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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커 스타일 - 카가미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
사토 유야 지음, 주진언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일본 미스터리계 상인 메피스토 상을 수상했다는 문구보다도 가족 유괴 살인 오컬트 강간 감금 등의 말이 뇌리에 깊이 박히는 자극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정말 자극적인, 그것도 형이하학적(?) 자극이 가득한 책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꽤나 형이상학적(?)이다.
여동생이 납치 강간을 당한 후 자살을 하게된다. 평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상한 가족의 피를 경멸하며, 누나의 장례식 등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주인공은 느닷없이 찾아온 한 인물로 인해 엉뚱한 복수극을 꾸민다. 여동생을 강간한 중년 남자들의 딸과 손녀를 납치해 감금시킨다는 것.
소설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줄기는 나이프 잭이라는 연쇄살인범이다. 소녀들만을 대상으로 목에 나이프를 찔러 죽이는 살인범. 하지만 그 피살자들의 얼굴은 공포로 떨고 있거나 도망치려하지 않고, 오히려 평온한 모습이다. 이 연쇄살인범의 범죄행각은 남자 주인공의 여자친구의 눈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는 초현실적 양태를 띤다.
소설의 두 줄기는 따로 진행되다가 결론 부분에 이르러 하나의 이야기로 집약된다. 일본의 전설 또는 신화를 바탕으로 한, 또는 그것을 소재로 한 소설은 오컬트적이기 보다는 편협함으로 가득차 있는듯 여겨진다. 하지만 또한 굉장히 솔직한 고백들로 가득차 있기도 하다.
감정이니 인격이니 하는 것들이 인간을 얽어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것은 쉽게 다시 쓸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이 일반적으로 바보라 불리는 종족. 인격을 쉽게 한가지로 뭉뚱그리려 하기 때문에 남의 입장이 보이지 않는다. (92~93쪽)
하지만, 인생을 의미나 부가가치로 장식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뭐, 환상을 부정하는 것은 고양이를 죽이는 것보다 쉽지만, 쉽다고 해서 부정하기만 하는 것도 또 넌센스니까.(108쪽)
누군가가 누군가를 무의식중에 상처 주고 상처받는 것이 이 현상세계라는 것. 그것은 자명한 이치다.(164쪽)
토도 유미에도 미쿠니 아키코도 형도 왜 이렇게까지 의미에 집착하는 걸까? 그 집착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의미가 있는 것 자체가 필연인 것인가... 아니, 속지않아. 난 속지 않을거야. 속을 수 없어.(207쪽)
인생이 의미를 가져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도덕이자, 진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고정관념화 되어 오히려 당사자를 얽어맬 수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을까. 정말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 의미를 찾는 과정마저도 삶의 엄청난 무게가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이 수시로 변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일관된 모습으로 치장하거나 일관된 척 하는 위선에서 벗어난다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나도 누나도 케토인도, 자기 중심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어떤 살인 동기도 자기 중심적인 것이다. 비록 그것에 어떤 명분이나 사명이 있다 해도 개인의 사고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돈을 위해, 종교를 위해, 가족을 위해, 자유를 위해, 세계를 위해... 뭐라고 하든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것.(376쪽)
소설을 읽으며 가장 동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요 소재인 살인에 대한 단상이 이토록 강렬할 수는 없다. 어떤 명분으로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ㅇㅇㅇ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그러나 소설의 강렬함은 순정에 대한 집착, 예지 능력과 같은 초현실적 세계에 대한 동경, 나나 우리와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배타적 또는 공격적 성향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하다. 소설이 이런 것들에 대한 거부를 말하고 싶었다고 애써 생각하며, 이런 전제들에 대해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 보다는 한번쯤 그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할듯 싶다. 인생이 의미를 꼭 가져야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소설의 전제가 되는 소재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타인에게 어떤 폐해를 끼칠 수 있는 정신적 무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때론 책의 의미를 뒤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