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지음, 강미숙 옮김 / 창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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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화이트 노이즈는 2,30년 전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중산층 가족의 이야기다.  이 가족은 대도시가 아닌 조그만 소도시 대학에서 히틀러학을 가르치는 아버지와 노인들에게 요가를 가르치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른 자식들( 이 부부는 결혼과 이혼을 여러번 거쳤기 때문에)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대화를 듣다보면 아이가 어른 같고 어른이 아이같기도 하며, 대화 중간 중간 라디오나 텔레비젼의 소음이 끼어들고(이게 바로 책의 제목 화이트 노이즈를 의미한다.) 수많은 브랜드 이름의 홍수들이 넘쳐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쳐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 전체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차 있다. 사건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유독가스를 실은 기차가 전복되면서 발생하는 소동, 그리고 어머니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실험용 약물을 복용하면서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큰 얼개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야기보다는 주인공 각자의 행동양식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드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본질보다는 항상 이미지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여진다. 그것은 소설 전반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은 미국에서 사진이 가장 많이 찍힌 헛간으로 유명한 관광명소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지만 실제로 그 헛간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과정속에 드러나는 대화를 엿들어보면

"일단 이 헛간에 관한 표지판을 본 다음에는 헛간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여기 오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항복입니다. 우린 그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만 보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과연 우리는 주체적인 생각을 가지고, 나와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주어진 정보와 이미지에 파묻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네살짜리 아이와 아버지의 자동차 속 대화도 잠깐 들어볼까!

<오늘밤에 비가 올 거예요

지금 오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오늘밤이라고 했어요>

<지식은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이동하지요. 그것은 매일 매순간 변하고 자라요.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 실제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소설은 이런 생각의 현미경을 가지고 공포라는 감정을 들여다본다. 공포라는 것은 실제한다기 보다는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범람함으로써 쓸데 없이 비대해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현대 우리의 삶에서 비만이 주는 공포로 말미암아 수많은 다이어트가 성행하는 것과 비슷해보인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건강 정보들로 인해 나는 항상 어디가 아픈 사람이지 않는가 염려해야 하며, 잠재적 암 환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 또한 자신의 신체적 변화가 주는 직접적인 공포보다는, 검사에서 드러나는 수치로 인해 막연한 공포를 갖게 되고, 죽음이라는 감정이 발생하는 뇌의 작용을 억제하여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려하지만, 오히려 현실과 개념사이의 구분을 잊어버리는 부작용에 시달린다.

유독가스가 새어나옴으로써 더욱 아름다워진 석양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나 감성을 갖어야할지도 잘 모르는듯이 보여진다. 그것을 바라보며 느끼는 것 또한 매체를 통해 겪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배워야지만 가능한 것일련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본질보다는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 사람들은 그 이미지의 포장을 걷어내지 못하고, 또 설령 걷어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다른 포장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쉽사리 본질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포장은 수많은 화이트노이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화이트노이즈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은 우울한 색깔로 뒤덮여 가고 있는듯만 하다.

소설은 결말부에 충격적 사건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해결로 믿음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 믿음 또한 본질적 믿음이 아니라, 누군가 믿지 않으면 건재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믿는 척 함으로써 발생하는 믿음일 뿐이다. 즉 포장지를 걷어낸 것은 거짓 믿음이며, 이것 또한 또 다른 포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결국 우리는 진짜 사물에 한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고, 진실보다는 거짓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서글프다. 살아간다는 것은 진실과 하등의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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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떠나는 남자
로랑 그라프 지음, 양영란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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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은 돌아옴을 전제로한 떠남이다. 휴가란 여행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잠시 벗어나 있는 것. 그것은 나를 둘러싼 현실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나라는 이미지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라는 허상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특징지어지므로 그 관계를 벗어나게 되면 그 허상또한 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다시 돌아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과감히 그 고정된 나라는 상을 탈출할수가 없다.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쉬어갈뿐인 것이다. 또는 나는 그대로인채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조금이나마 변화시켜줄 뿐이다.  

여기 <매일 떠나는 남자>라는 소설 속 주인공은 이런 휴가가 아닌 완전한 떠남을 바라는 남자다. 어디로 떠날지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상태지만 날마다 떠날 것을 바란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른 새로운 나로 태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으로도 떠날 수 있도록 풍토병 예방 주사를 꼼꼼히 맞기도 하고, 여행지 카탈로그를 집안에 가득 쌓아놓기도 한다. 여행용 가방을 하나 사두고 그 안에 차곡차곡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사서 채워놓기 시작한다. 반면 자신의 집에는 언제든지 마음껏 떠날 수 있도록 점점 비우기를 시도한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이나 증오심을 품으려 하지 않고 어떤 일에건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한다. 이것은 완전히 떠나는 것을 방해할 사슬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삶이 행복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평할 일도 없는 그저 마음이 편안한 상태다. 그러고 보면 실제로 떠나지 않았어도 이미 그의 정신은 떠나 있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남자, 끝내 40년 동안 떠나는 계획만 세우고 떠나지 못했다. 20년 넘게 살던 원룸의 전세집도 주인이 바뀌면서 할 수 없이 옮겨야 할 처지에 빠졌을 때 비로소 호텔로 옮긴다. 그러나 그 호텔이란 것도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계속 거주하는 장소다. 누군가가 그를 찾아온 후 다음에 어디서 볼 것인가 물어본다면 그는 지금 이 호텔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임을 말한다. 결국 죽을 때까지 설문조사서 발표된 프랑스에서 가장 우울한 곳 캉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 이후 그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려 했던 삶의 행보와 달리 느닷없이 나타난 아들 덕에 달로, 우주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번역자는 이 남자가 비록 실제론 떠나지 못했지만 나날의 삶이 떠남과 같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난 반대로 결국 떠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비애를 이 남자가 대변하고 있는듯이 보여진다. 가지고 싶지 않아도 갖게 만드는 이 사회는 훌훌 털어버릴 수 없도록 만든다. 남기고 가버리면 될 것이지만 쉽지 않다. 모아놓은 시간과 열정이 그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사물함에 사표를 항상 써두고 떠날 준비를 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남자는 이 시대 셀러리맨과 닮아 있다. 그저 여행가방에 여행물품을 하나 둘 쌓아두는 것 이외에는 실제로 방 밖을 나서지 못하는 삶의 굴레.

도대체 사람들은 왜 떠나고 싶어할까? 그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난 완벽한 떠남의 근저에는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혹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 이라는 몽상과도 맞닿아 있는듯이 보여진다. 지금의 내가 꼭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의 나가 아닌 다른 나로서의 삶을 꿈꾸어 본다는 것은 왠지모를 해방감을 준다. 내가 놓여진 지금 이 곳에서 그런 변신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왠만해선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꿈을 꾼다. 떠나는 꿈을. 그리고 그 꿈은 하루하루 매일 매일 떠나는 나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의 방안에도 여행가고 싶은 곳에 대한 정보가 적힌 쪽지들이 이쪽 저쪽에서 뒹글고 있다.  가끔씩 컴퓨터 앞에서 아름다운 그곳을 찾아 인터넷 여행을 떠난다. 나도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떠나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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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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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못되고 경우없는 놈이 그토록 강하다는 것은 알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지만, 그놈은 어쨌든 강한 놈이었다. 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찌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견딜 수 없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물린 다리는 땅을 디딜 수 없이 힘이 빠졌고 내 몸이 아닌 것처럼 허청거렸으나, 그 욱신욱신 쑤셔대는 고통은 모조리 나의 것이었다.(182~183쪽)

그렇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견뎌내지 못하다라도 견뎌내는 일인 것이다. 못된 놈이 강하고, 세상이 쑤셔대는 날카로움에 온 몸이 쑤셔대는 것. 그 고통을 고스란히 내 몸으로 간직한다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개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살이다. 뭐, 그렇다고 인간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가득찬 그런 소설은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의 신산함을 개의 눈으로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개는 절대 애완견이 될 수 없다. 온실의 화초처럼 보호받고 살아가는 애완견마냥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므로, 당연히 소설 속 개는 땅을 밟고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히는 개여야만 한다. 우리네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히듯. 애완견마냥 발에 헝겊떼기를 감싸안고 살아갈 수 없는 우리네 삶이기 때문에.

주인공 보리는 진돗개다. 그는 댐공사로 수몰되는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에 찌들려 살아가는 어촌마을로 옮겨진다. 그렇다. 이 소설의 배경은 우리의 과거 이야기이다. 하지만 결코 과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 찢어진 가난은 여전히 우리의 고향에 존재하고, 우리네 삶은 여전히 신산스러우므로. 보리의 바람은 사람이 눈치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개의 마음으로 개의 일을 판단하지 못하고 개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치 말이다. 개를 헤아리지 않더라도 사람들끼리라도 눈치를 잘 살피라고 말이다. 제멋대로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 대접받고 소신 있다 칭찬받는 개수작 부리지 않는 세상이기를,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 없도록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부러운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개처럼 저 혼자의 몸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면서, 앞다리와 뒷다리와 벌름거리는콧구멍의 힘만으로 살아가지를 못해. 나는 좀더 자라서 그걸 알았어. 그것이 사람들의 아름다움이고 사람들의 약함이고, 모든 슬픔의 뿌리라는 것을.(42쪽)

사람들은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 부대낌이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행로다. 그 행로에 항상 눈치를 보아가며 서로를 따듯하게 대해줄 힘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는 약한 존재다. 그래서 발바닥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굳은 살이 바로 살아가는 힘이 된다. 굳은 살이 박히지 않는 개는, 아니, 사람은 조그만 진흙에도, 빙판에도 거꾸러진다. 굳은 살은 비바람을, 눈보라를 이겨내는 힘이다. 삶의 상처다. 그리고 행복이다.

보리는 주인 아저씨의 죽음으로 모두 이사 가야 하는 주인집에 따라가지 못한다. 아파트는 진돗개가 살 곳이 못된다. 앞으로 보리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가 없다. 그 정처없고 예견할 수 없는 보리의 삶이 바로 나의 행로다. 그의 상처가 바로 나의 상처이지만 서로 핥아줄 혀를 지닌 동반자가 있으므로(있을 터이니) 삶은 아름다울 것이다. 스산한 바람이 지나면 꽃은 필 것이다. 개는 그 꽃밭의 향기를 맡으며 힘차게 뛰놀것이다. 개의 굳은 발바닥을 찬양하며... 또 닥쳐올 스산함을 견뎌내야만 할 그 굳은 발바닥을... 사라지지 않을 그 스산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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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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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영화로 보고나서 나름대로 괜찮군 생각했었다. 영화보다 책이 더 낫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듣긴 했지만 일부러 책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같은 작가의 새책을 손에 쥐게 됐다. (물론 [도쿄 타워]라는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마 곧 개봉하지 않을까 싶다. ) 손에 꼭 들어가고 두껍지도 않아 주저없이 읽게 됐다. 하루에 다 읽지 못하고 중간 중간 쉬어가며 읽어갔는데 하루가 지나고 밤이 찾아오면 이들 주인공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책은 19세에서 20세로 넘어가는 두 청년과 30대 40대 여인의 사랑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의 방식은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크게 나눠보면, 한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과 다양한 사랑 속에서 진짜 사랑을 찾아가는 방식 정도이지 않을까? 물론 이 사이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존재할터이지만 말이다.

토오루는 한사람만을 향해, 코우지는 마치 바람둥이마냥 사랑을 대한다. 그 사랑의 방식은 다르지만 사랑을 통해 느끼는 감성이나 심리변화는 비슷해보인다. 책에서 드러나는 사랑에 대한 감정은 연애편지를 쓸 때 꼭 써먹을 그런 밀어들이 아니라 일기장에 꼭꼭 눌러쓸 그런 표현들이라 생각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54쪽)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은 시후미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다. (58쪽)

시후미가 주는 불행이라면, 다른 행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70쪽)

사랑을 하면 강아지도 시인이 된다 (84쪽)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115쪽)

좋았겠다, 토오루는 그 시절의 코우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147쪽)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때문 (298쪽)

미련, 그말에, 코우지는 흠칫 놀란다. 미련이 남은 듯 키미코에게 연락해버리는 일을, 지산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318쪽) 키미코와 자신이 그토록 서로를 갈망했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있든 유리가 있든, 메우지지 않는 고독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319쪽)

누구든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상처 입는 것에 저항하는 거야, 여자들은(327쪽)

사랑을 하면 기다려지고, 그 기다림이 오래되더라도 행복하고, 목소리가 듣고싶고, 항상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자기와 함께 하지 못한 이전의 시간들이 안타까워 사랑하는 사람의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헤어지고 난 뒤에라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쌉싸름하기도 하지만 달콤한 사랑을 이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그 대부분의 심리가 20살 청년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30대 40대 주부인 시후미와 키미코의 심리를 읽어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정말 이 청년들을 순수하게 사랑했는지, 아니면 불륜의 쾌감을 즐긴건지. 하지만 이런 혼돈도 청년들의 사랑앞에 같이 녹아들어 분명 이들도 사랑이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이들을 만나왔으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성을 벗어던지고, 소설은 이들의 사랑이 불륜이 아님을 이야기한다.

사랑 앞에선 아무 것도 잃을게 없다. 오직 사랑 그 자체를 잃는 것만이 두려울 뿐이다. 그래서 일탈이라는 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일탈에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것은 일탈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때문이리라. 내가 순수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것을 따르고자 해도, 그것이 금지된 것이라면 선뜻 행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지금까지 쌓아온 돈이나 명예, 권력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이다. 자신을 지탱해주던 관계의 망이 끊어질까 겁나는 것이다.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울타리 안에 거주하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경계를 벗어나도 무섭지가 않다. 그러나 일단 가지고 있는 자는 빼앗기는 것이 두려운 일이다. 사랑은 그 두려움을 없애준다. 용기를 일으킨다. 사랑 앞에선 일탈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찌보면 젊은 이들이 이토록 사랑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쌓아놓은 토대가 두텁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면 먼저 사랑에 대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다.

다른 여러 사람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친해지지도 고립되지도 žb으면서 존재하는 기술을 습득해버렸다.(89쪽)라는 토오루의 심정. 코우지에게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마음을 준다는 행위였다. 묘하게 연상의 여자한테는 마음을 허락해 버린다. 자기 사람이 될 수 없는 여자에게만, 자기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302쪽)라는 코우지의 심리. 이 둘을 합쳐 놓으면 내 속에 감추어진 그림자가 얼핏 모습을 드러낸다. 난 너무 늙어버린건가? 아니면 아직도 어린 애인가?

고슴도치의 사랑 마냥,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하고, 아름다운 장미를 꺾기 위해 가시에 찔릴 각오를 하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가슴을 찔릴 각오를 하고....

인간이란 모두 완벽하게 상처 없이 태어나지,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 그 다음은 말야, 상처뿐이라고 할까, 죽을때까지, 상처는 늘어날 뿐이잖아, 누구라도(327쪽)

코우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내 마음엔 아직 커다란 생채기 하나 없다. 상처가 생기기 전 이미 항생제를 들이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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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0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이기에...

2005-11-16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1-1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께서 드린 걸로 생각할게요^^
 
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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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에 흠뻑 반해 교고쿠 나츠히코의 책이라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망량의 상자 >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분명 추리소설이지만 추리의 재미보다도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주인공인 교고쿠도의 괴설이다.(교고쿠도는 화자의 친구로 나온다) 굉장히 논리적이면서 기존의 생각들을 깨뜨리는 그의 대사를 궂이 괴설이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의 말에 100분 동감하며 책을 읽다 가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들은 항상 일상을 살아가는 아주 자그마한 현상 하나하나에서 톡톡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니 괴이한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망량의 상자>는 두 사건을 주축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토막살인사건이며, 또 다른 하나는 가나코라는 소녀의 자살미수건이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넣는다면 망량을 가두는 온바코님 교주 신자들의 불행 정도라고 할까? 이 사건들은 실은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꼭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 사건이 사건을 낳아버린 기이한 영향력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천재 과학자 미마사카가 등장하며, 일본의 영화계를 흔들었던 미모의 여배우 요코가 나온다. 또한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머니를 죽이고 싶어하는 아자세 콤플렉스를 지닌 요리코라는 소녀, 상자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구보라는 사내까지... 이들은 아무 관계도 없는 듯하다 어느 순간 굉장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각자의 사건에 얽매여 있다 다른 사건의 동력원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는 순서다.  사건 발생 순서대로 순차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다가는 불가능했을 것을 교고쿠도는 해결해낸다. 이 사건들은 순서대로 찾지말고, 사건 그 자체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같은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같은 사건이 아니고, 다른 사건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같은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은 시간의 순서를 저버리고, 우연의 개입을 바라보았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순서보다 중요한 열쇠는 동기다. 작가는 범죄의 동기를 찾지 말라고, 교고코도의 입을 빌려 말한다.

동기란 세상을 납득시키기 위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네. 범죄는---- 특히 살인은 대부분 경련적인 거야. 그럴싸하고 있을 법한 것일수록 범죄는 신빙성이 더해지고,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세상 사람들은 납득하지. 그런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네. 세상 사람들은 범죄자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만, 특수한 정신상태에서만 그 무도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어떻게 해서라도 생각하고 싶은 걸세. 다시 말해 범죄를 자신들의 일상에서 분리하고, 범죄자를 비일상의 세계로 내쫓아 버리고 싶은 거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은 범죄와는 인연이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증명하고 있을 뿐일세.(하권 175쪽)

범죄를 자신의 일상에서 분리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바로 범죄의 동기를 만들고, 자신을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범죄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동기들이 모여서 힘을 발휘하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하지만 교고코도는 범죄라는 것은 마치 지나가던 집이나 만난 사람에게 재앙을 끼치고 나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마물인 도리마처럼, 우리 각자에게 언제나 찾아왔다가 떠나가는 도리모노 같은 것이라고 설파한다. 즉 누구나 갑작스런 살인 충동이나, 파괴 본능을 어느 순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이라는 것은 갑작스레 조성되어지는 환경을 말하며, 바로 그 잠깐 동안의 몇십분의 일초라는 짧은 순간동안 도리모노가 지배했을 때 범죄는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범죄가 발생하고 나서의 사회적 개인적 불이익을 이성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욕구가 일더라도 절대 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도리모노의 순간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동기는 범죄가 저질러지고 나서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이성적 작용으로 나타나는 설명일뿐인 것이다.

소설 사건의 제일 근간이 되는 것은 망량의 순간이지만, 직접적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것은 이 도리모노의 작용때문이다. (망량은 마음의 틈에서 발생하는 유혹정도라고 해야할까, 책 속에서는 망량에 대한 소개, 해설이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진다. 즉, 일정한 형태로 정의되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의 경계선에 있으면서 사람의 조그만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유혹정도라고 해석되어질 수 있겠다.) 따라서, 처참한 살인 사건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법적 심판을 가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며, 심리적 자책감이 느껴지지 않는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또한 이 도리모노라는 것의 습격은 각자가 지니고 있는 망량의 그림자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음양사인 교고쿠도는 소설의 결말부분에 각자의 망량을 떼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자만, 금전욕, 사랑, 이해.... 망량은 개인마다 다른 모습으로 있다. 아차 하는 순간 망량의 작용으로 도리모노가 나를 스쳐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천히 생각해본다. 나의 망량은 무엇인가하고, 내 마음 속에 감추어진 망량의 상자속에는 무엇이 숨어있는가하고. 그리고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을 밝힐순 없을 것 같다고. 다만 얼핏 망량의 그림자를 보았으니 내 마음에 틈을 보여주지 않도록 살아야겠다고. 그런데 틈을 보이지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무엇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행복해지는 것은 간단한 일이거든. 사람을 그만둬 버리면 되네.(하권 501쪽)

결국 불행이 사람의 조건인 것일까? 주저리 주저리 매달린 마음의 찌꺼기를 지녀야만 하는 사람. 언제나 도리모노가 들어올 틈을 지닐수밖에 없는 몸뚱아리.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걸 비워버리면 어떨까? 텅 빈 곳엔 빈 틈도 없지 않을까? 空 속에는 경계도 없으니 망량도 없을 것 아닌가? 하지만 바로 그것은 神人의 경지이기에 또한 다른 방향으로 사람을 그만두어야만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을 체념하게 만드는 무거운 결말이지만 한편으론 타인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은 있을 수 없다. 말 따윈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마음이 통할 리 없다.(하권 36쪽)

통하지 않아도 이해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의 마음 속엔 틈이 있을테니까. 도리모노가 스쳐지나가는 그 자리에 우리 타인의 마음이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과 어울리지 않는 장미빛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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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0-12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서평입니다^^

하루살이 2005-10-1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막 쓰자마자 읽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아직 제대로 머리속에 정리되지않은 글인데, 과찬이에요 ^^;;;

2005-10-12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살이 2005-10-1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비밀을 알았으면... 혹시 습득하시면 저에게도 비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