를 더욱 괴롭힌다. 그래서 미스라임의 동굴 속의 그림자는 빛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바로 문 앞에서 돌아서며, 자유의 감옥 속의 주인공은 결코 미래의 어떤 문도 열어젖히지 못하는 것이다. 여행가 막스 무토는 실제로 자신이 목표로 세웠던 것을 잊어버리고, 점차 눈 앞의 사태에만 매몰되어져 간다. 길잡이는 끝내 자신의 꿈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합으로써 꿈의 세계와 맞닥뜨렸을 때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유 앞에서 주춤하는 이들 주인공들이 모두 비참하다거나 불행해보이지는 않는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불쌍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네 마음 속에서 동경해온 대상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면,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을거야.

<미스라임의 동굴> 의 레프요탄 박사의 말이다. 레프요탄은 과연 현실의 고통을 없애주는 정치가인지, 아니면 진짜 현실로부터 벗어나 가짜 세상속에서 대중을 마음대로 지배하는 독재자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인물이다. 따라서 위의 말 또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즉, 훨씬 자유로운 몸이 실제론 자신을 구속하는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읽어나가는 어려움이다.

물론 이런 혼돈은 개인적인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금 내가 혼란스럽게 책을 읽어나간 것은 현실의 내가 혼란한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며, 이런 혼란한 세상 하나를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게 뭐 어쨌다는겨'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을 가질 것이며, 따라서 꿈을 꾸는 것이 행복한 그런 세상 또한 나는 가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따라서 <자유의 감옥>에 나오는 인샬라처럼 아무런 선택을 하지 못하고 현실 속에서 눈이 먼 상태로 남아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꿈이 구속이 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서라도, 꿈이 진정한 자유가 될 수 있는 세상의 문을 향해 다가가 마침내 그 문을 열어 젖힐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바로 이 희망도 또는 반대로 절망도 이 책 <자유의 감옥>에선 독자들 스스로가 선택해서 취하는 책이 펼쳐놓은 천차만별의 세상일련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하고 엄청난 피해가 일자 미국은 아우성이다. 늑장대응이라는 비난과 함께 인종차별 문제까지 들고 일어났다.  게다가 허리케인 5등급의 리타가 다시 멕시코만을 위협하자, 이번엔 지구온난화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던 부시를 질타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마도 정치적 색깔을 띠고 있는 공격성 비판으로 보이긴 하지만 일견 무시못할 부분이기도 하다. 온난화로 인해 허리케인의 강도가 거세어지고 있다는 분석은 아마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문제와는 별도로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면, 그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명의 문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듯 싶다. 일반적으로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과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낙관 속에 빠져 있다. 배가 터지게 먹고나서 소화제 먹으면 된다는 식의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반면 온난화에 대한 논의에선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줄이자는 식의 해결책이 나오고 있다. 즉 배터지기 전에 조금 덜 먹어보자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지구의  온도를 떨어뜨릴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보자는 방식이 아니고서 말이다.  문명이 일으킨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인간의 욕망의 크기를 조절하자는 생각은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조금 비켜간 겸손한 방식일지도 모른다.(물론 여기에도 선진국이 후진국에 대한 오염수출산업이라는 경제논리가 숨어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책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바로 이런 근거없는 과학적 낙관론을 기반으로 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돋보인다.

갑자기 돌은 하나의 상징이 된다. 지금 이 순간, 이 돌은 서구과학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의 결정체가 된다. 계산, 증오, 희망, 공포,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어떤 공감보다도 강한 것- 돈을 바라는 욕망.

그러고 보니 이 책이 마치 문명비판서처럼 느껴질련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시계에 의해 자신의 삶을 지탱해간다. 거기에 약간의 변화만 주면 거의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또한 '스밀라...' 는 재미있는 추리소설이다.

한 아이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경찰은 자살로 생각하지만 주인공 스밀라는 절대 자살이 아님을 확신한다. 그것은 옥상 위에 남겨진 아이의 발자국 모양새를 보고서 판단한 것이다. 스밀라는 그린란드인으로서 눈과 얼음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감각을 지니고 있다. 스밀라는 왜 아이가 죽었는지 알아보려 한다.

소설은 아이의 죽음을 발단으로 그 뒤에 감추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지는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155센티미터의 스밀라가 톡톡 내뱉는 말이나 갑작스런 행동들 하나하나는 그녀를 굉장히 매력적으로 만든다.

자신에게 잉여가 있을 때나 사랑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초적인 본능들, 굶주림, 잠, 안전에 대한 요구로 환원되고 나면, 사랑은 사라지고 만다.

라고 이야기하는 스밀라는 그러나 그 밑바탕에 한없는 애정을 지니고 있다. 단순히 소년의 죽음으로 치부할 수 있건만 그녀가 그토록 그 죽음의 원인을 캐고자 했던건 아무래도 소년을 사랑했기 ‹š문이리라. 때론 냉소적으로, 세상에 무관심한듯 보이지만, 그녀는 삶을, 자유를 사랑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현대인의 외로운 사람들을 그대로 비쳐주는 것 같다. 외로움에 익숙해진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한없는 따뜻함. 스밀라는 바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자, 점차 잃어버리고 있는 체온이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건의 얼개와 그것을 풀어가는 캐릭터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흥미롭기 때문이다. 

스밀라는 이 소설을 통해 삶과 자유는 욕망의 크기를 줄여나갈때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로운 이들이여, 스밀라를 사랑해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학이나  과학이 현실과 멀어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는데 지장 없는데 무엇하러 배우는지 모르겠다는 불평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냥 잔뜩 숫자가 나열되어 있고, 뜻모를 암호같은 공식만 가득할 뿐 그것이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어떤 쓸모가 있을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원자폭탄이 떨어짐으로 인해 세계대전이 종말을 고하고, 그 이후 세계권력의 재편이나 힘의 싸움에서 핵은 결코 현실과 멀어진 적은 없다. 지금도 그 핵을 에너지로 쓸지, 무기로 쓸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끌고 당기는 국가간의 게임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그 폭탄의 괴력을 알아챈 것은 물리학이었으며, 따라서 내가 직접 손으로 느끼고 눈으로 보지 않을지라도 수학이나 과학은 삶의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컴퓨터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힘든 요즘엔 더욱 그 알듯 모를듯한 공식들이 전혀 쓸모없는 어떤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생활패턴 자체를 완전히 뒤바뀌도록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수학, 과학의 근원적인 힘인 것이다.

테드 창의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과학철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SF라고만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 작품도 있어 판타지와 SF가 섞여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듯 싶다. 1+1=2라는 가장 상식적인 생각이 무너진다면 과연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토대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기우뚱거릴수밖에 없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무너지는 바로 그 순간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테드 창은 바로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흥미롭다.

특히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를 소개하고 있는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사고가 시간적 흐름 속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발한 착상을 하고 있다. 즉, 나의 행동이 어떤 원인을 거쳐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과가 나와 있는 원인적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빛이 물을 통과할때 굴절을 하는데 그 굴절한 빛이 도달한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걸린 시간이 최소가 되는 것만큼 굴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빛이 그대로 직진하면 빠르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물 속에서 빛의 속도는 느려지기 때문에 물 속에서의 거리가 어느 정도 더 짧았을 때 전체 시간이 짧아질 수 있으므로 굴절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운명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순차적인 경로를 통한 인생의 흐름이 아니라 이미 도달점이 정해져 있고, 그 도달점을 향한 길마저 정해져 있다는 것. 그 길이 바로 운명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따라서 오히려 빛의 성질인 페르마의 원리대로 살아가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이미 운명론과는 거리를 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이 외에도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나 <지옥은 신의 부재>같은 경우는 전혀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굉장히 유쾌한 즐거움을 준다. 특히 <외모...>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이용해 똑같은 현상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옮겨적듯이 써내려가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입장차를 담아내고 있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외모에 대한 감상을 없애주는 기계를 착용할 것인지 말것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들은 어떤 한쪽에 치우침없이 서술하면서도 우리네 사회가 어떻게 잘못 굴러가고 있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다. <라쇼몽>이나 <오!수정>이 기억의 다름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사람들의 처지에 따라 그것을 기억하는 모양새가 달라지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듯, <외모...>가 비록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입장차가 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지, 정말 흥미진진하다.

세상에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는 사고의 기틀을(그 사고를 규정하는 언어에 대한 소설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의심하고 깨뜨려보는 테드 창의 이야기들은 정말 놀랍고 재미있다. 그리고, 그 깨어진 사고의 틀 속에서 현실에 대한 깨우침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테드 창은 항상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05-09-16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무쟈게 사보고 싶네요....아..책이 탑을 그것도 여러개의 탑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이런 덴장...!)

물만두 2005-08-3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죠^^

하루살이 2005-08-3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의 탑이 무너지는 순간을 고대하며...
아~그런데 얼마나 기다려야하죠 물만두님.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禍의 근원은 욕심에 있다고 선인들이 말씀하시고, 경서를 통해 주의를 주건만, 으례 당연한 가르침임에도 당연하게 지켜내지 못하는데서, 그런 말씀들이 세월의 잊혀짐 속에서도 굳건히 남아 우리의 눈과 귀로 전해져오는 것은 아닌가싶다.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시기 질투하지 말라 같은 명령투의 금언들은 간혹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못한채, 그저 지켜야만 하는 무엇으로 인식되건만, 실행은 무던히도 힘들다. 아마 금지된 행동이 가져올 결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말고는 정작 그 말씀들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는 탓일지도 모른다. 아니, 근거의 빈약보다는 차라리, 욕망의 실현이 가져다 줄 달콤함이 잘못된 결말이 불러올 참혹함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련지도 모른다.

이런!!! 로알드 달의 <맛>이라는 이 단편집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나는 엉뚱하게 이다지도 딱딱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니... <맛>을 읽는 재미는 마치 맛있는 과자가 다 없어질까봐 조심조심해서 하나하나 꺼내먹는 것에 비유될정도로 크다.  마지막 반전이 가져다주는 유쾌함과 통쾌함. 그래서 오히려 그 마지막 반전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잠시 읽는 것을 멈추고 싶을 정도다. 이 반전을 읽고 나면 이 이야기가 끝이 난다는 점이 너무 아쉬워서 말이다.

<맛>에 실려있는 단편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어떤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있다. 먼저 주인공이 집착하는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그것을 발견한 다음, 그것을 얻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집요한 작업의 과정 속에 드러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행동이나 대화를 통해, 마치 내가 그 탐욕의 현장 바로 그곳에 있으면서 주인공인마냥 착각할 정도록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리고 바라던 바를 얻어낸 것 처럼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성취감이 느껴질 정도의 느긋함이 어떤 여유로움을 주는 바로 그 순간에 로알드 달은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 갈긴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독자는 눈알이 튀오나올 정도록 아프기 보다는 웃음보가 터져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서 가슴 깊게 다가오는 탐욕의 허무함과 상실감.

자, 그 뒤통수를 맞고도 당신은 바로 그 어떤 것에 집착해 조마조마해하며 살아갈 것인지 저자는 입가에 웃음을 띠운채 넌지시 묻는다. 독자에게 어떤 직접적인 설교를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욕심이란 것의 끝없는 확장과 그 허무한 결말을 통해 작가는 유쾌한 삶의 행로를 살짝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웃어제낀 바로 그 어리석은 탐욕의 주인공처럼 되지 말라는 충고로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5-08-30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8-30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이제 별 다섯 개 주는 거 정말 부담스러워지는데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도에서 동물원을 경영했던 한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다. (동물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마치 최근 영화 마다가스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밀림 속에서만이 동물이 동물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동물원 안에서도 동물은 동물다울 수 있다는 생각. 즉 밀림이나 동물원이나 제한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는 저자의 생각은 동물원이 어떻게 탄생했고, 그 역사가 갖는 의미와는 별개로, 다분히 인간의 생존조건에 대한 어려움을 전제로, 동물적 관점에서 바라본 동물원에 대한 색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가족이 몸을 실은 화물선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좌초를 하고, 주인공인 16세 소년 파이는 구명보트에 몸을 싣는다. 그런데 이 구명보트에는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암컷 오랑우탄, 하이에나, 벵골 호랑이가 타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먹이사슬에 따라 동물들은 죽어가고, 결국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이 보트에 남는다.

소설은 소년과 호랑이가 227일간을 표류하면서 멕시코 해안에 도달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소설'같은 이 이야기는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희망을 일구어내는지를 사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잘 기억나진 앉지만 잡은 물고기를 싱싱한 활어상태로 육지까지 보관하기 위해 상어 한마리를 집어넣는다는 것과 어찌보면 일맥상통하는 이야기 같다.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호랑이라는 존재가 있음으로 인해서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227일간의 표류과정은 마치 로빈슨 크루소를 읽는듯 하다. 물과 음식을 구하기 위한 가지각색의 묘안, 호랑이와의 동거를 위한 길들이기 작업, 실명과 기아 직전에서 행한 식인행위,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난 식인섬에서의 안주와 탈출 등등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주인공 파이는 자신이 이 오랜 표류기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것을 다음의 두가지 요소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 하나는 끝끝내 밀쳐내야 하는 것.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삶에의 의지. 밀쳐내야 할 것은 공포감.

삶에의 의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끝끝내 놓쳐서는 안될 그 무엇일게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 공백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삶에의 의지를 놓치고서 그냥 인생의 바다를 표류하다 가라앉아버린다. 삶의 고비라고 느끼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얼마나 그 끈을 놓아버리고 그냥 포기하고, 이내 운명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어했던지 떠올려보라. 그리고 이내 그 운명의 흐름에 휩쓸려 지금 이렇게 서 있는지도 모를 나의 본 모습을 돌아보자. 우리가 그렇게 의지의 끈을 놓아버린 것은 아마도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이 삶에의 의지가 정말 행복을 가져다 줄것인지에 대한 불안이 이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공포감에 젖어 생을 운명에 맡겼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떠올려보자.

살아나고 싶다면 적응해야 한다. 많은 것이 소모된다. 가능한 곳에서 행복을 얻어야 한다. 지옥의 밑바닥에 떨어져서도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지어야 한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 된 기분이 된다.(270쪽)

희망은 희망을 원한 사람들에게만 그 빛을 보여준다. 그 희망은 삶에의 의지요, 그 삶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용기다. 누가 태평양 한가운데서 호랑이와 구명보트에서 마주한채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포기는 삶의 행동 가운데 가장 쉬운 항목임을 또 한번 가슴에 새기리라.

소설의 재미는 표류의 종결로 끝나지는 않는다. 일본 항운회사가 배의 좌초의 원인을 알기 위해 멕시코 병원으로 파이를 찾아왔을 때, 일본인들은 그의 모험담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파이가 이야기하는 두번째 모험담은 동물 대신 모두 사람으로 대체되어져 있다. 그리고 혹시 그것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가지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너무나도 섬뜩하기에 우리는 호랑이가 나오는 첫번째 모험담을 진실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는다. 가슴 속에서 사그라들지 않을 희망의 빛을.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레어 2005-07-26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파이이야기..저는 요리책인줄 알았어요..>_<

하루살이 2005-07-26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이는 3.141592........ 수학부호의 파이랍니다. 삼순이 마냥 자신의 이름이 못마땅해서, 수업시간중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주입시킨 새 이름이죠.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또 생각보다 쉽게 술술 빨리 읽히는 재미가 솔솔했답니다.

icaru 2005-07-2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내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고 있었거든요..읽으면서 조금 느슨했었는데... 이 리뷰보니까... 없는 가속도 붙게 만드는 힘이 생기네요... 아..그런데 하루살이 님 정말 오랜만인듯해요~ 저만 그런가요 ^^

하루살이 2005-07-2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접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아마도 당분간은 이렇게 가끔씩밖엔 서재정리를 못할것 같군요. 정말 오랜만이라 그런지 너무 반갑네요.^^ 빨리 문제가 해결되서 매일 매일 서재에 들를 수 있는 날, 그래서 방문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2005-08-10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08-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런 것은 티를 팍팍 내도 괜찮아요. 남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니까...
사정이 아직 여의치않네요. 최근 읽은 책도 몇권 되긴 하는데 이러다가 책 내용 다 까먹지 싶네요. 읽자마자 느꼈던 그 감정을 그대로 담아내야 하는데, 그때의 흥분들이 다 가라앉고 나면 뭘 어떻게 쓸 수 있을련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리뷰에 올라가기는 힘들듯 싶네요. 하루빨리 제 생활이 정상궤도를 찾을수 있기를 빌어주세요^^.

2005-08-11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